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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외눈 / 권상연

 

나는 술래다. 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어둠을 더듬으며 아이들이 쳐대는 손뼉 소리를 따라간다. 짝짝, 어둠 속에서 내가 의지할 데라곤 소리뿐이다. 악동이었던 순애는 나를 물구덩이가 있는 곳으로 유인한다. 나는 쓰러졌다. 발목이 접질렸다.

“황반변성 백내장입니다. 수술해야 합니다.”

마른하늘의 날벼락같은 의사의 말에 캄캄한 어둠은 또한번 닥쳐왔다. 혹시 이건 유전이 아닌가, 어머니한테 의심이 갔다.

어머니 눈은 외눈이다. 출생한 순간부터 눈에 이상이 있었다. 마땅한 치료 약이 없던 시절이라 민간요법에 의존했다. 갓난쟁이의 젖이 즉효 약이라 하여 할머니 생젖을 짜 넣기도 했다. 좀 더 자라서는 심 봉사 젖동냥하듯 이웃의 젖먹이를 통해 젖을 얻어 치료했지만, 허사였다고 한다.

젊은 시절 아버지는 백내장 수술 후유증으로 시력을 잃었다. 의술이 좋아졌다는 의사 선생님의 호언장담이 있었기에 실패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눈 수술은 어둠 속에 갇혀 지냈던 아버지가 떠올라 나는 더욱 두렵게 다가왔다. 눈을 잃은 순간, 아버지는 세상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이처럼 세상을 손으로 더듬으며 터득해 나갔다.

눈이 불편한 어머니와 아버지를 보고 자랐기에 눈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수술 날짜가 가까워지자, 나누어도 나눌 수 없었던 아버지의 어둠이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내 신경은 한껏 당겨진 활처럼 팽팽해졌다.

젊은 나이에 시각장애로 집안에 들어앉은 아버지를 어머니는 외눈으로 보살펴 왔다. 혼사란 비슷한 처지가 만나야 잘 산다는 말이 있다. 누구보다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의지하고 살아가라는 뜻이었으리라. 선천적으로 시력이 약했던 아버지가 외눈의 어머니를 만난 건 일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었을지도 모른다. 고비 때마다 아버지가 잘 견딜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니의 외눈 덕분이지 싶다.

명사수는 활을 날리기 전 마지막 동작으로 한쪽 눈을 감는다. 분산되는 신경을 차단하여 멀리 떨어진 과녁을 정확하게 보기 위해서다. 화살은 선수가 양발을 어깨너비로 벌려 균형을 잡고 활을 당길 때의 힘으로 날아간다. 하지만 승부를 판가름하는 건 한쪽 눈이 과녁을 잘 읽었을 때라고 한다. 어머니의 하나뿐인 눈은 언제나 아버지를 향해 있었다.

아버지는 흰색 한복을 즐겨 입었다. 어머니는 철철이 베를 끊어와 손수 옷을 만들었다. 흰색이라 빨래하기 힘들다고 투덜거렸지만, 어머니는 “없는 살림일수록 더 살뜰히 챙겨야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모시 적삼을 입은 아버지가 마루에 앉아 있으면 옛이야기나 동양화에 등장하는 선비처럼 곱다고 보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할 정도였다.

누구나 흉터는 숨기고 싶어 한다. 옷이나 다른 장신구로 가릴 수 있는 흉터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머니는 젊을 때부터 머릿수건을 모자처럼 푹 덮어쓰고 다녔다. 감긴 눈을 감추느라 멀쩡한 외눈도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어머니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없다. 어쩌면 나는 한쪽 눈을 감고 어머니를 바라봤는지도 모르겠다.

자식이 태어나면 눈부터 살폈다. 혹여라도 외눈이 유전이라도 되었을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좀 더 자라서 시력검사를 할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어머니 눈을 탓했다. 내 속만 타는 줄 알았던 시기에 어머니의 외눈도 새파랗게 질려갔음을 이제는 알 것도 같다.

요즘 백내장 수술은 수술이 아니라 할 정도로 의학이 발달 되었다. 아버지의 눈 때문에 병원 문턱이 닿도록 드나들었던 어머니가 아니던가. 요즘 의학을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수술을 눈앞에 둔 자식을 보면서 그 초조함을 어디에 견줄까.

“외눈으로도 팔십이 넘도록 살아왔다. 요즘은 좋은 약도 있고 의술이 있지 않으냐. 너는 두 눈이 있지 않으냐. 수술받아라. 염려 말아라.”

자식은 여든이 돼도 자식이라는 말이 있다. 지천명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나는 어머니를 알지 못한다. 나는 연로한 어머니를 귀찮은 존재로 여기건만 어머니는 내 마음을 거울 들여다보듯 알아차리고 다독거린다.

