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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라이브 / 이정원

 

여진은 게임의 엔딩을 볼 때까지 일을 쉬겠다고 했다.

여행사를 그만두게 된 직후였는데, 퇴직금으로 로봇 청소기를 사겠다며 한참 알아보더니 갑자기 플레이스테이션을 들였다. 여진이 처음 고른 게임은 좀비물이었다. 부상당한 아내만 헬기에 태워 보낸 남자가 이후 그녀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 큰 줄기였다. 여진은 원래도 좀비물을 좋아했다. 그와 처음 극장에서 본 영화도 월드워Z였다. 매년 가을이면 연례행사처럼 워킹데드를 정주행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항상 시즌 8까지만 보았다.

게임의 플레이 타임을 검색해보니 약 오십여 시간이었다. 한동안 여진은 저녁을 먹고 나면 게임을 켰다. 이런 건 어두울 때 해야 제맛이라면서. 소파를 등받이 삼아 바닥에 앉아서 티브이 화면 속 좀비를 쏘아 죽이느라 바빴다. 다녀올게. 당직 근무인 날이면 그가 늦은 밤 현관을 나서는데도 어어, 하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게임은 오픈 월드였다. 여진은 그 속에서 자주 길을 잃는 모양이었다. 밖에서 길치면 여기서도 길치인가봐. 그가 웃음을 터뜨리며 베트남에서 가이드는 대체 어떻게 했던 거냐고 물었다. 뭘 모르네. 여진이 코웃음을 쳤다. 똑같은 3박 5일을 수백 번 보내봐. 길 잃기도 힘들지. 그 무렵 여진은 등원 도우미 일을 구했다. 애랑 같이 길 잃는 거 아니야? 그가 킥킥대자 여진은 들고 있던 컨트롤러를 그에게 조준하더니 버튼 누르는 시늉을 했다. 남의 집 아이를 코앞 초등학교에 바래다주러 가는 길에 여진은 항상 단정히 차려입었다. 게다가 매일 조금씩 구두를 길들일 좋은 기회라면서 결혼 전 상견례를 앞두고 샀던 구두를 신었다. 마지막으로 집을 나서던 날에도 여진은 그 구두를 신고 있었다.

아이의 부모가 조문을 왔다. 그는 자신이 유족이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아이를 인도 안쪽에서 걷게 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한없이 억울했다. 급발진 차량이 펜스를 넘어 인도를 덮치던 그 순간에, 그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던 모텔에 있었다. 선생님, 그만 가시죠. 이러다 정말 큰일 나요. 이마에서 피가 줄줄 흐르는데도 병원에 안 가겠다며 뻗대던 취객을 설득하면서.

빈소가 차려진 뒤 동료들이 오갔다. 그들 사이에서 정우를 발견했을 때, 그는 자신의 얼굴이 속절없이 일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정우는 사흘 내내 빈소를 지켜주었다. 입사 후 그가 처음으로 죽음을 운반했던 밤, 텅 빈 구급차 앞에 주저앉아 있던 그를 말없이 기다려주었던 때처럼.

*

강은 자신의 물을 마시지 않는다.

나무는 자신의 열매를 먹지 않는다.

구름은 자신의 비를 삼키지 않는다.

비문이 적힌 묘비 앞에서 사람들이 죽은 지도자를 추모한다. 이윽고 그가 수차례 목격한 게임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갔다. 그는 티브이 전원을 껐다. 어느새 창밖으로 해가 떠 있었다. 환해진 거실에 꾸리다 만 상자들이 보였다. 퇴사한 지 사흘이 지나 있었다. 그러니까 이삿짐을 꾸리던 중 일어난 일이었다. 컨트롤러를 집어 들고 잠시 고민하다 마지막으로 게임을 실행했던 게.

플레이스테이션은 오 년 전 정리하지 못한 것 중 하나였다. 파주의 추모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밤, 그는 소파에서 기절하듯 잠들었다. 자는 동안 허리께가 불편하게 결린다 싶었는데 소파 틈새에 컨트롤러가 끼어 있었다. 게임을 실행하기 무섭게 폐건물에서 좀비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날 그는 밤새 좀비를 쏘아 죽였다. 그 역시 수차례 죽었지만 플레이어라는 이유만으로 금세 되살아났다. 게임의 엔딩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그는 먹고 자고 일하는 시간 외에는 좀비가 우글대는 세상에 살았다. 다행히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바깥의 시간도 공평히 흘러갔다. 보름 만에 처음 엔딩을 본 이후에도 종종 게임을 처음부터 다시 했다. 언제부턴가 그는 게임을 잠시 멈추어두고 냉동 만두나 라면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밤새 부릅뜨고 있던 눈을 꾹 감았다 떴다. 한 시까지 파주에 가기로 되어 있었다. 이직하게 된 직장에 근로 계약서를 쓰기 위해서였다. 그는 신발장 앞에 게임 컨트롤러와 콘솔을 밀어두었다. 그런 뒤에는 이삿짐을 마저 꾸리다 약속 시간에 맞추어 집을 나섰다.

그는 파주 장릉 입구에 도착해 종합안내도를 올려다보았다. 온통 초록색이었다. 입구에서 시작된 길이 인조와 인열왕후의 합장릉까지 이어졌고, 장릉 내부를 산책할 수 있는 둘레길도 표시되어 있었다.

매표소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안내문을 하나하나 읽어보았다. 낙서 금지. 반려동물 출입 금지. 음식물 및 돗자리 반입 금지. 맨발보행 금지. 근처에 휠체어·유아차 대여소와 공중화장실이 보였다. 관리소는 매표소 뒤편에 있었다.

그는 한 시 정각에 맞추어 관리소로 갔다. 회의실로 안내받고 잠시 기다리자 관리소장이 들어왔다.

괜찮아요. 그냥 앉아 계세요.

소장이 그를 말리며 맞은편에 앉았다. 다시 보아도 당연히 정우와는 닮은 데가 없는 얼굴이었다. 그럼에도 한 달 전 면접을 보았을 때, 그는 맞은편에 앉아 있던 두 명의 면접관 중 누가 정우의 매형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날 그가 받은 질문은 두 개였다. 현재 재직 중이라고 되어 있는데 내달부터 출근할 수 있는지, 그리고 서울에서 통근이 가능한지. 그는 이미 사직서를 낸 상태이며 이사를 고려 중이라고 답했다.

