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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악몽바자회 / 최주인

“열려라! 참깨.”

  주문을 외쳤다. 굳게 닫혀있던 동굴 문이 열렸다. 맛있는 냄새가 빠져나왔다. 냄새에 끌려 동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양손에는 닭 다리와 치즈스틱이 들려있었다. 영혼의 단짝을 만난 내 입은 반가움의 대화를 시작했다.

‘냠냠 쩝쩝’

  조금씩 배가 부풀어 올랐다.

“그만! 이제, 그만!”

  생각과는 달리 손과 입이 멈추지 않았다. 고장 난 손은 끊임없이 음식을 입으로 배달했다.

“안 돼. 안 돼”

  배는 점점 더 부풀어 올랐고 결국 ‘펑’하고 터져버렸다.

‘헉, 오늘도 같은 꿈이다.’

  땀으로 샤워를 한 듯 온몸이 젖어있었다. 매일 꾸는 꿈이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그래도 학교는 가야 했다. 아무것도 먹기 싫었다. 하지만 먹고는 살아야 했다. 간신히 밥 두 공기를 물에 말아 먹고 집을 나섰다.

“와! 희찬이 왔다.”

  교실로 들어서자 한 무리의 아이들이 몰려왔다.

“오늘은 뭐 먹었어?”

“그래. 먹은 거 얘기 좀 해주라. 난 너 먹는 얘기만 들어도 내 배가 다 배부르단 말이야.”

“아니…, 없어. 요즘 입맛이 없거든.”

  악몽을 꾸고부터 입맛이 사라졌다. 입맛이 사라지자 이야깃거리도 사라졌다.

“진짜? 어디 아픈 거 아냐? 요즘 계속 그러네.”

“어쩔 수 없지. 혹시 입맛 돌아오면 그때 꼭 얘기해줘.”

  아이들은 아쉬워하며 하나, 둘 자리로 돌아갔다.

“야! 뚱땡아, 뭐하냐?”

‘하…. 또 시작이다.’

  나에게 악몽을 선물한 덕만이였다. 녀석만 없으면 더 이상 악몽도 없을 것 같다.

“얼굴이 왜 그러냐? 어제 라면 10개 먹고 잤냐?”

“아니거든. 안 먹었거든. 휴…, 자기는 마른 멸치 같으면서….”

  깊은 한숨과 함께 목까지 차올랐던 말을 조용히 삼켰다.

“뭐라고 하는 거야? 넌 덩치도 산만하면서 말 좀 크게 해라. 그리고 뭐가 아니야? 딱 봐도 10개 먹었는데. 아니면 11갠가? 크크크.”

  대체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은 누가 한 건지 모르겠다. 선생님께 혼나는 것만 아니면 이미 열두 번은 그랬을 거였다.

“…….”

  더 이상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 그러자 녀석은 금세 흥미를 잃고 다른 친구들 사이로 사라졌다. 물론 언제나처럼 몇 마디를 덧붙인 후였다.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녀석은 가면서 남아있던 내 기운도 함께 가져갔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만약 오늘이 악탈 모임을 하는 날만 아니면 아프다는 핑계로 조퇴를 했을 거였다. 악탈은 악몽 탈출을 꿈꾸는 아이들의 모임을 말한다. 악탈에는 얼굴이 긴 ‘당근’부터 ‘대갈장군’, ‘콧물 기차’ 등 다양한 별명을 가진 아이들이 있다. 별명은 모두 다르지만 놀림을 받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악탈이 있는 날은 언제나 시간이 민달팽이 같다. 쉬는 시간조차 그랬다. 하지만 아무리 느리게 가도 끝은 있는 법이다.

“오늘은 희찬이 고민 나눔 차례야.”

  사실 내 고민은 몇 달 전에도 얘기했었다. 그때 아이들과 찾은 답은 살을 빼는 거였다.

“살을 2킬로나 뺐는데 악몽을 꾸는 건 똑같아. 게다가 내가 살 뺀 걸 아무도 모르더라니까. 놀림 받는 것도 여전하고.”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힘들었던 다이어트 생각이 나서였다. 한편으로는 다이어트 동안 세 끼만 먹고도 살아남은 내가 대견스러웠다.

“대체 어떻게 해야 악몽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내 말이 끝나자 아이들은 이런저런 방법들을 얘기했다. 하지만 누구도 ‘이거다’하는 의견을 내놓지는 못했다.

“이번 바자회에 꿈을 팔아보면 어떨까?”오랜 회의에 지쳐갈 때쯤 누군가 무심한 목소리로 한마디를 툭 내던졌다. 괴짜스러운 말과 행동 때문에 안드로메다로 불리는 명구였다.

