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경남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강약중강약 / 박필우

<당선작>
강약중강약 / 박필우
끝끝내 달구비가 쏟아졌다. 손에 둘둘 말아 쥐고 있던 짙푸른 2단 우산을 급하게 폈다. 파란 줄무늬 남방 앞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담배 두 개비만이 남아 비웃는다. 머리를 갸우뚱하며 축 늘어진 거적눈을 껌벅이다 입을 다셨다. 갈등도 잠시, 그중 한 개를 꺼내 입에 물었다. 펑퍼짐한 엉덩이를 감싼 반바지 뒤 호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댕겼지만, 이내 바람이 심술을 부렸다.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우산대를 귀와 어깨 사이에 끼우고 양손을 동그랗게 모아 라이터를 켰다. 하얀 담배 연기가 바람을 타고 비 사이로 사라졌다. 부처를 닮아 어깨까지 늘어진 귀가 이럴 때면 쓸모가 있었다. 때마침 길가 복권방에서 최헌이 부르는 ‘가을비 우산 속’이 흘러나왔다. 흥얼흥얼 노랫말을 따라 하며 가던 길을 재촉했다.
전날 저녁, 술에 절어 잠이 들었다. 비몽사몽, 해가 중천에 떠오르고서야 무거운 몸을 운신할 수 있었다. 컵라면으로 허기를 달래며 반주 삼아 소주 반병을 비운 것이 잠을 부채질하는 나른한 미약으로 변해 여태 방에서 육중한 몸을 뒤척이게 했다.
나이 오십이 넘도록 직업이라곤 가져본 적이 없다. 주위에선 일평생 놀고먹는 건달이라며 말을 뒤집어 달건이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성이 박가라 ‘박달 선생’이라는 다소 풍류 섞인 이름도 얻었다. 정작 본명을 아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육척의 키에, 몸집은 절집 마당 입구에 둥근 배를 드러낸 채 낄낄 웃고 있는 포대화상을 닮았다. 남산만 한 배를 두른 남방 앞 단추는 늘 터질 듯 아우성이었다. 머리카락은 양쪽 귀 위만 남기고 뒤통수까지 벗겨졌고, 머리통이 커 어지간한 모자는 거부했다. 한여름 태양에 오롯이 노출된 머리가 구두약으로 광을 낸 것처럼 반짝였다. 뭉툭한 개발코에, 지구 중력에 늘어질 대로 늘어진 볼에다 두툼한 턱은 욕심과 아집이 똘똘 뭉친 듯했다. 반바지에 세줄 슬리퍼, 그 위로 발목이 긴 검정 양말은 신었다. 늘 반 술에 절어 있어 게슴츠레한 눈은 심각한 생각에 빠져있거나, 아니면 아무런 생각도 없어 보였다. 탈탈 먼지만 날리는 주머니 사정이라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손바닥에 꼭 쥐고 있는 라이터가 생각났다. 무심코 라이터에 적힌 글을 읽었다.
‘궁원’
순간 머리를 ‘땅!’하고 때리는 것이 있어 발길을 멈췄다. 끌리듯 궁원으로 향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입에 모래를 머금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나달 전 궁원에서의 일을 온전히 가시지 않은 술기운에 망각하고 있었다. 소방도로 한 가운데 벅수처럼 서 있었다. 뒤에서 신경질적인 경적에 큰 덩치를 움찔하며 주차된 차들 사이로 몸을 피했다. 그때였다.
“여기서 뭐 하는…?”
귀에 익은 목소리다. 뒤를 돌아다보았다. 회색 머리칼, 검은색 바바리에 검정 우산을 받쳐 든 공작가가 자신의 아래위를 훑어보고 있었다. 나이도 어린놈이 반말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존댓말도 아니게 말끝을 흐려 늘 기분이 상했다. 한 번씩 시비를 걸었지만, 그러나 주위에서 편들기는커녕 도리어 화살을 자신에게 돌려 궁지로 몰렸던 기억밖에 없다. 놈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노트북을 화장실에 처박은 기억은 육 개월이 넘었지만, 여전히 기운을 방방 뜨게 했다. 그래도 주머니 사정상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거두절미 아는 척,
“어디 가?”
“궁에서 한잔.”
“담배 있나?”
“끊었고.”
“뭐! 언제?”
“아침에.”
“지금 놀려?”
“티 나? 윗주머니에 담배 있네.”
“한 개 남아서.”
“찌질하게 사는 방법도 다양하네.”
“…….”
신용이 바닥난 것도 모자라 주머니 사정도 바닥이고, 담배마저도 바닥을 보이고 있으니, 마음도 밑바닥이라 어떻게든 술값을 마련해야 했다. 그러나 능글맞게 대꾸하는 탑삭부리 턱주가리를 날리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과는 다르게 외로움이 파도처럼 밀려와 몸을 떨었다.
“간다.”
붉게 물든 뒤통수를 보이며 발길을 돌렸다. 공작가 얼굴에 묘한 미소가 흐르는가 싶더니 점점 메밀눈으로 변했다. 공작가가 달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카드 받지 않는다고 고발한다며?”
나달 전의 일이었다. 궁원 주모가 공작가와 정답게 말을 섞는 것을 본 달은 기분이 상했다. 기둥서방이라도 되는 양 주모에게 이년 저년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과부년까지 했다가 소프라노 고음에 사금파리 갈아대는 목소리로 오지게 욕 얻어먹고 결국 그간에 마신 외상술값 안 줘도 좋으니 다신 얼씬도 말라는 최후의 통첩을 받았다. 그래서 기껏 생각해 낸 것이 카드 결제 거절하는 것 고발하겠다며 소리쳤던 것이다.
“아직 고발 안했는가?”
공작가가 연이어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달이 발길을 돌렸다.
“새꺄! 왜 참견이야?”
공작가 얼굴에 삿대질했다. 공작가도 지지 않았다.
“입 다물지? 삐딱한 이빨 선 다 보이는데. 인생이 삐딱하니 이빨도 알아서 삐딱하구먼!”
공작가가 달이 가장 부끄러워하는 곳을 찔렀다. 얄팍한 입술 사이로 윗니 아랫니가 대각선으로 가지런한 특이한 모습을 들키고 말았다. 거울을 볼 때마다 인생도 치아 선처럼 삐딱한 사선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관상 중 절간에 부처님 닮은 볼과 늘어진 귀가 복을 부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치아 선으로 인해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목돈이 생기면 치아부터 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 아니, 기회가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는 것이 맞다. 목돈이 생기면 노름할 생각부터 먼저 들었으니, 팔아먹을 족보조차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달은 몰랐다.
