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당선작>

  세모바퀴 달린다 / 양지

  그러니까, 모든 것은 4교시 미술 시간에 시작된 일이다.

“세모바퀴가 어떻게 달리냐? 바보.”

  그림의 주제는 내가 타고 싶은 자동차였다. 나는 새빨간 자동차에 세모난 바퀴를 그려 넣었다. 그 밑에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라고 써놓았다. 그런데, 똑똑한 척 대마왕인 이태현이 내 그림을 보더니 비웃은 것이었다. 

“세모 바퀴가 어떻게 구르냐?”

  그러자 옆 분단 민정이가 말했다.

“밀면 굴러가지 않을까?”

“세모바퀴는 못 구르거든?”

  뒷줄의 세호는 이태현의 말에 힘을 보탰다.

“달릴 수 있어!”

“아니거든?”

  교실에 한참동안이나 퍼져있던 왁자한 소리는 조용히 하라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쏙 들어가 버렸다. 합죽이가 된 채로 눈빛을 교환하던 중 누군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세모바퀴도 달려요?”

  엉뚱한 질문에 선생님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세모바퀴는 음…… 선생님도 본 적이 없는데, 아마 못 달리지 않을까? 그 대답에 못 달린다고 말하던 아이들이, 달릴 수 있다고 말하던 아이들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세모바퀴는 못 달린다잖아. 꼭 김민준 너네.”

  이태현이 입꼬리를 비죽 올리며 내 오른쪽 다리를 가리켰다. 여섯 살 때 교통사고 때 다쳐 절뚝거리는 다리였다. 이태현은 미술 시간 내내 나를 세모바퀴라고 놀려댔다. 그날부터 내 별명은 세모바퀴가 되었다.

  체육 시간이었다. 선생님을 따라 운동장에 나갔다. 쉬는 시간에 미리 나와 뛰어다니던 아이들도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에 하나둘 모여들었다. 

“오늘은 50미터 달리기 기록측정을 할거에요. 작년에도 해봤죠?”

  선생님 손에는 야구공만 한 타이머가 들려 있었다. 

“네!”

  아이들이 입을 모아 큰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5분 뒤에 시작할게요.”

  선생님의 말씀에 제자리 뛰기를 하며 몸을 푸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벌써부터 이리저리 뜀박질을 해대는 아이도 있었다. 나도 발끝에 힘을 주면서 무릎을 앞뒤로 구부렸다 폈다. 그런데 이태현이 입꼬리를 또 비죽 올렸다. 

“선생님, 세모바퀴도 달려요?”

  옆에 있던 아이들 눈이 모두 내게 모였다. 나를 향한 선생님이 눈이 곤란하다는 듯 휘어졌다.

“민준이는 저쪽 조회대에서 쉬고 있을래?”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저도 뛸래요.”

  아이들이 번호순으로 두 명씩 줄을 섰고, 나도 중간쯤 줄을 섰다. 선생님이 저 앞쪽에서 깃발을 내리면 달리기 시작한다. 내 차례가 가까워져 오자 준비를 하는 내 심장이 먼저 뛰었다. 그런데 뒤에서 이태현이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덜컥덜컥 세모바퀴!”

 그 말과 동시에 선생님이 들고 있는 깃발이 내려갔다.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옆에서 달리고 있는 아이와 격차가 벌어졌다. 마음이 앞서자 몸이 좌우로 비틀거리며 시야가 흔들렸다. 그러다가 쿵, 하고 넘어져 버렸다. 

  무릎이 다 까지고 피가 났지만, 다시 일어섰다. 이태현이 큰 소리로 웃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기 때문이다.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도착점에 들어왔다. 나보다 앞서 달리던 민정이가 내 쪽으로 다시 뛰어왔다.

“김민준, 괜찮아?”

  민정이가 피가 밴 내 무릎에 묻은 흙을 털어줬다.

“보건실 가자.”

  나는 태현이 말처럼 덜컥거리며 보건실로 가야만 했다. 

  음악 시간 되었다. 아까 달리기하다 넘어지면서 다리를 살짝 다쳤는지, 음악실로 가는 걸음이 더 절뚝거렸다. 애들이 나를 보고 웃는 것만 같아 뒤통수가 뜨거웠다. 

  나는 리코더를 들고 길게 늘어선 의자 중 하나에 앉아 선생님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이태현은 리코더를 들고 세호랑 칼싸움을 했다. 선생님이 들어오자 자리를 정돈하는 척하며 리코더로 나를 툭 쳤다.

“너!”

  민정이가 그런 이태현을 노려보았다. 나 역시 뱃속에서 화가 올라왔지만 내 다리를 보자 다시 고개가 푹 떨궈졌다. 조금 있으니 맨 앞줄에서부터 오늘 배울 노래의 악보가 넘어왔다. 이태현은 나에게 악보를 넘겨주면서 일부러 바닥에 떨어뜨렸다.

“너는 쟤가 저러는데 화나지도 않아?”

