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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마기꾼 / 이윤정

  학원에 다녀와 현관문을 열자마자 나를 보는 엄마 표정이 뭔가 이상했다. 콧잔등을 구기며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가 그 표정을 보고도 아무 말 없이 방에 들어가려고 하자 엄마가 나를 불러세웠다.

"배솔지, 요즘 너 점심 시간에 밥을 안 먹고 거의 다 버린다고 선생님한테서 연락 왔더라. 너 왜 밥을 안 먹고 그러니?"

  선생님은 또 왜 그런 것까지 엄마한테 알려주시고 난리야. 짜증이 나서 표정이 일그러지려는 것을 애써 바로잡고 말했다.

"그냥, 점심 시간에 배가 별로 안 고파."

  나는 거짓말에 영 소질이 없다. 이렇게 거짓말을 해야 할 땐 안 들키기 위한 나만의 방법 두 가지만 생각했다. 목소리 떨릴 수 있으니까 짧게 말하기. 엄마랑 눈 마주치지 않기. 둘 중에 하나라도 놓치면 엄마는 1초만에 내 거짓말을 알아챘다.

  분명히 내 대답을 들었을텐데 엄마가 불안하게 아무 말도 안 했다. 어느새 땀이 밴 손바닥을 바지에 문지르며 슬쩍 엄마 표정을 살폈다. 엄마는 안 그래도 큰 눈이 금방이라도 쑥 튀어 나올듯했다. 완전히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5학년 되더니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네. 배솔지, 너 살 찔까봐 그러니? 요즘같이 한참 키 클 때 살찐다고 밥 안 먹고 그러면 키 안 큰다, 너?"

"아니, 진짜로 배가 안 고프다니까?"

  내 말을 들은 엄마가 개던 빨래도 다시 바닥에 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쩔 수 없다. 이럴 땐 일단 물러서야 한다. 더 우겨봐야 엄마한테는 본전도 못 찾는다. 그래도 내가 기분이 상했다는 걸 티를 안 낼 순 없으니, 입술을 삐죽 내밀고 쿵쿵 걸어갔다. 방문을 닫고 침대에 누웠다. 누워서 하얀 내 방 천장을 가만히 봤다. 오늘 봤던 흰 셔츠에 아이보리색 조끼를 입은 내 짝꿍, 연규 모습이 떠오른다.

  퍼뜩 몸을 일으켰다. 내 방 화장대 앞에 앉아 거울을 봤다. 내 얼굴을 조목조목 뜯어봤다. 눈 만큼은 그래도 괜찮은 것 같은데, 얼굴형도 약간 네모난 게 신경쓰이고, 콧대도 낮은 게 마음에 안 든다. 음악방송에 나오는 아이돌 언니들처럼 눈코입 전부 시원시원하게 크고 예뻤으면 좋겠는데. 턱선도 갸름하고 피부도 하얬으면 좋겠는데.

  내 방 문고리에 걸려있는 마스크를 집어 들고 다시 화장대 앞에 앉았다. 이번엔 마스크를 쓴 내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마스크를 안 썼을 때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았다. 네모난 턱이랑, 영 마음에 안 드는 낮은 콧대가 마스크에 가려지니까 봐줄 만 했다. 이 지겨운 전염병이 딱 하나 마음에 드는 건 평소에 마스크를 쓸 수 있다는 거, 딱 그거 하나다.

  요즘엔 마스크를 썼을 때가 훨씬 예쁘고 잘 생긴 사람들을 마기꾼이라고 부른다. 마스크와 사기꾼을 합친 말이다. 마기꾼이라는 말은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나는 확실히 마스크를 쓰면 안 썼을 때보다 몇 배는 분위기 있어 보이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내 단점들이 가려지니까 자신감이 생긴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도 마기꾼이 맞는 것 같다.

  그때 갑자기 노크 소리가 들렸다. 쓰고 있던 마스크를 얼른 벗어서 화장대 서랍에 넣었다.

"엄마, 노크하고 나서 내 대답 좀 듣고 들어오면 안 돼?"

"알겠어. 앞으로는 그렇게 할게. 그나저나 솔지야, 너 요즘 친구들이랑 무슨 일 있니?"

"응? 친구들이랑?"

"엄마가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친구들이랑 사이가 안 좋아서 네가 점심을 안 먹으려고 하나 싶어서."

