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
당선작>

 

  생각하는 나무 / 이문희

 

나는 몽상가답게 낙천적이죠

구름모자를 즐겨 써요

서서 먹고 서서 자는 동안에도 반짝반짝 사색을 즐기죠

이파리가 많다는 건 생각이 많다는 증거랍니다

그래서 외롭지도 외로운 줄도 모르죠

빽빽한 생각에 몰두하다 보면 궁금한 게 참 많아요

덩굴장미는 용암의 뿌리에서 분출한 식물성 화산일까

바다가 파도 창고라면 하늘은 구름 공장일까

누가 저 많은 구름들을 져 날랐을까

매미에게는 몇 마력 울음의 엔진이 장착된 걸까

또 이런 생각도 해요

하늘에 갇힌 별들은 자유로울까

물고기는 어디를 날아가려 지느러미를 가진 걸까

무지개는 하늘 놀이터의 미끄럼틀일까 아니면 하늘 바깥으로 나가는 통로일까

나는 새들에게 의자를 내어주는 게 취미라면 취미

노래를 하고 싶거나

한바탕 춤을 추고 싶을 땐 바람 몰이꾼이 되어요

매일매일 석양을 바라보며

서쪽이라는 당신에게 시를 지어 주죠

누구나 나의 친구가 될 수 있지만

길거리에서 배낭 메고 여행 중인 달팽이를 만났다고 해서

버스정류장에 데려다주겠다는 생각은 꺼주세요

오늘도 생각의 평수를 넓혀가는 나는 자유인이니까요

낮달에게 안개에게 늘 새로운 말을 걸어요

걷느라 생각에 물든 당신이라면

그늘에 잠깐 쉬어 가셔도 됩니다

나는 생각의 씨앗을 다 모아 땅에 뿌리려고 해요

파랗게 돋아나는 생각들을 환호하며 매만지게 될 거예요

나는 파란 마을 파란 집에 살아요


 

  <당선소감>

 

   시와 이별하려 했는데…나의 시를 믿고 계속 쓰겠다

아무렇지 않게 멀어지고 아무렇지 않게 가까워졌다. 나와 시가 그랬다. 그리고 딱, 애인이 그랬다. 나는 당신을 잊으려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깨끗이 손 털고 끝내려했다. 그렇게 당신에게 결별을 말하려는데 우리 다시 시작해, 라며 내 손목을 잡았다. 내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순간에는 차갑게 외면하더니, 이제와 우리 못 헤어진대요. 오년만의 화해라니! 나는 이렇게 저녁식탁에서 당선전화를 받았다.

시의 언어들은 좀처럼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단어와 단어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부유하던 날들이 많았다. 잡히는가하면 어느새 미끄러져 달아나고 쓸 수 없는 절망이 머리 끝까지 차올라 더 이상 시를 쓰지 못하는 사람으로 살까봐 두려웠다. 몇 번의 최종심은 차라리 독약이었다. 희망고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독약을 삼켰고 그 희망고문으로 다시 도전했고 끝내 나의 시를 믿었다.

내 시의 최초의 독자인 사랑하는 가족들과, 나의 통증의 마디인 어머니 안종모씨, 30년도 훨씬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이충선씨, 이름을 불러봅니다. 제 이름 가운데에 글월문(文)을 넣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영원한 내편, 영, 숙, 인, 경, 미. 동, 림, 지, 혜. 고마워요. 그대들을 떠올리며 생각하는 나무가 될게요. 시로 인해 인연을 맺은 ‘전주풍물시동인회’ 시인들께도 감사함을 전합니다.

끝으로 부족한 시를 선해주신 심사위원님들과 광주일보사에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푸르게 싱싱한 시 쓰겠습니다. 빚진 마음으로 세상을 읽겠습니다. 나는 계속 쓸게요.

● 전북 전주 출생
● 2015년 계간 ‘시와 경계’ 등단


 

  <심사평>

  

  시행을 끌고가는 능란함에서 내공 느껴졌다

요즘 삶의 빡빡함을 반영한 탓일까. 삶의 곤핍과 우울한 정조를 에두르지 않고 보여주는 시들이 주를 이루었다. 응모작을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는데, 그것은 시에 현실의 중압감이 고스란히 삼투된 까닭에서일 테다. 막장 현실에서 떨어져 나온 사유의 파편들, 소상공인들이 현실과 맞서 고투하는 모습들, 일그러진 현실이 불가피하게 불러온 꿈의 좌초를 다룬 시들이 눈에 자주 띄었다. 응모자들이 다 진지했지만, 개성이 돋보이는 자기의 목소리, 산술적 평균을 깨고 솟구치는 이미지의 돌발성, 사유의 도약으로 독자의 의식을 내리치는 죽비 같은 시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는 점이 못내 아쉬웠다.