“뭐라고? 꿈을 판다고?”

“에이, 말도 안 돼. 누가 꿈을 사.”

  명구다운 생각에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왜 안 돼? 바자회는 나에게 필요 없는 물건을 파는 거 아냐? 꿈은 우리한테 필요 없잖아. 혹시 알아? 누구에게 필요할지?”

  명구는 아이들의 반응에 전혀 동요하지 않고 생각을 이야기했다.

“생각해 보니 그렇네.”

“밑져야 본전이니까 한 번 해볼까?”

  자신감이 넘치는 명구 때문인지 몰라도 왠지 그럴듯했다. 결국 한번 해보자는 쪽으로 생각이 모였고 생각은 즉시 실행으로 옮겨졌다.

  다음날, 학교는 바자회 이야기로 들썩거렸다. 곳곳에 붙은 포스터 때문이었다.

꿈 바자회
꿈 파세요. 꿈 사세요.
어떤 꿈이든 OK. 놀라운 기적이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꿈을 판다는 게 가능해?”

“누가 내 꿈 좀 사주면 좋겠다. 갖고 싶은 스피너가 있는데.”

  아이들은 모이기만 하면 꿈 얘기를 했다. 그러다‘내 꿈 한번 들어봐.’라는 말은 유행어가 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은 점점 더 꿈 바자회에 빠져들었다.

“에이, 말도 안 돼.”

“어떤 정신 나간 녀석이 꿈을 사냐?”

  물론 덕만이처럼 입을 삐쭉이는 애들도 있었다.

“지금부터 제20회 옥룡 바자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드디어 바자회 날이 되었다.

“쓸 만한 물건 많아요. 와서 구경하세요.”

“지금 안 사면 두고두고 후회합니다.”

  여러 부스에서 호객행위가 시작됐다. 하지만 아이들의 관심은 온통 꿈 바자회에 쏠려있었다. 많은 아이들이 꿈 바자회 부스로 몰려들었다.

“꿈 바자회 부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꿈을 팔고 싶은 사람은 부스 앞에서 꿈 이야기를 하면 됩니다. 꿈이 필요한 사람은 손을 들어 주세요. 가격은 파는 사람이 결정합니다.”

  가슴이 콩닥, 심장은 쿵쾅거렸다.

“야! 그 말 진심이냐? 꿈을 사는 바보가 세상에 어디 있냐?”

  한껏 기대감에 부풀어 있던 그때, 누군가 냉기 가득한 말을 던졌다. 역시나 덕만이였다.

“야! 김덕만. 조용히 해.”

“꿈을 사든 말든 네가 무슨 상관이야. 너는 신경 끄셔.” 여기저기서 덕만이에게 말 화살이 쏟아졌다. 덕분에 덕만이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첫 번째 판매자는 홍기봉입니다.”

  기봉이는 크게 심호흡하고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꿈속에서 난 당근이 돼. 당근밭에서 평화로운 날들을 보내지. 그런데 어느 날부터 머리 부분만 길어지는 거야. 그러다 머리가 하늘 끝에 닿아. 잭과 콩나무에 나오는 거인의 집까지 말이야. 잭은 ‘옳다구나’하고 나를 밟고 거인의 집에 올라가. 그리고선 말이야….”

“진짜? 그럼 잭과 콩나무가 아니라 잭과 당근인가?”

“그래서 그다음은?”

  아이들은 뒷이야기를 재촉했다. 뜨거운 반응에 힘입은 기봉이는 단숨에 뒷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이야기를 끝낸 기봉이는 꿈 가격으로 당근을 원했다. 이제부터는 씹어 먹히지 않고 자신이 씹어 먹고 싶어서라고 했다. 기봉이의 꿈은 당근 농장을 하시는 아빠에게 선물한다며 홍근이에게 팔렸다. 진짜 꿈이 팔리자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너희들 안드로메다인 본 적 있어? 내 꿈은 안드로메다에 불시착하는 걸로 시작해. 그곳에서 난 한 안드로메다인을 만나지. 그러면서….”

  다음 판매자는 명구였다. 아이들이 관심을 보이자 신이 난 명구는 이야기를 쏟아내듯 뱉어냈다.

“와! 부럽다. 나도 외계인 보고 싶은데.”

“안드로메다 사람은 어떻게 생겼어? 광선검 써?”

