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무등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마기꾼 / 이윤정 마기꾼 / 이윤정 학원에 다녀와 현관문을 열자마자 나를 보는 엄마 표정이 뭔가 이상했다. 콧잔등을 구기며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가 그 표정을 보고도 아무 말 없이 방에 들어가려고 하자 엄마가 나를 불러세웠다. "배솔지, 요즘 너 점심 시간에 밥을 안 먹고 거의 다 버린다고 선생님한테서 연락 왔더라. 너 왜 밥을 안 먹고 그러니?" 선생님은 또 왜 그런 것까지 엄마한테 알려주시고 난리야. 짜증이 나서 표정이 일그러지려는 것을 애써 바로잡고 말했다. "그냥, 점심 시간에 배가 별로 안 고파." 나는 거짓말에 영 소질이 없다. 이렇게 거짓말을 해야 할 땐 안 들키기 위한 나만의 방법 두 가지만 생각했다. 목소리 떨릴 수 있으니까 짧게 말하기. 엄마랑 눈 마주치지 않기. 둘 중에 하나라도 놓치면 .. 좋은 글/동화 2년 전
[2016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타크나 흰 구름 - 이윤정 타크나 흰 구름 / 이윤정 타크나 흰 구름에는 떠나는 사람과 돌아오는 사람이 있다 배웅이 있고 마중이 있고 웅크린 사람과 가방 든 남자의 기차역 전광판이 있다전광판엔 출발보다 도착이, 받침 빠진 말이받침 없는 말에는 돌아오지 않는 얼굴이 있다가 사라진다흰 구름에는 뿌리 내리지 못한 것들의 처음과 끝이 연결되어 자정을 향해 흩어지는 구두들구두를 따라가는 눈 속에는 방이 드러나고 방에는 따뜻한 아랫목, 아랫목에는 아이들 웃음소리 몰래 흘리는 눈물과 뜨거운 맹세가 흐른다지금 바라보는 저 타크나 흰 구름은 출구와 입구가 함께 있다 모자 쓴 노인과 의자를 잠재우는 형광등 불빛 그 아래 휴지통에 날짜 지난 기차표가 버려져 있다내일로 가는 우리들 그리움도 잠 못 들어나무와 새소리, 새벽의 눈부신 햇살이 반짝이고어제의.. 좋은 글/시 9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