최종 합격 연락을 받던 날, 그는 정우에게 밥을 샀다. 정우는 삼겹살을 먹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최근 한의원에서 8체질 검사를 했는데, 섭생표에 소고기가 엑스 쳐져 있었다는 거였다. 부추는 세모더라. 그러면서 부추무침이 담긴 접시를 밀어내는 걸 보고 웃어버렸다. 정우는 2년 전 일을 그만두고 놀이공원에 계약직으로 들어가 있었다. 신규 입사자의 심폐소생술 교육을 하거나 의무실에서 처치하기 어려운 손님을 인근 종합병원으로 이송한다고 했다. 그래봐야 무릎이 깨진 정도지, 뭐. 무엇보다 여긴 폐장 시간이 있어서 좋아. 그렇게 말했던 정우는 확실히 이전보다 살도 좀 올랐고 혈색이 좋아 보였다. 그가 노릇노릇 잘 익은 고기를 정우의 앞접시에 옮겨 담고 있을 때였다. 괜히 부담 갖지 마. 빽이랄 것도 없으니까. 정우가 말했다. 야간 경비직은 원래 응급구조나 소방 경력이 우대 사항이야. 매형이 먼저 누구 아는 사람 없냐고 물어보기도 했었고.

소장은 계약서를 주면서 편히 살펴보라고 했다. 정우에게 들은 대로 2교대 격일 근무였고, 보수는 야간수당을 합해도 최저 시급 수준이었다. 그는 세 군데에 서명한 뒤 소장에게 계약서를 다시 건넸다.

아, 혹시 그거 아세요?

소장의 얼굴에 장난기가 섞였다.

여기 별 1.1인 거.

그러더니 휴대폰 지도 앱에 파주 장릉을 검색해 보여주었는데, 스크롤을 내리는 족족 신랄한 후기가 이어졌다. 1점도 아깝다. 런조. 무능하고 비겁한 왕. 선조는 양반임. 폐급. 어지간하면 안 가는 편이. 이곳은 쓰레기 매립지입니다. 그가 웃음을 터뜨리자 소장은 만족한 듯 계약서를 책상 위에 탁탁 털어 정리하며 말했다.

무르시기 없깁니다. 그래도 일하긴 편할 거예요.

정우만큼이나 좋은 사람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소장은 인수인계를 해줄 겸 장릉 내부를 한 바퀴 같이 돌아보자고 했다.

능침까지 가는 길에 느티나무가 가득했다. 군데군데 놓인 벤치는 모두 비어 있었다. 한 걸음 앞서 걷던 소장이 갑자기 멈추어 서더니 말했다.

여기가 금천교예요.

짧은 돌다리는 속세와 성역을 구분하는 다리치고는 영 볼품없고 허술해 보였다. 안쪽으로 조금 더 걸어가자 홍살문 너머 봉긋한 언덕이 보였다. 왕이 걷는 길이라는 어로를 통해 가까이 가보았지만, 정면에 놓인 정자각 건물 때문에 막상 능침은 잘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숲길로 들어섰다. 걸음마다 색색의 낙엽 밟히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안내문에 쓰여 있던 대로 입구까지 돌아 나오는 데는 약 사십여 분이 걸렸다. 안에서 마주친 방문객은 서너 명 정도였다.

주차장으로 가기 전에 근처를 좀 둘러볼까 싶었다. 코앞에 편의점이 있기에 들어가서 에너지바 세 개와 초콜릿, 젤리 두 봉지를 집었다. 그가 계산대에 껌 두 개를 급히 올리자 직원이 물었다. 봉투 드릴까요? 그는 괜찮다고 했다가 제일 작은 종량제 봉투를 달라고 말을 고쳤다. 봉투는 청록색이었다. 편의점 바로 옆에 작은 무인카페도 있었다. 그는 따뜻한 커피도 사서 차로 돌아왔다. 에너지바를 씹으면서 내비게이션으로 주변을 살피는데 오 분 거리에 아웃렛이 있었다. 앞으로 장은 그 안의 대형마트에서 보면 될 것 같았다.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향이 좋았다. 자주 들르게 될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서울로 돌아왔을 때는 세 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그는 조수석에 두었던 쓰레기를 챙겨 차에서 내렸다. 단지 내 분리수거장에 쓰레기를 버린 뒤 집 앞의 맥도날드로 향했다. 시간대가 애매해서인지 매장은 한적했다. 키오스크 앞에서 잠시 고민하던 그는 새로 출시된 버거를 세트로 주문했다.

잠시 후 트레이를 들고 올라간 2층에서 그는 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친구와 함께 있었다. 그는 항상 앉던 창가 자리로 갔다. 애들을 멀리서 마주 보는 위치였다. 매장에는 노래도 나오고 있지 않아서 둘의 대화가 그대로 들려왔다.

그거 나한테도 공유해줘.

아이는 친구와 머리를 맞대고 휴대폰을 보며 깔깔 웃다가, 이따금씩 앞에 펼쳐둔 문제집을 풀었다. 냅킨을 갈기갈기 찢으면서 선생으로 추정되는 누군가를 한참 씹기도 했다.

야, 우리 이제 가야 돼.

지금 몇 신데?

오십오 분.

아이들이 가방을 챙겨 자리를 떴다. 잠시 뒤 유리창 너머 횡단보도를 뛰어 건너는 아이들이 보였다. 그는 당직 근무를 서던 날이면 이 자리에서 아침을 먹곤 했었다. 잠귀가 밝은 여진을 깨우고 싶지 않아서 생긴 습관이었지만, 팬케이크를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점차 활기를 띠는 거리를 내려다보던 일을 그는 좋아했었다.

여진이 죽은 뒤 일 년이 지났을 즈음, 그는 아파트 경비실 앞에 서 있던 아이의 엄마를 보았다. 한때 남의 손에 딸의 등원을 맡겼던 여자는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날 이후 그는 잊을 만하면 아이를 마주쳤다. 단지 내 놀이터에서,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길에서 목소리만 듣고 아이의 뒷모습을 알아본 적도 있었다. 아이가 아이스크림 꼭지를 가로수에 던져 버리는 것을, 탕후루 막대를 하수구에 떨어뜨리는 것을 보면서 그는 생각했다. 이러면 안 되는 걸까. 이 정도도 바라면 안 되는 걸까. 여진에게 목숨을 빚진 아이가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기를 바라는 것은 그의 욕심일까. 주제넘는 것일까.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아이는 키가 훌쩍 컸다. 혼자 학교와 학원을 오갈 수 있게 된 지는 오래였다. 그게 마음에 걸렸다. 아이가 불과 오 년 만에 그렇게나 자라버렸다는 것이. 그리고 화가 났다. 자신이 그런 인간이 되어버렸다는 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은 커피를 쏟아 버리고 트레이를 정리했다. 근처 타일 바닥에 잘게 잘린 냅킨 조각이 떨어져 있었다. 모레 아침 이삿짐 차가 오면, 그는 서울을 떠날 것이다. 아무래도 잘한 선택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겨우내 폐쇄되었던 둘레길 일부가 다시 개방되었다. 분홍이 잠시 머물다 간 자리에 금세 연한 새잎들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그는 저녁 여섯 시에 출근하면 곧바로 둘레길을 돌았다. 남아 있는 방문객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는데, 지난 사 개월간 그가 마주친 건 다람쥐나 청설모 몇 마리가 전부였다. 그가 순찰을 마친 뒤 입구로 돌아왔을 때는 어느새 주위가 어둑해져 있었다.