  엄마 예상은 아예 틀렸다. 아니, 정반대였다. 나는 내 친구들 덕분에 연규에게 내 맨얼굴을 보여주는 걸 막고 있다고 봐도 될 정도다. 의리로 똘똘 뭉친 내 친구들은 학교에 있는 시간 중 유일하게 마스크를 벗어야 되는 시간인 점심 시간에 내가 연규 근처에 앉지 않도록 교묘하게 자리를 바꿔주거나 양보를 해 주었다. 그 때마다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하지만 친구들이 연규랑 먼 자리로 잘 바꿔줘도 연규가 밥을 다 먹고 지나가며 나를 볼까봐 계속 눈치를 살펴야 한다. 그러느라 요즘 급식을 잘 못 먹는거다.

"그래? 진짜지?"

  엄마가 다시 물었다.

"응. 진짜야. 친구들이랑은 완전 잘 지내. 어제도 학교 끝나고 애들이랑 같이 놀다 온 거 기억 안나?"

"그래, 그건 알지만 혹시 몰라서 물어봤지. 그래도 급식 안 먹는 건 안 돼."

"알겠어 엄마. 이제 급식 잘 먹을게."

  나는 말하면서 엄마를 방 밖으로 밀어냈다. 엄마는 나가면서도 뭔가 미심쩍다는 표정이었다. 그럴 만 하다. 평소에는 반찬 투정도 잘 안 하고 뭐든 잘 먹는 내가 급식을 안 먹는다니, 엄마 입장에서는 당연히 의심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난 진짜 연규 앞에서는 마스크를 못 벗겠다. 작년 말에 전학왔다는 연규는 내 마스크 벗은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잘 숨겨왔으니 앞으로 연규가 나에게 호감을 좀 더 가질 때까지 버텨야 한다.

  물론 나도 연규의 마스크 벗은 얼굴을 아직 제대로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일단 눈이 웃을 때 반달 모양으로 휘어지는게 너무 예쁘다. 연규는 매일 잘 정돈된 머리를 하고, 노트 정리도, 책상 정리도 깔끔하게 한다. 매일 나가서 축구하느라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 이마에 다닥다닥 붙은 다른 남자애들과는 다르다. 다른 남자애들은 틱틱대며 말하는게 듣기 싫은데, 연규는 말투도 상냥하고 나에게 잘해준다. 마스크 벗은 얼굴은 얼마나 잘생겼을지 자꾸 상상하게 된다. 5학년 되고 나서 처음으로 만난 짝꿍이 최연규였던 건, 아무래도 운명인 것 같다.

  하루종일 연규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면 가끔 연규가 꿈에도 나온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빳빳한 하늘색 셔츠를 입은 연규가 나를 향해 웃어준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귓가에 꽝꽝 울린다. 그런데 그때 말도 안되게 센 바람이 불어온다. 분명 여긴 교실 안이라 이렇게 센 바람이 불 리가 없는데? 아차, 여기 꿈속이지. 그걸 깨닫는 순간 바람은 내 머리카락을 날리다 못해 마스크까지 벗긴다. 한순간에 너무나 편해진 호흡에 힉 하고 숨을 들이쉰 그 찰나, 연규랑 눈이 마주친다. 연규 표정이 점점 굳어간다. 꿈속의 연규는 나에게 한 마디 한다.

"너, 이렇게 생긴 애였어?"

"자, 잠시만. 연규야, 연규야!"

  악! 하는 소리와 함께 눈을 퍼뜩 떴다. 눈앞에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엄마가 보였다. 내가 꿈속에서만 외친 게 아니라 진짜로 연규 이름을 막 외쳤나보다. 부끄러워져 얼굴이 빨개진 채로 얼른 이불밖으로 나왔다. 밥상 앞에 앉아 엄마가 차려준 아침밥을 먹었다. 빨리 빨리 씻고 준비를 하고 학교에 갔다. 학교에 가면 연규를 또 볼 수 있다. 요즘만큼 학교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던 적이 없다.

  학교에 도착하니 연규 신발장은 아직 비어 있었다. 나를 발견한 내 친구 유연이가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야, 솔지야. 너 그거 들었어? 옆반 김세희가 연규 좋아한대."

"뭐라고?"

