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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사슴벌레 주유소 / 신명진

 

헉, 이럴 수가!

작고 허름한 건물 한 채와 덩그러니 놓인 낡은 주유기 두 대가 전부라니… 그것도 외딴 산 밑에.

"두고 봐, 비록 시골로 가지만 후회 안 할 거야. 아빠만 믿어."

나는 이사 오면서 장담했던 아빠 말이 도무지 미덥지 않았다. 돌아가신 친척이 하던 낡은 주유소를 아빠가 맡겠다고 했을 때 엄마가 그토록 반대했던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왼손마저 잘 못 쓰는 아빠인데 말처럼 되겠냔 말이었다.

지리산 구룡계곡 방향에서 달려오던 승용차 한 대가 주유소 마당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십시오. 구룡주유소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는 재빨리 달려가 주유 밸브를 차 주유구에 꽂았다. 셀프 주유소인데도 차 앞 유리까지 닦았다. 요즘은 잘 안 준다는 증정용 휴지도 건넸다.

승용차가 주유소를 빠져나가 굽은 산자락 뒤로 유유히 멀어졌다.

"예상했던 것보다 차가 너무 드물게 다니는데…."

아빠는 안타까운 배웅이라도 하듯 차 꽁무니를 바라보고 서서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왜 이런 시골로 오냔 말예요."

나도 꽁알거렸다. 친한 친구들을 떠나올 때의 속상한 기분이 여전했다.

하릴없이 주변을 얼쩡거리다가 화장실 뒤쪽으로 갔다. 꽤 넓게 둘러쳐진 빈 닭장 울타리가 산비탈까지 이어져 있었다. 돌멩이를 집어 울타리 너머로 힘껏 던졌다. 초여름 푸른빛이 번지고 있는 밤나무숲으로 툭 떨어졌다.

학교는 집에서 꽤 멀었다. 반 친구는 모두 열한 명. 짐작한 대로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들었다. 누구한테도 먼저 관심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저 눈을 내리깔고 조용히 클레이나 만지작거렸다. 미술 수업 선생님이었던 엄마 덕분에 어려서부터 클레이는 익숙했다.

"유치하게 아직도 그딴 걸 가지고 노냐."

상대적으로 피부 하얀 나를 처음부터 경계하던 태민이가 삐딱하게 말을 걸었다. 엄마가 필리핀 사람이고 영어를 자신만만해하는 애였다. 그런데 자기가 대답 못 한 영어를 내가 날름 말했으니…. 그런 데다가 선생님께서 내 그림과 클레이 솜씨를 칭찬한 것도 못마땅한 듯했다.

"여러분도 스마트폰만 쳐다보지 말고 시간을 좀 창의적으로 쓰세요."

특이 이 말씀이 스마트폰 게임 짱인 태민이 자존심을 상하게 한 모양이었다.

"그딴 걸로 뻐길 생각 마라."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뻐길 생각은 아예 없었으니까.

"야, 근데 이곳 애들은 자꾸 도시로 이사를 하는데, 너는 왜 거꾸로 시골로 왔냐?"

내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자, 태민이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만한 일로 자극했다.

"아빠 주유소 때문이야."

나는 눈길도 주지 않고 말했다.

"주유소는 차가 많은 도시가 더 잘 되는 거 아닌가? 울 아버지 말로는 그 주유소 파리 날린다던데? 더구나 요즘 전기차가 많아져서 잘 되던 곳도 망한다잖아."

정말 밉살맞게 말했다. 못 들은 척할 수 없었다.

"관심 끄셔. 우리 주유소는 손님이 벌떼처럼 많을 테니까."

태민이가 교실이 들썩하도록 콧방귀를 뀌었다. 내 이름 대신 야, 벌떼 주유소! 라며 놀렸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기분이 꿀꿀했다.

"엄마, 우리 주유소 잘되고 있는 거야?"