“이 새끼가….”
눈을 치켜뜨고 노려보는 공작가를 향해 홀로 중얼거리듯 내뱉고는 붉게 물든 얼굴로 몸을 돌렸다. 기실 싸움에 자신도 없었다. 대신에 사람 열받게 하는 묘한 재주를 가진 저런 발암물질 같은 놈은 상대할수록 손해라는 정신 승리법으로 이겨냈다.
불현듯 갈 곳이 생각났다. 제일슈퍼다. 먼저 남방 윗주머니에 꽂혀 있던 담배는 바지 뒷주머니로 쑤셔 넣었다. 빨간 뿔테안경을 쓴 아주머니는 착착 감길 것 같은 말씨에 제법 배운 티가 났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궁원 앞을 지나야 했다. 멀리 돌아서 가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달은 자신도 모르게 궁원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건물 이마에 붙은 빛바랜 간판에 몇 해 전에 죽은 주모 시어머니 사진이 처연한 눈길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빠끔히 열린 창으로 왁자그르르 소리에 막걸리 냄새가 뒤섞여 풍겨오는 듯했다. 꼴깍 침이 넘어갔다.
‘궁원’, 이름과 동떨어지게 멋과 품격과는 거리가 먼 이곳은 하루건너 장날이자, 하루건너 곗날 같았다. 용기를 내서 문을 열고 들어가 볼까 하는 생각이 지배했다. 배짱이 좋아야 했다. 강인한 인간만이 언제나 먹이를 챙길 수 있다. 머뭇대는 인간은 항상 배고픔을 면하지 못한다. 우산을 돌려준다는 핑계도 있었다. 슬그머니 빈자리를 찾아 엉덩이를 걸치면 될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달이 좋아하는 자리가 창문에서 두 번째였다. 넓은 창으로 햇살이 비추고, 간혹 생선 굽는 냄새를 피해 창문을 열어 바깥 공기를 쐴 수 있어 좋았다. 그러나 달은 무엇보다 주모가 상체를 숙였을 때 목선 아래 살품을 힐끗 엿보는 맛이 짜릿했다.
때마침 문이 열렸다. 매일 술 출근하는 봉식이가 담배를 손가락에 끼운 채 나왔다. 작달막한 키에 행동이 굼떠 나무늘보 같았지만, 말은 무진장 빨랐다. 담배를 피우기 위해 밖으로 나온 것 같았다.
“달 아니제?”
말에 적당한 리듬이 있었다. 반가웠다. 그러나 훔쳐보다 들킨 것 같았다.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쭈뼛거렸다.
“여서 뭐하제?”
말끝이 늘 제제거려 듣기가 거북했다. 그건 그렇고 물음처럼 글쎄다? 자신이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담배 한 대….”
“형편 안 되면 끊어야제!”
“…….”
“들어가 가져와. 내 자리 알제?”
달은 자존심이 상했다. 오만상 눈치 보며 들어가 담배만 쏙 빼 온다는 것은 아무래도 쪽팔리는 일이었다. 패잔병처럼 말없이 몸을 돌렸다. 괜히 그곳에 머뭇대다 꼴같잖은 모습 보이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한 표정으로 반겨주는 제일슈퍼 주인장이 눈물 나게 고마웠다. 빨간 뿔테안경을 쓴 뽀얀 얼굴은 세월도 비껴간 듯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이 단아한 모습 그대로였다. 묵묵히 냉장고를 열어 맥주 두 병을 꺼냈다. 진열대 위에 짜장 참치 하나를 집었다. 아주머니는 늘 그랬던 것처럼 종이컵 하나와 나무젓가락을 건넸다. 두 손으로 받아 들고 돌아설 때였다.
“궁원 아주머니한테 과부년 했다면서요?”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오늘따라 단호하게 느껴졌다.
“히히! 술에 취해서….”
눈조차 맞출 수도 없었다. 술병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건물 벽과 연결된 천막 아래에 내려섰다. 플라스틱 빈 상자 하나를 내려서 위에 종이상자를 펴고 맥주와 안주를 다소곳이 놓았다. 그리고 건물 난간에 펑퍼짐한 엉덩이를 걸치고 자리를 잡았다. 호주머니서 꺼낸 빨간 라이터로 능숙하게 병뚜껑을 땄다. ‘뻥!’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맥주병에서 뽀글뽀글 기포가 올라왔다. 앞에 펼쳐질 삶도 이처럼 경쾌하길 간절하게 바라며 급하게 종이컵에 맥주를 따랐다. 금방 뽀얀 거품이 넘쳤다. 입을 컵으로 가져가 넘치는 거품을 빨았다. 이때 그동안 잠잠했던 빗줄기가 요란하게 천막을 때렸다. 뒤에서 주인아주머니가 팔짱을 낀 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것만 마시고 다시는 오지 마세요. 외상값은 주고 싶으면 주고, 돈이 있더라고 주지 않아도 돼요.”
빗소리를 뚫고 들려오는 천사의 응징, 결국 이것이었다. 달은 이 와중에도 이럴 줄 알았으면 세 병을 들고나올 것을 그랬다며 후회하고 있었다.
*
“말에 베인 상처는 칼에 베인 것보다 더 아프고 오래가요.”
제일슈퍼 아줌마 마지막 말이 이명처럼 따라붙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뚫고 사무실로 향했다. 말이 좋아 사무실이지 기실 2층 건물에 자리 잡은 허름한 기원이었다. 그곳에서 홀로 온 고객 맞상대를 해주거나 간혹 내기바둑이라도 걸리는 날이면 술과 밥을 동시에 해결할 수도 있었고, 술값도 챙길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따로 없었다. 어쩌다 한 건 걸리면, 한 달 용돈까지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기바둑 고수로, 화투판 타짜로 소문난 자신에게 더 이상 판을 내줄 사람은 없었다.
