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무등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신탄진 / 최참치

<당선작>
신탄진 / 최참치
오빠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엄마에게 들었다. 저녁을 먹던 중이었다.
"갑자기 무슨 일로 왔대요."
"내가 알겠냐, 할 만큼 하다 뭐 안 풀리니 왔겠지."
"저녁은 같이 안 먹어요?"
"친구들이랑 먹는다더라."
오빠는 전문대에 한 학기만 다닌 뒤 군대로 갔다. 전역 후에는 학교를 그만 두고 신탄진 밖으로 나갔다. 구미에서, 익산에서, 광주에서, 천안에서, 안양에서, 의정부에서, 서울에서, 성남에서. 짧으면 사흘, 길면 일 년 반 정도 있었다. 가장 최근에 있던 곳이 성남이었다. 성남은 다른 곳보다 인상이 남았는데, 얼마 전 끝난 대통령 선거 관련 후보 뉴스로 자주 보아서인 듯 했다.
"딴 말 없구요."
"그냥 연락도 없이 갑자기 덜렁 오더니 신탄진 있을 거라며 나가데."
엄마는 윤수가 왔다고 친할머니에게 말했다. 친할머니는 윤수가 언제 나가 있었느냐고 되물으셨고, 잠깐 밖에 나갔어요, 친구 만나고 밤에 온대요, 엄마가 말했다. 밤엔 위험한디…… 라는 걱정이 오래 가지는 않으리라 엄마도 나도 알았다. 치매 걸린 할머니는 오빠의 존재조차 곧 잊을 참이었다.
오빠는 군대에서 함께 지낸 선후임들, 게임 하며 만난 형님들, 그런 사람들을 따라 쉽게 신탄진을 떠났다. 오빠가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봤을 때 대부분 실속이 없었다. 서울에 갈 때는 엄마 몰래 나한테 300만원을 빌려갔는데, 갚을 생각은 커녕 나한테 빌린 사실조차 잊은 듯했다.
오빠가 차지할 공간이 신경쓰였다. 5월에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습한 더위가 일찍 찾아왔다. 오래된 벽걸이 에어컨에 선풍기 두 대, 전용면적 17평에 실평수 14평짜리 빌라에는 오빠만의 공간이 없었다. 큰방은 치매 걸린 할머니가, 작은 방은 내가 썼다. 엄마는 평소에 할머니를 돌보기 위해 큰방에 같이 있었으나, 가끔 쉬고 싶을 때는 내 방으로 왔다. 오빠가 온다면 늘 그렇듯 거실에 있을 텐데, 친할머니가 내는 소리와 큰방과 작은 방을 오가는 엄마 때문에 편하게 있기는 어려웠다.
오빠는 열 시 즈음에 왔다. 얼굴이 벌겠고 맥주 냄새가 났다.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벌게지는 체질이라 얼마나 마셨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오빠는 집에 오자마자 화장실부터 다녀오고는 냉수 한 컵을 마셨다. 집안을 슬쩍 보고서는 담배를 피워야겠다며 다시 나갔다.
나는 반 년 만에 보는 오빠에게 놀랐다. 살이 많이 붙었기 때문이다. 반 년 전까지만 해도 옷을 입으면 치수가 남았다. 지금은 옷이 살과 밀착하여 펑퍼짐한 몸을 드러냈다. 나는 오빠를 따라 나갔다.
한 층 아래, 빌라 건물 입구 앞에서 오빠는 전자담배를 꺼냈다. 나를 보더니 늦은 안부를 물었다.
"별 일 없지?"
"없지."
"집에도."
"없고."
오빠가 전자담배를 물더니 깊이 빨았다.
"신탄진 덥네, 위에는 좀 선선하더만."
"거기도 더워질걸." 내가 말했다. "오빠 살쪘네."
"이것저것 주워먹어 글치. 서른 다 되니 그런 것도 있고."
"운동을 하지."
"그럴 형편이 아녔어."
오빠가 물었다.
"엄만 별 일 없으시고."
"그냥 할머니 돌보느라 고생하시지." 날이 더운데도 나도 모르게 팔짱을 끼고 말했다.
"그래, 뭐."
오빠가 다시 전자담배를 빨았다. 내가 물었다.
"아주 내려온 거야? 계속 있으려고?"
"다시 가야지, 이 집에 넷이 어떻게 산다고."
라며 오빠가 말했지만 셋이 살아도 떠날 듯했다.
"갈 데가 따로 있어? 정해진 거야?"
"그건 아니고." 오빠가 전자담배를 빨고 숨을 뱉었다. 풀 찌는 냄새가 입냄새랑 섞여 났다.
"정해진 데 있음 벌써 글로 갔지. 일단 오라는 데 몇 군데 있으니깐 그 중 하나 알아보는 중야."
"아아."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너랑 엄만 그대로 일하시는 거고?"
"그치 뭐."
"엄마 고생이여. 너도 그렇고."
"다 그렇게 사는 거지."
"아 맞다." 오빠가 전자담배를 빨려다가 뭔가 생각나서 말했다. "나 은영이 봤다."
"은영이? 정은영?"
"걔 정씨였냐? 난 왜 조 씨로 알았지. 걔 맞지? 그 너랑 중학교 2학년 때까지 같은 반 했던."
"어."
"나 배달 가는데 걔가 받더라고. 애 하나 있고. 이뻐졌던데."
"서울서 본 거야?"
"아니 성남이지. 분당이라고, 그 쪽에 배달 갔는데 있더라니깐."
"오빠는 알아봤어, 걔가?"
"헬멧 쓰고 있어서 몰랐지. 나랑 친한 게 아니고 너랑 친했으니 아는 척하기도 그렇고."
은영이는 왜 "분당에 무슨 일로."
"잘 사는 동네니 서울서 잘 풀려서 갔을 수도 있고."
나는 신탄진의 밤 풍경을 보며 은영이를 생각했다.
은영이는 중2 때, 지금처럼 날이 더워질 즈음 서울로 이사 갔다. 나는 은영이를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먼저 연락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은영이랑 학교를 다닐 때도 그랬고, 이사를 간 후에도 그랬다. 언제나 은영이가 먼저 다가오고 먼저 연락했다. 서울로 간 뒤에도 두어 번 내게 연락했는데, 그게 끝이었다. 지금 은영이가 나를 친구라고 생각할지, 나란 존재를 기억이나 할 지 의문이었다.