"넌 그런 걱정 말고 이거나 닭장에 뿌려주고 와."

나는 뚱한 채 참외껍질이 담긴 바구니를 들고 닭장으로 갔다. 얼마 전부터 기르기 시작한 닭들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었다. 인기척에 산비탈 여기저기에서 꺼억 꺽꺽꺽꺽, 몰려왔다. 한동안 지켜보다가 돌아서는데 발끝에 뭔가가 눈에 띄었다. 흑갈색 사슴벌레였다. 큰 집게 턱을 치켜들고 티끌 묻은 다리를 쉴 새 없이 꼼지락거렸다. 조심스럽게 바구니에 담아 신이 나서 주유소로 뛰어왔다.

"아빠, 아빠 이것 봐요. 사슴벌레야."

아빠는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주유소 마당으로 들어오는 승용차를 향해 뛰어나갔다. 나는 사슴벌레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와 사슴벌레다."

차에서 내려 화장실을 다녀오던 꼬마가 호기심을 보였다. 곧 갖고 싶다며 엄마한테 막무가내로 떼를 썼다. 보다 못한 아빠가 주둥이를 잘라낸 빈 생수병에 사슴벌레를 담아 꼬마에게 덥석 줘버렸다. 꼬마는 입이 헤벌쭉해서 돌아갔다. 말릴 새도 없이 벌어진 일에 어이가 없었다.

"그런 얼굴 할 것 없어. 또 있는지 가서 찾아봐."

"왜 아빠 맘대로 줘요. 나도 갖고 싶었단 말이에요."

아빠는 들은 척도 안 했다. 그깟 사슴벌레가 대수냐는 듯. 나는 다시 닭장 주변을 샅샅이 살펴봤지만, 빈손으로 돌아왔다.

아빠가 아무리 친절히 해도 주유소 손님은 늘지 않았다. 시중가 보다 주유 가격을 낮춰도 소용없었다. 아빠 한숨만 늘어갔다.

주말에 나는 클레이 상자를 챙겨서 주유소 사무실로 나왔다. 차가 들어오길 바라면서, 얼마 전 꼬마가 가로채 간 사슴벌레가 못내 아쉬워 그걸 만들 생각이었다.

정적을 깨고 흰 승용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잠시 뒤 주유를 끝낸 아주머니가 뭐라고 했는지,

"아이쿠, 어쩌죠 사모님, 다음에 오시면 꼭 구해놓겠습니다. 다시 한번 와주십시오, 사모님."

아빠는 사모님 소리를 거푸 해가며 무턱대고 또 오라고 당부를 했다. 그리고는 내가 만든 클레이 사슴벌레라도 갖고 가라며 건네줬다. 그분은 지난번에 꼬마에게 준 사슴벌레가 죽었다며 다시 얻고 싶어 한 것이었다.

다행히 며칠 뒤, 아빠의 걱정이 시원하게 풀렸다. 아침에 주유소 마당에 사슴벌레가 세 마리나 엎드려 있었다. 알아보니 밤늦도록 켜놓은 주유소 불빛을 따라 날아온 것이었다. 주로 참나무 종류에서 서식하는 사슴벌레가 활동 시기를 맞아 짝을 찾느라 벌어지는 일이었다.

사슴벌레는 밤마다 몇 마리씩 날아왔다. 나보다 아빠가 더 기뻐했다. 꿍꿍이셈을 꾸미고 사슴벌레를 보는 대로 잡아 가뒀다. 나는 뭔가 꺼림칙했다. 아빠는 아랑곳없이 많이만 날아오길 바랐다. 부족하면 산으로 잡으러 갈 생각까지 했다.

사슴벌레 마릿수가 늘어나자, 인터넷에서 사육통과 먹이를 주문했다.

'사슴벌레 분양해 가세요. 주유하면 공짜!'

주유소 앞에 사슴벌레가 그려진 커다란 배너도 세웠다.