달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은 딱 세 가지라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것과 노는 것, 그리고 일하는 것이다. 문제는 달에게 노름은 유희가 아니라 일이었다. 노름이란 유기적인 공동체에서 하등 관계없는 타인을 위해 나의 자원을 쓰는 봉사활동이라고 확신했다. 놈들이 평생 느낄 수 없는 짜릿한 손맛은 물론 흥분과 광분, 희망과 절망, 좌절과 배신, 분노와 광휘의 쾌락을 여러 번 보여준 대가로 조금 챙기는 것이 도덕적으로 죄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달은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나 뿌듯했다. 거울을 보면서도 화투장을 손에 놓지 않은 습관을 지녔다. 그래야만 야생동물에서만 느낄 수 있는 넘쳐흐르는 생기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막상 아무도 상대하려는 사람이 없으니 실업자 신세가 따로 없었다. 최근 들어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강약과 흐름결 조절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었다.
갖가지 상품들이 아우성치며 말을 걸어오는 시장 한가운데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송도횟집 앞을 지나갈 때였다. 무 오가리처럼 쪼글쪼글한 앙가발이 주인 여자가 엉덩이를 실룩이며 지나가는 달을 확인하자 갈고리눈을 한 채 째려보았다. 달은 왼쪽 볼이 후끈 달아올랐다. 달포 전, 그간 밀린 외상값은 안 갚아도 좋으니 다신 얼씬도 말라며 동네에서 가장 먼저 출입 금지령을 내린 장본인이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금지령이 동원식당에 이어 궁원까지 합쳐 세 곳으로 이어졌고 방금 제일슈퍼까지 네 곳으로 늘어났다.
동원식당 앞을 지날 때였다. 식당 앞에 전봇대처럼 훌쩍 큰 키에 비쩍 마른 최오백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공사장 막일로 몇 달 동안 뼈 빠지게 일해서 번 돈을 달에게 몽땅 털린 후 ‘돈은 따먹어도 사람까지 따먹지 말라!’며 악을 쓰던 동네 후배다. 타짜에게는 돈에 향기가 풍기듯 목돈이 있음을 직감으로 알았다. 한 달에 걸쳐 작전을 편 끝에 그물에 스스로 걸어오게 했다. 그러나 달은 후회하거나 추호도 미안한 생각은 없었다. 이 모두가 자연의 섭리이자 강자 독식 세상에서 능력이라 생각했다.
문득 뒷주머니에 하나 남은 담배가 생각났지만, 최후의 맛을 위해 상비약처럼 아껴야 했다.
“달! 오랜만이네.”
최오백이 숫제 반말로 아는 체했다. 달은 속으로 ‘나이도 어린 이 새끼가.’ 하며 기분이 나빴지만, 도리가 없었다. 대신 둥글넓적한 얼굴을 보름달처럼 환하게 해 악수를 청했다.
“우리가 악수할 사이냐?”
최오백이 메밀눈을 하고 피부병 걸린 사람 취급하듯 손을 피했다. 그리곤 한술 더 떠서,
“아직도 그렇게 사냐?”
최오백이 빈정대며 아픈 곳을 건드렸다. 그러나 뭐라고 해도 좋았다. 한잔하면서 담배만 마음껏 피울 수만 있으면 무슨 말이라도 이겨낼 프로그램이 내재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기대완 다르게 최오백이 담배 연기를 달 얼굴에다 ‘후~’ 하며 내 품고는 피우던 꽁초를 엄지와 중지 사이에 끼워 빗물이 흥건한 바닥으로 툭 튕겼다. 달은 화가 나기보다 담배 연기가 구수하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미련이 남은 달은 몸을 돌리는 최오백에 대고 말했다.
“요즘 어째 지내?”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이보다 더 굴욕적일 수는 없었다.
“미친…….”
짧지만 긴 여운의 답을 남긴 최오백이 동원식당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시선이 자신도 모르게 최오백 등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간절하게 기적을 바라면서 기어이 고개를 들이밀어 식당 안을 살폈다. 참 맛있는 향기, 해물파전 익어가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샘에 물이 솟듯 입에 침이 고여 왔다. 어두운 조명 아래, 탁자 서너 개에 사람들이 이리저리 자리를 차지하고 맥주나 소주, 혹은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최오백이 아까 골목에서 만난 공작가와 함께 앉아 있다. 본능처럼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문득 이 새끼들이 모였다면 자신을 향해 포석을 놓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해코지할 이유가 충분했기 때문이다. 공작가 시선이 날아와 파편이 되어 이마에 꽂혔다. 그때였다. 사기그릇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외상값 갚지 않아도 좋으니 오지 말라고 했잖아!”
동원식당 주인아주머니다. 달은 나이도 한참 어린 마늘각시 여편네가 반말로 지껄이는 것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존심을 죽일 수 없었다.
“이년아! 내가 들어갔나?”
그랬다. 식당 안에 발을 들여놓지도 않았는데 왜 소리 지르고 지랄이냐 란 뜻이었다. 의외의 반격이 돌아왔다.
“껄떡거리지 말고, 꺼지란 말이다! 손님들 술맛 떨어지게.”
달은 모욕감을 느꼈다. 공작가와 최오백을 포함해 안에서 술 마시던 사람들이 낄낄대며 달을 향했다.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얼굴을 붉힌 채 돌아서야 했다. 등 뒤로 동원식당 여편네 말소리가 들렸다.
“저 오사리잡놈은 술만 처먹으면 욕지거리를 입에 달고 살아.”
처량한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털어냈다. 시간의 강을 건너듯 얼마간만 버티면 모두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라 믿었다. 그때까지 어떻게든 견뎌야만 한다며 스스로 다독였다. 추적추적 질리게 내리던 비가 조금씩 가늘어졌다. 뒷주머니에서 하나 남은 담배를 꺼냈다.
넓은 곽 속에서 외로이 비틀거리는 담배가 빈 여백만큼 초라해 보였다. 갈등도 잠시, 우산대를 귀와 어깨 사이에 끼우고 한 손으로 하나 남은 담배를 꺼내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나 그도 쉽지 않았다. 우산대에 손이 부딪치면서 손가락을 떠난 담배가 뱅글뱅글 돌아 바닥에 떨어졌다. 담배는 이내 빗물이 스며들어 흐물흐물 변해갔다. 재빨리 손을 뻗어 들었으나 이미 늦었다. 입을 벌린 채 빗물에 젖은 담배만 바라만 보았다. 윗니 아랫니가 사선으로 가지런한 이가 드러났다. 바닥에 내팽개쳐진 담배는 옆구리가 터진 채 속살을 드러내며 빗물에 흩어졌다. 생담배 냄새만 맡은 꼴이었다.
