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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올리버와 앤 / 이지영

“그거 어디서 났어?”

  물류 유통형 로봇 분류번호 A - 58973, 올리버는 펜이 들고 온 동물에 고개를 갸웃했다. 펜은 조금 들떠 있어 보였고 무서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펜은 조사를 나올 때마다 올리버에게 자기가 발견한 동물과 식물들을 가져와 소개해주었다. 이번에도 그런 동물이겠거니 싶어 올리버가 묻자 펜은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동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인간 아이.”

“인간? 멸종동물로 지정된 그거?”

“응. 인간 아이야. 그것도 여자아이.”

  올리버는 펜이 데려온 여자아이를 보았다. 여자아이는 머리가 산발이었고 동물 가죽을 대충 둘러 옷처럼 입고 있었다. 올리버의 전자칩에 저장된 인간의 모습하고는 달라서 진짜 인간인지 구별이 가지 않았다.

“장난치지 마. 인간 여자애가 어떻게 살아 있어?”

“진짜야. 너도 심장 소리를 들어봐. 우리랑 달라”

  올리버는 의심하면서도 심박수를 체크했다. 쿵, 쿵, 쿵, 쿵. 올리버와 펜과 같은 로봇들은 가지지 못한 일정한 심장 소리가 올리버에게 느껴졌다. 올리버는 펜이 장난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진짜 인간이네.”

“버려졌나 봐. 주변을 둘러봤는데 비슷한 종도 못 찾았어.”

  펜의 대답에 올리버는 난감했다. 올리버가 태어나기 전에 멸종했다고 전해진 종이었다. 그리고 올리버와 펜의 임무는 도시 밖으로 나와 조사를 거치면서 새로운 종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멸종되었다고 전해지는 인간을 새로운 종이라고 해야 할지 난감했다.

  올리버는 인간처럼 머리를 긁적였다. 펜은 잠든 여자아이와 올리버를 번갈아봤다. 펜은 무언가 결정을 내린 듯 여자아이를 더 꼭 안고 말했다.

“도시로 데려가자.”

  올리버는 말릴 수 없었다. 황소고집 펜의 결정은 그 어떤 로봇도 막지 못했다. 올리버는 펜이 데려가는 인간이 도시를 한바탕 뒤엎을 사건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올리버의 예측대로 도시는 한바탕 뒤집어졌다.

  펜은 올리버의 몸체에 아이를 숨겨서 데려가려고 했다. 올리버는 물류 유통형 로봇이기에 덩치가 컸다. 그래서 몸체에 동물이나 식물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아이는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았다. 다만 올리버와 펜이 간과한 점이 있었다. 올리버의 몸은 숨을 쉬는 동물을 넣는 공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인간은 숨을 쉴 수 없다.

“올리버, 그 소리는 뭐야?”

  올리버는 자기 몸에서 울리는 진동에 난감했다. 도시 입구를 지키는 경비 로봇은 올리버를 걱정했다. 경비 로봇은 올리버의 몸에서 울리는 소리가 고장 난 것으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올리버는 거짓말을 못 하는 로봇이었다. 만들어질 때부터 그랬기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인간을 데려왔다고 하면 경비 로봇이 올리버를 도시로 들여보내 줄 것 같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인간은 밖으로 나오려는 듯이 올리버의 몸에서 움직였다. 쿵, 쿵. 올리버는 자신에게 심장이 있다고 착각할 뻔했다.

  올리버는 펜과 경비 로봇을 번갈아보았다. 펜이 어떻게든 설명하려 했지만 올리버는 결국 몸체의 문을 열었다. 난감한 것도 있지만, 정말 있는 대로 부딪히는지 올리버의 몸이 들썩일 정도였기 때문이다. 올리버는 이런 어려움을 겪고 싶지 않았다. 이때는 날렵한 몸체를 가진 펜이 미웠다. 조사형 로봇인 펜이 물류형 로봇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으악!”

“꺄악!”

