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당선작>

 

  기린을 옮기는 방법 / 조재윤

 

엉덩이가 붕 떠오를 때 눈을 떴다. 꿈을 꾸고 있던 것도 아닌데, 하늘을 날고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하늘을 날고 있는 게 좋은지 나쁜지를 생각했다. 눈을 떴을 때 상승과 하강의 과정이나 하늘을 어떻게 날고 있느냐는 근거 없이 구름 근처를 맴돌고 있다면 좋은지 나쁜지를 고민했다. 그건 마치 안전바가 없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것과 같지 않나, 생각할 때 엉덩이가 한 번 더 붕 떠올랐다. 아이쿠, 하는 소리가 들렸다. 뻑뻑한 눈으로 앞을 보았다. 운전석에 앉은 남자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눈은 까만 선글라스에 가려져 있었다.

손님 죄송합니다. 단잠을 주무시는데.

나는 그때서야 내가 택시를 타고 있었고 기사로 보이는 남자가 과속 방지턱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아서 내 엉덩이가 떠올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라디오에서 정오를 알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창밖에서 햇빛이 쏟아졌다. 앞좌석에서 에어컨 소리와 함께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택시는 정차해 있었다. 신호가 붉게 빛나고 있었고 아지랑이 사이에 선 차들이 매연을 뿜으며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한 번 더 두리번거렸다. 도로 옆으로 철거가 진행되고 있는 아파트가 보였다. 부서진 콘크리트 앞에 걸려 있는 현수막을 읽으려는데 신호가 바뀌었다. 택시가 무언가를 쏟아내듯 소리를 내며 앞으로 나갔다. 몸이 뒤로 밀렸다. 기사는 흥얼거리며 핸들을 돌렸다.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를 잠은 다시 오지 않았다. 나는 잠에 드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눈도 깜빡이지 않고 창밖을 보았다. 콘크리트 더미가 사라지고 나자 내비게이션이 말했다.

경로를 따라 계속 운행하세요.

택시 주위에 있던 차들이 모두 사라졌다. 나는 내비게이션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깨달았다. 붕 떠 있던 찰나의 하늘에 너무 많은 답을 두고 왔다는 걸. 언제 잠에 들었는지, 어디서 출발했는지, 여기가 어딘지. 그리고 그중에는 택시가 향하는 목적지도 있었다. 나는 그제야 몸을 들고 내비게이션에 찍힌 주소를 확인했다. 주소의 글자를 하나씩 곱씹었다. 목적지는, 상빈의 집이었다.

상빈을 만나면 도대체 왜, 라는 말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도대체 왜 돌아왔지. 내가 그렇게 물으면 상빈도 똑같이 답했다. 도대체 왜 돌아오면 안 되지. 그러면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나와 상빈은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상빈의 말에 따르면 상빈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전학을 갔다. 상빈은 멀지 않은 도시로 이사했다. 그곳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과 잘 지냈고 여전히 그곳에서 살고 있다고도 했다. 상빈이 이십 년 만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 이유는 할머니 유품 때문이었다. 이곳에서 홀로 살고 있던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상빈이 이 도시로 돌아온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나를 찾아오는 것이었다. 너는 아직 여기 살고 있을 줄 알았다는 말과 함께. 도대체 왜. 상빈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웃었다. 너는 참 여전하다는 말과 함께. 상빈은 내게 유품 정리를 도와달라고 했다. 너라면 도와줄 시간이 많을 것 같다는 말과 함께. 훑어보는 눈빛이 기분 나빴지만 그때 내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건 단 하나의 질문이었다.

도대체 왜, 기억이 안 나지.

상빈이 누구인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초등학교 4학년인 어린 상빈이 어렴풋이 떠오르다 마는 게 아니라 아예 내 삶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180cm의 남자가 웃으며 나를 훑을 때, 불청객을 마주한 것 같은 위화감을 느꼈다. 상빈은 4학년 때 담임선생님과 친구들, 심지어 4학년 때 내 번호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상빈이 내 동창이라는 사실은 거짓이 아니었다. 내 기억 속 흐릿한 시절이 상빈으로 덧칠되어 가자 위화감은 줄어들지 않고 더 커졌다.

도대체 왜 기억이 안 나지. 그렇게 물으면 상빈이 도대체 왜 기억하지 못하느냐고 되물을 것 같아서 기억나는 척 연기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헤어진 인연이라면 잊을 만한 게 당연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다. 대신 유품 정리를 도와달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상빈의 할머니 집은 연립 주택 2층이었다. 유품을 정리하러 왜 네가 왔는지 묻자 상빈은 할머니 집에서 꼭 가져가야 할 물건이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집에 들어서는 순간 상빈이 말한 물건이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 물건은 거실 중앙에 놓여 있었다. 마치 집으로 들어오는 우리에게 인사를 하듯.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듯. 거실 옆 창문에서 쏟아지는 햇빛에 물건이 환하게 빛났다. 빛나고 있는 물건은 기린이었다. 아주 커다란 금빛 기린.

하지만 내가 기린을 보았을 때 기린을 기린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건 내가 알고 있는 기린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는데, 상빈이 기린을 기린이라고 부르는 걸 듣고서야 기린이 기린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상빈은 이게 왜 기린이냐는 내 물음에 기린이 기린이지 뭐겠어, 라는 말로 설명을 퉁 쳤다. 거실에 놓인 2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금색 기린은 목이 길지도 뭉툭한 두 개의 뿔이 달려있지도 않았다. 대신 정수리에 하나의 뿔이 있었고 몸이 비늘로 덮여 있었다. 수염이 달린 주둥이와 등에 날개가 달려 있는 기린은 기린보단 용처럼 보였다. 상빈은 기린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비늘을 쓰다듬거나 머리 부분을 올려다보았다. 유품을 정리하겠다던 상빈은 오랜 시간 그러고만 있었다. 나는 먼지가 얇게 깔린 식탁에 손을 올렸다.

