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광주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그리고 바다 / 김근수
<당선작>
그리고 바다 / 김근수
하늘에서 하루가 갔다. 피레네산맥 능선에 빛의 입자가 깃들더니 산줄기를 타고 순식간에 퍼져갔다. 산맥을 우회하면서 비행기는 가파르게 고도를 낮추었다. 이윽고 도시가 얼개를 드러내었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통로를 나오자 동양인 여성이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데면데면 여성에게 다가섰는데, 대사관 신분증이 가슴께에 매달려 있었다. 바르셀로나는 집단 관광객이 많고, 동양 사람이 홀로 입국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 단번에 나를 알아보았다고 대사관 직원이 미소를 보였다.
- 한국인은 특징이 있어요. 낯선 공간, 시간, 타인, 모든 것을 처음 대면하는 예의랄까. 그런 태도가 한국 사람에게는 은연중에 있나 봐요.
대사관 직원의 인솔에 따라 공항 게이트를 나서자 택시가 대기하고 있었다. 옷가지며 생필품이 든 짐가방을 차량 트렁크에 옮겨 싣고 나서 뭉친 허리를 펴니 그제야 바르셀로나의 하늘이 시야에 들어왔다. 비행 중 내내 창에 걸린 액자 그림 같은 그저 그런 하늘과는 달랐다. 색감이 청량했고 겨울 같지 않은 포근함도 배어있었다. 시내로 들어서자 석조 건물들이 공백없이 이어지며 차창을 스쳤다. 서울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중저층의 오래된 건물들이 도로를 엄호했다.
이동하는 동안 비행 시차로 인해 노곤함이 어깨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택시가 멈추었고 대사관 직원이 숙소를 가리켰다.
- 스페인 당국도 어지간히 당황하고 있어요. 배는 견인되어 여기 바르셀로나 항구에 정박 중입니다. 내일은 우리 대사관이 함께 입회하는 간단한 확인 절차가 있어요.
그녀는 애써 눈꼬리를 올려 웃음 짓고는 타고 왔던 택시에 몸을 동그랗게 말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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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에 붙어있는 어선은 마을 이장의 배 한 척이었지요. 선명은‘덕성’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덕성호에서 그물을 던지고 끌어 올려서 이장의 바닷일을 거들었어요. 여름 끝이었던가,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에 선선한 기운이 도는 그런 날이었어요. 파도가 몹시 치대더니 덕성호가 돌연 사라져 버렸습니다. 배가 보이지 않자 마을이 온통 난리가 난 것이지요. 배를 잃은 이장은 물론, 온 마을이 일제히 초상 치르는 분위기였습니다.
해양경찰이 나섰지만 끝내 배의 종적을 찾을 수 없었어요. 북한 해역과 인접해서 NLL을 넘어갔을 수도 있다고 했지요. 인명피해가 없다는 점이 너무나 다행스러우며, 바다에서 어선 실종은 흔한 경우로서 담당 부서는 실종 어선 수색에 주의를 다 할 것이나, 바다는 넓고 배는 작아서 찾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인데 실종상태가 오래가면 통상 침몰한 것으로 종결 처리한다고 해양경찰 순경이 말했다고 하더군요.
배를 찾지 못한 이장은 매일 선착장에 나가 있었어요. 선착장에 구부리고 앉은 이장은 멍하니 바다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 저러다 사람 하나 버리지. 배는 또 모으면 되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번갈아 가며 말려도 보았지만, 이장은 한사코 바다에 나갔어요. 이장이 응시하는 바다는 비어있었고 연안으로 들이치는 파도에는 아무 정보가 없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 이장이 사라졌지요. 배를 따라갔다고 어른들이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작은 포구 마을에서 생업은 배 없이는 곤란한 것입니다. 마을에서 배는 단순히 선주의 조업에 이바지하는 것만이 아닌 것이, 마을의 이런저런 일들에 긴요한 쓰임으로 수시로 바다를 건너다녀야 했습니다. 외진 마을에서 배는 생필품을 실어나르는 운송선이기도 했고, 급성으로 맹장이 터진 환자를 시내 병원으로 이송하는 다급한 역할도 해야 합니다. 마을이 작동하고 마을로 이어지기 위해서 배가 필요한 것이지요.
이장의 배가 없어지고, 이장마저 배를 따라 사라져 버린 마을은 시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마을 어른들이 아침저녁으로 아버지에게 이장직을 강제했지요. 아버지는 마음먹고 새 배를 들이기로 했어요. 어지간히 뱃일의 경력도 붙었고, 근해 어업 자격도 취득해 두었는지라 모아둔 자금과 은행융자를 내서 배 한 척을 모았습니다.
배가 아버지에게 인도된 날, 아버지는 철학관에 현찰을 내밀어 목선의 이름을 받았다고 했어요. 사주쟁이가 내놓은 선명은‘삼흥’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삼흥호를 몰아와서 마을 선착장에 붙일 때, 마을 사람들은 제 일처럼 기뻐서 손을 흔들며 환영했지요. 사람들이 팔 걷고 나서서 돼지머리와 제수품들을 뱃전에 올리고 꽹과리를 두들겼습니다. 아버지는 돼지머리에 지폐 뭉치를 물리고 큰절을 올렸습니다. 나도 아버지 곁에서 절을 했습니다. 갈매기가 잡힐 듯 가까이 날아들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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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모를 천체가 태양계에 난입한 사건이 발생했다. 천체는 태양과 지구 공전 궤도 사이를 찌르고 들어와 궤적을 급선회하면서 빠르게 태양계를 벗어나 페가수스 별자리 방향으로 사라졌다. 북반구와 남반구 대륙 곳곳에 배치된 망원경이 천체가 태양계를 탈출할 때의 궤적과 속도를 분석했는데 자연적 물리현상으로는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과학계는 할 말이 없어 어수선했다. 호흡을 가다듬은 전문가들이 일제히 천체의 정체에 대한 견해를 제시했다.
