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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동물 환상국 / 황경란

 

  문이 열렸다.

  기다리고 있던 비둘기들이 한꺼번에 날아들었다.

  꼬리 잘린 길고양이 발견

  다리가 부러진 채 떠도는 강아지 발견

  철새 떼 방음벽에 부딪혀 수십 마리 기절. 죽은 새도 있음

  통신국 문이 닫힐 때까지 비둘기 통신은 쉬지 않고 올라왔다. 통신은 딱 한 줄이어야 했다. 그래야 비둘기들이 이곳까지 날 수 있었다. 두 줄도 아닌 딱 한 줄의 통신에서 나는 동물들의 피와 눈물을 보았다.

  개미 선생님은 그럴수록 인간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병들고, 다치고, 길거리에 버려져도 인간을 미워하면 안 된다고 했다.

  이곳은 동물 환상국이다. 이곳은 끝이 없다. 크고, 넓고, 둥글고, 희고, 투명한 이곳은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곳에 살고 있는 나는 동물로 태어난다. 내가 어떤 동물로 태어날지는 아직 모른다. 네발 동물이 될지, 두 발 동물이 될지, 아니면 날개가 있을지, 없을지, 아직 모른다. 중요한 것은 동물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왜 동물이에요?”

  내가 물었다.

  개미 선생님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으음, 하고 망설이고, 으음, 하고 생각했다.

“으음…. 모든 동물의 질문이기도 하지.”

  코끝에 걸린 개미 선생님의 안경이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이유를 아는 동물은 없다.”

  아무도 모른다. 선생님도 모른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이유로 나는 동물이 된다.

“확실한 건!”

  개미 선생님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동물은 인간의 가족이자 친구이다.”

  동물이 인간을 배우는 이유였다.

*

  1교시 수업이 시작됐다.

  1교시는 ‘인간 사전’수업이다. ‘인간 사전’은 어려웠지만 읽을수록 재미있었다.

  개미 선생님은 ‘인간 사전’에 실린 ‘가족’과 ‘친구’의 뜻을 알려 주었다.

  같이 밥을 먹고 + 같은 곳에서 잠을 자고 + 같이 울고 웃는다 = 가족

  ‘같이’도 배웠다. 같이는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하는 것이다. 밥과 잠과 눈물과 웃음도 배웠다. 밥은 꼭 먹어야 했다. 맛있게 꼭꼭 씹어서 꼭. 잠은 생각이 멈추는 시간이었다. 눈물과 웃음은 마음을 대신하는 몸의 말이었다.

  마음을 기대고 + 등을 기대는 사이 = 친구

  친구의 뜻이다. 친구는 멋진 말이었다. 마음과 등을 기대면 정말 따뜻할 것 같다. ‘같이’를 배웠을 때만큼 따뜻한 말이었다.

  그런데 인간은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비둘기들이 전하는 통신의 대부분은 아프고, 슬픈 소식이다. 춥고, 배고프고, 가여운 동물이 길가에 버려진다. 그런데도 인간의 가족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니.

  갑자기 내가 싫어졌다.

  ‘인간 사전’수업이 끝나고 ‘말하기’수업과 ‘움직이기’수업이 시작됐다. 인간이 말을 하는 것처럼 우리도 울고, 웃고, 말을 한다.

“멍멍멍. 야옹야옹. 삐악삐악, 꿀꿀꿀, 휘이휘이, 음메음메, 까악까악, 메헤에, 어흥….”

  셀 수도 없이 많다.

  나는 ‘꿀꿀꿀’을 선택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 사전’에서 꿀은 달고 맛있는 것 중 하나였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 꿀과 이 ‘꿀꿀꿀’은 다른 것이었다.

  ‘말하기 수업’은 금방 끝이 났다.

  가장 어렵다는 ‘움직이기’수업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고 했다.

  곧이어‘움직이기’수업이 시작됐다.

  내가 선택한 ‘꿀꿀꿀’이 되기 위해서는 네발로 걷는 법을 배워야 했다.

  아직 나의 다리는 세 개다.

“인간은 네발 동물을 좋아하지. 하지만 두 발 동물도 있지. 인간은 날개가 있는 동물을 좋아하지. 하지만 날개가 있어도 날지 못하는 동물이 있지. 인간은 작은 동물을 좋아하지. 하지만 인간은 큰 동물과 작은 동물 모두 잡아먹지. 인간은 조용한 동물을 좋아하지. 인간은 많이 먹는 동물을 싫어하지.”

  개미 선생님의 설명은 끝이 없었다. 하마터면 선생님의 안경이 허공에서 춤을 출 뻔했다.

  ‘인간이 동물을 잡아먹다니.’

  나는 무서웠다. 그래도 선택을 해야 했다.

  ‘말하기’수업에서 선택한 울음소리를 기준으로 다리의 개수가 정해졌다. ‘꿀꿀꿀’은 다리가 네 개라고 했다.

“나머지 한 개는 언제 생길까요?”