이게 뭔데?

상빈은 나의 물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린을 살펴보는 데에만 집중했다. 거실로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고 빛나는 기린과 기린을 더듬는 상빈은 어딘가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상빈이 기린 보기를 멈춘 건 삼십 분이 지난 뒤였다. 나는 식탁에 앉아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기지개를 켜자 상빈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안 보여. 아무리 찾아도 안 보여.

상빈이 냉장고를 열고 물을 마셨다. 티백을 넣고 끓인 보리차였다. 할머니가 살아계셨을 적 끓였을 물을 상빈은 벌컥벌컥 마셨다. 나에게 마실 거냐며 물통을 내밀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안 보인다는 게 뭔데?

상빈이 다시 냉장고에 물을 넣으며 말했다.

구멍.

응?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고.

무슨 구멍?

상빈이 다시 기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기린의 얼굴 쪽에 손을 댔다.

구멍은 무슨 구멍이야. 돈 넣는 구멍이지.

나도 기린 쪽으로 다가갔다. 기린은 앞에서 보니 더 거대했다. 외뿔이 천장에 닿았다. 그제야 이 기린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장식용이라기엔 너무 컸다. 거실 한가운데 놓인 기린은 소파와 텔레비전을 가르는 벽처럼 서 있었다. 나는 상빈이 손을 대고 있는 얼굴을 바라보기 위해 고개를 들며 물었다.

이게 도대체 뭐야.

상빈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저금통. 기린 저금통.

나중에서야 상빈의 할머니 집 거실에 놓여 있는 기린이 상상 속 동물인 기린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환상 속 기린이 현생에 나타나면 아주 좋은 징조라는 것도. 세상에 현인이 나타나거나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도. 나는 주인이 죽은 집에서 기린이 일으킬 좋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도로에는 내가 타고 있는 택시밖에 없었다. 기사는 흥얼대며 핸들을 움직였고 라디오에선 어디선가 들어봤던 노래가 흘러나왔다. 노래가 끝나자 DJ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들 오늘 하루 아무 이유 없이 행복하길 바랄게요.

나는 뒷좌석에 몸을 기대고 계속 창밖을 보았다.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는 사라지고 높고 긴 방음벽만 보였다. 벽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길 끝에 상빈의 집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상빈의 할머니 집. 상빈과 기린이 살고 있는 집. 나는 여전히 내가 어디서 택시를 탔는지를 알지 못했다. 기억이 드문드문 조각 나 있었지만, 그럼에도 크게 불안하지 않았던 이유는 내비게이션에 적혀 있는 목적지가 내가 알고 있는 곳이었고 택시가 내비게이션에 입력된 경로를 이탈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디에서 출발했든, 어디로 가든 목적지에만 도착하면 되니까. 그리고 만약 기사가 갑자기 핸들을 꺾고 경로를 이탈한다 해도 나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여기서 내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데, 자조하며. 그건 마치 구멍이 없는 저금통을 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며.

평생 살아온 이 도시에 이제 내가 아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이 도시를 떠났다. 떠난 사람들은 이곳에 살았던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어쩌다 연락이 닿으면 대부분 이렇게 말했다. 너는 왜 아직도 거기 있냐. 타지에서 대학을 다니거나, 취직을 했던 순간도 있었다. 그러다가도 결국엔 이곳으로 돌아왔다. 기억 속 점점이 찍혀 있는 타지 생활은 정말로 연필로 꾹 누른 작은 점만 해서 없는 기억 같았다.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살아가다 죽음을 맞을 것 같은 뭉근한 불안이 느긋하게 나를 덮쳐왔다. 너는 왜 아직도 그곳에 있냐는 친구들의 물음에 나는 언제나 이렇게 답했다. 그럼 내가 무얼 할 수 있는데.

상빈은 이곳으로 내려온 뒤 할머니 집에서 살았다. 상빈은 매일 나를 불러 기린을 어떻게 옮겨야 할지를 물었다. 상빈은 기린의 몸속에 할머니가 평생 모은 돈이 가득하다고 말했다. 그러니 이렇게 무거운 것 아니겠냐고. 상빈은 기린을 있는 힘껏 밀며 말했다. 기린은 움직이지 않았다. 상빈의 유품 정리란 할머니의 기린을 가져가는 것이었지만 거실 한가운데서 꿈쩍도 하지 않는 기린을 가져갈 방법은 요원했다. 땀으로 범벅이 된 상빈이 신발장에서 녹슨 망치를 가져왔다. 그리고 기린을 내리쳤다. 깡, 하는 소리가 집 안을 울렸지만 기린은 부서지지도 찌그러지지도 않았다. 이거 뭐 강철이야? 내가 웃으며 말했다. 몇 번 더 깡 하는 소리가 났지만 여전히 기린은 아가리를 벌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상빈에게 다가가 이곳에 정말 돈이 들어 있는 게 맞냐고 물었다. 소파에 주저앉은 상빈이 땀을 닦았다.

내가 태어났을 무렵 할머니가 이 기린을 샀대. 어디서 샀는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드디어 아들을 낳았다고 기념하려고 샀다네. 우리 집안에 계속 딸만 있었으니까 드디어 아들이 태어났다고 엄청 좋아하셨거든. 옛날 분이잖아. 나랑 평생 함께 살고 싶다고까지 하셨지. 이게 저금통이라는 걸 안 사람은 여태 아무도 없었어. 나도 물론 몰랐고. 내가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돈을 여기다 넣으셨대. 내가 병원에 갔던 날 할머니가 딱 돌아가셨거든? 근데 돌아가시기 전에 나한테 귓속말로 그러시더라고. 나랑 함께 살기 위해 모은 돈이라고. 이제 너 가지라고. 그럼 여기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 있는 거야. 시간만 해도 삼십 년이 넘어. 동전이라 해도 차곡차곡 쌓였으면 엄청나지 않겠어? 어쩌면 내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돈이 들어 있을 수도 있지.

