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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나에게 / 양지예

 

아이들 과제를 채점하는데 유독 소린의 시험지가 눈에 띄었다. 이름, 풀이 과정, 답까지 모두 분홍색 펜으로 적어놓았다. 계산 문제를 펜으로 푸는 아이는 흔치 않은데 거기다 분홍이었다. 내가 젊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 옆자리 사회 선생은 나이 먹을수록 글씨 읽기가 힘들다며 손으로 쓰는 과제는 절대 내주지 않았다. 주관식 시험문제도 모두 단답형으로만 냈다. 문장 단위가 되면 채점이 해독 내지는 독해가 되어버려 고역이라고 했다. 글자 포인트 13 이상, 교사들도 알고 있는 그녀 숙제의 가장 중요한 준수사항이다.

소린의 자리는 교실 중앙 앞에서 두 번째로 교탁에 서면 눈에 가장 잘 띄는 위치다. 필기할 때면 소린은 미간을 계속 찌푸렸다 폈다 했다. 노트를 볼 때마다 주름이 패는 모습에서 보건대 아이답지 않게 원시(遠視)가 있는 모양이었다. 분홍색 펜을 들고 찡그린 채 문제를 풀었을 소린을 상상하자 또 웃음이 났다. 그제 걷어다 놓고 아직 들여다보지 않은 필기 노트를 뒤져 소린의 것만 살펴보았다. 노트필기도 보라색에 초록색에 제멋대로였다. 형형색색의 글자를 보다 세 번째로 웃었다. 요즘 애들은 글씨를 참 못 쓴다. 소린도 그렇다.

소린은 팔다리가 길쭉하니 중학생 치고 큰 키인데 동글동글 얼굴만은 영락없이 아기 같았다. 이름 예쁜 소린이가 나와서 풀어보자, 하면 쌤 이름 얘기 좀 그만 해요, 하면서 툴툴거린다. 불퉁해지는 볼살이 볼만하지만 그 애는 뒤통수가 더 귀엽다. 나는 아이들의 뒷모습 보기를 좋아한다. 필기나 문제 풀이를 시켜놓고 교실 뒤쪽 사물함에 삐딱하게 기대어 있노라면 유독 소린의 뒤통수가 눈에 들어온다. 시꺼먼 남자반 아이들의 수그린 머리통 사이 크고 새하얀 귀가 양쪽으로 튀어나와 도드라져 보였다. 빚은 듯 동그란 두상에 찻잔 손잡이처럼 달려있어 잡아 당겨보고 싶다는 충동을 일으키는 귓바퀴였다.

나도 가지각색 펜을 모아 필기하던 시절이 있었다. 중학교 무렵이었다. 이모네가 서점 겸 문구점을 운영했던 덕이다. 당시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필통의 부피가 요즘 애들 말하는 인싸력의 잣대였다. 고가인 하이테크C는 어찌 보면 정점이었다. 나는 반에서 가장 많은 하이테크C를 가진 아이였다. 버린 적도 없는데 다 어딜 갔는지 지금 내 연필꽂이에는 교직원연수기념이라 적힌 삼색 볼펜에 컴퓨터용 사인펜, 네임펜이 전부다.

“쌤, 저 이거…….”

“아, 사생대회! 벌써 가져왔어? 다음 주랬지?”

사생대회참가확인서였다. 미술 선생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한 장이라 생각했는데 두 장이었다. 뒷장의 참가자란에 임소린,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소린이도 미술부였니?”

“아뇨, 지난번에 미술 선생님이 나가보라고…….”

“미술 선생님께서 직접? 소린이도 그림을 잘 그리나 봐?”

“모르겠어요.”

“몰라?”

“저도 걔 그림 본 적이 없어서요.”

화려한 노트필기를 보면 끄덕여지기도 했다. 남다른 색감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고흐나 몬드리안처럼 색이 독특한 그림을 그리는 소린을 상상해보았다. 눈살 찌푸린 앞모습이든 집중한 뒤통수든 내 눈에는 고뇌하는 예술가처럼 보이지는 않을 듯했다. 어릴 적 나를 두고 괜히 괴롭혀보고 싶다던 이모의 심정을 이제는 이해한다. 이모에게는 끝내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쌤들 저거 보세요. 그렇게 봄이 안 올 듯 춥더니.”

“금방 벚꽃 피겠네.”

국어 선생이 창밖 묵직하게 핀 목련을 보며 감탄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주말에 집에 오라는 어머니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모도 거들었다. 엄마 문자 받았지? 가끔 서울 집에도 가고 그래.

“꽃 핀다고 아줌마들은 호들갑인데 아가씨 혼자 한숨이야?”

“집에서 주말에 오라고 하시네요.”

“왜? 결혼하라고 잔소리하셔?”

질문은 국어 선생 혼자 하지만 오롯이 나를 향하는 교무실의 모든 귀가 느껴졌다.

“아직 그렇진 않네요.”