열 네 분의 작품들이 본심에 올랐는데, 최종심에서 검토한 것은 조지은 씨의 ‘이상한’ 외 2편, 이문희 씨의 ‘생각하는 나무’ 외 2편, 박시유 씨의 ‘엉겅퀴’ 외 2편, 김탄희 씨의 ‘쌍둥이자리’ 외 2편 등이다. 조지은 씨는 상투성을 깨는 이미지와 감각의 돌올함에서 단연 돋보이고, 박시유 씨는 핍진한 체험에서 길어낸 시적 진정성이 예사롭지 않으며, 김탄희 씨는 투고작 ‘921’을 읽을 때 눈이 번쩍 뜨였는데, 모호함을 뚫고 나오는 목소리에 묘한 매혹이 있었다. 헌데 ‘921’이 소품이고, 다른 응모작들이 이 시를 받쳐주지 못했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다들 개성과 시적 수일함이 또렷했지만 심사자가 당선작으로 고른 시는 이문희 씨의 ‘생각하는 나무’다. 시행을 끌고나가는 능란함에서 만만치 않을 내공을 엿볼 수 있었다. 시편의 수준이 들쭉날쭉하지 않고 두루 고른 점, 다른 응모자들과 견줘 시의 완성도에서 앞선 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파리가 많다는 건 생각이 많다는 증거랍니다”, “바다가 파도 공장이라면 하늘은 구름 공장일까/누가 저 많은 구름들을 져 날랐을까” 같은 싯구들은 알아듣기 쉬우면서도 천진한 동화적 발상을 드러낸다. 각각의 시행들이 품은 사유의 조각이 시의 전체와 유기적으로 맞물린 데서 더욱 돋보였다는 걸 밝힌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박수를, 아깝게 떨어진 낙선자에게는 위로를 전한다.

심사위원 : 장석주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작품 개요: "생각하는 나무"는 나무의 시점을 통해 자유로운 상상력과 철학적 사유를 결합한 독특한 시입니다. 몽상가적 화자를 통해 현대인의 고독과 실존적 문제를 따뜻하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형식적 특징:

1. 언어와 표현
 - "반짝반짝", "빽빽한" 등 감각적 언어 활용
 - 의문형 문장의 연속적 배치를 통한 사유의 확장
 - 일상적 언어와 시적 상상력의 조화

2. 구조와 리듬
 - "나는"으로 시작하는 문장의 반복을 통한 리듬감
 - 자유로운 연과 행의 구성
 - 대화체와 독백의 교차를 통한 친근감 형성

3. 이미지와 상징
 - 구름모자: 자유로운 상상력의 상징
 - 이파리: 다양한 사유의 표상
 - 파란 마을: 이상적 공간의 상징

내용적 분석:

1. 사유와 상상의 세계
 - 일상적 현상에 대한 철학적 질문
 - 자연현상에 대한 창의적 해석
 - 존재에 대한 근원적 탐구

2. 자연과의 교감
 - 새, 매미, 달팽이 등 자연물과의 소통
 - 바람, 구름, 석양과의 교감
 - 생명의 순환에 대한 이해

3. 자유와 실존
 - "자유인"으로서의 자기 인식
 - 고독을 넘어서는 사유의 힘
 - "생각의 평수"를 넓혀가는 존재적 성장

현대적 의의:

1. 문학적 성취
 - 동심과 철학의 조화로운 결합
 - 자연 친화적 상상력의 확장
 - 새로운 시적 언어의 가능성 제시

2. 사회적 함의
 - 현대인의 고독에 대한 창조적 극복 방안 제시
 -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공존 모색
 - 긍정적 세계관의 회복

3. 교육적 가치
 - 창의적 사고력 함양의 모델
 - 생태학적 상상력 고취
 - 자아 성찰의 계기 제공

이 시는 나무라는 친근한 화자를 통해 현대인의 실존적 고민을 따뜻하게 포용하며, 상상력과 사유의 확장을 통한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특히 철학적 깊이와 동심의 순수성을 조화롭게 결합하여, 독자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성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