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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필인더블랭크 / 김진표

 

 두텁고 촘촘한 암막커튼을 산 이유는 눈을 감아서 찾아오는 어둠만으로는 잠들 수 없어서였다. 새로 산 커튼이 빛을 모조리 잡아먹는 것을 보고 나서야 감은 눈에 찾아오는 어둠은 별다른 것이 없는 듯 했지만 전에 느끼지 못했던 침대에 푸욱 가라앉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감긴 눈 바깥의 방은 어떤 오브젝트나 선도 다 없어져 우주나 심연같은 거창한 비유를 들 수도 있었고 혹은 깊은 땅속. 또는 매일 만나는 이들의 매일이었다.

창호가 커튼을 걷는 소리가 들렸다. 겨울 초입의 건조한 햇살이 어두운 방에서 더 쨍하니 선명했다. 방을 가로지르는 아침과 밤의 경계에 창호는 항상 서있다.

“창호야, 오늘 날씨.”

- 오늘의 날씨는 구름이 많으며 비가 예보되어있습니다. 오후 1시~7시, 근무지인 통합광주시 전역에 비가 옵니다. 강수량은 5mm로 잔잔한 겨울비입니다.”

“그래, 정리 좀 해줘.”

창호는 이부자리를 차곡차곡 정리했다. 가정용 안드로이드에게 사람의 이름을 지어준 이유를 묻는 사람이 많았다. 그냥 어릴 때 키우던 강아지에게 아버지가 붙인 이름이 창호였다. 그들은 안드로이드에게 알파나 제이같은 이름을 붙이거나 아예 음성정밀인식 시스템을 이용해 이름을 부르지 않고 명령을 내린다고 했다. 정도 없게.

아침을 대충 먹고 대충 씻고 대충 화장을 했다. 취업을 한 이후부터 아침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이제 아침은 식탁에 굴러다니는 빵가루처럼 무가치한 하루의 조각처럼 되어버린 게 분명했다. 선배가 ‘그렇게 직장인이 되는 거야’라고 말한 것이 떠올랐음에도 거울 속의 표정은 무감각했다. 그렇게 대충투성이로 아낀 아침의 에너지는 현관앞에서 모조리 소모된다. 현관에 서서 ‘오늘은 잘하자!’라고 외치든가, 숨을 크게 내뱉고는 문을 나서는 것이다. 마찰 없이 매끈하게 열리는 문으로 내딛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다.

회사의 1층 홀에 들어서자 안드로이드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나에게도 하나가 다가왔다. 언제나 밝은 목소리로 인사말과 함께 귀찮은 소식을 덧붙였다.

- 유시현 사원님, 반갑습니다. 시설관리부에서 전달사항 있습니다. 금일 새벽 몇몇 개인용 엘리베이터에서 수평불균형이 감지되어 유감스럽게도 모든 직원의 엘리베이터를 점검합니다. 금일 오후에 모두 복구될 예정이니 오전은 비상계단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죄송합니다.

단지 입력값일뿐인 죄송하다는 말을 마음이 담긴 듯 출력해 내는 목소리에 화가 나지 않았다. 계단을 걸어서 올라가는 것은 그리 부담스럽지 않았지만 다만 내가 싫어하는 비상계단이었다. 수평불균형이라는 단순하고 직관적인 물리적 고장을 말한 것이 복잡한 메커니즘을 가진 안드로이드라는 것에서 아이러니를 느끼며 비상계단을 올랐다. 내 자리가 있는 6층은 계단으로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6층의 현장출동팀은 아침임에도 한산했다. 윤진 선배의 홀로그램 모니터는 켜져 있었고, 상훈 선배의 자리엔 채 식지 않은 머그잔이 있었지만 자리는 비어있었다.

“윤진 선배랑 상훈이 둘 다 긴급 나갔어. 새벽에 일이 있었나봐.”

클라이언트의 시간이 푸르스름한 새벽을 견디지 못하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그러게요. 상훈 선배는 커피도 못 마시고 나갔네요.”

정우 선배는 표정없이 홀로그램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현장출동팀에서 4년째인 정우 선배는 인간메뉴얼, 팀의 등대라고 불릴 정도로 일을 말끔하게 잘했다. 처음 일할 때 정우 선배에게 많이 배우라는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게 들었다. 정우 선배가 심각하면 큰일이다. 정우 선배가 평온하거나 무표정이면 별거 아닌 일이었다.

자리에 앉아 홀로그램 모니터를 켰다. 허공에 투명한 틀이 그려지고 그 안으로 회사명이 서서히 드러났다. Fill in the blank.

신원확인용으로 간단한 문장을 타이핑으로 입력하면 프로그램은 나를 인식하고 모든 세팅을 완료시켰다.

- 밤하늘엔 별이 총총, 거리엔 꿈을 꾸지 못하는 사람들

문장은 매일 무작위로 되는데 어떻게 문장을 입력하는 것만으로 신원을 확인하는지 신기했다. 어쩌다 기술팀에 한 번 물어봤을 때도 그들은 어렵고 복잡한 메커니즘을 설명하며 신나 했을 뿐 설명하는 기술은 많이 부족한 사람들이었다. 타이핑의 습관과 자주 틀리는 부분에 대한 정밀분석이라나.

나는 제발! 하는 마음으로 오늘의 배정인원을 눌렀다. 3명을 배정받아 그중 3명이 출장이었던 끔찍한 어제를 떠올리며 오늘은 다르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 124세 여성, 차수은. 생체종합점수 49점으로 위험 단계입니다. 의사소통과 거동이 모두 가능합니다. 방문 거절이력 3회 있습니다.

한 명. 얼굴도 모르는 분이지만 그뿐임에 반가움이 일었다. 선배 둘이 출근도 전에 출근을 해버린 찜찜한 오늘같은 날에.