“하긴 요새 서른은 뭐. 아니지, 아직 아홉이지?”

결혼 얘기하니까 말인데요, 음악 선생이 말을 꺼냈다. 공립고 교사하는 대학 후배 하나가 상견례 자리에서 파혼했다는데, 글쎄, 둘이 육촌 사이였더래요, 고향 후배기도 한데 시골에 소문이 나가지고. 그래그래 요새 그렇다면서. 육촌이 뭐야 사촌끼리도 요즘 애들은 안 보고 살잖아. 그런데 김 선생 고향이 어디였지. 청도 아니었어요? 맞아, 청도. 작년에도 복숭아 보내주셨잖아요, 선생님도 드셔놓고서는. 아무튼 걔도 이제 서른일곱인데 큰일이에요, 걔가 말이죠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 드실 분? 자진해서 커피 석 잔 심부름을 하며 다시 한숨을 쉬었다.

아버지는 교사였다.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도 교사였다(고 들었다). 작은아버지도 고모부도 교사였다. 친가 쪽 사촌들 역시 줄줄이 교사가 되었다. 배우자도 어떻게 학교에서만 찾아 결혼했다. 수능 성적표가 나오던 날, 나는 물리학과 아니면 절대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하루를 굶었다. 이튿날 저녁 아버지가 교직 이수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날 나는 과식했다. 끼니를 꼬박꼬박 먹으면서도 며칠간 아버지 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열심히 공부해서 보란 듯이 CERN에 취직할 생각이었다. 거기 가서 신의 입자인지 힉스 입자인지를 찾아내서 노벨상을 받으며 인생을 완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나는 이제 노벨상을 꿈꾸지 않는다. 특별히 안타깝거나 아쉽지는 않다. 다만 내가, 지금, 선생님이 되어있다고 의식할 때면 속이 울렁거린다. 명치께 같지만 사실 육체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짚어낼 수 없는 미지의 공간이 뒤틀리는 기분이다.

점심시간, 소린이 교무실에 찾아와 불쑥 죄송하단 말을 꺼냈다.

“눈 아프셨어요?”

과제 이야기였다. 돌려주면서 시험지 하단에 “갱지에 분홍색 펜은 잘 안 보입니다. 과제는 연필이나 검정펜으로 작성해주세요”라고 메모를 적었다.

“응? 아니야. 아프지는 않았어. 그래도 공식 문서니까 검정이 낫지. 내년에 고등학교 가서는 더 그렇고. 앞으로도 쭉 그렇고.”

“죄송해요…….”

“왜, 수행평가 점수 깎였을까 봐?”

“아뇨…….”

소린이 우물쭈물했다. 할 말이 있는 듯 보였다. 그때 주말에 본가에서 가져온 뚱뚱한 필통이 눈에 들어왔다.

“소린아, 무슨 색을 제일 좋아해?”

“핑크, 요…….”

필통을 뒤져 분홍색 계열을 골라내니 하이테크C 한 자루, 베이비핑크에다 핫핑크 젤리롤까지 모두 세 자루가 되었다.

“요즘 애들도 하이테크C 쓰니?”

“네. 근데 비싸서요.”

“그래? 그럼 이거 가져다 써. 과제에는 쓰지 말구.”

고맙습니다, 펜을 받아들고 제 위치로 돌아가던 손이 어정쩡한 허공에서 멈추었다. 나는 교무실 책상 앞에 앉은 채 소린을 올려다보았다. 길고 마른 어른의 팔뚝에 아이의 손이 달려있었다.

“쌤, 남자가 핑크색 좋아하면 별로예요?”

“으응, 아니? 왜?”

“전에 누가 게이냐고 그런 적이 있어서요.”

“요새도 그런 말을 해? 인권 선생님 우시겠다. 그러고보니, 전에 선생님한테 핑크색하고 분홍색 차이를 설명해주지 않았었니?”

“맞아요. 기억하시는구나…….”

소린이 뒷머리를 긁었다.

“예비종 울리겠다. 얼른 가봐야지?”

“쌤!”

“그래.”

“쌤 머리 왜 자르셨어요?”

“차여서.”

“진짜요?”

“아니. 안 어울리니?”

“아뇨, 완전 잘 어울리시는데요!”

소린이 놀란 새가 파드득거리듯 거듭 나를 칭찬했다. 주위를 살피더니 상체를 내 쪽으로 살짝 숙였다.

“애들이 그러는데요, 머리 자르시니까 저랑 쌤이랑 닮았대요.”

대단한 비밀처럼 속삭였다. 장난스레 웃는 아이의 귓불이 발갰다. 대답할 말을 찾는 와중에 구원처럼 예비종이 울렸다. 어떻게 말했어야 옳았을까. 선생님이 영광인데? 과장이 심해서 진심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 말은 나처럼 예쁜 선생님한테 실례 아니니. 농담처럼 상황을 잘 넘길 수 있겠지만 발간 귓불을 무시하는 처사 같다. 나와도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학창시절의 나였다면 어떤 반응을 원했을까. 학생이 원하는 반응을 해주는 교사가 진정 훌륭한 교사일까.