육체가 그럭저럭 따라오니 살아있다고 느낀다. 그에 대한 증거를 대라면 얼마든지 댈 수 있다. 몸 구석구석 찰나의 순간을 위한 응집된 에너지는 항상 비축되어 있다고 자신했다. 낡은 2층 건물, 밖으로 난 계단을 통해 기원 안으로 들어갔다. 빗물을 머금은 창문으로 희미한 빛이 조명처럼 비추고, 천장에 달린 백열등이 안간힘을 썼다. 이리저리 놓인 녹색 소파에 두 팀이 딸각거리며 바둑을 두고 있다. 달이 손을 들어 아는 체했다. 잉잉거리며 돌아가는 냉장고 문을 열고 마시다 반쯤 남은 소주를 꺼냈다. 뽀얀 얼굴에 흰 머리털이 듬성듬성 난 기원 쥔장 조진호가 쪽방에서 쟁반을 받쳐 들고 나오며 달을 반겼다.
“이거.”
달을 확인한 조진호가 노란 고무줄에 똘똘 말려 결박당한 오만 원권 지폐를 건넸다. 그 봐! 고난 뒤에 찾아오는 행운은 그 맛이 훨씬 달다. 그러나 달은 직감적으로 안다. 공짜가 아니다. 단언컨대 조건 없는 돈은 부채다. 아무래도 좋았다. 며칠 후 마약보다 더 황홀한 시간을 경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달을 들뜨게 했다. 달 얼굴은 모르핀 주사를 맞은 양 순식간에 화색이 번졌다. 급하게 담배를 얻어 물고 화장실로 향했다. 지폐의 까슬까슬한 감촉이 더없이 좋았다. 담배를 꼬나문 채 고개를 옆으로 해 눈으로 파고드는 연기를 피했다. 지폐를 확인했다. 다섯 장이다. 판돈이 천만 원이란 뜻이다. 몸 밑바닥에서 소몰소몰 타짜의 본능이 깨어났다. 2대 1대 1의 싸움이지만, 승부는 시작하기도 전에 났다. 새로운 물주가 걸려든 것 같았다. 밑천은 지금까지 달의 승률을 맹신하는 조진호가 늘 마련해 왔다.
우산을 펴 들고 밖으로 나왔다. 주머니에 이십오만 원이란 거금이 들어 있는 이상 아무도 자신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담배 한 갑을 샀다. 마치 처음 맛보는 담배인 양 양껏 빨아 깊숙하게 넘긴 후 시원하게 내 품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짜릿한 전율이 연기와 함께 뿜어져 올랐다. 밖으로 나온 담배 연기는 천사의 모습으로 변해 허공으로 사라졌다. 빗줄기는 점점 가늘어지다 오락가락 힘을 다해가고 있었다. 왔던 길을 되짚어 걸었다. 저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마음이 리듬을 타면서 얼굴에 기쁨이 번졌다. 동원식당 앞을 지날 때였다. 최오백이 이전처럼 담배를 피우고 있다. 다리를 떠는 것도 똑같았다. 공작가는 보이지 않았다.
“달! 똥개처럼 어딜 쫓아다녀? 좋은 일 있나 봐!”
말의 내용은 거칠었지만, 목소리는 한결 부드러웠다. 달은 자기 호주머니에 돈이 냄새를 풍긴다고 생각했다.
“공작가는?”
조금 전에 받은 수모는 벌써 잊었다. 최오백이 이죽이죽 웃어가며 대답했다.
“어린놈이 건방 떨어서 보냈어.”
최오백과 공작가가 함께 있는 모습에 불안했던 마음은 기우라 생각했다. 그건 그렇고 달이 딱히 갈 곳도 없었다. 홀로 중국집에 들어가 짬뽕 국물에 소주를 마시는 것도 성에 차지 않았다. 돈이 있을 때는 술잔도 주거니 받거니 해야 했다. 선택은 눈앞이다.
“한잔할래?”
순간 최오백 눈이 살짝 빛나며 입꼬리가 한쪽으로 움직였다.
“웬일? 나야 좋지! 로또 당첨됐나?”
궁원은커녕 이전 단골집에는 얼씬도 하지 못했다. 결국 현금을 꼬박꼬박 내야 한 잔씩 주는 남궁에 마주 앉았다. 사람들은 궁원을 가운데 두고 동원식당을 동궁, 남도식당을 남궁으로 부르곤 했다. 단골들 면면을 살펴보면, 어느 때 겨울잠에 들지 모르는 처지지만, 주머니에 돈 몇 푼 만져진다면 더 큰 자극을 찾아 강렬함을 열망하며 기고만장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남궁 역시 궁원처럼 놋그릇에 한 잔씩 막걸리를 부어서 팔았다. 궁원에 비해 자리도 비좁을 뿐만 아니라 무뚝뚝한 주모 얼굴도 인기에 한몫했다. 외상이라고 말하는 놈이 있다면, 멱살 잡혀 파출소까지 끌려가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달은 식탁에 앉자, 큰소리로 해물파전을 시켰다.
술이 몇 순배 돌았다. 전주가 있던 최오백의 얼굴에 발그레하게 술기운이 올랐다. 입으로 가져가던 술잔을 내려놓고 무엇인가 할 말이 있다는 듯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러다 다시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마른침을 삼킨 후 잔을 입으로 가져가길 반복하고 있었다. 최오백이 바둑에서 중반 싸움에서 유리하게끔 초반 포석을 놓는다고 생각한 달은 끈기 있게 기다렸다. 몇 잔을 더 비운 뒤에 최오백이 담배를 물고 밖으로 나가자, 달도 담배를 챙겨서 일어섰다. 비는 그쳤으나 하늘은 여전히 잔뜩 내려앉은 채 무채색으로 짙어져 있다.
최오백이 하늘로 오르는 담배 연기에 시선을 향한 채 입을 열었다.
“한판 벌일 때 연락 줘.”
역시 그랬다. 기다림 끝에 오는 행복이었다. 입질이 왔다고 급하게 당기면 놓쳐버리기 십상이었다.
“뭐라고?”
리듬을 조절하듯 못 들은 척 달이 되물었다. 그러자 최오백이 고개를 돌려 얼굴 가까이 대고 말했다.