‘오늘은 한 명만 만나면 돼.’

노인고독사 방지를 위한 준복지기관 필인더블랭크의 시스템은 점수가 60점 밑으로 떨어지면 출장오더를 올리고, 클라이언트들의 거주지 간 동선이나 생의 복잡성, 질병특성 등에 따라 현장출동팀에 출장배정을 한다. 시스템은 등록시 진행하는 80여가지가 넘는 신체검사와 정신, 심리, 습관, 취미, 거주지의 생태, 인간관계를 모조리 분석해 기초점수를 산정하고, 등록 시 이식한 생체호르몬감지센서가 주기적으로 보내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교함과 정확성을 높인다. 2년 전부터는 초정밀데스크 분석실이 생겨 사망예정시각까지 아주 근사한 값으로 도출해낼 수 있게 되었다. 정확하진 않았지만 관리자들은 그 부분은 딱히 신경쓰지 않았다.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노인들에게 시간은 숫자놀음 따위로 의미가 흐릿해진다는 것이 이유였다.

나에게 한 명을 배정한 시스템의 속내는 도무지 알 수 없지만 난이도 때문이라고 굳이 티를 내는 건지 그녀의 배정정보에 하이라이트를 칠만한 부분이 두 군데 있었다. 49점과 3번의 방문거절. 우리들을 마주하는 노인들은 우리가 찾아오는 것을 죽음이 찾아오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서 방문을 종종 거절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보통 설득을 하거나 재방문 시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는 게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세 번이나 방문을 거절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었다. 124세 여성에게 49점이란 당장 눈을 감아도 이상하지 않은 점수인데 방문을 3번이나 거절했음에도 시스템이 4번째 방문을 배정한 것은, 스스로 죽음의 위기를 3번은 넘겼다는 이야기이려나.

그런데도 의사소통과 거동이 가능하다고? 내가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선배들의 이야기에 가끔 등장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생체점수가 7~80점이던 노인이 갑자기 40점대로 떨어져 찾아가니 독극물로 생사의 외줄타기를 하는 악취미가 있는 사람이 삐끗해서 오늘내일 했다거나, 별다른 이슈가 없는 노인에게 긴급방문이 배정되어 집에 갔더니 집에는 없고 뒷산에서 실족한 상태로 발견해 처리했다는 어이없는 이야기였다. 그런 이야기들의 끝은 항상 ‘우리 회사의 시스템은 어떻게 그런것까지 감지를 하고 알아채는걸까.’ 에 대해서였다. 차수은 클라이언트도 그런 케이스일지 몰랐다. 다행히 방문 거절이력엔 반가운 이름이 있었다.

“정우 선배, 차수은님 방문 거절 당하셨어요? 심보가 고약하신 분인가봐요.”

“그 사람? 나쁜 사람은 아닌 걸로 기억해.”

“그런데 방문을 세 번이나 거절해요?”

“내가 갔을 땐 아주 정중하게 거절하셨거든. 아직 올 때가 아니니, 올테면 겨울에 다시 찾아오라고 말이야.”

“이제 겨울이긴 한데 왜 겨울일까요.”

“겨울에만 하는 위험한 취미가 있으신가? 아, 생체종합점수 몇점이야? 49점까지 떨어지셨어? 내가 갔을땐 53점이었는데 절대 그 점수로 안 보이시는 분이야.”

“아 오늘 어쩐지 한 건밖에 없더라.”

“겨울에 다시 찾아오라고 하셨으니까 지금 찾아가면 반겨주실지도 모르지. 그리고 그 분, 특이한 점이 하나 있는데.”

아 맞다, 엘리베이터.

비상구 계단의 공기는 아침보다 더 탁하고 차가운 느낌이었다. 내가 이 공간을 싫어하는 이유는 내려가는 비상계단은 올라올 때는 없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던 풋내기 시절엔 출장을 나갈 때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지 않고 비상계단으로 회사를 빠져나갔다. 선배들이 왜 계단으로 내려가냐고 물었을 때 마인드컨트롤을 하며 내려가는 거라고 둘러댔지만 그들의 눈엔 조금이라도 현장에 늦게 도달하기 위한 몸부림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의 변명이 마냥 빈말도 아닌 것이 계단 하나에 잘하자 한번, 계단 또 하나에 괜찮아 한 번씩을 소리내서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1층 무렵부터는 끈적이는 슬라임의 너울에 휩쓸리는 것처럼 울렁거렸다. 부담스러운, 마지막을 나에게 맡긴 지난 출장마다의 노인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노인들의 얼굴을 억지로 몇 번 마주하고, 또 몇 번의 달력이 넘어가면서 비상계단의 문은 자연스럽게 더 이상 열리지 않았고 감정은 계속해서 무뎌졌다. 지금의 나는 문을 만지작대던 그때와는 분명, 분명 달라졌다. 수직으로 파낸 구덩이같은 비상계단의 1층이 가까워졌다. 달라지지 않은 것은 어두운 1층 초록색 비상구 불빛 아래 그대로 있었다.

어제 만난 유윤수 클라이언트는 한평생 농사만 짓다가 돌아가신 분이었다. 그는 흙의 생명력을 그 무엇도 대체할 수 없다고 곧게 믿고 살던 사람이었는데 자동화반대시위의 열성분자로 활동하던 때 협상차 방문했던 작물자동화생산공정을 마주하고는 커다란 상실감에 빠졌다고 했다. 연구원들이 모두 자신을 보며 비웃는 것을 보자 얼굴이 새빨개져 기절했고 그대로 중추신경에 손상이 오고 말았다고 했다. 그 이후로 흐르는 세월의 무게가 가족들도 자신을 버리게 했다고. 하지만 유윤수 클라이언트의 기억회상약물을 제조하면서 그의 기억 조각을 맞추는 과정에서 내가 포터블 홀로그램으로 본 장면은 달랐다. 연구원들은 아무런 표정이 없었고, 다만 흙이 아닌 어떤 걸쭉한 액체에서 벼나 배추같은 작물들이 급성장하는 것을 본 직후에 그는 쓰러졌다. 믿음에 대한 배신감이었던 것을 아는지, 애써 모른척 해왔던건지 물어볼 수 없는 질문에 당연하게도 답을 주지 않았다. 다만 슬픈 눈을 하고 유윤수 클라이언트는 그렇게 떠나갔다.