서랍에서 핸드크림을 꺼내 천천히 발랐다. 문득 이틀 앞으로 다가온 사생대회가 떠올랐다. 그림 얘기를 했다면 좋았을걸. 적당한 화제인 듯하면서도 사생대회라니 막상 무슨 말을 하면 되나 싶었다. 담임을 맡으니 모르는 일투성이였다. 무엇을, 어디까지, 얼마만큼 하면 될까. 있지도 않은 선을 자꾸 찾게 되었다. 무슨 꽃인지 손등에서부터 향기가 올라왔다.

우리 학교에는 정문과 후문에 각각 자전거 거치대가 설치되어 있다. 우리 반 아이들은 후문 쪽보다 정문 쪽의 거치대를 선호한다. 교실과 가까워서다. 주차장은 후문에 있다.

평소보다 늦게 퇴근하던 3월 초의 일이다. 한 학생이 후문 가까이 자전거를 세워둔 채 안장에 걸터앉아 있었다. 차가 통과하기에 아슬아슬해 보였다. 창문을 내리고 보니 소린이었다. 임소린. 올해 내가 가장 먼저 외운 이름이다. 소린이 선글라스를 쓴 채 차가 오는 줄도 모르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소린아, 불렀더니 싱글벙글한 얼굴이 돌아봤다. 볼이며 코끝이 얼어 있었다. 올해는 봄이 늦어 3월 내내 날이 추웠다.

“선생님, 구름이 복숭아색이에요!”

소린이 라식했구나? 아뇨. 내 질문에 들뜬 얼굴이 가라앉았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는데도 느린 화면처럼 모든 장면이 마음에 박혔다. 한 달이 좀 넘는 시간 동안 나는 자주 이 대화를 떠올리며 반성하곤 했다. 대단히 잘못한 일도 아니건만 어쩐지 스스로를 탓하게 되었다. 감정이 투명하게 비치는 아이의 말에, 좀 더 적절하게 반응할 수는 없었을까.

선글라스를 벗는 소린을 보면서 나는 해야 할 말을 고민했다. 적절한 답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제라도 변명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최선을 다해 꺼낸 질문임에는 틀림이 없다.

“복숭아색? 분홍색하고는 다른 거야?”

분홍색은 좀 엷은 색이고 복숭아색은 핑크색에 노란빛이 조금 섞인 색이라고 했다. 소린은 살구색이 되지 않도록 아주아주 약간만 섞여야 한다고 제법 진지하게 설명했다. 소린이 보던 하늘을 보았다. 설명대로 노을이 붉으면서도 아주 약간의 노란색이 섞인 빛을 구름 위에 흘려보내는 중이었다.

“분홍색에 노란색을 섞으면 복숭아색이라고…….”

“아뇨, 쌤. 분홍색이 아니라 핑크색에 섞으면요.”

“분홍이 핑크 아니야?”

“맞아요. 그냥 제 느낌으론요, 음……, 저한테 분홍색은 벚꽃색이고 핑크색은 복숭아꽃색이에요.”

“복숭아꽃을 본 적이 있어?”

“저희 외할아버지가 복숭아 농장을 하시거든요.”

나는 꽃에 대해 잘 모른다. 매일 지나치는 교정의 나무조차 꽃봉오리가 맺히는 시기가 되어서야 아, 벚나무였지 목련나무였지, 새삼 알아차리곤 한다. 설명을 들으면 그렇군, 알겠다가도 여전히 철쭉과 진달래가 헷갈린다. 복사꽃이 그렇게 예쁘다면서. 하마터면 소린에게 물을 뻔했다. 복숭아꽃. 예전에 복사꽃을 그렇게 부르던 사람이 있었다. 봄이면 복숭아꽃이 만발한 자기 고향을 보여주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당연한 결말처럼 나는 아직 그의 고향에 가보지 못했다. 복사꽃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아직 모른다.

“이것도 외할아버지가 주신 거예요.”

선글라스와 외할아버지의 선물. 언뜻 두 개념 사이 연결고리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아끼는 거야?”

“네……. 어, 아뇨. 잘 모르겠어요.”

“응?”

“저는 외할아버지가 불편했거든요.”

조금 더 친해졌을 때, 그러니까 중간고사라도 치른 이후 이런 말을 들었다면 당황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가끔 소린은 가슴에 훅 끼치는 말을 한다. 그때는 소린이 어떤 아이인 줄은 전혀 몰랐다. 나는 솔직함에 서툴다. 마지막 인사는 최악이었다.

