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
당선작>

 

  수어(手語) 배우기 / 김이령

 

손끝에서 부푸는 말
둥글게 빚어진다

듣지 못한 아이들은
손으로 글썽이고

모음은 부스러기가
많아서 따스하다

창밖엔 소리 없이
떠다니는 흰 눈들

손으로 빚어놓은
새들이 눈을 뜨면

첫 눈은 입을 벌린 채
가만히 녹아간다

침묵으로 세상은
환하게 오는 거라

꿈결에 처음 듣는
자신의 목소리에

말들은 잇몸을 가져
벙긋이 태어난다


 

  <당선소감>

 

   모래알 줍는 심정으로 시조 지킬 것

부족한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택해주신 심사위원님께 머리 숙여 감사 드립니다.

시조를 쓰는 동안 지치거나 어려운 순간이 올 때마다 마지막까지 제 시조를 선택해주신 선생님들의 고민과 응원을 기억하겠습니다.

시조를 공부할 때마다 그 깊이와 울림에 대해 매번 감동하고 있습니다. 말이 넘치는 제 언어는 표류만하고 있구나 생각이 듭니다. 혼자서라도 모래알을 줍는 심정으로 시조를 지켜내는 사람이 되어 가겠습니다.

매번 더 나은 실패를 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봄이오면 나무에게서 바다냄새가 날것 같습니다.

나무속으로 들어가 바다를 볼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소모하는 것들로부터 나를 지켜내겠습니다. 계속 쓰는 겁니다. 계속 살아가겠습니다.

당선 소식을 듣고 고마운 사람들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한 명 한 명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지만 지면을 아끼고 두고두고 마음을 전하겠습니다.

● 본명 김병곤
● 1976년 광주광역시(당시 전남 광주) 출생
● 창작집단 순삭 동인
● 서울 거주.


 

  <심사평>

  

  소통부재 현실에 소통 실현 돋보여

예년에 비해 응모 편수도 많았지만, 시조의 정형을 잘 이해한 작품들도 많이 늘어 시조를 꾸준히 공부하는 사람의 증가세를 방증해 주었다.

고령화 사회가 반영돼 요양원·치매를 다룬 응모작이 눈에 많이 띄었다. 그러나 대부분 시적 성취를 거두지 못하고 있어 줄곧 아쉬웠다. 현 시국을 은유한 문장은 보이지 않았다. 부당한 현실을 고발하는 시선 또한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다. 응모자의 연륜을 짐작하게하는 인생을 관조한 작품이 하나의 추세임을 확인했다. 그중 오늘에 기반을 두지 않고 회고 정서로만 머문 경우는 심사위원의 눈길을 붙잡지 못했다.

여러 작품 중 논의를 거쳐 ‘몽돌밭’, ‘섶다리’, ‘수어手語 배우기’ 세 편이 마지막까지 남았다. ‘몽돌밭’은 시제가 비교적 낯익음에도 깊이 있는 사유로 안정감 있게 끌고 가는 화법에 신뢰가 갔다. 그렇지만 신선함이라는 측면에선 다소 밀리는 느낌이었다. ‘섶다리’는 ‘나무는 죽어서도 제 뼈를 내어준다’로 시작하는 첫 수 초장의 시상 전개가 돋보였다. 셋째 수에 이르러 잠시 관념에 기대는 사이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힘이 한풀 꺾이는 것 같았다.

‘수어 배우기’ 또한 첫 수 초장이 가슴을 두드렸다. 게다가 소리 없는 소리를 형상화하는 집중력도 높이 살 만했다. 함께 보내온 작품 역시 탄탄한 이미지가 흐트러짐 없어 높은 점수를 받았다. 김이령의 ‘수어 배우기’를 당선작으로 정한다. 수어는 한국수화언어법 제정 이후 한국어와 대등한 공용어 지위를 갖게 되었다. TV 뉴스에서 자막이 아닌 수어 통역사가 등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자기 말만 앞세우면서 소통 단절이 점점 확산되는 모습을 보인다. 이에 소통의 실현을 전제로 하는 ‘수어 배우기’의 의미가 더욱 와 닿는 듯하다. 새로운 시조시인의 출현을 축하하며 빛나는 작품으로 다시 만나길 기대한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뿐만 아니라 당선권에 근접한 작품을 보내주신 분들의 노력에도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 : 정용국, 이광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작품 개요: "수어(手語) 배우기"는 청각장애 아동들의 언어 습득 과정을 통해 소통의 본질과 언어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현대 시조입니다. 전통적 시조 형식을 바탕으로 현대적 감성과 사회적 의미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형식적 분석:

1. 구조적 특징
 - 전통 시조의 3장 6구 구조를 기반으로 현대적 변용
 - 시각적 이미지와 촉각적 감각의 조화로운 배치
 - 연과 연 사이의 유기적 연결을 통한 의미의 확장

2. 시어와 이미지
 - "손끝에서 부푸는 말": 언어의 물질성과 생명력
 - "둥글게 빚어진다": 창조적 행위로서의 언어
 - "손으로 글썽이고": 시각적 언어의 정서적 표현

3. 감각적 특성
 - 촉각: 손끝의 감각을 통한 언어 표현
 - 시각: 눈(雪)과 빛을 통한 순수성 표현
 - 청각: 침묵과 소리의 대비적 구조

내용적 분석:

1. 수어의 탄생과 성장

손끝에서 부푸는 말
둥글게 빚어진다

 - 언어가 물질적으로 형상화되는 과정
 - 손끝을 통한 의미의 창조
 - 소통의 새로운 가능성 발견

2. 침묵과 표현

창밖엔 소리 없이
떠다니는 흰 눈들

 - 침묵 속에 담긴 풍요로운 의미
 - 시각적 언어의 아름다움
 - 소리 없는 세계의 깊이

3. 언어의 부활

말들은 잇몸을 가져
벙긋이 태어난다

 - 새로운 형태의 언어 탄생
 - 침묵에서 피어나는 표현
 - 소통의 기쁨과 희망

주제 의식:

1. 언어의 본질
 - 소통 수단으로서의 다양한 가능성
 - 비언어적 표현의 가치
 - 감각을 통한 의미 전달

2. 소통의 진정성
 - 청각장애인의 언어 세계 이해
 - 침묵 속 깊이 있는 교감
 - 차이를 넘어선 인간적 연대

3. 희망과 가능성
 - 새로운 표현 방식의 발견
 - 장애를 넘어선 창조적 소통
 - 인간 존재의 무한한 가능성

현대적 의의:

1. 문학적 성취
 - 전통 시조의 현대적 재해석
 - 감각적 언어의 새로운 가능성 제시
 - 시적 상상력의 확장

2. 사회적 함의
 - 장애에 대한 새로운 시각 제시
 - 다양성의 가치 인정
 - 진정한 소통과 이해의 중요성

3. 교육적 가치
 - 언어 교육의 새로운 관점
 - 공감과 이해의 방법론
 - 다양한 표현 방식의 존중

이 시조는 수어라는 특별한 언어를 통해 인간 소통의 본질을 탐구하며, 청각장애라는 현실적 제약을 새로운 가능성으로 승화시킵니다. 특히 손짓과 침묵이라는 비언어적 요소를 통해 더 깊은 소통과 이해의 가능성을 제시하며, 현대 사회에 필요한 진정한 소통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