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
당선작>

 

  미대출 구역 / 이상무

 

[장면 1] 42번 좌석의 얼룩

오전 8시 40분. 구립도서관 셔터 앞에는 벌써 다섯 명이 들러붙어 있었다.

나는 그들과 섞이기 싫어 화단 경계석에 엉덩이를 걸쳤다. 엉덩이가 시려왔지만 참았다. 저 무리―등산복을 입고 무료 신문을 나눠 보는 노인 셋, 패딩 모자를 뒤집어쓴 고시생 둘―사이에 껴서, 셔터가 올라가기만을 기다리며 발을 구르는 꼴은 죽기보다 싫었다. 나는 가방에서 읽지도 않을 시집을 꺼내 펼쳤다. 활자를 보는 게 아니라, ‘나는 너희와 다르게 활자를 다루는 사람’이라는 걸 과시하기 위한 비루한 연기였다.

드르륵, 쾅. 관리인이 쇠꼬챙이로 셔터 고리를 걸어 올렸다. 녹슨 철문이 말려 올라가는 소리가 꼭 짐승의 내장이 꼬이는 소리 같았다.

사람들이 좀비처럼 로비로 빨려 들어갔다. 나도 시집을 겨드랑이에 끼고 일어섰다. 뛰지는 않았다. 다만 경보 선수처럼 골반을 빠르게 움직였다. 품위와 속도,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내 걸음은 우스꽝스럽게 꼬였다.

키오스크 앞에 섰다. 손가락이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3열람실. 42번. 종이 표가 툭 떨어졌다.

3열람실 42번. 기둥 뒤 구석. 사서의 감시망에서 벗어난 사각지대. 그리고 책상 왼쪽 모서리에 누군가 담배빵을 지져놓은 듯한 검은 얼룩이 있는 자리. 나는 그 흉터 같은 얼룩이 좋았다. 그게 내 지정석의 표식 같아서.

열람실 문을 열자 훅, 하고 냄새가 끼쳐왔다. 오래된 책에서 나는 먼지 냄새, 락스로 닦은 바닥 냄새, 그리고 덜 마른 빨래를 입고 온 누군가의 섬유유연제 냄새가 뒤섞인, 도서관 특유의 ‘습한 침묵’의 냄새.

나는 42번에 앉아 가방을 풀었다. 지퍼 소리가 너무 클까 봐 천천히 열었다. 5년 전, 신춘문예 상금 300만 원 중 150만 원을 털어 샀던 맥북 에어를 꺼냈다. 한때는 스타벅스 창가 자리에 어울렸던 은색 알루미늄 보디는 이제 모서리가 찌그러지고, 액정 상단엔 정체불명의 기포가 생겨 있었다. 전원 버튼을 눌렀다. 위이이잉―. 팬 돌아가는 소리가 이륙하는 경비행기처럼 요란했다. 나는 황급히 손바닥으로 노트북 자판 위를 덮었다. 소리가 좀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주변 눈치를 살폈다.

맞은편, 43번. 역시나 와 있었다. ‘회색’이라 불리는 사내. 그는 오늘도 회색 후드 티를 입고 있었다. 모자 테두리가 닳아서 실밥이 너덜거리는 그 옷. 그의 책상 위에는 다이소에서 파는 3천 원짜리 흰색 전자시계, 제트스트림 0.7밀리미터 볼펜 세 자루, 그리고 뚜껑이 살짝 덜 닫힌 텀블러가 놓여 있었다. 그는 내가 자리에 앉든 말든, 코를 책상에 박을 기세로 토익 영단어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킁. 그가 코를 먹었다. 30초 간격이다. 비염인가. 킁. 또다시.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거슬린다. 하지만 말할 수 없다. 여기는 침묵이 법인 곳이니까. 나는 대신 내 노트북 화면을 닦았다. 안경 닦이로 액정의 지문을 닦고, 또 닦았다. 글을 쓸 생각은 안 하고, 검은 화면에 비친 내 퀭한 눈동자만 닦아내고 있었다.

부팅이 끝났다. 바탕화면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파일 하나. 장편_최종_수정_진짜최종_V3.docx

파일 아이콘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야, 안 여냐?” 하고 시비를 거는 것 같았다. 나는 터치패드 위에서 손가락을 빙빙 돌렸다. 커서가 화면 위를 무의미하게 배회했다.

이 80센티미터짜리 합판 책상. 내 유일한 영토. 여기서 나는 작가여야 했다. 아니, 작가인 척이라도 해야 했다. 하지만 내 손은 워드 프로세서가 아니라 웹 브라우저 아이콘으로 미끄러졌다. 검색창에 습관적으로 입력했다.

‘LF 쏘나타 가스차.’ ‘LPG 일반인 이전.’ ‘개인택시 부활.’

화면에 흰색 쏘나타 사진이 떴다. 주행거리 18만 킬로미터. 조수석 문짝 교환 이력 있음. 350만 원. 살 수도 없는 똥차의 스펙을 꼼꼼히 읽어 내려갔다. 펜더가 교환됐으면 뼈대는 괜찮은 거 아닌가? 미션 튕김은 없을까? 소설의 플롯을 짜야 할 머리로, 남이 타다 버린 차의 내구성을 계산하고 있었다.

그때, 맞은편 43번이 볼펜을 딱,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나는 흠칫 놀라 어깨를 떨었다. 그가 나를 쳐다본 건 아니었다. 그는 그저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한숨을 쉬었을 뿐이다. 정수리가 휑했다. 스트레스성 탈모인가.

그의 정수리와 내 노트북 화면 속 쏘나타. 그리고 깜빡이는 커서. 오전 9시 15분. 아직 글은 한 줄도 쓰지 않았다. 나는 텀블러의 미지근한 물을 한 모금 삼켰다. 물에서 쇠 맛이 났다.