나도 상빈의 옆에 앉았다. 소파가 푹, 꺼졌다. 소파에 앉으니 기린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상빈에게 그럼 기린을 들고 가는 건 어떠냐, 물었다. 내 말에 상빈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내가 일어나서 먼저 기린의 몸통을 잡았다. 상빈도 일어나 반대편 몸통을 붙잡았다. 하나 둘 셋, 하고 기린을 들어 올렸으나 기린은 거실에 박힌 듯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는 거실에 주저앉았다. 상빈이 다리를 펴며 말했다.

옛날에 담임이 책상 전부 다 운동장으로 옮기라고 했던 거 기억나? 그때랑 비슷하네.

나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러게, 하고 웃었다.

그 선생 얼굴이 선명해. 내가 진짜 너무 보고 싶어서 얼마 전에 찾아가려고 했거든?

상빈이 주먹으로 기린을 퉁, 퉁 두드렸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인 선생님 얼굴을 떠올렸다. 밋밋한 얼굴이었는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상빈에게 물었다.

그래서 만났어?

상빈이 웃으며 답했다.

아니. 뒤졌다네. 몇 년 전에 뇌출혈로.

상빈이 몸을 일으켰다.

그 선생이 나 전학 갈 때 그랬거든. 잘했다고. 아주 정말 잘했다고.

뭘 잘했다고 했는데?

나도 몸을 일으켰다.

아무 말도 안 하고 조용히 꺼져줘서.

해가 지고 있었다. 노을빛에 기린이 더 노랗게 변했다. 나는 정말 돈이 들어 있나 하고 기린을 밀어 보았지만 동전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곱씹을수록 참 신기한 말이지 않습니까? 아무 이유 없이 행복하라니.

기사가 작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운전석 쪽을 바라보았다. 혼잣말인가 싶어서 대답하지 않았다. 기사가 계속 이어서 말했다.

이렇게 생각하면 말입니다. 아무 이유 없는 행복이라는 게 참 무섭습니다. 아무 맥락 없이 나타난 행복을 누린다면, 아무 맥락 없이 찾아온 불행을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 아닐까요.

나는 기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행복이나 불행에 대해 알기보다 언제쯤 이 도로의 끝이 보일지가 더 궁금했다. 나는 기사에게 혹시 제가 어디서 탔는지 알 수 있을까요, 물었다. 택시가 더 빠르게 달렸다. 커지는 엔진 소리가 차 내부를 울렸다.

참. 세상에는 행복보다 불행이 더 많은 법인데. 이유 없는 행복이라니. 사실 우리는 많은 불행 속에서 살아가지 않습니까. 가령 주머니에 넣어뒀던 돈이 사라진다든가, 갑자기 모르는 사람에게 해코지를 당한다든가, 지나가는 차에 부딪혀 죽는다든가. 그런 세상 속에서 이유 없는 행복이라는 건 전 정말 모르겠습니다. 손님도 그렇지 않습니까?

기사는 내 말을 듣지 못했는지 계속 홀로 말했다. 나는 조용히 답했다.

행복과 불행이라는 건 주관적인 거니까요.

기사가 핸들을 ‘탁’ 치며 말했다.

그렇죠. 누군가의 행복이 또 다른 이에겐 불행일 수 있죠. 물론 반대의 경우에도 말입니다. 아니 사실 행복이라는 건 누군가의 행복을 뺏어오는 게 아닐까요? 행복을 빼앗긴 사람은 불행해지는 거지요. 그러니까 누군가가 행복하면 당연히 누군가가 불행해지는 게 삶의 이치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사람들은 행복을 바라죠. 누군가가 불행해질 것이라는 생각은 잠시 묻어둔 채 말이에요. 손님에게 아무 이유 없는 행복이 주어진다면 어떨 것 같나요. 유감없이 즐기실 건가요. 아니면 누군가의 불행을 생각할 건가요?

나는 대답하는 대신 다시 물었다.

근데 제가 어디서 택시를 탔나요?

기사가 속도를 줄이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웃고 있는 건지 누런 이빨이 보였다.

어디서 출발했든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우리는 이미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는걸요.

기린 옮기기를 실패하고 며칠 뒤 상빈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으로 오라는 건 줄 알았으나 상빈은 뜻밖의 말을 했다. 기린을 옮길 방법을 알아냈다고. 나는 방법을 물었다. 상빈은 집으로 와보면 안다고 답했다. 나도 함께 방법을 고민했기 때문인지 약간 설레는 마음도 들었다. 기린을 가져갈 방법을 찾았다면 유품 정리는 마무리될 것이었고 상빈은 다시 이 도시를 떠날 것이었다.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는 상빈이 떠나는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 없었다. 상빈의 할머니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또 한 번 떠올렸다. 상빈은 왜 전학을 간 거지.

대문은 열려 있었다. 거실에는 전처럼 기린이 서 있었고 상빈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집안을 돌아다니며 상빈을 찾았다. 안방을 열고 화장실 문을 열었지만 그곳엔 상빈 대신 여전히 깔려 있는 꽃무늬 이불과 물기가 묻어 있는 빨간 고무 대야가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상빈 찾기를 포기하고 소파에 누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린 안에 돈이 들어차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상빈의 할머니는 왜 돈을 꺼내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을까. 바람이 불어와 발바닥을 간지럽혔다. 그러고 보니 기린을 옮긴다 해도 돈을 꺼낼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상빈은 어떻게 할 생각일까. 상빈의 집 거실에 놓일 기린을 상상했다. 아가리를 벌리고 새로운 집 천장에 외뿔이 닿은 채 상빈을 내려다보고 있을 기린을.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몸을 일으켜 문 쪽을 바라보았다. 상빈이 숨을 헐떡이며 들어왔다. 어디 갔었냐는 물음을 하려다 상빈의 손에 들린 무언가를 발견했다.