"으흠……." 나는 가볍게 바닥을 차며 물었다. "거기 또 배달 갈 일 없지?"
"없지, 성남서 정리하고 내려왔는데. 그쪽 형님 부탁해서 알아봐 줄 순 있고."
"아… 됐어, 그 정돈 아니고." 내가 물었다. "이제 배달 많이 줄은 거야?"
"코로나 잠잠해지고 확 줄었지. 밖에 이제 마스크 안 쓰고 다니면서 나가서 외식도 하고."
"코로나땐 배달 좀 많이 했을 거 아냐."
배달하는 동안에 돈을 벌어놓지 않았냐는 뜻이었다.
"버는 만큼 쓰는 거지, 집값도 오르고."
"오빠 고시원 산 거 아냐? 올라봤자 얼마 오른다고."
"아는 형님이랑 월세 있었어. 집값만 오르면- 집값 오르면 딴 것도 다 오르지 집값만 오르겠어."
오빠의 벌이와 재산에 대해서 더 묻지 않았다. 오빠는 전자담배를 깊이 빨며 나를 보았다.
"너…… 아니다."
"뭔데."
"들어가라, 날 더운데. 나도 금방 들어갈게."
오빠는 가래 끓는 소리를 내더니 화단에 가래를 뱉었다. 나는 너무 오래 있지 말라고 하고 먼저 들어왔다. 할머니는 티비를 보고 계셨고 엄마는 옆에서 이어폰을 낀 채 정치 유튜브를 보셨다. 전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할 즈음부터 보더니 이제는 시도 때도 없이 보셨다.
엄마는 나를 보더니 이어폰을 낀 채 물었다.
"느이 오빠가 뭐라 말하디?"
"별 얘기 안 했어요." 나는 엄마가 이어폰을 뺄 때까지 기다렸다. "성남에서 배달했던 얘기요. 그- 은영이 봤다고, 옛날에 친했던."
"걔가 성남에 있다고?"
"오빠 배달 중이라 아는 척은 못하고."
"애가 어릴 때 예의가 참 발랐는데." 그러고는 다시 오빠에 대해 물었다. "윤수는 신탄진에 언제까지 있을 거래니."
"오래 있진 않을 거 같아요. 딴 지역 알아본다는데."
"그냥 지 친구들 따라서 공단서 일하지 뭐하러 시간 낭비 돈 낭비."
"알아서 하겠죠." 내가 말했다. "씻고 잘 준비 할게요."
샤워를 하고 나오니 오빠가 있었다. 오빠는 야구 하이라이트를 보다 내가 나오니 화장실로 들어갔다.
작은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거실에 달린 에어컨 바람이 들어오지 못했지만 자기 전까지 닫아놓을 참이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소설을 꺼냈다. 보려는데, 집중이 되지 않았다. 오빠 때문은 아녔다. 은영이 때문이었다.
은영이는 초등학교 때 친구가 없던 내게 먼저 다가왔다. 철없던 시절 책만 보던 나는 내가 뭐라도 되는 사람인 줄 알았다. 뭔가 대단한 구석이 있으니 은영이가 먼저 다가왔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녔다. 예쁘지 않았고, 말이 없었으며, 아이들을 끌어 모을 매력도 없었다. 은영이의 행동은 순전한 친절과 상대를 가리지 않고 다가가는 무해한 호기심, 속 깊은 배려였다. 은영이랑 있을 때면 다른 아이들이 다가왔지만 은영이가 없을 때는 아무도 내게 오지 않았다. 학년이 올라가니 까닭 없이 재수없는 아이가 되었는데, 괴롭힘이 심해질 즈음에 오빠가 막아주었다. 은영이랑 오빠만 아니었다면 힘들게 학교를 다녔으리라.
어쩌면 내가 공장에서 손질한 닭이 성남 치킨집으로 갔을지도 모른다. 튀겨 나온 닭이 오빠를 통해 은영이에게 갔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재밌었다. 오빠의 무작정 귀환도 덜 불편했다. 사고만 덜 쳐준다면, 다른 욕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오빠도 자연스레 이 신탄진에 머물텐데. 하지만 오빠는 어딘가에 돈을 쓰며, 그 돈을 벌러 신탄진 밖으로 나갔다. 큰 사고를 친 적은 없지만, 오빠가 자처한 정처 없음은 옆에서 보기에 어딘가 아슬아슬했다.
오빠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신탄진에 딱 달라붙어 지내는가. 신탄진에 머무르면서도 대전에 있는 한남대를 나왔고 청주에 있는 육가공 회사에 다닌다. 나는 신탄진 철길을 따라 진행되는 인생의 모험에 참여하지 않으며, 서울 살이라는 향상심과 출세욕을 일찌감치 거부했다. 나 같은 사람에게 서울은 시간 낭비이자 돈낭비이며, 삶의 기반을 다지기 위한 직진보다 더 어려운 우회로였다. 서울로 향하는 중력에 맞서며 인생의 변수를 지웠다.
출근은 아홉 시까지 였지만 위생복을 입고 소독하는 시간, 닭고기를 작업하기 위해 기계와 도구들을 정리하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여덟 시 반에는 도착해야 했다. 버스를 타는 시간까지 고려한다면 집에서 일곱 시 반에는 나와야 했다.
위치는 한 때 청원군이었던 현도면이었다. 현도면에 있는 산업단지, 산업단지에서 조금 외곽이었다. 나이 든 어르신 부부가 운영하는 업체로, 닭을 취급했다. 업체의 요구에 맞추어 닭을 먹기 좋게 가공했다. 자르고, 염지하고, 포장하고, 배송했다. 일의 처음과 끝은 항상 소독과 청소와 정리였다.
일을 시작하고 한 달 정도는 힘들었다. 몸이 끝끝내 적응하지 못해 무너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다른 업체가 쉽게 구해지지 않았고, 그대로 며칠을 더 다니니 몸이 슬슬 적응했다. 나무라며 눈치를 주던 아주머니도 내가 적응해 가니 별 말이 없었다. 사장님이 데려와 공장 입구에 묶어놓고 키우는 누렁이를 만지지 말라는 말 정도로, 아무리 소독을 한다고 해도 위생 상 보기 좋지 않다는 이유였다.