선배가 말한 특이한 점이 있는 그녀가 분명, 1층에 다시 나타날 것만 같았다.

통합광주시의 도심을 빠져나가 시골에 접어들 무렵 회사에서 메시지가 왔다. 관리팀의 내선번호였다.

<차수은 클라이언트, 금일 방문 거절했습니다. 차후 재방문 일정 확인하겠습니다.>

관리팀의 짜증이 묻어나오는 듯한 텍스트였다. 겨울이 되었음에도 그녀는 방문을 거절했다. 4번이나 거절한 역사가 있었는지 선배들에게 묻고 싶었다. 가뜩이나 비도 오는 날인데 조금 일찍 말해주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차수은 클라이언트의 거주지로 도착하기 전에 차를 돌릴 수 있게 되어 다행이었다. 한편으로는 그 사람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녀의 이야기에서 비켜섰음에 안도감이 들어버렸다.

하나 있던 일정이 취소되었으니 오늘의 업무는 끝난 줄 알다가 며칠 전 중금속중독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고현진 클라이언트에 대한 현장요원브리핑과 어제 보내드린 유윤수 클라이언트에 대한 서비스종료보고를 아직 쓰지 못한 게 떠올랐다. 사실 모든 팀원들의 보고서는 천편일률이랄 정도로 비슷했다. 회사의 설립목적과 사업의 진행이 큰 맥락을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노인고독사가 미디어나 뉴스에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거나 한 것은 21세기부터였지만 마치 잠복 중인 감기 바이러스처럼 주변에 너무도 흔하고도 산재되어 있을 뿐이었다. 계속해서 존재해왔지만 드러나지 않는 일들이었고, 드러나고 나서야 그 참혹함을 잠깐이나마 인지하는 이슈였다. 가정용 안드로이드가 보급될 때 전문가들은 노인고독사를 해결할 수 있을것이라고 했다. 노인에게 문제가 생기면 안드로이드가 바로 인지하고 조치를 취하는 시스템을 포함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안드로이드의 발전 속도는 그때까지 늘어난 인간의 수명을 따라잡지 못했고, 100세 때 구입한 안드로이드를 120세까지 사용하는 등 통계와 예상을 벗어나는 노인들이 있었다. 그들의 시체가 미라가 되어 발견되었을 때 옆에서 같이 발견된 안드로이드 중 쓸데없이 고성능으로 개조한 동력원을 보유한 모델은 유지보수 기간을 훨씬 지나 하나의 행동이나 발성을 반복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또 몇몇은 그들의 주인처럼 고꾸라져 서서히 전원이 꺼져갔던 것이다. 안드로이드에게 입력되어 있던 식사보조 메커니즘이 오류를 일으켜 시신의 입에다 계속 음식물을 퍼넣고 있던 충격적인 장면이 보도되자 사람들은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노인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운이 좋으면 한 달, 억세게 운이 안 좋으면 영원히 발견되지 못하는 사태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망은 있어야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정부는 대규모국가지원사업공모를 통해 노인고독사를 해결하기 위한 사업체를 공모했다. 그리고 그중 하나였고, 지금까지 살아남아 견고해진 회사가 바로 필인더블랭크였다. 내가 입사하고 첫 회식에서 대표는 최종심사단계의 이야기를 고장난 녹음기처럼 반복했다.

“노인, 고독, 죽음 중에 늙는 것과 죽는 것은 피할 수가 없어. 수명이 늘어난다는 건 오히려 고독에게 밥을 주는 것과 같다니까. 최종심사단계까지 온 경쟁자들은 다들 그걸 알고 있었지. 고독함을 어떻게 다룰 것이냐가 최대 이슈였지. 하지만 우리만큼 경제적이고 아름답게 죽음과 연결시켜주는 방법을 제시한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이거야.”

“다른 업체들은 고독을 치유하려고 했나요?”

“기본적으로 정부의 의도를 잘못 파악하고 있던거지. 이 사업은 처음부터 고독사하는 노인들을 어떻게 구해낼 것인가가 아니었으니까. 그 노인들을 어떻게 참혹하지 않게, 곱게 죽음을 받아들이게 하느냐였지. 고독을 완화시키기 위해 안드로이드 보급을 더 한다느니, 집단생활을 위한 타운건설같은 수십 년 전 정부계획에서 따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만 하더군.”

대표가 말한 핵심을 깨닫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 회사에 등록된 노인들은 대부분 극단적인 환경에서 삶을 소모하고 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차가운 고요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될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고독사에 고결한 죽음의 현장을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스템은 상수와 변수를 모두 고려하여 점수를 도출하고 출장오더를 올리지만 그런 환경에서 가끔 발생하는 변수라는 것은 ‘고운 죽음’의 범위를 한참이나 벗어나는 것이었다.

방에서 구더기가 들끓는 짐승의 시체가 발견되거나, 자위를 하는 채로 급사한 이상성욕자를 본 날은 구토를 했고, 내용이 유서로 변해가는 일기장에 고개를 처박고 죽은 사람 앞에선 눈물을 흘렸다. 죽음의 형태는 매번 물음표였고 초고차원의 도형들을 보는 것처럼 낯설었다. 그런 출장을 몇 번 다녀오고 나서야 대표가 말한 ‘참혹하지 않게, 곱게’의 뜻을 알게 되었다.

