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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채식상어 / 김유경

 

등장인물: 마리아(여·40대) 노블레스클럽 ‘퀸’ 회장
소원(여·17세)
희숙(여·30대) 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
세미(여·40대) 노블레스클럽 “퀸” 회원
시간: 현재

공간: 자연사박물관 로비

무대: 자연사박물관의 로비와 바깥이 보이는 문이 있다. 로비에는 박제가 된 백상아리가 전시되어 있다. 무대 중앙에 흰 테이블이 놓여있고 3개의 의자가 놓여있다. 박제가 된 죽은 백상아리의 모습과 고급스러운 만찬 테이블이 죽음과 삶의 대조를 이룬다.

 1장
 마리아, 세미, 희숙이 등장해서 테이블에 앉는다.
 소원, 물에 젖은 허름한 복장으로 로비 바깥에서 전시장 내부를 바라보고 있다.

 마리아: (흰 냅킨을 목에 두르며) 뷰우티풀!! 정말 아름답지 않아요?

 세미: 거대한 백상아리예요!

 희숙: 회장님. 이 백상아리 덕분에 저희 박물관 위상이 높아졌어요.

 세미: (백상아리를 둘러보며) 뭘 먹어서 이렇게 튼튼한 거야?

 마리아: 보통상어가 아니라고 귀한 채식상어야.

 세미: 채식상어라구요?

 마리아: 그러니까 우리한테 기증한 거지.

 세미: 채식상어라면…. 노블레스 클럽 ‘퀸’에 딱 어울리네요!

 희숙: 채식상어를 기부받다니 대단해요!

 세미: 마리아. 채식상어를 어떻게 알아봤어요?

 마리아: 저 눈동자를 좀 봐.

 세미: 눈깔이 고등어보다 훨씬 선명해요!

 마리아: 눈깔말고 눈동자라고 해. 채식상어는 귀한 몸이라고.

 세미: 눈동자가 파란 바다 색깔이에요.

 마리아: 그게 채식상어라는 증거야.

 희숙: 채식상어는 죽어서 한 달이 지나도 눈깔이 선명하데요.

 세미: 채식을 하면 눈이 맑아지니까 시력도 엄청 좋았겠죠?

 희숙: 한밤중에도 바닷속에 뭐가 있는지 다 볼 수 있죠.

 세미: 사람들이 상어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바닷속 심해로 빠져드는 것 같을 거예요. 채식하는 상어를 보러오는 관객이 엄청나겠어.

 희숙: 한 번도 육식하지 않은 차원이 다른 상어입니까요.

 마리아: 맞아. 채식은 정신을 맑게 하니까.

 세미: (상어 눈동자를 만져보며) 정말 눈동자가 초롱초롱해요.

 마리아: 채식상어가 있는 자연사박물관은 많은 이에게 영감을 줄 거야.

 세미: 채식상어를 얼마에 기증받았어요?

 마리아: 20억,

 세미: 그렇게 많이!

 마리아: 거기에 박물관 후원금으로 20억 더.

 세미: 40억! 강남에 아파트 두 채 값이잖아요?

 마리아: 비싸보이지 않아서 입안에 금이빨을 해서 넣을까 생각 중이야.

 세미: 입을 벌려서요?

 마리아: 응 입을 벌려서.

 희숙: 어금니에 박아 놓겠습니다.

 세미: 금이빨이 있는 상어를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요?

 마리아: 어금니가 보이도록 입을 크게 벌려서 전시하도록 해요.

 희숙: 상어에 금니 넣어주기 프로젝트로 노블레스 클럽 ‘퀸’과 MOU를 맺을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세미: 나도 후원할래, 상어 금이빨.

 소원, 밖에서 문을 쾅쾅 두드린다.

 마리아: 저 아이는 뭐야?

 희숙: 어제부터 백상아리를 보겠다고 서 있어요.

 마리아: 오픈도 하지 않았는데? 차림새가 더럽잖아. 내보내.

 희숙: 확인할 게 있다고 떠나지 않아요.

 세미: 상어를 노려보는 것 같은데요.

 마리아: (돌아보고) 거슬려.

 세미: 채식 상어를 죽일 듯이 보고 있어요.

 마리아: 쳐다보지마, 세미 회원. 채식상어는 소중히 다루어야 해요. 알겠죠?

 희숙: 네, 알겠습니다.

 세미: 눈깔이 새카맣게 생겼어요.

 마리아: 어떤 눈깔을 말하는 거야? 그만 쳐다봐, 세미 회원.

 세미: 저 아이요.

 희숙: 상어를 포획했다고 환경단체에서 시위하던데 그쪽 사람인가?

 마리아: 환경 단체는 조용해졌지?

 희숙: 어떻게 아세요?

 마리아: 돈 달라는 소리야. 아가리에 돈을 박아 넣었어. 어떻게든 뜯어먹으려는 것들.

 희숙: 멸종위기 동물협회에서도.

 마리아: 피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피라미들 같아. 지긋지긋해.

 희숙: 네. 채식상어가 워낙 희귀하니까요.

 마리아: 거기도 뭐 좀 던져 줘.

 희숙: 네, 알겠습니다.

 세미: 마리아, 채식상어로 대체 얼마나 쓴 거예요?

 마리아: 채식주의자의 선봉에 선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니까.

 사이

 소원이 전시장 안쪽을 노려보며 어슬렁 거리고 있다

 마리아: 거슬려. 자꾸 신경 쓰여. 저 아이는 어디서 온 거지?

