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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거미 / 권영하

 

하늘 끝 마천루 정수리에

밧줄을 꽁꽁 묶었다

동아줄 토해내며 낙하하는 몸으로

건물의 창을 닦으며 절벽으로 내려간다

빌딩들 눈부시게 플래시를 터트려도

허공길 유리블록 사뿐히 밟으면서

수족관 물고기처럼

살랑살랑 물호수를 흔들며 헤엄친다

뙤약볕 빨아먹은 유리성이 열을 뿜고

빌딩허리를 돌아온 왜바람이

목숨줄을 무섭게 흔들지만

구슬땀을 흘리며 내려간다

아이스링크에 정빙기같이

생채기를 지운다

유리벽에 갇힌 사람들에게

푸른 하늘도 열어주고

유리창에 비치는 현수막의 사연도

살포시 보듬어 닦는다

의지할 곳도 없는 허공에서

작업복 물에 젖어 파스내음 진동하고

피로가 줄끝에서 경적처럼 돋아나지만

또다시 하늘에 밧줄을 묶는다

땀 흘린 줄길이만큼 도시는 맑아지고

유리 벽에 그려진 풍경화도

끼끗해지니까



  <당선소감>


   "살아온 것보다 좀 뜨겁게 살아가라는 채찍 같아"


  시는 감상하는 것 보다 쓰는 것이 더 맛있는가 보다.

  수업 시간에 남자아이들도 시를 쓰면 너무 좋아한다. 발표하면서 저희들끼리 수군대며 입을 막고 킥킥 웃어댄다. 중 1학년들은 살구같이 배시시 수줍게 웃고, 2학년들은 복숭아같이 웃는다. 그리고 3학년들은 내보다 더 큰 덩치로 수박같이 웃는다. 발표가 끝나면 모두 개선장군처럼 뿌듯해한다. 그렇다. 까르르까르르 새파란 웃음을 쏟아내며… 자지러지는 그 순수한 얼굴들이 바로 시인의 마음이 아닐까. 아마 그래서 나도 시를 쓰는가 보다.

  어쩌다 운이 좋아 20살 때 쓴 시가 신춘문예 최종 본선에 올라, 그때부터 시와 절친이 되었는데… 정말 오랫동안 꿋꿋이 내 옆을 지켜주고 있다. 누군가 틈틈이 시를 왜 쓰는가? 물으면, "그냥…."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다행히 이번 당선으로 컴퓨터 안에서, 서랍 속에서, 종이 위에서… 쿨쿨 잠자는 내 절친들이 주위에 관심을 조금 받게 되어, 부끄럽기도 하고 좀 부담스럽기도 하다. 또 살아온 것보다 좀 뜨겁게 살아가라는 채찍 같아서 무게감과 책임감도 더 느껴진다. 앞으로 학생들 더 열심히 가르치면서, 좀 뜨겁게 살아보아야겠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과 점촌중학교 선생님들과 학생들, 우리 가족 정영숙 선생님과 예진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대학교 때부터 시를 사랑하는 영혼으로 나를 끝까지 믿어준 백승한 형님, 친형 같은 김사현, 최우창, 이정호 선생님께도 감사드린다.



  ● 경북 문경시 점촌중학교 교사 
  ● 2012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심사평>


  "유리벽 청소 노동자의 삶 형상화 뛰어나


  투고한 작품들을 읽어보면서 느낀 몇 가지 아쉬운 점을 적어본다. 첫째, 시를 오랫동안 익혔으면 좋겠다. 잠깐 보았던 사물이나 여행지의 인상을 그대로 쓴다고 '리얼'의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래 묵혀 충분한 발효를 거친 다음에야 좋은 작품이 되는 것이다. 둘째,문장이나 문체의 완성도를 높였으면 한다. 셋째, 기괴한 이미지를 썼다고 해서 난해한 좋은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넷째, 의식 또는 사유(사회적, 정치적, 미학적)가 시의 토대를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 다섯째, 노래가 없다. 운율 또는 리듬이 그것이다. 이런 아쉬움을 뛰어넘는 다섯 분의 작품이 최종적으로 남았다.

  '등'은 실체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흐름이 산만하여 무엇을 드러내고자 하는지가 불분명했고, '뼈 무덤 하나 먹고 둘 먹고'는 서사를 밀고 가는 힘은 인정되나 중간부분이 풀어져서 압축하는 요령이 부족했다. '죽방멸치'는 상투적 표현이 상식적이고 구체적이지 못했다. '샤갈의 숲속 마을로, 나는'은 이미지가 출중하여 감각은 높이 사 줄만 했으나 주제의 가벼움이 일상성에 매몰되어 우리 삶에 대한 사유가 받쳐주지 못하였다. 반면 당선작인 '거미'는 현실감을 바탕으로 해 사회를 보듬어 안는 시선이 따뜻하고 정겹다. 유리벽을 청소하는 노동자의 삶이 잘 형상화 되어 있었다. 함께 투고된 작품 '통일론'에서도 통일을 불을 밝히는 전구에 비교하여 표현한 것은 높은 점수를 받을만 했다.


 

심사위원 : 강은교, 강영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