출장이 일상인 현장 업무의 파도 속에 나는 어느샌가 그들을 만남에 있어서 죽음을 전제하게 되었다. 죽음의 형태를 걱정할 뿐 어차피 죽을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땐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어떻게 죽는가에 초점을 주었을 때, 비상계단의 문에 다가서지 않은 것이 그 무렵이었다.

대표는 그날 술을 진탕 마시고 약품개발부 임 부장의 어깨에 매달려서 술집을 떠났다. 그는 그날 빙글빙글 돌아가는 눈으로 나에게 말했다.

“신입, 우리 회사명이 필인더블랭크야. 빈 곳을 채우라는 뜻이지. 그들의 빈칸에 서서 명복을 빌어주라고.”

유독 더 숨가쁜 하루를 마치고 들어오는 날엔 그 말이 꾸역꾸역 막아놓은 틈을 삐져나왔다. 그들의 명복을 빌 자격이, 과연 나에게 하는 고민이 샤워기 밑에 쪼그려앉은 나를 붙들고 수십 분씩 놓아주지 않았다. 그들의 빈칸을 억지로 지키고 있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다가 그 1층의 끈적이는 울렁임이 느껴질 때야 물을 껐다. 그런 날은 잠을 잘 수가 없다.

어제와 달리 사무실이 북적였다. 모든 팀원이 출장없이 사무실에 있는 한 달에 손에 꼽게 드문 날이었다. 이런 날의 점심시간은 업무에 대한 성토를 한다던가 만난 고객들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에 다들 바빴다. 윤진 선배가 말하길 우리의 일은 우리말고는 어디에 털어놓을 데가 없으니 다같이 모이는 시간이면 최대한 많이 쏟아내라고 했었다. 팀은 항상 같이 이야기만 반복하는 듯 했지만 조금씩 다른 내용이었고 항상 큰 목소리로 떠들었지만 조금씩 지쳐있는 목소리였다. 윤진 선배는 지난 출장에서 만난 어떤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분은 인공지능을 전공하신 분이셨는데 집에 안드로이드의 메인보드 칩과 명령제어장치를 분해해 놓으셨더라구. 이유를 물어봤더니 명령을 듣지 않아서래. 무슨 일인지 물었더니 먹을 게 없어서 안드로이드에게 사냥을 시키려고 하셨다더군. 하지만 가정용 안드로이드는 전투명령을 수행할 수 없으니.”

“그런 일도 있군. 하여튼 노인들 보는것도 어려운데 이제 안드로이드까지.”

“맞아요. 못지않게 안드로이드들이 안타까울 때도 있다니까요. 그 안드로이드는 다시 조립할 여력이 없어서 분해된 상태로 널브러져 있더라구요. 등판이 모두 벗겨진 채로.”

“안드로이드에겐 오히려 그게 더 나을지도 몰라. 주인이 죽어가는 걸 보는 것보다는.”

“안드로이드에겐 감정이 없는걸요.”

“뭐 물론 감정은 없겠지만... 난 그렇게 생각해보기도 해. 곧바로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에 직면할 때 오랫동안 고민하듯이 안드로이드들도 명령 수행에 어떤 방법이 막히면 다른 방법을 찾고, 막히면 또 찾고... 하면서 연산하는 동안 가만히 멈춰있는 시간이 있단 말이야. 그런 짧은 시간들이 그들의 감정이 아닐까하는.”

“선배 말이 맞다면 노인들의 안드로이드는 가장 불쌍한 존재겠네요.”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만나는 노인들의 안드로이드라고 해야겠지. 대부분의 안드로이드들은 그런 상황이면 긴급상황 프로토콜로 전환되거든. 하지만 우리가 만나는 녀석들은 노인과 같이 늙어버려서 모든 동작, 연산, 처리와 이행이 느리거나 고장났으니까.”

옆에서 가만히 커피를 젓고있던 상훈 선배가 덧붙였다.

“나도 윤진이가 말한 게 뭔지 알 것 같아. 이미 죽은 어르신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서 있는 안드로이드를 본 적이 있거든. 윤진이가 말한 그 연산의 시간 말이야. 인간이 패닉상태에 빠져서 우물쭈물하는 모습같아.”

“저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뜬금없이 내뱉은 건 맞지만 다들 일제히 나를 바라볼 줄은 몰랐다.

“무슨 말이야 그게?”

“전 솔직히 선배님들이 일하면서 감정이 없는 줄 알았어요. 이상한 얘기가 아니구요. 뭐라고 하지. 직업과 감정의 경계를 명확히 긋는달까요. 저희는 아무리 곱게 포장을 해봐도 죽음을 목격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고객이 원하는 경우엔 죽음을 드리기도 하구요. 감정을 아예 배제하고 ‘이건 단지 일이고 직업일뿐이야.’ 라는 생각을 하면 더 수월할텐데요. 그런데 선배들은 안드로이드에게까지 그런 감정을 느끼신다고 하니까요.”

“아하하, 시현이 너는 우리가 일을 못 한다고 생각하는구나?”

“아니요, 저도 그렇게 되고 싶어서요. 저는 저를 잃고 싶지 않거든요. 이 일을 계속하다 보면 죽음에 익숙해지고, 고독에 무덤덤해지는 걸 피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요. 저는 항상 마음이 좀 아팠으면 하는데 좀 뒤틀렸달까요. 현장에서 무감했던 저를 나중에 복기하면... 끔찍해요. 두 마음의 내가 있는 것 같아서.”

선배에게도, 선배의 선배에게도 어려운 질문이었는지 아무도 답을 내놓지 못했다. 선배들이 이미 해결하고 넘어간 문제가 아닌 그들에게도 현재진행형인 문제인 듯 했다. 몇 초간의 정적을 깬 것은 회사용 단말기였다. 삑- 삑-.