 희숙: 20킬로 떨어진 곳에서 난민이 출몰했다고 여기도 뒤숭숭해졌어요.

 세미: 뉴스에서 봤어요. 목선이 들어왔다고.

 희숙: 그래서 자연사박물관에서 시큐리티를 더 늘리기로 했어요.

 마리아: 잘했어, 오픈이 코앞이야. 다들 잘 준비해. 디너는 채식으로 준비했지?

 희숙: 코셔 요리으로 준비했습니다.

 세미: 코셔 요리?

 마리아: 완전 무결한 채식으로 준비하라 했어.

 희숙: 유대인의 법도에 따라 굉장히 까다로운 조리 과정의 요리입니다.

 마리아: 먹는 것은 사람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니까. 사람의 수준은 음식이라고.

 희숙: 준비해 오겠습니다.

 희숙, 사라진다.

 문밖에 있던 소원도 사라진다.

 마리아: 채식한 지 6개월째이지? 어때?

 세미: 환절기 비염이 사라졌잖아요.

 마리아: 그렇지, 채식은 건강에 좋다고.

 세미: 소화불량도 사라졌어요. 이젠 고기 냄새만 맡아도 토할 것 같아요.

 마리아: 요즘 같은 환절기엔 고기 땡기니까 조심해.

 세미: 시댁에 가면 콧물이 주르륵주르륵 하루 종일인데, 아휴, 동태전에서 냄새가 어찌나 나던지.

 마리아: 난 수련을 많이 해서 동태전 냄새가 기억조차 없는걸?

 세미: 부러워요. 동태전 냄새가 없는 세상. 상어가 제일 좋아하는게 동태라던데‥

 마리아: 닥쳐. 우리 백상아리는 동태 따윈 거들떠도 보지 않아.

 세미: 맞아, 생선을 먹는 것들 이해가 안돼. 이젠 고기 먹는 사람들 상종도 못하겠어요.

 마리아: 채식은 업그레이드된 세상이지.

 세미: 명절에도 동태전 먹을 일 없는 마리아가 너무 부러워요. 시부모님도 다 돌아가시고.

 마리아: 부러운 게 한두 개가 아니겠지.

 세미: (작은 소리로) 동태전도 참기 힘들었는데 심지어 저희 시댁은 홍어도 먹어요. 썩은 고기 앞에서 가족들끼리 식사를 하다니. 어? 이거 무슨 냄새지? 백상아리가 썩어가고 있는 것은 아니겠죠?

 마리아: 세미 회원. 내가 기증한 채식 상어는 고귀해서 냄새가 나지 않아.

 희숙이 테이블을 밀고 온다. 마리아, 세미는 테이블에 앉는다.

 이윽고 희숙, 등장. 희숙은 노란 공이 있는 접시를 접대한다.

 희숙: 첫 번째 코스는 코셔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입니다. 코셔 엑스트라 버진을 분자 요리법으로 풍선 같은 볼에 담아 준비했습니다. 풍선 모양을 터트리면 영롱한 올리브 오일이‥

 마리아: 이집트에 갔을 때 먹은 적 있어.

 세미: 노란 공이네요?

 마리아: 채식에서 프리미엄 올리브 오일이 그 사람의 수준이지.

 세미: (먹지 않고) … 맛있어요.

 희숙이 밀고 온 테이블 아래에 숨어있던 소원이 튀어나온다.

 세미: 으악! 놀래라!

 마리아: (소원을 보고) 당장 쫓아내!

 소원, 허겁지겁 테이블에 놓인 빵을 집어 먹는다. 희숙이 말려보지만 소용없다.

 소원: 배고팠어. 배고파. 배고파.

 희숙: 어떻게 들어왔지?

 마리아: 여기가 어디라고 난입해! 당장 나가!

 세미: 더러운 냄새가 나.

 소원: 먹을 걸 줘.

 세미: 뭐라는 거야?

 소원: 씨발, 더 없어?

 세미: 무슨 짓을 할 거 같아요.

 마리아: 무슨 짓?

 소원: 부자아줌마, 더 없냐고?

 세미: 난 만지지마.

 소원: (노란 공 보며) 이게 뭐지? 먹는 거야?

 마리아: 윽. 물비린내.

 세미: 물비린내 맞아요. 아이 몸에서 나는 냄새야.

 소원: 나 배고프다니까!

 소원, 노란 공을 쥐었다, 신기하게 쳐다본다.

 마리아: 그거 내려놔. 비싼거야.

 희숙: (남은 빵을 주며) 먹고 꺼져.

 소원: 더 없어? 왜 이런 걸 먹어?

 세미: 저 눈깔 좀 봐.

 소원: (베트남어) 백상아리를 보러왔어.

 희숙: 다 먹었으면 꺼져. 더러운 거지 새끼.

 소원: 백상아리를 봅니다. 백상아리를 보고 갑니다.

 소원, 백상아리한테 다가간다. 희숙, 소원을 붙잡는다.

 마리아: 돈 줘서 치워.

 소원: …한 달 전부터 찾았습니다.

 희숙: (돈을 주며) 자 밖에서 생선구이 사 먹고 집으로 돌아가. 꺼지라구!

 소원: 상어가… 상어를… 찾아옵니다.

 세미: 말투가 이상하지 않아요?

 마리아: 말투가 뭐, 모자란 아이야. 학예사! 어서 저 냄새 좀 치워.

 희숙: 너 어디서 왔어?

 소원, 희숙에게 도망쳐 상어의 아가미에 대고 말을 한다.

