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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왕발 거인 / 송태고

 

“아이고, 아직도 이런 달동네에 집이 있어.”

우리가 살던 집은 달동네에서도 꼭대기 층에 있었다. 이삿짐을 옮기는 아저씨들은 투덜대셨지만, 나는 이 달동네를 떠나는 게 아쉬웠다.

“달을 제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특별한 동네야.”

친구들이 계단이 많은 동네에서 산다고 놀렸을 때, 아빠가 해준 말이었다. 그동안 달과 함께 쌓은 추억이 많았는데, 한낮에 이사하는 바람에 달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도배랑 장판이 많이 낡았는데…….”

“어차피 지하 방이라서 도배나 장판이 금방 떠. 대신 애들 낙서해도 내가 뭐라고 안 할게.”

새로운 집은 예전 집과는 달리 계단이 딱 열 개뿐이었다. 엄마는 이 집을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나는 예전 집에 비해 넓고 계단이 적은 새로운 집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여름방학이 끝나면 얼른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고 싶었다.

주인집 아주머니가 나가자 엄마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는 지방에서 근무 중이라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왔다. 회사가 너무 바쁠 때는 2주에 한 번씩 올 때도 있었다. 그런 아빠가 보고 싶어 전화하려고 하면 엄마는 우리를 말렸다. 좀 더 큰 집으로 이사 가기 위해 아빠가 고생 중이라고. 아빠를 귀찮게 하면 안 된다고.

“이사는 잘 끝났어.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해야 할 거 같은데. 당분간은 애들 낙서하게 두려고.”

엄마는 여전히 우글쭈글한 도배와 장판이 마음에 걸려 했다.

“성아야, 우리 벽에다가 그림 그릴까?”

나는 아빠와 친구들이 집에 왔을 때, 깜짝 놀랄만한 멋진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하지만 성아는 그저 커다란 창문만 바라보았다.

“저기 봐. 신발들이 지나가!”

“엄마가 없을 때는 커튼치고 꼭 불 켜고 있어. 성아는 우진이 오빠 말 잘 듣고.”

“그럼,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걸.”

성아의 말에 엄마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한번 신신당부했다. 엄마가 없을 때 낯선 사람들이 집 안을 보면 안 된다고. 아이들만 집에 있는 걸 알면 위험해진다고.

하지만 우리는 엄마가 없을 때면 틈틈이 그 약속을 어겼다.

“오빠, 우리 지하 탐험대 같다.”

신이 난 성아가 부엌에 있는 냄비를 하나 쓰더니 나에게도 하나 건네주었다.

“맞아. 우리는 지하 탐험대야!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지하 보물들을 벽에다 그리자.”

울퉁불퉁 반듯하지 않은 누런 벽지가 마치 선사시대 동굴처럼 보였다. 여기에 멋진 그림을 그리면 책에서 본 동굴 벽화처럼 꽤 근사하겠지. 나는 하루라도 빨리 그림을 완성해 아빠와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성아는 창문 밖 구경을 더 좋아했다. 겨우 사람들 발밖에 보이지 않는데도 뭐가 그리 재밌는지.

굽이 빠져 절뚝거렸던 뾰족구두, 계단처럼 높은 통굽 구두, 발가락이 툭 튀어나온 삼선 슬리퍼, 그리고 하얀 맨발의 새끼 고양이들까지. 이사 온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성아는 그동안 본 재미난 신발들에 대해 매일 같이 이야기했다. 그중에서도 성아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왕발 거인이었다.

“저기 왕발 거인이 지나간다!”

매번 우리 집 앞에서 먼지바람이나 일으키며 지나가는 낡고 커다란 운동화. 저런 왕발 따위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알 수 없었지만, 성아는 늘 신이 나 있었다.

“우와! 오늘도 왕발 거인이 모래바람을 일으켜!”

“너무 가까이서 보지 마!”

“살짝만 볼게. 왕발 거인 얼굴이 너무 궁금해. 왠지 털북숭이에 덩치도 곰같이 클 것 같아.”

성아가 창문 앞으로 식탁 의자를 끌고 오더니 그 위에 다람쥐처럼 폴짝 올라가 까치발을 들었다. 그때였다. 커다란 머리가 우리 집 창문으로 내려왔다.

“으악!”

나는 중심을 잃은 성아를 간신히 붙잡았다. 하마터면 성아가 의자에서 넘어질 뻔했다. 고개를 숙인 커다란 머리는 어느새 창문에서 사라져 버렸다.

“오빠, 우리가 너무 크게 소리를 질러서 왕발 거인이 놀랐나 봐.”

“너 때문에 내가 더 놀랐거든? 엄마가 위험한 장난은 치지 말라고 했잖아.”