매표소는 해가 저물면 경비실로 쓰였다. 그는 전기포트에 물을 올린 뒤 책상 서랍을 열었다. 컵라면이 두 개 남아 있었다. 그중 하나를 꺼내 수프를 털어 넣었다. 그는 업무 일지를 펼쳐 오늘자에 사인했다. 그와 격일로 근무하는 직원은 매번 자기 몫의 날짜에 모조리 사인을 해두곤 했는데, 그간 별일이야 없었지만 미리 사인을 해두는 건 아무래도 좀 찜찜했다. 탁, 전기포트의 스위치가 내려갔다. 그는 컵라면에 물을 부었다. 그걸 먹는 데는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열한 시가 되면 그는 손전등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소장은 첫 순찰만 신경 쓰면 된다고 했지만 그는 다시 한번 둘레길을 걸었다. 무덤은 무덤이라 밤이 내려앉은 뒤에는 확실히 을씨년스러웠지만, 죽은 지 삼백 년도 더 된 사람의 무덤이 무섭지는 않았다. 고작해야 귀신을 마주치는 게 이곳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가장 큰 사고라는 점이 좋았다.

그가 아는 한 여진은 파주에 와본 적이 없었다. 여진이 살았다면, 조금 더 살았다면 언젠가 함께 파주에 오게 되었을지도 몰랐다. 아웃렛에서 쇼핑을 하고, 헤이리 마을을 둘러보고, 근처 맛집에서 배를 채운 뒤에는 우연히 장릉에 들러 산책을 할 수도 있었을까. 하현달이 부연 구름에 반쯤 잠겨 있었다. 아무도 없는 숲길을 걷고 있으면 종종 소리를 지르고 싶은 이상한 충동이 들었다.

자정이 되면 그는 접이식 침대를 폈다. 휴게 시간은 한 시부터 네 시까지였지만 그걸 꼬박 지킬 정도로 융통성이 없지는 않았다. 신고도 출동도 없는 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를 제외하면 그의 잠을 방해하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았고, 잠들지 못하는 밤은 지겨울 정도로 길었다. 밤새 긴장한 상태로 일하던 게 몸에 남아 그런 것인지, 아니면 습관처럼 마시는 커피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몸을 뒤척일 때마다 침대가 삐걱댔다.

한쪽 벽에 열 개로 분할된 CCTV 화면이 떠 있었다. 어둠에 잠긴 화면을 밤새 지켜보고 있어야 할 의무는 없었다. 눈을 감자 지나간 일들이 대중없이 뒤섞이며 떠올랐다. 그렇게 자는 시늉을 하며 누워 있다 보면 어느새 창밖이 희붐하게 밝아왔다. 그는 혹시 몰라서 맞춰두었던 알람을 끄고 몸을 일으켰다.

새벽 공기가 맑았다. 밤에 잠겼던 나뭇잎들이 초록을 되찾고 있었다. 마지막 순찰을 도는 동안 해가 완전히 떴다. 입구로 다시 돌아왔을 때 그는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노인을 보았다. 노인은 오늘도 대여소에서 유아차를 하나 꺼내더니 품에 안고 있던 개를 앉혔다. 이제 곧 여덟 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 근무했던 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뒤 퇴근 준비를 하던 그는 노인 때문에 아연실색했었다.

할아버지, 이건 아기들 타는 건데요.

그가 유아차를 붙잡고 말리자 노인이 말했다.

어차피 놀리는 거 좀 쓰면 어때.

두꺼운 담요를 깔고 앉은 치와와가 헥헥대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아니, 하물며 지금은 입장 시간도 아니에요.

노인이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신참인가? 말썽 안 피울 테니까, 걱정 말고 퇴근해.

노인은 유아차를 돌돌 끌며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는 매표소 책상 유리 아래 깔려 있던 비상 연락망을 확인했다. 주임에게 전화를 했는데, 소장님이 말해주는 걸 까먹은 모양이라면서, 동네 토박이인 데다 점잖은 양반이니 괜찮다는 거였다. 노견이라 무릎이 안 좋아 그런 거니 그냥 두라고. 노인은 매일 여덟 시 산책을 나왔는데, 눈비가 오는 날도 예외는 없었다. 생각해보면 1.1점짜리 왕의 무덤에서 동네주민이 산책 좀 하는 게 그렇게 나쁜 일 같지도 않았다.

그는 마주 오던 노인에게 꾸벅 인사한 뒤 지나쳤다. 퇴근 후 편의점에 들렀는데, 유리문에 못 보던 종이가 붙어 있었다. 초중고 학생 내부 취식 금지. 그는 컵라면을 두어 개 집었다가 도로 내려놓았다. 한숨 자고 일어나서 아예 장을 보러 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동안 그는 머릿속으로 살 것들을 정리해보았다.

보름 가까이 장맛비가 내렸다. 밤새 내리던 폭우가 아침까지 이어졌던 날, 노인이 처음으로 산책을 걸렀다. 그날 이후에도 그는 한동안 노인을 보지 못했다. 장마가 끝난 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었을 무렵이었다. 그는 아침 순찰을 끝내고 나오던 길에 매표소 앞에 서 있던 노인을 보았다.

이제 오네.

어, 오랜만이시네요?

그는 옷소매로 관자놀이의 땀을 찍어내며 인사했다. 그러자 노인이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는 조금 놀랐지만 일단 매표소 문을 열었다.

더우니까 잠깐 들어오실래요?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책상 의자를 권하자 노인은 반듯이 앉더니 밀짚 중절모를 벗어 허벅지 위에 올려두었다. 머리칼과 눈썹이 눈처럼 희었다. 그가 간이의자를 끌어와 옆에 앉자 노인이 들고 있던 음료를 건넸다. 요 앞 카페에서 사온 모양이었는데,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가 싶어 좀 긴장이 되었다.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요.

음료는 달고 시원했다. 비누향 같은 게 나서 보니 밀크티였다.

그간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셨어요?

노인과 눈이 마주쳤는데, 사람을 꿰뚫어 보는 듯한 두 눈이 형형했다.

실은, 부탁을 좀 할 수 있을까 해서.

네?

자네가 가게를 좀 봐줬으면 싶은데.

무슨 가게요?

요 앞에 카페 알지. 사흘, 아니 나흘이면 돼. 보수는 제대로 쳐줄 테니까.

그가 놀랄 틈도 없이 노인이 불쑥 일어났다. 그러더니 그를 카페로 데려갔다. 하루 한 번 손님이 뜸한 시간대에 매장 관리를 좀 해달라는 거였다. 노인이 여기 주인이었다니. 그는 얼떨결에 원두며 파우더, 시럽을 기계에 채우는 법을 배웠다. 노인이 그를 창고에 끌고 들어가 빨대, 컵 홀더 등 소모품의 위치를 알려주더니 말했다.