 소원: 힘들었지? 넌 그,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

 세미: 모자란 아이, 맞네.

 소원: 어디로 갔다 온거야… 얼마나 찾았는데‥.

 마리아: 손대면 죽을 줄 알아!

 세미: 얼마짜리 백상어인데.

 마리아 (나이프 질하며) 어디서 온 진 모르겠지만 그런 식은 소용없지.

 소원: …내 이름은 소,원,입니다. (베트남어로) 또일라이 모옹.

 마리아: 그래 소원. 이름 참 애타네. 채식상어는 나중에 보러오라고. 아직 오픈전이야.

 희숙: 그래요. 나갑시다. 나중에 보러와요.

 어디선가 ‘배고파’라는 소리가 들린다.

 소원: …찾았다.

 희숙: 뭐지?

 소원: …저기서 들려요.

 세미: 무슨 소리가 들린다는 거야?

 사이

 마리아: …가만, 남자 목소리야.

 희숙: 저도 들었어요

 세미: 뭘 들었는데?

 소원: 아빠가 있어.

 마리아: (일어서며) 분명 남자 목소리였어.

 희숙: (주변을 둘려보며) 여기 어딘가에 누가 숨어있나 봐요. 찾아볼게요.

 세미: 누가 있나 봐. 무서워.

 소원: (상어를 만지며) 이 상어가 맞아요!

 희숙은 자리에서 일어나 상어가 있는 곳을 둘러본다.

 소원은 테이블에 있는 나이프를 집어 든다.

 마리아: 그 칼 내려놔. 뭐하려고?

 소원 백상아리를 향해 다가간다. 그 광경을 보고 마리아와 세미 자리에서 일어선다.

 소원: 아빠가 여기 있어.

 마리아: 안돼!

 세미: 안돼!

 희숙: 안돼!

 마리아, 세미, 희숙은 소원을 따라 상어를 향해서 달려간다.

 
 2장

 희숙이 소원을 붙잡고 있고 마리아와 희숙 세미는 상어 곁에 서있다.

 소원: 아빠가 이 안에 있어요.

 마리아: 개소리 하지마! 감히 어디서 난동이야!

 희숙: 아빠가 있다고?

 세미: 여기 누가 또 있다는 거예요?

 소원: 푸른 물결 위로 끝없이 헤엄을 쳤어요.

 마리아 누가 헤엄을 쳤다는거야?

 세미: 상어가 헤엄쳐서 여기 왔다구요?

 희숙: 회장님. 뭐라는 건지 좀 들어보죠.

 소원: 파도가 부는 방향으로 뿔뿔이 흩어졌죠.

 세미: 떠돌인가 봐요.

 소원: 베트남에서 헤엄쳐 왔어.

 희숙: 멍충아! 이 상어는 베트남에서 포획한 게 아니거든.

 세미: 베트남에서 왔어? 백상어가 베트남 상어라고 우기고 싶은거야?

 마리아: 맞아. 상어를 훔치려고 흩어졌다 모이고 그런 거야.

 희숙: 모여서 시위라도 하려는 걸까요? 베트남산 상어라고?

 마리아: 바보 아니야? 베트남산 상어는 지구상에 없어.

 소원을 진정시키고 테이블에 앉히는 희숙.

 희숙: 우리말 잘하네. 한국 온 지 얼마나 됐어?

 소원: 배타기 전까지 우리 가족 모두 배웠어요.

 희숙: 솔직히 말해봐. 아까 들리던 남자 목소리는 뭐야?

 소원: 헤엄치다가 힘이 빠지면…. 바닷속에서 물풀처럼 힘없이 흐늘거렸어요.

 마리아: 백상아리는 물풀이 채식이어서 좋아하지.

 세미: 채식은 언제나 정답이니까요.

 소원: 파도에 떠밀려 가면서 슬픈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했어요.

 희숙: 슬픈 단어는 언제나 슬픈 것 같아요.

 마리아: 난 1년에 한 번 정도만 슬퍼.

 세미: 저 아이의 눈이 슬퍼요. 너무 새카매서 캄캄해요.

 소원: 수평선 끝까지 밀려갔어요.

 마리아: 끝까지 사랑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세미: 그런 말, 낭만적이에요.

 희숙: 세미 회원님, 우리 상어에 집중해요.

 소원: 손을 놓쳤을 때 우리는 서로를 위해 기도했어요.

 세미: 어머, 정말? 사랑 얘기잖아요.

 마리아: 손을 놓쳤다잖아.

 희숙: 그런 게 아닌 것 같아요.

 소원: 얼어 죽지 않으려고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았죠.

 마리아: 얼마나 추웠을까?

 희숙: 상어는 지방이 많아서 춥지 않아요.

 세미: 그건 참치 아니에요?

 소원: 석양이 질 때, 멸치 떼들이 발가락을 간지럽혔어요. 물에 떠 있으면 석양이 질 때 무서워져요.

 희숙: 저희 박물관에서 본 석양은 근사하죠.

 마리아: 석양을 삼킨 백상어. 카피 좋다!

 소원: 우리는 물풀처럼 흐느적흐느적 점점 힘이 빠졌어요.

 마리아: 빙고! 백상아리의 주식은 물풀이었다! 좋은 개연성이야!

 희숙: 끝내주네요. 채식상어의 주식은 물풀.

 세미: 힘이 빠져서 물풀이 된 걸까요? 물풀이 힘이 없는 걸까요?

