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무등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러닝 / 장대성
<당선작>
러닝 / 장대성
어느새 달리기를 시작한 지도 한 달이 되었다. 처음에는 삼백 미터도 제대로 달리지 못해서 달리는 시간보다 걷는 시간이 더 길었다.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는 일이 힘에 겨웠으니까. 보폭은 크게, 숨은 두 번 마시고 두 번 내쉬기. 유튜브에서 본 것을 그대로 따라 해보는 것이다. 이게 습습후후의 법칙이라고, 달리기 좀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성경의 창세기처럼 달리기의 근간이 되는 호흡법이란다. 그러나 숨 쉬는 것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몸이고 내장이고 다 엉성해져서 발이 자꾸 꼬인다. 그래도 지금은 한 번에 이 킬로미터, 호수 공원의 절반을 돌 수 있을 정도로 달리기에 안정감이 생겼다. 오랫동안 달리기 위해서는 무릎이 견디는 하중을 허벅지에 나누기 위해 무릎을 보폭마다 의도적으로 굽혀야 하는데, 살아오는 동안 내가 의도를 가지고 무언가를 해낸 일이라고는 딱히 없어서 무릎이 자주 아팠다. 아, 중학교 때부터 공부와는 연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실업고등학교에 들어가 자동차 정비를 전공했었지.
중학교 때 아버지는 공사 현장에서 철거 일을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살던 집을 부수는 직업이라고 아버지는 말했다. 밤마다 좁은 다락에서 술을 마시며 담배를 피우는 뒷모습을 매일 보았을 때는, 아버지가 부수는 것이 다른 사람의 집뿐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아버지가 소주병이나 반찬통 같은 것을 집어 던지며 벽에 틈을 낼 때마다, 그 틈을 메꾸기 위해 식당 일을 나갔다. 나는 장조림의 잘게 썰린 소고기를 골라내 혼자 밥을 먹으며 무럭무럭 살이 쪘다. 엄마마저 술에 취해 돌아온 밤이면 집은 살기 위한 보금자리가 아니라 죽기 위해 최선을 다해 만든 관처럼 느껴졌다. 거실에서 아버지와 엄마가 싸우는 소리를 듣다가, 아버지가 다 죽고 끝내자며 부엌에서 칼을 꺼내는 소리가 들리면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리고 눈을 감았다. 이불이 주는 포근함과 깊은 어둠은 정말 죽음과 비슷한 것 같아서, 나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래, 죽여. 죽여 봐 이 개새끼야."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이대로 잠들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엄마가 강인한 의지로 삶을 포기한 순간부터는 그럴 수 없었다. 지금은 그것이 엄마가 그 상황에 표출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의지였다는 것을. 어느 여름날 몸이 굳은 매미 옆에서 힘차게 울어대는 매미를 보며 알았다. 결국 경찰이 오고 나서야 상황은 끝이 났다. 옆집 사람이 신고를 한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경찰서에 가기 전, 이불을 뒤집어쓴 나에게 미안하다고 울먹거린 뒤 밖으로 나갔다.
그 후로는 아버지를 볼 수 없었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자동차 관련 자격증을 세 개나 따고, 대학을 가는 대신 바로 자동차 공업소에 취직을 해 돈을 버는 동안에도, 엄마가 식당을 다니며 모은 돈으로 자신의 작은 식당을 차리는 동안에도 아버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스물일곱이 되었던 작년, 엄마가 집에서 심장마비로 죽은 날에도 아버지는 끝내 장례식장에 오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정말 혼자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식당을 부동산에 내놓고 유품을 정리하는 내내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항상 손이 퉁퉁 부어 있어서 나와 손을 잡는 것을 꺼리던 엄마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잡을 수 있는 손보다 놓을 수밖에 없는 손이 더 많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다시 자동차 공업소에 출근하고 자동차 문을 조립하며 스패너로 볼트와 너트를 조였다. 아무 생각 없이 반복되는 일을 하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졌다. 슬픈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할 틈을 주지 않는 게 중요했다. 연차도 쌓이고 일도 능숙해졌으니 이 정도면 괜찮은 삶이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시계 방향으로 볼트를 돌리면서 내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방문을 열고 아버지와 엄마의 싸움을 말려야 했나 생각한 적도 있다. 이런 생각은 항상 죄책감을 느끼게 했지만, 볼트를 반 시계 방향으로 돌리면 금세 죄책감을 잊게 되었다. 볼트가 툭 하고 풀어져 바닥에 떨어지는 모습. 그것은 절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믿음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바닥에 떨어진 믿음을 주워들고 다시 일을 시작하려 할 때 주머니 안쪽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나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떨리는 다리를 진정시키고 핸드폰을 꺼냈다.
아버지를 돌봐줘야겠어.
