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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동물성 바다 / 고은산

 

창 열고 바라보는 봄 바다는 고양이, 저 혼자 부딪치며 살아온 목숨여서
오늘도 조선 매화를 파도 위에 그린다

활짝 핀 공작 날개 흉내 낸 여름 바다, 어느 문중 휘감은 대나무 뿌리처럼
푸르고 깊은 가문을 댓잎으로 상감한다

발굽도 닳아버려 혼자 우는 가을 바다, 멀리멀리 떠나가는 비단 같은 노을길을
갈매기 수평선 멀리 지평선을 물고 간다

폭설을 삼켜버린 캄캄한 겨울 바다, 천 길 어둠 밀어내고 동살로 여는 아침
부스스 잠 깬 고라니 동백숲에 숨어든다


 

  <당선소감>

 

   한 사람이라도 울릴 수 있는 시조 작품 남기도록 노력

 졸작을 앞에 두고 고민이 많으셨을 심사위원님께 먼저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이번에 잡아주신 응원의 손길이 앞으로 시조의 길을 걷는 제게 큰 힘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길이 팍팍할 때마다 오늘의 이 순간을 꺼내 보겠습니다.

 당나라 시성 두보는 “성질이 원래 아름다운 것을 탐하여 사람들이 놀라는 어구를 찾지 못하면 죽어서도 그만두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시의 깊이가 접시의 물보다 얕은 저로서는 감히 흉내도 낼 수 없는 경지입니다. 다만 당선자의 각오로 이 구절을 가슴에 새겨 한 사람이라도 울릴 수 있는 시조를 한 편이라도 남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것만이 수상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선 소식을 듣고 부모 형제와 가까운 지인들, 그리고 시조를 가르쳐주신 스승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한 명 한 명 호명하여 고마움을 전하는 것이 너무 의례적이고 진부하다고 느껴졌습니다. 하여, 제 마음에 감사의 방 하나를 따로 마련하여 그 이름들을 모셔두고 오래오래 감사의 마음을 전하겠습니다.

 소감의 마지막이 그렇듯이 저도 가족에 대한 인사로 마무리할까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조를 쓰도록 옆에서 밀어준 아내와, 언제나 초고를 읽고 따뜻한 평을 해준 딸과, 시조가 뭔지 몰라도 아빠의 시조라면 일단 읽어주는 아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 1967년 충남 보령시 출생
● 한남대 국어국문학과 학사, 석사



 

  <심사평>

 

  깊은 사유의 미학… 한국화 보듯 고전적 미감 여운 남겨

 소재도 다양하고 응모 지명도 국내외 여러 곳이었다. 이러한 결과는 동아 신춘의 권위 때문이기도 하고 또 다르게는 삶의 고난이 심대할수록 사람들은 심미적 실존에 더 관심을 갖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여 윤독의 대상이 된 작품으로는 ‘조등이 핀 자리’ ‘슬픔의 이력’ ‘별자리를 읽다’ ‘그늘의 생존법’ ‘섬’ 그리고 ‘동물성 바다’가 있었다. 이 중에서 표현의 묘를 얻었으나 제목이 신춘문예로는 어색한 것, 육화되지 못한 서정, 쉽게 수락하는 일상의 애환 스케치, 혹은 너무 평범한 어둠에 관한 노래, 모국어에 대한 애정과 구사 능력을 인정하지만, 사색의 깊이가 얕다는 것 때문에 당선권 밖으로 밀려나고 한 작품만 남게 되었다. 비교해서 약점을 찾는 자리가 이 제도여서 탈락은 되었지만, 위의 작품 중에서도 우수한 작품이 적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작품이 ‘동물성 바다’였다. 바다의 봄, 여름, 가을, 겨울 풍경을 그렸다. 묘사 능력이 탁월할 뿐 아니라 깊은 사유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하는 마력이 있었다. 그 마력은 전통 한국화를 감상할 때 흔히 느끼게 되는 고전적 미감 같은 여운이었다. 우리 심사위원들은 기쁜 마음으로 이견 없이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정했다.

 상투성을 타파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작품이거나 전망 부재의 내일을 그리는 작품이거나 잘못된 사회에 대한 방법적 대응을 모색하는 작품이거나 이 시대의 쟁점을 파고드는 뜨거운 작품은 아니지만, 고요한 사색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하는 이 작품이 또 하나의 개성이 돼 한국 시조의 내일을 열어주길 기대하며 축하의 꽃다발을 전한다.


심사위원 : 이근배, 이우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