  올리버의 몸에서 튀어나온 인간을 펜이 받아냈다. 여자아이는 숨을 몰아쉬면서 켈록거렸다. 눈이 벌게져 있는 게, 꼭 자신을 물 거 같아서 올리버는 뒤로 물러났다. 올리버는 아픈 게 너무 싫었다. 펜은 바둥거리는 인간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실은, 밖에서 조사하다가 인간을 발견했어.”

“인간?!”

  경비 로봇은 펄쩍 뛰었다. 그리고 서둘러 도시 전체에 말했다.

‘펜과 올리버가 인간을 데려왔다!’

  도시 곳곳에 있던 로봇들이 올리버와 펜에게 몰려들었다. 정확하겐 펜이 들고 있는 인간을 보기 위해서였다. 도시에 있는 로봇 중 마더와 시장인 데릭을 빼곤 인간이 멸종한 뒤에 만들어진 로봇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펜은 여자애를 보러온 로봇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자기가 데려온 인간이 로봇들 사이에서 기절해버린 뒤로 깨어날 수 있는지에만 온 관심이 쏠려 있었다. 그렇기에 펜과 올리버를 찾아온 로봇들을 상대해야 하는 건 올리버뿐이었다.

“어디서 주웠어?”

“저게 인간이야? 멸종되었다고 했잖아.”

“인간에겐 성이 있다며? 여자야? 남자야?”

“우리처럼 말을 해? 목소리 들어봤어?”

  올리버는 펜도 모르고 자기도 모르는 질문들이 쏟아질 때마다 도망치고 싶었다. 올리버는 같은 로봇들이어도 만나기 싫었다. 로봇들이 자기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 번도 펜이 미운 적이 없지만 이때만큼은 올리버는 펜이 미웠다. 올리버는 펜의 뒤로 숨었다.

“난, 난, 몰라. 모른다고! 펜이 데려왔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올리버 괴롭히지 마. 얘는 내가 데려왔어. 조사하다가 풀숲에 숨어 잠들어 있길래 데려온 거야.”

  펜은 덩치가 큰 올리버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로봇들은 올리버에게서 펜에게 질문을 쏟아냈지만, 펜도 인간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금방 로봇들은 흥미를 잃었다. 올리버는 펜이 자신을 대신해 대답해주니 조금씩 인간을 내려다보았다. 머리가 산발인데다 까만 게 덕지덕지 붙어 있어서 제대로 얼굴을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펜은 대체 저걸 보고 인간이라고 판정할 수 있었는지 신기해할 즈음, 시장이 펜과 올리버를 불렀다.

“올리버, 펜. 데릭 시장님이 시장실로 오라셔.”

“펜만 가면 안 돼?”

“안 돼, 올리버. 너랑 펜 둘 다 오라고 했어. 도시에서 시장님의 말은 들어야 한다고 했잖아.”

  비서 로봇이 친절하게 답했지만 올리버는 시장실에 가고 싶지 않았다. 펜만 따로 갈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펜은 아무렇지 않게 올리버의 손을 잡고 비서 로봇을 따라 걸었다. 올리버는 펜에게 질질 끌려가다가 결국 스스로 걸어서 시장실로 향했다.

“펜.”

“응?”

“그 인간 어떻게 할 거야?”

“글쎄, 나는 조사형 로봇이잖아. 조사한 걸 시장님께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어.”

“그러니까, 시장님이 그 애를 도시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고 하면 내보낼 거야?”

“글쎄….”

  펜과 올리버는 인간을 봤다. 기절하면서 잠들었는지, 미동도 없었다. 올리버는 인간 여자아이를 물끄러미 봤다. 펜이 가끔가다 새끼 고양이나 양 같은 어린 동물들을 찾아 보여줘서 그런지 그것과 비슷해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올리버는 펜이 데리고 온 동물들을 다시 도시 밖으로 내놨을 때,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해냈다. 어렵사리 무리를 찾아 그곳에 풀어주면 무리는 새끼를 배척했다. 무리의 일원이 아니라고 생각한 모양인지 어떤 무리도 새끼를 받아주지 않았다.