문헌정보학과는 은영이 때문에 지원했다. 은영이는 내가 책을 좋아하니 책과 관련한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했다. 대학에 진학할 때 은영이가 한 말이 생각나서 찾아보니 한남대 문헌정보학과가 눈에 들어와 지원했다. 하지만 막상 들어가니 내가 전공을 살려도 되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벌이가 많지 않았고, 신탄진은 커녕 대전에서도 사서 자리를 구하기 어려웠으며, 만약 된다고 하더라도 정사서로 올라가는 시간과 노력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집에는 치매 걸린 할머니가 있었고, 엄마가 시간을 쪼개가며 할머니를 돌보았고, 오빠는 뭘 하는지 밖으로 나돌았다. 오빠를 따라 신탄진을 떠나야 할지도 모르는데, 내게는 그 길이 성취는 작으면서 손해만 큰 경로로만 보였다.
1학년 학비는 한부모가정 장학금과 엄마가 보태준 돈으로 다녔다. 1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했고, 그 뒤로는 내가 벌어서 나머지 학비를 냈다. 마음 같아서는 2년을 휴학해서 돈을 모으고 싶었지만 학사 규칙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1년을 휴학하고, 2학년을 다니고, 다시 1년을 휴학했다.
학비를 벌기 위해 시작한 육가공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지만, 하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방향이 쉽게 잡혔다. 문헌정보학과를 차라리 인생의 일탈로 여긴다면 편했다. 엄마도 대학교 진학을 원했을 뿐 내 진로를 반드시 그 길로 보내겠다는 욕심은 없었다. 두 번째 휴학 때에는 첫 번째보다 몸이 빠르게 육가공에 적응했다. 닭고기를 가공한 돈으로 학교를 다녔는데, 그 때가 내 생에 최선의 일탈이었다.
장학금 받을 성적을 유지하며, 빈 시간에는 영화관에 다니거나 연극을 봤다. 전시회도 가보고 음악 공연도 가보았다. 책도 많이 읽었다. 자금 계획 안쪽으로 이런저런 식도락도 즐겼다. 서울까지 갈 필요 없이, 대전이나 청주에만 가도 충분했다.
예산이 조금 빠듯해 질 즈음, 익산에서 돌아온 오빠가 대학 생활에 보태 쓰라며 200만원을 주었다. 덕분에 돈에 여유가 생겨서, 졸업 즈음 남는 돈으로 강원도 고성에 혼자 여행을 다녀왔다.
일탈을 끝낸 후엔 다시 닭고기를 가공하는 삶으로 돌아왔다.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있지만, 이곳이 익숙했다. 다시 육가공으로 돌아간 가장 큰 이유였다.
지금 같은 여름에도 나쁘지 않았다. 위생을 위해 실내 온도를 적절하게 유지했기 때문이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큰 차이 없이 선선했다. 일하면서 땀이 나지만, 온 몸이 뻐근하고 퇴근 즈음에는 손목이 시큰거리지만, 그만 둘 정도는 아니었다.
엄마는 내가 전공을 살리지 않아 아쉬워했다. 그러나 그 역시 잠깐이었다. 내가 빨리 일하는 편이 나았다. 빨리 일을 해서 가계에 돈을 보태고, 엄마 일 할 시간을 줄여 할머니를 돌보는 편이 나았다.
오빠는 신탄진에 돌아와서 낮으로는 피시방에 있었고, 저녁에는 친구들을 만나 술이나 밥을 먹고 돌아왔다. 오빠가 돌아온 지 사흘 째 오빠에게 연락이 왔다. 술자리에서 폭행 시비에 휘말렸다는 전화였다. 엄마는 나한테 걸려온 전화를 뺏어 받고서는, 본인이 직접 파출소에 다녀오셨다. 돌아온 오빠는 표정만 구긴 채 입을 닫았고, 엄마는 별 일 아니니 얼른 자라고만 하셨다.
인상이 좋지 않고 말투도 건들거려 오빠는 자주 시비에 걸렸다. 그래서 오빠가 있을 때면 사고가 날 지 모른다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엄마도 평소에 말씀하시기를, 밖으로 싸돌면서 사고치는 사람이 어느 집안에나 한 명 쯤 있는 법이라고 하셨다. 친구들이랑 있던 술자리였을 텐데, 무슨 시비가 어떻게 붙었는지, 어떻게 해결했는지 궁금했다. 궁금하면서도 어떤 시비인지 어떻게 해결하였는지 어렵지 않게 상상했다.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을 붙들어 묻기보다, 어련하겠거니 생각하고서는 궁금함을 치워버렸다. 그리고 오빠 일을 오래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오빠가 사고를 친 다음 날, 할머니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사라졌다는 소식은 회사에서 들었다. 핸드폰을 락카에 두어 받지 못하는 바람에, 엄마가 직접 회사로 전화했다.
- 할머니가 없다. 동네 찾았는데 뵈질 않는다.
다급할 때 나오는 경상도 억양으로 엄마가 말했다. 사정을 얘기하니 정리는 남은 직원들이 하겠다며 빨리 가보라고 했다. 사장님이 자가용으로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경찰에 신고 했어요?"
"하루 지나야 신고할 수 있대드라."
"오빠한테 연락 했어요?"
"동네 다님서 찾고 있지."
6월이었고, 일찌감치 더웠다. 잦은 비도 습도만 올릴 뿐 더위를 식히지 못했다. 누구에게나 가혹한 날씨였다. 엄마랑 나는 할머니를 찾기 위해 갈라졌다.
집 주변과 근처 작은 공원을 둘러보았다. 할머니를 찾기 위해 신탄진역 방향 큰 길을 건넜다. 나는 신탄진 우체국 앞에서 오빠에게 전화했다.
- 찾았어?
- 아니. 어딘데?
- 나 지금 우체국 넘어왔어. 공원 쪽 다시 오셨나 해서 봤는데 못 찾아서.
- 너 그럼 그쪽 찾아보고 있어, 시장 쪽. 나 지금 신탄진 동사무소 쪽인데 신탄진고 쪽 가면서 찾아볼게.