쉽지? 노인네도 하는 일인데, 뭐.

그런 뒤에는 그의 휴대폰에 실시간으로 매장 상황을 볼 수 있는 CCTV 앱도 설치해주었다. 노인은 모레 4박 5일 베트남으로 떠난다면서, 그에게 계좌 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카페에서 나오던 길에 그는 무심코 물었다.

그런데 개는 어떻게 하시고요?

때로는 묻는 순간 답을 얻게 되는 질문이 있었다. 항상 혀를 빼물고 헐떡이던 늙은 개가 떠오른 탓이었다. 괜한 말을 했다 싶어 눈치를 보는데 노인이 말했다.

괜찮아. 어차피 세상에 무덤지기 아닌 사람 없어.

밖으로 나오자 볕이 뜨거웠다. 이제 완연한 여름이었다.

노인이 떠난 뒤 그는 하루 한 번 카페에 들렀다. 근무하는 날에는 밤 순찰을 마친 뒤 다녀왔다. 기계를 채우고 테이블을 정리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종종 CCTV 앱을 열어보았는데, 사람들은 카페에 CCTV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모르는 것처럼 행동했다. 아무것도 시키지 않고 앉아 있는 건 예사였다. 온갖 전자기기를 가져와 충전하거나 빨대며 물티슈를 한 움큼씩 집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등산객 차림의 단체 손님들은 음료를 몇 잔만 시킨 뒤 한참 동안 떠들다 갔고, 오후면 아이들이 몰려와 편의점에서 산 음식을 먹고 흔적을 남겼다. CCTV 앱에는 안내 방송을 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는데, 그는 때때로 마이크 버튼을 누른 뒤 나가달라고 소리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노인은 묵직한 봉투를 들고 찾아왔다. G7 커피와 과자가 잔뜩 들어 있었다. 그날 아침 두 사람은 둘레길을 함께 걸었다. 새들의 새초롬한 지저귐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그는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볕을 자주 올려다보았다. 노인의 보폭을 따라 걷자 입구까지 돌아오는 데는 딱 사십 분이 걸렸다.

노인은 베트남에 다녀온 지 한 달도 안 돼서 다시 그에게 가게를 맡겼다. 튀르키예로 열기구를 타러 간다며 잔뜩 들떠 있던 노인은 기상 상황 때문에 결국 못 타고 돌아왔다며 이를 갈았다. 노인이 사온 로쿰이라는 디저트는 마시멜로 비슷한 식감이었는데, 커피랑 같이 먹기에 좋았다. 그 이후에도 노인은 뜬금없이 타코야키나 와플 같은 걸 들고 찾아오기도 했다. 보통 저녁 무렵이었는데, 한번은 자정 가까운 시간에 나타난 적이 있었다. 순찰을 돌고 나오는데 느티나무 아래 벤치에 누군가 앉아 있어 그는 소리를 지를 뻔했다. 어이. 노인이 웃으며 흔들던 손에 맥주 캔이 들려 있었다.

당뇨 있으시다면서요. 술 드셔도 돼요?

노인은 대답 대신 그를 끌어다 앉히더니 피자 상자를 열었다.

식어. 얼른 먹어.

할아버지.

왜.

파인애플 좋아하세요?

과일 싫어하는 사람도 있나. 왜, 자넨 싫어해?

그게 아니라요. 아무래도 따뜻한 과일은 좀.

그냥 먹어. 과일 몸에 좋아.

이건 통조림일 텐데요, 그런 말을 하는 대신 그는 피자를 한입 베어 물었다. 달고 짜고 생각보다 맛이 있었다. 어디선가 치르르르 풀벌레가 울었다. 금세 한 조각을 해치웠을 때, 노인이 맥주 캔 하나를 건넸다.

할아버지야 그렇다 쳐도 저는 지금 근무 중인데요.

어차피 여긴 사각지대라 안 보여.

그걸 어떻게 알아요?

아직 고라니는 못 봤지?

고라니요?

아직 못 봤나 보네. 하긴 나도 그만두기 직전에나 마주쳤었지.

알고 보니 노인은 작년까지 여기서 일하다 은퇴 후 카페를 차린 거였다. 직원들이 노인의 기행을 눈감아준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내 카페는 사각지대가 없지. 그게 마음에 들어.

맥주 한 캔을 비우고 나니 새벽 한 시였다. 하늘을 올려다보자 어둠을 머금은 잎들이 너울너울 흔들리고 있었다. 노인이 피자 박스를 옆구리에 끼더니 일어났다.

아, 빨리 와. 여기 고라니 있다니까.

그는 종종걸음으로 노인의 옆에 붙어 섰다. 입구까지 걸어가는데 노인이 깜빡할 뻔했다면서 다음 주에 3박 5일 일정으로 베트남에 간다고 했다.

베트남이요? 거긴 이미 다녀오셨잖아요.

그땐 다낭이었고. 이번엔 하노이.

하노이요?

응. 그때 그 커피 더 사다줄까?

다른 걸로요. 그 커피는 참기름 냄새가 나요.

까다롭기는.

노인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는 노인의 뒷모습이 안 보일 때까지 어둠 속에 서 있었다. 그날 새벽 그는 업무 일지에서 노인의 이름을 찾아보았다. 월별 일지를 열 장쯤 넘겼을 때 나타난 이름 세 글자는 수십 페이지가 넘도록 이어졌다.

테이블에 새빨간 국물 자국이 말라붙어 있었다. 전자레인지 문을 열자 음식 냄새가 훅 풍겼다. 그는 머그잔에 물을 담아 전자레인지 안에 넣고 5분간 돌렸다. 그런 다음 내부를 말끔히 닦아냈다. 싱크대의 배수구에는 라면 부스러기가 가득했다. 원래 귀국하기로 되어 있던 날, 노인은 좀 더 놀다 가겠다며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게 벌써 사흘 전이었다. 그는 흐트러져 있던 테이블과 의자를 정리한 뒤 밖으로 나왔다. 아직 낮 동안엔 더웠지만 새벽 공기는 제법 선선했다.

경비실로 돌아오자 새벽 한 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그는 침대를 펴고 누웠다. 노인은 무얼 하고 있을까. 관광버스에 탔다 내렸다 하며 별 대단할 것도 없는 관광지를 둘러보고, 의무라도 되는 듯 가는 곳마다 사진을 찍고, 당뇨 때문에 먹지도 못할 과자를 카트에 쓸어 담고, 노니며 침향을 앞에 두고 고민하고 있을까. 그는 언젠가 그의 머리통 위로 내리쬐었던 그 나라의 햇빛을 떠올렸다.