아빠는 원하는 사람한테 무조건 사슴벌레를 분양해 줬다. 소문이 퍼졌는지 주유 손님이 늘었다. 아빠는 콧노래를 부르며 그동안 지저분하게 버려뒀던 주유소 주변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움츠렸던 내 어깨가 덩달아 쫙 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그 말 정말이냐?"

태민이가 다짜고짜로 물었다. 한 애가 아빠가 받아왔다는 사슴벌레를 학교로 가져온 탓이었다. 나는 도둑질하다 들킨 것처럼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러잖아도 사슴벌레 분양을 반 애들만은 절대 모르길 바랐었다. 찜찜하고 떳떳하지 않은 기분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 어깨는 다시 오그라들었다. 등 뒤에서는 불법이라는 둥, 잡혀간다는 둥 무섭고 겁나는 말이 웅웅거렸다. '그럴 리 없어. 다 지어낸 말일 거야.' 스스로 마음을 다독였지만, 올가미를 쓴 것처럼 옴짝할 수가 없었다.

토요일인 다음날, 주유소 마당으로 유난히 짙고 어두운 산 그림자가 내려앉고 있을 때였다. 느닷없이 태민이와 애들 몇 명이 주유소로 몰려왔다. 다들 뭔가 확인하려는 눈초리였다.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웃기고 있네, 벌떼는 무슨…."

태민이가 혼잣말을 궁싯거렸다. 마당에는 차 한 대가 주유 중이었다. 파리 날리지 않으니 다행이었다.

"헐, 한두 마리가 아니야."

아이들이 채집통 앞에 붙어 서서 두런거렸다.

"야, 이러는 거 불법 아니냐?"

태민이가 채집통과 배너 글씨를 가리키며 잔뜩 눈꼴을 세웠다.

"무 무슨 소리야? 억지로 잡은 것도 아니고, 먹이 주며 잘 돌보고 있다고."

나는 문제 될 게 없는 투로 둘러대고 얼른 선심을 썼다.

"너희도 한 마리씩 분양해 줄게."

"퀭!"

태민이가 말 콧방귀 소리를 냈다.

"분양? 니네가 뭔데, 사슴벌레를 분양해? 무슨 권리로?"

"…."

무슨 권리? 나는 말문이 막혔다. 눈만 깜빡인 채 얼어붙었다.

"밤에 켜놓은 불 때문에 곤충들을 혼란하게 한 것도 잘못인데, 잡아서 분양하다니 도대체 너네는 양심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이건 환경파괴에 곤충 학대야, 이 새끼야."

태민이가 눈알을 부라리며 욕까지 했다. 나는 그동안 찜찜하던 마음을 눈앞에서 책잡히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귀촌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밖에 모른다던데. 정말 그러나 봐."

"내 말이. 무슨 이딴 재수 없는 주유소가 다 있냐. 콱 망해 버려라."

태민이 말이 끝나기 바쁘게 애들이 바람처럼 주유소를 빠져나갔다. 주유소가 망해 버리라는 저주의 악담을 듣고도 나는 우두커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뒤꼍을 다녀와 사정을 모르는 아빠는 애들이 오자마자 가다니 싱거운 녀석들이라며 타박했다.

나는 얼굴이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렸다. 채집통에 시선을 떨구고 한동안 서 있었다. 시커먼 사슴벌레 한 마리가 벽을 기어오르려고 발버둥 쳤다. 위로 오르지 못하고 나동그라지기를 되풀이했다. 두세 마리는 서로 뒤엉켜 있고 나머지는 죽은 듯이 엎드려 있었다.

태민이가 곤충 학대라고 했던 말을 부인할 수 없었던 것이 무엇보다 부끄러웠다. 무슨 권리로 사슴벌레를 분양하는 거냐고 따져 묻던 말도 다시 귓속에서 쟁쟁 울렸다. 내가 그동안 모든 면에서 태민이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했던 것이 창피했다.