“학교에서는 웬만하면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화는 대본이다. 주어진 대본으로 얼마나 유연하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느냐로 사회성을 판가름하게 된다. 제각각 개성을 가진 학생들도 이 규칙을 이해하고 있기에 나 같은 교사도 지나치게 긴장하지 않은 채 아이들을 대할 수 있다. 소린은 가끔 초등학교 3학년 같았고, 가끔은 대학교 3학년 같았다. 대본을 새로 써야 했다.

퇴근하려는데 학교 주차장으로 택시 한 대가 들어오더니 소린이 내렸다. 키 큰 긴 머리 여학생과 함께였다. 청아였다. 트렁크에서 짐을 꺼내는 두 아이를 잠시 지켜보았다. 청아가 나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며 달려왔다. 한껏 올려묶은 머리카락이 달리는 움직임보다 반 박자 늦게 좌우로 호선을 그렸다. 청아는 작년 부담임을 맡았던 반의 반장이었다. 뒤따르던 소린도 내게 꾸벅 인사했다. 사생대회 날이었다.

“대회 마치고 바로 집에 가는 거 아니었어?”

“다른 애들은요. 근데 미술도구 없는 애들한테 미술 쌤이 미술부 거 빌려주셨거든요. 그거 반납하러 왔어요.”

“소린이도 미술부 들어간 거니?”

“아뇨. 임소린은 객원요!”

청아는 유독 나를 따랐다. 사립학교 특성상 젊은 교사가 얼마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각양각색 학생 중에 과자나 사탕 같은 소소한 선물을 주기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다. 청아도 그중 하나다. 수업하는 내 모습을 크로키해서 준 적도 있었는데, 나는 지금도 파일 속에 그림을 보관하고 있다. 수업시간에 공부는 안 하고. 필기 다 하고 그린 거예요오오. 뭘 주지 않아도 충분히 어딜 가서든 예쁨 받을 만한 아이였다. 올해 들어 남자반 수업을 주로 맡다 보니 청아와는 만날 일이 없었다. 학기 초 미술부 부장이 되었다며 자랑스레 교무실에 찾아왔을 때가 다였다.

“야 그거 그냥 너 혼자 갖다 놓으면 안 돼?”

청아가 열쇠를 내밀었다. 미술부, 라고 쓰인 견출지가 붙어 있었다. 견출지 위에 덧붙인 셀로판테이프가 누렇게 변해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네 것도?”

“어차피 나는 너 때문에 온 거잖아. 거의 다 네 짐인데.”

소린이 짐을 든 채 열쇠를 받아 꾸물꾸물 바지 뒷주머니에 넣었다.

“쌔앰 쟤가 열쇠 갖다 줄 때까지 저랑 있어주시면 안 돼요? 저 진로상담 해주세요.”

진로상담은 청아가 수다를 떨고 싶을 때 대는 핑계였다.

“미술 선생님이 소린이한테 사생대회 참가해보라고 하셨다면서.”

“방과 후에 미술부 와보라고 하시구요.”

“그래서 화가 났어? 소린이한테?”

“네?”

눈을 동그랗게 뜬 청아가 찡그리듯 웃었다. 그런 거 아니에요. 고개를 가로저을 때마다 머리카락 끝이 교복 깃에 닿으며 경쾌하게 마찰했다.

“뭘 화가 나요. 쟤 그림 되게 못 그리는데.”

못 그린다니. 미술 선생은 이사장의 조카였다. 낙하산 아닌 낙하산인지라 교사들 사이 미묘하게 겉도는 존재였다. 교무실 대신 미술실 안에 그녀의 개인 공간이 있었다. 근무 사 년 차에 접어든 나 역시 그녀와 교류라고 할 만한 일이 없었다. 그런 그녀가 보충수업을 시킬 정도로 문제인 그림 실력이라는 의미일까.

“매력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기대어 있던 난간이 갑자기 쑥 빠져버린 느낌이었다. 소린의 매력이라면, 내게는 뒤통수였다. 찻잔 손잡이 같은 귓바퀴였다. 담임교사라는 인간이 겨우 아이의 귀를 잡아당기는 상상이나 할 때, 누군가는 아이의 재능을 발견했다. 목덜미에 미열이 올라왔다.

“매력 있는 그림이라고?”

“쌤이 그러셨어요. 매력도 재능이라고. 그럼 뭐 쟤는 재능이 있나 보죠. 짜증나요.”

언젠가 미술 선생이 청아에게 그림 두 점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꽃이 그려진 탁한 색조의 수채화였다. 이상해요. 청아는 솔직하게 대답했단다.

“색감 이상해서 처음에는 드라이플라워 그린 줄.”

청아의 말에 따르면 꽃을 그릴 때는 색감이 중요하다. 색을 선명하게만 잡으면 실물에서 멀어진, 말 그대로 그림 같은 그림이 되어 버린다. 그렇다고 너무 톤을 낮추면 생명력을 잃고 만다. 아예 죽은 꽃을 표현한다면 모를까 칙칙한 색감을 표현하기 위해 꽃이라는 정물을 택하는 사람은 멍청하다. 더구나 맑고 투명한 색조가 생명인 수채화라면 더더욱.