 희숙: (어리둥절) 왜 그럴까요?

 소원: 외숙모는 손을 흔들고 나서 아래로 하강했어요.

 마리아: 아래로? 왜?

 희숙: 왜일까요?

 세미: 이별할 때 손을 흔들잖아요.

 소원: 아빠는 남은 힘을 다해 헤엄쳐 와서 손을 잡아줬어요.

 세미: 아빠가 헤엄쳐 와서 구해줬네.

 마리아: 잠깐, 바다에서 아빠와 함께 있었나 봐.

 희숙: 아빠는 어떻게 된거지?

 마리아: (상어를 보며) 아빠가 나오는 건 아니겠지?

 세미: 거짓말이야. 맹랑한 아이야.

 희숙: 상어 안에 있다잖아요. 하하.

 마리아: 아니야. (사이) 설마? 안에 있지…, 않지?

 소원: 아빠는… 제일 마지막에 가라앉았어요.

 세미: 상어가 꿀떡 삼켰구나? 물풀인 줄 알고.

 마리아: 아니야! 거짓말! 그럴 리 없어! 끔찍해.

 세미: 채식상어가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사람을 풀로 착각하고. 상어가 불쌍해.

 희숙: 저 아이가 지금 식인 상어라고 말하는 거죠?

 사이

 소원: 아빠를 꺼낼 거예요!

 소원은 다시 백상아리로 돌진한다.

 세미와 희숙이 달려가 소원을 막아선다.

 마리아: 비켜! 당장 떨어지란 말이야. 너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알고 이래?

 희숙: 묶어 놓을까 봐요.

 세미: 묶어 놓으면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죠.

 희숙: 그래도 손을 묶어놔야 해요, 그래야 저 입을 떠벌리지 못하지.

 마리아: 채식상어 옆에? 그건 안된다구. 너무 흉해요.

 세미: 생김새가 외국인 같지 않아요?

 마리아: 외국인, 너 상어 도둑이야? 우리 같은 사람들만 협박해서 뜯어먹는 브로커야?

 희숙: 혼자서? 여자아이가?

 마리아: …잠깐, (소원을 노려보며) 아까 ‘찾았다’라고 말하지 않았어?

 소원: 저 상어가 틀림없어요! 내가 분명히 보았다구요! 아빠 목소리가 들렸어요! 아줌마도 들었잖아요! 저 백상아리가 아빠를 삼켰다고!

 마리아: 저건 채식상어라고! 고기 따윈 먹지 않아!

 소원: 저 상어가 맞아요. 씨발, 한 달 동안 찾으러 다녔어.

 마리아: 여길 어떻게 알고 온거야?

 소원: 기사에서 봤어요. 지난달 포획된 백상아리가 여기로 왔다고.

 희숙: 박물관에서 백상아리 홍보 기사를 냈어요.

 세미: 기사를 보고 여기까지 추적했다는 거야?

 마리아: (백상아리를 가리키며) 그래서 뭘 하려는 건데?

 소원: (울먹이며)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 아빨 삼키는 걸… 흑흑.

 마리아: 거짓말! 소설 쓰지마. 이건 채식상어라구!

 희숙: 차라리 돈을 달라면 줄게. 우린 그게 더 편하다구.

 소원: 너희들도 똑같아 사기꾼들. 프아까오 까꾸 부야뜨리 빠오.

 세미: (백상아리 눈동자를 만지며) 뭔가 처음 먹어본 눈동자가 이런 거구나.

 마리아: 이런 예감은 불쾌한데 말야…

 사이

 마리아: 너 난민이야?

 소원: 응. 헤엄쳐 왔어.

 마리아: 어느 나라에서 왔는데?

 소원: 베트남.

 마리아: 이런! 이런! 이럴 줄 알았어.

 마리아 “아악” 하며 소리를 지른다.

 마리아: 내가 신고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소원: 신고해. 난민이 여기서 사는 건 어렵지 않아. 다 알아봤어.

 마리아: 이래서 난민법이 문제야. 문제라고! 헤엄쳐 온다고 다 받아주면 어떡하냐고!

 희숙: 무서워요, 회장님 이런 모습 처음 봐요.

 세미: 어떡해요? 오픈이 코 앞인데… 전국의 채식주의자들이 다 올텐데….

 마리아: 대책 없이 난민 받아들여서 이런 사단이 난거야.

 희숙: 난민들이 병설 유치원에 아이를 데리고 당당하게 왔다잖아요. 그 동네가 발칵 뒤집혔어요.

 소원: 너희들이 뭘 알아! 여기서 파티나 하는 부자 아줌마가. (사이) 브로커에게 돈을 뜯 기지만 않았어도 나도 이러지 않는다고.

 마리아: 무모하게 넘어오려는 용기에 박수라도 쳐 줄까?

 희숙: 살려고 아주 징글징글해요.

 소원: 아빠가 파도에 휩쓸려서 손을 놓쳤어. (짧은 사이) 그 새끼가 돈이 모자라다고 보트에서 밀지만 않았어도…

 세미: 보트에서 밀다니 살인미수 아니야?

 마리아: 목숨을 걸고 꾸역꾸역 계속 밀고 들어오는 바퀴벌레들 같아.

 희숙: 세금만 줄줄 세어나간다잖아요.

 마리아: 육식주의자 비율이 늘어날 거 아냐.

 희숙: 당연하죠. 고기들은 얼마나 좋아하는지. 없어도 고기는 어떻게든 끼니마다 먹어요.