나는 엄마 말을 떠올리며 커튼을 쳤다. 성아는 아쉬워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엄마 아빠가 없을 때는 내가 동생을 지켜야 하니깐.

그날 이후, 나는 괜히 왕발 거인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환기를 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창문을 열 때면 왕발 거인이 지나가나 집중해서 보았다.

“지각했나 봐. 왕발 거인이 엄청 빠르게 걷는다.”

평소보다 왕발 거인의 보폭이 거친 것 같았다. 걸음걸이도 빨라졌다. 마치 돌진하는 진격의 거인 같았다. 나는 얼른 커튼을 쳤다.

“왕발 거인이 또 얼굴을 내밀면 어쩌려고 그래?”

내가 야단을 치자 성아의 입이 오리처럼 삐죽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성아의 눈이 동그래졌다.

“오빠, 창문 틈에 뭐가 있었어!”

창문 틈 사이에는 성아의 말처럼 하얀 쪽지와 스티커 뭉치가 꽂혀 있었다.

‘얘들아. 저번에 놀라게 해서 미안해.’

성아는 쪽지를 읽고는 신이나 스티커 뭉치를 뜯었다.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거 이렇게 함부로 받으면 안 돼.”

“하지만, 티니핑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란 말이야!”

유치하게 이런 걸로 어린아이들의 환심을 사려고 하다니. 나는 왕발 거인이 생각보다 더 나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마음을 전혀 모르는 성아는 신이나 티니핑 스티커를 벽에 붙이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커튼 열지 마!”

“오빠 진짜 미워!”

내가 소리를 치자, 성아는 삐진 채 하얀 쪽지와 스티커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며칠 동안 비가 내렸다. 그 핑계로 나는 커튼을 열지 않았다. 성아도 딱히 커튼을 열자고 떼를 쓰지 않았다.

“오빠 벽에 그린 그림이 덜 말랐어. 축축해.”

“그러게. 얼른 비가 그쳐야 하는데.”

“오늘은 그림을 못 그리겠다. 비가 점점 많이 오는 것 같아.”

걱정스러운 성아의 표정에 나는 커튼을 살짝 열고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순간, 대가 부러진 우산 하나가 창문을 가리더니 이윽고 익숙한 신발이 보였다. 바로 왕발 거인이었다.

“어이쿠. 미안하다. 아저씨 운동화 끈이 풀려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다정한 목소리였다. 우리가 놀랐을까 봐 왕발 거인은 후다닥 창밖에서 사라졌다.

“왕발 거인 맞지? 생각보다 착한 아저씨 같아.”

“그래도 조심해야 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도 성아와 같은 생각을 했다. 왕발 거인의 목소리는 따뜻하고 포근했다. 마치 아빠와 닮은 목소리였다.

“오빠, 아빠 보고 싶어.”

“이제 며칠만 참으면 주말이잖아.”

나는 성아를 달랬다. 나도 아빠가 보고 싶었지만, 성아 앞에서 티를 낼 수 없었다.

“이런 날 엄마라도 집에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엄마는 일을 했다. 주말에도 엄마는 아빠에게 우리를 맡기고 근처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엄마에게 쉬는 날은 없었다. 우리를 더 좋은 집에서 살게 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하늘에 구멍이 났나 봐. 오빠, 집이 무너지면 어떻게 해.”

정말 하늘에 구멍이 난 것 같았다. 수돗물처럼 콸콸 비가 하늘에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르르 쾅쾅 천둥소리가 들리자, 성아가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방에도 비가 내려.”

집 천장에서 비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얼른 집에 있는 냄비들을 꺼내 바닥에 놓았다. 하지만 그것도 소용없었다. 순식간에 냄비 안은 물이 가득 차버렸고, 방 안에 물이 서서히 고이기 시작했다. 성아와 내가 걸레로 열심히 방을 닦았지만, 방바닥에 구멍이 났는지 쉴 새 없이 물이 차올랐다. 어느덧 우리가 그린 그림도 전부 지워져 버렸다.

“오빠, 그림이 다 지워졌어.”

성아가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나도 속이 상했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림은 다시 그리면 돼. 일단 물을 밖으로 빼자.”

우리는 냄비로 물을 퍼서 세면기에 갖다 버렸다. 그래도 물은 전혀 줄지 않았다. 어느새 물이 우리 발목까지 차올랐다. 안 되겠다 싶어 나는 성아의 손을 잡고 현관문으로 향했다.

“밖으로 나가서 엄마한테 전화를 걸자.”

하지만 아무리 있는 힘껏 현관문을 밀어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성아는 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고 나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휴대전화의 수신음은 가지 않았다.