[장면 2] 터진 김밥과 사원증의 반사광

11시 25분. 나는 노트북을 덮었다. 배가 고파서가 아니다. 12시가 되면 도서관 바로 옆, 구청에서 쏟아져 나올 ‘진짜 직장인’들과 마주치기 싫어서였다.

목에 파란색, 주황색 사원증을 건 그들. 밥을 먹고 커피를 들고 산책을 하는 그들의 동선은 내 도피처와 정확히 겹쳤다. 가을 햇살 아래서 번쩍거리는 그 빳빳한 플라스틱 카드가 내 눈에는 무슨 면죄부나 승차권처럼 보였다. 나는 그 빛이 싫었다. 그래서 쥐새끼처럼 30분 일찍 움직여야 했다.

나는 지하 매점으로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공기가 무거워졌다. 눅눅한 지하 냄새. 라면 국물 냄새와 젖은 우산 냄새, 그리고 자판기 커피 특유의 달짝지근한 프림 냄새가 엉겨 붙은 패배자들의 냄새.

자판기 옆, 다리 하나가 짧아 덜거덕거리는 테이블이 내 식탁이었다. 주머니에서 2,500원짜리 야채 김밥 한 줄을 꺼냈다. 아침에 편의점에서 사 온 것이다. 매점 아주머니의 눈치를 보지 않으려면 외부 음식은 최대한 빨리, 은밀하게 처리해야 했다.

바스락. 지하의 정적 속에서 은박지 벗기는 소리가 유난히 날카롭게 울렸다. 마치 “여기 밥 못 벌어먹는 놈 있습니다!” 하고 확성기로 떠드는 것 같았다.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어깨를 웅크리고 은박지를 깠다. 김밥 옆구리가 터져 있었다. 검은 김 사이로 희멀건 밥알과 노란 단무지가 삐져나와 있었다. 꼭 내 인생 같네, 씨발. 나는 터진 부위를 입안으로 쑤셔 넣었다. 차가웠다. 냉장고에 너무 오래 있었는지 밥알이 모래알처럼 서걱거렸다. 씹을 때마다 턱관절이 뻐근했다.

“어머, 작가님?”

목구멍으로 김밥을 넘기려던 찰나, 등 뒤에서 명랑한 목소리가 꽂혔다. 사레가 들릴 뻔했다. 컥, 하고 기침을 참으며 고개를 돌렸다. 김지연 사서였다.

그녀는 환했다. 지하의 형광등이 그녀 머리 위에서만 켜진 것 같았다. 한 손에는 파리바게뜨 샌드위치가, 다른 한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아메리카노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목에는, 내가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구립도서관 사서’라고 적힌 사원증이 덜렁거리고 있었다.

“아… 네. 식사하러 오셨네요.”

나는 입안에 꽉 찬 김밥 덩어리를 햄스터처럼 볼 한쪽으로 몰아넣고 웅얼거렸다. 입가에 혹시 김 가루가 묻었나 싶어 손등으로 쓱 훔쳤다. 손등에 참기름이 번들거렸다. 비참했다.

그녀는 내 맞은편 의자를 빼어 앉았다.

“구내식당 메뉴가 코다리 조림이라서요. 저 코다리 싫어하거든요. 작가님 뵈니까 반갑네요. 요새 통 말씀을 못 나눠서.”

그녀가 비닐 포장을 뜯으며 웃었다. 악의 없는, 1급수의 맑은 미소. 그녀는 모른다. 내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중고차 사이트에서 ‘침수차 구별법’이나 읽고 있다는 걸. 알면서 모른 척하는 걸까? 아니, 그녀의 눈동자는 너무 투명해서 의심할 수가 없었다. 그게 더 잔인했다.

“요새 작업은 좀 어떠세요? 아까 보니까 미간을 막 찌푸리시고… 엄청 고뇌하시던데.”

고뇌라. 쏘나타 펜더 교환 비용을 계산하느라 인상을 쓴 건데. 나는 물을 마시는 척하며 뻔뻔하게 대꾸했다.

“뭐… 늘 그렇죠. 이번 소설은 호흡이 좀 길어서요. 지금은… 그래요, 엉킨 실타래를 끊어내는 중입니다.” “와, 멋지다. 실타래.”

그녀가 감탄하며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아삭, 양상추 씹는 소리가 싱그럽게 들렸다. 내 입안의 눅눅한 단무지와는 차원이 다른 소리였다.

“저 사실, 작가님 등단작 <심해의 방> 진짜 좋아했거든요. 작가님 저희 도서관 오시고 나서, 제가 팀장님 졸라서 희망 도서로 신청도 했어요. 아시죠?”

<심해의 방>. 5년 전, 나를 작가로 만들어준 단편. 그때 심사평이 뭐였더라. ‘건조한 문체와 우울의 미학’이었나. 그 빌어먹을 ‘우울의 미학’ 때문에 나는 아직도 이 우울한 지하를 못 벗어나고 있는데.

“감사합니다. 사서님 덕분에 제 책이 여기 꽂혀있네요.” “근데 좀 아쉬운 게 있어요.”

그녀가 불쑥, 말을 던졌다. 입가에 묻은 마요네즈를 닦으며.

“그 책… 처음엔 신간 코너에 뒀다가, 지난달에 서가로 옮겼거든요? 근데… 아직 대출 이력이 ‘0’이에요.”

순간, 지하 매점 환풍기 소리가 뚝 끊긴 것 같았다. 그녀의 말은 팩트였다. 하지만 팩트라서 뼈가 아픈 게 아니라,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대출 이력 제로. 5년 동안, 이 도서관을 드나드는 수만 명의 사람 중 단 한 명도 내 책을 꺼내 보지 않았다는 뜻이다. 내 활자들은 5년째 캄캄한 책장 사이에서 질식해 죽어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순수 문학은 요새 인기가 없으니까요.”