아직 벨소리가 귓속을 완전히 파고들기도 전에 들은 말은, 이제 핸드폰의 진동 없이도 몸을 떨게 만들었다. 나는 스패너를 공구함 근처에 두고 휴게실로 갔다.
연락은 작은아버지에게서 왔다. 작은아버지는 엄마의 부고 소식을 듣고 얼마 안 되어 장례식장에 왔고, 그때 내 연락처를 받아갔다. 엄마와는 가끔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했다. 작은아버지는 아버지와는 성격이 정반대였다. 아버지처럼 욱하는 면이 있긴 했지만 아주 가끔이었고, 내가 기억하는 작은아버지의 모습은 대부분 차분하고 자상할 때가 많았다. 아버지가 집에서 난동을 부릴 때 작은아버지의 도움을 받은 적도 있으니까.
그런 작은아버지가 이제 자신도 더는 아버지를 돌보고 있을 수가 없다며 내게 연락을 한 것이다. 나는 힘이 세고 아무리 술을 마셔도 다음날 새벽부터 집을 나서는 아버지의 모습밖에는 떠오르지 않아서, 아버지의 건강 상태가 문득 궁금해졌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 그런 의지도 없고. 간이고 쓸개고 다 망가져서. 지금은 그냥 온종일 누워만 있다. 이선아, 너한테 이런 부탁하는 게 사람으로서 못될 짓인 거 안다. 그런데 나도 사정이 좋지가 않아. 언제까지 네 아버지 먹이고 재우고 할 수가 없다."
나는 조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냉장고에서 오렌지 주스 하나를 꺼내 벌컥벌컥 마시고, 오후 내내 볼트를 돌렸다. 그리고 집에 와 찬물을 들이켜고 밥을 먹었다. 바깥이 완전히 어두워졌다고 느낀 게 저녁 여덟 시쯤이었나. 운동복을 대강 걸쳐 입고 바깥으로 나와 정처 없이 걸었다. 시월의 거리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한참을 걷다 보니 물 냄새가 났고, 곧이어 호수가 나타났다. 며칠 전 라디오에서 들은 말대로일까. 습관은 내가 평소와 다른 하루를 사는 것 같을 때, 무의식적으로 최근의 나와 비슷한 모양으로 만들어준다는 말. 나는 호수 공원의 산책로를 걷다가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전력을 다해 달렸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숨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그 자리에 멈춰서서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잡은 뒤 숨을 연신 들이켰다. 숨을 쉬고 다시 들이키는 일처럼,
아버지를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다.
통장에 얼마가 있었더라. 얼마가 있든 지금 일을 하고 있으니 얼마간은 괜찮을 것이다. 더 정확한 검사가 필요하겠지만, 작은아버지로부터 아버지의 상태를 들었을 땐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을 것 같았다.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한 게 분하고 아까워서, 증오할 마음도 남지 않은 아버지의 죽음이라도 두 눈으로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달만 참고 버티면 돼. 고개를 들어 흐르는 땀을 닦고 계속 걸었다.
아침 일찍부터 공업소에 연락을 해 연차를 내고 아버지를 데려오기 위해 작은아버지 집으로 갈 준비를 했다. 공업소는 엔진, 조립 및 외부 수리, 도색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나는 이주마다 엔진과 조립 및 외부 수리 파트를 오가며 일을 했다. 이번 주는 외부 수리 파트였는데, 팀장에게 사정을 설명하니 조금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고는 당일 연차를 허락해주었다.
"아버지 잘 모시고 와. 와서는 두 배로 일해라."
나는 팀장에게 알겠다고 대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 두 배로 일을 하라니, 이제 입으로도 볼트를 돌리고 조여야 하나 생각하면서 집에서 나와 작은아버지 집으로 갔다.
십일 년 만에 마주한 아버지는 내가 기억하는 모습으로부터 많이 변해 있었다. 머리칼이 얼마 남지 않았고, 그마저도 희게 변해 있었다. 먹다 남은 생선구이처럼 몸에는 살이 없고 얼굴은 수척해서 햇볕 잘 드는 곳에 며칠 두면 금세 말라버릴 것만 같았다.
"가요."
나는 그런 아버지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아버지는 말없이 나를 따라 작은아버지 집에서 나왔다. 작은아버지는 미안하다는 말과 고맙다는 말을 번갈아 했다. 나는 예의상 다음에 연락드리겠다고 말한 뒤 문을 닫았다. 조수석에 아무렇게나 던져둔 옷가지와 서류 몇 개를 뒷자리에 던져두고 손으로 의자를 탈탈 털었다.
"요양병원으로 갈 거예요."
"……."