  이후엔 동물들이 올리버와 펜의 시야에서 없어져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올리버는 만약 이 여자아이도 그렇게 배척받을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 더 어려운 건 멸종되었다고 기록된 인간 무리를 다시 찾는 것도 문제였다. 올리버는 이런 어려운 문제는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올리버, 펜. 그게 인간이라고?”

  오른쪽 눈에 상처가 있는 데릭 시장은 시장실 상석에 앉아있었다. 올리버는 펜의 뒤로 숨었다. 데릭 시장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로지 펜이 안은 여자애에만 관심이 있었다.

“네. 숲에서 조사하다가 덤불 속에 자는 걸 찾았어요.”

“확실히 인간이 맞네. 그 근처에 다른 인간 무리가 있진 않았고?”

“이 여자아이가 지나온 길을 따라가다 산사태 흔적을 찾았어요. 그 때문에 흔적이 사라졌어요. 며칠 전에 엄청나게 비가 쏟아졌잖아요.”

“그렇다면 이 인간이 거주했던 군락도 산사태에 쓸려나갔을 수도 있겠어.”

“어떻게 할까요?”

  올리버는 데릭 시장을 봤다. 데릭 시장을 봐온 오래된 로봇들의 말에 의하면 데릭 시장은 인간을 싫어한다고 했다. 데릭 시장의 오른쪽 눈이 망가진 이유는 멸종한 인간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올리버는 저 어린 인간을 데릭 시장이 도시 밖으로 내보낼 거라고 생각했다. 올리버는 여자아이를 다시 봤다.

‘저렇게 작은 애는 도시 밖으로 나가면 죽지 않을까?’

  올리버의 머릿속에서 땅에 주저앉아 무리를 하염없이 보던 새끼가 생각났다. 묵묵하게 무리를 보는 눈엔 나중가선 눈물도 없었다. 꼭 자신의 위치를 안 것 같았다. 무리에 속하지 못하고 외톨이로 지내야 하는 것. 그러면 이 여자애도 나중에 배척받지 않을까. 올리버는 외로운 것이 싫었다.

“펜, 우리가 이 도시를 만든 이유가 뭐였는지 기억하지?”

“네. 잔인한 인간들을 피해서 만들게 된 거라고요.”

“맞아. 이 도시는 로봇들이 살아가기 위해 만든 도시야. 그러니 인간은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 아무리 어리더라도 결국 커서 우리들을 해칠 거다.”

  데릭 시장은 고개를 저었다.

“인간 군락이 있다는 건 아직 멸종되지 않은 인간들이 있을 수 있다. 거기다가 데려다주는 걸로 끝내렴.”

“시, 시장님!”

  올리버는 자기가 시장에게 큰 소리를 냈다는 데 깜짝 놀랐다. 데릭과 펜도 놀란 눈치였다. 올리버는 황급하게 말했다.

“제가, 키울게요.”

“뭐?”

“제가 책임지고, 도시에서 키울게요.”

  데릭 시장의 말은 도시에서 법에 가까웠다. 로봇들도 현명한 데릭의 결정을 따랐고 그에게 시장의 자리를 주었다. 데릭의 결정은 아무도 무를 수 없었기에 올리버는 황급하게 말해야 했다.

“올리버, 인간은 도시에서 키울 수 없어.”

“하지만, 잘 찾는 펜도 못 찾았어요. 그전에 얘는 죽고 말 거에요.”

“다른 로봇들도 싫어할 거다.”

“피해 안 가게 제가 잘해볼게요.”

“올리버.”

  데릭의 목소리가 짐짓 엄해져서 올리버는 덜덜 떨었다. 여자애가 없는 빈 몸체인데도 쿵쿵거리는 게 들리는 것 같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이런 무서운 건 싫었던 올리버였지만, 올리버는 느리게 알았다. 펜이 데려온 새끼 동물들을 자기가 좋아했다는걸. 그들은 소중한 존재였고, 이 인간 여자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올리버는 이 인간 여자 아이가 사라지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자기의 기억 속에 심장처럼 쿵쿵거리던 그 진동이 계속 남아있을 거란 기분이 들었다.