  네 개의 다리가 있어야 ‘움직이기’수업에서 걷는 법과 뛰는 법, 앉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내일.”

  개미 선생님이 말했다.

  나는 내일을 본 적이 없다.

“오늘은 안 되나요?”

  개미 선생님이 고개를 저었다.

“기다려야지. 내일은 그렇게 배우는 거야.”

  내일은 보는 게 아니라, 기다리는 거였다.

  나는 내일을 기다렸다.

  이곳은 다리가 없어도 설 수 있고 날개가 없어도 날 수 있는 동물 환상국이다.

  하지만 인간 세상에서는 부족하다. 나는 달려야 하고, 도망쳐야 하고, 더 많이 먹어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고 개미 선생님이 말했다.

  내일이 될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꿀꿀꿀’을 상상하는 것뿐이었다.

  다리가 네 개, 날개는 없다. 꼬리는 있다. 귀도 눈도 코도 입도 있다. 꿀꿀꿀, 이렇게 울고 웃으며 말한다.

“꿀꿀꿀.” (다리가 생기면 나는 인간 세상으로 간다.)

  그런데 아무리 상상을 해도 내일이 그려지지 않았다.

  ‘인간 사전’에서 ‘내일’을 찾아보았다.

  오늘 + 오늘 = 내일

  ‘오늘은?’

  오늘을 찾아 ‘인간 사전’을 넘겼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바람이 불었다.

  스스슥, 샤샤삭. 스스슥, 샤샤삭.

  지금 + 지금 = 오늘

  지금에서 지금을 더한 것이 오늘이었다. 내일은 오늘의 지금을 더하고, 더하고, 더하고, 더했다. 그러니까 지금을 네 번 더한 것이 내일이었다.

  지금의 네 번과 네 개의 다리.

  내일이 오면 나는 네 번째 다리가 생긴다. 내일 생기는 네 번째 다리와 네 개의 지금이 친구 같았다.

  ‘인간 사전’의 책장을 다시 넘겼다. 이번에도 바람 소리가 들렸다.

  스스슥, 샤샤삭, 스스슥, 샤샤삭.

“휴….”

  긴 한숨이 나왔다. 아직도 내일이 오지 않았다. 내일이 올 때까지 나는 또 생각했다. 내일이 오면 한 개의 다리가 더 생긴다. 그러면 네발 동물이 된다.

  개미 선생님은 내일이 오면 중요한 것을 알게 된다고 했다.

“다리를 접고 앉는 법. 다리에 힘을 주고, 걷고 뛰는 법.”

“인간 사전만큼 복잡해요?”

  내가 물었다.

“다리가 생기면 알게 된다.”

  개미 선생님은 저절로 폴짝폴짝 뛰게 될 거라고 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알려 주었다.

  (가만히 + 조용히) - 두려움 = 함께하는 용기
  
  뛸 때는 물론 멈추거나 앉아 있을 때의 자세였다. 하나하나의 뜻도 알려 주었다.

  가만히, 긴장하지 마라.

  조용히, 주위의 소리를 들어라.

  그리고 두려움을 버려라.

  그러면 함께하는 용기가 생긴다.

“왜요? 왜, 함께해야 돼요?”

  내가 물었다.

“너는 인간의 친구니까.”

  개미 선생님이 말했다.

“용기는요?”

“너는 자랑스러운 꿀꿀꿀이 될 테니까.”

  개미 선생님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나는 내일이 오기를 기다리며 ‘인간 사전’에서 ‘함께하는 용기’를 찾아보았다.

  스스슥, 샤샤삭, 스스슥. 샤샤삭.

  (가만히 + 조용히) - 두려움 = 함께하는 용기

*

  드디어 내일이 왔다.

  내일은 오늘과 똑같이 생긴 날이었다.

  내일이 오자 정말로 다리가 생겼다. 나는 네발 동물이 되었다.

  개미 선생님의 말대로 저절로 제자리에서 뛸 수 있었다. 뛰는 것보다 가만히 서 있는 것이 더 어려웠다.

  내일을 기다린 다른 동물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내가 물었다.

“내일은 어땠어?”

  날개가 있는 동물이 말했다.

“너무 힘이 들었어.”

“내일이 오지 않을 것 같았어.”

“내일을 생각하다 잠이 들어 버렸어.”

  모든 동물이 투덜거렸다.

  개미 선생님이 다가왔다. 오늘은 선생님의 안경이 코끝에 정확히 걸려 있었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날지도 않았다. 선생님이 모든 동물을 둘러볼 때까지 기다렸다.

  나는 내일이 궁금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말할 때까지 묻지 않았다.

  개미 선생님의 코끝에서 안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간들은 언제나 내일을 바라본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내일을 기다리는 건 지루하고 힘든 일이었다.

  참지 못한 나는 선생님을 향해 큰 소리로 물었다.

“오늘이 있는데 내일을 바라본다고요?”

  개미 선생님은 안경 너머로 나의 몸을 훑어보았다.

