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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달나라 절구를 찾아라! / 신은주

"이러다 하늘이 무너지고 말걸세."

"진짜야?"

"달토끼의 명예를 걸고 맹세하지."

  토끼는 달에서 소원을 빻는다고 했다. 사람들이 달을 보고 빈 소원 말이다. 곱게 빻은 소원 가루를 '후' 불어 우주로 날려 보내면, 소원을 빈 사람을 비추어주는 별이 만들어진단다.

  그런데 내 소원을 빻다가 절구가 깨졌다는 거다.

"별을 만들지 않으면 하늘이 어두워지네. 어두워진 하늘은 무거워지고, 점점 무거워진 하늘은 결국……."

  토끼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훔쳤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이 있지만 정말 하늘이 무너진다면 그건 그냥 끝인 거다. 절대 안 된다. 나는 아직 못 해본 게 너무 많다. 프리미어 리그 직관도 못 해봤고, 키가 딱 1cm 모자라서 시속 104km 롤러코스터도 못 타봤고…….

"빨리 새로운 절구를 찾아야 하네."

  토끼가 창밖을 내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기분 탓인지 하늘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때 덜컥덜컥 방문 손잡이가 들썩였다.

"형아, 문 열라니까!"

  또 동규다.

"윤정우, 당장 열어!"

  엄마까지 합세했다. 이러면 상황 종료다.

"문 잠그지 말라고 했지. 동생이 보고 배우잖아. 이거 마시고 동규랑 놀고 있어. 엄마 나갔다 올 테니까."

  엄마는 내 방에 있는 토끼가 보이지 않는지 할 말만 하고 돌아섰다. 동규도 엄마 뒤에서 그저 히죽거릴 뿐이었다.

"너, 나한테만 보이는 거야?"

"지금은 그렇네."

  나한테만 보이는 토끼라니! 내가 좀 특별해진 느낌이다.

"이건 뭔가?"

  토끼는 엄마가 두고 간 컵을 가리켰다.

"생과일 주스야. 엄마가 갈아서 만든. 아!"

  역시 나는 똑똑하다. 이렇게 빨리 해결책을 찾다니.

"이리 와봐. 내가 최첨단 절구를 보여줄게."

  토끼를 데리고 부엌으로 갔다. 조리대 위에 엄마가 쓰고 난 믹서가 놓여 있었다.

"이게 바로 절구야. 요즘은 다 이걸 써. 힘들게 빻을 필요가 없지. 버튼만 누르면 끝. 어때?"

  토끼 표정이 어두웠다.

"그런 방법으로는 안 되네. 별이 하늘에 닿자마자 흘러내릴걸세. 진짜 절구로 천천히, 정성껏 빻아야 한다네."

  쳇, 꽉 막힌 토끼 같으니라고. 그렇다면 그까짓 절구 사면 된다. 나는 스마트폰으로 절구를 검색했다. 돌 절구, 나무 절구, 플라스틱 절구……. 여러 가지 절구가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세상에나, 이게 다 뭔가?"

  토끼가 화면을 향해 자꾸 손을 뻗었다.

"어휴, 이거는 그냥 보는 거야.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봐. 지구에 온 기념으로 하나 사줄게. 너무 비싼 건 안 돼."

"돈을 주고 절구를 산다니 말도 안 되네."

  토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 어쩌라고!"

  나도 소원 많이 빌었는데. 혹시 동생 생기게 해 달라는 소원 때문에 동규가 가족이 된 걸까?

  지난 봄 엄마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사정이 있어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아이가 있는데 나만 좋다면 우리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나는 남동생이면 무조건 찬성이라고 했고 엄마, 아빠는 활짝 웃었다. 그렇게 다섯 살 동규는 가족이 되었다.

"절구, 절구, 절구……."

  절구 타령이 또 시작되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나는 삼총사 대화방에 톡을 날렸다.



절구 있는 사람?

호비니

웬 절구?

짱승훈

할머니 집에서 봤는데.