“정확히 흑백도 아닌데, 탁하고 이상한 수채화를 그리더라고요. 이런 그림도 있나 싶어서 미술 쌤이나, 저희 미술학원 쌤한테도 여쭤보고 그랬는데요. 보다 보니까 매력 있단 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미술 선생이, 얘는 어떤 그림을 그릴지 궁금하지 않느냐고 청아에게 물었다. 미술부장에게 양해를 구하는 말이라고 청아는 바로 알아들었다. 괜찮다고 대답했다. 어차피 3학년 되면서 그만두는 부원들이 많으니 괜찮다고.

“비밀인데요. 쌤 말씀대로 화가 좀 났어요. 괜찮다고 했지만 질투 나더라고요. 근데 그럴 정도는 아니에요.”

“재능 있는데 못 그린다는 거지?”

“네. 선도 제대로 그을 줄 몰라요. 연필도 깎아본 적이 없대요. 안 지워지는 싸구려 지우개로 4B연필을 지우질 않나. 색감이 독특하지만, 그냥 보이는 대로 그리는 거더라고요.”

“원래 정물화는 보이는 대로 그리는 거 아니야?”

“음, 그게. 잘 설명 못 하겠어요. 쌤도 쟤 그림 보면 바로 아실 텐데. 사람들이 전부 같은 세계를 보고 있지만, 사실 정말로 같은 세계를 보는지는 모른달까? 내가 보는 빨간색이 다른 사람한테도 똑같이 보일까, 뭐 이런 거죠. 석고 같은 거 데생할 때는요, 보이는 대로 그리면 안 되고 규칙대로 그려야 하거든요. 빛이 오른쪽에서 오면 이 각도에서는 무조건 그림자는 이쪽, 명암은 이렇게! 근데 쟤는 그런 걸 모르니까. 미술 쌤은 보이는 대로 그리는 용기도 재능이라고 칭찬하시던데 뭐. 저는 부장 입장에서 애가 너무 애 같으니까 동갑 맞나 싶고…….”

내가 보는 빨간색이 다른 사람한테도 똑같이 보일까. 어린 시절 나도 이 부분을 궁금해했었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나의 전공이 바로 이 부분을 다룬다. 프리즘을 통과한 빛이 스펙트럼을 나타내는 현상을 발견한 사람도 다름 아닌 물리학의 시조 뉴턴이었다. 나는 광학 수업을 꽤 좋아했었다.

소린이 열심히 설명했던 색을 꼽아보았다. 분홍색 핑크색 살구색 복숭아색 벚꽃색 복숭아꽃색. 어느 쪽이 더 노랗고 더 빨갛다고 했더라. 천천히 줄을 세워보았다. 나름의 스펙트럼이었다.

소린과 청아도 나란히 세워보았다. 한쪽은 하얗고 다른 한쪽은 까무잡잡하다. 채도와 명도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흰색과 검은색은 빛의 스펙트럼에 존재하지 않는다. 붉은색 너머 적외선이 어떤 색인지, 보라색 너머의 자외선이 어떤 색인지, 인간의 눈은 보고 있으면서 결코 보지 못한다.

“근데요 쌤.”

청아의 한쪽 볼에 우물이 팼다. 평소처럼 애교와 짓궂음이 섞인 목소리였다.

“아세요? 임소린 뒤통수 보면 진짜 웃기게 생겼어요. 뒤통수가 엄청 똥그래가지구 거기다 진짜 크고 하얀 귀가 똥그랗게 양쪽에 붙어 있다니까요. 귀가 머리통만 해가지구. 무슨 검은 바둑돌에 흰 바둑돌 붙여놓은 거 같애요.”

똥그래가지구. 똥그랗게. 청아의 두 손이 허공에서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손끝이 차가워지며 텅 빈 안쪽에서 버석버석 소리가 났다. 갑자기 고함을 치고 싶어졌는데, 그 대신 청아에게 웃어주고 돌아서니 아주 피곤해졌다.

일주일에 한 번, 과학 관련 동영상을 아이들에게 보여준다. 교과 진도와 관련한 영상이나 아이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과학상식 영상도 튼다. 전멸하다시피 자던 아이들도 그때만큼은 또랑또랑 눈을 뜨고 화면을 들여다본다.

이번 주제는 스펙트럼이었다. 나는 평소처럼 교실 뒤쪽에서 영상을 보는 아이들을 지켜보았다. 그러면, 멀리 떨어진 행성이 어떤 물질로 이루어졌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내레이션이 흐르는 가운데 소린이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외할아버지 선물이라던 선글라스였다. 대놓고 쓰지는 않고 안경다리를 접은 상태 그대로 눈에 가져다 댔다. 소린의 짝이 말을 걸었다. 소린이 고개를 저었다. 짝이 손을 뻗었다. 소린이 손을 밀쳐내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냐. 입모양이 읽혔다. 뺏고 빼앗기지 않으려는 투닥거림이 소란이 되었다. 영상을 정지시켰다.