요양병원으로 향하는 내내 아버지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에게 그날 왜 내게 미안하다고 말했는지 묻고 싶었지만, 지금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겠냐는 생각이 들어서 굳이 묻지 않았다. 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면 작은아버지가 내게 전화했을 때 나도 아버지를 돌볼 형편이 안 되고, 그럴 생각도 없다며 전화를 끊었을 것이다. 나는 오른쪽으로 차선을 변경하며 사이드미러를 보는 척 아버지를 힐끔 봤다. 손에는 검버섯이 피어 있고, 추위를 잘 타는지 경량 패딩을 입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는 괜히 답답한 기분이 들어서 창문을 내렸다. 살면서 이렇게 답답하고 속이 헐렁한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었나. 장례식이 끝난 뒤 엄마를 화장시키며 일렁이는 불길을 보고 있을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 그렇게 손이 울퉁불퉁했던 엄마가 뼛가루는 이리 고울 수 있다니. 나는 그날 밀가루에 물을 넣어 반죽을 만들듯 엄마의 유골함을 손에 들고 펑펑 울었다. 그리고 다시는 가족을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요양병원에 도착해 입원 수속을 하며 몇 가지 주의사항을 들었다. 면회는 오후 다섯 시 전까지만 가능하고, 너무 냄새나는 음식은 가져오지 말라고 했다. 나는 건성으로 대답을 하고 가격이 얼마냐고 물었다.
"한 달에 팔십만 원이에요. 보통은 삼 개월씩 한 번에 계산하시는데, 어떻게 해드릴까요?"
대충 얼마가 드는지 확인은 하고 왔지만, 직접 가격을 들으니 숨이 턱 하고 막혔다.
"한 달, 삼 개월 할부로 해주세요."
원래 자리가 쉽게 안 나는데, 운이 좋으셨네요. 말하는 직원을 뒤로하고 병원비를 계산한 뒤 대기실에 앉아 있으니 간호사와 간병인이 와서 아버지를 데리고 갔다. 양팔을 잡고 걸어가는 뒷모습이 십일 년 전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나는 아버지가 엘리베이터에 타는 것을 보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열한 시였다.
집으로 돌아와 어제 먹고 남은 김치찌개에 밥을 말아 먹었다. 티브이를 틀고 뉴스로 채널을 돌렸다. 빠른 속도로 고령화 시대에 진입하고 있는 지금,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노인들을 무력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고 앵커가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뒤이어 판자촌의 모습과 지하철역 앞에서 노숙하고 있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나는 그것을 보며 김치찌개를 입속으로 훌훌 넘겼다. 내게 당장 중요한 것은 갑자기 생긴 팔십만 원이라는 지출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였다. 삼백만 원이 조금 넘는 월급으로 적금 백오십 만원과 방세 및 관리비 오십만 원, 그리고 차 유지비까지 내면 생활비로 칠십만 원 정도가 남았는데, 이제 추가로 팔십만 원을 내야 한다. 그러면 내 수중에 남는 돈이 없다. 적금을 줄여야겠네. 나는 한숨을 쉬고 깨끗하게 비운 밥그릇을 씻어 제자리에 두었다.
티브이에서는 이제 청년 실업과 일인 가구에 관한 이야기가 쉴새 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혼자 생활하기에도 벅찬 청년 세대의 미혼율은 자연스럽게 하늘로 치솟는 중이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돈 벌어서 혼자라도 살아갈 수 있는 게 노동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가치 아닌가. 배가 불러도 너무 불렀어. 그렇게 생각하며 티브이를 껐다. 연차를 쓴 김에 어디라도 가 볼까 싶었지만, 그냥 잠을 자기로 했다. 침대에 반듯하게 누워 눈을 감았다. 이대로 아버지가 오래오래 산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적금을 깨고, 밤낮없이 일해서 계속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두어야 하는 걸까. 아니면 나도 더는 아버지를 돌볼 수 없겠다며 아버지를 두고 다른 곳으로 도망쳐야 하나. 일단 잠이나 자자. 자고 일어나서 호수 공원에 가서 달리자. 나는 달리기를 할 때처럼 습습후후 하며 숨을 쉬었다. 답답했던 속이 점차 안정감을 되찾았다.
잠을 자고 일어나니 오후 네 시였다. 나는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고 커튼을 열었다. 해가 조금씩 기울어가고 있었다. 핸드폰을 켜 보니 간병인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장이선 씨. 저는 장이선 씨의 아버님을 돌보게 된 최명주라고 합니다. 앞으로 하루에 한 번씩 아버님의 상태를 문자로 알려드리려고 해요. 원치 않으시면 말씀해주세요. 별다른 답장이 없으시면 괜찮다는 걸로 알겠습니다.'