  맞다! 우리 할머니한테도 절구가 있었지. 옛날에 할머니가 봉숭아 꽃잎을 찧어서 손톱에 꽃물을 들여주셨었다. 그때는 동규가 없었고, 엄마는 내 차지였다. 동규가 처음부터 미웠던 건 아니다. 동규가 우리집에 오고 나서부터 그 애 물건이 점점 늘어났다. 어느 날 동규 장난감 자동차가 내 발에 걸렸고, 짜증이 나서 발로 차버렸는데 하필 동규 머리에 맞았다. 그렇게 세게 맞은 것 같지도 않은데 동규는 큰소리로 엉엉 울어댔다. 엄마는 나를 혼냈다. 장난감을 제자리에 두지 않은 건 동규인데. 그때 생각을 하니 또 화가 치밀었다.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엄마, 할머니 절구 어딨어?"

"그건 왜?"

"어…… 준비물."

  나도 모르게 거짓말이 술술 나왔다.

"준비물이라고? 너 똑바로 들은 거 맞아? 나중에 집에 가서 이야기해."

  엄마한테 괜히 물었다.

"절구 찾으러 나가세!"

  토끼가 안절부절못하고 방안을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너 때문에 생각을 못 하겠잖아! 계획은 있어? 무턱대고 나가서 어떻게 할 건데!"

  토끼에게 화풀이를 했다. 토끼는 귀를 축 늘어뜨리고 바닥에 웅크리고 앉았다. 허리에 동여맨 절굿공이가 거추장스러워 보였다.

  혹시나 해서 우리 동네 나눔 장터 사이트에 들어가 봤다. 운이 좋으면 원하는 물건을 찾을 수 있다. 검색창에 '절구'를 입력하고 엔터 키를 눌렀다.

'제발!'

  절구 무료 나눔. 언제든 연락 주세요.(010-XXXX-XXXX)

  나이스! 절구를 찾았다. 올라온 사진을 보니 책에서 본 옛날 절구처럼 생겼다. 이번에는 토끼 마음에 쏙 들 것 같았다.

'네 시, 그린 아파트 놀이터 입구.'

  약속 시간과 장소가 정해졌다. 큰길만 건너면 바로다.

"같이 가."

  막 나가려는데 거실에서 TV를 보던 동규가 따라나섰다. 그냥 무시하고 신발을 신었다.

"내가 다 봤거든."

  토끼를 말하는 걸까? 녀석이 뭔가 알고 있나 싶어 속이 뜨끔했다.

"종일 폰만 하잖아. 엄마한테 다 일러."

"이게 어디서 협박이야?"

  나는 동규 눈앞에 주먹을 들이대고는 재빨리 집을 나왔다.

  생각보다 훨씬 크고 오래된 나무 절구였다. 토끼한테 딱이다.

"멋지지? 한번 찧어봐."

  토끼는 미심쩍은 눈으로 절구를 요리조리 살폈다.

"안 되네. 이 절구는 우리나라 것이 아닐세."

"장난쳐? 절구가 필요하긴 한 거야?"

  결국 절구 주인에게 다시 연락을 했다. 사람을 이렇게 난처하게 하다니. 토끼가 너무 얄미웠다. 꼭 동규 같았다.

"형아, 나랑 놀자."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동규가 와있었다. 또 몰래 나를 따라온 게 분명하다.

"저리 가."

"놀자, 형."

"부르지 말라고!"

"혀엉, 형!"

  동규는 조금도 기죽지 않고 계속 졸라댔다.

"정우야! 동규도 있네."

  호빈이랑 승훈이다. 이제는 친구들도 동규를 안다.

"오늘 보니까 둘이 닮았다."

"진짜네. 근데 정우 아빠랑도 닮지 않았어?"

"그렇네. 가족끼리는 닮는다더니 정말 신기하다. 너희 운명인가 보다."

"됐거든!"

  내가 동규랑 닮았다니 말도 안 된다. 동규는 진짜 동생이 아니다. 내 속도 모르고 동규가 빙글빙글 웃었다.

"왜 웃어?"

"운명이래."

  이 자식이……. 동규의 말이 내 마음을 콕콕 찔렀다. 녀석한테서 벗어나고 싶었다.

"편의점까지 달리기 시합하자!"

  내가 먼저 출발했다.

"너 반칙이야!"

  호빈이랑 승훈이가 툴툴거리며 쫓아오기 시작했다.

"같이 가, 형!"

"동규도 데려가게!"

'동생 따위 필요 없어. 토끼도 내 알 바 아니야. 나는 그냥 평범한 11살이라고. 지구를 구하는 일을 내가 어떻게 해.'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친구들과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 먹고 게임을 했다. 실컷 놀다 보니 어느새 날이 어둑해졌다. 엄마한테서 톡이 와있었다.

