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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움쑥 / 김서연

 

새 살처럼 연한 쑥을 쓰다듬는다. 여름이 되면 수수깡처럼 속이 비어버리는 터라 봄이 다 지나기 전에 살찐 쑥 우듬지를 뚝뚝 잘라 저장해 두었는데, 추석을 며칠 앞두고 산적을 할 요량으로 양하밭을 더듬다가 뜻밖에 우북한 쑥 무더기를 보았다. 사위어가는 불땀처럼 흔적을 지우고 재만 남았던 자리여서 더욱이 놀랐다.  

장례를 치르고 어머니 옷을 태웠다. 요양병원에서 하루 날을 잡고 나와 당신 살림을 미리 정리했던 터라 유품이랄 것도 없었다. 병원 생활에 꼭 필요할 물건만 챙겼으니 옷가지 몇과 전화기가 전부였다. 잘 마른 쑥을 불쏘시개 삼아 작은 보따리를 던졌다. 그 안에는 입어보지도 못한 외투도 있었다. 물색이 너무 곱다고 저어했지만 상점주인과 내가 우측 좌측 밀어붙여 장만한 옷이었다. 영 내키지 않으면 나중에라도 바꾸자고 했을 터인데 날 따뜻해지면 나들이옷을 하겠다고 두었다. 기껏 딸 집에 한 번씩 다녀가는 어머니다. 시골살이하는 내 집 뜰에서 새싹 보는 것을 좋아했다. 잡초 사이에서 올라오는 머위나물이며 쑥을 한주먹 뜯어 와서는 먹기도 아깝게 이쁘다며 웃었다. 꽃 밴 수선화를 보고도 그랬다. 어디에 있다가 작년 모습 그대로 얼굴을 내미는지 신기해했는데 환절기 때면 한 차례씩 앓았던 당신에겐 어린 싹들이 더없이 대견했을 것이다. 그마저 오래 보지 못했다. 다음 해에는 입원을 하고 말았다. 병실에 있는 동안 꽃철은 두 번이나 지나갔지만, 외투는 나들이 한 번 못 해보고 결국 불더미 속에서 사그라졌다.

전화기만 가져와 서랍에 넣어 두었다. 이제는 소리도 없는 껍데기지만 어머니의 전화기는 내게도 특별한 물건이다. 아파트에서 혼자 사셨는데 가까이 지내던 내가 수시로 전화를 하며 시시콜콜한 얘기를 주고받았다. 때로 받지 않을 때가 있었다. 외출했을 것을 가정해 어림한 시간까지 기다리다 끝내 연락이 되지 않을 때는 쭈뼛쭈뼛 머리카락이 섰다. 번번이 전화선이 빠져 있거나 전화기가 잘못 놓여 있었다. 이렇게 한번씩 소동이 나는 것을 친가나 외가도 알게 돼 외갓집에 가시면 외삼촌이, 큰집에 가면 사촌 오빠가 어머니 잘 도착했다고 전화를 줬다. 하지만 시장이나 병원같이 예고 없는 출타가 문제였다. 협박도 하고 사정도 해가며 어머니의 목에 걸리게 된 전화기였다. 병원에서도 침대 난간에 걸어두고 자식들의 전화를 받았는데 딸네 뜰을 생각하는지 쌉싸름한 머위나물이며 연한 파나물, 된장 풀어 끓인 쑥국 이야기를 자주 했다. 

어머니 가시고 흑백사진처럼 어두운 나날이 갔다. 당신과 연락이 안 되면 사색이 되어 뛰어다니던 나를 아시면서. 잘 도착했노라고, 여긴 날마다 봄날이고, 지천에 나물과 꽃이 가득하다고 전화 한 번 주면 안 되는 것인지. 겨우 연락이 닿은 어머니를 붙들고 어린아이처럼 울던 나를 떠올리며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은 나뿐인 건지. 얼마나 먼 길이길래 아직도 도착을 못 한 걸까. 한살이 마친 꽃자리처럼 어머니 떠난 자리가 허전해질 때면 무시로 전화기를 뒤적였다.  

전화기 속에서 친구들은 손주 자랑으로 앞다툰다. 나 역시 꼬물거리는 손짓, 발짓이 귀여워 내 손주도 아닌데 몇 번이고 사진과 동영상을 돌려본다. 이집 저집 카톡 사진들을 훑는데 이게 웬일인가. ‘엄니 핸드폰’이 카톡에 떴다. 어머니가 쓸 때는 기능이 단순한 폴더폰이어서 카톡을 사용할 수 없었다. 가슴이 뛰었다. 액정을 뒤로 밀었다. 분명 어머니 번호가 맞았고 반갑기보다 무서웠다. 시아버지 초상을 치른 후 ‘아버님’ 이란 번호로 전화가 와서 놀란 적이 있다. 남편 명의로 해 드렸던 전화기를 받아와 다시 사용하면서 생긴 일이었다. 그때 망자들의 세상도 어디에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세상 좋아졌으니 저세상에도 변화가 있어 전화기 하나씩은 손에 들려있을지도 모른다는 맹랑한 상상을 했었다. 조심스럽게 화면을 늘렸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앳된 여자의 진달래 빛 상의가 환했다. 손가락 사이로 눈, 코, 입이 선명해졌다. 피부가 희고 잇속 보이는 웃음이 언뜻 우리 자매들을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전화번호를 반납했으니 새 주인을 만난 것이 당연했다. 번호 잃은 어머니의 전화기는 멍텅구리가 되어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음을 잘 알면서도 ‘엄니 핸드폰’ 속 그녀를 자주 훔쳐보았다. 대강의 일상을 읽으며 취향이나 성격까지 마음대로 가늠했다. 여행지에서의 거침없는 웃음이 화면 안에서 쏟아질 때는 나도 덩달아 입이 벙그러졌다. 요즘은 연애를 하는 모양이었다. 남자는 까무잡잡하고 이목구비가 반듯해 어디서 본 듯 낯설지 않았다. 어머니 가시고 우리 형제는 한동안 대화가 없었다. 혼자 보기 아까워 잠잠한 형제들의 단체 톡 방에 그간 이야기들을 나열했다. 아버지처럼 안경을 꼈다는 얘기도 했지만 모두 아무 말이 없었다. 노을을 바라보듯 어머니를 보내고 제각기 가슴에 검게 타 들어간 구석을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박완서 작가의 <움딸>이란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시집간 딸이 죽고 사위가 새 장가를 가서 맞은 부인을 전처의 친정에서는 움딸이라고 부른단다. 불탄 쑥밭에서 새로 돋은 가을 쑥을 움쑥이라고 부르는 이치와 같았다. 딸을 잃은 친정어머니와 전처의 흔적을 보아야 하는 새 부인이 서로 편한 관계일 리 없다. 소설 속에서 새 부인은 절대 움이 틀 수 없는 불모지에 있다. 하지만 아이의 외할머니 마음에 딸 같은 정이 움트는 것을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터무니없는 일이지만 가슴에 오래 남았었다.