“씨발, 복수해야 하잖아.”
달은 이 새끼가 잽을 날린다고 생각했다. 진심인지 시험해 볼 필요가 있었다. 이제 한 번만 더 걸리면 최소 2년 실형을 살아야 했다. 담배를 길게 빨아들인 후 아까 최오백이 했던 것처럼 최오백 얼굴에 ‘후!’하고 연기를 내뿜었다. 참고 있거나, 웃는다면 백 퍼센트 함정이었다. 이내 최오백의 눈에 빛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얼굴이 썩은 고구마처럼 검붉게 변하며 달려들었다.
“이 개자식이!”
최오백 침이 달 이마에 튀었다. 불끈 쥔 주먹은 금방이라도 면상을 향해 날아 올릴 기세였다. 달은 판단이 빨랐다. 이제 패를 내보일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장난이었다는 듯 손을 들어 최오백의 주먹 쥔 손을 잡았다.
“이히히~ 알았다! 알았다!”
최오백이 조금 수그러드는 듯했지만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그러자 달이 주위를 살핀 후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바꿔 빠르게 말했다.
“내일 여덟 시.”
그제야 평소 표정으로 돌아온 최오백의 눈이 반짝 빛났다.
“크기는?”
“무한, 새벽닭이 울 때까지.”
“문지방은 누가 봐?”
“조 선생밖에 더 있나.”
“조진호 그 백대가리? 하여튼 알았어! 미리 식사하고 있어. 반까지 갈게.”
“강약 중강 약, 따블”
“지랄! 빨갱이 접선도 아니고…….”
“아니, 들어올 때 잊지 마. 강약 중강 약 따블!”
“알았어, 지난번처럼 장난치면 죽는다!”
이를 갈며 내뱉은 최오백 말이 달이 확신을 가지게 했다.
*
낮의 빛 속에 그럭저럭 살아온 인간들일수록 어둠이 찾아오면 안색뿐만 아니라 마음의 색도 염색하길 마다치 않는다. 재래시장 후미진 뒷골목, 뜨문뜨문 서 있는 가로등 불빛이 안간힘을 쓰며 어둠과 맞서고 있다. 네거티브선 너머의 어둠은 빛을 비웃으며 블랙홀처럼 세상을 빨아들이고 있다. 어깨를 촘촘히 기댄 건물 사이, 끼일 듯 웅크리고 있는 낡은 이 층 건물이 어둠 속에 더 초라하게 보였다. 듬성듬성 붙어 있는 누런 타일, 옥상에서 녹물이 핏물처럼 흘러내려 세월의 흉터를 내보이고, 1층 출입문은 입을 굳게 다문 채 오랫동안 열리지 않은 듯했다.
앞으로 덩치 큰 검은 물체가 움직이고 있다. 가로등 조명에 빛을 받아 번들거리는 이마의 사내, 달건이다. 달은 주위를 살피는가 싶더니 건물 옆으로 난 계단을 따라 올랐다. 한 발 오를 때마다 엉덩이가 실룩거리긴 했지만,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계단 끝에 서자 스테인리스 문이 앞을 막았다. 채광을 위한 유리창에 페인트로 ‘조기원’이라 쓴 붉은 붓글씨가 칠이 벗겨져 있었다. 건물의 고단했던 흔적처럼 보였다. 창 넘어 어두운 내부에는 사람의 흔적이라곤 보이지 않는다.
달은 반바지 앞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능숙하게 문을 따고 안으로 들어갔다. 눅눅한 곰팡내가 훅 달려들었다. 광창을 통해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을 조명 삼아 익숙한 몸놀림으로 이리저리 놓인 소파와 탁자를 피해 걸음을 옮겼다. 스테인리스로 된 긴 재떨이를 두 개를 통로 한 가운데 일정한 간격으로 가져다 놓았다. 큰 판을 벌일 때 만약을 대비한 자신만의 의식 같은 것이었다. 칸막이로 막아놓은 간이 주방을 지나자 구석진 곳에 골방이 나타났다. 미닫이문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방문 앞에는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인 양 낡은 슬리퍼 두 짝만이 놓였다. 방안에서 귀를 쫑긋 세워야 들릴만한 목소리가 두런두런 들렸다. 달이 문을 열자, 방 안에 있던 서너 명의 남자들이 앉아 아는 체를 했다. 신발은 뒷문에 벗어 놓은 채다. 타짜의 격은 노름판에서 빛이 난다.
“박달 선생 왔어?”
예를 다한 인사에 밖에서 을씨년스럽던 느낌과는 달리 달의 동공이 밝아지면서 얼굴에 화색이 번졌다. 다름 아닌 눈앞에 펼쳐진 그림 때문이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화투장만 보면 타짜의 기운이 단전 아래서 피어오르며 마음속에서 환희의 송가가 흘러나오곤 했다.
정사각형의 방, 담배 연기가 방안을 가득 채우고, 담배 지린내가 진하게 눌어붙은 재떨이가 코를 제압했다. 벽엔 노랑머리 여자가 살점을 드러내고 시선을 유혹하는 맥주회사 달력뿐, 거울이나 액자 등 일반 가정집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은 일절 없었다. 앉은뱅이책상 하나가 구석 모서리를 차지하고, 위에 쟁반에 은색 주전자가 방안의 인간들 형상을 일그러지게 투영하고 있다. 반대편 벽 여닫이 쪽문에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뚫어 놓은 출구가 있다. 문을 열고 난간에 서서 힘껏 도움닫기 하면 옆 건물 옥상으로 건너뛸 수 있었다. 그러나 육중한 달은 시도조차 해본 적이 없다. 만약 잘못되는 날이면 건물 사이에 떨어져 병신이 되거나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방 한가운데 군용 모포에 화투가 이리저리 널렸고, 주위로 꾀죄죄한 얼굴에 후줄근한 차림의 사내들이 둘러앉아 있다.
“오백이는?”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던 조진호가 달을 향해 물었다. 달은 윗도리를 벗어 둘둘 말아 구석에 던지며 대답했다.
“삼십 분쯤 늦을걸.”
이들에게 의심은 본능이다. 그러나 방안에 모인 사람들 눈에서 발사하는 광채가 공간을 헤집자, 마음은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조진호는 분위기가 흐트러지지 않게 목소리에 힘을 주며 리드미컬하게 말을 이었다.