나는 원하지 않는다고 답장을 보내려다 말고 잘 부탁드린다는 문자를 보낸 뒤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나도 숨만 쉬고 있으면 누가 밥도 주고 돌봐주었으면 좋겠다. 혼잣말을 하면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호수 공원에 도착해서 스트레칭을 하고 달릴 준비를 했다. 근력 운동을 하는 것 못지 않게 달리기도 워밍업이 중요하다. 전신을 사용하기 때문에 몸이 제대로 풀려 있지 않으면 다치기 쉽거든. 달리면서는 뒤꿈치가 먼저 땅에 닿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달리기는 기본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운동이라서 뒤꿈치가 먼저 지면에 닿기 시작하면 속도의 균형을 맞추기가 힘들고, 하체가 견뎌야 하는 하중도 배가 된다. 그래서 하중을 고르게 분배할 수 있게 중간발로 땅을 딛으며 달리는 게 가장 좋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달리다가 낭패를 봤다. 걷기나 달리기에도 더 좋은 자세가 있고, 이런 기본적인 자세와 행동도 다른 사람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인지 몰랐다.
달리기를 계속하게 되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스스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삶을 거대한 원이라 정의했고, 입구와 출구가 어디인지도 모를 그 원의 둘레를 도돌이표처럼 반복해서 돌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스무 살부터 스물여덟이 되기까지 팔 년간 돌린 볼트와 너트의 수만 해도 삼만 개는 될 것이고, 그중 나사선이 망가져 헛도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나는 그것이 나의 삶과 별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을 적금이라고 통장에 넣고, 미래를 위해 지금을 망가뜨리는 일에 서서히 싫증이 났다. 그래도 엄마처럼 집에서라도 곱게 죽으려면 어쩔 수가 없다. 가족이 없다면 내 몸이 썩어서 고약한 냄새가 날 때쯤에야 발견되겠지만, 어디 길에서 변사체로 발견되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그러나 달리기를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같은 원을 돌고 있다고 해도 앞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게 되었다. 아까 뉴스에서 보았던 청년 실업이니 일인 가구니, 그런 것들이 급속도로 증가하는 원인은 많이 달려왔다고 생각해도 발밑을 보면 그저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현실을 목격하기 때문 아닐까. 그러니까 지금의 청년 세대는 자기 자신이 발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우리를 밀어내기까지 제자리에서 스스로를 견디는 것이다.
나무 데크로 만들어진 호수 공원의 긴 다리를 달리면서 습습후후 호흡법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일 킬로미터쯤 달렸을 무렵,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조금 걸을까 싶어 속도를 줄여 걸었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아버지의 간병인이었다.
'장이선 씨, 최명주 간병인입니다. 아버님 상태는 들어왔을 때랑 별다를 것 없는데요. 밥을 거의 안 드시다시피 해서 걱정이네요. 오후 산책 시간에도 벤치에 앉아만 계시고, 낯을 많이 가리시는지 혼자 티브이만 보고 계세요. 아, 이게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원래 어르신들, 처음 병원 들어오시면 환경이 낯설어서 종종 그러시거든요. 가끔 배신감을 느끼시는 분도 있고……. 차차 나아질 겁니다.'
원래 간병인이라는 직업이 이렇게 친절한가? 문자를 처음 보고 나는 그러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특이한 사람이 걸렸구나 싶었다. 아버지는 운도 좋구나……. 자신이 죽기 전까지 돌봐줄 사람의 직업 정신이 이리 투철해서. 답장은 보내지 않았다. 밥도 안 먹고 세상과 동떨어져 있으면 나야 좋지. 나는 속에서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시월의 호수 공원에는 갈대가 정말 많다. 갈대가 바람에 잘 흔들릴 수 있는 것은 속이 텅 비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가 쓰러진 것을 처음 보았을 때, 그냥 자고 있는 줄 알았다. 엄마가 평소에 보던 홈쇼핑 채널이 틀어져 있었으니까. 그런데 엄마는 잠귀가 밝아서 냉장고 여는 소리만 들려도 잠에서 깨는데, 내가 화장실도 가고 방에도 들락거리면서 문이란 문은 다 열어도 엄마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게 이상했다. 평소 같았으면 언제 왔냐고, 밥은 먹었냐고 물어야 할 사람이 너무 고요했다.
"엄마. 나 왔어."
나는 그게 정말 이상해서, 평소에는 하지도 않던 말을 했다. 하지도 않던 말을 하게 되니까 정말 이상했다. 엄마는 그래도 미동이 없었다. 나는 방에 들어가 엄마의 어깨를 쥐고 흔들었다. 엄마의 몸은 힘없이 흔들렸다. 흔들리기만 했다.
그렇게 흔들리는 갈대를 보면서 계속 걷다가 샛길이 보여 공원에서 빠져나왔다.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 한 바퀴를 다 돌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처음 호수 공원에 도착했을 때처럼, 무언가가 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처음 달리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나를 가볍게 추월하는 사람들의 등이 멀어질 때. 사실 나는 변하고 싶었다. 반복적인 일상에서 의미를 찾고 싶었다. 매일 자동차의 엔진을 들어내고, 타이어 공기압을 체크 하는 일에서도. 내가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싶었다. 뉴스에서 떠들어대는 삶의 퍽퍽함이 나를 대변하지 않길 바랐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되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신호등 앞에 멈춰 섰다. 신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파란불로 바뀌었다. 횡단보도를 다 건너서 오 분만 걸으면 집에 도착할 수 있다. 얼른 씻고 저녁밥을 먹고 싶다. 사랑을 생각하면 금세 배가 고파졌다. 사랑을 잠재울 수 있는 건 허기뿐인가. 나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그것보다 누군가에게 나는 사랑하기 괜찮은 사람인가. 현관문 앞에서 멀뚱멀뚱 서 있다가 집으로 들어갔다.