“어! 긴급이다. 누구야? 시현이같은데?”

나의 단말기에서 초록색 불빛과 함께 긴급신호가 울렸다. 긴급이 울리면 반드시 그 날 나가는 출장이 잡히게 된다.

- [긴급] 차수은 클라이언트 오후방문 요청.

차수은 클라이언트의 금일 오후방문 요청이었다. 이미 가십에 올랐던 인물이었는지 팀원들 모두가 차수은이라는 이름을 알고있었다.

“이 분 3번 방문거절하셨다던 그 분 아냐? 웬일이래. 요청을 다 하시고.”

“긴급까지 뜬거 보면 시스템도 인지를 했나본데.”

“갔다올게요...”

흐려진 말끝의 인사를 건네고 출장을 나가려는데 정우 선배가 나와서 말했다.

“우리 모두가 하는 걱정이야. 아직도 답을 못찾았어 그 누구도. 다만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우리를 꼭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거든. 우리도 그 사람들을 찾아가는 데 책임감을 느껴야하고. 넌 잘하고 있어.”

차수은 클라이언트의 집은 그야말로 덩그러니 있었다. 넓은 대지의 한 켠에 박혀있는 그녀의 집으로 가는 길은 어제 내린 비가 아직 마르지않아 질척였다. 바짓단이 몇 걸음 만에 더러워졌다. 문 앞에서 서서 그녀의 리포트를 다시 읽어봤다. 오류따윈 있을 수 없다는 듯 당연하게도 바뀐 것이 없었다. 그녀의 집엔 초인종도 없었고 마중을 나오는 안드로이드도 없었다.

“차수은님, 계신가요?”

어두운 집안에 빛이 켜지는 것이 얇은 커튼 사이로 느껴졌다. 곧 할머니 한 분이 나와 느린 걸음으로 마당을 지나 현관으로 다가왔다. 느렸지만 곧았고, 탁했지만 빛이 나는 눈동자를 가진 그녀는 곧 죽을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 안녕하세요! 필인더블랭크의 유시현 사원이라고 합니다. 긴급 방문요청 맞으시죠?”

“그래. 바로 왔네.”

“넉넉히 올 걸 그랬을까요?”

“아니, 일찍 와서 좋지. 일 좀 해야겠어.”

“네?”

“주변을 한 번 둘러봐.”

그녀의 마당엔 화분이 많이 있었다. 마당을 가득 채운 숫자는 아니지만 여름엔 그녀의 집을 초록으로 물들였을 것이다. 다육, 선인장, 난초 등 흔한 것부터 이름을 알 수 없는 화초까지, 그들이 담긴 화분의 크기도 제각각이었다.

“이걸 다 집안으로 옮겨야 하거든.”

“네? 하지만... 전 이런 일을 하려고 온 게 아니라.”

“눈을 더 밖에 두고 둘러보면 알겠지만은 이 곳에 힘쓸만한 사람은 아무도 오지 않아. 나 혼자는 할 수 없는 일이고, 꼭 해야만 하는데. 나를 조금만 도와줘.”

그녀는 드문 타입의 노인이었다. 초면에 반말을 하는 노인은 반절이 넘었다. 거동이 불편하지 않은 상황에서 만난 노인도 드물지만 있었다. 안드로이드가 없는 노인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리고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노동을 요구하는 사람은 차수은이 처음이었다. 고객에게 도움을 주거나 라포를 형성하는데 한계가 어디까지지? 메뉴얼을 떠올려봤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머물렀을 뿐이다. 여태 들었던 도움의 요청과는 달랐다.

셔츠의 팔을 걷었다. 작은 건 양손에 들고, 큰 것은 낑낑대고 바닥에 끌면서 옮겼다. 거실은 은근히 넓어서 모든 화분이 다 들어갈만 했다. 노인은 한 두해 정리해본 솜씨가 아닌듯 난잡하지 않게 화분들을 각각의 자리로 열을 맞췄다. 그녀가 얇은 커튼을 걷자 휑하던 공간에 숲이 들어온 듯 거실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수고했어.”

짧은 말이었지만 한시름 놓았다는 듯 조금은 밝은 말투였다. 그녀는 숲을 가로질러 부엌으로 향했다. 물을 골동품 주전자에 끓이는 투가 요즘 할머니같지 않았다.

“어르신은 안드로이드 사용 안하세요?”

“그건 안 쓰는게 더 나아. 무섭거든.”

“무섭다니요.”

“죽는 걸 봤으니.”

“로봇이 죽어요?”

“왜 안죽겠어.”

그녀는 찻잎을 우려서 곧 두잔을 가져왔다. 나와 그녀 사이의 조그만 유리테이블에 두 줄기의 김이 피어올랐다.

“직접 키운 찻잎이거든. 이젠 어디서 마셔보기도 힘들 걸.”

차에서 풀의 향이 났다. 정말 오랜만에 혀에 닿는 감각이었다. 화분들의 숲이 그 향을 더했다.

“뭔가 신비로워요. 요즘은 이런 걸 만들지도, 팔지도 않으니까요.”

“화분 옮긴 값은 했겠지.”

“어제해도 됐을텐데요.”

“어제는 오후에 비가 왔으니까.”

“정말 화분 때문에 부르신 거예요? 설마.”

“말했잖아. 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는데 능률이 아무리 떨어지건 필인더블랭크는 이런 이유로 긴급호출에 응답하지 않는다.

“화분을 집 안으로 옮기셔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저것들은 이 겨울을 견딜 수 없는 생명체니까. 한겨울엔 모조리 죽고말테지.”

“살리기 위해서군요.”

“그것보단 죽음을 보기 싫다고 할까.”