전문가들이 앞다투어 천체의 정체를 규정했으나, 의문점은 가시지 않았고 답변이 명쾌하지 못해서 이런저런 반박에 부딪혔다. 망원경으로 관측한 천체는 생김새가 독특했는데 몸통의 길이에 비해 너비가 기형적으로 좁았다. 그래픽으로 제시된 천체의 외형은 바게트빵 형태였다. 예측 경로와는 사뭇 다른 운행 궤적과 방향, 지금껏 관측되지 않은 놀라운 태양계 탈출 속도는 자연 현상으로 설명하기 어려웠는데 급기야 소행성도 혜성도 아닌‘그 무엇’이라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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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주로 새벽에 조업을 나갔고, 아침나절에 조업에서 건진 것들을 시내 어시장 경매에 넘겼지요. 아버지가 물고기를 어시장에 내놓는 모습을 서너 번 본 적이 있습니다. 주로 여름이나 겨울 방학의 끝 무렵이었지요. 철없는 내 눈에 아버지의 성과물은 그저 자랑스러웠습니다. 계절에 따라 차이는 있었으나 조업의 성과라는 것들은 대체로 광어, 농어, 숭어 같은 익숙한 생선이었고 더러 바람 좋은 날에는 돌문어가 들기도 했지요.
아버지가 그런 물속 것들을 살려와서 어시장 바닥에 놓으면 경매꾼이 사람들을 줄 세우고는 알아듣기 힘든 말을 빠르게 했어요. 나는 경매꾼의 입을 쳐다보면서 내가 아는 낱말들이 하나라도 있기를 바랐는데, 없었어요. 경매꾼의 쏜살같은 목소리가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면 사람들은 옷섶 안에서 손가락을 일순간에 펴고 접으면서 아버지의 성과에 가격을 매겼지요. 경매꾼의 재빠른 말을 알아들어서 손가락으로 찔러 답하는 일의 요체를 나는 도무지 해석할 수 없었지요. 나는 매번 실패했습니다. 시커먼 바다 위에 여명이 번질 때까지 이어진 아버지의 고투는 경매꾼의 입을 거쳐 사람들의 날쌘 손가락질 끝에서 값어치가 정해지는 것이었죠. 아버지는 경매 사무실에서 그날 낙찰가로 현찰을 받았습니다. 지폐 매수를 확인하고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걸었어요. 내 손에 닿은 아버지의 손은 납덩이 같았지요. 투박했는데 또 뜨겁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와 걷는 어시장 귀퉁이에 뱅글뱅글 돌아가는 이발소 회전 간판이 보였지요. 방학 동안 덥수룩하게 자라버린 내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하는 것이 아버지가 나를 어시장으로 데려온 이유였습니다. 아버지는 이발사에게 나를 맡기고 마을 전체가 요청한 여러 심부름을 처리하러 어딘가로 갔지요. 마을에서 배를 소유한 이장의 소명이자 운명이랄까요.
이발이 끝나고 내가 어색한 머리통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삼흥호가 접안 해 있는 어시장으로 되돌아가면 아버지는 이것저것 마을에서 필요한 물건을 담은 종이상자를 갑판에 싣고 있었어요. 볕이 맹렬해서 갯것들 마르는 냄새가 어시장을 쾨쾨하게 메웠지요.
갈매기들이 어시장까지 따라와서 아버지의 목선 조타실 지붕 모서리에 앉아 있었어요. 목덜미가 희고, 부리가 노랗고, 눈매가 예리한 새들이었지요. 그것들은 까만 한쪽 눈으로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마을에 필요한 짐을 정리하고 아버지는 이번에는 이발소 쪽과는 반대 방향으로 걸었습니다. 갈매기가 날아올랐어요.
가게 입구에는 조그마한 비취색 구슬이 무수히 달린 발이 내려쳐 있었지요. 아버지가 손을 저어 발을 젖히고 들어서자 가게 안을 지배하던 짜장 볶는 냄새가 허기를 당겨서 나는 조바심이 날 지경이었어요. 아버지는 주방을 향해 손가락 두 개를 펼쳤고 얼마 후 짜장면 두 그릇이 나왔지요. 아버지는 아버지의 그릇에서 면을 덜어서 내 앞에 놓인 그릇에 옮겨 주었습니다. 나는 너무 좋아서 머리통을 그릇에 박고 젓가락질에만 집중하는 것이지요. 아버지는 면발에 고춧가루와 식초를 뿌려서 먹었고 하얀 양파를 새까만 장에 찍어 먹었습니다. 지금도 머리카락을 자르는 날이면 비취색 구슬 달린 발과 짜장 볶는 냄새, 휘휘 비벼 그릇을 내 앞에 놓던 아버지의 모습, 나는 그런 하루를 잊을 수 없는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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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의 컨센서스는 다른 항성계에서 우리 태양계에 진입한 인터스텔라 천체였으나 정체를 두고는 이견이 분분했다. ‘그 무엇’은 무엇을 지칭하는 것인가. 기자가 물었다. 발표자가 화면에 물체를 띄웠다. 길쭉한 돌덩이였다. 솔즈베리의 스톤헨지 거석과 닮은 형태였는데 서늘한 기운이 돌았다.