상빈이 웃으며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았다. 그건 커다란 캐리어였다.

거기에 기린을 넣어 가려고?

소파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상빈은 캐리어를 끌고 들어왔다. 캐리어는 묵직했다. 나는 캐리어를 보며 다시 물었다.

기린을 넣기엔 너무 작지 않나.

상빈은 웃기만 했다. 그리고는 캐리어의 지퍼를 잡아당겨 열었다. 캐리어의 내부에는 속옷과 겉옷, 책, 노트, 칫솔 같은 게 담겨져 있었다. 나는 이게 무엇이냐는 듯 상빈을 바라보았다. 상빈이 냉장고에서 또 보리차를 꺼내 마셨다. 냉장고에서 흘러나온 한기가 느껴졌다. 보리차를 벌컥벌컥 마신 상빈이 말했다.

너 그거 기억나?

나는 뭐? 답하며 다시 소파에 앉았다.

우리 4학년 때 그 일 있잖아.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데. 어떤 애가 오랫동안 학교에 안 나왔었잖아. 걔가 학교를 안 나오는 이유가 뭐냐고 막 소문도 돌고. 기억나?

나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상빈은 식탁에 걸터앉은 채 계속 말했다.

근데 소문이라는 게 그렇잖아. 거기다 초등학생들이니까. 뭐, 부모님이 이혼을 했다, 아니면 가족들이 야반도주를 했다, 밤새 게임만 해대서 학교를 안 보낸다, 혹은 가출을 했다, 이런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소문들이 돌았잖아. 믿는 애들도 있었지만 그런 소문은 휘발되기 마련이지. 근데 거기서 누가 그런 말을 했어. 자기는 진짜 이유를 안다고. 걔가 학교를 안 나오는 이유를 안다고. 다 들었다고.

상빈이 자리에서 일어나 기린 쪽으로 갔다. 그리고 전처럼 숨겨진 구멍을 찾으려는 듯 기린을 훑었다. 하지만 이제 나도 상빈도 알고 있었다. 기린에 돈을 넣는 구멍 같은 건 없다는 걸.

그 애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소문을 말할 거라고 생각했지. 근데 의외의 말을 했어. 너 그거 기억나?

나는 이번만큼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기억이 난다고 하면 상빈이 상세히 물을 것 같았다. 상빈이 기린을 캐리어에 넣는 시늉을 하며 웃었다.

역시 이렇게는 옮길 수 없으려나. 하여튼 그 애가 말한 소문은 진짜 같았어.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였고, 모두가 정말로 걔가 그 이유 때문에 학교를 안 나온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야. 걔가 학교에 나온 뒤에 모두가 위로했어. 그 소문을 언급하면서. 근데 그러고 나서 걔가 갑자기 사라졌어. 휘발되었던 소문들처럼.

상빈이 내 옆에 와서 앉았다. 소파가 푹 꺼졌다. 나는 기억나지 않는 과거를 생각하길 그만두었다. 어쩌면 상빈만이 겪었던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는 아주 무관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사라졌다는 걔가 누구인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상빈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상빈을 보았다. 상빈의 입가에 보리차가 흥건하게 묻어 있었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궁금했지만 나는 다른 걸 물었다.

그래서 기린을 옮기는 방법이 뭔데?

상빈이 웃으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너 사실 하나도 기억 안 나지?

상빈은 내 질문에 답을 하듯 캐리어에 있는 물건들을 하나둘 꺼내기 시작했다. 속옷을 개고, 겉옷을 옷걸이에 걸고, 칫솔을 화장실에 가져다 두고, 책들을 뜻 모를 한자로 적힌 책들 옆에 꽂아두었다. 나는 소파에 앉아 묻지 못한 질문들을 입안에서 질겅질겅 씹었다.

도로 끝에 다다르자 신호등 하나가 나왔다. 빨간불이 들어왔고 택시는 홀로 도로에서 정차했다. 건널목의 초록불이 점멸했다. 깜빡깜빡. 하지만 저쪽과 이쪽 사이에서 초록불을 기다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하얀 이빨 같은 점선만 햇빛에 녹아내린 듯 바닥에 깔려 있었다. 도로 끝에 갈래 길이 보였다. 내비게이션이 오른쪽 길로 가라고 말했다. 기사는 신호가 바뀌었음에도 아직 출발할 생각이 없다는 듯 시동을 꺼버렸다.

하나도 기억나지 않느냐는 상빈에게 나는 그렇다고 했다. 그리고 그건, 또 다른 거짓말이었다. 상빈이 말한 소문을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어디선가 들어봤을 법한 소문들 말고 정말 진짜 같았다는 소문. 나는 그 소문을 기억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손자를 죽이려고 했다네요.

나는 담임선생님이 교무실에서 다른 선생님에게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할머니가 같이 죽으려고 약을 탔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둘 다 죽지는 않았고 중환자실에 있데요. 무슨 할머니가 손자를 죽이려고 해요. 황당하지 않아요?

그리고 그건 나만이 엿들은 사실이었다. 선생님은 자신이 소곤거렸던 말이 소문이 되어 퍼져가자 난감해했다. 도대체 왜 사실이 소문이 된 건지, 그때 선생님은 알지 못했다. 지금의 나는 소문을 퍼뜨렸던 그 애가 누구인지, 소문의 당사자였던 걔가 누구였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그런 우리를 보고 상빈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도대체 왜, 모르는 거지.