"이선, 아버지 잘 모셨냐."
출근하자마자 팀장은 그것부터 물었다. 나는 예, 대답하고 탈의실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바깥으로 나왔다. 출근한 모든 인원이 공업소 중앙에 모였다. 몸을 쓰는 일이라서 아침부터 체조를 해야 한다나 뭐라나. 달리기를 할 때 하는 스트레칭은 귀찮지 않은데, 이 아침 체조는 정말이지 해도 해도 하기 싫다. 체조가 끝나고 사장이 단상 위에 올라왔다.
"자, 오늘도 힘들 내시고. 다치는 사람 없이 일들 합시다. 요즘 단풍이 예쁘게 물들어서 여행들 많이 다니잖아요. 여행 많이 가면 뭐겠어. 사고 엄청 나잖아. 오늘만 해도 예약된 작업이 열 건은 돼요. 그러니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빠르고 열심히 일해주세요. 자, 그러면 안전 삼창하고 끝내겠습니다. 안전! 안전! 안전!"
사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은 개미 떼처럼 흩어져 자신의 담당 구역으로 돌아갔다. 나는 팀장을 따라 자리로 돌아와서 오늘 처리해야 할 업무를 전해 들었다.
"이선은 오늘 나랑 같이 머스탱 썬루프 유리 교체할 거다. 폐차한 머스탱의 유리를 떼서 옮길 거야. 이 유리 하나에 오백만 원, 새로운 유리 찾기도 힘드니까 실수하면 안 된다. 알았냐."
나는 알겠다고 대답한 뒤 머스탱의 상태를 확인했다. 머스탱 2세대, 출시되었을 때 가격 대비 외관이나 성능이 훌륭해 자동차 업계에서 돌풍을 일으킨 차다. 몇 번 수리해 본 경험은 있지만, 이런 세밀한 작업에서는 실수 한 번이 바로 실패로 이어지니까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차는 살 때의 가격보다 유지하는 비용이 더 많이 들어서 지금의 나로서는 택도 없지. 썬루프 유리 하나에 오백만 원이라니. 내가 두 달은 일을 해야 벌 수 있는 돈이 고작 유리 하나 값이라고 생각하니 순간 울분이 치밀어 올랐다. 속으로 씩씩거리며 멀뚱멀뚱 서 있으니 팀장이 나를 불렀다.
"이선, 머스탱 썬루프 유리 교체해본 적 있냐."
"유리 교체는 처음입니다."
"이거, 똑 하고 떼어지는 거 아니다. 금 가면 끝이니까. 오백만 원 날리는 거다. 그 실금으로."
나는 마땅한 대답이 생각나지 않아서 가만히 서 있었다.
"이선."
"네."
"실 가져와. 두껍고 긴 걸로."
나는 팀장의 지시대로 실을 가져왔다. 실로 무엇을 하겠다는 건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설마 이걸로 저 유리를 자르겠다는 건가. 그게 말이 되나.
그런데 팀장은 정말 실로 유리를 잘라 교체하겠다고 했다. 나는 이걸로 정말 유리를 자를 수 있냐며 물었는데 팀장은 된다고 했다. 말 그만하고 차 안으로 들어가라고도 했다. 나는 운전석에 어정쩡하게 앉아 차 위에 올라탄 팀장의 다음 지시를 기다렸다.
"이선, 팀워크가 중요하다. 오차 없이 밀고 당겨야 돼. 리듬. 너 혹시 박치냐."
"박치 아닙니다."
"그러냐. 실 내려줄 테니까 받아라."
나는 팀장이 유리 모서리의 틈으로 내어준 실을 잡았다. 신호를 주면 자신이 먼저 실을 당긴다고 했다. 그다음부터는 일정한 속도와 힘으로 그것을 반복하면 된단다. 또 반복이구나, 나는 중얼거렸다.
"당긴다."
팀장의 말을 시작으로 우리는 십 분 넘게 밀고 당기기를 계속했다. 혹시라도 금이 가면 오백만 원을 물어내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나를 한치의 오차도 없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다. 동시에 실 하나로 아슬아슬하게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니 팀장에게 괜한 친밀감이 느껴졌다. 실이 마지막 모서리에 도착했을 때는 팀장과 하이파이브라도 하고 싶은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팀장은 그런 생각은 하지도 않는 듯 한결같이 실을 밀고 당겼다.