“엄마…….”

성아가 엄마를 찾기 시작했다.

“걱정하지 마. 엄마 곧 올 거야.”

문틈으로 들어오는 빗물은 성아의 키만큼 빠르게 높아져만 갔다. 나는 식탁 의자를 창문 앞에 가지고 왔다. 그리고 성아와 함께 의자 위로 올라갔다.

“도와주세요!”

창문을 두드리며 목이 터져나가도록 소리를 질렀지만, 나의 외침은 세찬 빗소리에 힘없이 덮여버렸다. 빗물은 어느새 집안을 삼켜버렸고 화장실도 터져버렸는지 냄새나는 똥물이 방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오빠, 이제 우리 죽어?”

성아는 방 안에 가득 찬 빗물을 보더니 점점 더 서럽게 울었다. 정말 성아 말처럼 이렇게 죽으면 어쩌지. 동생 앞에서 울면 안 되는데. 불어나는 빗물이 무서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때였다.

“여기 애들이 있어요! 얘들아, 뒤로 물러서!”

밖에서 어떤 아저씨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나는 얼른 성아를 안고 의자 아래로 내려갔다. 어느새 방 안의 빗물은 내 코끝까지 차올랐다.

“오빠, 아빠 목소리지? 아빠가 온 거지?”

“응, 이제 걱정하지 마. 아빠가 왔으니 이제 괜찮아,”

정말 아빠일까? 사실을 알 수 없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성아를 달래기 위해 나는 아빠라고 대답했다.

밖에서는 아저씨들이 창문을 깨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창문은 좀처럼 쉽게 깨지지 않았다. 아저씨들은 몇 번씩이나 창문을 쾅쾅쾅 내리쳤다. 그때마다 나는 내 품에 안겨 있는 성아를 토닥여주었다. 다행히도 성아는 아빠가 밖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로, 울음을 잘 참았다.

드디어 창문이 와장창 깨졌다. 창밖에서 벌겋게 상처 입은 두 팔이 들어왔다. 나는 안고 있던 성아부터 창밖으로 넘겼다. 성아를 무사하게 받은 팔은 이윽고 나를 안았다. 우리가 안전하게 창밖으로 나오자, 밖에 있던 아저씨들이 모두 기뻐서 소리를 질렀다.

“살아서 정말 다행이야.”

그중에서도 직접 두 팔을 넣어 우리를 꺼낸 아저씨가 제일 기뻐했다. 아저씨는 똥물이 가득 묻어 악취가 진동하는 우리를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다친 팔로 우리를 더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으앙, 아빠!”

아빠가 아닌 걸 알고 있었지만, 우리도 모르게 아빠라는 말이 나왔다. 아빠가 너무 보고 싶었던 건지, 그 아저씨가 아빠 같았던 건지. 그건 잘 모르겠다. 그렇게 우리는 처음 보는 아저씨 품에 안겨 임시 대피소로 향했다.

곧 연락받은 엄마가 두 눈이 퉁퉁 부은 채 임시 대피소로 달려왔고, 엄마는 우리를 구해준 아저씨께 연신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다. 우리도 엄마와 함께 고개 숙여 아저씨께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다.

“왕발 거인이다! 거봐. 내가 착한 아저씨라고 했잖아.”

성아가 해맑게 아저씨를 바라보며 웃었다. 물에 젖은 커다란 운동화가 여기저기 다 찢겼지만, 그 발은 왕발 거인이 분명했다.

“사실 우리 집 막내가 이제 열 살이거든요. 얼마 전 낮에, 어쩌다 창문으로 아이들이 있는 걸 봤는데, 혹시나 오늘 낮에도 아이들이 집에 있을까 봐 달려왔어요. 도저히 제 동생 생각나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어요.”

알고 보니 왕발 거인은 수염도 없는 뽀얀 피부에 고운 미소를 가진 대학생 형이었다. 엄마는 찢어진 형의 신발을 보고 다음에 꼭 새 운동화를 사주겠다고 했지만, 형은 괜찮다고 거절했다.

“아이들이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에요. 저는 그거면 충분해요.”

환한 형의 미소를 보니, 거센 폭우 소리에 놀란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마음에는 새로운 달 하나가 떠올랐다. 인사를 나누지 못한 채 헤어진 예전 달동네 달과 꼭 닮은.