- 알았어.
- 엄마랑 같이 있어?
- 엄마도 따로 찾고 있어.
- 알았어, 할머니 찾으면 연락해.
- 알았어.
할머니는 종종 집 밖으로 나왔지만 이번처럼 사라진 적은 처음이었다. 평소에는 주변 사람을 크게 고생 시키지 않는 늙은 아기 같을 뿐이었다. 나는 할머니를 보며 기억보다 망각이 빠른 삶이 어떤 느낌일지 상상했다. 할머니는 현재를 자주 잊었고, 내가 어릴 때 돌아가신 할머니의 큰아들- 우리 아빠의 죽음을 잊었고, 나와 오빠를 잊었다. 실시간으로 달라지는 신탄진에서 기억 속 예전 신탄진을 배회했다.
우체국에서 신탄진역으로, 신탄진역에서 석봉동 동사무소로 갔다.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 찾았어?
- 아뇨, 엄만요?
- 아니, 못 찾았지.
- 어디에요?
- 이문고 쪽인데 길 건너 덕암동 가볼라구.
- 일단 신탄진 안에서 찾아봐요, 멀리 가시진 못할 거 같은데.
- 공단엘 가야되나?
- 뒤져보구 없음 가봐요.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 저 지금 석봉동 동사무손데 아래로 내려가면서 연락할게요.
- 알았다, 할머니 찾으면 연락하고.
- 네.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걸었다. 해가 기울었지만 더위는 그대로였다.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할머니를 찾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할머니 없는 우리 집을 상상하기 어렵지 않았다. 엄마, 오빠, 나는 미약한 죄책감과 상쾌한 해방감을 동시에 느끼지 않을까. 그런 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할머니가 없는 일상을 지내리라.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할머니는 더 많이 기억을 잃었다. 친가 쪽 어른들은 아쉬운 소리를 하며 엄마에게 자신들의 엄마를 떠맡기고 잠적했다. 김천에서 시집 온 엄마. 어린아이 둘과 함께하는 타향살이. 엄마가 치매 걸린 시어머니를 부양할 의무는 없었음에도, 엄마는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고, 불쌍한 노인네라며 시어머니까지 부양했다.
나는 할머니가 영영 사라지는 상상을 하면서도 할머니를 찾으러 다녔다. 덕암동으로 넘어가려는데,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석봉동과 덕암동 사이에 있는 사거리에 있었다. 양은 냄비를 든 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두리번거렸다.
"할머니."
할머니는 반응하지 않았다.
엄마한테 먼저 전화를 하고 오빠한테 전화했다. 할머니를 꼭 붙들어두라는 엄마 말에 따라 할머니를 붙잡아 말하는데, 할머니는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렸다.
"여기 그지 다리가 으딜 가구, 재건대 애들도 다 으디루 가버리구…… 밥이랑 김치랑 갖꾸왔는디 다 으딜 가구……."
할머니랑 바깥에서 기다리기에는 너무 더웠다. 길 건너 큰 마트와 바로 뒤에 있는 약국 사이를 고민하다 약국으로 들어갔다. 나는 약사님에게 집 나온 치매 할머니를 이 앞에서 겨우 찾았는데, 다른 가족 올 때까지만 여기서 기다릴 수 없는지 부탁했다. 약사님이 선뜻 괜찮다고 하셨다. 가만 있기 미안해서 박카스를 두 병 샀다. 계속 거지 다리를 찾는 할머니에게 한 병을 따서 드렸는데, 할머니가 병을 붙들고 갑자기 노래를 불렀다.
버들잎 외로운 이정표 밑에
말을 매는 나그네야 해가 졌나
쉬지 말고 쉬지를 말고
달빛에 길을 물어
꿈에 어리는 꿈에 어리는
항구 찾아 가거라
나는 당황했지만 약사님은 재미있어하셨다.
"대지의 항구네요."
"네?"
"노래 제목이요. 옛날 노랜데. 누가 불렀더라- 남인수였나? 현인?"
"아아."
"옛날에 여기 이 앞에 거지 다리가 있었어요. 그 밑에 거지들이 모여 살고, 그 사람들이 재건대였나. 근데 암튼 없어진 지 한참 됐는데 어머님이 기억력이 좋으시네."
약사님은 치매 할머니에게 기억력이 좋다는 농담을 하시며 웃었다. 약사님 농담에 어떻게 반응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데, 엄마가 약국으로 들어왔다.
"어머님! 아이고, 한참 찾았는데 한참 찾아다녔는데 여기 계셨어. 이렇게 더운 날에 뭘 이런 것까지 들고 일로 오셨어."
할머니는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엄마를 보다가, 다시 거지 다리와 재건대를 중얼거리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내가 마시려던 박카스를 엄마한테 주었고, 엄마는 박카스를 마시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엄마는 할머니 손을 잡은 채 놓지 않았다. 할머니가 불현듯 아버지의 행방을 물었는데, 엄마는 저기 멀리 갔다며 한참을 지나야 돌아온다고 둘러댔다. 그동안 나는 오빠에게 전화해서 할머니를 찾았다고 전했다.
나가는 길에 엄마는 약사님께 연신 고맙다고 고개를 숙였다. 약사님은 자신이 할머니를 찾은 게 아니라며 감사를 사양하셨다. 그러면서 할머님이 다시 이쪽에 오시면 연락해드리겠다고 연락처를 받으셨다.
"그리고 어머님이 귀가 잘 안 들리시는 거 같은데 보청기 한 번 알아보시구요. 보청기 있음 치매가 천천히 와요."
할머니는 돌아가는 길에도 거지들에게 전해줄, 다 쉬어버린 밥이 담긴 양은 냄비를 들고 계셨다. 전매청, 신탄진 해수욕장, 내가 모르는 신탄진을 이야기하다 드문드문 대지의 항구를 불렀다. 할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엄마는 습한 날씨 속에서 다시 기진해서 이렇게 말했다.
"이 짓도 두 번은 못하겠다."
할머니를 데려온 뒤 일단 쉬었다. 에어컨을 제일 세게 틀고, 거실에 모여 앉아 배달 시킨 치킨 두 마리를 먹었다. 보청기에 대해서는 당장 결정하지 못했다. 엄마는 엄마랑 내가 없을 동안에라도 할머니를 봐달라며 오빠에게 부탁했다. 수발을 들라는 게 아니라 이번처럼 멀리 가시는지만 확인해달라고 말이다.