수술이 끝나고 한쪽 눈에 안대를 했다. 습관적으로 바라보던 신경이 제자리에 찾지 못해 흔들린다. 걸음을 뗄 때마다 어질어질하는 것이 멀미하는 것 같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남은 눈에 힘을 줬다. 그제야 흐릿했던 의식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내가 외눈으로 산 날은 며칠뿐이었다. 어머니의 세상을 알기엔 턱없이 모자랄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어머니 영정 사진을 만들었다. 죽기 전에 멀쩡한 두 눈을 간직한 모습을 보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영정 속 두 눈을 마주 보지 못했다. 머리카락이며 입 주위를 한참 맴돌 뿐이었다.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나서 영정 속 눈을 바라보았다. 서글서글한 눈매에 동글동글한 눈동자가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외눈으로 본 온전한 세상이 눈 안에 다 담겨있는 듯했다.

어머니의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두 눈이 해야 할 일을 홀로 감당했으니 지쳤을 법도 하건만 무슨 염려를 그리하는지 잠시도 가만있지 않는다. 내 어깨에 얹힌 짐이라고 생각했던 외눈의 어머니, 그런 어머니에게 근심거리는 멀쩡한 내 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따라 현관문을 여닫는 손길이 유난히 파르르 떨린다. 당신으로 인해 내 눈이 약하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하늘의 이치를 깨닫는다는 나이도 한참 지났건만 한쪽 눈에 안대를 하고서야 비로소 어머니의 세상을 살펴볼 여유가 생겼나 보다.

저녁이 되어 밖으로 나왔다. 어두운 세상을 밝게 비추는 달이 떠오르고 있다. 앗! 달도 외눈이다. 외눈으로 저렇게 세상을 밝게 비추다니 오늘부터 나는 외눈을 온눈이라고 부르련다.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당선소감>

 

   -

 마을 교사교육을 핑계로 12일 집을 비웠습니다. 집에 남아 있는 어머니가 걱정되었지만, 휴식을 위해 다 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빽빽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조금 지쳐 있을 때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만세를 불렀습니다. 함께 기뻐해 준 마을 교사님들, 감사합니다.

 시어머니와 친정엄마가 계단에 앉아 있습니다. 주간 보호 센터 차를 기다리는 것이지요. 나는 자판기에서 따뜻한 커피 두 잔을 삽니다. 귀가 안 들리는 두 어머니는 무엇이 좋은지, 서로 다른 말을 하면서도 함께 웃습니다. 백세 시대, 오늘 아침 교육 전, 우리 집 풍경입니다.

 내 글쓰기는 두 어머니의 서사로 가득합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6.25를 겪으며 살아남은 이야기는 존경스럽습니다. 지금은 비록 나이가 많아서 거동이 어렵지만, 혼자서 화장실 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합니다. 두 어머니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옆에서 묵묵히 힘이 되어준 남편과 두 아들, 선도와 현우와 당선의 기쁨을 나누겠습니다. 함께 공부한 여러 선생님, 아람 친구들 고맙습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도 감사드립니다. 2023년을 멋있게 마무리하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다가오는 새해 2024년에도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잘 자라 준 영미와 수영이 고맙고, 사랑해!

● 금샘문학상금상, 흑구 문학상 금상, 경북 문화체험 은상.
● 에세이 문학 ‘살살이 꽃’으로 등단
● 수필집 ‘이소’
● 시집‘ 바람아 너라도 올래’


 

  <심사평>

  

  생에 대한 인식이 신선하게 다가오다

 수필은 개인적의 서사이다. 서사는 스토리가 진행한다. 개인이 체험한 상황과 느낌을 서술해야 한다. 따라서 시간적인 진행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제자리 걸음에서 대상을 논하고 해석하려고 하면 평론처럼 되기 십상이고 지루하게 된다. 심사기준은 참신성과 생에 대한 인식, 그리고 표현력을 중점적으로 보았다. 수필을 쓰게 된 절실한 동기와 주제가 드러나야 한다. 신선한 소재는 감동과 충격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도 문장의 구성력은 조화로움과 안정감을 준다.

 올해는 작년보다 적은 수가 응모했지만 질은 더 향상된 느낌이다. 총 107편 중에서 박병률, 이규애, 김선자, 최운숙, 권상연, 이 다섯 명의 작품 10편을 본심에 올려 심도 있게 살펴보았다. 박병률의 「바다로 간 아이들」은 대화체가 활기가 너무 넘쳐 스토리 전개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규애의 「벽」은 소재도 좋고, 사람들 말 사이의 벽에 대해 체험을 통해 녹아냈다. 하지만 설명체가 너무 많았다. 김선자의 「암나사 수나사」는 남편과 아내의 역할을 비유한 것이 돋보였지만 조금 더 진일보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최운숙의 「초분」은 3인칭 서사로 전개했다. 보편성은 살아났지만 개별성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권상연의 「외눈」은 어머니의 일상을 통한 사랑과 딸의 심정을 잘 표현하였다. 설명체가 섞어 있었지만 생에 대한 인식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선자는 이 중에서 권상연의 「외눈」을 당선작으로 미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당선을 축하한다.

심사위원 : 이구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