 

  <당선소감>

 

   상상의 문 열어 밝은 미래 들려줄 것

 7년을 넘게 거주하던 동네에는 코끼리 놀이터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아이들에게 ‘춘희 언니’라고 불렸습니다. 제가 키우는 강아지 이름이 춘희였기 때문입니다. 춘희는 코끼리 놀이터에서 유명 인사였고 그 덕분에 저도 아이들에게 둘러싸이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의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습니다. 말랑말랑한 연애 고민 상담부터 아이들 대화 속에 담긴 부모님들의 고민, 그리고 생각보다 더 무거웠던 소외된 아이들의 학교생활 이야기까지. 고요한 새벽, 참새들의 첫 울음소리처럼 투명한 아이들의 이야기는 아직도 제 일기장에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아이들의 영원한 춘희 언니가 되고 싶습니다. 아이들 눈에 어른이 아닌, 춘희 언니였기 때문에 나눌 수 있었던 소중한 대화들. 무엇보다 큰 가르침이었던 그 시간들을 앞으로도 이어가고 싶습니다.

 창작에 있어서 아직도 모르는 것이 참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책꽂이 꽂힌 다양한 이야기꾼들로부터 도움을 받습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이부터 한참 어린 이까지, 다국적 모든 이들의 도움을 받아 더 재미난 춘희 언니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제 글은 지난여름 반지하 수해 사건들이 모티브였습니다. 참담한 현실을 기사들로 접하며 그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분명 어디선가는 이런 따뜻한 현실이 존재할 것이라 굳게 믿으며 말입니다.

 언젠가 C.S.루이스와 톨킨 같은 판타지 문학의 대가가 되는 것이 꿈이지만, 기적과 희망이 담긴 현실 동화도 들려주고 싶습니다. 네모난 틀에 갇힌 이야기가 아닌, 네모난 상상의 문을 열어주는 문지기가 되어 밝은 미래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또한 바른 어른이 되어 좀 더 나은 미래를 보여주고 싶은 큰 욕심도 있습니다.

 이런 저에게 용기를 심어준 심사위원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며,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최승호 교수님, 조성기 교수님, 김인섭 교수님, 백로라 교수님 감사드립니다. 또한 장서가가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지원해 준 우리 가족과 코끼리 놀이터의 인기스타 우리 춘희, 복희 너무 사랑하고 고마워. 마지막으로 8년째 저의 룸메이트이자 최고의 편집자가 될 수(秀)에게도 이 마음을 전합니다.

 

● 부산 출생
●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 그림책 ‘잃어버린 봄을 찾아서’ 출간


 

  <심사평>

  

소외된 이웃에 관심과 배려…소중함 투영

 광남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접수된 원고는 반려 인구 1500만 시대의 사회상을 보여주듯 반려동물 관련 동화가 많았으며, 그 외 환경 보호, 다문화, 자신의 꿈, 우정, 신뢰, 학교생활, 인공 지능, 가족 관계에 대한 어려움 등 다양했다.

 130여 편을 읽고 또 읽다 보니 십여 편으로 간추려졌고, 십여 편은 다시 서너 편으로 좁혀지다가 마침내 당선작이 보였다.

 당선작인 ‘왕발 거인’은 지하 방으로 이사한 오누이가 겪은 세상 이야기다. 둘은 겨우 사람들 발밖에 보이지 않는 동굴 같은 집에서 창문 밖으로 오가는 사람들의 신발 구경을 하기도 하고, 헌 벽지에 마음껏 그림을 그리며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집중호우로 집에 물이 차오르고 지하 방의 오누이에 관심을 두고 있던 거인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다. 왕발 거인은 힘들고 소외된 이웃에게 갖는 우리의 작은 관심과 배려가 우리 사회를 얼마나 따뜻하게 밝혀주는지 말해준다.

 우리는 매년 여름철 집중호우로 인한 침수 피해에 관한 뉴스를 접해봤을 것이다. 집이며 살림살이들이 흙탕물에 엉망이 되고, 양동이와 쓰레받기로 물을 퍼내는 장면들을 떠올리면 이 동화는 실제로 있었던 일을 옮겨놓은 듯한 리얼리티를 보여준다.

 동화는 제목이나 처음 몇 문장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어린이 독자의 호기심을 잡아야 하고, 그 이야기를 끝까지 끌고 가는 사건의 구성이 탄탄해야 한다. 특히 판타지 동화에서는 리얼리티, 그럴듯함을 확보하지 못하면 아무리 톡톡 튀는 소재의 이야기일지라도 그저 공상에 불과하다. 그런 부분에서 아쉬웠던 작품들이 많았으며, 공모 요강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작품들도 여럿 있었다.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작품들은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 길을 멈추지 않고 나아간다면 뜻하는 바를 반드시 이루어낼 것임을 믿기에.
 
 당선자에게는 아낌없는 축하를, 아쉽게 수상하지 못한 분들에겐 앞으로도 기회가 있음을 잊지 말고 정진하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 유백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