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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거리 점방 / 김승필

 

 

감실감실 화랑 성냥 양초 넣고

시오리 길 전봇대 돌아 발쪽발쪽 막걸리 주전자 딱지 쫀득이 파리채 넣고

귀신같이 동네 사람 죽은 걸 척척 알아맞힌 칠복이 아재 담상담상 검정 고무신 허리띠 넣고

머리빡 기계독 오른 동네 아이 밀어 넣고

오다마 삼양라면 박카스 크라운산도 브라보콘 농심새우깡 크라운 조리퐁 뽀빠이 맛동산 회똑회똑 넣고

넙죽넙죽 상둣도가 지나갈 때 눈 한번 꿈적하고

무뚝뚝이 아버지 악다구니 밀어 넣고

알금알금 파리똥 범벅 밀레 만종 액자 춘길 아재 이발소 면도 거품 집어넣고

쑥부쟁이 구절초 애기똥풀 쇠비름 고들빼기 똘똘 말아넣고

후루룩후루룩 뚝딱 마시면 배부르겠다.



 

 

[신춘문예 당선작-시 당선소감] “아름답되 허약하지 않은 시 쓸 것”

 

“진지하되 너무 엄숙하지 않은, 치열하되 거칠지 않은, 아름답되 허약하지 않은 시를 쓰고 싶습니다”

한동안 실꾸리처럼 풀려 나오는 이야기에 흠뻑 빠져 살았습니다. 비포장 시골길을 지나 골짝 깊숙이 숨은 마을을 훑고 다녔습니다. 동구 밖에서부터 설레는 기대가 수없이 다리품을 팔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시인은 누구나 내면에 저를 시인으로 키운 천형(天刑)을 안고 있습니다. 그 천형들은 대개 치명적 결핍입니다. “새도 깃털이 자라지 않으면 높이 날 수 없고, 절망도 극한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그 뚜껑을 밀어 올리지 못하리.” 고통은 주어지는 것이지만 고난은 선택하는 것이다. “모든 고결한 혼들은 자신의 고통을 남에게 드러내지 않는다.(알베르 카뮈)”그간 아침마다 배달되어 온 신문에서 매일 한편의 시를 읽는 재미로 살았습니다. 더러 시마(詩魔)를 앓다 그것을 노트에 차곡차곡 모아두고 읽고 또 읽었습니다.

이번 기회를 핑계 삼아 낳아 길러 키워주신 부모님께 큰절 올립니다. 또한 학부 시절 준엄한 가르침을 주신 임철호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간 현실 인식과 대응 방식을 걷어 올려 모국어의 향연을 잊지 않게 해 주었던 재선·병덕 형과 숫눈처럼 맑은 결 고운 시를 애첩 삼아 살고 있는 제자 경오와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항상 마음의 빚을 지고 살아갈(?), 사랑하는 아내의 아낌없는 정성과 아들 상욱, 딸 초예의 웃음 또한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참으로 가족에게 고마울 따름입니다. 늘 관심으로 지켜봐 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형제·누이들과도 오늘의 이 영광을 나누고 싶습니다. 부족하고 서툰 작품에 따듯한 격려의 손을 얹어 주신 두 심사위원 김정란·박남준 시인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이의역지(以意逆之)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라’는 도저한 가르침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앞으로 진지하되 너무 엄숙하지 않은, 치열하되 거칠지 않은, 아름답되 허약하지 않은 시간을 녹여 숙성을 견뎌 낸 푹 곰삭은, 달랑게가 뱉어 놓은 모래알 같은 시들을 쓰고 싶습니다. 깊이와 여백, 그리고 미의식으로 중무장한 사유의 바다! 그 끝점에 ‘말로 하는 절집’(詩)을 찾아 공양주에게 누룽지나 한 덩어리 얻어먹으러 가고 싶습니다.