거대한 돌덩이를 가리키며 발표자는,
- 이 천체의 운행 궤적으로는 도저히 소행성이라고 규정하기 어렵다. 혜성이라 하기에도 의구심이 해소되지 않으며 설명이 완전하지 않다. 통상 혜성은 태양에 가까워지면 태양열로 인해 표면의 얼음 같은 성분이 기화되면서 비행운을 길게 내뿜어야 하는데, 그런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이 천체의 태양계 진입 속도와 비교하여 탈출 시 놀랍게 빠른 속도를 설명하려면 가스가 기화되어 엔진 역할을 하여야 원인이 설명된다.
학계의 다른 의견으로는 천체 내부에서 수소가 태양열에 의해서 기화되었으나 천체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가속의 동력원이 되었다는 주장이 있는데, 전에 없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된 결과론에 가깝다. 이번 성간 천체는 태양계를 벗어날 때 태양 중력을 기술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스윙바이 항법이다. 보이저 1, 2호도 목성의 중력을 이용해 스윙바이 했었다. ‘그 무엇’은 외계문명의 인공적인 물체이거나 어떤 현상으로 보인다.
기자석이 술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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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주로 새벽 별을 보면서 바닷일을 했고 낮에는 선착장에서 삼흥호를 손보거나, 마을을 돌보는 일을 했습니다. 아버지의 하루는 매번 그 언저리에서 성립되었겠지요. 학교 담장 너머 선착장에 아버지의 배가 보이면 나는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가방을 둘러멘 채 비탈길을 타 내려가 선착장으로 달려갔어요. 나는 아버지의 배 위에서 어구들을 유심히 보고, 만지며 놀았지요. 내가 어구의 쓰임새를 물으면 아버지는 그물코를 잇던 손을 잠시 놓고 용도와 사용하는 방법을 차근차근 알려 주었지요. 낚싯바늘의 형태와 바늘 촉의 날카로움에 따라 걸리는 물고기의 종류가 다르다는 것도 나는 그때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대나무 낚싯대를 나에게 건네며 낚싯바늘에 갯지렁이를 달아 주었습니다. 나는 배 옆구리에 서서 낚싯대를 물속으로 들이대었지요. 물이 맑아서 노는 물고기들이 훤하게 보였어요. 물속을 오가는 물고기를 내려다보면서 낚싯대를 아래위 좌우로 놀려서 녀석들이 미끼를 물기만을 나는 기다렸습니다. 토도-독! 녀석들이 미끼를 건드리는 것이 손끝에 전해졌는데 낚싯대를 끌어 올리면 빈 줄이었지요. 물속에 손을 넣으면 잡힐 듯 물고기들이 빤히 보이는 데 도무지 딸려오지를 않는 것입니다.
두 번, 세 번, 자꾸 그러니까 나는 부아가 오르며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이지요. 보다 못했는지 아버지가 내 곁으로 와서 낚싯대를 드리웠습니다. 순간 아버지의 낚싯대가 꺾이더니 물고기가 몸통을 화들짝 뒤틀며 매달려오는 것이에요. 아버지는 물고기 아가미를 벌리고 봄두릅 따듯 낚싯바늘을 또-각 뽑아냈습니다. 영문모를 세상으로 끌려나 온 녀석은 갑판 위에서 어지간히 파닥거렸어요. 녀석의 비늘에서 물 밖 세상의 햇살이 떨어져 내렸습니다.
- 손끝에 집중해서 고기가 바늘을 끌고 간다 싶은 순간 그때 얼른 채는 거란다.
아버지는 대나무 낚싯대를 잽싸게 채는 시늉을 하면서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일러준 방법을 나는 입말로 외우듯이 하면서 내내 낚시에 몰두했었지요. 토-독! 녀석이 왔다. 미끼를 문다. 끈다. 지금이다. 나는 손목에 잔뜩 힘을 실어 물고기를 채었어요. 녀석이 묵직하게 저항하니 손맛이 오르는 것이에요. 턱에 힘이 몰리고 이를 악물면서 나는 낚싯대를 당겼지요. 낚싯대 끝이 활처럼 휘어졌고 나는 온 힘을 다했어요. 녀석은 꿈쩍하지 않는 것이에요. 다시 한번 으-랏-차! 순간 나는 갑판에 벌러덩 뒤로 내동댕이쳐진 겁니다. 아버지의 폭신한 그물과 부표 더미가 내 등을 받쳐 주었지요. 은빛 낚싯줄이 파란 하늘에 곡선을 그었어요. 낚싯줄 끝에 매달린 눈부신 유선형 물고기! 아, 나는 감격의 눈을 부릅떴는데 낚싯줄 끝에 매달려 있어야 할 물고기는 사라져 버렸어요. 자세히 보니 낚싯바늘도 온데간데없었습니다. 물고기는 멀리 하늘로 사라져가고 있었어요. 눈이 동그래져 나는 소리 쳤지요.
- 물고기가 날아요. 보세요. 저기 하늘을 날아가고 있어요.
조타실 라디오에 흐르든 음악이 지직거렸어요. 물고기가 사라진 자리에 구름이 지나고 있었지요. 그물코를 기우면서 아버지는 빙그레 웃음을 지었습니다. 나는 그물 더미에 누워 부표를 베개 삼아 한참을 벌러덩 누워만 있었지요. 눈부시게 파란 하늘로 물고기는 가버렸어요.
*
몬주익 언덕을 돌아 내리막으로 진입하자 지중해가 나타났다. 나는 택시 뒷좌석에서 해변 쪽 차창을 응시했다. 바다를 막아선 모래사장으로 파도가 떼를 쓰며 바스라 지고 있었다. 모래사장이 끝나는 곳에 돛을 펼친 듯한 형상의 세련된 현대식 건물이 보였고 바다 쪽으로 요트 정박장이 길게 뻗어 있었다.