나는 잠시 아이 둘을 세워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눈을 깜빡였다. 대단하지 않은 일이었다.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말을 고르다 선글라스를 집어 들었다. 수업 끝나고 2층 과학실로 찾으러 와. 아이의 어깨가 한껏 내려앉았다. 계절과 어울리지 않는 거센 바람 소리가 교실에 들어찼다.

지난주 토요일, 나는 서울 본가에서 점심만 먹고 이모네로 향했다. 이모부가 세상을 떠난 후 이모는 이천에 작은 아파트를 얻어 혼자 지내고 있다. 가는 길에 이모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막걸리를 두 병 샀다.

“이모, 나 머리 자를까.”

“머리? 어떻게.”

“아주 짧게 확 치려고.”

“그래 해봐. 젊을 때 하고 싶은 것 해야지. 너 예전부터 보이시한 스타일 해보고 싶어 했잖아.”

“내가?”

“머리 자르고 싶은데 느이 아빠가 못 자르게 한다고 투덜거렸는데. 기억 안 나? 느이 엄마는 제부 장단 맞춘다고 안 된다 그러고.”

내 취향에 맞추어 새우를 가득 넣은 파전을 씹었다. 씹을 때마다 뽀도독한 질감이 향기와 섞이며 잘게 부서졌다. 직접 심은 파라 향이 더 강하다며 이모는 내가 올 때마다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모도 같은 말을 하고 또 하고 다시 반복하는 그런 나이가 되었다. 나는 내색하지 않고 매번 과장하며 맞장구쳤다.

이모는 보고 싶은 드라마가 있어도 보지 않고 내가 찾아오길 기다렸다. 나는 이모의 무릎을 베고 소파에 누워서 이모의 밀린 드라마를 함께 보았다. 이모부 생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꼭 영화관에 갔다고 했다. 어린 시절 나도 몇 번인가 부부 외출에 동반한 적이 있었다.

“이모, 그 사람 있잖아. 결혼하려다 파혼했다나 봐.”

“그러니. 마음 쓰여?”

“아니야. 근데 그 사람 얘기 아닐 수도 있어.”

청도 출신 음악 전공 서른일곱 남자 선생님이 얼마나 될까. 이모가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졸음이 밀려왔다.

“아빠가 아직 미워?”

“아니……. 아빠는 그 사람 아니어도 싫지. 엄마는 밉구.”

“그래. 그래도 집에는 가끔 가구 그래.”

“응……. 근데 이모.”

“그래.”

“그 사람 그런 사람 아니야……. 막 어린애 건드리구 그런 사람…… 우리, 내가 스물한 살 때부터 만났어. 나 고등학교 때 선생님한테 맨날 차였었다구……. 대학생 돼서도 차이구…….”

“그랬어?”

“왜 이 말을 전에는 못했지?”

“글쎄, 왜 그랬을까. 느이 아빠가 그렇지 않니. 너도 마음이 급했구…… 어렸구…….”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느릿느릿해졌다. 나는 이모의 손길에 호흡을 맞추었다. 애가 첫 남자를 못 잊어서.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났다. 나는 자는 척 눈을 감고 있었다. 이모가 말하는 첫 남자가 어떤 의미일까. 그는 내 첫사랑이 맞지만, 내 첫 남자는 아니었다.

그의 파혼 이야기가 나는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다. 저런, 안됐네요. 감정이입을 하지 않은 채 대본대로 대사를 읊은 후 끝낼 수도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드라마를 보듯 이제는 그를 흘려보낼 수 있다. 떠나는 그에게 비겁하다고 몸부림치던 나를 기억한다. 지금은 몸부림친다 한들 마음이 되살아오지 않는다. 동요할 수 없음에, 나는 동요하고 있다.

콰당. 과학실 문이 닫히는 소리에 나도 소린도 놀랐다. 제가 그런 게 아니라, 선생님. 바람이에요……. 소린이 눈썹을 팔자로 늘어뜨렸다.

“알아. 쫄지 말고 앉아.”

널찍한 과학실 책상을 두고 소린과 마주 앉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압수한 선글라스를 내어놓았다. 바람 소리만 여전히 높았다.

“지난번에, 학교에서는 쓰지 않기로 했잖아.”

죄송합니다.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와 함께 목이 움츠러들었다. 내 화도 더불어 사그라들었다. 애초에 소린에게 화낼 일이 아니었다. 고개 숙인 정수리 부근으로 가마가 보였다. 회오리처럼 말린 모양이 둘이었다. 소린도 알고 있을까. 웃음을 참으며 엄한 목소리를 자아냈다.

“라식 안 했다며. 선글라스를 가지고 다닐 필요가 있니? 아니, 할아버지께서 주신 물건이면 집에 소중히 보관하고 나중에 쓰면 안 될까?”