'엄마 좀 늦어. 동규는 뭐하니?'

  아, 동규를 잊고 있었다.

  동규가 사라졌다. 집에도 없고 놀이터를 샅샅이 뒤졌지만 찾을 수 없었다. 동규를 잃어버렸다고 하면 엄마가 뭐라고 할까.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이게 다 토끼 때문이다. 눈에 띄기만 하면 귀를 꽁꽁 묶어버릴 테다. 절굿공이도 뺏어버려야지.

"귀도 절굿공이도 안 되네."

  토끼가 동규와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나타났다. 나한테만 보인다고 할 때는 언제고.

"하도 울어서 내가 나설 수밖에 없었네."

"형, 이거 완전 맛있어! 한 입 먹을래?"

  동규가 쪽쪽 빨던 아이스바를 나한테 내밀었다.

"저리 치워!"

  아이스바가 모래 위에 떨어졌다. 그러려고 한 건 아니다. 동규가 아이스바 막대를 단단히 잡고 있지 않아서다.

"엄마한테 이를 거야!"

"네 엄마도 아니잖아!"

  참고, 참고, 또 참았는데 내가 그 말을 해버렸다. 동규는 나를 노려보더니 획 돌아섰다. 그러고는 토끼와 손을 맞잡고 집으로 가버렸다.

"토끼야, 이거. 내 선물이야."

  동규 절구다. 녀석이 우리집에 올 때 가져온 장난감이다. 공룡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은 연녹색 플라스틱 절구는 손때가 묻어 꼬질꼬질했다. 저걸 토끼에게 준다고? 나중에 분명히 후회할 텐데.

"드디어 찾았다네!"

  절구를 본 토끼의 눈빛이 달라졌다. 동규는 정말 철이 없다. 진짜 엄마랑 갖고 놀던 장난감이라던데. 그건 엄청 소중한 거다.

"토끼야, 이건 동규 장난감이야. 진짜 절구를 찾아야지."

  내가 절구를 가로챘다.

"내가 찾던 절구라네. 이리 주시게!"

  토끼는 물러서지 않았다.

"바보야! 이걸 왜 줘?"

"달나라 절구를 구해주면 소원을 들어준댔어. 그리고 나 장난감 많아."

  동규가 장난감 상자에 든 것들을 와르르 쏟아냈다. 너덜거리는 고무 딱지, 한 쪽 팔이 없는 로봇, 유행 지난 몬스터 카드……. 내가 준 거지만 진짜 허접한 것들인데 그걸 전부 갖고 있었다.

  결국 절구는 토끼 손에 넘어갔다. 토끼는 허리에 차고 있던 절굿공이를 꺼내어 높이 치켜들었다.

"쿵, 토도동 동동동동……."

  맑은 소리가 마음 구석구석까지 울려 퍼졌다. 장난감 절구에서 나는 소리라니 믿을 수 없었다.

"웃음이 가득 담긴 절구, 나쁜 소원에도 끄떡없겠다네."

"나쁜 소원?"

"좋은 소원은 절구를 더 튼튼하게 만들지만, 나쁜 소원은 절구를 상하게 한다네. 자네가 빌었잖아. 동규가 사라지면……."

  나는 토끼 입을 급히 틀어막았다. 나 때문에 절구가 깨진 게 맞았다.

"동규, 소원을 말해 보게. 달에 가서 제일 먼저 빻아줄 테니."

  동규가 토끼 귀에 뭐라고 속삭였다. 토끼는 고개를 끄덕이며 빙그레 웃었다.

"난 이만 가야겠네. 소원이 엄청나게 밀려있겠군."

  토끼는 절구를 안고 창문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하늘이 토끼를 단단히 받쳐주는 듯했다.

  토끼가 돌아간 뒤로 밤하늘이 더 밝고 높아졌다. 나도 좀 달라졌다. 글쎄, 동규랑 노는 게 재미있다. 매일매일 같이 논다. 어떨 때는 내가 놀아주는 게 아니라 동규가 나랑 놀아주는 것 같다. 동규가 빈 소원이 뭔지 이제 알겠다.