  역시, 연규가 괜찮은 애라는 걸 다들 금방 알아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연규랑 같은 반이고, 대화도 많이 해봤고, 훨씬 친하다. 별로 신경쓰이지도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고 유연이에게 대답하려는데, 복도 쪽 창문 밖으로 연규가 보였다. 그런데 그 옆에 세희가 있었다. 둘이 웃으면서 얘기를 하고 있었다. 머리에 웨이브로 힘을 주고 온 김세희가 갑자기 눈엣가시같이 느껴졌다. 김세희는 솔직히 그렇게 엄청 예쁘지도 않은 얼굴인 것 같은데, 항상 자신감이 넘치는 게 신기한 애였다. 그때 내 옆의 유연이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김세희, 연규랑 같은 아파트, 같은 동, 같은 라인에 산대. 최연규가 거기로 이사 온 거래."

  이럴 수가. 난 연규랑 같은 반이고, 게다가 짝꿍이니까 훨씬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심지어 같은 아파트, 같은 동, 같은 라인이라고? 그러면 집에 갈 때 엘리베이터도 같이 타겠네? 갑자기 식은땀이 났다. 김세희가 연규랑 훨씬 더 친할 것 같았다. 마음이 급해졌다.

  연규가 세희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고 교실로 들어왔다. 나도 얼른 내 자리에 앉아 연규에게 인사를 했다.

"최연규, 안녕."

"안녕, 솔지야."

  연규가 인사를 하며 살짝 웃었다. 연규 눈웃음에 아침의 피곤함이 싹 사라졌다. 나도 모르게 마스크 안으로 헤벌쭉 웃다가 애써 표정을 고쳤다. 그때 우리 반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시면서 크게 인사를 하셨다.

"얘들아 안녕! 오늘 날씨 정말 좋지 않니?"

  선생님 말씀에 창밖을 보니 며칠 동안 내리던 봄비가 그쳐 오랜만에 파란 하늘이었다.

"오늘 같은 날은 시간표를 좀 바꿔줘야지. 1교시는 체육으로 하자."

  아이들이 저마다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다. 나도 1교시부터 지루한 국어보다는 체육이 훨씬 좋았다.

"선생님, 그럼 저희 체육관으로 가요?"

  회장이 질문했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조금 진정시키고 말씀하셨다.

"아니, 오늘은 운동장으로 나가자. 봄 날씨도 좀 느끼고, 너희들 학교 정원에서 사진도 좀 찍어 줄게. 다들 실내화 가방 잘 챙기고."

  나를 비롯한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 신이 나서 실내화 가방을 챙겼다. 교실 밖으로 나와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니까 기분이 정말 좋아졌다. 선생님은 짝꿍과 함께 요즘 체육시간에 하고 있는 공 주고받기 연습을 하라고 하셨다. 얼마 후에 있을 반대항 티볼 경기를 위해 우리 학년 모두 글러브를 끼고 공을 던지고 받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내 짝꿍은 연규니까 나는 연규랑 연습을 하면 된다.

'나는 연규랑 짝꿍이라 이런 것도 할 수 있다구.'

  나는 교실 안에서 수업을 듣고 있을 김세희에게 속으로 말했다. 같은 아파트에 살아서 집에도 같이 가고, 같이 엘리베이터는 탈 수 있어도 이런 건 못할 것이다. 나는 글러브와 공을 들고 와서 연규와 자리를 잡았다. 그냥 공을 던지고 받는 간단한 활동일 뿐인데 정말 재밌었다. 내가 던진 공을 일부러 못 잡는 척하며 장난치는 연규 때문에 엄청 웃었다. 한참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조회대 쪽에서 소리치셨다.

"이제부터 한 모둠씩 사진 찍어줄테니까 1모둠부터 선생님이 있는 쪽으로 오세요."

  나와 연규는 1모둠이라서 곧바로 선생님이 계신 정원쪽으로 갔다.

"얘들아. 여기 서서 선생님쪽 보고. 자, 하나, 둘, 셋하면 찍습니다."

"선생님, 잠시만요! 저희 마스크 벗고 찍으면 안돼요?"

  갑자기 나온 질문에 잠깐 귀를 의심했다. 질문을 한 건 다름 아닌 연규였다.

"이제 실외에서는 마스크 벗어도 괜찮잖아요. 사진 찍을 때만 마스크 벗고 찍어도 되죠?"

  내 초조한 속도 모르고, 연규는 태연한 표정이었다. 갑자기 너무 불안했다. 선생님이 제발 안 된다고 하시기만을 바랐다. 선생님은 잠깐 고민하시더니 말씀하셨다.

"그래. 연규 말대로 이제 실외에서는 괜찮으니까, 마스크 없이 찍고 싶으면 그렇게 하렴."

  선생님 허락에도 우리 모둠 아이들이 망설이자 연규가 덧붙였다.