택시에서 내려서니 먼저 도착한 대사관 직원이 다가섰다. 그녀는 배들이 정박해 있는 부근으로 나를 인도했다.
- 목선이 발견된 카나리아 제도에는 천문대가 있어요. 지난가을 천문대에서 외계 전파 신호를 포착해서 스페인 천문학계가 떠들썩했던 적이 있었지요. 생각해 보니 목선이 실종되었던 시기와 얼추 비슷하더군요. 설명되지 않는 일들끼리는 이상하게 이야기가 맞아 들어요.
요트 정박장 너머 바지선이 보였다. 바지선에 매여, 다른 선박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익숙한 배 한 척이 파도를 받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옮겼고 한 발쯤 뒤에서 대사관 직원이 따라왔다. 바지선이 가까워지면서 삼흥, 검정 한글이 선명했다.
0310으로 시작하는 어선 고유번호, 소형선망 4.5톤, 갑판에 쌓인 그물, 대나무 낚싯대, 아버지의 삼흥호 그대로였다. 갑판 위, 파랑 어창에 시선이 닿았다. 나는 무릎으로 앉아 어창 뚜껑을 들추었다. 마을 앞바다 냄새가 밀려왔고 어릴 적, 하늘로 날아간 물고기가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얼른 뚜껑을 덮었다. 대사관 직원은 삼흥호와 나를 번갈아 가며 카메라에 담았다. 조타실 바닥에 깔린 빛바랜 장판이 보였고, 황갈색 담요도 보였다. 그리고 오래전 축구공도 거기 있었다. 등 뒤에서 대사관 직원이 자주 카메라 버튼을 눌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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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공이 학교 담장을 넘어 날아가 비탈을 굴러 바다에 빠졌지요. 아이들의 안타까움이 표창으로 바뀌어 공을 찬 아이에게 날아들었지요. 담장 밖으로 공을 넘긴 아이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지요. 물살이 빨라서 파도에 실린 공은 먼바다로 갔어요. 아이들은 손가락으로 바다를 가리키며 발을 굴렀지요. 파도와 파도 사이에서 숨었다 보였다 하면서 공은 자꾸 멀어져 갔어요. 나는 선착장 쪽으로 눈길을 돌렸어요.
공이 바다에 빠지는 일은 가끔 있었고, 그럴 때 삼흥호를 내어서 아버지는 물고기 잡는 뜰채로 공을 건져 올렸어요. 공이 운동장으로 돌아오면 나는 아무래도 어깨가 으쓱했을 테지요. 그날은 삼흥호가 보이지 않았어요. 공은 빠르게 쓸려갔지요. 우리는 공을 포기할 수밖에 도리 없었어요.
다음날이었어요. 해안가 자갈돌을 쓰다듬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나는 무릎 사이에 베개를 끼고 깨려는 잠을 붙들고 있었지요. 맨 살갗에 닿은 버석거리는 이불 홑청에서 잘 마른 낙엽 냄새가 났지요. 늦잠에 늑장을 부려도 되는 토요일 아침이었어요. 바깥이 소란스러워지는가 싶더니 사람들이 골목길에 나와서 웅성거렸어요. 궁금했지만 나는 잠 깨기가 싫어 이불을 코끝까지 끌어올리고 허벅지 사이 베개를 무릎으로 더욱 감쌌지요.
- 고래다!
나는 눈이 번쩍 뜨인 거지요.
- 고래다!
나는 냅다 이불을 걷어차고 우뚝 일어섰습니다.
해변 자갈돌 위, 먹빛 고래가 누워 있었어요. 나는 마을 사람들을 따라 고래 곁으로 다가갔어요. 녀석의 지느러미는 바라듯 하늘을 향했는데, 그 공간에 하얗게 배가 부풀어 있었어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봤던 고래를 정말로 내 눈으로 본 것이에요. 나는 놀라웠는데, 순간 그 큰 녀석 옆에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어요. 전날 바다에 빠뜨린 축구공이었어요. 파도에 시달린 공은 반질반질했지요.
고래를 바다에 보내기 위해 밧줄을 엮는 어른들 틈을 비집고 나는 공을 주우러 갔어요. 공에게 접근하면서 나는 고래의 눈을 보았지요. 내가 들어찰 만큼 큰 눈이었어요. 공을 쫓다가 갑자기 물 밖 세상에 불시착한 고래는 덩치에 맞지 않게 주눅 들어 보였어요. 나는 공을 품에 안고서 고래 곁으로 다가갔어요. 고래가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았거든요. 파도가 들어와 고래의 등을 적셨어요. 삼흥호가 줄을 끌어서 고래를 바다로 견인했어요. 고래 등에서 물살이 뿜어졌고 무지개 가루가 삼흥호 뱃전에 내렸어요. 고래는 선착장 너머에서 물밑으로 가라앉는가 싶더니 꼬리로 파도를 때리며 포구에서 멀어져 갔어요. 나는 옆구리에 공을 끼고 고래의 바다를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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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흥호는 카나리아 군도 라스팔마스섬 원양에서 스페인 해양 경비선 레이더에 갑자기 포착되었다. 발견 당시 삼흥호는 표류상태의 무인선이었다. 스페인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이 해양 당국에 삼흥호의 실종 사실을 확인했다. 삼흥호는 서해에서 돌연 사라졌고 123일 만에 북대서양 카나리아 해역에 등장했다. 4.5톤짜리 목선이 이역만리 바다에서 표류했다는데, 배는 흠집 하나 없고 갑판 위 어구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실종 접수일로부터 123일이 지나서 라스팔마스섬 한바다에서 발견되었다는 것만이 삼흥호의 사실이라고 해양경찰서 조사 담당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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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휴가 중 아버지의 작업을 따라나섰던 적이 있었어요. 아버지는 바다와 하늘의 표정을 넌지시 살피더니 나의 승선을 허락했지요. 하늘이 바다 가까이 내려온 봄날, 오후였어요. 삼흥호에 오르니 어릴 적과는 달리 갑판은 한 뼘만 했습니다. 기관실 양쪽 통로를 따라 쌓아둔 그물과 사려 둔 밧줄 더미가 갑판을 차지해서 작업 공간에 여유라곤 없었어요. 좁은 그 공간이 아버지의 사무실인 셈이었지요.