오빠는 알겠다고 하면서도 신탄진에 오래 있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오빠는 대신 할머니의 행방을 파악하기 위해 스마트 워치나 GPS악세사리를 말했다. 그냥 의견일 뿐 진지하게 결정하지는 않았다. 다들 지쳤고, 결정은 다음으로 미루었다.
다음 날, 나는 공장 동료분들에게 할머니를 무사히 찾았다고 말씀드렸다. 다들 다행이라고 하시면서 대화 주제가 치매 노인의 간병으로, 본인 일가친척 어르신들 상태가 어떠한지로 넘어갔다. 나는 오빠가 말한 스마트 워치나 GPS, 약사가 말한 보청기를 사놓을 생각을 했다. 집으로 돌아가서 얘기를 꺼내려는데, 막상 돌아가니 꺼낼 이유가 사라졌다.
빌라 길목에 있던 고급 차는 우리 집과 상관 없을 줄 알았다. 다른 집 손님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집 손님이었다. 집은 늘어난 사람들로 복작했다. 현관에 있는 낯선 신발을 보는데 엄마가 작은아버지 내외분을 소개했다.
"막내 작은아버지다, 인사해라."
"안녕하세요."
"너가 윤지여."
작은아버지는 죄스러움과 회한, 감개무량 따위가 섞인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태어날 때 봤는데 다 커서 보네."
엄마가 옆에서 과분한 홍보를 했다.
"대학 등록금도 지가 다 벌어서 학교 다니고 지금은 공장 다니면서 자기 쓸 것도 안 쓰고 집에 보태줘서 고맙죠."
"어찌 그런 모습까지 성님을 닮아가지고."
이번엔 오빠였다.
"윤수는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는데 그래도 지 앞가림은 하니까."
"어유, 젊을 땐 이런 거 저런 거 다 경험도 해보는겨. 사고만 안 치면, 엉? 그래도 형수님 너무 속 썩이지 말구."
라며 오빠 어깨를 두드렸다. 곧 작은아버지는 할머니를 붙들고 "우리 엄니…… 부모는 자식이 돌봐야 하는디…… 그게 맞는디 그게 도린디…… 내가 너무 미안혀…… 진즉 왔어야 되는디……" 라며 울먹였다. 엄마가 말했다.
"식사라도 하고 가시지."
"바로 가야쥬, 우리가 무슨 낯짝으로 형수님 밥을 먹어유. 조금이라도 형수님이 고생을 덜 시켜야지."
둘째 작은아버지는 자신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하시고는, 막내 작은아버지 본인은 논산에서 기반을 잡고 당진으로 올라가 레미콘 회사를 운영한다고 하셨다.
"이제라도 자식 노릇 해야지. 맨날 생각만 하다가, 눈에 어른어른거리는 게, 우리 엄니가…… 효자 노릇은 글렀고 자식 노릇이라도 이제."
옆에 있던 작은어머니도 엄마에게 형님이 효부라며, 자기들이 그동안 아무것도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엄마가 나랑 오빠에게 말했다.
"막내서방님하고 얘기 좀 하게 밖에 좀 나가 있어라."
나랑 오빠는 밖으로 나갔다. 건물 입구까지 나온 뒤 내가 물었다.
"다 무슨 일이야?"
"너 오기 한 시간 쯤 전에 오셔가지고, 할머니 모시겠다고."
"갑자기?"
"그렇게 됐나봐. 나라고 뭐 알겠냐."
나는 얕게 한숨을 쉬고 주변을 보았다. 금강변을 따라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었다. 개발되는 아파트는 신탄진의 과거를 포위하듯 둘러쌌다. 멀리서 기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내가 살면서 저런 차 사서 끌고 다닐 일이 있으려나."
오빠는 작은아버지가 몰고 온 차를 보며 담배를 꺼냈다. 첫날 꺼낸 전자 담배가 아닌 일반담배, 빨간 말보로였다. 오빠는 바닥을 발로 차고는 신탄진 풍경을 보았다.
"여기도 아파트 많이 짓겠네."
"그렇더라."
오빠가 담배를 깊이 마셨다.
"할머니 가시면 편해지겠네, 방도 비고."
"오빠가 있어도 되지 않아?"
"내가 있음 도로 불편하지. 내일 올라갈 거야."
"내일?"
다시 담배 한 모금.
"수원에 아는 형님이, 게임 하다 만난 형님인데 일 배울 생각 없냐고."
"무슨 일인데?"
"뭐 자동차 공임 관련이라던데."
"신탄진에서 해도 되잖아, 굳이 수원 가서."
"애들이 안 된다잖아." 오빠가 담뱃재를 털었다. 다시 담배를 물고, 연기를 깊이 들이쉬고, 또 내뱉었다. "그거 땜에 싸운 거야. 여깄을 때 친구들한테 알아보는데 띠껍게 굴어서. 노조 뭐 위원장이라고 존나 있는 척하더니 막상 부탁하니 시발."
"경섭이 오빠?"
"아니, 준오 그 새끼."
"경섭이 오빠한테 부탁해도 되잖아."
"걔는 진작에 안 된다 그러고."
라며 가래 끓는 소리를 내더니 화단에 뱉었다.
열어놓은 베란다들에서 티비 소리와 대화 소리가 들렸다. 멀찌감치에서 짓고 있는 아파트가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오빠는 "이런 병신동네…… 집을 좀 좋은 데로 가지." 라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너무 밖으로 나돌지마." 내가 말했다. "엄마도 조금씩 돈 모으는 거 같은데." 그러니까 오빠도 보태야지- 하는 뒷말은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다른 말을 했다. "언제까지 정처 없이 다닐건데."
"정처?"
"오빠 집이 여기잖아, 신탄진. 여깄을 수 있는데 딴 데 갈 필요 있냐는 거지."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라는 생각은 안 들던데?" 오빠는 담배를 깊이 들이마셨다. 그리고는 길게, 천천히 연기를 내뱉었다. "너는 왜 전공 안 살렸어. 돈 아깝지 않아? 장학금 받으면서 대학까지 나왔는데 공장에서 고기 만지고 있고."