  민정이가 답답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나는 민정이 눈을 슬쩍 피해버렸다. 이태현은 민정이가 나한테 잘해줄 때마다 더 심술을 부린다. 지금도 내 옆에 앉아서 나를 챙겨주는 걸 보고 더 그러는 거다. 이태현한테 그러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아무리 그래 봤자 짝짝이인 내 다리로는 절대로 혼내 줄 수가 없다. 그러니까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낫다.

  악보를 보자 검은 동그라미들이 눈에 들어왔다. 몇 번 연습하니까 능숙하게 곡을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음악 시간이 좋다. 연습만 하면 다른 아이들과 화음을 맞출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다른 애들과 내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나는 내 짝다리처럼 울퉁불퉁하지 않으려고 열심히 화음을 맞춰 리코더를 불었다. 

  삐익-

  앞쪽에서 자꾸만 박자를 놓치는 소리다. 가끔 음이 크게 삐져 나가기도 한다. 

“집중해서 더 잘해봐요.”

  선생님이 다시 한번 시범을 보였다. 그래도 또 틀렸다. 

“누구니? 잘 맞춰봐!”

  선생님이 손뼉을 짝짝 쳤다. 

“네가 틀리는 거 아니야?”

  이태현이 리코더로 내 등을 찔렀다. 어이가 없어서 쳐다보자 또 한 번 빈정거렸다. 

“너 아니냐고, 세모바퀴.”

“나 아니야…….”

   소심하게 대들었다. 그러다 선생님께 딱 들키고 말았다. 

“떠드는 걸 보니 둘 다 자신 있나 보네. 한 사람씩 나와서 불어 봐.”

   선생님 말씀에 나랑 이태현이 앞으로 나갔다.

“네가 먼저 해.”

  이태현이 리코더로 나를 쿡 찔렀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리코더를 입으로 가져갔다. 바람을 불어 넣으며 부드럽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다리를 다치고 나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축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시간만 나면 아빠랑 같이 운동장에 나가 축구를 했는데……. 아빠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내게 악기들을 내밀었다. 바이올린, 기타, 플루트, 리코더도 그중 하나였다. 아빠는 기타를 배워 보고 싶다고 했다. 

“싫어! 이런 건 다 싫다고!”

  나는 악을 쓰면서 아빠가 내민 악기들을 집어 던졌다. 그런데도 아빠는 내 옆에서 기타 연습을 했다. 처음에는 시끄럽던 소리가 점점 아름다운 멜로디로 바뀌었다. 아빠 손가락마다 굳은살이 박였지만, 포기하지 않는 걸 보고 나는 악기를 들었다. 잘은 못해도 연주를 하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아빠랑 같이 연주할 때처럼 가만히 숨을 불어 넣었다. 내 호흡을 타고 리코더에서 부드러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조금도 덜컥거리지 않은 내 연주가 끝나자 아이들이 모두 박수를 쳐주었다.

“이태현, 다음은 네 차례야.”

  선생님 말씀에 이태현은 긴장이 되는지 손바닥을 바지에 쓱 문지르고는 리코더를 불기 시작했다. 그런데 중간중간 계속 삑삑거리는 바람 소리가 들렸다.

“그만, 더 연습해야겠네.”

  선생님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순간 이태현은 세모바퀴가 된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순간뿐이었다. 음악 시간이 끝나자 다람쥐처럼 달려나갔고 나는 절뚝거리면서 교실로 갔으니까.

 “세모바퀴, 집 가냐?”

  좋아하는 만화 시간에 맞추기 위해 속도를 내서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며칠간 하교를 할 때마다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목소리였다. 이태현은 리코더 사건 뒤로 나만 보면 따라다니면서까지 괴롭혔다. 나는 어제 비가 와서 웅덩이에 고인 물을 찰박찰박 튀기며 모른 척 걸어갔다.

“야, 세모바퀴!”

  나를 부르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닥만 내려다보며 걸었다. 보도블록 위에 지렁이 한 마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지렁이는 보도블록에 붙어서 온몸에 흙을 묻힌 채 기어가려 애쓰고 있었다. 그 모습이 불쌍해 다리를 굽혀 가까이에서 살펴보았다. 죽었나? 건드려 보는데 이태현이 나를 툭 치며 짜증을 부렸다. 

“뭐하냐고? 돈이라도 떨어져 있….”

  거기까지 말하던 놈의 목소리가 멈췄다. 나는 고개를 들어 이태현을 바라보았다. 미간이 찡그려진 얼굴, 잔뜩 겁먹은 눈이 보였다. 나는 놀려대느라 번들거리던 입술은 조금 벌어져 있었다. 설마,

“……너, 지렁이 무서워하냐?”

  나는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집어 이태현의 눈앞에 내밀었다.

“야! 너…….”

  이태현이 뒷걸음질 쳤다.

“왜? 이게 뭐 어때서?”

  나는 이태현에게 더 다가갔다. 

“가, 가까이 오지 말라고!”