"이선, 그만. 실 다 당겨서 가지고 나와라."
나는 실을 가지고 차 밖으로 나왔다. 팀장은 내가 차에서 나오자마자 유리를 몇 번 흔들었다. 그랬더니 유리가 똑 하고 떼어졌다.
"똑 하고 떼어지긴 하네요."
"작업이 잘 됐다는 거다."
남은 작업은 훨씬 수월했다. 유리를 교환할 머스탱에 갈아 끼우고,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만 하면 됐다. 나는 팀장과 함께 확인 점검까지 마치고 머스탱을 출고했다. 오전 작업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쉬는 시간이 꽤 생겼다. 휴게실에 들어와 앉아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팀장이 휴게실로 들어왔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래."
팀장은 냉장고를 열고 포도 주스를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나를 몇 초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선, 아버지 괜찮으시냐."
뜻밖의 질문에 나는 조금 당황했다. 다른 사람 일에 별로 관심이 없는 팀장이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 신기했다.
"좋은 간병인이 걸린 것 같더라고요."
"어떻게 아냐."
"하루에 한 번씩 아버지 상태를 문자로 보내줘요. 어제 처음 문자 받았는데, 되게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았어요."
"그러냐."
"네."
"잘해드려라."
그 말을 듣고 나는 지금도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는 거예요, 말하려다가 속으로 꾹 눌렀다. 팀장은 내가 대답하지 않자 나를 또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말했다.
"이선, 나는 오 년 전에 아버지 보내드렸다. 죽어 마땅한 사람, 그런 말은 살아 있으니까 할 수 있는 거다. 죽으면 아무 말도 못 한다. 알았냐."
팀장은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휴게실 밖으로 나갔다. 나는 벙쪄서 한동안 미동도 없이 의자에 앉아 팀장의 말을 되뇌었다. 만약 아버지가 죽는 모습을 내가 보게 된다면, 나는 그 앞에서 잘 죽었다고, 아버지가 죽는 것을 보니 이제야 속이 뻥 뚫린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시 나의 것이 된 팔십만 원으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마 아무것도 하지 못할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저 뻥 뚫린 속으로 다시, 잘 죽기 위해 적금을 내고 일을 할 것이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었다. 나는 밥을 먹고 삼십 분 정도 잠을 잤다. 잠깐 꾼 꿈속에서도 나는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항상 가던 호수 공원은 아니었다. 나는 기억을 되짚어 내가 어디를 달리고 있는 것인지 떠올리려 했다. 갑자기 비가 내렸다. 멀리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나는 온몸이 젖어 무거워진 몸을 억지로 움직이며 그 사람이 누군지 보려고 했다. 가까이 다가가니 그 사람은 무언가를 들고 자기 몸을 내려치고 있었다. 빗줄기가 거세졌다. 나는 그 사람의 어깨를 잡았다.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자기 몸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이선, 일어나."
눈을 뜨니 팀장이 내 어깨를 잡고 흔들고 있었다. 무슨 이런 꿈을 꾸는 거야. 나는 벌떡 일어나 팀장과 함께 다시 내 담당 구역으로 갔다.
오후에는 수리 작업이 없어 창고에 가서 자동차 부품을 정리했다. 점화 플러그와 분사 노즐을 디젤 엔진용과 가솔린 엔진용으로 분류하는 것이 오늘의 마지막 업무였다. 무게도 가볍고 별로 힘들지 않은 일이라서, 매일 이런 일만 하며 돈을 받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잠깐 생각했다.
퇴근 시간이 되어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팀장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하고 공업소를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다. 여섯 시, 아무리 업무가 많아도 퇴근 시간은 칼 같아서 좋다니까. 퇴근길은 차로 가득했다. 나는 라디오를 틀고 주파수를 조정했다. 이번 주의 토픽 키워드는 사랑에 관한 것이었다. 사람은 비가시적인 것을 목격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 그것을 사랑하게 된다고 한다. 실체는 없는데 눈앞에 있는 듯한 생경한 경험을 하고 나면, 그것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얼마든지 자신을 할애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다른 차원의 사랑'이고, 사람은 저마다의 차원에서 자신의 차원에 들어와 함께 사랑할 사람을 찾아 유영한다. 그러니 모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 노력하세요, 라고 진행자는 말했다 "가진게 에이즈뿐이라도 문제 없어요. 그게 나의 마음……."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 라디오에서는 김일두의 가 흘러나왔다.
집에서 밥을 먹고 조금 쉬다가 바깥으로 나왔다. 어느새 거리에는 낙엽이 가득했다. 오늘은 괜한 수작 부리지 말고 꼭 호수 한 바퀴를 다 돌자고 다짐하며 스트레칭을 했다. 그때 간병인에게 전화가 왔다.