“아직, 아기인데…금방 죽을지도 몰라요. 제가, 잘할게요. 제가 키우게 해주세요.”

  펜도 당황하긴 했지만 올리버의 옆에 있어 주었다.

“제가 올리버를 도울게요. 도시 밖은 제가 잘 아니까 인간을 다시 찾을 때까진 저랑 올리버가 데리고 잘 키워볼게요.”

“인간은 무서운 존재야. 너희가 모르던 시대엔 수많은 로봇이 인간 때문에 죽었어.”

“얘는 그렇게 되지 않게 할게요.”

  데릭 시장은 황소고집 펜 다음으로 올리버의 고집이 제일 센 걸 기억해냈다. 데릭은 한숨을 쉬었다.

“그럼 둘이 책임지고 도시에서 키워라. 단, 로봇들이 내보내라 하면 도시 밖으로 내보낼 거야. 그리고 펜이 새로운 인간 무리를 찾게 되면 돌려보내야 한다.”

  펜과 올리버는 서로를 봤다. 그리고 해맑게 웃었다.

“네!”

  그렇게 인간 앤은 로봇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

 

  <당선소감>

 

   -

  글에 대해서 자신 없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원고를 엎고 쓰기를 반복하면서 저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던 시기였습니다. 자신감이 없던 시기다 보니 문장 하나조차 쓰는 일이 힘들었습니다. 자신이 없던 만큼 수없이 많은 퇴고를 거치고 포기하기를 반복했습니다. 더 좋은 문장, 좋은 표현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러다가도 좋은 작품들과 내 작품을 비교하며 회의적인 시선과 태도로 제 손을 떠나지 못하던 원고들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동화는 제게 많은 것들을 알려주었습니다.

  동화는 잊었던 것들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세상을 살면서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잊어버립니다.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알지도 못한 채 살아가기에 무엇인지조차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어떤 기회로 부재를 깨닫게 됩니다. 저는 그 기회를 주는 것이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재를 깨닫게 된 순간, 우리는 잃어버린 걸 다시 찾으려고 시도합니다. 그 과정을 글에 담으려고 노력했고, 알아봐 주셨던 것 같습니다. 동화에 대해 가르쳐주신 이송현 교수님, 저를 언제나 응원해주신 존경하는 정은경 교수님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바쁜 시기임에도 언제나 두발 벗고 도와주던 내 친구들, 18학번 동기들에게도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당선이기에 그만큼 제게 값진 당선입니다. 앞으로도 잃어버린 것들을 발견하겠습니다.

● 이지영(26)
● 서울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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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모작은 모두 237편으로 반려동물(유기동물), 학원 스트레스, 가정폭력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았다. 그중 네 편을 선정해 심도 있게 논의했다. 거울 속 세계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예람이의 거울>은 소소한 재미는 있었으나 단편적인 에피소드가 많아 다소 산만했다. <시간 잡아먹는 괴물>은 놀 시간이 부족한 요즘 아이들의 심리를 상징적인 비유로 이야기를 능청스럽게 끌고 갔다. 시간을 잡아먹는 괴물과 놀이 시간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아이와의 싸움은 흥미로웠으나, 익숙한 서사구조가 단점이었다. 가정폭력을 소재로 한 <부모님이 사라졌다>는 어두운 우리 사회의 이면을 능숙한 솜씨로 꺼내 보였다. 폭력 어른을 잡아가는 ‘아동관리부’, 사라진 아빠에 대해 끝까지 냉담한 아이는 냉혹한 우리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로봇이 지배하는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희귀동물이 되어버린 인간의 발견으로 시작된 <올리버와 앤>은 흡인력이 있었다. 사건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담담하게 서술한 건조체의 문장, 슬쩍슬쩍 암시처럼 던져주는 인물의 심리묘사는 작가의 가능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다만 다음 편을 기대하게 하는 미진한 결말은 아쉬웠다. 저울질 끝에 새로운 소재와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남다른 관점에 더 마음이 기울어 <올리버와 앤>을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심사위원 : 원유순, 권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