“자! 다들 아는 처지니 인사는 생략하고 본격적으로 식사들 하지?”
조진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방안의 사내들이 동시에 움직였다. 침을 꼴깍 삼키는가 하면, 고개를 돌려 목을 푸는 사내도 있었다. 달은 좌불상처럼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펑퍼짐한 엉덩이를 밀어 당겨 앉았다.
가운데 낡은 군용 모포가 사각으로 접혔고, 이내 판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첫판부터 내리치는 손에 기운이 넘쳤다. 손에 펼쳐 쥔 화투를 노려보는 눈에는 정기가 충만했다. 사내들 앞에 오만 원과 만 원권 지폐가 쌓였다. 눈을 자주 깜박이는 어정쩡하게 앉은 민대가리와 곱사등처럼 허리를 굽힌 채 주위를 쉼 없이 두리번거리는 사내가 오늘의 밥이다.
“그 친구 옛날에 한 번 붙어본 적 있지. 믿어도 될까?”
솟아오른 광대뼈와 그 아래로 연결된 긴 턱에 정리되지 않는 수염이 자갈밭에 풀처럼 돋아난 사내가 최오백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달과 오랜 세월 동안 손을 맞춰온 패거리다.
이 말에 잠시 손을 멈춘 곱사등이 입에 담배를 문 채 달을 올려다보았고, 콧구멍이 유난히 넓은 민대가리까지 눈길이 몰렸다. 시선을 의식한 달이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 확인했어.”
그때였다.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강약 중강 약 두 번, 입구 스테인리스 문 두드리는 소리였다. 달이 고개를 돌려 문 앞에 앉아 있는 조진호에게 말했다.
“왔네.”
담배를 입에 물고 벽에 몸을 기댄 채 돌아가는 판을 관망하고 있던 조진호는 담배꽁초가 수북하게 쌓인 재떨이에 헤집어 비벼 끈 후 손가락을 후후 불면서 밖으로 나갔다. 슬리퍼를 끌고 주방을 지나 어둠 속에서 이리저리 소파를 피해 익숙한 몸놀림으로 문을 향했다.
문 앞에 다가선 조진호가 한 손으로 문고리를 잡은 채 목소리를 낮춰 조용히 말했다.
“누구……?”
“오백.”
생각보다 큰소리로 빠르게 대답했다. 조진호가 ‘탈칵’ 하고 문고리를 풀었다. 계단 위 붉은 가로등 불빛을 등진 채 키 큰 사내가 건들거리며 웃고 있었다. 옆과 뒤로 점퍼 차림의 건장한 사내 여러 명이 몸을 숨기고 있다. 그중 한 명이 재빨리 다가와 손바닥으로 조진호 입을 막았다.
“쉿!”
나머지 사내들이 봇물 터지듯 안으로 밀려들었다.
“쨍그랑!!!”
통로 가운데 세워두었던 스테인리스 재떨이 넘어지는 소리가 날카롭게 귀를 파고들었다. 급하게 몰려든 탓에 점퍼의 사내 중 하나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달의 본능이 위기를 직감하면서 비상사태를 알렸다. 앞에 황토색 지폐만 움켜서 앞주머니에 쑤셔 넣은 뒤, 벌떡 일어나 뒤로 난 쪽문을 급하게 열었다. 머리를 숙여 밖으로 내미는 순간 문설주에 ‘쿵!’ 하고 이마를 박았다. 속으로 ‘최오백 이 개새끼!’ 하며 이를 갈았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돈은 따먹어도 사람은 따먹지 말라!’며 악을 쓰던 그때를 너무 쉽게 잊었던 것이 패착이라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동작 그만!!!”
등 뒤로 명령조의 강압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젊고 건장한 사내들이 순식간에 들이닥치자, 세 명의 남자는 순순히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뒤로 난 쪽문을 빠져나와 난간에 올라선 달은 불과 0.1초 사이, 순순히 잡혀 실형을 살 것인가? 아니면 죽기로 뛰어 도망칠 것인가? 생각이 우주를 관통하듯, 하지만 이미 몸은 허공에 떴다, 아니, 건물과 건물 사이 공간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체중을 이기지 못한 발이 삐끗했다. 떨어지며 뒤통수가 뒷벽에 부딪혔다. 그리고 ‘쿵!’ 하는 소리와 동시에 ‘악!’ 소리가 들려왔다. 일 미터 남짓 좁은 공간에 건축 폐자재가 쌓여있는 그곳에 펑퍼짐한 엉덩이부터 떨어졌다.
며칠 후 시장에 달에 대한 소문이 무수히 나돌았다. 누구는 뛰다가 떨어져 불구가 되었다고 했고, 또 누구는 삐죽 솟아난 철근에 찔려 즉사했다고도 했다. 그나마 달과 조금이라도 가깝게 지내던 봉식이가 정리했다. 병원에 누워 있는데, 죽지는 않겠지만, 충격으로 시력을 잃은 상태며, 다리병신은 면하지 못할 거라고 했다. 누구 하나 돌봐줄 사람도 없는 달이지만,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도 없었다.
궁원에 모인 사람들 화두도 당연히 달에 관한 것이었다. 오십오 세 정년 후 십 년째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곱슬머리 사내가 입을 열었다.
“눈이 안 보여 노름은 다 했네.”
그러자 팔십을 바라보는 은행 지점장 출신이 화답하듯 술잔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느릿느릿 보탰다.
“무턱대고 살아가든, 막무가내로 살든, 그저 버티며 살든, 달처럼 살면 인생이 어떻게 끝날지 보여줬구먼.”
칠십 살이 되도록 막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문 씨가 검붉은 얼굴로 거들었다.
“스스로 그림자도 없는 음지에 기어든 인간이 반성은 할까? 나처럼 하늘만 원망하겠네!”
모두 입을 다물고 있는 봉식이를 쳐다보았다. 시선을 느낀 봉식이가 입을 뗀다.
“그 인생도 참 애처롭기만 하제.”
봉식이 말에 모두 입을 다문다. 그나마 말끝에 자라 꼬리만큼 정이 담겨있어서다. 삶에 허우적대면서도 남의 불행을 위해 손톱을 갈아대는 인성이 아니라서 다행이랄까.
최오백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멍하게 앉아 삶은 고구마를 주접대며 먹고 있는 주모 앞으로 빈 술잔을 내민다.