"장이선 씨, 최명주입니다. 혹시 지금 통화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무슨 일이세요."
간병인이 숨을 고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버님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요. ……간암 4기라고 합니다. 아버님이 치료와 관련된 모든 것을 거부하셔서 일단 혈당 수치 낮추는 약만 처방받았어요. 저희는 일반 요양병원이라 암 환자는 돌보기가 어렵거든요. 그래서 근처 암 환자 전문 요양병원으로 옮기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나는 간병인의 말을 듣고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입 밖에 나오려고 하는 말이 없었기 때문에,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간병인은 익숙한 듯 내가 말을 꺼낼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눈에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살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어야 하는 정도인가요."
"몸의 다른 곳도 많이 상하셔서, 지금 상태로는 육 개월 정도가 최대치라고 해요."
"알겠습니다. 내일 요양병원에 들를게요. 아, 그전에 하나만 더요."
"말씀하세요."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건가요?"
"잃어본 적 있으니까요."
전화를 끊고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것을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것은 내가 아버지를 데려와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보다 더욱 선명하고 이상한 감정이었다. 아버지가 육 개월을 모두 채우고 죽는다면, 나는 육 개월간 최소한의 생활을 하며 아버지의 병원비를 충당해야 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그보다 일찍 죽으면 내 생활도 덩달아 안정감을 되찾겠지. 그런데 아버지가 육 개월보다 더 오래 산다면? 지금 당장은 치료를 거부한다지만, 갑자기 살고 싶어지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들이 복합적으로 머릿속을 두드렸다. 아버지가 내 꿈에서 망치로 자기 몸을 때리고 있던 것처럼, 나는 아버지와 다른 방식으로 나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 같았다. 오래 생각할 일이 아니다. 그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도 살점이 떨어져 나갈 듯한 아버지의 손이 자꾸 떠올랐다. 육 개월, 암 환자 전문 요양병원은 또 한 달에 병원비가 얼마일까. 내가 얼마나 더 궁상을 떨게 될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이제 볼트를 조이는 것만으로는 생활이 벅찰지도 모른다. 적금을 깨는 것은 최대한 피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시점부터 아버지를 걱정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다만 지금은 있는 그대로 생각하고 행동하자는 마음만 들 뿐이었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가장 쉽고 빠른 일은 호수 공원을 달리는 것이었다. 나는 벤치에서 일어나 아까 미처 다하지 못한 스트레칭을 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습습후후, 습습후후 호흡을 유지하고 뒤꿈치가 땅에 먼저 닿지 않도록 유의하며 속도를 높여갔다. 페이스가 안정권에 들어섰을 때 호수 공원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흔들리고 있는 갈대, 호수를 유영하는 청둥오리 떼와 수풀 사이에 앉아 있다가 날아오르는 철새들. 나도 다른 사람의 눈에는 저녁 시간에 여유롭게 호수를 달리는 것처럼 보일까. 정말이지 속이 뻥 뚫린 것만 같다. 속이 뻥 뚫려 있어서 사람들이 나를 뚫고 지나가도 모를 것 같다. 그렇게 일 킬로미터를 뛰고, 이 킬로미터를 뛰어갈 때쯤 호흡이 가빠지고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나를 견디는 게 나뿐이라는 것이 너무 화가 났다. 엄마가 몸만 두고 도망갔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고, 실수로라도 누가 나에게 해를 가했으면 싶은 날도 많았다. 그런데도 나는 살아가고 있는데, 엄마는 멈춰버리고, 아버지는 살아가는 일을 거부하고 있고.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살려준다는 데도 거부하고 있고. 나는 이해되지 않는 일투성이였다. 그렇게 이해가 되지 않는데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명확하게 보였다. 아버지를 최대한 오래 살게 하는 것. 내가 쳇바퀴를 돌더라도, 아버지가 자신의 원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지연시키는 것. 그게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건 어쩌면, 라디오에서 들었던 것처럼, 다른 차원의 사랑일까? 사람의 마음을 넘어 그 사람의 차원에 들어설 때, 사랑은 끝을 모르고 팽창하는 걸까. 정말 어쩌면, 아버지의 미안하다는 말이, 아버지의 차원에서 내뱉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이었을까. 지금은 그저 누가 나를 이끌어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아까부터 내 앞에서 달리던 사람을 무작정 따라 달렸다. 그렇게 이 킬로미터를 넘어 삼 킬로미터가 될 때까지 나는 그 사람 뒤에서 달렸다. 혼자 달릴 때보다 누군가와 함께 달린다고 생각하니 쉽게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 절대 삶을 포기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삼 킬로미터가 넘어가니 이제 같이 달리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한계치였다. 그때 앞서 달리던 사람이 내가 도는 원에서 벗어나 다른 원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했지만, 원래 돌던 궤도를 벗어나 새로운 원으로 방향을 틀었다. 어떤 길과 풍경이 내 앞에 펼쳐질 지는 모르지만, 지쳐 걷게 되더라도, 습습후후 숨을 고른 뒤에 다시 달리면 되는 것이었다.