동트는 바다 위로 금빛 길이 생기고 그 길을 가르며 삼흥호가 귀항할 때, 아버지는 바다의 노동을 홀로 감당해서 햇살에 반짝이는 비늘을 뒤집어쓰고 왔어요. 파도에 난반사 된 햇살이 아버지가 쓴 모자챙 아래 주황빛으로 어른거렸고, 아버지의 눈썹에는 마른 땀이 버짐으로 번져있었지요.
쓸쓸한 노동의 흔적은 아버지의 팔뚝 핏줄에서 오롯했지만, 불볼락과 보리 농어 댓 마리가 노동의 성과였습니다. 나는 어구에 걸터앉아 아버지의 하루를 막연히 생각했지요. 내 생각은 추상에서 겉돌 뿐 아버지와 바다의 실질에 가 닿지는 못하는 것이었지요.
아버지는 조타실에 서서 엔진을 작동시켰습니다. 꽁무니에 스크루가 물속을 휘젓는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나는 열리는 바다 쪽으로 자세를 바꾸어 앉았습니다. 엔진이 물살을 뒤집어내자 목선은 고요한 바다를 가르며 나아갔습니다. 삼흥호가 가른 바다는 이쪽과 저쪽의 물색이 달라서 같은 바다가 아닌 것 같았지요.
십여 분 뱃길을 가니 거기가 아버지의 일터였습니다. 일터가 막막해서 일의 시작과 끝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지요. 깃발이 꽂힌 부표가 보이자 엔진 소리가 잦아들었어요. 아버지는 모자챙을 눌러쓰더니 갈고리 달린 막대기로 부표를 걷어 올렸습니다. 나는 아버지 옆에서 일을 거들었어요. 시늉 정도였겠지만, 아버지는 마다치 않고 그물 한쪽을 내어주었지요. 아버지가 물속 그물을 올리면 나는 끌어서 그물을 쟁였어요. 어깻죽지와 등골에 전기가 튀었지요. 쟁이는 그물코에 아가미가 꽂힌 물고기들이 파닥거렸어요. 볼락, 성대, 우럭 뭐 이런 가까운 바다 생선들이었지요. 아버지의 두 다리는 원래부터 배의 일부인 듯했는데, 나는 자꾸 뒤로 나동그라지는 것이지요.
그물 일이 끝나자 아버지는 어창에 생선을 살려두고, 도마와 칼을 내어 회를 만들었어요. 막 된장에 찍어서 먹는 회는 달고 달았지요. 선착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파도가 높이 튀었어요. 나는 조타실에 몸을 밀어 넣었지요. 조타기 위 벽면에 음력 물때가 표기된 달력과 둥근 벽시계가 나란히 걸려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달력에 그달에 걸리는 물고기 이름을 적어 두었는데 도다리, 농어, 주꾸미가 적혀 있었어요. 벽시계가 멈춰 있어서 나는 조타실 하단 서랍장에서 새 건전지를 찾아서 바꾸었습니다. 사 둔 지 오래되어 방전되었는지 새것을 넣었는데도 초침이 서너 바퀴를 못 가 멈췄어요. 부쩍 시계가 서버린다고 아버지는 다가서는 육지에 눈을 두고 말을 했지요.
군에 복귀하는 날, 나는 새 시계를 삼흥호 조타실에 걸고 새 건전지를 서랍장에 넣었습니다. 아버지는 슬며시 갑판으로 나가셨지요. 시계를 조타실 벽에 걸어 두면서 나는 아버지와 삼흥호의 바다가 무사하기를 바랐어요.
***
- 다수 전문가 사이에서 성간 천체는 혜성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고 현상적으로 무난한데, 어쩌자고 인공물체라는 엄청난 화두를 던지는 것인가. 주장을 뒷받침할 인공신호를 탐지했는가.
기자석에서 질문이 쏟아졌다. 발표자가 질문에 답을 했다.
- 혜성이라는 의견은 인류를 안심시키는 것 외에 아무런 정보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천체의 태양계 탈출 가속도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없지 않은가. 물리적 힘을 더하여 가속했다는 것 외에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인위적 전파 신호를 수신하지는 못했다. 다만 지적 생명체의 물체라면 기술적으로 전파를 은폐하거나 차단할 수 있다. 충분히 쉬운 일이다.
발표자는 화면을 넘겼다. 푸른 빛을 품은 기괴한 비행체가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질문의 방향이 다르게 전개되었다.
- 보이저 탐사선이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프록시마 센타우리 별까지 이동하는 시간은 수만 년이 걸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올 수도 없을뿐더러, 올 이유도 없지 않은가.
- 문명 단계가 특이점에 도달하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지 않고 심지어 어렵지도 않다. ‘그 무엇’이 어떻게 우리에게 왔는가. 항성계를 장악한 문명이라면 웜홀을 창출하여 공간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경우 막대한 에너지원의 소멸이 포착되어야 하는데 우리 은하에서 관측되지 않아서 논하기는 어렵다. 공간이동보다는 암흑물질(Dark matter)을 활용했을 가능성을 말하고 싶다.