<당선소감>
소설이라는 거인과 부딪쳐 보겠다
게맛살보다 더 맛있다는 역맛살에 취해 산천을 누비며 사색에 들었고, 옛것을 찾아 머물길 주저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내면의 사연을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글과 인연을 맺었다.
시간이 중첩되면서 스토리텔링을 넘어 소설의 매력에 빠졌고, 살아 있는 자, 변화를 꿈꾸며 진일보하는 자가 되기 위해 애썼지만, 결실은 실망스러웠다.
잔치는 늘 타인의 것이었고, 아웃사이드 혹은 마이너리티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꿈은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잊히는 것, 포기하지 않았다. 작은 칭찬에 눈물겨워 할 수도 없었고, 설익은 작품에 만족할 수 없었다.
나를 증명해야 했지만, 세상은 나의 의식을 벗어나 있었다. 결국엔 시간이 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처럼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채신머리없게 깡충깡충 뛰고 싶을 만큼 참 고마운 일이다.
앞으로 소설이라는 거인과 마주한 채 진을 짜내야 할 것 같은 예감이다. 그러나 필연적으로 부닥쳐야 할 희망으로 고쳐먹었다. 이제 시작이라는 뜻이다.
새해, 새로운 출발선에 서게 해주신 경남신문사에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부족하기만 한 제 작품을 평가해 주신 심사위원님께 진심 어린 감사 인사를 올린다.
그동안 글쟁이로 전전긍긍 살아가는 남편을 흥겨운 시선으로 응원하고, 시시때때 자괴감에 빠졌을 때 모질게 질타하길 마다하지 않았던 아내가 고맙다.
● 1960년생
● 대구 거주
● 스토리텔링작가·수필가
<심사평>
서사 펼치는 필력 탄탄
단편소설 부문에는 213편이 응모했는데, 불안한 시대의 우울과 소외를 다룬 작품이 많았다. 11편을 본심에 올려 논의한 후, ‘중력이 놓친 자리’, ‘파란색 원피스를 입은’, ‘존슨씨의 행방이 묘연하다’, ‘강약중강약’ 네 작품을 마지막까지 심사숙고했다.
‘중력이 놓친 자리’는 남편과 함께 갔던 캠핑 장소를 찾아간 주인공의 차가 갈대밭에 갇혀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서 위기감이 조성된다. 길을 잃은 주인공의 심리와 폭력적으로 변한 남편으로 인해 피폐해진 주인공의 일상이 잘 드러났다. 다만, 주인공이 작정하고 그곳을 찾아간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아 글 전체의 긴장을 유지하는 중심축이 모호해 보였다.
‘파란색 원피스를 입은’은 퇴사한 후 자신이 아가미 없는 물고기가 된 듯하다고 느끼는 주인공의 공황장애를 세밀하게 드러냈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을 느끼는 주인공을 통해 요즘 청년들의 고통과 소외감이 생생하게 보였다. 환각인지 실재인지 불분명한 파란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의 설정은 매력적이나, 겨울에서 봄으로 건너가는 심리 변화의 필연성이 부족하여 다소 상투적인 결말로 보였다.
‘존슨씨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딸의 실종을 신고한 부모와 사건을 접한 경찰의 제각각의 판단, 딸과 함께 사라진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이 간결한 문장으로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런데 후반부에서 존슨의 실체가 밝혀지면서 글의 긴장감이 풀리고, 외국인에 대한 편견을 직접적으로 비판한 점이 아쉬웠다.
‘강약중강약’은 평생을 변변한 직업 없이 살아온 건달이자 타짜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한 하층민의 비참한 삶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하류 인생의 말로라는 소재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미 본 적이 있어 참신하지 못한 면이 있었다. 그럼에도 순우리말을 맛깔스럽게 살려 쓰고 서사를 힘 있게 펼쳐가는 필력이 탄탄했다. 주인공 박달을 해학성과 비극성을 갖춘 인물의 전형으로 완성한 점을 높이 사,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소설을 보면 시대가 보인다. 우울한 세상에서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구원하고자 하는 많은 예비 작가에게 응원과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당선을 축하하며, 끝까지 쓰는 작가가 되길 바란다.
심사위원 : 김문주, 김기창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작품 한눈에 보기
「강약중강약」은 ‘달’(박달)이라는 하층 남성의 하루(혹은 며칠)에 가까운 시간을 따라가며, 말·돈·관계의 파탄이 어떻게 한 인간을 끝으로 밀어붙이는지 보여주는 소설이다. 소재는 ‘하류 인생의 말로’라는 익숙한 틀을 쓰지만, 대구 지역의 질감(말맛), 욕설과 해학, 리듬감 있는 문장으로 인물의 비참을 ‘구경거리’가 아니라 ‘살아 있는 얼굴’로 만든다.
줄거리의 뼈대
- 주인공 달은 무직에 가까운 도박꾼(타짜)으로, 외상과 폭언으로 동네에서 점점 출입 금지를 당하는 인물이다.
- ‘궁원’(술집)에서의 폭언 사건이 발목을 잡고, 제일슈퍼에서도 결국 “다시는 오지 마라”는 통보를 받는다.
- 그러다 기원(조기원)에서 뜻밖의 돈(판돈)을 받고 다시 판을 벌일 기회를 얻는다.
- 돈이 생기자 달은 다시 기고만장해지고, 최오백에게 “복수”라는 미끼를 던져 판에 끌어들이려 한다.
- 그러나 최오백은 달을 함정으로 유인하고, 단속/습격이 벌어지며 달은 도주하다 추락한다(시력 상실, 하반신 장애).
- 마지막은 동네 사람들의 술자리 ‘평가’와 조롱 속에서, 달의 삶이 소문과 교훈담으로 소비되는 장면으로 닫힌다.
제목 해석: “강약중강약”은 ‘신호’이자 ‘인생 리듬’이다
작품 안에서 “강약중강약”은 단속을 피하거나 출입을 확인하는 암호(노크 리듬)로 구체화된다. 그런데 이 리듬은 동시에 달의 삶을 은유한다.