기사가 시동을 걸었다. 액셀을 밟자 차가 앞으로 나아갔다.

이제 곧 도착할 겁니다.

기사가 핸들을 꺾었다.

손님 가끔 말입니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택시가 갈래 길로 진입했다.

세상은 모두 인과관계라고 하잖습니까. 원인이 있으니, 결과가 있다는 말. 그건 참 할 말이 없게 만듭니다. 결국 무슨 일이 일어나도 다 이유가 있다는 말이니까요. 이런 일이 일어나도, 다 내 탓이오 하게 되니 말입니다. 근데 가끔은 말입니다. 아무 이유나 맥락 없는 행복처럼 이유를 도통 모르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럴 땐 운이 좋았다 나빴다 하면서 그냥 결과를 받아들이고 말죠. 근데 돌고 돌아서 말입니다. 모든 것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유를 전혀 모르는 결과도 결국은 다 내 탓이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참 웃기지 않나요?

내비게이션에서 음성이 쏟아졌다.

경로를 이탈했습니다. 경로를 이탈했습니다. 경로를 이탈했습니다.

택시가 왼쪽 길로 들어섰다.

나는 기사에게 물었다. 왜 왼쪽으로 가나요.

기사가 답했다. 한 손님을 태운 적이 있습니다.

나는 다시 물었다. 왼쪽으로 가면 더 빨리 도착하나요.

내비게이션이 답했다. 경로를 재검색합니다.

나는 말했다. 내비게이션은 아니라고 하는 것 같은데요.

기사가 답했다. 그 손님이 말입니다. 계속해서 트렁크에서 소리가 난다고 하더군요. 제가 그럴 리가 없다고 끝없이 얘기하는데도 그 손님은 계속해서 트렁크에서 뭔가 둥둥, 하고 소리가 들린다고 확인 해 봐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더군요.

기사가 입을 쩝쩝대며 이어 말했다. 그 손님이 차가 잠시 정차했을 때 트렁크를 열어봐야 한다며 차에서 내리더군요. 그래서 저도 차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손님은 트렁크를 억지로 열려고 하더군요.

나는 대답 듣기를 포기한 채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그래서 제가 정중하게 말했죠. 손님. 트렁크에 들어가서 가시고 싶으신가요? 뒷좌석에 앉아 가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하고요.

기사가 웃었다. 선글라스가 들썩일 정도로 껄껄껄, 하고.

연락이 닿는 초등학교 동창에게 상빈이 말한 소문에 대해 물었다. 동창은 태연하게 기억나지, 답했다. 나는 그게 누구인지를 물었다. 동창은 웃음을 터뜨렸다.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네가 어떻게 그걸 잊을 수 있냐고 묻듯이. 나는 누구나 초등학교 때 일은 잊지 않느냐고 항변하려다 그만두었다.

지난하게 이어지는 도로에서 내비게이션은 계속해서 경로를 재탐색한다는 경고음을 울렸고 기사는 행복과 불행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며 도로 위엔 로드킬을 당한 고라니가 내장을 쏟아낸 채 누워 있었고 파리와 구더기가 아지랑이 속에서 고라니 내장을 파먹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엉덩이를 붙인 채 상빈이 왜, 돌아오자마자 나에게 연락했는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건 기사가 중얼거리는 행복과 불행에 대한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일반적이고 진부한 이야기였다.

왼쪽 도로에 들어서자 풀숲이 펼쳐졌다. 잡초들이 무성한 풀숲은 어둡고 축축했다. 내부에 무엇이 들어 있어도 눈치채지 못할 것 같았다. 발악하듯 파릇파릇 자라난 풀과 나무들이 모든 방향을 향해 뻗어 있었다. 풀숲의 내부는 햇빛을 모두 삼킨 듯 어둠만을 전시해 두고 있었다. 풀숲 끝에 상빈의 집이 있을까. 이제는 알 수 없었다. 상빈의 집에 가야 할 이유도, 목적지가 상빈의 집인지 아닌지도.

이제 정말 목적지에 다 와 갑니다.

기사가 말했다. 내비게이션은 이제 말이 없었다. 화면은 까맣게 변해 있었다. 나는 이제 목적지인 상빈의 집으로 가고 싶지 않았지만 나의 마음과 무관하게 택시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상빈은 유품 정리 대신 자신의 짐을 풀었고 할머니 집에서 살기로 했다. 상빈은 이제 기린을 옮기려고 하지 않았음에도 나를 매일 찾아왔다. 상빈은 나의 집을 알고 있었고 나는 도시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상빈이 찾아오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상빈은 별다른 이유 없이 나의 집을 찾아와 시간을 죽였다. 기린 같은 건 이미 잊어버렸다는 듯이. 나는 그런 상빈을 빤히 바라보았다. 움직이지 않는 기린이 집 가운데 놓여 있는 듯한 불편함이 발끝부터 찬찬히 차올랐다.

기사가 핸들을 꺾었다. 택시는 어둡고 축축한 풀숲으로 들어갔다. 나뭇가지가 바스스,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창밖엔 이제 나뭇잎들이 창문에 들러붙어 있는 것만이 보였다. 나뭇잎은 누군가의 손바닥 같았다. 수많은 손바닥들이 문을 열어달라는 듯 창문을 긁었다.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에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트렁크를 계속 둥둥, 두드리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택시 내부로 바스스 하는 소리와 둥둥거리는 소리가 교차해서 들려왔다. 나는 몸을 세우고 기사에게 말했다.

왜 풀숲으로 들어온 거죠.

기사가 몸이 좌우로 흔들렸다.