그녀가 황급히 덧붙였다. 나를 위로하려는 말투였지만, 그건 확인 사살이었다.

“괜찮습니다. 뭐, 책도 주인을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죠.”

나는 짐짓 여유로운 척, 쿨한 예술가인 척 대꾸했다. 하지만 식탁 아래 내 왼손은 허벅지를 쥐어뜯고 있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다.

“맞아요! 언젠가 꼭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힘내세요, 작가님!”

그녀가 주먹을 불끈 쥐며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목에 걸린 사원증이 짤랑, 하고 테이블에 부딪혔다. 그 맑은 플라스틱 소리가 내 귀에는 꼭 **‘너는 가짜고 나는 진짜야’**라고 비웃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녀가 다 먹고 일어설 때까지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는 척했지만, 종이컵은 이미 비어 있었다.

그녀가 사라지자 나는 남은 김밥 하나를 입에 쑤셔 넣었다.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톱밥 뭉치를 삼키는 기분이었다. 은박지를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장서 폐기 기준. 도서관학 개론에서 봤던 문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1. 오손이나 파손이 심해 열람이 불가능한 도서. 2. 최근 3년(혹은 5년)간 대출 실적이 전무하여 이용 가치가 상실된 도서.

나는 몇 번일까. 아니, 책이 아니라 인간도 폐기 기준이 있다면. 나는 지금 폐기 직전의 대기 상태일까, 아니면 이미 폐기 도장이 찍힌 상태일까.

입안에 낀 김 가루를 혀로 떼어내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하의 공기가 폐부 깊숙이, 곰팡이처럼 달라붙었다.

[장면 3] 1,150만 원짜리 진통제와 검은 비명

오후 2시 10분. 도서관이 거대한 위장(胃腸)으로 변하는 시간이다. 점심을 먹은 수백 명의 인간이 뿜어내는 이산화탄소가 천장에 고여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공기가 젤리처럼 끈적해진다. 여기저기서 끄윽, 트림을 참는 소리와 뱃속에서 꾸르륵거리는 소화음이 교향곡처럼 들려왔다.

내 뇌도 소화되고 있었다. 식곤증과 자기혐오가 한 덩어리가 되어 전두엽을 짓눌렀다. 모니터 속 커서는 30분째 제자리에서 깜빡였다. 저 깜빡임이 “너 병신이야? 너 병신이야?” 하는 모르스 부호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슬그머니 Alt+Tab을 눌렀다. 하얀 워드 프로세서 창이 사라지고, 익숙한 빨간색 로고가 떴다. ‘엔카’. 내 유일한 마약.

검색 필터를 능숙하게 세팅했다. 현대 > LF 쏘나타 > LPG > 주행거리 10만킬러미터 이하 > 무사고. 엔터. 화면에 매끈하게 닦인 흰색 쏘나타들이 줄지어 떴다.

[16년형, 렌트 이력 있음, 휀다 단순 교환, 1,150만 원.]

나는 딜러가 써놓은 ‘성능 기록부’를 경전처럼 읽어 내려갔다. 미세 누유 없음. 조향 장치 양호. 내 통장 잔고는 28만 원이다. 다음 달 월세도 밀릴 판이다. 하지만 나는 계산기를 두드렸다. 60개월 할부로 하면 월 20만 원… 담배를 끊고, 커피를 줄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이 차를 사면 7번 국도를 달릴 수 있다. 바다를 보면, 그 지평선을 보면 막힌 첫 문장이 뚫릴지도 모른다.

말도 안 되는 개소리인 걸 안다. 차가 없어서 글을 못 쓰는 게 아니다. 그냥 내가 썩은 거다. 하지만 나는 그 **‘1,150만 원짜리 진통제’**를 끊을 수가 없었다. 모니터 속 차가운 금속성 광택만이 나를 위로했으니까.

탁!

고요한 수면 위로 돌멩이가 떨어진 듯한 파열음.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맞은편 43번, ‘회색’이었다.

그가 볼펜을 책상에 내리꽂았다. 도서관 바닥에 떨어져 굴러가는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평소의 그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는 6개월 동안 단 한 번도 볼펜을 떨어뜨린 적이 없다. 늘 0.5초의 오차도 없이 책장을 넘기던 인간 메트로놈이 멈췄다.

그는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액정 불빛이 그의 창백한 턱 밑을 유령처럼 비췄다. 무슨 문자가 온 걸까. 최종 합격? 불합격? 아니면 “더는 뒷바라지 못한다”는 고향 집의 통보?

그의 어깨가 들썩였다. 처음엔 웃는 줄 알았다. 하지만 곧이어 “으득” 하고 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두 손으로 자기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회색 후드 모자가 벗겨지고, 떡진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로 삐져나왔다. 그는 머리카락을 뽑을 기세로 당기고 있었다.

내 모니터 속 쏘나타는 이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침이 꼴깍 넘어갔다. 무서웠다. 그가 무너지고 있었다. 나의 전우, 나의 거울, 나의 성실한 경쟁자였던 그가, 마치 나사가 풀린 기계처럼 해체되고 있었다.

갑자기 그가 벌떡 일어났다. 끼이익―.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긁는 소름 끼치는 소리. 사람들이 일제히 43번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는 이미 눈에 뵈는 게 없는 사람 같았다.

그는 책상 위의 물건들을 가방에 쓸어 담기 시작했다. 정리? 아니, 그건 청소였다. 쓰레기를 치우는 몸짓이었다. 아끼던 토익 책이 구겨지든 말든 가방에 처박았다. 필통 지퍼를 잠그지도 않고 던져 넣었다. 좌르륵, 볼펜들이 가방 안에서 쏟아지는 소리가 났다.

‘가는 거야? 지금? 오후 2시에?’

공포감이 엄습했다. 저 자리는 그의 요새였다. 그가 저기서 버텨주었기에, 나도 “저놈도 하는데 나도 버텨야지” 하고 자위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가 탈영한다. 이 좆같은 전선에서 나만 남겨두고.