 

  <당선소감>

 

   고소하고 반들반들, 윤이 나는 글 쓰겠다

  달은 제 소원을 너무도 안 들어줬습니다. 그래서 소원 비는 것을 그만뒀습니다. 생일 촛불을 불 때도 소원을 빌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나빴어. 너무 내 욕심만 부렸던 거야.' 나 자신을 위한 소원만 줄기차게 빌었으니 달이 외면할 만했습니다. 그래서 지구 평화, 모두의 행복 같은 아주아주 커다란 소원을 빌기 시작했습니다. 왠지 제가 좀 괜찮게 느껴졌습니다. 그때쯤 이야기 하나가 생겨났습니다. 이야기는 여럿의 사랑을 듬뿍 받고 무럭무럭 자라나 멀리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목적지에 잘 도착했다는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십여 년 전 그림책에서 시작된 이야기 씨앗이 동화에서 먼저 움텄습니다. 동시에 어두컴컴한 방에 살고 있던 제 그림자가 살며시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나를 좀 봐 달라고, 너의 지금은 나로부터 나왔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밌고 튼튼한 이야기들이 하늘 높이 쑥쑥 자라나 세상을 떠받치는 기둥이 되는 상상을 해봅니다. 이야기 기둥은 모양과 색깔이 제각각이지만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야기로 어린이들을 지켜라!' 이야기 기둥으로 쓸 수 있으려나 매일 밤 요리조리 들여다보다가 용기 내어 제 것을 꺼냈습니다.

  거칠거칠하지만 여기 한번 세워보라며 제 이야기가 설 자리를 만들어주신 매일신문 신춘문예 심사위원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훌륭한 동화 선생님이자 제 인생의 멘토이신 서화교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글벗과 그림책 벗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어린 나에게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을 사준 부모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하나뿐인 내 동생 신진영, 그리고 고약한 저를 참아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이 기쁨을 나누겠습니다.

  명랑 참기름집 안 명랑한 첫째 딸이 드디어 꿈을 이루었습니다. 고소하고 반들반들 윤이 나는 글을 쓰겠습니다.

● 1978년 대구 출생
● 초등학교 교사


 

  <심사평>

 

  딴청 부리며 전개 풀어내는 이야기꾼 반갑다

  많은 동화가 접수되어서 아직도 동화를 쓰는 분들이 많은 사실에 감사했다. 이제 더 이상 책은 매력적인 매체가 아니라고들 하는데 어린이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려 애쓰는 분들이 이렇게 있는 한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어린이들은 즐겁고 모험이 가득 찬 이야기를 언제나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이번에 응모된 이야기들의 소재를 보면 세대 간의 소통, 반려동물 이야기, 우정과 따돌림, 미래배경의 SF이야기 등이 많이 눈에 들어왔다.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이러했다. 첫째 어린이가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글인가. 둘째 어린이들이 읽고 나서 친구들에게 읽어보라 권할 글인가. 셋째 어린이들이 읽고 나서 마음 속에 어떤 느낌이 남아 나중에 한 번 더 읽고 싶은 글인가.

  '달나라 절구를 찾아라!'는 그 중에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달토끼 이야기는 수많은 동화에서 그림책에서 등장한 소재였다. 그런데 이번 달토끼는 달랐다. 처음부터가 긴장감이 있었다. 약이나 떡이 아니라 소원을 빻는 토끼인데 절구가 깨졌다. 이건 큰 일 아닌가. 이 사태를 어찌 수습할 것인가. 약은 약국가서 구하고 떡은 떡집 가서 사면 되는 세상이라 괜찮은데 소원은 빻는 절구는 어디에도 없으니 말이다. 절구를 찾다 동생을 잃어버리는데 그 동생은 입양한 동생이다. 절구가 깨진 이유는 내가 나쁜 소원을 빌었기 때문이란 걸 알게 된다. 사건들도 흥미롭지만 사건의 해결방법도 독자의 허술한 예상을 빗나간다. 갈등과 깨달음의 전개를 이렇게 딴청을 부리며 풀어내는 이야기꾼이 반갑기만 했다. '원시인이 어때서'도 재미나게 읽은 작품이었는데 조금 더 밀집도 있는 이야기로 구성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미 이야기는 많지만 독자들은 늘 새롭고 멋진 이야기를 기다린다. 새로이 출발하는 이야기꾼이 앞으로 우리에게 보여줄 흥미로운 모험을 기다리며 응원한다.

심사위원 : 임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