뜬금없이 동생한테 문자가 왔다.

“어머니 번호 쓰는 사람 행복한가 봐, 보기 좋네.” 

풀숲을 헤매던 손이 움쑥을 쓰다듬으며 평온을 만났듯이 요즘도 한 번씩 전화기에 새 소식이 움트면 형제들과 대화를 엮는다. 서로의 불탄 마음 언덕을 어루만지며 보듬는다. 이렇게 어머니는 조금 더 우리를 돌보다 갈 모양이다. 열여덟 살에 시집을 왔다고 했다. 목화를 따다가 들녘 사람이 된 어머니는 솜털보다 순한 사람이었다. 쑥 향이 코 끝에 맴돌다 바람을 타고 흩어진다. 바람 닿는 그곳에도 쑥이 돋았는지 전화 걸고 싶다. 우리 형제들의 웃음이 만발한지 물어보고 싶다.


 

  <당선소감>

 

   -

 기별은 없고, 어머니 영가를 모신 선운사로 향했습니다. 도솔암까지 가는 길엔 눈발이 날렸고 참 멀다고 생각하는 동안 짧은 겨울 해가 걱정이 됐습니다. 지나는 경내 차량이 태워준다고 했지만 못 본척했습니다. 어머니에게 씩씩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마지막 오르막길을 오르면서도 동생들에게 보였던 늠름함을 잃지 않았는데 빼꼼히 열려있는 법당 문을 보는 순간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바로 들어갈 수가 없어, 마당 너머 보살들이 머무는 마루 끝에 앉아 오른손 왼손을 번갈아가며 뜨거운 것을 닦아냈습니다. 온갖 무장들이 흘러내렸습니다. 절간에서도 나부끼는 성탄 축하 현수막은 어머니의 답장 같았습니다. 아쉬운 소리 못하는 우리 어머니, 하늘에 닿을만한 기도는 얼마큼일지. 이제 정말로 씩씩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롱이 다롱이, 놓기 아까운 글들을 내려놓고 제 글을 택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친정같은 정읍수필 문학회 문우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글 쓰는 것이 사치 같았던 환경에서도 늘 지지해 주는 내 가족, 사랑합니다. 무슨 인연일까? 내게 와 주신 최윤정 선생님 하늘만큼 감사하고, 아직도 어머니의 기도를 필요로 하지만 내게 글 동냥 시켜가며 빠져나간 영혼을 붙잡아준 동생에게 그동안 전하지 못한 말 전합니다. 고맙다. 

●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 현재 정읍수필문학회 회원


 

  <심사평>

  

 편안하고, 잔잔한 감동을 남긴 작품

 수필은 본디 1인칭 문학의 정수, 작자 자신을 작품에 내어 놓음으로 삶의 본질과 인생의 다양한 형상을 제시한다. 그 방법이나 진솔함이 소설과는 빗겨서 있는 장르임을 감안할 때, 수필이 가진 직접적인 감동과 울림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본심에 올라온 이십여 편의 작품을 꼼꼼히 읽었다. 작품마다 아름다운 문장과 오랫동안 갈고 닦은 글쓰기 솜씨에 탄복하여 쉽사리 당선작을 가리지 못했다. 대부분 수사 가득한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모두 화려한 옷을 입고 있으니 글의 본질에 닿는 것도 쉽지 않았다. 지나친 수사와 묘사, 문장에 대한 유려함이 오히려 수필이 가진 장르적 덕목을 가리는 듯했다. 작자의 글쓰기 솜씨는 훌륭했으나 생명력 넘치는 작품은 드물었다.

 2024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작으로 「움쑥」을 선정했다. 지나친 감정 과잉과 지나친 수사가 넘쳐나던 와중, 「움쑥」은 읽는데 가장 편안하고, 잔잔한 감동을 남긴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진심 가득한 글이었다. 어머니를 잃고 장례를 치르는 과정과 남은 유품을 정리는 작자의 심정이 진솔하게 느껴졌다. 문장은 담백하고 안정적이며 절제되어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내적 울림이 크게 남은 작품이었다. 어머니의 전화번호를 누군가 새로 쓰게 되면서 겪는 복합적인 감정의 서술은 이 작품의 가장 아름다운 대목이었다. 시절이 흉흉하여 시나 소설이, 산문이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기 힘든 때임에도 좋은 작품을 만나 심사가 행복했음을 고백한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부디, 많은 사람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여는 작품 많이 쓰시길 고대한다.

심사위원 : 백가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