그는 가방을 둘러메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다. 쾅. 유리문이 닫히며 3열람실의 공기가 한 번 출렁였다.

적막이 다시 찾아왔다. 사람들은 “뭐야?” 하고 몇 마디 수군대더니, 1분도 안 돼 다시 고개를 처박았다. 도서관은 잔인할 만큼 회복력이 빨랐다. 타인의 불행이나 이탈 따위는 금방 소화해 버리는 거대한 위장처럼.

텅 빈 43번 자리. 그곳에는 그가 떨어뜨린 다이소 탁상시계와, 지우개 가루, 그리고 책상 모서리에 붙여두었던 노란색 포스트잇 한 장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43번 자리 옆을 지나갔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 나는 슬쩍 손을 뻗어 그 포스트잇을 낚아챘다. 손바닥에 땀이 차서 종이가 쩍 달라붙었다.

화장실 가장 안쪽 칸. 나는 문을 잠그고 변기 커버 위에 앉았다. 떨리는 손으로 훔쳐 온 종이를 폈다.

무언가 적혀 있을 줄 알았다. [엄마 미안해] 라든가, [할 수 있다] 같은 진부한 다짐이라도.

없었다. 글자가 없었다. 대신 난도질이 있었다.

검은 볼펜으로 한 곳을 미친 듯이 그어댄 자국. 가로, 세로, 대각선. 수백 번의 선이 겹치고 겹쳐서, 종이 한가운데가 시커멓게 파여 있었다. 잉크 찌꺼기가 뭉쳐 번들거렸다. 종이는 거의 뚫리기 직전이었다. 뒷면을 보니 볼펜 심이 눌러 쓴 자국이 우둘투둘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 좁은 종이 위에서 볼펜을 쥐고 “씨발, 씨발, 씨발!” 하고 비명을 질러댔을 그의 손놀림이.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 검은 덩어리는 내 원고보다 더 소설적이었다. 나는 5년 동안 단 한 번도 이렇게 뜨겁게 종이를 학대해 본 적이 없다. 나는 늘 폼 나는 문장을 쓰려고 키보드만 살살 두드렸지, 이렇게 바닥까지 긁어본 적이 없다.

그는 떠났고, 나는 남았다. 그는 자기 분노를 토해내고 떠났는데, 나는 내 분노를 예쁜 문장으로 포장하려다 실패해서 여기 남았다.

나는 구겨진 포스트잇을 바지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었다. 허벅지에 닿는 종이의 감촉이 날카로웠다. 마치 훔친 흉기처럼.

자리로 돌아왔다. 모니터엔 여전히 [무사고 쏘나타]가 떠 있었다. 나는 마우스를 잡고 창을 닫았다. X 버튼을 누르는데 손가락이 떨렸다. 도망칠 곳은 없다. 7번 국도 따위는 없다.

나는 처음으로 빈 워드 프로세서 화면을 정면으로 노려보았다. 주머니 속에서 그 검은 비명이 바스락거렸다.

[장면 4] 은행 사은품 노트와 도둑질

오후 6시 30분. 도서관의 물이 갈리는 시간이다. 낮 시간을 죽치던 등산복 노인들과 전업주부들이 저녁밥을 차리러, 혹은 먹으러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그 빈자리를 학교가 끝난 교복들과, 퇴근한 직장인들이 밀물처럼 채운다.

공기의 냄새가 바뀐다. 파스 냄새와 묵은 나물 냄새가 빠지고, 치킨 냄새, 떡볶이 국물 냄새, 그리고 밖에서 묻혀 온 차가운 매연 냄새가 섞인다. ‘생활’의 냄새다.

사람들이 가방을 싸서 우르르 나갔다. 지이익, 지이익. 여기저기서 패딩 지퍼 올리는 소리가 신경질적으로 들렸다. 나도 배가 고팠다. 위장이 비어서 쪼그라드는 느낌이 났다. 하지만 엉덩이를 뗄 수 없었다. 지금 나가면 저 ‘저녁이 있는 삶’을 사는 인간들과 섞여야 한다. 나는 그들의 활기찬 귀가 행렬에 끼어들 자신이 없었다. 차라리 어둠 속에 남아 ‘야근하는 고독한 작가’ 코스프레를 하는 편이 내 쪽팔림을 가리기엔 유리했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바스락. 아까 화장실에서 훔쳐 온 43번의 포스트잇. 손끝에 닿는 구겨진 종이의 모서리가 면도날처럼 날카로웠다.

나는 노트북 화면을 보았다. 하얀 워드 창. 커서는 여전히 깜빡이고 있었다. 장편_최종_수정_진짜최종_V3.docx

갑자기 토기가 치밀었다. 역겨웠다. 저 하얀 화면도, 그 위에 쓴 가짜 문장들도. ‘심해의 방’? ‘우울의 미학’? 개소리다. 나는 지난 5년간, 내가 겪어보지도 않은 고통을 있어 보이는 형용사로 포장해서 팔아먹으려 했다. 쥐뿔도 없는 주제에 폼만 잡았다. 진짜 고통은 심해가 아니라, 이 3열람실의 쉰내 나는 공기 속에, 2,500원짜리 터진 김밥 속에 있었는데.

탁! 나는 노트북을 덮어버렸다. 전원이 꺼지며 뚜껑의 사과 로고 불빛이 죽었다. 검은 화면에 내 얼굴이 비쳤다. 개기름이 낀 이마, 며칠째 깎지 않아 거뭇한 인중, 초점 없는 눈동자. 영락없는 낙오자였다. 나는 소매로 그 얼굴을 문질러 지워버렸다.