죽음을 보기 싫다는 그녀의 말에 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리포트엔 정우 선배가 말한 특이한 빈칸이 여전히 메워지지 않고 있었다. 잠깐의 침묵이 내가 해야하지만 하고싶지 않은 말을 입 밖으로 밀어내게 했다.

“저희 회사는 클라이언트의 죽음을 예측하는 데 아주 정확한 시스템을 사용해요. 차수은님은 종합점수가 위험단계인데다가 그런 시스템이 3회나 방문을 요청하고 사망예정시각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요.”

사망예정시각의 빈칸을 채워야 할 그녀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수십개의 화분을 겨울까지 억지로 부여잡고 온 그녀의 탁했지만 빛나던 눈이 기어코 가라앉았다.

“죽음의 시간을 본인이 선택할 것이라는 거죠.”

“왜 스스로 삶을 끝내시려는 건가요.”

그녀에게 물었다. 무례한 질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고, 그녀도 그렇게 받아들이길 바랬다. 그녀는 그 물음에 나를 조금 빤히 쳐다보더니 일어서서 거실 한구석으로 걸어갔다. 방금 채운 화분들 틈 구석에 낡은 커튼보로 덮여진 부피감있는 물체가 있었다. 그녀는 그걸 들춰서 나에게 보여줬다.

그곳엔 안드로이드와 화분이 있었는데 둘 다 부서지고 무너져있었다. 안드로이드는 목이 부러져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어있었다. 노인이 저질렀다기엔 그녀의 손목은 거친 단면으로 부러진 그 모가지보다 얇고 메말라있었다.

“누가 이런 짓을 저지른거죠?”

“제 스스로 그랬을까.”

안드로이드가 스스로 목을 부러뜨렸을까라고 묻는 의문형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럴리가요. 안드로이드는 스스로 해칠 수 없어요. 더욱이 가정용이라면 그런 상황이 오지도 않구요. 빨래나 청소를 하다가 자살하는 안드로이드라니요.”

“시간이 그랬는지도 몰라.”

그녀는 불행하게도, 율이라 이름붙인 그 안드로이드의 머리가 툭 떨어지는 상황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고 했다.

“화분을 옮기는 건 매년 해야하는 일이었어. 처음엔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지. 젊을 적 식물을 가꾸긴 했어도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는데. 그때부터 날 알게 된 사람은 여지껏 나에게 화분을 갖다주더군. 나에게 내다버리는 건지는 몰라도. 다행이었던 건 내가 늘그막에 할일이 없으니 식물 키우는 재미가 붙은 거지. 그렇게 매일이 계속. 계속. 계속. 계속….”

그녀는 계속이라는 말을 하며 죄라도 지은 듯한 표정이었다.

“생이 어찌나 질긴지 나는 죽지 않더군. 나는 죽지않고 살아있는데 찾아오는 이들은 줄어들다가 결국 아무도 오지 않고. 곁엔 율이만 있었지. 율이는 늙지도 변하지도 않는 존재여서 좋았어. 항상 같은 표정으로 반갑게 인사하니.”

“안드로이드니까요.”

“식물을 키우게되면 매일, 매달, 매해 어떤 시점에 어떤 일을 해야하는 계획이 생기거든. 율이와 그렇게 지냈지. 율이와 노지에서 꽃도 심어보고 과일재배도 해보고 아무도 오지않았어도 그리 외롭진 않았거든. 어쩌면 애써 외면하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만. 그리고 작년 겨울에도 율이와 화분을 집안으로 옮겼지. 사실 그 전부터 율이의 상태는 전과 달랐어. 조금씩 절뚝이고, 말을 할때 사람이 가래끓는 소리같은게 난다던지... 그래, 율이도 부품이, 관절이 조금씩 늙어가고 있었던거야. 기계주제에 말이야.”

“안드로이드는 5년 주기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하드웨어 정비 및 보강을 하도록 법에 규정되어 있어요.”

“차라리 누가 나를 처벌하기 위해 찾아와줬으면 좋겠어. 나와 율이는 이 곳에 버려지고 잊혀진거야. 회사가 아니었다면 너 역시 이런 곳에 노인이 있는 줄 알았을까.”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고 그녀는 말을 이었다.

“율이는 절뚝이며 화분을 거실로 옮겼어. 나는 거실에서 정리하다 거실에 멈춰있는 율이를 보았지. 그리 크지도 않은 화분을 양손 머리 위로 들어서 옮기는 그 가여운 모습을. 그 때 잠깐 율이와 눈이 마주쳤어. 거울로 나를 보는 것 같더군. 빛을 잃어가는 어두운 눈동자가. 그리고 화분이 율이의 머리를 그대로 내리쳤지.”

안드로이드의 잔해 옆 부서진 화분에 묻은 흙은 습기를 잃어 건조했다. 그녀는 그 잔해더미를 다시 커튼보로 덮고 소파로 향했다. 그녀는 율이의 파편에서 흙, 모래, 자갈, 낙엽 따위가 우수수 쏟아졌다고 말했다. 율이의 관절이나 발성장치에서 쏟아졌을 생각보다 많이 쌓인 시간의 결석을.

“더 버틸 힘이 없었던거지 율이는.”

“하지만 기계적인 결함 때문이니까요. 율이가 그렇게 된 건 단지 오래됐기 때문에...”

나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와 함께 찾아온 침묵이 방금과 달랐다. 벽에 붙은 옷걸이에 던져진 때 묻고 헤진 회색 머플러, 칠이 벗겨진 3단 나무서랍에서 고요함이 번졌다. 그녀가 기댔던 모든 오브젝트들이 율이처럼 무너져내릴 듯했다. 집안으로 들인 화분의 숲만이 조금 흔들렸다.

“그럴 순 없어요.”