그는 여진과 하노이로 신혼여행을 갔었다. 그는 괜히 낯선 곳에서 헤매다 여진과 싸우고 싶지 않았는데, 여진이 하노이만큼은 손바닥 보듯 훤히 알았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하노이에서는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어서, 어떤 계획이나 기대를 갖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좋았다. 두 사람은 매일 느지막이 일어나 조식을 먹었고 주로 수영장에 머물렀다. 흥청망청 시간을 흘려보내다 밤 비행기를 타기 열 시간 전, 여진이 반쎄오만큼은 먹고 돌아가자고 해서 길을 나섰다. 햇볕이 금세 몸을 달구었는데, 앞서 걷던 여진이 갑자기 멈춰 섰다. 그러더니 그가 메고 있던 슬링 백에서 지폐를 꺼냈다. 티켓을 사서 들어간 곳은 호아로 수용소였다. 이상하게 내부가 서늘해서 숨이 좀 트였다. 어렵게 찾아간 식당에서 반쎄오와 쌀국수, 분짜, 스프링롤을 시켰다. 여진은 의외로 고수를 입에 대지도 못했다. 쌀국수 국물을 한입 떠먹더니 샴푸 맛이 난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샴푸를 먹어봤어?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럼 샴푸에서는 고수 맛이 나겠네.

여진이 웃었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다시 호텔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수영을 했다. 그는 선베드에 누워 꾸벅꾸벅 졸았다. 부연 시야로 여진의 뒷모습이 보였다. 여진은 쪼그려 앉아 모래 위에 무언가를 새기고 있었다. 여진의 어깨 너머 길게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보다 문득 하노이에는 바다가 없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는 사이렌 소리에 놀라 깨어났다. 휴대폰을 확인하자 충남 공주시에 규모 3.6 지진이 발생했다는 알림이 떠 있었다. 귓가에서 맥박이 쿵쿵 뛰었다. 잠시 숨 고르며 누워 있는데 노인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모레 밤 비행기를 끊었다는 거였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자고 일어나니 오후 다섯 시였다. 배가 고팠다.

그는 냉장고에서 계란과 우유를 꺼냈다. 찬장에서 팬케이크 믹스를 꺼내 상단을 펼치자 부옇게 가루가 날렸다. 마트에서 집어온 거였는데, 사먹는 것만큼은 아니어도 먹을 만했다. 그는 반죽을 만들어 프라이팬에 올린 뒤 불을 조절했다. 약불에 두고 기다리는 게 관건이었다. 휴대폰으로 카페 CCTV 앱을 열자 단골손님이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휴대폰을 근처에 기대어두었다. 팬케이크를 막 뒤집었을 때, 화면 속 여자가 카페 밖으로 나갔다. 담배를 피우거나 밥을 먹으러 가는 거겠지 싶었다. 커피를 마실까 해서 그는 전기포트에 물을 받았다. 그때 한 남자가 카페로 들어오더니 입고 있던 조끼를 벗었다. 티셔츠가 짙게 젖어 있었다. 남자는 에어컨 아래 한참 서 있다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주 있는 일이었다.

그는 팬케이크 위에 버터를 올리고 메이플 시럽을 뿌렸다. 한 장을 막 먹었을 때 줄곧 사나운 소리를 내던 전기포트가 툭 꺼졌다. 머그잔에 커피 믹스를 하나 뜯어 넣고 물을 붓자 어김없이 참기름 냄새가 났다. 그는 팬케이크 두 장을 금세 먹어치웠다. 이상하게 식사 시간은 언제나 준비 시간에 비해 짧았다. 화면 속 남자는 이제 테이블 위에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낮잠이라도 자는 건가 싶었지만 뭔가 좀 이상했다.

그는 휴대폰을 근처에 두고 고무장갑을 꼈다. 개수대의 물을 틀고 수세미로 접시를 문지르면서 화면을 보았다. 남자는 미동이 없었다. 역시 뭔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남자의 반소매 아래 삐죽 튀어나온 패치가 보였다. 그는 그게 무엇인지 알았다. 당뇨 환자들이 피부에 부착해 24시간 혈당을 측정하는 장치였다. 그제야 남자가 의자에 걸쳐둔 옷가지처럼 맥없이 늘어지며 의식을 잃어가는 게 보였다. 그는 고무장갑을 잡아 뜯듯 벗었다. 119에 신고하기 위해 휴대폰을 쥐던 순간, 화면 속 카페 문이 열렸다. 간식거리를 잔뜩 품에 안은 아이 셋이 뛰어 들어왔다. 그동안 그가 예의 주시해온 아이들이었다. 그는 처음으로 마이크 버튼을 눌렀다.

― 학생들! 학생들, 내 말 들려요?

아이들이 놀란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 내 목소리 들리죠? 거기 아저씨 좀 깨워볼래요?

아이들은 머뭇대면서도 남자에게 다가갔다. 남자의 어깨를 흔드는 아이들 손에 점차 힘이 실렸다. 다행히 남자가 게슴츠레 눈을 떴다. 그는 남자가 아이들에게 바나나 우유를 받아 마시는 걸 확인한 뒤 119에 전화를 걸었다. 카페의 위치와 상황을 설명하면서 차키를 챙겨 집을 나섰다.

퉁, 퉁.

이틀 뒤인 토요일 아침, 그는 문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창문 너머 이전보다 조금 그을린 노인의 얼굴이 보였다. 주위가 너무 환했다. 시간을 확인하자 여덟 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잠결에 알람을 꺼버린 모양이었다.

여태 잔 거야? 잘 지냈지?

노인이 창문으로 쇼핑백 하나를 밀어 넣더니 말했다.

아침이나 먹으러 가자고. 얼큰한 걸로.

그는 급히 퇴근 준비를 한 뒤 밖으로 나왔다. 마지막 순찰을 돌지 못해 등 뒤가 좀 켕겼지만 노인의 옆에 따라붙었다. 그는 노인에게서 캐리어를 건네받아 끌기 시작했다. 주차장까지 가는 내내 바퀴 소리가 드륵드륵 요란했다.

왜 이렇게 늦게 돌아오셨어요?

비행기에 안 탔어.

네?

수영할 시간을 안 주잖아, 글쎄.

노인은 가이드가 수영장 갈 시간을 안 줘서 골이 났었다고 했다. 사흘 내리 조식당 창문 밖으로 보이는 수영장을 구경만 했다고. 결국 마지막 날 눈뜨자마자 수영장으로 갔다. 해병대 출신이었던 노인은 잠수도 아주 잘했기 때문에 가이드가 찾으러 오면 물속에 숨어 있을 작정이었다. 결국 노인 때문에 일정이 늦어졌다. 가이드와 한바탕 싸운 노인은 돌아오는 비행기에 타지 않았다. 패키지여행에서 그럴 수도 있는 거였구나.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뭘 하셨는데요?

수영을 원 없이 했지.