<당선소감>
끝끝내 쓰는 사람으로 목적지 향해 나아가겠다
달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반환점이 생기는 기분이 들어서요. 내게도 돌아올 곳이 있다는 마음이 발을 먼 곳까지 뻗게 만드는 것도 같아서요. 서로를 흘깃 지나치는 어깨를 가졌다는 생각이 얼마간의 생활에 의지를 갖게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내달리듯 먹고, 살고, 쓰면서 울고 웃다가 대부분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표정으로 겨울을 지나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머무른다고 말하는 게 좋겠어요. 고드름이 이른 아침 떨어트리는 한 방울의 물처럼.
이제 막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느낌이 듭니다. 스물 중반을 넘어서는데 아직 내 세상은 좁은 원룸, 강의실 작은 책상, 버스 맨 뒷자리 혹은 좋아하는 사람의 손금을 따라 걷는 발자국뿐이거든요. 시력이 안 좋아 멀리 내다보지 못한다거나 이것 봐 뼈 소리 나잖아, 하며 돌아가는 손목을 탓하기엔 늦었다는 것을 알아요. 세상에 나보다 아픈 사람이 많아서, 사람뿐이면 다행이지, 동물도 식물도 모두 어딘가 쓰린 세상이라서. 변명으로 얼룩진 현실이 아닌 자세히 들여다보고 손을 뻗을 수 있는 현재를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현재와 현실 사이에서 기쁘게 과거와 미래를 상상하게 해주는 사람이 내게는 많은 것 같아요. 민호형과 웅기형의 등을 바라보며, 태훈 병헌 재민 주성 아영과 서로의 발밑에 깃든 그림자를 이해하며, 준섭 형초 민지 예리 동진과 그럼에도, 우리는 같은 말로 서로를 묶어두며,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선생님들과 학우들과 광주 친구들의 애정을 떠올리며, 가족과 윤겸과 스스럼없이 나의 곁이 되어주는 사람들의 어깨를 내내 지탱하고 지지하며.
나는 끝끝내 쓰는 사람으로 있겠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나면 끝없이 멀어지는 목적지를 가진 기분이 들어요. 그게 좋습니다. 늘어난 길 위에서 무엇도 소홀히 여기지 않는 사람이 되어, 그 마음을 믿음으로 바꾸어 아픔과 슬픔이 꼭 아프고 슬픈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요.
아름답다는 나답다는 말이래요. 우리는 사는 내내 아름다움에 가까워지기 위해 발을 내딛겠죠. 그 곁에 내 글이 함께 달리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 광주광역시 출생
● 단국대 문예창작과 졸업예정
<심사평>
암담한 현실 끊임 없이 나아가는 서사 감동
독서인구는 줄어들었지만 문학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시들지 않았다. 이번 무등일보 신춘문예에 투고된 소설의 응모편수 또한 적지 않다. 이 어려운 시기에, AI가 쓴 소설들이 독자를 유혹하고 있는 시대에 아직 소설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전체적으로 작품의 완성도가 부족해보였다. 소설에서 문장은 기본인데, 밀도가 있거나 안정된 문장을 가진 작품이 적었고, 서사와 짜임새 역시 아쉬웠다. 이야기가 흥미롭게 전개되다가도 얼마가지 못해 처음의 긴장과 의도를 잃고 엉뚱한 서사로 흐르거나 결말역시 실망스러운 작품도 많았다.
많은 작품가운데 우선 '러닝'과 '어느 고요한 날의 일''화석은 알고 있다' '아가미 없는 물고기'를 골랐다. '아가미 없는 물고기'는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주인공이 자신이 처해있는 위태로운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주인공의 불안하면서도 불안정한 삶을 더 세밀하게 드러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화석은 알고 있다'는 상징과 알레고리를 가져와 이야기를 끌어가는 솜씨가 돋보였다. 수련을 많이 했다는 증거이다. 하지만 어딘지 도식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끝까지 남은 것은 '러닝'과 '어느 고요한 날의 일' 두 작품이었다. 두 작품 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였고, 아버지와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러닝'은 집을 나간 아버지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모셔오는 이야기인데, 그 아버지는 병이 깊어 생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고요한 날의 일'은 치매 걸린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는 주인공의 일상을 그린 이야기로, 등장인물들의 불안한 심리를 잘 묘파해 냈다. 끝까지 긴장을 잃지 않고 안정된 문장으로 암울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두 작품이 같다. 고심 끝에 '러닝'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암담한 현실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나아가려고 하는 주인공의 몸짓이 희망을 품게 했다. 그 암중모색의 희망이 소설을 당선작으로 추켜들게 만들었다.
심사위원 : 은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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