가방 깊숙한 곳을 뒤적였다. 손에 잡히는 게 있었다. ‘XX은행’ 로고가 박힌 스프링 노트. 3년 전인가, 은행 창구에서 공짜로 얻어 온 판촉물이다. 그리고 필통에서 모나미 153 볼펜을 꺼냈다. 똥이 잘 나오지만, 그만큼 잉크가 진한 놈으로.

전원이 필요 없는 종이. 배터리가 닳지 않는 펜. 이것들만이 진짜였다. 노트북은 충전기를 뽑으면 죽지만, 이것들은 내가 죽기 전엔 안 죽는다.

노트를 펼쳤다. 누렇게 변색된 종이에서 쿰쿰한 냄새가 났다. 펜을 쥐었다. 손끝에 딱딱한 플라스틱 감촉이 전해졌다. 차가웠다. 손이 떨렸다.

쓰자. 무엇이라도. 문법? 맞춤법? 구성? 다 집어치워. 그냥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거. 내가 냄새 맡을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이 비루하고 끈적한 현실을 쓰자.

나는 노트 맨 윗줄에 꾹꾹 눌러 썼다.

<고독한 도서관의 하루>

아니다. 너무 작위적이다. 중2병 걸린 문학소년 같다. 두 줄을 찍찍 그었다.

<43번 남자의 실종>

이것도 아니다. 너무 소설적이다. 작가인 척하는 냄새가 난다. 나는 볼펜을 빙빙 돌리며 텅 빈 옆자리를 노려보았다. 그때, 점심때 사서가 했던 말이 환청처럼 귀에 꽂혔다.

“아직 대출된 적은 없지만요.”

그리고 주머니 속의 난도질 된 포스트잇. 그래. 나는 미대출 도서다. 서가 구석에 처박혀 먼지만 쌓여가는, 폐기를 기다리는 재고품이다. 그리고 43번, 그는 폐기되기 직전 스스로 서가에서 뛰어내린 책이다.

그렇다면 폐기되기 전에 비명이라도 질러야 하지 않겠는가. 누군가 읽어주기를 점잖게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내 살점을 찢어서라도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다시 펜을 잡았다. 이번에는 머리로 생각하지 않았다. 손이 가는 대로, 펜촉이 종이를 찢을 듯이 눌러 썼다.

도서관의 공기는 죽은 종이 냄새와 산 사람들의 입 냄새가 섞여서 비릿하다. 나는 3열람실 42번 자리에 앉아, 맞은편 43번이 남기고 간 짓이겨진 포스트잇을 훔쳐 본다. 그는 떠났고, 나는 남았다. 이 80센티미터의 합판 책상은 나의 집무실이자 감옥이며, 동시에 나의 관(棺)이다.

문장은 투박했다. 수식어는 없었다. 하지만 거짓말은 아니었다. 한 번 둑이 터지자 오물이 쏟아져 나오듯 문장이 밀려 나왔다.

나는 썼다. 훔치듯 썼다. 매일 아침 셔터 앞에서 기다리는 노인들의 욕망 섞인 눈빛에 대해. 터진 김밥 사이로 삐져나온 밥알의 서걱거림에 대해. 사서의 그 해맑은 친절이 내 자존심을 어떻게 난도질했는지에 대해. 그리고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쓰며, ‘나는 작가다’라고 자위하는 나의 역겨움에 대해.

사각, 사각, 벅, 벅. 노트북 자판을 두드릴 때는 들을 수 없었던 소리가 들렸다. 볼펜 볼이 종이의 섬유질을 긁고 지나가는 마찰음. 그 소리는 내 심장 소리 같기도 했고, 누군가 손톱으로 벽을 긁는 소리 같기도 했다.

손목이 시큰거렸다. 중지 손가락 마디가 눌려서 빨개졌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이건 소설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패배자의 똥오줌 같은 배설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문장 사이에 기름기는 없었다. 앙상한 뼈와, 피가 흐르는 살점만이 종이 위에 박히고 있었다.

어느새 노트의 세 번째 페이지가 넘어가고 있었다. 볼펜 똥이 뭉쳐서 손날에 시커멓게 묻어났다. 나는 그것도 닦지 않고 계속 썼다. 주머니 속의 포스트잇이 뜨거워진 것 같았다. 그의 비명과 나의 비명이 섞여서, 검은 잉크가 되어 토해지고 있었다.

나는 도둑놈이다. 타인의 불행을 훔쳐서 내 글감으로 삼는 파렴치한 도둑놈.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장면 5] 4B 연필과 폐기 직전의 책들

“저기, 작가님.”

누군가 어깨를 톡, 쳤다. 화들짝 놀랐다. 물속에서 숨을 참다 멱살 잡혀 끌려 나온 사람처럼 “헙!” 하고 숨을 들이켰다. 고개를 드니 김지연 사서였다. 그녀의 표정이 미묘했다. 걱정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살짝 겁을 먹은 것 같기도 했다.

“마감 시간이에요. 10시 50분 지났어요.”

주위를 둘러봤다. 텅 비어 있었다. 그 많던 공시생들, 자격증반 학생들, 신문을 보던 노인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형광등은 절반이 꺼져 있었고, 거대한 열람실엔 웅웅거리는 환풍기 소리만 돌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노트를 덮었다. 손바닥에 땀이 흥건해서 노트 표지가 축축하게 달라붙었다. 뺨이 확 달아올랐다. 부끄러움 때문이 아니었다. 지난 몇 시간 동안 토해낸 열기, 아니 악취 때문이었다.

“엄청 집중하시던데요? 제가 세 번이나 불렀는데.” “아… 죄송합니다. 마무리를 좀 하느라.”

마무리. 내 입으로 뱉고도 낯선 단어였다. 5년 동안 나는 늘 시작만 했지, 단 한 번도 끝을 맺어본 적이 없었다. 늘 도망쳤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도망치지 않았다. 비록 그게 근사한 소설이 아니라, 남의 불행을 훔쳐서 쓴 찌질한 배설물일지라도.