“난 회사에 등록할 때 규정과 약관을 모조리 읽어봤거든. 케어하는 죽음의 형태에 대해선 질병에 따른 자연사와 예측가능한 범위 내의 사고사, 자살을 구분하지 않는다고 적혀있어. 예외는 오직 타살뿐이잖아. 직원이니까 잘 알고 있겠지.”

“그렇지만 저는 자살을 방조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누군가를 살리는 사람도 아니지않나.”

“하지만 차수은님 당신은 스스로를 살릴 수 있으니까요. 아직 선택을 할 수 있잖아요. 제가 만난 수많은 어르신은 선택지가 없었어요. 오늘 죽거나 내일 죽거나 또는 그다음 날을 고통 속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말이에요. 전 그들을 보면서 항상.”

그때 말문이 막혔다. 어쩌면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녀를 설득할 수 없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녀의 갸날픈 손목, 그녀를 감싼 거실의 화분 숲, 한 구석에 차갑게 나동그라진 율이의 존재가 다 나를 향하는 듯했다. 숨을 소리 없이 들이쉬었다.

“항상, 힘들었어요. 회사의 시스템이 찍은 마침표를 틀림없이 따라가는 삶이 말이에요. 하지만, 차수은님은 아닐 수 있잖아요. 첫 번째로 시스템의 오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잖아요. 그러지 말아요.”

온 힘을 다해 내뱉고 있는 말이 향하는 눈빛이 참, 습기도 없이 건조했다.

“율이가 스스로 그렇게 됐을 때, 선택지는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어. 그 이후로 너희 회사의 시스템이 먼젓번에 나에게 3번이나 죽음을 예정했었거든. 네가 만난 노인들이 오늘, 내일 혹은 그다음 날에 올 마지막을 고통 속에서 기다린다고 했었지? 나라고 그들과 다를 게 뭐지? 난 지나온 계절들을 그렇게 어거지로 보냈는 걸.”

그녀는 이미 3번이나 필인더블랭크의 예측을 부정했고, 그녀는 그 대단한 의지를 어거지라고 말했다. 그 삶의 가치가 한겨울의 화분보다 피리하고 앙상하다. 그녀는 손을 뻗어 나의 손등 위에 얹었다. 거칠게 쳐내고 싶은, 차라리 얼음처럼 차가웠으면 할 손이 따뜻했다. 내 손등은 수십 갈래로 갈라진 건조한 손바닥의 마디의 느낌을 일일이 찾아냈다.

“자네가 거절하고 저 문을 나서도 바뀌는 건 없을 거야. 오히려 더 참혹한 나를 발견하게 되면 마음이 더 아프겠지. 그러니 너도, 나도 아프지 않게 해줘.”

내가 여기서 끝끝내 차수은 클라이언트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돌아간다고 해도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녀의 빈칸을 어둠 속에 던져놓은 필인더블랭크 직원으로 남겠지. 그녀에 대한 안타까움과 나를 괴롭히던 압박감 따위가 뒤섞인 덩어리 감정의 눈물이 그녀의 손등 위로 떨어졌다.

“선택권이 없는 건 마찬가지예요. 이제.”

선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들은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라고.

그녀는 숲 속에서 숨을 깊게 들이쉬고 있었다. 나는 가방을 열고 몇가지 포터블 장비를 준비했다. 투명한 물약 150ml를 꺼내 호스를 연결하고 그녀의 머리에 추출장치를 씌웠다.

“어르신의 기억을 추출합니다. 과거의 모든 기억을 하이라이트로 보실 수도 있고, 아름다웠던 기억만 뽑아낼 수도 있어요.”

“모든 시간이 좋겠어.”

“시점은요? 1인칭과 3인칭이 있습니다.”

“3인칭으로”

시각데이터 3인칭 렌더링 설정을 하고 추출버튼을 누르자 그녀의 머리의 장치를 타고 푸른빛이 흘러내렸다. 기억은 푸른색이다. 은은하게 빛나는 형광빛이 도는 푸른빛이 어두운 거실에서 아름다웠다.

“너도 얼마나 힘들까.”

“…”

“아까 말했던 죽음을 보는 것 말이야.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보게 되잖아.”

“가끔은 잠들지도 못하고 떠오르는 장면도 있어요.”

“숭고한 일이라고 생각해. 아무도 배웅해주지 않는 죽음이란 너무 끔찍하지 않겠니.”

“저는 아직 나의 죽음을 목격해달라는 마음을 모르겠어요.”

“몰라야지. 그런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게 좋은 끝일테니.”

기억은 물약에 섞여 잔으로 한 방울씩 떨어졌다. 푸른빛은 겹치고 겹쳐 더 영롱해져갔다. 마치 수족관의 물고기를 하염없이 바라보듯 물방울을 바라보았다. 나도 그녀도.

“신기하죠. 저게 다 할머니의 기억이고 삶이래요. 저는 기억을 추출할 때가 가장 아름다워요.”

“궁금해. 이젠 지난 삶이 기억나지 않는 나이가 되어버렸거든.”

“이 일을 하면서 가장 아이러니한 건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가장 슬픈 장면의 앞에 있다는 거예요. 이 모든 건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잖아요.”

“너에게 미안하지만 나는 슬프지 않아.”

한 사람의 삶이 담긴 푸른빛의 기억 한잔이 완성되었다. 잔을 들이켜면 긴 꿈을 꾸며 지난 삶을 돌아보며 생을 마치게 될 것이다.

“오랜 잠에 드시게 될 거예요. 3일이 지나면 회사에서 인원이 파견되어 사후처리를 할 것입니다.”