이게 가장 빨리 가는 길입니다.

나는 조수석 등받이를 잡으려 소리쳤다. 뭐라고요?

택시는 양쪽으로 심하게 뒤흔들렸다. 멀미가 날 것만 같아 눈을 질끈 감았다. 순간 주위가 고요해졌다. 고요 속에서 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손님.

눈을 뜨자 풀숲은 사라지고, 상반이 살고 있는 연립주택이 보였다. 나는 창밖과 기사를 번갈아 보았다. 바스스, 둥둥 하는 소리가 꿈처럼 느껴졌다. 기사가 미터기를 껐다. 그리고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기사의 입술 속 이빨이 건널목의 점선처럼 가지런히 선 채 나를 향하고 있었다. 무언가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나는 어떻게 와 왜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나는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냈다. 기사가 고개를 저었다.

돈은 되었습니다. 저도 무척이나 즐거운 운행이었으니까요. 무엇보다도 오늘은 맥락 없는 행복이 오는 날이지 않습니까?

기사가 웃는 얼굴을 뒷좌석까지 들이밀며 말했다. 나는 카드를 쥔 채 기사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기만 했다. 택시의 잠금장치가 풀렸다.

그러니까 이제 내려요.

나는 차 문을 열었다. 문을 닫자마자 택시가 앞으로 나아갔다. 택시가 과속 방지턱을 지났다. 속도를 줄이지 않은 택시가 심하게 덜컹거렸다. 차에서 또 둥둥,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멀리 사라지는 택시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누군가의 엉덩이가 붕, 떴다가 내려앉았을 것만 같았다. 나는 무사히 도착한 목적지에서 어떤 기분을 느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리에 힘이 빠졌다. 지금 느끼는 감정이 안도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괜찮아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상빈은 이곳을 떠나지 않을 것이고 나는 전과 다름없이 무얼 할 수 없는 순간 속에 고여 있을 것이다. 정오의 햇빛은 그늘 속에 숨겨뒀던 불안을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아스팔트에 내동댕이치듯 전시해 두었고 거실에 놓인 기린은 아가리를 벌린 채 소파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맥락 없는 행복을 가진 사람은 누구이며 누군가가 행복을 가졌다는 맥락으로 인해 불행을 가진 사람은 누구인지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어느 쪽에 속해 있는지를 고민했다. 아무것도 알 수 없어서, 나는 주저앉을 듯 무릎을 굽히고 연립주택을 올려다봤다. 상빈의 집 창문이 열려 있었다. 뜨거운 바람이 불었고 창문에 널려 있는 낡은 꽃무늬 이불이 하느작거렸다.

 

 

  <당선소감>

 

   언젠가 도착할 현실이 꿈처럼 지금 도착

전화가 왔을 때, 잠시 졸고 있었습니다. 이제야 뒤집기를 하기 시작한 조카 나은이가 뛰어오는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벌써 뛰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꼭 껴안아 줄 때 잠에서 깨었고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여전히 꿈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다가, 나은이가 뛰는 꿈 또한 조만간 보게 될 현재라는 걸 깨달아서 당선 또한 어쩌면 언젠가 도착할 현실이 꿈처럼 지금 도착했구나 인정하게 됐습니다.

여전히 소설을 쓴다는 게 많이 어렵습니다. 나의 글이 어디에 가닿는지 또한 잘 모르겠다고도 생각합니다. 최근 소설을 쓸 날이 많이 남지 않았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만 써야겠다고 다짐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뒤돌아봤을 때 이 순간까지 제가 소설을 써 온 게 아니라 소설이 저를 다독이며 제 삶을 한 글자씩 써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제 소설들에게 고맙다고 조금만 더 곁에 있어 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당선 소식을 들었을 때 고맙다는 말을 먼저 한 뒤 축하를 전해준 우리 엄마 송순희 여사에게 먼저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이게 무슨 소설이야? 싶은 글마저 묵묵히 프린트해 주며 응원해 준 큰누나 조연우와 언제나 누구보다도 가족을 먼저 생각하고 버팀목이 되어주는 작은누나 조정민도, 매형 김성현에게도 너무나 고맙습니다. 언제나 사랑하는 로하, 하온, 은성 나은, 루니야 맛있는 거 사줄게.

소설을 읽어주며 합평해 준 저의 동료이자 선생님인 아나그노리시스 멤버 주섭님, 용형, 돌별이, 혜진이, ‘단편적 여름’ 멤버들, 로님, 효주님에게도 고맙습니다. 힘든 순간 함께 해준 채원이에게도, 정말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부족한 소설에서 가능성을 봐준 부산일보와 심사위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순간 무슨 말을 해줘도 좋으니 함께 했다면 좋았을 아빠에게 보고 싶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1995년 부산 출생.


 

  <심사평>

  

  흡인력 큰 서사에 환상성 갖춰…신춘문예에 적합

예심위원들이 고투 끝에 본심으로 넘긴 작품은 7편이다. 심사위원들은 그중 네 편에 주목했다. ‘뼈의 기억’은 소재는 흥미로우나 소재를 뒷받침하는 인물들의 구체성이 부족했다. 할머니가 홀로 죽음에 이른 연유, 생시와 같이 분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긴 내적 동기와 법의인류학자였던 인물이 뼈 분장사로 직업을 바꾸게 된 동기 등이 구체적이지 않아 서사가 무너진 아쉬움이 컸다.