나는 주섬주섬 가방을 챙겼다. 맥북을 가방에 넣으려다 멈칫했다. 오늘 나는 이 150만 원짜리 기계를 단 한 번도 켜지 않았다. 충전기 선을 칭칭 감아 넣는데, 그게 꼭 링거 줄처럼 느껴졌다. 무겁기만 하고, 전기가 없으면 숨도 못 쉬는 고철 덩어리.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내일 뵐게요.” “네. 수고하세요.”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욱신거렸다. 볼펜을 너무 세게 쥐어서 중지 안쪽에 깊은 자국이 패어 있었다.

도서관 자동문이 열리고 밤공기가 훅 들어왔다. 차가웠다. 땀에 젖은 등줄기가 서늘해지며 소름이 돋았다. 나는 옷깃을 여미며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도로변 쇼윈도. 검은 유리에 내 전신이 비쳤다. 무릎 나온 등산 바지, 한쪽 끈이 꼬인 백팩, 구부정한 어깨. 그리고 개기름 흐르는 얼굴. 영락없는 ‘고시 장수생’ 혹은 ‘사회 부적응자’의 몰골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저 유리에 비친 내가 보기 싫어서 고개를 돌렸었다.

하지만 오늘은 빤히 쳐다봤다. 저 볼품없는 어깨 속에, 오늘 내가 쓴 5페이지의 문장이 들어 있다. 볼펜 똥이 덕지덕지 묻은, 아무도 읽어주지 않을, 그러나 내 살점을 깎아서 쓴 진짜 문장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바스락. 아까 주웠던 43번, ‘회색’이 남긴 난도질 된 포스트잇이 잡혔다. 나는 그 까칠한 종이의 질감을 엄지로 문질렀다. 그는 지금 어디 있을까. 소주라도 마시고 있을까. 아니면 한강 다리 위를 걷고 있을까. 어디에 있든, 그가 알았으면 좋겠다. 그가 남긴 비명이 내 소설의 첫 문장이 되었다는 걸. 나는 그를 훔쳤고, 그를 기록했다. 도둑놈처럼.

버스가 왔다. 끼익, 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날카로웠다. 나는 버스에 올라타며 생각했다.

내일 아침 8시 40분. 나는 다시 저 셔터 앞에 줄을 설 것이다. 좀비처럼 뛰어들어가서 42번 자리에 가방을 던질 것이다. 여전히 내 책은 대출 이력이 ‘0’일 것이고, 통장 잔고는 바닥일 것이며, 사서는 나를 보며 “작가님, 밥은 드셨어요?” 하고 짠한 눈빛을 보낼 것이다. 점심에는 또 옆구리 터진 김밥을 씹어야겠지.

그래도 상관없다. 내일은 노트북을 가져오지 말아야겠다. 어깨만 빠지게 무거운 그 허세 덩어리는 집에 처박아 두자.

대신 오는 길에 문구점에 들러야겠다. 4B 연필 두 자루와 커터 칼을 살 것이다. 샤프 말고, 깎아 쓰는 연필로. 사각사각, 흑연이 종이에 갈려 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써야겠다. 내 손이 시커멓게 더러워지고, 연필이 몽당연필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내 몸을, 내 시간을, 내 수치심을 갈아서 써야겠다.

버스가 덜컹거리며 출발했다. 차창 밖으로 도서관의 불이 하나둘 꺼지고 있었다. 거대한 책들의 납골당이 어둠 속으로 잠겨 들었다.

나는 흔들리는 차 안에서, 아까 노트 마지막 줄에 휘갈겨 썼던 문장을 입속으로 중얼거려 보았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폐기될 운명이지만, 아직은 서가에 꽂혀 있다. 먼지를 뒤집어쓴 채라도, 나는 나를 읽어야겠다.

그것이면 되었다. 오늘 밤은, 그것이면 충분했다.

<끝>


 

  <당선소감>

 

   상의 무게 견디며 더욱 치열하게 쓸 것

서가 구석에서 나라는 책을 누군가 펼쳐준 듯
‘미대출 구역’에 놓인 이들에 위로 될 수 있길


소설 속 주인공이 그랬듯, 저에게 도서관은 일상이자 도피처였으며 때로는 감옥이기도 했습니다. 남들처럼 번듯한 직장 명찰 대신 도서관 좌석표를 손에 쥐고, 점심시간이면 쏟아져 나오는 직장인들의 활기를 피해 숨죽이던 날들이었습니다. 이 나이를 먹도록 이룬 것 하나 없다는 자괴감이 묵은 먼지처럼 어깨에 내려앉을 때마다, 저는 제 인생이 영영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을 ‘미대출 도서’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선 전화를 받은 순간, 캄캄한 서가 구석에 처박혀 있던 저라는 책을 누군가 꺼내어 펼쳐준 것만 같았습니다. 먹먹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스스로를 ‘폐기 직전의 재고품’이라 자조했지만, 이제 저는 그에게, 그리고 저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우리는 폐기되지 않았다고, 누군가는 반드시 우리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입니다. 이번 당선은 제게 “노력하면 된다”라는 단순하지만, 묵직한 진리를 다시금 일깨워 주었습니다.

어린 시절, 친구들이 운동장을 뛰어놀던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저는 늘 책 속에 파묻혀 있었습니다. 활자 속에서 울고 웃던 그 소년이, 이제는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이야기를 쓰는 글쓴이가 되었습니다. 좋아하는 일로 인정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실감하며, 부족한 제 작품 ‘미대출 구역’을 세상 밖으로 꺼내주신 심사위원님들과 경인일보사에 깊이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과분한 상 앞에서 두려움이 앞서지만, 이 상이 주는 무게를 견디며 더욱 치열하게 쓰겠습니다.

