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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쟁이, 날아오르다 / 최정희

 

그녀가 오늘 한쪽 유방을 들어냈어 무거워진 한쪽이 사면처럼 기울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어 기울기를 가진다는 건 양팔저울 한쪽에 슬픔을 더하거나 덜어내는 것 

 

가끔 또는 자주 비가 내렸어 그녀의 눈 속에 살고 있는 소금쟁이는 언제나 눈물의 표면을 단단히 움켜쥐었어 그렁그렁한 표면장력, 그 힘으로 소금쟁이는 침몰하지도 날아오르지도 못했어

오늘 그녀는 기울기를 가졌어 x축과 y축 사이 그리고 삶과 죽음 사이 걸음을 걸을 때마다 가슴에서 눈물이 호수처럼 출렁였어 그녀는 비로소 너무 오래 울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어 남은 한쪽의 젖꼭지가 짓무를 때까지 오늘 울기로 했어

소금쟁이가 떠났다는 걸 그제야 알았어

 


[당선소감]“훈풍같은 시로 따뜻한 위로가 되길”


불혹을 꿈꾸었다. 그때쯤이면 세상 그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러나 마흔. 바람은 내 안에서 일었고, 그 어느 때보다 나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2월의 끝자락에서 쏟아지는 햇살을 보았다. 겨울의 햇살과는 다른, 맑고 따뜻함이 아련하게 묻어나던 햇살을.

나는 그 햇살 속에서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서점으로 가 시집 한 권을 샀다. 그것이 내 시의 출발이었다.

흔들린다는 건 내가 살아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나는 흔들리며 바람의 족적을 기록하고 싶다. 

미풍, 혹은 훈풍의 바람 같은 시를 쓰고 싶다. 내 시가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과 경상일보에 감사드립니다. 남편과 아들 지산, 딸 지인과 이 기쁨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Happy New Year~

당선자 최정희 약력
- 1967년 생 
- (현) 수학학원 강사


[심사평]생애의 비의가 배어있는 사랑스러운 작품

 

최종까지 남은 네 분의 작품은 그야말로 난형난제, 막상막하였다. 그만큼 응모작의 수준이 기성의 수준을 뺨칠 만큼 높았다. 깊은 생각 없이 그냥 유행의 물살을 타고 있거나 또 현란하게 변해가는 시대의 낌새를 눈치채지 못하고 고색창연한 시의 습관에 무심코 젖어있지는 않은지 자세히 살펴보았다.

〈S, He takes a taxi〉는 새로운 기법의 멋을 부린 작품으로 맨 먼저 눈에 확 띄었으나 사변적인 말놀이의 반복이라는 점에서 아쉬운 감을 지울 수 없었다. 〈하현달 소묘〉는 시적 은유의 모범답안 같이 안정된 구성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어딘지 도식적이고 작위적인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 〈죽방렴〉은 단순명료하게 세계와 자아를 A-B로 치환하는 솜씨가 돋보였지만 신춘문예 당선은 곧 한 시인으로의 탄생을 자리매김한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시적 형상화의 중층적인 깊이가 좀 얕아 보였다.

당선작으로 뽑힌 〈소금쟁이, 날아오르다〉는 아주 세밀하게 직조된 ‘작품’이다. 도드라지거나 으스대지 않으면서 나직한 어조로 세계와 통화하는 태도가 무엇보다도 인상적이다. 참신한 시적 상상력으로 형상화한 시 속의 ‘그녀’는 지금 이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우리의 영혼 속에는 표면장력을 잡아주는 소금쟁이 한 마리가 늘 있는 법이다. 곰곰 읽어볼수록 우리들 생애의 비의가 함초롬히 배어있는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심사위원 오탁번 약력
-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 제36대 한국시인협회장 역임
- (현)고려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