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거미 / 권영하 거미 / 권영하 하늘 끝 마천루 정수리에밧줄을 꽁꽁 묶었다동아줄 토해내며 낙하하는 몸으로건물의 창을 닦으며 절벽으로 내려간다빌딩들 눈부시게 플래시를 터트려도허공길 유리블록 사뿐히 밟으면서수족관 물고기처럼살랑살랑 물호수를 흔들며 헤엄친다뙤약볕 빨아먹은 유리성이 열을 뿜고빌딩허리를 돌아온 왜바람이목숨줄을 무섭게 흔들지만구슬땀을 흘리며 내려간다아이스링크에 정빙기같이생채기를 지운다유리벽에 갇힌 사람들에게푸른 하늘도 열어주고유리창에 비치는 현수막의 사연도살포시 보듬어 닦는다의지할 곳도 없는 허공에서작업복 물에 젖어 파스내음 진동하고피로가 줄끝에서 경적처럼 돋아나지만또다시 하늘에 밧줄을 묶는다땀 흘린 줄길이만큼 도시는 맑아지고유리 벽에 그려진 풍경화도끼끗해지니까 "살아온 것보다 좀 뜨겁게 살아가라는 채찍 같아" 시.. 좋은 글/시 6년 전
[2018 동양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거미 / 문혜영 거미 / 문혜영 오후 햇살이 두 남녀의 몸을 부드럽게 훑어 내린다. 배가 약간 나온 남자의 등 뒤로 여자의 손길이 살짝 스친다. 뱀의 살갗처럼 반들반들한 땀이 남자의 굽은 등줄기를 타고 유선으로 흐른다. 여자는 침대 끝에 걸쳐둔 바이올렛 가운을 오른 팔에 살짝 감고 희미하게 쟈스민 향이 흘러나오는 욕실 문을 향해 걸어간다. 얼굴은 이미 40대 중반을 넘어선 여자는 몸만큼은 주름진 얼굴과 엇박자다. 둥글게 춤을 추는 가슴선 아래로 운동으로 다져진 것인지 군살 하나 없는 긴 허리선. 배꼽 아래 거미의 숲을 지나 쭉 뻗어 내리는 가지런한 다리까지 날렵한 몸태를 가진 그녀다. 사내는 곤란한 표정으로 여자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뭔가 말을 건넬 기세다. 시계가 없는 내 방은 시간을 알 수 없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단.. 좋은 글/소설 7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