무엇보다 이 영광을 가장 먼저 전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1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변변치 못한 저의 곁을 묵묵히 지켜준 짝꿍입니다. 가진 것 없고 못난 구석 투성인 저를 변함없이 사랑해 주고 믿어준 그 사람이 없었다면, 저는 벌써 펜을 꺾고 도망쳤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나의 가장 든든한 독자이자 버팀목인 당신에게, 이 지면을 빌려 사랑하고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이제 저는 도서관의 구석 자리를 털고 일어나, 더 넓은 세상의 이야기를 쓰려 합니다. 개인의 고독을 넘어, 역사적으로 굵직한 사건들을 관통하는 서사를 장편소설로 담아보고 싶습니다. 세상의 모든 ‘미대출 구역’에 놓인 이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도록, 당당하게, 그리고 끈질기게 쓰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심사평>

  

  착잡한 내면 서술 과정, 역설적 유머 감각 돋보여

올해 최종심에서는 ‘미대출 구역’, ‘첫눈’, ‘해가 지는 방향으로’ 세 편이 거론되었다.

‘첫눈’은 소설 중반까지 다양한 인물을 개성적으로 내세우며 역동적인 드라마를 예감하게 했다. 영화 촬영 상황도 실감 나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이야기 흐름의 근간이 되는 시나리오가 빈약한 탓에, 초반의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는 치밀한 구성력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해가 지는 방향으로’는 두 인물의 심리적 갈등과 존재론적 위기를 감성적이면서도 극적으로 잘 드러냈다고 평가되었다. 글 전체의 섬세한 분위기도 흡인력을 느끼게 하는 데 역할을 했다. 다만, 구성적 활력이 다소 약하고, 결말 부분에서 ‘소통과 치유’의 주제 의식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했다는 점이 우리를 주저하게 했다.

‘미대출 구역’은 무엇보다도 중심인물의 착잡한 내면을 있는 그대로 서술하는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드러나는 유머 감각이 돋보였다. 절박한 삶의 리얼리티를 효과적으로 담아내는 간결하고도 울림이 있는 문장들도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그리하여 ‘글쓰기의 어려움’에 직면하여, 혹독한 자기반성에 이르는 갖가지 상징적인 장치의 활용을 통해 ‘자기만의 글쓰기’를 향해 나아가는 의식의 흐름이 독자들에게 인상적으로 전달되었다. 소설이란 우리 일상의 한순간을 절실하고 치열하게 경험하여 ‘글’을 통해 ‘사람들’과 공유하려는 노력의 과정임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심사위원 : 구효서 소설가·최수철 소설가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이 소설은 한마디로 말하면, “아무도 빌려가지 않는 책(미대출 도서)”처럼 살아온 한 ‘등단 작가’가, 도서관이라는 생활의 전선에서 자기혐오와 허세를 걷어내고 ‘진짜 문장’으로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이다. 제목 「미대출 구역」은 도서관 행정 용어처럼 건조하게 들리지만, 작품 안에서는 곧바로 인간의 자존감과 생존을 가르는 낙인으로 바뀐다. ‘대출 이력 0’이라는 숫자는 단지 책의 통계가 아니라, 주인공이 스스로를 규정하는 방식이며, “나는 아직 누구에게도 읽히지 못한 존재”라는 절망의 다른 이름이 된다.

이 작품의 무대는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너무 익숙하고 비루한 공간인 구립도서관이 전부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 공간을 단순한 배경으로 두지 않고, 하루의 시간표에 맞춰 도서관을 하나의 생물처럼 만든다. 셔터가 열릴 때 사람들은 “좀비처럼” 빨려 들어가고, 점심 이후에는 도서관이 “거대한 위장”처럼 사람들의 공기와 소음을 소화한다. 이 비유는 중요하다. 주인공이 느끼는 세계는 한 개인을 따뜻하게 품는 공간이 아니라, 무기력과 패배를 천천히 소화해 버리는 시스템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서관은 “도피처”이면서 동시에 “감옥”이고, 더 노골적으로는 “관(棺)”의 이미지까지 겹쳐진다.

주인공의 자리는 3열람실 42번 좌석이다. 이 좌석은 사서의 감시망에서 비껴난 사각지대이며, 책상 모서리에 남아 있는 “담배빵 같은 얼룩”이 표식처럼 붙어 있다. 이 얼룩은 단순한 흠집이 아니라, 주인공이 의지하는 ‘나만의 영토’의 증거이다. 주인공은 작가로서의 자존감을 잃어가면서도, 최소한 이 자리만큼은 “내가 차지하고 있다”는 감각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러므로 42번 좌석은 ‘열람’의 장소가 아니라 자존심의 마지막 거점이 된다.

그러나 이 거점은 늘 조롱받는다. 주인공은 노트북을 켜고 원고 파일을 열지 못한 채, 중고차 사이트를 뒤진다. ‘LF 쏘나타’, ‘LPG 이전’ 같은 검색어는 도피의 언어이며, “7번 국도를 달리면 첫 문장이 뚫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스스로도 “말도 안 되는 개소리”라고 아는 자기기만이다. 여기서 자동차는 이동수단이 아니라 상처를 덮어두는 진통제이고, 작가는 그것을 “1,150만 원짜리 진통제”라고 부른다. 즉, 글쓰기를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꾸 ‘밖으로 나갈 핑계’를 산다. 이 작품은 그 핑계를 아주 구체적인 가격표로 제시함으로써, 독자가 “나도 저런 식으로 도망친다”는 자각을 하게 만든다.

맞은편 43번 자리의 ‘회색’은 주인공이 보는 또 하나의 거울이다. 회색은 토익 단어장을 파고드는 고시생(또는 공시생)처럼 보이며, 일정한 리듬으로 코를 훌쩍이고, 정수리가 휑한 스트레스의 몸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은 그를 경멸하면서도 동시에 의존한다. 왜냐하면 43번이 버텨 주어야 42번도 “나도 버텨야지” 하고 자기합리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43번이 무너져 떠나는 장면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주인공의 내면에서 “버티는 명분”이 붕괴하는 순간이 된다.