 소원: 며칠 밤을 스티로폼 쪼가리를 붙잡고 표류했어. 우리는 어디로 흘러갈지 몰랐어.

 세미: 우리나라로 우연히 오게 됐다는 거예요?

 마리아: 그랬다는 것 같은데?

 세미: 보트에서 민 새끼가 젤 나빠요.

 소원: 파도에 쓸려가지 않으려고 서로의 손을 붙잡고 추워서 체온으로 끌어안고…. 몇 명은 힘에 부쳐 바닷속으로 하강했어. 눈을 껌벅이며 작별 인사를 하며 손을 놓았지.

 희숙: 하강을 하다니, 죽었다는 거잖아요?

 소원: 바닷속에는 백상아리들이 득실거렸어.

 마리아: 마음 약해지면 안 돼. 믿지마.

 세미: 작별 인사 할 힘이 없었다는 거잖아요?

 소원: 바닷속에서 아빠의 손을 놓쳤어. 그리고… 백상아리가 나타나 아빠를 삼켰어… 흑흑.

 마리아: 아빠를 삼킨 그 상어가 저거라고? 아니야.

 세미: 사진 찍었어? 이 상어인 줄 어떻게 알아?

 소원: 백상아리는 다시 한번 나타나 휘젖고 사라졌어요. 그때 파란 눈동자를 똑바로 봤어요.

 마리아: 확실해? 그거 너무 무서운 이야기야. 지어낸 거지?

 희숙: (소원이 눈부리는 보면서) 어머, 눈을 부릅뜨잖아요. 어디서 감히!

 세미: 그러길래 왜 고향을 떠난거야?

 소원: 우리 가족은 배가 고파서 고향을 떠났어. 다섯 가족이 달걀 세 개로 하루를 버틴 적도 있어. 우린 길바닥에서 닭뼈를 주워서 일주일 동안 고아먹은 적도 있어.

 세미와 희숙은 소원의 말을 듣고 눈시울을 닦는다.
 
 마리아: 쫓아내!

 세미: 더 듣자구요. 너무 슬퍼요.

 마리아: 정신차려, 짐승의 언어야. 육식주의자라고.

 희숙: 하긴 그래요. 달걀을 먹었다잖아요…. 닭뼈를 고아먹다니 토할 것 같아.

 마리아: 쫓아내야 해. 여긴 채식상어를 전시하는 공간이라고. 한치의 결함이 없는 순수 혈통의 채식상어를!

 소원: 너희한테 피비린내 나는 고깃덩이 냄새가 나. 뜨거운 내장을 꺼내 먹어 치우는 맹수같이. 허기가 없어도 어린 동물로 장난치는 육식동물의 더러운 냄새가 나. 고깃덩이를 먹는 욕망의 냄새가.

 세미: 어머, 난 풀하고 콩만 먹는데.

 마리아: 난 채식 십 년째야 냄새가 날 리 없어.

 희숙: 뱃 속에 가스가 차긴 하지만 밖으로 냄새는 안나.

 세미: 마리아, 채식을 하면 냄새가 정말 하나도 안 날까요? 저는 사무실에서 가스가 나서 미치겠어요. 계속 채식을 하면 가스가 안 나오나요?

 마리아: 채식을 해도 가스는 나와. 미안… 세미. 이제 시작했다는데 도움 되지 못했군.

 세미: 정말 육식을 안 했단 말이야. 뱃속에 가스는 정말 나완 상관없는 일이야.

 마리아: 고기 냄새가 난다는 말은 너무 불쾌해. 채식주의자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채식상어를 전시하는데 말야. 제발 그런 말은 더 이상 하지 말아줘.

 소원: 다 가짜야. 가짜라고. 저 채식상어도! 당신들도 더러워.

 마리아: 난민하고 섞여 있는 이 자리도 기분이 더럽단 말이야. 난민을 왜 받아주는지 모르겠어.

 소원: 내가 살았던 라오까이는 이름을 모르는 풀들이 많아. 이마에 풀을 올리면 풀이 날아올라서 첫사랑이 사는 곳을 알려준다는 전설이 있어. 하얀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동산에 올라 나란히 누워 이마에 풀을 올리지. 우린 가난하지만 귀엽고 사랑스러웠어.

 세미: 이마에 풀을? 사랑스럽다.

 소원: 응.

 세미: 귀여워. 베트남 학교는 교복 입어?

 마리아: 세미 회원은 이상한 거 궁금해하더라.

 소원: 엄마는 향이 좋은 풀의 이름을 잘 알았어. 종이로 만든 티코스터에 잘 말린 풀들을 근사하게 붙여놨지. 장마가 길어지는 스산한 날씨가 되면 엄마는 페퍼민트 차를 티코스터에 받쳐 줬어.

 세미: 티코스터는 컵 받침 맞죠?

 마리아: 맞아. 동남아 공예품.

 소원: 아빠는 엄마를 너무 사랑했고 엄마가 하늘로 올라갔을 때, 엄마의 묘지에 좋아하는 풀들을 장식했어, 너희들은 풀을 먹을 줄만 알지, 진짜 풀들과 함께 사는 사람들의 삶을 몰라.

 세미: 우린 먹을 수 있는 풀을 다 알아, 세상의 모든 종류의 풀을 사랑해.

 희숙: 채식주의자는 처음 본 사람도 풀을 먹으면서 우린 금방 친해질 수 있어.

 마리아: 아니야 물풀이야.

 세미: 아니래도?