이상한 말이었다. 왜 학교에 선글라스를 가지고 다니면 안 될까. 선글라스를 휴대해서는 안 된다는 교칙이 있을 리 만무하다. 소린이 고개 들어 왜요? 라고 묻는다면, 대답할 말이 없었다.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어디서 말대꾸야. 나는 그런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앞으로도 쭉 그런 말을 하지 않는 교사로 남을 수 있을까.

소린의 대답을 기다렸다. 앞으로 안 그러겠습니다. 이 한마디로 정리하고 끝내면 되는데 소린은 원하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바람 소리만 부피를 키웠다.

“학교에 꼭 가져와야 한다면 이유라도 말해……, 너 우니?”

내려다보이는 코끝이 빨갰다. 소린아. 불렀더니 비로소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티슈를 내밀자 고개를 돌리고 아예 어린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죄송하다는 말이 애용해요, 라고 들렸다. 책상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아이가 진정하기를 기다렸다. 교직 이수할 때 어째서 우는 아이 달래기는 가르쳐주지 않을까.

“소린아, 저기 봐.”

과학실 앞쪽의 창 너머를 가리키자 소린이 울음을 그쳤다. 창밖으로 회오리바람이 불고 있었다. 모래와 함께 바람에 이리저리 쓸려 다니는 육상용 허들이 보였다. 하교 중이던 아이들이 걸음을 멈추고 제각각 비명이나 감탄사를 내질렀다. 휴대폰을 꺼내 촬영하는 아이도 보였다.

“선생님, 저기…….”

소린이 뒤편의 창을 가리켰다. 과학실 뒤편의 창문 앞에는 커다란 왕벚꽃나무 두 그루가 심겨 있다. 소린의 손가락 너머 팝콘이 튀는 듯 꽃잎이 무더기로 쏟아지고 있었다. 하늘하늘 청순한 모양이 아니라, 벚꽃과 바람이 으르렁거리며 벌이는 사투로 보였다. 발걸음이 절로 창가로 향했다. 우리는 감탄사도 내지 못하고 잠시 나란히 서 있었다.

“선생님.”

갈라진 목소리였다. 울고 난 얼굴이 발갛고 말갰다.

“저는 외할아버지가 싫었거든요. 시골 가면 맨날 남자답지 못하다고 구박만 하고.”

소린이 문제의 선글라스를 내밀었다. 표면에 누구의 것인지 지문이 두셋 찍혀 있었다.

“써 보실래요?”

안경다리를 차근차근 펼쳤다. 그리고,

세상이 시뻘겋고 시퍼렇게 돋아났다. 바람이 가지를 후려칠 때마다 선혈이 듣는 듯 벚꽃잎이 유리창에 달라붙었다. 막 돋아나기 시작한 여린 잎새마저 선명한 짙푸름으로 퍼뜩퍼뜩했다. 붉은색과 녹색의 감각만 두드려 일깨워지는 기분이었다. 낯선 세상에 반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일 년 전까지 저는 벚꽃도, 복숭아꽃도 무슨 색인지 몰랐어요. 그런데 작년 생일에 외할아버지댁에 갔더니 복숭아꽃이 가득 피어 있고 할아버지가 이걸…….”

안경다리를 쥐었다. 엔크로마 글라스. 광학 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났다. 붉은색과 녹색을 구분하지 못하면, 신호등은 어떻게 보나요? 질문까지 했었다. 되돌아온 교수의 답변이 기억나지 않았다. 다시 마주할 줄 알았다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았을 텐데.

눈이 마주쳤다. 사과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오랜 시간 소망해왔건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소린의 시선이 나보다 반 뼘 정도 높았다. 졸업해서 학교를 떠날 때까지 높아지기만 할 그 시선을, 나는 지켜보아야 한다. 소린이 졸업하여 떠난 후에도 다른 누군가의 눈높이가 높아지는 과정을 내리 지켜보아야 한다. 그런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

스물아홉. 그가 나를 겨우 받아주었던 그 나이에, 지금의 내가 도착해있다. 어린 눈에 한없이 어른으로 보이던 그가 어른이 아니었음을 이제는 안다. 소린의 눈에 내가 어떻게 비칠까. 또 장차 학창시절을 추억하게 될 소린에게 나는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혹은 서른일곱이 된 그에게 스물아홉의 나는 어떻게 보일까. 밤새워 이야기하더라도 상대방의 시선을 이해할 수 없겠지. 눈높이가 바뀌지 않더라도 나도 그도 흘러가지 않을 수 없다. 그 모든 흐름을 붙잡으며 살 수는 없으리라.

“선생님한테는 어떻게 보여요?”