이 작품의 통증이 가장 직접적으로 터지는 장면은 ‘점심’이다. 주인공은 직장인들의 사원증이 반사하는 빛을 피하려고 일부러 30분 일찍 지하 매점으로 내려간다. 거기서 2,500원짜리 김밥을 먹는데, 김밥 옆구리가 터져 있고 밥알은 모래알처럼 서걱거린다. 여기서 김밥은 배고픔의 해결이 아니라 삶의 파열을 상징한다. 주인공이 “꼭 내 인생 같네”라고 생각하는 순간, 독자는 ‘가난’보다 더 날카로운 ‘형편없음의 감각’을 맡게 된다. 이 장면은 비참함을 과장하지 않고, 터진 김밥의 촉감으로 밀어붙인다.

그때 등장하는 인물이 사서 김지연이다. 그녀는 밝고 친절하며, 주인공을 “작가님”이라고 부른다. 여기에는 잔인한 역설이 있다. 주인공은 사실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있는데, 사회적으로는 이미 ‘작가’라는 호칭을 부여받는다. 그 호칭은 격려처럼 들리지만, 주인공에게는 가면을 더 단단히 붙여버리는 접착제가 된다. 더구나 사서의 목에 걸린 사원증은 주인공이 피하고 싶어 하던 “진짜 직장인”의 표식이다. 그녀가 선의로 건네는 말들은 주인공의 허기를 알아채지 못한 채 계속 깊숙이 파고든다.

결정타는 “그 책… 대출 이력이 0”이라는 말이다. 이 문장은 정보이지만 동시에 판결이다. 주인공은 “순수 문학은 인기가 없으니까요” 같은 위로를 듣지만, 그 위로는 오히려 확인 사살이 된다. 이때 작품은 도서관의 제도적 언어까지 끌어와 주인공을 죄어 온다. “장서 폐기 기준”이라는 문구가 떠오르고, “대출 실적 전무”가 “이용 가치 상실”로 번역된다. 이 장면에서 주인공은 책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폐기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로 넘어간다. 제목 「미대출 구역」이 인간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이다.

43번이 떠난 뒤, 주인공이 훔쳐오는 것은 노란 포스트잇 한 장이다. 그 포스트잇에는 문장이 없다. 대신 검은 잉크가 종이를 뚫을 듯 난도질되어 있다. 이 장면은 매우 중요하다. 작품은 “좋은 문장”이 아니라 “비명”을 보여 준다. 주인공은 깨닫는다. 자신은 5년 동안 폼 나는 문장을 꾸미느라 키보드를 살살 두드렸지, 저렇게 종이를 학대할 만큼 뜨겁게 분노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 검은 덩어리는 주인공의 원고보다 “더 소설적”이다. 여기서 소설적이라는 말은 ‘재미있다’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뜻이다.

이 깨달음이 주인공을 한 단계 옮긴다. 노트북을 덮고, 은행 사은품 노트와 모나미 볼펜을 꺼내 종이에 쓰기 시작한다. 이 전환은 도구의 변화가 아니라 태도의 변화이다. 노트북은 ‘작가 흉내’를 내기 좋은 도구였고, 종이와 펜은 거짓말을 하기 어려운 도구가 된다. 주인공은 제목을 그럴싸하게 붙이려다 스스로 지우고, 결국 “아직 대출된 적은 없지만요”라는 말과 “미대출”이라는 낙인을 자기 서사의 중심으로 붙잡는다. 즉, 이 작품의 진짜 시작은 “작가가 되려는 사람”이 아니라 “폐기 직전이라도 비명을 남기려는 사람”이 되는 순간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여기서 자기고백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주인공은 스스로를 도둑이라고 부른다. 남의 불행을 훔쳐서 글감으로 삼는 도둑이라는 자각이 남는다. 이것은 글쓰기에 대한 낭만을 걷어낸다. 누군가의 고통을 ‘재료’로 쓰는 행위에는 언제나 윤리적 찝찝함이 남는다. 작품은 그 찝찝함을 감추지 않고 “나는 도둑놈이다”라고 박아 넣는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멈추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금 중요한 것은 도덕적으로 깨끗한 문장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토해내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4B 연필”과 “커터칼”을 사겠다고 다짐한다. 연필은 손을 더럽히고, 깎아 쓰며 닳아 사라진다. 커터칼은 종이를 자르고, 흑연을 깎는다. 이 두 도구는 곧 “내 몸을 갈아 쓰겠다”는 선언이다. 즉, 이 작품이 말하는 글쓰기는 영감의 문제가 아니라, ‘허세를 벗기고, 자기 수치심을 손에 묻히는 노동’의 문제이다. 그래서 결말의 문장 “우리는 모두 언젠가 폐기될 운명이지만, 아직은 서가에 꽂혀 있다”는 단념이 아니라, 아직 남아 있는 시간 동안 자기 자신을 먼저 읽겠다는 결심으로 끝난다.

정리하면, 「미대출 구역」은 실패한 작가의 자학담이 아니라, ‘읽히지 못한 삶’이 ‘쓰는 삶’으로 다시 접속되는 순간을 포착한 소설이다. 도서관의 좌석표, 터진 김밥, 사원증의 반사광, 중고차 사이트, 난도질된 포스트잇, 은행 판촉 노트 같은 사소한 물건들이 모두 상징 장치로 기능하며, 그 상징들은 한 방향으로 모인다. “폼 나는 문장”이 아니라 “살아 있는 문장”을 쓰는 쪽으로 이동한다는 방향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의 유머는 가볍지 않다. 자조와 역설로 웃기지만, 그 웃음은 결국 독자를 “나도 내 삶에서 어떤 미대출 구역에 서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