 소원: (나이프를 들고) 아빠를 꺼낼 거야. 꺼내야 해!

 희숙: 어림없어!

 마리아: 채식상어가 아니라고 우기든 말든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소원: 너희들은 내 고향에서도 혐오하는 개미알 요리야!

 마리아: 난민 따위가 나한테 감히….

 소원: 너희들은 내 고향에서 병든 개에 붙어 사는 진드기 새끼들 같아.

 마리아: 미개한 음식을 먹는 육식주의자 같으니.

 소원: 너희들은 내 고향에서 본, 말라비틀어져 핏물조차 없는 물소고기야.

 마리아: 그만, 그만! 말만 들어도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것 같아.

 소원: 너희들은 내 고향에서 본, 가위로 잘라 요리해 주는 뱀들 같아.

 마리아: 혐오스런 동물을 요리하는 미개인 같으니라고!

 소원: 너희들은 내 고향에서 본, 먹기 위해 키우는 쥐고기라고 찍찍!!

 마리아: 쥐는 제일 싫단 말이야! 그걸 요리로 한다고! 도대체 무얼 먹고 자란거야?

 소원: 그리고 당신은 내 고향에서 본… 시체를 뜯어먹는 우글거리는 구더기 같아.

 마리아: 너 말 다했어? 구더기라니! 태어나 처음 듣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이야!

 소원: 너희들은… 너희들은….

 소원, 주저앉아 엉엉 운다. 세미가 다가가 토닥거려준다.

 소원: 할머니는… 할머니는… 아빠랑 내가 도시에 가서 라탄바구니를 팔고 왔을 때 죽어있었어. 돌아가신 지 오래된 거야. 구더기와 냄새가 끔찍했지. 생각도 하기 싫어. 굶주린 할머니가 구더기 밥이 되다니….

 마리아 : 지금 그런 더럽고 슬픈 이야기를 왜 하는 거야?

 소원: …문드러진 할머니를 깨끗이 닦아…, 묻어주었어.

 마리아, 주저앉아 울고 있는 소원의 등을 어루만져 준다.

 마리아: 괜찮아. 괜찮아. 할머니의 대한 좋은 기억이 있잖아.

 소원: 할머니가 불러준 자장가가 생각나. ‘꽁- 고라 꼬 바이 라-메이 라.’

 마리아: 자장가가 따스하네.

 소원: 할머니의 손이 따스했어요. 할머니가 낮잠을 주무실 때 엄마가 머리맡에 모기향을 놓아두었는데 그만…

 마리아: 그만?

 소원: 할머니 머리칼이 타 버렸지 뭐예요. 하하. 엄마가 할머니한테 그을린 머리를 잘라드리겠다고 하고 할머니는 싫다고 했죠. 엄마가 잘랐는데 이웃집 아기의 바가지 머리처럼… 하하… 할머닌 두어 달 동안 외출을 안 했어요. 잠자는 할머니의 눈썹, 엄마가 마루에 개놓은 단정하고 하얀 빨래들… 그런 풍경이 그리워요.

 마리아: 또 말해줘. 듣기 좋다. 좋은 풀처럼 따뜻한 얘기들.

 세미: 풀들이 자라는 이야기들 같아. 마음이 행복해지는 스토리야.

 소원: 엄마가 아오자이를 잘라서 내게 치마를 만들어 줬는데 얼마나 이뻤는데요. 너무 기분이 좋아서 마당을 계속 빙빙 돌며 뛰었어요. 하하.

 마리아: 기분 좋았겠네.

 다시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라고, 크게 들린다.

 소원: 들리죠?

 마리아: 응 들려.

 소원: 아빨 꺼내야 해. 답답할거야, 꺼내줘야 해.

 마리아: 하지마! 하지마! 제발.

 소원, 갑자기 일어나 칼을 들고 달려가 백상아리의 배를 가르고 신발을 꺼낸다.

 바닥에 피가 흥건하다. 소원, 피범벅이 되어있다.

 소원: 내가 뭐랬어. 아빠 신발이야. 아빠를 삼킨 백상아리라고!

 희숙: 바닥에 피가 흥건해요. 상어가 망가졌어요.

 마리아: 아빠 신발이 맞아?

 세미: 채식상어가 식인 상어였던 거야?

 희숙: 신발이 바다 쓰레기일 수도 있잖아요.

 소원: 백상아리 안에 아빠가 있다고 했잖아. 난 거짓말 안해.

 마리아: 무슨 짓을 한 줄 알아? 완전무결한 내 채식상어를 네가 망가뜨렸어.

 희숙: 박물관 연구비가 다 날아갔어요.

 마리아: 우린 망할거야. 채식주의자들이 우릴 비난할거야.

 희숙: 뭐하러 꺼내냐구? 이미 죽은 지 오래됐단 말야.

 사이

 소원: 오기 전에 신고했어.

 마리아: 미쳤어?

 소원: 백상아리 안에 사람이 있다고 내가 말했어.

 마리아: 경찰이 알게 된다면 네가 난민이라는 것도 알게 될 텐데?

 소원: 말했어.

 세미: 보트를 밀매해서 몰래 헤엄쳐 왔다고 말했다고?

 소원: 응. 사기당한거 다 말했어. 아빠도 이모도 고모도 다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다고.

 마리아: 정말 난민이라고 말했어?

 소원: 어떻게 돼도 상관없어, 살아남은 건 나 혼자니까.

 마리아: 난민이라고 밝히면 어떡해? 우리까지 위험해지잖아.