‘심해금고’는 은행이란 한정된 장소를 통해 조직 속에서 겪는 개인의 실존적 외로움을 잘 드러냈다. 특히 아쿠아리움의 심해 존을 통해 화자의 현실 인식을 묘사한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소설의 첫머리에 큰 비중으로 등장한 ‘미안한데’가 중요한 역할 없이 결말에 이르러 서사의 긴밀성이 부족했다. ‘치이즈’ 또한 병원이란 공간을 통해 3개월 차 임병사가 겪는 직장 내 폭력과 그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안정적인 문장으로 잘 그려냈다. 하지만 쓰러진 미정 앞에 갑자기 전임자인 이수가 나타나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동기를 심어 준 설정은 너무 극적이어서 억지스러웠다.

‘기린을 옮기는 방법’은 여느 소설들과 결이 다른 독특한 소설이다. 확실한 게 아무것도 없는 우리의 현실을 상징하는 구성을 통해 삶을 은유하는 서사 방식은 흡인력이 컸다. 그 속에 환상성을 간직한 것이 이 소설의 특별함이다. 다소 낯설지만 이러한 새로운 형식이 신춘문예에 걸맞은 작품이라는 데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일치하여 당선작으로 뽑았다.

심사위원 : 정찬·정인·나여경·이병순·이정임 소설가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1) 한 줄로 요약하면: “옮길 수 없는 것”에 대한 소설

기린을 옮기는 일은 실제로는 “물건 이동”이 아니라,

  • 도시(떠날 수 없음)
  • 기억(잊고 싶거나 지워진 과거)
  • 불행(원인-결과가 불분명한 삶의 폭력)
  • 돈/유산(그러나 꺼낼 수 없는 자원)

같은 것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의 은유예요.
결론은 냉정합니다. 옮기는 방법은 없다. 혹은 더 정확히는 ‘옮겨지는 쪽’이 내가 된다.


2) 큰 구조: 택시 프레임과 기린 프레임이 서로를 비춘다

이 소설은 계속 두 장면이 교차하죠.

  • 택시 장면: 어디서 탔는지 모름 / 목적지(상빈의 집)만 찍혀 있음 / 기사가 계속 “인과·행복”을 설교 / 결국 경로 이탈 / 트렁크 ‘둥둥’ 소리
  • 기린 장면: 할머니 유품(사실상 저금통) / 구멍이 없음 / 안에 돈이 있다고 믿음 / 옮길 수 없음 / 결국 상빈은 “옮기기”를 포기하고 “짐을 품”

이 둘이 사실 같은 말이에요.

  • 택시에서 화자는 운송되는 사람이고
  • 기린 앞에서 화자는 운송해야 하는 문제를 마주합니다.

그런데 둘 다 공통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음”으로 끝납니다.
택시 = 구조(시스템), **기린 = 구조가 남긴 덩어리(유산/기억/짐)**라고 보면 딱 맞아요.


3) 주요 상징 5개

(1) “붕 떠오르는 엉덩이”

과속방지턱 때문에 뜨는 건데, 화자는 그걸 “하늘을 나는 착각”으로 받아요.
→ 이 소설의 현실은 늘 기초가 흔들리고, 그 흔들림이 잠깐 ‘초월(하늘)’처럼 오해됩니다.
하지만 곧 “안전바 없는 롤러코스터”로 돌아오죠. 초월은 없고, 불안만 있음.

(2) 내비게이션: “경로를 따라 계속 운행하세요”

내비는 “정답 경로”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화자 삶의 태도를 말해요.

  • 출발이 어디든 상관없고
  • 목적지만 찍혀 있으면 된다는 체념
  • 경로 이탈해도 “내가 할 수 없다”는 자조

삶이 ‘내 선택’이 아니라 ‘운행’이 되는 상태입니다.

(3) 금빛 기린(=저금통)

겉모양은 기린인데 사실 용 같고, “좋은 징조”라지만 주인(할머니)은 죽어 있음.
→ 좋은 징조가 좋은 일이 되려면 ‘살아 있는 맥락’이 있어야 하는데, 이 집엔 죽음과 유품정리만 있어요.
그래서 기린의 금빛은 축복이 아니라 아이러니한 장식입니다.

더 결정적으로 기린은 저금통인데 구멍이 없음.
저금통은 원래 “미래를 위해 모으는 장치”인데, 이건 미래로 연결되는 입구도 출구도 차단돼 있어요.
희망의 도구가, 정지된 덩어리로 굳어버린 상태.

(4) “구멍”

상빈이 찾는 건 “돈 넣는 구멍”인데 없죠.
구멍은 기능(돈의 흐름)뿐 아니라 **원인-결과를 잇는 통로(맥락)**예요.
이 소설에서 계속 나오는 질문이 뭔가요?

  • 내가 언제 잠들었지
  • 어디서 출발했지
  • 왜 상빈이 돌아왔지
  • 왜 내가 상빈을 기억 못 하지
  • 왜 그 소문이 퍼졌지

모든 질문은 “구멍(연결)”을 찾는 시도인데, 돌아오는 답은 늘 없음/모름/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그래서 ‘구멍 없는 저금통’은 곧 맥락 없는 삶의 가장 압축된 은유입니다.

(5) 트렁크의 ‘둥둥’ 소리

이 소리는 소설 후반부에 갑자기 현실을 찢고 들어와요.
기사의 “트렁크에 들어가서 가시고 싶으신가요?”는 농담처럼 보이지만 사실 섬뜩합니다.

  • 트렁크는 보이지 않는 곳이고
  • 그 안은 **확인할 수 없는 것(억압된 것/숨겨진 것)**이 들어가는 자리죠.

이 작품은 끝까지 “확실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현실을 보여주다가, 마지막에 ‘확실한 소리’ 하나를 남겨요.
그 소리는 “돈(동전)”일 수도 있지만, 텍스트가 유도하는 공포는 “사람/기억/죄책” 쪽이에요.