손발이 쭈글쭈글 불어터질 때까지 노인은 정말 원 없이 수영을 했다. 그리고 거기서 까만 돌 하나를 훔쳤다. 수영장 둘레에 장식되어 있던 돌이었다. 누군가 수영장에 뛰어들 때마다 락스 냄새 나는 물을 철썩철썩 맞고 있던 돌을 그는 한국으로 가져왔다.

운 좋으면 언젠가 제자리에 가져다둘 수도 있겠지.

노인이 중얼거렸다. 차에 도착해 트렁크를 열고 노인의 캐리어를 싣는데 수하물 스티커가 여러 개 붙어 있는 게 보였다. 저러면 안 좋다던데. 나중에 말해줘야지 싶었다. 그는 운전석에 앉아서 휴대폰으로 지도 앱을 켰다. 십오 분 거리에 24시 해장국을 파는 식당이 있었다. 그는 노인에게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여기 어떠세요?

좋지.

노인이 안전벨트를 당기면서 대답했다. 그는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한 뒤 천천히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아, 혹시 가게 가보셨어요?

그는 노인에게 이틀 전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그가 카페에 도착했을 때 남자는 이미 의식을 찾은 상태였다. 구급차도 도착해 있었다. 남자는 자꾸만 식은땀이 나던 게 늦더위 때문에 그런 줄 알았다고 했다. 평소 주머니에 사탕도 넣고 다녔지만 저혈당 증상인 줄은 생각지 못했다고. 남자는 정밀 검사를 위해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고, 아이들은 평소처럼 카페에서 라면과 핫바를 먹었다. 그리고 오늘 새벽 카페에 들렀을 때, 그는 전자레인지 위에 놓여 있던 바른 어린이 상장과 쪽지를 발견했다.

그런데 여전히 뒷정리할 줄은 모르네요.

그가 웃으며 투덜대자 노인이 물었다.

걸었어?

네?

벽에 걸었냐고.

아직이요. 벽에 걸어두시게요?

응. 이따 한번 같이 가보자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차가 한산한 도로 위를 매끄럽게 나아갔다.

식당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노인은 잠이 들어 있었다. 그는 시동을 끄는 대신 잠시 기다렸다. 유리문 너머 티브이를 보고 있는 직원의 뒤통수가 보였다. 그는 차를 다시 출발해 고속도로를 탔다. 톨게이트를 여러 번 지나 서울로 향하는 동안 노인은 작게 코까지 골며 곤히 잠을 잤다. 한참을 달려 익숙한 동네에 막 들어섰을 때였다. 잠에서 깬 노인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창밖을 둘러보았다. 그가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좀 더 주무시라고 그냥 멀리 왔어요. 서울이에요.

덕분에 잘 잤구먼.

노인이 기지개를 켰다.

이제 웬만한 식당은 열었을 것 같긴 해요.

그는 골목에 차를 세웠다. 예전에 가보았던 식당들을 하나둘 떠올리는데 노인이 말했다.

저긴 어떤가.

노인의 손끝을 따라가자 마라탕을 파는 식당이 보였다.

마라탕 드셔보신 적 있어요?

오늘 먹어보면 되지.

매운 거 드세요?

잘 먹지.

좋아요. 그럼 한번 가봐요.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렸다. 식당에서 노인은 그를 곧잘 따라 했다. 구멍이 숭숭 뚫린 바구니에 청경채, 알배추, 떡이며 버섯의 물기를 털어 차곡차곡 담았다. 잠시 뒤 노인은 새빨간 국물을 한입 맛보더니 생각보다 괜찮다며 다음에는 장가계에 가겠다고 했다.

거기가 홈쇼핑에 자주 나오더라고.

한참 뻘뻘 땀 흘리며 먹고 있는데 식당 문이 열렸다. 종소리에 그는 무심코 문가를 보았다가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무심히 시선을 피한 아이는 투명한 통이 칸칸이 놓인 냉장고 앞으로 걸어갔다. 키가 한 뼘쯤 더 자라 있었다. 계산 후 자리를 잡고 앉은 아이가 휴대폰 카메라로 영수증을 찍었다. 그러곤 잠시 무언가를 입력하더니 카운터로 갔다.

리뷰 이벤트 할게요.

뭐로 줄까요?

꽃빵튀김이요. 아, 혹시 땅콩소스 좀 주실 수 있어요?

그는 지도 앱을 켜서 식당을 검색해보았다. 리뷰 이벤트 탓인지 몰라도 별점이 무려 4.9점이었다. 잠시 뒤 아이는 휴대폰을 근처에 세워두고 유튜브를 보면서 마라탕을 먹기 시작했다. 식사를 마친 노인이 휴지로 입가를 닦으면서 말했다.

고놈 참 똑 부러진다.

그러게요.

식당 밖으로 나와서 그는 커피를 사겠다고 했다. 여진과 몇 번 갔던 카페가 떠올랐는데 위치가 좀 헷갈렸다. 지도 앱에 검색을 해보았지만 폐업을 한 건지 나오지 않았다. 아쉬운 대로 두 사람은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테이크아웃 한 뒤 파주로 향했다. 돌아가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 작중 인물들이 플레이한 게임은 ‘데이즈 곤(Days Gone)’이다.


 

  <당선소감>

 

   온갖 재미가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아직 소설만큼 재미있는 것 못 찾아

한 달 전, 모임에 다녀온 엄마가 말했다. 정원인 요즘 뭐 하냐는 이모들의 말에 잠시 고민하다, “소설 써” 하고 답했다고. 그러자 다들 “그렇구나. 정원인 소설을 쓰는구나, 소설을” 하며 한바탕 웃었다는 거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웃었다. 이전의 나였다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런 말에 웃어버릴 수 있을 만큼 소설이 좋아졌다. 솔직해졌다. 가벼워졌다.

소설은 웃기는 것. 내가 소설을 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누군가를 한바탕 웃길 수 있다면, 그냥 그거면 충분한 것 같다. 온갖 재미가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나는 아직까지 소설만큼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영영 그렇게 된다면 좋을 것이다.

나를 장녀가 아닌 철부지 딸로 키워주신 부모님, 집과 도서관을 오가며 책셔틀을 해주었던 내 동생, 언제나 응원해준 이모들, 이모부들, 그리고 나의 친구들과 언니들. 고맙고 사랑해요. 덕분에 이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었어요.