"그냥 대학이 예외적인 거야." 내가 말했다. "전공 살리기도 어렵고 살린다고 해도 돈을 얼마나 벌 것이며."
"아깝지는 않냐고."
"안 아깝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지냈는데." 나는 멀리에 있는 철도를 보았다. "그 때 그 때 해야 할 거 하는 거야. 대학 다닐 때 다닌 거고 이제 돈 벌 때니까 버는 거고. 벌어서 엄마 드려야 되니까 드리는 거고."
오빠는 다시 담배 한 모금을 피웠다. 그대로 바닥을 보며 얘기했다.
"예전에는 집이 좀 어렵고 가정 환경이 힘들다 이런 얘기가 통했는데, 점점 말하는 게 좀 그렇더라. 나이는 먹어 가는데 어느 순간 지나니까 다 내가 책임져야 하는 일이라."
"하고 싶은 게 없으면 해야 할 걸 해."
나는 오빠가 뱉은 가래와, 가래가 떨어진, 화단과, 화단에 핀 으아리꽃을 보며 말했다. 나 스스로도 자신이 서지 않았지만, 말했다.
"엄마나 나나 오빠한테 뭐 대단한 거 바라는 거 아니잖아. 그냥 사고 안 치고 헛돈 안 쓰고 그런 거지."
오빠가 핏, 웃었다. 가래를 뱉고는 말했다.
"그럼 코인은 하면 안 되겠지?"
"코인 했어?"
"지금은 안 하는데. 엄마한테 말하진 말고."
"어떻게 됐는데."
"다 날렸지. 한 백 오십 남았나."
"원래 얼마였는데."
"육천 조금 넘게 있었는데, 벌고 잃은 거 다 합치면 일 억 천 정도."
내가 말문이 막혀 오빠를 쳐다보기만 하는데, 오빠가 말했다.
"엄마한테 말하지 마."
"지금도 코인 하는 거야?"
"안 한다니까."
오빠가 야 있잖아, 말을 꺼내는데 나머지 가족들이 내려왔다. 엄마랑 작은아버지가 할머니를 좌우로 부축했고 뒤에서 작은어머니가 할머니를 살폈다. 오빠가 바로 담배를 끄고 할머니가 잘 내려오도록 도왔다.
"형수님, 우리 어무니 돌봐줘서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자식이 할 일을, 형님도 안 계신데 형수님한테 다 떠넘기고 내가 진짜 염치가 없어서."
"그냥 할 일 한 거죠. 날 더운데 조심히 돌아가시구요."
"아유 형수님 미안혀요. 그래도 우리 너무 미워하지 않으셨음 좋겄어." 작은아버지는 울먹이며 우리를 보았다. "너의도 애썼다. 치매 걸린 할머니랑 지내느라 고생혔지."
"아녜요, 괜찮았어요."
"나이도 어린 조카들이 할머니랑 산다고." 작은아버지는 명함을 꺼내 오빠에게 주었다. "윤수? 윤수라 그랬나? 어려운 일 있음 언제든 연락혀, 응? 연락혀."
작은아버지는 감정에 복받쳤다. 아버지다 생각하고 연락하란 말여. 나중에 식사 자리 한 번 마련할테니께- 하는 말들. 엄마랑 나, 오빠 모두 어설픈 배우였으며 이 무대의 감정선을 몰랐다. 나와 오빠는 쭈뼛햇고, 엄마는 난처와 피로가 섞인 듯했다. 작은아버지 내외분이 할머니를 모시고 떠나자 진이 빠지는 드라마가 겨우 끝났다.
할머니를 보내니 허전하고 조용했다. 나는 엄마랑 내가 안방에서 자고 오빠가 내 방에서 자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오빠는 됐다며, 그냥 자던 대로 거실에서 자겠다고 했다.
다음 날, 엄마랑 나는 신탄진역 승강장까지 오빠를 배웅했다. 오빠를 보내는 순간까지 우리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수원으로 가는 기차가 올 즈음에 나눈 대화가 끝이었다.
"가서 너무 욕심내지 말고 조심하고. 사고 치지 말고."
"알았어."
오빠가 대답한 뒤 내게 말했다.
"엄마 잘 챙기고."
"알았어."
오빠는 사람들 뒤에 줄을 섰고, 도착한 기차에 올라 탔다. 문이 닫히고 기차가 천천히 출발했다. 떠나는 기차를 보며 엄마가 말했다.
"할머니 모시느라 고생했다고 아빠 동생이 삼천 만원 쥐어주더라. 됐다는 데도 줘버리고 가시드라만. 이제 와서 돈푼 쥐어주면 아들 노릇이 되나."
나는 엄마를 바라보았고, 엄마는 여전히 떠나서 사라진 기차를 보았다.
"느이 오빠한텐 말하지 마라, 딴생각 할라. 그 윤수 친구한테도 합의금 받아놨으니까. 너가 주는 돈이랑 해서 다 모으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모아서 집 사는데 써야지. 니 방 윤수 방 따로 있는 집으로."
엄마는 짧게 한숨을 쉬고서 이제 돌아가자고 하셨다.
나는 엄마에게 먼저 가라고 한 뒤 신탄진역 승강장을 서성였고, 서성이면서 오고 가는 기차를 보았다. 대단한 일주일이었다. 나는 떠난 사람들을 생각했다. 은영이, 할머니, 오빠. 은영이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할머니도 돌아오지 않으리라. 하지만 오빠는 돌아오리라. 왜냐하면, 오빠는 신탄진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오빠는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오빠는 기차를 타고 신탄진을 떠났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신탄진에서 기차를 타고 떠난 사람은 기차를 타고 돌아오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오빠가 너무 오래 신탄진 밖에 있지 않기를 바랐다. 오빠가 돌아올 즈음 편하게 쉴 만한 방이 생기기를, 그 때쯤이면 나 역시 돌아오는 오빠를 반갑게 맞이하기를 바랐다.
<당선소감>
경계선에서
첫 책 '종말의 소년'이 정부가 지원하는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에 선정되었을 때 일입니다. 그때 목포문학관에 가서 북토크를 하게 되었습니다.