암흑물질이 중력에 반응한다는 것은 합의된 이론이다. 중력이 있다는 것, 이것은‘실체’를 상정하는데 이 말은 우주 공간에 군데군데 장애물이 있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이 장애물은 태양 같은 천체일 수도 있고 구름처럼 흩어져 은하 전반에 듬성듬성 분포할 수도 있다. 인류는 아직 암흑물질의 실체를 확인하지 못했지만, 암흑물질 맵핑을 완성한 어떤 문명이라면 암흑물질의 중력을 이용해 쉽고 빠르게 열린 공간을 지나다닐 것이다.
그래서 왜 왔는가, 이 질문이라면 오히려 만만치 않다. 과학이 답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이 말은 <콜럼버스는 왜 갔는가>와 같은 말일 것이다. ‘그 무엇’ 이후 어찌 될 것인가, ‘그 무엇’이 타 항성계에서 건너온 인공물체인지, 혹은 우주의 어떤 불가해한 현상인지 불분명하지만, 두 세계는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 채 각자의 문명을 전개해 왔다. 상호 부재 상태였다. 서로를 목격하는 순간, 어쩌면 지금일 수 있다. 일면식 없는 두 세계는 하나의 우주에 편입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호모 사피엔스에게는 위협으로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15세기는 자족과 낭만의 끝을 알리는 서막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과학계가 다시 입장문을 내었다.
- 전문가들의 대체적 합의는 거듭 말하거니와 혜성으로 판단한다. ‘그 무엇’이라는 주장은 빈약한 가설이다. 우주의 시간과 공간의 규모를 고려할 때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과학은 가능성 제로에 수렴하는 편에 있지 않다. 설사 인공물체일지라도 외계문명을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상정해야 할 이유 또한 없다.
과학계 입장은 외계 인공물체일 가능성 제로를 언급했는데 과학이 점성술이 아닐진 데, 입장문의 마지막 문장은 또 무엇이냐는 언론의 질타에 직면했다.
*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날, 대사관 직원과 바르셀로나 항구를 걸으며 나는 삼흥호에 대한 이런저런 기억을 길게 이야기했다. 그녀는 벤치에 앉아 휴대전화 녹취 앱을 열고 내가 하는 말들을 담았다. 아버지와 삼흥호의 바다, 지나간 시간의 밧줄을 나는 조심스럽게 당겼다. 바르셀로나 해안에서 후퇴한 곳에 우뚝 솟은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콜럼버스 동상이었다.
***
새벽에 아버지는 어김없이 삼흥호를 몰아 어장으로 갔다. 기름을 부어 놓은 듯 물살은 보드랍고 느릿했다. 어장에 도착한 아버지는 삼흥호 엔진을 중립에 맞추었다. 조타실 벽시계 초침이 가다 서다 위태로웠다. 아버지가 서랍장에서 새것을 꺼내어 벽시계 건전지를 교체했다. 야광을 머금은 빛이 조타실 창에 어른거렸다. 아버지는 갑판으로 몸을 내어 빛이 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먼바다에서부터 오로라가 밀려오듯 파도가 삼흥호 쪽으로 다가왔다. 다가선 파도가 부풀었고 고래가 푸른 대가리를 내밀었다. 만질 수도 있을 듯 가까이 다가온 고래가 삼흥호 주변을 천천히 맴돌았고 등줄기에서 물을 뽑아 올렸다. 투명한 물줄기가 바다 위에 형광 장막을 펼쳐냈다. 장막 너머 배 한 척이 윤곽을 드러내었다. 배 이물에 적힌 선명은 덕성이었다. 아버지는 실눈으로 덕성호를 응시했다.
장막 너머 갑판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놀라움에 아버지는 뛰다시피 성큼 뱃머리로 갔다. 아버지는 두 번 세 번 손바닥으로 눈을 비벼 가며 대상을 살폈다. 이장이 분명했다. 반가움에 아버지는 덕성호 쪽에 대고 소리쳤다.
- 이장님!
고래가 수면 위로 솟구쳤다. 형광 파도가 흩어졌고 다시 모였다.
- 이장님!
장막 저쪽에서 건너오는 말은 없었다. 아버지는 조타실로 돌아가 엔진을 작동시켰다. 벽시계 초침이 완전히 멈추어 있었다. 형광 장막이 울타리처럼 바다 이쪽과 저쪽을 구별 짓고 있었다. 아버지는 저쪽으로 다가갈 수 없었다.
이장은 바다에 부유하는 물체를 걷어 올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망연자실 덕성호 쪽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덕성호 갑판에 바닷속에서 건져 올린 폐기물이 수북이 쌓여있었고 작은 크레인이 설치되어 있었다. 쓰레기를 분쇄하는 장치도 보였다. 저쪽 바다에서 이장은 아마도 바다의 환경 파수꾼인 듯했다. 다시 한번 아버지는 목청을 높였다.
- 이장님!
이장은 장막 너머에서 작업에 몰두할 뿐이었다. 덕성호와 삼흥호 사이에서 고래가 울음 울었다.
물속에 내려둔 아버지의 그물이 이장의 작업에 걸려들었다. 이장은 아버지의 그물을 폐기물 걷듯이 당겨 올렸다. 그물코에 금빛 물고기가 가득 보였다. 이장은 물고기는 바다에 돌려보내고, 그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물의 얼개를 지탱하는 밧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것을 아버지는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장은 더는 끌려 오지 않는 그물을 포기하고 갑판에 걷어 올린 그물 끝부분만 끊어 내었다. 이장의 작업이 어느 정도 진척되자 형광 장막이 덕성호를 감싸고 커다란 거품을 만들더니 파도에 실려서 떠갔다. 고래가 대가리를 물속으로 밀어 넣었다. 아버지는 이장이 밑동을 끊어 내어 훼손된 그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해가 솟아 바다에 윤슬이 일었다. 조타실 벽시계 초침이 움직였다.