3년간 108개의 계단 끝에서 만나뵐 수 있었던 선생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글을 쓰는 일에 앞서, 더 나은 사람으로 살기 위한 지혜를 가르쳐주셨어요.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끝으로 무덤지기들의 이야기에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 1995년 출생
● 성신여대 간호학과 졸업
●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재학


 

  <심사평>

  

  개성 다른 응모작 놓고 고민···‘시대 감각’ 읽으며 희망 느껴

이번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는 작년보다 훨씬 많은 응모작이 도착했다. 웹소설이나 웹툰과 관련된 ‘뉴-예술가 소설’이 자주 눈에 띄었고, 애도와 윤리의 문제를 다루는 작품들 역시 여전히 많았다. 다만 페미니즘 이슈나 비인간동물 대신 노동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 늘어난 점은 인상적이었다. 물론 최근 신춘문예 응모작들의 경향 또한 반복되었다. 서사가 느슨하고 인물이 모호하며, 안전한 거리를 확보한 상태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작품들이 적지 않았다. 이를 개별 작가의 특징으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신춘문예를 통해 포착되는 시대의 단면을 바라보며,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소설을 읽고 쓰고 있다는 사실에서 위안과 희망을 느꼈다. 본심에 오른 열세 편의 작품 가운데 심사위원들은 특히 세 작품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세 작품은 완전히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었고, 그만큼 장점과 한계 또한 분명했다.

고립된 한 여성의 죽음을 곰팡이의 시선으로 묘사한 <천이>는 현미경의 시선을 지닌 작품이다. 끈끈하고 강렬한 문장으로 사태에 육박한다는 점이 돋보였으나, 그 치밀한 묘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다소 모호했다. 곰팡이의 시점을 빌렸다는 설정을 넘어, 그 시선으로 말하고자 하는 인간과 삶에 대한 태도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았기에, 감탄을 넘어 신뢰로까지 나아가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파쿠르>는 이와 달리 의미가 충만한 작품이다. 송전탑에서 감전사한 아버지와 파쿠르 도중 추락사한 동생을 떠올리는 ‘나’의 시선은, 아버지의 죽음과 동생의 몸짓을 평행하게 배치하며 이를 관통하는 의미를 탐색한다. 파쿠르를 연상시키는 단문의 속도감과 리듬은 인상적이었으나, 묵직한 주제를 떠받치기에는 서사의 이음새가 다소 허약해 보였다. 중요한 문제들을 독특한 이미지에 기대어 도식적으로 묶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라이브>는 새롭지도 강렬하지도 않은 소설이다. 연인의 죽음 이후 응급구조사에서 왕릉 관리인으로, 생의 영역에서 죽음의 영역으로 이동한 주인공이 다시 생의 영역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담백하게 그려낸다. 이 변화가 타자에 의해 우연히 촉발된다는 점에서, 이 우연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를 두고 심사위원들 사이에 고민이 있었다. 그러나 삶에는 언제나 우연이 개입하며, 그 우연을 어떻게 인연으로 엮고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서사의 역할이라면, 이 작품이 제시하는 삶의 태도를 믿어보기로 했다. 언제나 모니터를 사이에 둔 듯한 거리감이 존재한다는 지적도 있었으나, 그 또한 우리 시대의 감각으로 읽혔다. 화면 속 인물의 위험을 알아차리는 섬세함이 희망이 되는 시대인 것처럼, 타인을 오랫동안 바라보지 않았다면 포착하지 못할 장면들이 소설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사려 깊은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며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소중한 작품을 보내준 모든 분께도 감사와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

심사위원 : 김미월·김홍·이소·전성태·정지아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이 소설은 한마디로 말하면, 죽음 이후에 남겨진 사람이 ‘삶으로 다시 돌아오는 방식’을 “화면(게임·CCTV·별점·리뷰)”이라는 매개를 통해 담담하게 보여주는 이야기다. 제목 「라이브」는 “생방송”의 라이브이면서, 동시에 “살아 있음(live)”의 라이브다. 이 작품의 인물들은 직접 부딪치기보다 자주 모니터越(너머)로 보고, 그 거리감 속에서 오히려 작은 구원이 발생한다. ‘가까이서 껴안는 위로’가 아니라, 오래 바라보다가 알아차리는 섬세함이 희망이 되는 시대의 감각을 소설이 정확히 붙잡는다.

1) 시작: “엔딩을 볼 때까지”라는 약속과, 끝내 볼 수 없는 엔딩

여진은 “게임의 엔딩을 볼 때까지 일을 쉬겠다”고 말한다. 이 문장은 가벼운 농담처럼 시작하지만, 작품 전체를 끌고 가는 핵심 장치가 된다. 엔딩은 원래 “끝을 확인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문”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진짜 비극은, 여진의 죽음 이후 현실에는 ‘엔딩 크레디트’가 없다는 것이다. 게임 속 남자는 부상당한 아내를 찾아 헤매고, 플레이어는 죽어도 되살아난다. 하지만 현실의 그는 되살릴 수 없는 죽음을 맞는다.

여진이 여행사 일을 그만두고, 구두를 신고, 아이를 등원시키는 일(일상의 노동)을 하다가 사고로 사라지는 과정은, “좀비물”보다 더 잔혹하다. 좀비물은 최소한 ‘규칙’이 있고, 생존과 사망의 경계가 장르적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여진의 죽음은 가해도 서사도 없는 ‘급발진’의 침입으로 발생한다. 그래서 그는 “유족이 되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억울함이 끝없이 남는다. 이 억울함은 죄책감과도 얽힌다. ‘아이를 인도 안쪽에서 걷게 했던’ 여진의 당연한 배려, 그리고 그 순간 그가 “모텔 출동” 중이었다는 사실이, 남겨진 사람의 내부에서 논리로 정리되지 않는 잔여감이 된다.

2) “강은 자신의 물을 마시지 않는다” — 애도의 문장이 ‘게임 엔딩’으로 합쳐지는 방식

소설 중간의 짧은 문장들:

강은 자신의 물을 마시지 않는다.

나무는 자신의 열매를 먹지 않는다.

구름은 자신의 비를 삼키지 않는다.

이 문장들은 ‘지도자의 묘비’ 앞에서 등장하고, 곧바로 게임의 엔딩 크레디트와 겹쳐진다. 이 연결이 중요하다. 애도는 원래 현실의 장면인데, 소설은 애도를 게임 엔딩의 형식과 접합한다. 즉, 그는 죽음 앞에서 ‘현실의 언어’를 바로 붙잡지 못하고, 이미지와 화면, 클리셰의 문장을 통해 우회한다. 그 우회가 “도망”으로만 보이지 않는 이유는, 이 소설이 우회를 통해서라도 결국 삶을 굴려가게 하는 최소한의 장치를 찾아내기 때문이다. 그는 엔딩을 보고 싶었고, 엔딩을 보면 무언가 정리될 것 같았고, 그래서 밤새 좀비를 쏘아 죽이며 “플레이어는 되살아난다”는 규칙 속으로 숨어든다.

하지만 결정적인 변화가 생기는 순간이 있다. “언제부턴가 그는 게임을 잠시 멈추어두고 냉동 만두나 라면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건 작아 보이지만 회복의 지표다. 애도 상태에서 사람은 종종 “멈출 수 없는 몰입(도피)” 혹은 “아무것도 못 하는 정지”로 굳는다. 그런데 그는 일시정지(pause)를 배운다. 화면 밖으로 나오는 법을 아주 조금씩 회복한 것이다.