"우리 같은 반인데 서로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면 좀 그렇지 않냐? 사진 찍을 때 만이라도 마스크 없이 찍어보자."

"그러자, 그럼."

  다른 아이들이 생각보다 연규의 한마디에 너무 쉽게 넘어갔다. 난 지금 오늘 등장한 김세희라는 라이벌을 이겨야 하는데, 이렇게나 빨리 마스크를 벗고 내 얼굴을 보여주는 건 나에게 너무 불리했다.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피해야하지? 얼른 머리를 굴려봤다. 하지만 벌써 연규를 비롯한 우리 모둠 애들이 전부 마스크를 벗어서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마스크 안 벗고 싶은 사람은 그대로 찍어도 된다, 알겠지?"

  마스크는 만지지도 않고 우물쭈물하고 있던 나를 보셨는지,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때 나보다 앞쪽에 있던 연규가 마스크를 벗은 채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솔지야, 너도 마스크 없이 찍자. 우리 딱 한 장이라도 얼굴 나온 사진은 남겨야지."

  그때 내가 그런 표정을 지으면 안 됐는데. 내 표정이 조금 굳었었던 것 같다. 연규의 얼굴은, 그러니까, 얼룩덜룩했다. 마치 일부분에만 밀가루를 묻혀놓은 것 같은 반점이 마스크로 가려졌던 부분의 얼굴 군데 군데에 있었다. 그 얼룩에 정신이 팔려 멍하게 있으니까 연규가 나를 보며 미소를 짓고 말했다.

"야, 사람 얼굴을 그렇게 오래 쳐다보면 어떡해."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내가 천천히 마스크를 내리자 연규가 활짝 웃었다. 그리고 입모양으로 나에게 말했다.

'훨씬 예쁘네.'

  나도 모르게 입술을 꽉 깨물었다. 심장이 터져나갈 것 같았다. 나만 빼고 주변이 전부 슬로우모션같이 느껴질 만큼 멍했다. 선생님이 들고 계신 카메라를 보며 웃는 것도 잊었다. 선생님이 외치는 '하나, 둘, 셋!' 소리는 멀리서 울리는 메아리처럼 귓가에 들려왔다.

  사진을 다 찍고 다시 운동장쪽으로 가면서 우리 모둠 중 한 명이 연규에게 물었다. 얼굴에 있는 반점에 대한 질문이었다. 연규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아, 그거. 나 태어날 때부터 있던 거야. 나이 먹으면 먹을수록 점점 더 커지더라. 어짜피 보여줄 거면 빨리 보여줄려고 이렇게 마스크 벗고 찍자고 해봤어."

  그 말을 하는 연규를 보는데, 아까 나에게 입모양으로 예쁘다고 하던 연규 모습이 눈 앞에 무한재생됐다. 최연규, 진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멋있다. 눈웃음만 예쁜 줄 알았는데, 자신감이 연규를 더 멋있게 만드는 거였다.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서 온몸이 울리는 와중에도 속으로 한 가지는 진짜 굳게 다짐했다. 오늘부터 무조건 연규 앞에서 점심 먹을 거라는 거다. 이제 마스크는 필요 없다. 마기꾼 탈출이다, 탈출!

  <당선소감>

 

   "어린이 곁에서 작은 웃음과 위로 선사하는 작가로"

  동화 작가가 되고 싶어 퇴근 후 밤늦은 시간까지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는 것을 쉽게 꺼내지 못하고 제 속에만 숨겨뒀었습니다. 작가라는 꿈은 저 멀리 우주에 있는 것처럼 막연하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글을 쓰면 쓸수록 어린이 독자들의 반응이 어떨지 자꾸만 상상하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한때는 저도 동화책을 정말 좋아하는 어린이였기에, 그리고 지금은 책 속에 빠져들어 책장을 넘기는 우리 반 어린이들을 마음속 깊이 사랑스럽게 여기는 어른이 되었기 때문에, 동화는 저에게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다가왔습니다.

  당선되었다는 전화를 받고 나서는 한동안 얼떨떨하기만 했습니다. 여러 번 고쳐도 여전히 부족한 글이어서, 작품을 넣은 봉투에 신춘문예 응모작이라고 쓰기 망설여졌던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다시 생각해 봐도 믿기지 않아 혼자 조용히 감정을 곱씹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지난 몇 해의 숱한 시간들을 더 이상은 속이 텁텁해지지 않고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서서히 찾아왔습니다. 그제야 느지막이 진심으로 감사하고 기뻤습니다.