북토크를 하기 전, 시집으로 선정된 분께서 제게 물으셨습니다. "혹시 어디 문창과 나오셨나요?"
저는 문예창작과를 나오지 않고 글을 썼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그런 경우도 있구나, 라며 신기해하셨습니다.
제가 글을 썼던 과정이 그렇습니다. 창작 수업을 따로 듣지 않은 채 혼자만의 방법으로 글을 썼습니다. 정독과 남독, 필사와 습작을 이어갔습니다. 청소년 소설을 썼고 성인 소설을 썼으며 또 장르 소설을 썼습니다. 이어 이번에 선정된 가족 이야기를 썼습니다. 쓰는 과정도 방식도 남들이 따라간 선을 따라가지 않은 셈입니다.
또한, 글을 쓰는 많은 사람이 형식으로, 내용으로, 출판 방식으로 선을 그어 자신이 어떤 작가이며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 정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웹소설 작가, 장르 소설 작가, 청소년 소설 작가 등으로 말입니다. 저는 작가를 정의하는 선을 넘나들며 제가 쓸 수 있는 소설의 범위를 확장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리하여 이번 소설 신탄진도 제가 쓸 수 있는 범위를 확장한 소설입니다.
이러한 시도들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웹소설은 귀속된 회사의 테두리 밖을 나가지 못했고, 출판한 소설은 반응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실패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베케트는 더 나은 실패를 하라고 말했으며, 포크너는 애초부터 우리가 꿈꾸는 완벽함에 필적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경계선을 넘나들며 쓰고 싶은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니, 이 임의의 경계선은 의미가 없음을 알았습니다.
신춘문예 당선 소식을 듣고 그동안 해왔던 소설 쓰기가 인정받음을 느꼈습니다. 반응 없는 노크가 마침내 응답을 들은 기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제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열심히 글을 쓰겠습니다.
● -
<심사평>
지역성 살려 사람살이 비의···담담하고 묵직한 감동
올해 응모작은 161편으로 예년보다 부쩍 늘었다. 한국문학에 축복처럼 찾아온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향이 아닐까 짐작했다. 여러 세대의 글쓰기가 다양한 소재와 방식으로 제출되었는데 치매, AI, 반려동물, 여행, 요리, 실직, 결혼과 육아와 같이 일상적인 소재가 두드러졌다. 전반적으로 문장력이 미흡한 가운데 읽을 만한 작품들은 낯익거나 작위적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6.25, 소록도 한센인과 같은 현대사를 소재로 한 작품도 없지 않았으나 재현과 형상화가 아쉬웠다.
'야생동물이 지나가고 있어요', '양도된 삶', '고릴라를 만나다', '당신의 자격증', '사이먼 가라사대', '신탄진'을 눈여겨보았다. '야생동물이 지나가고 있어요'는 군에서 건강에 문제가 생긴 아들을 데리러 가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신선했으나 과거의 선임과 조우하고 아버지의 편지를 전달받는 부분이 지나치게 극적으로 꾸며져 있다. '양도된 삶'은 디지털 디톡스, 게임 연인이니 하는 흥미로운 소재와 거기에서 파생하는 관계의 이야기가 어우러지지 않았다. '고릴라를 만나다'는 동물원 부근에서 펼쳐지는 상처 입은 가족 이야기를 조곤조곤 풀고 있는데 결말의 환상으로 처리된 아프리카 부분이 서사적 퇴행으로 읽혔다. '당신의 자격증'은 고등학교 교육 현장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구성도 탄탄하였다. 그 실감이 정통적인 서술 방식의 답답함을 넘어서지 못해 아쉬웠다.
최종적으로 '사이먼 가라사대'와 '신탄진'이 남았다. '사이먼 가라사대'는 육아에 지친 젊은 부부의 하루 외출을 그린다. 미니멀한 일상 세계를 저며내는 솜씨가 좋으며 문장력도 세련되었다. 소설에서 인용되는 앨리스 먼로의 단편을 읽은 소감이 들기도 했다. 예측이 가능한 결말로 치닫는 서사 전개가 아쉽기는 했으나 그건 큰 약점으로 보이지 않았다. '신탄진'은 장소성, 지역성을 살려 사람살이의 비의를 담담하게, 그러나 묵직한 감동으로 빚어내는 작품이었다. '사이먼 가라사대'에 비해 문장이 성글고 구성이 투박한 구석이 있다. '신탄진'은 거친 솜씨가 유보적인 마음을 일으켰다가도 작가의 진정성이 당기는 힘이 적잖았다. 쥐뿔도 없고 위태롭기 그지없는 인생들이 연민도 절망도 없이 서늘하게 살아나는 건 어디서 기인하는가? 순전히 삶에 대한 작가의 태도가 투영된 힘이 아닌가. 이 신인에게 할 이야기가 많아 보였고, 앞으로 활동에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고 판단했다.
심사위원 : 전성태 소설가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이 소설은 “큰 사건”을 통해 감동을 만들기보다, 가족의 생활 리듬(밥–담배–일–간병–돈–기차) 속에 숨어 있는 지역의 중력을 끝까지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제목 **〈신탄진〉**은 배경이 아니라, 인물들을 잡아당기고 다시 되돌려 보내는 **중심력(혹은 함정)**처럼 기능해요.
1) 한 문장 해석
치매 할머니를 돌보는 집에 ‘정처 없는’ 오빠가 돌아오고, 할머니는 사라졌다가 되찾아지며, 가족은 잠깐 재배치되지만 결국 각자 기차를 타고 떠나고 다시 돌아올 운명을 ‘신탄진’이라는 장소가 조용히 증명한다.
2) 이 작품의 핵심 구조: “돌아옴–사라짐–떠남–(돌아옴의 예고)”
서사가 거대한 반전으로 움직이지 않아요. 대신 반복으로 움직입니다.
- 오빠가 돌아온다(연락도 없이 “덜렁”)
- 오빠는 또 떠날 궁리를 한다(갈 데는 불확실)
- 할머니가 사라진다(진짜 위기)
- 할머니는 찾아온다(거지다리/재건대라는 ‘옛 신탄진’에서)
- 작은아버지가 나타나 할머니를 데려간다(돌봄의 이동)
- 오빠는 다시 기차를 타고 떠난다
- 화자는 “오빠는 돌아올 것이다”를 반복문으로 못 박으며 끝낸다
이 반복은 곧 지역의 운명론이에요. ‘도망’이 아니라 순환.