- 강(기세): 돈이 들어오면 갑자기 커지는 자존심과 폭언, “내가 다시 판을 잡는다”는 환희
- 약(추락): 외상, 쫓겨남, 조롱, 담배 한 개비까지 바닥나는 빈곤
- 중강(되살아나는 욕망): 판돈을 쥐는 순간 다시 일어서는 중독의 회복력
- 약(결말): 함정, 추락, 소문으로 남는 말로
즉 제목은 “리듬대로 두드리면 문이 열린다”는 판의 규칙이면서, “리듬대로 살면 결국 무너진다”는 달의 운명표이기도 하다. 작품이 리듬을 제목으로 박아둔 순간, 이 소설은 도박판의 기술담이 아니라 생애의 박자(脈)를 말하게 된다.
인물 분석: ‘달’은 악인이라기보다 “관계에 실패한 생존자”의 전형이다
달은 단순히 나쁜 사람이 아니다. 물론 폭언을 하고, 외상을 쌓고, 남을 돈으로 ‘따먹는’ 인물이지만, 소설은 그를 “악의 화신”으로 편하게 정리하지 않는다. 오히려 달은 말과 관계의 조절 능력이 무너진 채 살아남으려는 사람이다.
1) 달의 ‘자기서사’가 만든 파멸
달은 노름을 “봉사활동”이라고 믿는다. 이 대목이 중요하다.
- 그는 자신이 착취자라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세계를 **스스로에게 유리한 윤리('내가 흥분과 쾌락을 보여줬으니 대가를 받는다')**로 다시 쓴다.
- 이 자기서사는 달을 버티게 하지만, 동시에 달이 반성하지 못하게 만든다.
- 그래서 관계는 회복되지 않고 출입 금지만 늘어난다.
2) 달의 몸은 해학이고, 달의 운명은 비극이다
달의 외양 묘사는 포대화상, 늘어진 귀, 반쯤 감긴 눈 등 우스꽝스러움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그 우스움이 끝에서는 추락과 장애로 바뀐다.
이 전환 때문에 독자는 웃다가도 금방 목이 막힌다. 작품이 노리는 정서는 바로 이 해학과 비극의 동거이다.
3) ‘공작가’와 ‘최오백’은 달이 만든 적이자, 달의 거울이다
- 공작가는 달을 조롱하는 “말의 가해자”처럼 보이지만, 사실 달이 먼저 만들어낸 적대의 결과이기도 하다(노트북 사건, 시비, 경멸의 축적).
- 최오백은 달에게 돈을 빼앗긴 피해자이며, 결국 함정을 설계하는 응징자이다. 최오백은 달이 믿는 “강자 독식의 섭리”를 달에게 그대로 되돌려 주는 존재다.
달의 세계관이 자기 자신을 처단하는 구조가 된다.
핵심 모티프 1: “말”은 칼보다 아프다 — 작품의 윤리적 중심
제일슈퍼 아주머니의 말, “말에 베인 상처는 칼에 베인 것보다 더 아프고 오래가요.”는 이 소설의 중심 명제다.
달의 추락은 도박 때문만이 아니다. 도박은 수단이고, 결정타는 입(폭언, 조롱, 멸시, 낙인)이다.
- 달은 ‘과부년’ 같은 말로 관계를 끊고
- 동네는 달에게 ‘오사리잡놈’ 같은 말로 낙인을 찍고
- 최오백은 “미친…” 같은 짧은 말로 달의 존재를 삭제한다
- 마지막 술자리에서는 달의 인생이 교훈담으로 소비된다
이 소설은 결국 “폭력의 진짜 매체는 주먹보다 말”이라는 것을, 사건과 대화의 누적으로 보여준다.
핵심 모티프 2: 담배 2개비 → 1개비 → 젖어서 터짐
담배는 단순 소품이 아니라 달의 생존 상태를 표시하는 게이지다.
- 시작: 담배 두 개비(바닥이 보이지만 아직 선택권이 있다)
- 중반: 마지막 한 개비(존엄의 마지막 끈)
- 젖어 터지는 담배: “입에 넣기도 전에 망가지는” 순간, 즉 삶의 마지막 체면이 무너지는 장면
특히 마지막 한 개비가 빗물에 풀어지는 장면은 달의 운명(붕괴)을 ‘촉감’으로 확정하는 장면이다. 독자는 그 젖은 담배의 냄새를 맡는 순간, 달의 인생이 되돌릴 수 없게 됐음을 안다.
핵심 모티프 3: ‘궁원’ 라이터와 출입 금지의 지도
라이터에 적힌 “궁원”이 달의 발길을 돌리는 장면은, 달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기억과 중독에 끌리는 존재임을 드러낸다.
게다가 동원식당(동궁)–남궁–궁원 같은 지명 놀이가 반복되면서, 동네는 하나의 작은 왕국처럼 보인다. 달은 그 왕국에서 점점 추방당하는 인물이다.
즉 이 소설의 공간은 단순 배경이 아니라 추방의 경로이다.
문체와 서사: ‘말맛’과 ‘리듬’이 인물을 살린다
이 작품이 힘을 가지는 지점은 플롯의 새로움이 아니라, 서사를 밀고 가는 문장 근육이다.
- 욕설과 방언의 리듬이 인물의 생생함을 만든다(비속어가 “현실감”이 아니라 “계급감”을 형성).
- 묘사가 과장되지만 인물의 형상을 선명히 붙잡는다(포대화상, 반짝이는 대머리, 사선으로 가지런한 치아).
- 사건 전개는 빠르되, 핵심 장면에서는 감각(비 냄새, 막걸리 냄새, 담배 연기)을 붙들어 독자의 몸을 끌어들인다.
결말 해석: ‘비극’보다 더 잔인한 것은 ‘평가’이다
달이 추락하고 장애를 얻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더 잔인한 장면은 그 다음이다.
동네 사람들은 달의 불행을 두고 각자 “인생 교훈”을 말한다. 누구도 달을 돌보지 않는다. 달은 살아 있는 인물에서, 남들이 입에 올리는 소문/교훈의 재료로 바뀐다.
이 결말은 “하류 인생의 말로”를 넘어서, 공동체가 한 인간을 어떻게 말로 마무리하는가를 보여준다.
작품이 남기는 질문
- 달은 왜 끝내 “관계의 강약 조절”을 배우지 못했는가?
- 폭언과 조롱, 낙인이 반복되는 동네는 과연 ‘정상’인가?
- 응징(최오백의 복수)은 정의인가, 또 다른 폭력의 순환인가?
- 누군가의 인생이 망가질 때, 우리는 그 이야기를 교훈으로 소비하며 안심하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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