월요일, 누군가가 칠판에 무시무시한 말을 써놓았다. 생태 파괴자 송찬 '사슴벌레 불법 포획 분양' 또한 게시판에 붙었던 내 사슴벌레 그림이 쫙쫙 찢겨 버려져 있었다. 클레이 사슴벌레도 짓뭉개진 채 발길에 차여 굴러다녔다.

나는 선생님이 보실까 봐 미친 듯이 칠판을 지웠다. 첫 교시 시작하자마자 선생님께 머리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조퇴를 해버렸다. 실제로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교문을 나왔지만, 갈 곳이 없었다. 사람들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면 소재지를 헤매다녔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걸음을 얼마나 느리게 떼었던지 집에 도착했을 땐 평소에 돌아오던 시간이 되어 있었다.

고민 끝에 내린 답은 하나였다. 나는 곧바로 주유소 마당에 아빠가 없는지부터 확인했다. 가방도 벗지 않은 채 곧장 채집통을 들고 밤나무 밑으로 달려갔다. 땅에 채집통을 엎었다. 뒤엉킨 사슴벌레들이 처음엔 어기적어기적 헤매더니 어느 순간 정신없이 뿔뿔이 달아났다. 다시는 불빛 따위를 찾아오지 말기를 간절히 바랐다.

나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고는 다시 학교에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깊고 무거운 한숨과 함께 후련하면서도 한편 걱정이 가슴을 짓눌렀다. 아빠가 어떻게 나올까….

닭장에서 암탉 우짖는 소리가 산을 울렸다. 알 낳았다는 신호다. 며칠 전부터 암탉들이 달걀을 낳고 있었다. 왕겨를 깔아놓은 자리에서 달걀 몇 개를 찾았다. 빈 채집통에 담아 느릿느릿 집으로 돌아왔다.

"아니 채집통에 웬 달걀이야? 사슴벌레 다 어쨌어?"

뒤늦게 알아챈 아빠가 손님을 빈손으로 보내고, 생난리가 아니었다. 그나마 그것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데 무슨 짓을 한 거냐며 벼락같이 화를 냈다.

"이 녀석이 공부나 할 것이지, 왜 시키지 않은 짓을 하고 일을 망쳐!"

다시 전부 잡아 오라며 주유소가 울리도록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나는 바들바들 떨었다. 이유를 말하려고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말할 틈도 주지 않았다. 아빠가 너무 야속했다. 학교에서 당한 일이 떠올라 서러움이 북받쳤다.

"여보, 그만해. 애가 떨고 있잖아."

"시끄러워! 당신이 지금 내 속이 어떤 줄이나 알아? 다시 서울로 올라가자면 갈 테야? 그렇다고 눌러앉을 확신도 없는 이 심정을 알기나 하냔 말이야! 허흑."

아빠가 악을 쓰다가 그만 울컥 목멘 소리를 했다.

"진정해, 당신 맘을 왜 모르겠어. 한 식군데…. 그렇다고 찬이가 옳지 않은 일을 한 건 아니잖아."

엄마는 미술 수업 일이 늘어나고 있으니 좀 나아질 거라며 아빠를 달랬다. 엄마가 아니었으면 나는 집을 뛰쳐나갈 뻔했다. 고작 뒤꼍으로 뛰었다. 닭들이 놀라 꺽꺽거렸다.

늦은 밤이 되어도 아빠는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잠자리에서 엄마는 내게서 무슨 말을 들으려 애썼지만 나는 입을 앙다물었다. 밤새 잠을 뒤척였다.

다음 날 아침 주유기 밑에서 또 사슴벌레 한 마리를 발견했다. 나는 아빠가 보기 전에 얼른 집어 멀리 풀 속에 던져 버렸다.

통학버스가 왔지만 타지 않았다. 그냥 걸었다. 학교에 갈 생각이 없었으니 마냥 시골길을 걷고 또 걸을 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지 않아 담임 선생님 전화를 받고 놀란 엄마가 당장에 찾으러 왔다.