 소원: 모두 바닷속의 물풀이 되었어. 다 끝났어.

 마리아: 채식상어 안에 난민이 있었다니! 지저스!

 희숙: 다 엉망진창이 될 거예요. 채식상어에 난민이 있다는 걸 알면 기절할 거예요.

 마리아: 난 난민 구호협회 홍보대사란 말이야.

 희숙: 채식상어 연구비는요?

 세미: 제목을 식인 상어 연구비로 바꾸면 어때요?

 마리아: 식인 상어 전시를 누가 보러 오겠어?

 희숙: 경찰이 곧 오겠어요. 어쩌죠?

 사이

 마리아: 좋은 생각이 있어.

 희숙: 저랑 같은 생각인 거죠?

 마리아: 응.

 희숙: 배가 고팠어요. 며칠 동안 먹어 치울 수도 있어요.

 마리아: 응. 준비하자.

 세미: 무슨 말이에요? 뭘 먹어 치우겠다는 거야?

 마리아: 상어를 먹어 치우는 거야. 아직 메인 요리가 남아있잖아.

 희숙: 경찰이 오면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소원: 미쳤어? 당신들은 제정신이 아니야? 저 안에 사람이 있다고!

 마리아: 모두 한마디도 하지 마. 잘 들어. 아직 주요리가 남아있어. 채식상어를 먹는 거야.

 희숙: 경찰이 오기 전에 없애 버려요.

 세미: 고기를 먹는다고요?

 마리아: 바보야? 저게 왜 고기야? 채식 요리지.

 세미: …물풀을 먹은 채식상어요.

 마리아: 상어는 물풀을 먹으러 간 거야. 상어가 삼킨 건 사람이 아니고 풀이라고.

 희숙: 오늘의 메인 요리를 먹어 치웁시다.

 마리아: 내 말이 맞지? 이게 왜 고기야? 채식상어지. 우린 채식하는 거잖아.

 희숙: 거대한 채식 만찬이죠.

 세미: 근사한 저녁이 될 것 같아요. 이런 밤이 되길 기다렸어요.

 마리아: 준비해! 한점도 남김없이 먹어 치우자.

 
 희숙이 거대한 칼을 들고 와서 전시 되어있는 백상아리의 살점을 자르기 시작한다.

 마리아는 흥얼거리며 피 묻은 고깃덩이를 접시에 나누어준다.

 우아하고 아름답게 식사 준비를 하는 희숙, 마리아, 세미의 모습.

 우아한 음악이 함께한다. 마리아, 세미, 희숙은 포크를 집어 든다.

 소원은 입을 벌리고 바닥에 주저앉아 그 모습을 지켜본다.


 마리아: 준비 됐지? 먹자고. 오늘의 디너는 완벽한 채식 요리야.

 세미: 고기 맛이 나는 채식이에요.

 마리아: 바보야. 이건 물풀이라고. 상어가 뭘 삼켰건 이건 바닷속의 물풀이야.

 희숙: 처음 맛보는 물풀이에요.

 마리아: 고급스러운 향기가 나!

 세미: 채식 상어의 맛은 아무도 모를 거예요.

 마리아: 이건 풀이야.

 희숙: 그야말로 명화 속에 풀밭 위의 식사입니다.

 세미: 풀에서 빨간 물이 철철 넘쳐요.

 마리아: 그러니까 최고급 물풀이라고.

 희숙: 최고의 채식 요리!

 마리아: 지느러미가 맛있어

 세미: 꼬리살이 정말 맛있어.

 희숙: 이거 맛보세요. 아가미가 꿀맛이네요.

 마리아: 내가 최고의 채식을 맛보게 해준다고 했잖아.

 세미: 역시 노블레스클럽 ‘퀸’ 회장님.

 희숙: 저희 자연사 박물관은 흥할 일만 남았습니다.


 마리아 세미 희숙이 식사를 하면서 냅킨으로 입가에 핏물을 닦아내고 있다.

 세명의 우아한 식사가 진행되는 동안, 소원, 일어나서 옆에 있던 나이프를 들고 상어의 배를 갈라 시신(아빠)을 꺼낸다. 상어 고기를 먹고 있던 마리아, 희숙, 세미는 문득 포크 질을 멈춘다.

 소원은 힘겹게 반만 남은 아빠를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마리아: 알이 남았네.

 세미: 캐비어?

 희숙: 아직 알이 싱싱해요.

 마리아: 과식해서 배가 부른데….

 희숙: 제일 맛있는 부분인데 남기시게요?

 세미: 미쳤어요? 흔치 않는 알이에요.

 마리아: 제일 싱싱한 알을 놓칠 수는 없지.

 희숙: 샴페인 한잔하시고 오셔서 마무리로 드시죠?

 마리아: 그래. 잠깐 쉬고 와서 끝내자.

 
 자연스럽게 소원만 남고 모두 퇴장하는 사람들.

 긴 사이.

 반만 남은 아빠 시체를 보며 소원은 말한다.

 소원: 아빠는 물풀이었던 거예요. 헤엄을 치다 기운이 빠져 다리가 물풀처럼 흐물거렸죠. 사람들이… 물풀처럼 흔들리는 다리가 보여요. 맞아요. 물풀이 되신 거예요. 물풀이 돼서 상어의 아가미를 간지럽혔죠. 상어는 물풀을 먹지 않아요. 삼키지 못한 거예요. 물풀을 먹지 못해 백상아리가 죽은 거예요.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풀이었을 테니까. 상어는 풀을 먹지 않으니까요. 여기 보세요. 아직 아빠 귀가 남았어요. 아빠 귀에서 파도 소리가 들려요. 파도 소리가 들려. 파도 소리가…. 졸음이 와요. 할머니의 자장가가 들려요.

