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나에게 / 양지예
나에게 / 양지예 아이들 과제를 채점하는데 유독 소린의 시험지가 눈에 띄었다. 이름, 풀이 과정, 답까지 모두 분홍색 펜으로 적어놓았다. 계산 문제를 펜으로 푸는 아이는 흔치 않은데 거기다 분홍이었다. 내가 젊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 옆자리 사회 선생은 나이 먹을수록 글씨 읽기가 힘들다며 손으로 쓰는 과제는 절대 내주지 않았다. 주관식 시험문제도 모두 단답형으로만 냈다. 문장 단위가 되면 채점이 해독 내지는 독해가 되어버려 고역이라고 했다. 글자 포인트 13 이상, 교사들도 알고 있는 그녀 숙제의 가장 중요한 준수사항이다.소린의 자리는 교실 중앙 앞에서 두 번째로 교탁에 서면 눈에 가장 잘 띄는 위치다. 필기할 때면 소린은 미간을 계속 찌푸렸다 폈다 했다. 노트를 볼 때마다 주름이 패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