나는 이미 눈치채버린 엄마께 마음을 털어놓고 오히려 후련했다. 엄마가 가만히 눈물을 닦아주었다.

"미안하다. 아빠가 그게 옳지 않다는 걸 모른 게 아니야. …다만 겨를이 없었을 뿐이지. 아니, 실은 모른 척 덮어두고 싶었다고 해야 맞겠지."

아빠는 뭔가 숨긴 걸 들켰을 때처럼 몹시 어색한 표정이었다.

"앞으로는 절대로 무슨 일이든 혼자 끙끙대지 마. 우리가 너를 믿고 사랑하는 것처럼 우리도 너한테 사랑받는 부모가 되고 싶단다."

나는 다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엄마 품에 얼굴을 묻었다. 엄마는 무턱대고 애를 몰아부쳐서 더 힘들게 했다며 아빠를 나무랐다.

"크흠, 만든 사슴벌레를 손님이 좋아하더라."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아빠가 간신히 한마디 했다. 내 귀에는 화해의 말로 들렸다.

며칠 만에 포근한 저녁을 먹고 엄마와 나는 증정용 사슴벌레를 만들기로 했다. 여러 색깔의 클레이 사슴벌레로 채집통을 채웠다.

"이제 손님들께 떳떳할 수 있겠다. 누구보다도 우리 아들한테 말이야."

아빠가 안 보는 척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손놀림에 더욱 신경을 썼다.

내가 학교에 나타나자 다들 뜨악한 얼굴로 수근거렸다. 이제 사슴벌레 분양을 안 한다고 말해도 애들은 의심을 풀 생각이 없어 보였다.

"못 믿겠으면 다시 와 보든가."

"…."

서로 눈치만 볼 뿐 다행히 더 이상 토 다는 애는 없었다. 나는 쉬는 시간이면 여전히 묵묵히 클레이 사슴벌레를 만들었다.

"여어, 벌떼 주유소. 솜씨가 더 좋아졌다."

한참 만에 태민이가 은근히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의심을 푼 표정이었다. 벌떼 주유소라는 말이 이번엔 덕담처럼 들렸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점심을 먹고 태민이에게 사슴벌레를 슬그머니 내밀었다. 하얀색과 까무잡잡한 갈색을 섞어 만든 특별한 모양이었다.

"오, 마블링 스태그 비틀이잖아. 느낌 좋은데. 역시 창의적인 솜씨야. 인정!"

태민이가 생각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엄지척을 세우기까지 했다. '스태그 비틀' 나는 처음 들어 본 단어였다. 역시 태민이 녀석이 한 수 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아빠는 손님들께 친환경 구운 달걀과 엄마와 내가 만든 다양한 사슴벌레 열쇠고리나 마그네틱을 증정했다. 그것들은 기대 이상으로 인기가 있었다. 그 덕분인지 벌떼 주유소는 못되더라도 주유소가 적어도 파리 날리는 날은 없었다.

오늘도 아빠는 우렁찬 목소리로 손님을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사슴벌레 주유소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선소감>

 

   아이들 삶의 친구되는 즐거운 동화 쓸 터

 마침내… 만세!

 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는 속담처럼 가당찮이 남모르게 신춘을 넘봐 온 긴긴 시간조차도 부끄럽지 아니한 순간이었다.

"진짜지요?"

 되묻고도 믿기 어려운 당선 소식에 이 나이에도 부러 으아앙앙앙, 입 울음소리를 내며 기쁨의 눈물을 찔끔거렸다. 캬오~ 야단스런 빨강머리 앤이 되어 깡총 춤도 추었다.

 이제 앞으로 글을 쓰지 않는다 해도 미련이 없을 만큼 마음 뿌듯하다. 거짓말. ㅋㅋ

"아이고 잘했다이, 근디 그거시 머이 다냐. 돈 벌리는 일이까."