  앞으로도 어린이들의 곁에서 조그만 웃음과 위로를 선사할 수 있는 글을 계속 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는 제가 쓴 동화책이 여러 어린이들에게 읽혀 겉표지가 낡고 손때 묻어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습니다.

  부족한 글에 손 내밀어주신 무등일보 신춘문예 심사위원님, 동화 작가로서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게 해주신 한겨레 동화창작교실 신현수 작가님, 글을 나누며 함께 성장하고 있는 동화창작교실 4기 합평 모임 선생님들께 감사합니다.

  소중한 동생 준현, 너랑 나누는 수많은 실없는 대화들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넌 모를 거야, 고맙다.

  마지막으로 언제나 묵묵히 저를 응원해주시고 당선 소식에는 누구보다 기뻐하셨던 아버지, 그리고 매주 주말마다 동네 도서관에서 양손 무겁게 책을 빌려와 읽었던 어린 시절에 동화의 재미와 아름다움을 깨닫게 해주었던 어머니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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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아이들 공감하는 외모 콤플렉스·자존감 잘 드러내"

  톺아보는 심정으로 예년에 비해 더 많이 응모된 작품을 살폈다. 전반적으로 문장은 안정적이긴 하나 여전히 동화의 탈을 쓴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거기에 반복되는 소재, 전형적인 전개 방식의 글이 다수를 차지해 신인의 치열함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부디 소재 측면에서라도 참신함이 돋보이는 작품 쓰기를 권유한다.

  그래도 다행히 본심으로 올릴 작품은 나왔다. '그 녀석과 한 시간'은 우연한 계기로 엘리베이터 안에서 위기상황을 맞는 우일이와 병준이의 이야기다. 둘은 한때는 친했으나 사소한 일로 사이가 멀어졌는데 밀폐된 공간에서 서로에게 가졌던 마음을 돌아보며 다시 관계를 회복해간다. 아이들에게 충분히 있을 만한 이야기라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 하지만 빤한 결말이 아쉬웠다.

  '고양이 엄마'는 옛이야기인 우렁각시가 고양이에게 차용된 판타지다. 주인공은 엄마를 잃은 후 한동안 방황하게 된다. 그때 틈틈이 돌봐준 고양이가 어느 날부터 자신의 집에 도우미로 찾아온다. 그로 인해 차츰 안정감을 찾으며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이야기다. 고양이를 우렁각시로 차용한 발상은 신선했으나, 전체적으로 작품이 설익은 느낌이었다. 조금 더 시간을 들여 손보면 좋은 작품이 될 듯하다.

  '어둠을 뚫고 나온 아이'는 우리 사회에 만연된 가정 폭력을 다룬 이야기였다. 우선 군더더기 없는 문장이 돋보였다. 장면에 필요한 깔끔한 문장들로 인해 이야기의 힘이 다른 작품들보다는 강했다. 하지만 글의 흐름이 동화보다는 청소년 소설에 가까워 고심하다 내려놓았다. 눈높이를 높여 청소년 소설로 써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당선작으로는 '마기꾼'을 뽑았다. 마기꾼은 마스크와 사기꾼을 합친 신조어다. 소재 자체는 다소 가벼워 보일 수는 있으나 지금 이 시기의 아이들이 가장 공감할 만한 부분인 외모와 콤플렉스 그리고 자존감의 영역을 잘 짚었다. 코로나가 3년째 머물면서 이젠 마스크를 쓰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신학기 때부터 마스크를 쓰는 바람에 맨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 더 어색해져버린 아이들. 그 속에서도 주인공 솔지는 풋풋한 감정을 키워낸다. 마스크 아래에 있는 자신의 원래 얼굴에 대한 고민을 남자 친구의 대담한 고백으로 시원하게 해소한다. 그 건강함이 좋아 당선작으로 뽑았다.

  '톺아 보다'의 말은 원래 '톺다'에서 나왔다. 가파른 곳을 오르려고 길을 더듬어 찾거나, 빈틈없이 모조리 뒤지면서 찾는다는 뜻이다. 동화작가가 되고 싶은 분들이라면 평소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 특히 아이들의 일을 톺아 봤으면 좋겠다. 그 끝에 나온 글이 이 시대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동화가 되리라 생각한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낙선자에게는 더 연마할 시간이 주어졌음에 또 다른 의미의 축하를 전한다. .

심사위원 : 임지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