대답 대신 두 손을 내밀어 잡았다. 까칠한 손끝이 아직 어딘가 말랑했다. 소린이 웃었다. 다 알고 있다는 듯, 단단한 어른의 미소였다. 미소 너머 슬쩍 미래의 무언가가 비쳐 보였다. 가끔은 무심하게 놓쳐버린 뒤 후회하다 결국은 또 떠나보내게 될, 그것이었다. 활짝 피기만을 기다리는 그 미래를 잡고 있었다. 텅 빈 안쪽으로 향기가 들어찼다. 품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복사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았다. 꽃 멀미라도 날 듯 봄이 또 지나고 있었다. <끝>




  <당선소감>


   "‘멈춘 시계’ 다시 움직일 때, 내 안의 시간도 깨어났다"


손목시계가 둘 있습니다. 인조가죽 하나, 메탈 하나. 딱히 비싼 물건은 아닙니다. 시계는 둘 다 일 년도 넘게 멈춰 있었습니다. 가끔 멈춘 시계를 차고 나갔습니다. 움직이지 않는 바늘을 부끄러워하면서요.

유튜브 영상에서 누군가 말했습니다. 멈춘 시계를 그대로 두면 좋지 않다고. 마음에 걸리면서도 저는 참 게을렀습니다. 어느 밤, 내일은 꼭 시계의 배터리를 갈아주자고 결심했습니다. 시계를 맡긴 뒤 춥고 낯선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배터리 교체가 끝났다는 문자를 받을 때까지요. 시계를 찾으러 춥고 낯선 길을 되짚던 중에 당선 연락을 받았습니다. 시계를 살렸는데 내 안의 시간이 살아나는, 꾸며낸 듯한 이런 일도 있습니다.

더딘 제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누군가는 제 글을 읽으며 괜찮은 시간을 보냈다고 여기는 날도 오리라 감히 바라봅니다.

부족한 글을 좋게 보아주신 심사위원분들. 우경미 선생님. 구효서 선생님. 아낌없이 주시는 강선 선생님. 함께 공부한 문우님들. 응원해 주시는 SF의 끈 회원님들. 법웅대 선후배님들. 곁을 지켜주는 친구들. 고마운 연을 이어가고 있는 위원회 동기분들. 멀리서 힘내고 있는 정아. 닿았다가 스러진 인연 속의 소중한 분들. 영감을 주는 모든 것. 고맙습니다.



  ● 1984년생.
  ● 동국대학교 법학과 졸업.


 

  <심사평>


  말해지지 않음으로 더욱 풍성해지는 이야기


본심에 올라온 열두 편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소설의 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순간을 채는 기민함에서 한곳을 진득하게 응시하는 시간까지, 그들이 치열하게 감당해온 그 시간들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중 두 편의 소설에 특히 눈길이 갔다.

‘메이드 인 뉴잭스윙’은 미군기지 근처의 버거집에서 일하는 철구와 그를 향한 비딱한 시선이 섞인 ‘나’의 화법이 경쾌하고 속도감 있게 읽히는 소설이다. 사장인 듯 지나친 소속감을 가졌다는 이유로 철구가 해고당할 때나 자신이 개발한 버거임에도 소유권을 내세우지 못한 내가 전전긍긍할 때조차도 뉴잭스윙의 비트감이 잔향처럼 실리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우리 청년들이 선 그 자리가 단번에 파악된다. 미국에 간 철구에게 쏟아지는 “네가 왜 여기에 있냐?”라는 질문이 결코 이국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현실이 손가락질을 당하듯 아픈데, 끝내 두 가지 아쉬움이 남았다. 잘못 탄 지하철에서 내리지 못하는 나의 행동이 다소 수동적인 것은 아닐까. 반짝 인기를 끌다 사라진 뉴잭스윙과 그것을 좋아한 철구가 “좋았던 시절을 못 놔주는 어른들의 모습”으로만 읽혀도 되는가.

‘나에게’는 막 담임을 맡은 교사인 ‘나’와 적록색맹을 가진 소린이라는 학생의 소소한 일상에 관한 이야기이다. 교사 일색인 집안에서 나의 바람과 달리 교사가 되고 만 중압감과 마음가짐, 실수 등 교사의 일상도 흥미롭지만 이 소설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말해지지 않는 이야기’이다. 편린처럼 드러나는 이야기, 말해지지 않음으로 더욱 풍성해지는 이야기. 구체적으로 말해지지 않는데도 땅속 깊은 뿌리처럼 소설 전체를 장악한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이것은 ‘말할 수 없는 이야기’로 확장된다. 어쩌면 이 소설은 “본 적 없는 복사꽃”에 대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내가 보는 풍경을 소린은 볼 수 없고 소린에게 보이는 풍경을 나는 볼 수 없다. 오해와 이해 속에서 펼쳐지는 풍경은 압도적이다. “벚꽃과 바람이 으르렁거리며 사투를 벌이는” 듯한 창문 밖 벚꽃 풍경은 이 소설을 읽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창가로 이끌어 자신이 경험한 “봄 한가운데” 세운다. 전율이 끼치는 놀라운 장면이다. 오랜 논의 끝에 ‘나에게’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 성석제, 하성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