 가난했던 노모의 첫 마디에 그만 웃음이 터지고 눈물이 핑 돌았다.

"아이 참, 그런 것이 있어, 엄마. 돈보다 수억 배나 좋은 것이여." 참말? ㅋㅋ

 그간 제 코빼기 보기가 왜 그토록 어려운 줄도 모르시고 까막까막 기다리기만 하신 양가 어머님, 이 영광 누리소서.

 오랫동안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교묘히 변함없이 일관되게 환경 탓을 하며 스스로를 괴롭혀 온 시간을 반성한다. 아이들 삶의 친구가 되는 발랄하고 즐거운 동화로 만회하고 싶다.

 오랜 진퇴양난의 시간 속에 묵묵히 지켜봐 준 가족과 배봉기 교수님을 비롯한 줌스터디 문우들께 진심으로 감사 올린다.

 모랫속 사금파리 같은 작품을 발견해 주신 심사위원님, 감사합니다. 정진하겠습니다.

 

● 신명진 전북 남원 출생. 동시인
● 광주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아동문학 전공
● KB창작동화제 입상


 

  <심사평>

  

동화는 의식을 키워가는 동심 항아리

 동화는 동심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장이요 숲이다. 정신의 깊이와 내면의 성장을 기하며 언어의 숲에서 긴 울림을 맛보게 하는 동화의 미덕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편협한 서사 공간을 반복하는 것은 독자인 동심 주체를 조붓한 의식 안에 가둬놓는 일이 될 것이란 점에서 경계해야 할 일이다.

 132편의 응모 작품을 가능한 밀도 있게 읽어내면서 수작을 가려내고자 하였다. 아무래도 기성작품과 차별화 할 수 있는 신인다운 패기를 보여준 작품에 시선이 더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소재 확장, 서사 다변화는 특히 신인에게 걸 수 있는 기대치란 점을 염두에 두면서 한 편 한 편 신중함으로 대면하였다. 그러나 엇비슷한 작품이 많은 탓인지 감별하는 과정은 수월치 않았다. 비슷한 소재라도 문학적 형상화에서 개성있는 재구성이 시도되어야 하고, 접근하는 서사적 스펙트럼이 다층적 모습을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언어 또한 핍진성을 담보하는 끈적한 점착성을 띠어야 전체적인 생동감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중 눈여겨 본 작품은 색다른 소재에서 동심을 재발견하는 작품, 사회적 문제의식으로 갈등과 고민이 짙게 배인 작품, 오늘을 살아가는 동심주체의 표정을 생동감있게 다룬 작품들이었다.

 '하늘의 별따기'는 동박새와 동심주체의 교감을 순간 포착한 흥미로운 작품이다. 한정된 공간이 약점으로 지적되었다. '가고오지 말라쿵! 가고오지 말라 짝!'은 무등산 승천바위의 용을 만나고 돌려보내는 환상물이다. 주제의식의 무게감에서 밀렸다. '눈물병' '리어카 황' 등도 일정한 장점을 보이고 있으나 완성도 면에서 다소 한계가 있었다. 감정관리의 의미를 일깨운 '감정구독서비스', 색 속에 마음이 들어있다는 발상의 '하얀 색도 색이야'도 숙성시키면 경쟁작이 될 것이다. 당선작 '사슴벌레 주유소'는 생활동화의 요건을 잘 갖추고 있다. 어려워진 환경에서 귀촌한 아이와 시골 아이들과의 갈등, 사슴벌레 분양을 둘러싼 아이와 아빠와의 갈등이 이중구조로 나타나 갈등구조를 심화시킨다. 특히 아주 짧지도, 지나치게 느슨하지도 않은 호흡과 문체로 서사를 전개시킨 안정감을 샀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역작을 보낸 응모자들께 격려를 보낸다.

심사위원 : 윤삼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