 소원, 아빠를 안고 쓰러진다. 사이렌 소리. 암전


 (끝)

 


 

  <당선소감>

 

   아픈 엄마로 인해 모든 존재를 연민으로 보게된 것에 감사

 물에 젖은 채 문밖에 서 있는 소녀가 먼저 말을 걸어왔습니다. 바닷속에서 물풀처럼 힘없이 흔들리는 다리는 이 이야기의 슬픔의 근원입니다. 파도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손짓과 몸짓, 물풀처럼 흔들리다가 힘없이 죽어간 가족의 죽음을 지켜본 소원은 백상아리를 따라서 자연사박물관으로 찾아왔고 난동을 부리며 백상아리의 배를 갈랐습니다.

 저는 그동안 간병을 하는 착하고 불쌍한 중년으로만 살아왔습니다. 간병은 환자의 시간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낮에는 메모하고 한밤중에 써 내려간 희곡 쓰기는 삶의 막다른 벽을 지나 대양으로 인도해 주었고 글쓰기의 매혹적인 순간을 선물해 줬습니다. 십년 째 움직이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계신 엄마와 내년에 아흔이신 아버지는 제가 글을 쓰는 동안 종이 인형처럼 많이 쇠약해지셨습니다. 환자가 사는 집은 고요합니다. 욕실에 비누는 닿지 않고 초인종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용변이 묻은 빨래를 하는 세탁기는 덜컹거리며 매일 돌아갑니다. ‘오늘은 딸을 알아볼까’해 엄마의 눈을 마주하고 말을 건넵니다. “엄마, 경상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어요” 엄마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엄마가 이 세계의 기억에서 잃어버리기 전에 매일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엄마로 인해 세상의 모든 존재를 연민으로 바라보게 된 것에 감사하다고 전했습니다.

 희곡은 제게 방향을 주고 삶의 목적을 가져다줬습니다. 희곡을 배우고 쓴 지 7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공연을 수십 편을 보았고 대본을 읽고 대사를 필사하며 누구보다 치열하게 썼습니다. 그리고 제게 희곡을 쓰라고 처음으로 권유했던 서울예고 동기인 무대미술 감독, 이인애와 작곡가 최우정에게 글로써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 싶습니다.

 제가 경상일보에 당선됐다고 오랜만에 환한 미소로 기뻐하신 고종황제의 시종이었던 김황진의 첫째 아들인 아버지, 김투한님께 가장 감사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온 힘을 다해 열심히 쓰겠습니다. 부족한 저의 글을 보고 뽑아주신 경상일보와 심사위원들께 감사합니다.

● 이화여대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
● 패션업계 디자인 실장, 광고업계 기 획실장
● ‘76스튜디오’ 제1회 신진작가 발굴 낭독회 페스티벌(2021)


 

  <심사평>

  

  노블레스 계층의 패션 채식주의 풍자에 난민문제 결합 신선

 올해 응모작 중 본심에 오른 6편의 희곡을 대상으로 심사를 진행했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 있는지, 새로운 형식을 실험하고 있는지, 새로운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지.

 ‘김부장의 난처한 오후’는 사내 승진과 구조조정 문제를 다루면서 사내 시스템의 불합리함을 씁쓸하게 풍자하고 있다. 관계의 역전과 반전의 반전의 기법을 구사하며 안정적 극작술을 보여주는 점이 좋았다. 반면, 반전의 계기로 활용되는 3연(학연·지연·흡연)중 같은 흡연파란 설정이 극의 방향을 틀어 버릴 만큼 설득력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다.

 ‘딜레마 구간’은 소환극 형식과 탐문극의 형식을 결합한 작품으로, 도래할 AI 시대가 제기할 새로운 윤리 문제를 다루고 있는 점이 신선했다. 모친 살해라는 충격적 소재와 AI를 연결시키는 지점이 흥미로웠다. 다만, 중반이후 질의응답 식으로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이 다소 안이해 보였다.

 ‘사주도둑’은 남의 딸을 납치해서 자기 딸처럼 기른 어머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상황의 아이러니함을 탑재한 것이 흥미로웠다. 하지만 아이러니가 주는 울림의 확산이 ‘가족주의’란 한계에 갇혀 있는 것이 아쉬웠다.

 ‘간지럼’은 남녀 사이의 관계변화를 탐색하며 우리가 품고 사는 개념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점이 흥미로웠다. 추상적이고 모호한 공간에서 우리가 지닌 개념에 균열을 내면서 관계의 문제 다루고 있는데, 이런 극형식이 지닌 원초적 한계를 극복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다.

 ‘채식상어’ 는 한국사회 노블레스 계층이 보여주는 ‘패션 채식주의’를 풍자하는 점과 이 풍자에 난민의 문제를 결합한 것이 신선했다. 그리고 만찬이라는 먹는 행위를 풍자적 의식(Ritual)으로 격상시킨 것이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작위적 상황설정과 상황과 괴리된, 겉도는 인물들의 대사는 문제점으로 보여졌다.

 각기 매력들을 지닌 작품들이었지만, 고심 끝에 ‘채식상어’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신춘문예에서 끝나는 작가가 되지 않길 바라며, 나머지 작가들의 약진도 기대해 본다.

심사위원 : 김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