  나는 선생님의 설명을 듣기 위해 ‘함께하는 용기’의 자세로 앉아야 했다.

  ‘(가만히 + 조용히) - 두려움’의 자세는 힘든 자세였다.

“인간에게 내일은 중요하다. 모든 인간은 내일을 기다린다.”

  선생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인간은 매일매일 꿈을 꾼다.”

  나는 선생님이 시키지 않아도 ‘인간 사전’에서 ‘꿈’을 펼쳐보았다.

  내일 꼭 하고 싶은 일 = 꿈

  꿈은 알쏭달쏭했다.

  부족한 한 개의 다리를 만나기 위해 내일을 기다렸다. 내일을 기다리는 동안 오늘이 흘러갔다. 심심했고, 내일이 올 것 같지 않아 힘이 들었다. 그런데 인간들은 이런 내일을 매일매일 바라본다고 했다.

  인간에게 친구가 필요한 이유 같았다. 알쏭달쏭한 꿈이었지만 ‘내일 꼭 하고 싶은 일’이 꿈이라면 인간에게 친구가 필요해 보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 만나게 될 인간을 위해 그 정도는 해줘야 할 것 같았다.

  개미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위로’의 뜻을 알려 주었다.

  친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 = 위로

  나는 동물이다. 동물은 숨을 쉴 수 있다. 먹을 수 있고,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생각할 수 있다.

  나는 ‘꿀꿀꿀’이 되는 ‘나’를 생각했다. 인간의 친구가 되는 ‘나’를 생각했다. 친구가 되면 최고의 선물을 인간에게 줄 수 있다.

  드디어 내가 좋아졌다.

  동물이 될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의 나는 빛이었다.

  동물 환상국을 빠져나오자 나의 빛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개미 선생님의 말처럼 나는 자랑스러운 ‘꿀꿀꿀’이 되었다.


 

  <당선소감>

 

   “무릎 구부리고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작가 될 것”

  봄이 오고 있었습니다.

  창밖 감나무의 가지에서 새순이 올라왔습니다. 도시의 텃새들이 감나무에 모여들었습니다. 열심히 재잘거리며 친구들을 불러 모았고, 친구들이 모여들면 더 열심히 무언가를 쪼아대며 날아다녔습니다. 직박구리와 참새의 울음에 잠이 깨던 봄이었습니다.

  봄의 길목이 희망이 되길 바라며 새로운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 길이 아이들을 위한 길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본 것은 잘못이 관행이 된 어른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어른으로서 한없는 무능을 경험했고,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길을 나왔습니다.

  그 봄을 시작으로 동화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곳에 동화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떠올렸고 아이들이 슬퍼하는 것을 들여다봤습니다.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하나씩 적고 하나씩 쓰고 읽기를 반복했습니다.

  계절이 바뀌었습니다.

  한여름의 열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던 감나무를 기억합니다. 부족함 없는 인내를 보았습니다.

  저는 여전히 채워야할 게 많은 부족한 어른입니다. 그럼에도 저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 감사합니다.

  무릎을 구부리고 허리를 숙이며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동화 작가가 되겠습니다.

● -


 

  <심사평>

 

  “활달한 상상력, 오래도록 가다듬은 문장력 빛나”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8편이었다. 그중 눈길을 붙잡은 작품은 김유미의 ‘주전자가 끓는 시간’, 정희의 ‘그대로 멈춰라’ 그리고 황경란의 ‘동물 환상국’이었다.

  ‘주전자가 끓는 시간’은 차분하게 아이의 걸음걸이를 따라가며 할머니의 죽음을 바라보는 작품이다. 안정적인 문체로 할머니와 아이의 관계를 그려냈으며 할머니의 사랑을 노란 주전자로 형상화한 점도 좋았다. 하지만 아이가 할머니의 사랑을 그저 받기만 하는 수동적인 위치여서 아쉬웠다. 아이가 주체적으로 뭔가를 해나가는 대목이 있어야 했다.

  ‘그대로 멈춰라’는 주인공의 가족이 슬로드 바이러스에 걸린다는, 코로나 시대의 시의성이 반영된 이야기다. 바쁘게 사는 사람들에게 잠시 멈추고 느린 걸음으로 함께하자는 메시지를 경쾌하게 전달하고 있다. 이야기를 가볍게 밀고 나가는 점은 좋았으나 끝부분에서 주제를 전면에 드러내는 방식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동물 환상국’은 장점이 많은 작품이다. 새 생명체로 태어나려는 동물의 혼령이 인간과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는 소재가 신선하다. 구성이 안정되고 문장에 군더더기가 거의 없다. 특히 낱말 풀이를 통해서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도록 하는 점도 좋았다. 활달한 상상력과 오래도록 가다듬은 게 분명한 문장력을 높이 사서 당선작으로 뽑았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아쉽게 탈락한 예비 작가들에게도 격려를 보낸다. 

심사위원 : 이미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