*
망원경을 탑재한 발사체는 남아메리카 프랑스령 기니아 우주 센터에서 발사되었다. 지구 대기권을 벗어난 망원경은 발사체에서 분리되는 순간부터 태양광 전지판을 펼치고 우주 시공간의 오르막을 향해 나아갔다. 오르막의 끝은 중력 평행의 언덕이었고, 거기가 라그랑주(L2)였다.
태양과 지구의 중력이 상쇄되는 라그랑주 지점은 5개가 있는데, 라그랑주(L2) 지점은 지구와 달 사이의 평균 거리보다 4배 정도 먼, 우주 공간이었다. 거기서 망원경은 태양을 등지고 심우주와 대면할 것이다. 빅뱅 후 억겁의 시공간에 뿌려진 희미한 정보를 찾고 분석하여 우주에 관한 통찰을 확보하는 것이 인류가 망원경을 쏘아 올린 목적이었다.
중력이 파놓은 시공간 언덕을 오르면서 망원경은 NASA 관제센터의 원격명령에 따라 차폐막을 세우고, 종이처럼 접힌 대형 렌즈를 펼치면서 한 달간의 항해를 완수했다. 망원경이 중력 평행 공간 라그랑주(L2)에 안착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나는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는 오후 1시에 바르셀로나 공항을 이륙했다.
라스팔마스 천문대에 전파 신호가 4개월 만에 다시 포착되었다. 지난가을에 수신한 전파 신호와 주파수대역이 일치했다. 전문가들은 전파 송출 방향을 페가수스자리 적색왜성으로 특정 지어 허블 망원경 관측을 의뢰했다. 허블 망원경은 행성이 별의 순간을 지나갈 때, 별의 미세한 밝기 변화를 관측하였다. 행성은 생명체 거주 가능 골디락스 존에서 모항성을 공전하고 있는데 공전 주기 123일로 제시되었다. 행성의 대기 성분의 스펙트럼 분석 결과 다량의 물 분자와 메탄이 포함된 것으로 예측되었다. 천체물리학자들은 바다 행성일 가능성을 언급했다.
- 라그랑주(L2) 지점에 도착한 우주 망원경은 렌즈 정밀 조율에 6개월여가 소요될 예정이다. 라그랑주(L2) 우주 망원경이 본격적인 관측 활동을 개시하게 되면 이 행성에 대한 정보를 인류에게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행성 대기에 물과 메탄 성분이 검출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라그랑주(L2) 우주 망원경은 허블 망원경보다 100배 우수한 성능을 보유했으므로 외계 생명체 존재의 스모킹건을 관측할 수 있을지, 지켜보자.
NASA 관계자가 CNN 인터뷰에서 기대감을 표출했다.
인천으로 돌아오는 비행시간은 두 시간여 짧았다. 기내 창에 구름이 비스듬히 걸렸고 날개 엔진 아래로 하늘색과 물색이 겹쳐지면서 두 개의 바다가 미러링 되었다. 아래 바다에서 아버지의 삼흥호가 조업했고 고래가 잠수했다. 어릴 적 낚싯바늘을 끊고 하늘로 날아갔던 물고기는 아래위 두 바다를 쏘다녔고, 다른 바다에서 고래가 대가리를 내밀었다. 이장은 바다 쓰레기를 처리하고 있었다. 앞 좌석 모니터를 눌러 비행기의 위치를 확인하니 서해 상공이었다.
출국장을 빠져나오며 나는 아버지에게 전화했다.
- 삼흥호가 아니었어요.
아버지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나는 사진 파일을 하나씩 다시 눌러 보았다. 조타실 사진이 보였다. 조타기 위 벽면에 시계가 없었다. 바르셀로나 항구에서 조타실을 검증할 때 미처 그것을 확인하지 못했었다. 다음 사진을 확대했다. 휴대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그었다. 긋고, 긋고, 다시 그었다. ‘삼흥’, 검정 글자가 선명했던 사진이 온데간데없었다.
휴대전화 메시지가 도착했다. 삼흥호가 실종되었어요. 대사관 직원이 보낸 문자였다.
<당선소감>
시공간과 쉼표 너머 잇닿아 있을 ‘우주의 바다’ 생각
해녀는 부표를 끌어안고 숨을 고르며 휘파람 소리를 뽑아내었습니다. 파도가 노는 법은 없어서 해녀는 수면에서 분주했습니다.
해녀는 들숨을 머금고 물속으로 갔습니다. 두 다리로 허공을 크게 찼습니다. 해녀가 잠수해 들어간 숨구멍을 파도가 덮어서 바다는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
물 밖과는 달리 물의 안쪽은 돌연 둔중했습니다. 수면의 바다는 작은 바람에도 뒤채였지만 속 바다는 수면의 다급함에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속 바다는 거대한 점액질로 느리게 움직였습니다. 느릿한 그 공간에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실려 있었고, 끄트머리가 늘어진 해초들이 물의 흐름에 이끌렸습니다.
해녀는 갈고리로 해초를 걷어내면서 물속에 잠긴 갯바위의 밑둥치를 더듬어 나갔습니다. 말미잘이 촉수를 내어 물을 탔고, 바위틈에 들어앉은 군소가 보랏빛 경고음을 터뜨렸습니다.
갯바위 밑둥치에 갈라진 틈을 갈고리로 긁으면 물속 찌꺼기들이 부옇게 부유합니다. 어수선한 시야 너머 해녀는 참소라를 캐내어 바위를 발판삼아 수면으로 오릅니다.