고개를 숙였고, 그녀는 어서 나가보라는 듯 손짓을 했다. 오늘 본 그녀의 표정 중에 가장 평온해 보였고 그제서야 눈물이 약간 고여있었다. 현관과 마당을 가로지르는 동안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당선소감>

 

   하고 싶은 이야기 꿋꿋하게 쓰겠다

  마침표를 찍은 내 글들에는 항상 태그가 붙어있었다. 내가 쓴 글이 과연? 남이 보기엔 모자라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그것이다. 신춘문예 제출을 위해 원고를 출력하고 봉투에 넣어 우체국으로 갈 때도 난 나의 글을 믿지 못했다. 하지만 당선 전화를 받고 나서야 드디어 글에 붙은 태그가 뜯어진 기분이 들었다.

 소감을 쓰려고 하니 문득 어쩌다 내 취미가 글쓰기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답을 찾으려 되돌아간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엔 정말 보고 싶었지만 도무지 볼 방법이 없던 한 단편영화의 스틸컷 4장을 인터넷에서 보고 이미지를 바탕으로 영화의 내용을 상상해서 썼던 첫 단편이 있다. 이야기를 구상하고 단순한 이미지를 단순하지 않게 표현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재미가 조금만 덜 강렬했더라면 그냥 흘러간 취미로 남았을 것 같다.

 스트레스, 압박감, 망가진 글 앞에서 ‘이건 그냥 취미일 뿐이잖아.’라고 가볍게 생각하는 자기합리화. 글을 쓸 때마다 느끼는 감정들이다. 이런 부정적이고 답답한 단어들의 나열에도 글쓰기를 놓지 못했던 이유는 탈고의 기쁨이나 물 흐르듯이 써질 때의 만족감 같은 것들일지도 모르겠지만 가장 큰 것은 아마 글 쓰는 것이 이제는 습관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엉성한 플롯에 얼굴을 찡그리고, 마땅한 문장이 떠오르지 않아 쓰기 싫다고 하면서도 나는 글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2~3년간은 글쓰기가 아닌 현생에 지쳐 글을 쓰지 않았다. 오랜 습관이라는 것 때문에 가끔 억지로라도 키보드에 손을 올릴 때도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 올가을 다시 글을 써보자고 마음먹었을 때, 어떻게 했더라? 라는 막막함이 들었음에도 단편 하나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번엔 글쓰기가 지금껏 조그마한 끄트머리라도 나를 붙잡아주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고맙게도.

 이번 당선을 통해 위에 펼친 단어들의 감정에 기쁘게 다시 뛰어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꿋꿋하게 써야겠다. 그 이야기를 마주칠 사람들에게 잠깐의 고요를 안겨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딱히 보일 사람이 없어 스스로 깎아내고 다듬은 글에 붙은 태그를 떼어주신 심사위원과 광남일보에게 감사드린다.

● 전남 여수 출생
● 공주대 사회복지학과 졸업
● 광양교육지원청 근무


 

  <심사평>

  

  단정한 문장·세밀한 묘사 ‘적나라한 현실’ 그려

 이번 응모작들 소재는 다양하고 다채로웠다. 5·18 민주항쟁과 4.16 세월호 사건처럼 실재한 일을 각기 다루거나 그 두 가지 소재를 연계한 작품도 있었다. 장애우를 중심으로 한 소설, 신경정신과 병동 상황을 묘사한 소설, 학교 폭력과 위계 폭력을 다룬 소설, 개인사라 할 수 있는 사건이나 추억을 반추한 작품 등. 시절을 훌쩍 거슬러 올라가 현재 60대인 주인공이 어린 시절 가슴에 맺혔던 사건을 회상하는 이야기도 여러 차례 눈에 띄었다.

 그렇게 다양, 다채한 소재가 말끔한 문장으로 선명한 주제의식을 향해 나아가는 글을 읽는 보람이 있었다. 반면에 비슷한 글감이 종종 개인사에 머무르면서 서사가 흐려지고 감정노출이 심해 집중도를 떨어뜨린 점이 안타까웠다. 보편성을 갖추지 못한 채 혼잣말에 머물고 만 듯해서였다.

 본심에 오른 작품은 3편이었다. ‘몽돌들’, ‘사람의 질문’, ‘필인더블랭크’.

 ‘몽돌들’은 죽기 위해 몽돌 해변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다. 몽돌은 ‘크고 울퉁불퉁한 돌들이 파도에 부서지고 조각나고 서로 부딪쳐서 동글해’진 돌이다. ‘죽기 위해 만난’ 사람들은 ‘동글해’질 겨를 없이 쫓기며 살아왔던 것이리라. 소재와 주제의 선명함에도 불구하고 서술 방식이 너무 완만한 게 아닐까 싶은 미진함이 있었다.

 ‘사람의 질문’은 사뭇 진지하게 선과 악에 관한 종교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신학교를 다니다 사제 서품을 받기 직전의 신학생들한테 한 교수 주교가 질문했다. 왜 신이 죄 없는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가. 답을 찾기 어려운 신학적 난제 앞에서 주인공은 신념을 가장한 답을 해 사제서품을 받았다. 그와 가까웠던 동기는 난제를 풀지 못해 ‘신’을 떠났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주인공을 찾아온 동기가 심각한 방식으로 같은 질문을 내놨다. 이래도 네가 신념을 가졌다 할 수 있을까 하면서 스릴러물처럼 긴밀하게 진행되던 이야기 뒤끝이 너무 무르게 마무리 된 듯한 점이 안타까운 작품이었다.

 ‘필인더블랭크’는 죽음을 예측하는 정확한 시스템을 갖춘 미래사회 풍경을 그리고 있다. 거개 노인마다 안드로이드를 시종처럼 부리면서 일백 몇 십 년을 예사롭게 사는 머지않은 미래현실. 그럼에도 고독사는 곳곳에서 벌어지고 ‘선택하는 자연사’도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 단정한 문장과 세밀한 묘사로 지금 여기 현실과 미래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이 작품 ‘필인더블랭크’를 당선작으로 정했다.

심사위원 : 송은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