3) 파주 장릉: ‘죽음의 영역’으로 옮겨 가서, 오히려 덜 무서운 곳을 고르는 선택

그가 이직하는 곳이 왕릉(무덤)이라는 설정은 상징이 분명하다. 그는 응급구조사로 “생의 영역” 한가운데 있었다. 신고, 출동, 살아 있는 사람의 호흡과 피와 비명 속에서 일했다. 여진의 사고 뒤 그는 그 세계로 돌아가기 어렵다. 그래서 그는 죽음의 영역으로 이동한다. 역설적으로 그는 말한다.
“죽은 지 삼백 년도 더 된 사람의 무덤이 무섭지는 않았다. 고작해야 귀신을 마주치는 게 이곳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가장 큰 사고라는 점이 좋았다.”

이 문장은 냉소 같지만, 사실은 절박한 자기방어다. ‘진짜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곳, ‘진짜 죽음’을 더는 운반하지 않아도 되는 곳을 고른다. 즉, 그는 무덤을 택해서 죽음을 마주하려는 게 아니라, 죽음이 더는 갱신되지 않는 장소로 피신한다. 이 선택이 소설의 정서를 결정한다. 이 작품은 큰 각성이나 통렬한 고백 대신, 덜 아픈 자리로 옮겨 앉는 방식으로 회복을 그린다.

4) 별점 1.1과 4.9: 가치 판단이 ‘리뷰’로 환원되는 시대의 아이러니

장릉의 소장은 “여기 별 1.1”이라며 지도 앱 리뷰를 보여준다. ‘왕이 폐급이다’ 같은 후기들이 줄줄이 나온다. 이 장면은 웃기지만, 웃기기만 하진 않다. 죽음의 장소마저도 별점의 대상이 되는 시대, 역사와 애도의 무게가 스크롤 아래로 밀려나는 시대를 드러낸다.

그리고 소설 후반, 마라탕집에서 아이가 “리뷰 이벤트 할게요”를 말한다. 별점은 4.9다.
여기서 별점은 단지 배경이 아니라 주제와 접합된다. 한쪽에는 1.1점짜리 무덤(죽음의 영역), 다른 쪽에는 4.9점짜리 가게(소비와 생활의 영역)가 있다. 그는 죽음의 영역에서 일하지만, 결국 돌아오는 길은 생활의 영역—먹고, 웃고, 리뷰를 남기는—쪽이다. 이 소설은 “세상이 이렇게 가벼워졌구나”를 한탄하기보다는, 그 가벼움 속에서도 사람이 살아남는 방식이 있다는 쪽을 믿어본다.

5) 노인과 “무덤지기”: 삶의 기술은 거창한 위로가 아니라 ‘맡아 주는 일’

노인은 유아차에 개를 태우고 매일 들어오던 사람이다. 처음엔 규칙 위반처럼 보이지만, 곧 “동네 토박이”라는 이유로 묵인된다. 이때 소설은 규칙과 윤리의 긴장을 과장하지 않는다. 대신 노인은 말한다.
“어차피 세상에 무덤지기 아닌 사람 없어.”

이 문장이 작품의 등뼈다. 여기서 ‘무덤지기’는 직업이 아니라 태도다. 누구나 어떤 상실, 어떤 기억, 어떤 책임을 지고 산다. 주인공은 여진의 죽음을 지키는 사람이고, 노인은 노견을 지키는 사람이고, 아이들은 자기들의 세계(유튜브, 문제집, 이벤트)를 지키는 사람들이다.

노인이 그에게 카페를 “사흘, 나흘” 맡아달라고 부탁하는 장면도 중요하다. 누군가의 삶이 무너질 때 회복을 돕는 것은 대개 ‘조언’이 아니라, 작은 역할을 맡겨 주는 것이다. “가게 좀 봐줘.” 이 말은 “네가 아직 쓸모 있어”라는 아주 현실적인 인정이 된다. 그리고 그 인정은 주인공을 다시 ‘살아 있는 책임’으로 끌어올린다.

6) CCTV ‘라이브’와 구조: 화면의 거리감이 오히려 생명을 살리는 순간

소설이 진짜로 “라이브”가 되는 장면은 카페 CCTV다. 그는 화면 속 남자의 저혈당 징후(팔의 패치)를 알아차리고, 아이들에게 마이크로 말한다.

“학생들! … 거기 아저씨 좀 깨워볼래요?”

이 장면은 작품의 윤리를 압축한다. 예전의 그는 출동하는 사람이었다. 이제 그는 출동하지 않는 밤을 살지만, 다시 한 번 ‘살리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것도 직접 뛰어들기보다, 화면과 마이크를 사이에 둔 채로. 심사평이 말하듯 이 작품은 “모니터를 사이에 둔 듯한 거리감”을 단점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감각으로 끌어안는다. 타인의 위험을 알아차리는 일은 결국 “오래 바라보는 일”에서 나온다. 이 소설은 그 바라봄을, 기술과 생활의 질감 속에 심어 둔다.

7) 아이를 다시 마주치는 결말: “바라서는 안 되는 것”을 바라게 되는 마음의 변화

그는 여진에게 목숨을 빚진 아이가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길 바랐다. 그리고 그런 바람을 품는 자신이 싫어졌다. 이 대목이 아주 정직하다. 애도는 성인군자가 되는 과정이 아니라, 못난 마음이 생겼다가 사라지기도 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마지막에 그는 그 아이를 다시 본다. 아이는 영수증을 찍고 리뷰 이벤트를 신청하고, 땅콩소스를 요청한다. 별점은 4.9. 노인은 말한다. “고놈 참 똑 부러진다.”
이 장면에서 주인공의 마음은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다. 다만 “아이의 성장”을 더는 분노의 연료로만 쓰지 않고, 그 성장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한 발 움직인다. 소설은 여기서 ‘용서’나 ‘화해’ 같은 큰 단어를 쓰지 않고, 대신 “커피를 테이크아웃해 파주로 향한다”는 동작으로 마무리한다. 삶은 그렇게 다시 굴러간다.

8) 정리하면: 이 소설이 말하는 회복의 방식

엔딩(끝)이 없는 현실에서, 사람은 화면(게임·CCTV·리뷰)의 형식을 빌려서라도 하루를 건넌다.

“라이브”는 생방송이자 살아 있음이다. 이 작품에서 삶은 늘 실시간으로 어긋나고 우연이 개입한다.

회복은 거창한 각성이 아니라, 맡아 주는 일(가게 보기), 알아차리는 일(화면 속 위험), 함께 먹는 일(피자·마라탕) 같은 생활의 기술로 온다.

그리고 그 기술들은 결국 “죽음의 영역”에 머물던 사람을 다시 “생활의 영역”으로 데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