3) 인물 분석: “연민도 절망도 없이” 서늘하게 살아남기
화자(‘나’)
- 화자는 도덕적 판결을 내리기보다, 생활의 계산을 합니다.
공간(17평), 에어컨, 방 배치, 출근 시간, 학비, 간병의 분업 같은 것들. - 서울/출세욕을 “일찌감치 거부”했다는 진술이 핵심입니다.
화자는 욕망이 적은 게 아니라, 욕망을 비용/리스크로 환산하는 사람이에요. - 그래서 화자의 문장은 담담하지만, 그 담담함이 오히려 비극성을 키웁니다.
감정을 덜어낸 문장 = 감정이 너무 커서 감당하지 않는 방식처럼 보이거든요.
오빠(윤수)
- “정처 없음”이 성격이자 병입니다.
- 도시를 옮겨 다니는 이력(구미–익산–광주–천안–안양–의정부–서울–성남)은, 성장의 경로라기보다 퇴행의 경로로 읽혀요.
- 결정타는 코인입니다.
- “육천 조금 넘게… 벌고 잃은 거 다 합치면 일 억 천”
오빠의 이동과 소비는 ‘자유’가 아니라 구멍 난 욕망으로 정리돼요.
- “육천 조금 넘게… 벌고 잃은 거 다 합치면 일 억 천”
- 그럼에도 오빠는 완전한 악인이 아니에요.
- 화자를 막아줬던 과거
- “엄마 고생이여… 너도 그렇고”
- 할머니 실종 때는 같이 찾는 팀이 됨
→ 오빠는 “가족을 무너뜨리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가족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엄마
- 정치 유튜브를 보는 모습이 아주 중요해요.
일상에서 통제할 수 없는 것(돌봄, 돈, 아들)을 견디기 위해, **확신을 주는 이야기(정치 콘텐츠)**에 매달리는 느낌이 있습니다. - 엄마는 현실적이면서도 단단합니다.
할머니가 없어졌을 때도, 작은아버지가 돈을 쥐어줬을 때도, 오빠 합의금 문제도 **‘정리’**의 언어로 처리해요. - 마지막 대사가 엄마의 세계관입니다.
“니 방 윤수 방 따로 있는 집으로.”
→ 감정의 해결이 아니라 공간의 해결. 엄마에게 안정은 ‘마음’이 아니라 방 하나입니다.
할머니(치매)
- 이 소설에서 치매는 단지 ‘병’이 아니라 시간의 균열이에요.
- 할머니는 “실시간으로 달라지는 신탄진”에서 “기억 속 신탄진”을 살아요.
그래서 실종은 단순 사고가 아니라, 기억이 현재를 이탈한 사건입니다. - 양은 냄비(밥과 김치)를 들고 다니는 것은 애도의 물건이 아니라 돌봄의 본능처럼 보입니다. “거지들에게 전해줄 밥”이라는 대목이 특히요.
4) ‘신탄진’이라는 장소가 하는 일
이 작품의 주제는 “가족”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장소성이 더 강합니다.
- 신탄진은 떠나는 곳이에요: 기차, 철길, ‘밖으로 나감’
- 동시에 돌아오는 곳이에요: 오빠의 귀환, 할머니 기억의 귀환
- 개발되는 아파트가 “과거를 포위”하는 장면은 상징적입니다.
신탄진은 변하지만, 인물들의 생활은 변하지 않죠.
→ “공간은 바뀌는데 삶은 제자리”라는 지역의 아이러니.
그래서 마지막의 “왜냐하면…” 반복은 논리적 설명이 아니라, 장소가 사람을 돌려보내는 힘에 대한 주문처럼 읽혀요.
5) 모티프 분석: 기차 / 닭 / 돈 / 목소리
기차
- 출발과 귀환의 상징인데, 이 소설에서는 “새 시작”보다 순환을 의미해요.
- 기차가 “천천히 출발”할 때 엄마는 돈 얘기를 하죠.
떠남의 감정이 아니라 남는 자의 계획이 먼저입니다.
닭(육가공)
- 화자의 노동은 “성취”가 아니라 생존의 공정입니다: 소독–정리–가공–포장
- 닭은 은영이와도 이어지죠.
“내가 손질한 닭이 성남 치킨집으로… 오빠를 통해 은영이에게…”
→ 이 연결은 우습지만 슬퍼요.
사람 사이의 인연이 직접 만남이 아니라 배달/유통으로만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돈
- 오빠가 빌려간 300만, 익산에서 준 200만, 작은아버지의 3천만, 합의금, 코인 손실…
- 돈은 구원도 처벌도 아니고, 가족 관계를 ‘연명’시키는 수단으로만 존재합니다.
- 엄마가 “오빠한텐 말하지 마라”는 건, 돈이 관계를 망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에요. 돈은 해결이 아니라 새로운 변수죠.
목소리(대지의 항구)
- 치매 할머니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작품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균열입니다.
- “거지다리/재건대” 같은 말은 과거의 지명이자, 사라진 공동체의 흔적이에요.
할머니는 현재를 잃었지만, 장소의 오래된 층위를 몸으로 기억합니다. - 약사의 “대지의 항구네요”라는 말은, 이 소설이 결국 육지(신탄진)에서 항구를 찾는 이야기라는 걸 은근히 밝혀요.
항구는 떠남의 장소이면서 귀환의 장소니까요.
6) 결말의 의미: “돌아올 것이다”라는 위험한 희망
화자는 오빠를 믿어서가 아니라, 신탄진의 법칙을 믿습니다.
- “신탄진에서 기차를 타고 떠난 사람은 기차를 타고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위안이면서 동시에 공포예요.
‘탈출’이 아니라 ‘반복’이 예고되니까요.
그래서 마지막 바람—“돌아올 즈음 방이 생기고, 반갑게 맞이하기”—는
희망이라기보다 **가족이 겨우 도달할 수 있는 최소한의 목표(방 하나)**에 가깝습니다.
이 소설이 묵직한 이유가 바로 여기예요. 꿈이 크지 않아서 더 진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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