고향 두봉산(斗峰山)을 돌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 길을 걷고 싶습니다. 그저 기쁘고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김승필
▲1968년 신안 출생 ▲전주대 국어국문과 졸업, 목포대 국어국문학 석사 ▲광주 정광고 교사 ▲우리 고전 캐릭터의 모든 것(공저), 국어 선생님의 시배달(공저)

 

[신춘문예 당선작-시 심사평] “토속적 사투리 신명 돋운다”

 

수준 높은 작품들이 많이 응모되었지만, 나는 김승필씨의 ‘삼거리 점방’ 외 세 작품을 당선작으로 정하는 데 망설이지 않았다. 

우선, 말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다. 능숙하게 이어지는 가락에 의성어와 의태어를 적절하게 배치하며 정겨운 그림을 그려나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토속적 사투리가 구수하게 녹아들어 신명을 돋운다. 

그러나 김씨의 작품들은 토속적이기만 하지 않다. 그 안에는 강렬한 메시지가 숨어있다. 사라진 정다운 것들, 변방으로 밀린 타자의 경험. ‘친구’에서 죽은 매미의 말라버린 눈구녁에 대한 두 개의 해석이 충돌한다. 

등나무 씨 안에 들어있는 노란 그 무엇을 두고도 충돌이 나타난다. 한 사람은 노란 배추라고 하고, 한 사람은 천마총 금제 관식이라고 한다. 그러나 시인은 고생대 삼엽충이라고 말한다. 한 사람에게 노란 그 무엇은 자연의 일부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세속적 영광의 상징인 금이다. 그것은 보다 근원적인 생명의 기원. 현,미,경, 즉, 툭툭 끊어지는 불연속적 시간의 원칙을 들,이,대,면, 보이지 않는 연속적인 그 무엇. 현,미,경,으로는 미망의 어두움만을 드리울 뿐인 신성한 미지(未知).

김승필씨는 이미 하나의 시적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가 건강하고 힘찬 시적 세계를 만들어 갈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조금더 규모있는 작품에 도전해 보았으면 한다는 희망을 덧붙여둔다.

김정란
▲서울 출생 ▲197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2000년 소월시문학상 대상 ▲상지대 교수



[신춘문예 시 심사평] “잘 익어 맛있는 동치미 같았다”

 

늦게 씨를 뿌리기는 했지만 텃밭에서 자란 무가 제법 통통하게 자랐다. 뽑아놓은 무를 쓱쓱 씻어서 한입 베어 무니 입안에서 퍼지는 아삭거리는 소리는 소리대로 귀가 즐겁지만 그 맛도 참 달다. 

한나절 소금 간을 해놓고 물을 부었다. 오늘 아침 항아리 뚜껑을 열고 맛을 보았다. 아직 함께 넣은 마늘, 생강이며 대파 등의 양념 맛이나 무엇보다 붉은 갓 빛이 제대로 우러나지 않아서 조금 더 시간을 기다려야겠지만 짜지 않다는 것만으로도 일단 안심을 했다.

김승필의 ‘삼거리 점방’은 잘 익어 맛있는 동치미와 같았다. 언어를 다루는 그 맛이 아삭아삭 거리며 그 안에 곰삭은 젓갈 맛이 감돌았다. 함께 심사를 맡은 김정란 시인과 나는 두말하면 잔소리라는 듯 ‘삼거리 점방’을 당선작으로 결정을 했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들의 수준은 결코 지역신문의 신춘문예 투고 작품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작품성들이 높았다. 그러나 대부분이 너무나 잘 다듬어진 시적기교로 무장되어있었다. 아예 신춘문예용 판박이들이라고 해도 과장되지 않았다.

조유희의 ‘어제와 오늘 사이’, 정지윤의 ‘블랙아웃’이 눈에 띄었지만 그런 면에서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삼거리 점방은 참 신선했다. 전통리듬에 바탕을 둔 그의 시들이 조금 더 뒷심을 기른다면 한국 시단에 활기를 불어 일으킬 것이라 믿는다.


박남준
▲영광 출생 ▲1984년 시 ‘할메는 꽃신 신고 사랑노래 부르다가’로 등단 ▲제13회 천상병 시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