4) 인물 해석: 상빈과 ‘나’는 거울처럼 배치됨

‘나’(화자)

  • 도시를 떠나지 못함
  • “그럼 내가 무얼 할 수 있는데”가 삶의 문장
  • 기억이 조각나 있음(특히 상빈)
  • 질문을 끝까지 붙잡지 못하고 ‘운행’에 맡김

→ 이 화자는 ‘무력’을 성격이 아니라 환경에 의해 학습된 생존 방식으로 갖고 있어요.

상빈

  • 돌아온 사람(도시 밖을 살다 온 사람)
  • 그런데 돌아오자마자 “할머니 유품(기린)”에 붙잡힘
  • 결국 기린을 옮기려던 목적을 잃고, 짐을 풀고 눌러앉음
  • 화자에게 계속 “기억”을 요구함

→ 상빈은 이동의 가능성을 가진 듯 보이지만, 결국 **더 강한 정착(고착)**으로 귀결돼요.
즉 “나”의 미래를 선행해서 보여주는 존재 같기도 합니다.
(화자가 택시로 ‘도착’해도 괜찮아지는 게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5) 가장 중요한 장면 3곳(해석의 핵)

A) “택시 주위의 차들이 모두 사라졌다”

이건 현실적인 묘사라기보다 고립의 시각화예요.
도시는 있는데, 사회는 사라진 느낌.
화자는 “목적지에만 도착하면 된다”고 믿지만, 사실 이 장면부터 택시는 현실이 아니라 통로가 됩니다.
현실에서 통로로 이동해버리면, 삶은 ‘살기’가 아니라 ‘이동 중’이 되죠.

B) 담임의 말: “조용히 꺼져줘서 잘했다”

이 한 문장이 작품의 ‘폭력’을 정의해요.
이 폭력은 때리는 폭력보다 더 구조적입니다.

  • 너는 있되, 없어도 된다
  • 오히려 없어지는 게 “잘한 일”이다

그래서 이 작품의 인물들은 “사라짐”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고, “기억 상실”이 너무 자연스럽게 일어나요.
즉 기억의 결핍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라져주는 것을 칭찬하는 환경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 결과로 읽힙니다.

C) “할머니가 손자를 죽이려고 했다” 소문(=사실)

여기서 소설이 확 꺾입니다.
그 소문은 단순한 학교 괴담이 아니라, **가족 내부의 폭력(혹은 파국)**이죠. 그리고 그 사실이 “소문”이 되어 퍼집니다.

핵심은 이 대목이 “기린(저금통)”과 결을 같이한다는 점이에요.

  • 겉으로는 좋은 징조의 금빛 기린
  • 안쪽에는 확인 불가능한 돈/비밀/폭력의 축적
  • 그리고 출구(구멍)가 없다

할머니가 모았다는 돈은 축복의 유산처럼 포장되지만, 동시에 이 소설은 “할머니”를 죽음과 폭력의 가능성 쪽으로도 놓아요.
그래서 기린은 ‘축복’과 ‘저주’가 한 몸인 상징이 됩니다.


6) 제목을 다시 읽기: “기린을 옮기는 방법”이 왜 끝내 제시되지 않는가

표면적으로는 방법을 찾는 이야기인데, 실제 진행은 이렇죠.

  1. 옮기려 한다 → 안 된다
  2. 부수려 한다 → 안 된다
  3. 들어 올리려 한다 → 안 된다
  4. 캐리어에 넣으려 한다 → 말이 안 된다
  5. 결국 상빈은 짐을 풀고 산다

즉 “옮기는 방법”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로 변합니다.

  • 옮기기(해결) → 들고나가기(탈출) → 정리하기(종결)
    이게 다 실패하고
  • 남는 건 **그 옆에서 살아가기(공존/체념/정착)**예요.

그래서 제목은 사실상 반어법처럼 작동합니다.
“방법”을 묻는 말이, 이 소설에선 방법 없음의 확인이니까요.


7) 결말의 의미: “돈은 되었습니다” = 맥락 없는 행복의 폭력

기사가 요금을 받지 않아요. 표면상 친절인데, 이 소설에선 소름 끼치는 장면입니다.

  • 돈(요금)은 원인-결과를 마무리하는 장치예요.
    “탔다 → 이동했다 → 지불했다”로 사건이 닫히죠.
  • 그런데 지불이 사라지면, 사건은 닫히지 않습니다.
    즉 화자는 여전히 기사/택시/운행의 논리 안에 남아요.

기사의 “오늘은 맥락 없는 행복이 오는 날”은 축복이 아니라 협박처럼 들립니다.
왜냐하면 이 작품이 반복해서 말하잖아요.

  • 맥락 없는 행복은
  • 맥락 없는 불행을 받아들이게 만든다

즉 그 말은 “너는 이유 없이 이곳에 도착했고, 이유 없이 여기 갇힐 수도 있다”는 선언에 가깝습니다.

마지막에 택시가 덜컹하고, 또 트렁크에서 ‘둥둥’ 소리가 나죠.
그건 독자에게 이렇게 남습니다.

  • “다음 승객도 같은 일을 겪을 것이다.”
  • “이 운행은 반복되는 구조다.”

8) 이 작품이 주는 가장 큰 질문(핵심 주제)

결국 화자의 마지막 고민은 이것이에요.

맥락 없는 행복을 가진 사람은 누구이며, 그 맥락 때문에 불행해진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나는 어느 쪽인가.

이 질문은 ‘행복론’이 아니라 분배와 책임의 질문입니다.
누군가의 유산(기린 속 돈), 누군가의 생존(도시에 남은 나), 누군가의 사라짐(학교에서 исчез), 누군가의 운행(택시)은 서로 연결되는데, 그 연결을 보여주는 “구멍”이 없어요.
그래서 인과가 끊긴 세계에서 책임은 흐릿해지고, 사람은 “내가 뭘 할 수 있는데”로 굳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