  아이들의 호기심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결국 명구는 그 호기심을 밑천 삼아 과학자를 꿈꾸는 민호에게 꿈을 팔았다. 그 후로 여러 꿈이 이야기됐다. 물론 모든 꿈이 팔리지는 않았다. 재미없는 이야기와 턱없이 비싼 가격 때문이었다.

“이제 마지막 꿈입니다. 이번 판매자는 최희찬입니다.”

  이제 드디어 내 차례였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천천히 내 꿈을 꺼내놓았다. 막상 이야기가 시작되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느새 이야기 속의 나는 신비한 모험을 마치고 동굴 앞에서 주문을 외쳤다.

“주문을 크게 외치면 굳게 닫혔던 문이 열려. 지금껏 맡아본 적 없는 황홀한 냄새와 함께 말이야. 냄새에 붙잡혀 안으로 들어가면 눈부신 음식들이 가득하지.” 눈앞엔 꿈에서 보았던 음식들이 펼쳐져 있었다. 눈앞의 음식들은 입을 더 신나게 했다.

“제~일 먼저 살이 쫘~악 오른 닭 다리를 잡지. 그리고 한 입 베어 물어. 입 안 가득한 살과 뽀얀 육즙이 입안에서 춤을 추지. 그러면 나는 ‘야호’하고 소리쳐. 맛의 정상이거든.”

  아이들은 내 얘기에 홀려 버렸다. ‘허’하고 입을 벌린 몇 녀석은 침이 떨어지는 줄도 몰랐다.

“다음은 치즈스틱이야. 겉은 비스킷보다 바삭해. 한 입 베물면 치즈가 ‘쭈~~~욱’ 늘어져. 얼마나 길게 늘어지는지 끊어서 줄넘기를 한다니까.”

  아이들의 깊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 꿈 내가 살게. 요즘 우리 할머니가 입맛이 없으시단 말이야.”

“아니야. 내가 살 거야. 요즘 감기 때문에 아무것도 못 먹는단 말이야. 저 꿈이면 식욕이 다시 돌아올 것 같아.”

  여기저기서 꿈을 산다는 애들로 난리가 났다. 아이들은 서로 자기에게 꿈을 팔라고 했다.

“야! 그 꿈 얼마냐?”

  아이들의 말다툼을 비집고 익숙한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덕만이였다. 예상 밖의 인물이 등장하자 어안이 벙벙했다. 혹시 나를 놀리려고 그러나 화도 났다.

“그 꿈 얼마냐고? 내가 산다니까.”

  덕만이는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재촉하듯 말했다.

“너 지금 장난하는 거지? 내가 너한테 꿈을 팔아야 왜 하는데?”

“아니 그냥. 파는 사람한테 이유도 말해야 하냐? 그, 그냥 팔면 안……?”

  날카로운 나의 말에 녀석은 말꼬리를 흐렸다. 처음 꿈을 팔라고 했을 때와는 다른 말투였다.

“누구한테 팔지는 내 맘 아냐? 너 아니어도 살 사람 많으니까, 꿈을 사고 싶으면 왜 사고 싶은지 말해.”

  기가 죽은 녀석의 모습에 꿈을 사려는 이유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네 꿈을 사면 나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러면 나도 살이 찔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 거야.”

  결국 녀석은 입을 삐쭉 내밀고 체념하듯 말했다. 놀라웠다. 녀석의 입에서 저런 이유가 나올 거라고 상상도 못 했다. 처음 듣는 녀석의 진지한 속마음이 슬퍼 보였다. 순간, 어쩌면 덕만이도 악몽을 꾸고 있을지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 너한테 팔게. 대신 꿈값은 줄 수 있지?”

  덕만이에게 꿈을 팔고 싶어졌다.

“어? 진짜? 꿈값 얼마야? 그 꿈값 얼마냐고?”

  덕만이는 내 마음이 바뀔까 재촉하듯 물었다.

“앞으로는 나를 뚱땡이 말고 이름으로 불러. 다른 친구들도 놀리지 말고. 그럼 이 꿈은 네 거야.”

“진짜야? 진짜 그거면 돼?”

  덕만이는 몇 번이나 확인해 물었다.

“응. 대신 꿈값은 꼭 제대로 줘. 안 그러면 다시 뺏을 거다.”

  그렇게 난 덕만이에게 꿈을 팔았다. 꿈을 팔자마자 배가 고파졌다.

“우리 떡볶이 먹으러 갈래? 내가 맛있게 먹는 법 알려줄게.”

  내 제안에 아이들이 주위로 몰려들었다. 환하게 웃는 아이들 속에는 덕만이도 있었다.

 

  <당선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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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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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