햇살의 끄나풀들이 마중하며 빛의 기둥을 세웁니다. 꿈만 같은 기둥을 안내 삼아 부표의 좌표를 확인하고 해녀는 마지막 들숨을 물속에 내어줍니다.
윤슬이 바글거리고 해녀는 무사합니다.
제목을 써 두고 한참 지나 쉼표를 하나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바다,’
사는 일의 모든 시공간과 쉼표 너머 잇닿아 있을 우주의 바다를 언제나 생각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세 아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광주일보 관계자분, 장석주 선생님,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 동국대학교 영어영문학 전공 (동대학원 중퇴)
● 한국전력공사(2003~2022)
● 현재 한전CSC 근무
<심사평>
인간 세상과 천문 우주 과학계 풀이, 새로운 시도
소설은 그 어느 문학 장르보다 현실에 밀착해서 투시하고 호흡하는 생명체와 같다. 이제 한국의 현실, 나아가 현대사는 12.3 내란 사태 이전과 이후로 달라진다. 지금 우리는 이전의 현실 감각으로 소설을 읽고 쓰던 기류가 급변하는 예외 상태에 놓여 있다.
본심에 오른 작품들은 삶의 의미와 확장에 대한 질문과 탐구에 치중해 있었다. 이중 ‘해저터널’과 ‘그리고 바다,’를 놓고 최종적으로 고심했다. ’해저터널‘은 남동생을 잃은 화자(누이)와 그 동생과 연인 관계였던 우진이 각자의 상실의 아픔을 안고 함께 통영으로 여행을 떠나, 여행지의 장소성(해저터널)을 매개로 그동안 몰랐거나 스쳐보냈던 의문과 맞닥트리며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내용 전개와 흐름이 안정적인 가운데 군데군데 일상적인 감정어들이 노출되어 있어 긴장감을 떨어트렸다. 안정적인 익숙함을 넘어서는 새로움을 찾기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리고 바다,’는 우선 두 갈래 서사 운용과 각 갈래의 화법이 균형적으로 작동된 점이 돋보였다. 작가의 특권은 소재 를 선택하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운용하는가에 있다. 작품의 성취 수준, 개성(스타일, 새로움)에 대한 평가는 그 다음 일이다.
‘그리고 바다,’는 인간 세상의 작은 현실과 천문 우주 과학계 사이에 놓여 있는 불가사의를, 시간적으로는 현재와 과거(유년), 공간적으로는 한반도 이남의 작은 어촌과 지중해 라스팔마스 인근 바르셀로나를 병치시켜 풀어가고 있는데, 서사를 이끄는 두 겹의 층위가 구체적이면서 객관적으로 운용되고 있어 새로운 시도로 보았다. 특히 유년기 어촌과 아버지에 대한 장면과 묘사는 작가의 자질을 확인시켜주는 데 모자람이 없었다.
응모자들에게 애정과 격려의 마음을 전하고, 수상자에게 축하와 함께 지속적인 정진을 바란다.
심사위원 : 함정임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작품 개요: "그리고 바다"는 실종된 어선 '삼흥호'를 매개로 현실과 환상, 과학과 신비, 기억과 상실이 교차하는 복합적 서사를 펼치는 작품입니다. 사할린 고려인의 후예인 화자가 바르셀로나에서 발견된 아버지의 배를 확인하러 가는 여정을 통해 존재의 본질과 정체성, 그리고 인간과 우주의 관계를 탐구합니다.
형식적 특징:
1. 다층적 서사 구조
- 현재(바르셀로나)와 과거(어촌)의 교차
- 개인적 서사(가족사)와 우주적 서사(성간 천체)의 병치
- 기억과 현실, 과학과 신비의 경계 해체
2. 시공간의 중첩
- 지구와 우주의 공존
- 과거와 현재의 동시성
- 현실과 환상의 교차점
3. 과학적 상상력과 신비주의의 결합
- 우주 관측 서사와 개인적 기억의 융합
- 설명 불가능한 현상에 대한 과학적/신비적 해석
- 합리성과 비합리성의 공존
주제 분석:
1. 존재론적 탐구
- 사라짐과 나타남의 반복적 모티프
- 기억의 불확실성과 실재의 모호성
- 인간 존재의 유한성과 우주의 무한성
2. 디아스포라와 정체성
- 사할린 고려인의 역사적 맥락
- 뿌리 찾기와 소속감의 문제
- 세대 간 단절과 연속성
3. 과학과 신비의 공존
- 합리적 설명과 초자연적 현상의 충돌
- 인류의 기술적 한계와 우주의 신비
- 설명 불가능한 것들에 대한 태도
상징 체계:
1. 바다의 다층적 의미
- 기억의 저장소
- 현실과 환상의 경계
- 인간과 우주를 잇는 매개체
2. 삼흥호의 상징성
- 아버지의 노동과 삶의 궤적
- 잃어버린 과거의 표상
- 초현실적 이동의 매개체
3. 우주적 상상력의 표상
- 라그랑주 점
- 성간 천체
- 미지의 영역에 대한 동경
현대적 의의:
1. 문학적 성취
- 과학적 담론과 서정적 상상력의 결합
- 현실과 환상의 경계 해체
- 새로운 서사적 가능성 제시
2. 사회적 함의
- 디아스포라의 현대적 의미 탐구
- 과학 기술 시대의 신비 체험
- 인간 소외와 연대의 가능성
3. 철학적 의미
- 존재의 근원적 물음
- 기억과 정체성의 관계
- 인간과 우주의 관계 재정립
이 작품은 과학적 상상력과 서정적 감수성을 결합하여 현대인의 존재론적 고민을 새로운 차원에서 조명합니다. 특히 디아스포라적 정체성, 과학 기술의 한계,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경이로움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적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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