  기겁하며 뒷걸음질을 치던 이태현이 물웅덩이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그 앞으로 절뚝거리는 발을 크게 내딛자 이태현은 뒤뚱거리며 일어나 소리를 지르며 줄행랑을 쳤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한참을 낄낄거렸다. 

  뼈도 없는 지렁이를 무서워하다니! 

  이태현, 아무것도 아니네. 

  나는 내 짧은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지렁이를 축축한 풀숲에 가만히 내려놓았다.

  그래, 나는 세모바퀴다. 덜컥거리기도 하고 느리기도 하다. 하지만 그래서, 흙바닥의 지렁이도 보고 작은 꽃도 보고 풀 포기도 볼 수 있다.

  세모바퀴가 닳아 동그랗게 될 때까지 나는 구르고, 달릴 것이다. 

  세모바퀴는, 달린다.

  <당선소감>

 

   -

  저희 집 거실에는 텔레비전이 없습니다. 책을 좋아하시는 부모님 영향으로 책장이 자리했고, 저도 자연스레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랐습니다. 중학생 때부터는 제가 쓴 짧은 글들을 친구들과 돌려보며 본격적으로 글을 썼습니다.

  글을 쓰는 것은 즐거울 때도 많았지만, 지칠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언젠가는 멋들어진 글 옆에 적혀있을 제 이름을 상상하며 글을 썼습니다. 세상의 기쁨과 아픔과 슬픔과 애잔함에 대한 저의 시선으로 시, 소설, 수필, 동화, 각 장르의 글을 써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몇 번의 도전에 미끄러지면서, 저보다 더 글을 잘쓰는 수많은 사람들의 글에 기가 눌리기도 했습니다.

  ‘양 지’ 제 이름은 작가를 해야 할 이름이라고 했습니다. 볕이 드는 따뜻한 자리. 세상 속에 쏟아져나오는 다양한 작품들도 많지만, 저는 아직도 뻔하고 희망적인 이야기가 좋습니다. ‘세모바퀴 달린다’의 주인공처럼 굴하지 않는 용기와 희망을 가졌으면 합니다. 덕분에 드디어, 모나고 둥근 구석 없는 저의 세모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했으니까요.

  세상에 제 글을 내놓은 이 순간이 행복하지만 두렵기도 하나 언제까지고 저는 쓰고 싶습니다. 세모바퀴가 닳아 동그래질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한글자 한글자 걸음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저의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를 전합니다. 덕분에 알았습니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이 있었지만 역시 저는 글을 좋아한다는 것을요. 저를 이끌어주신 박서진 선생님과 친구들, 무엇보다도 저에게 무한한 지지를 보내준 부모님에게 이 영광을 바칩니다.

● 전주 출생
● 현재 전주대 문헌정보학과 재학


 

  <심사평>

 

  아이들의 다양한 문제와 해결책 제시한 작품

  본심에 오른 동화들은 모두 공들여 쓴 작품들로서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었다. 현실 속의 아이들의 다양한 문제와 갈등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제시하려는 진지한 노력이 돋보였다. 동화는 아이들의 삶의 길잡이가 되어주고 다양한 갈등을 해결하는 법을 제시해 준다. 따라서 응모자들은 아이들이 당면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찾아내어 동화적인 재미와 감동으로 보여주기를 바란다.

  '여우 꼬리'는 아이들의 비만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동화로서 옛이야기를 차용하여 흥미롭게 끌고 가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하지만 누이를 여우라고 확신한 삼형제의 행동과 사건이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설득력이 떨어졌다. '할머니와 순구'는 유기견과 치매 걸린 할머니가 가족이 되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가슴 훈훈한 동화다. 결말이 잔잔한 감동을 주지만 극적인 사건 전개가 없어서 전반적으로 밋밋하고 평범했다. '심쿵, 그 애의 비밀'은 피구 경기를 통해 그 애의 비밀을 알게 되고 오해가 풀린다는 이야기다. 선천성 백색증에 걸린 아이를 소재로 한 점이 눈길을 끌었으나 비밀이 밝혀지고 오해가 풀린다는 설정이 너무 상투적이고 낯이 익었다.

  '세모바퀴 달린다'는 본심에 올라온 작품 중에서 단연 뛰어났다. 자기가 잘하는 것을 선택하여 시련을 극복하고 꿈을 향해 달려가는 장애 아이의 모습을 깔끔한 문장과 탄탄한 구성을 통해 인상적으로 그려냈다. 갈등과 대립 구도가 뚜렷하고 사건이 흥미진진하게 진행되어 읽는 재미가 쏠쏠한 것도 미덕이었다. 끊임없이 주인공을 괴롭히는 아이를 힘이 없는 지렁이를 통해 통쾌하게 물리치는 결말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세모바퀴처럼 덜컥거려도 꿈을 갖고 힘차게 달려가겠다는 아이의 모습을 동화적인 재미와 감동으로 그려낸 작품이었다. 동화의 매력을 한껏 보여주는 좋은 작품을 뽑게 되어 기쁘다.

심사위원 : 이준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