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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저격수는 딸기맛 초코바를 먹는다 / 김원태


등장인물

 

선임 (총을 가진 저격수 / 60대 후반, 극이 진행되면서 점점 늙어간다)

 

후임 (고배율 망원경을 가진 저격수 / 20대 중반)

 

시간

 

특정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 않는다.

 

장소

 

고층 건물 옥상.

 

무대

 

기본적으로 비어 있다.

 

1.

 

얇은 국방색 담요가 바닥에 깔려 있고, 그 위에 저격용 총과 무전기가 놓여 있다.

 

저격수 '선임'은 총에 달린 조준경으로 목표물을 노려보며 금방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요량으로 대기하고 있고, 저격수 '후임'은 피곤한 듯 두 팔 사이에 얼굴을 파묻은 채 엎드려 있다. 저격수 '후임' 앞에는 저격용 총 대신 고배율 망원경이 놓여 있다.

 

그들은 전문 위장복을 입고 있으며 눈과 입만 보이는 복면을 쓰고 있다.

 

선임 (동요 '고향의 봄' 가사만 바꿔 부르듯) 개소리, 새소리, 많이 들려도~ 가장 듣고 싶은 소린 따로 있다네~ (다급하게) 조준경 십자선에 잡힌 타깃의 움직임. 요동치는 심장 박동. 방아쇨 당기자 뇌관이 폭발하며 발사되는 총알! 타깃에서 뿜어대는 붉은 피와 솟구치는 아드레날린. (무전기를 귀에 대며) 상황 보골 요청하는 지휘관의 목소리. 오랫동안 묵혀둔 단 한마디'후임 저격수 훈련 완료, 복귀 요청 응답 바람' ~ 어느 세월에 이 말을 해보냐. (후임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이런 재능도 없는 놈을 뭘 가르치라고. 꼴통, 휴식 시간 끝. 타깃에 대해 상황 보고.

 

후임 (계속 엎드려 있다)

 

선임 안 자는 거 안다. 고개 들고, 자세 잡아.

 

후임 (누운 채 반응이 없다)

 

선임 (발로 후임을 툭툭 치며) , !

 

후임 썅, 진짜.

 

선임 뭐? 지금 항명하는 거야? 옛날 같았으면 즉결처분으로 총살형이야.

 

후임 군대놀이는 혼자 있을 때 하세요. 그리고 ''은 욕이 아니라 감탄삽니다.

 

선임 (짜증을 내며) 타깃에 대해 상황 보고.

 

후임 (비아냥거리며) , . 시키면 해야죠. 후임 주제에 별 수 있나요.

 

선임 저격수에겐 그런 자세가 필요해. 명령에 복종하고, 감정에 흔들리면 안 돼. 선임에 대한 예의는 특히 중요하니 명심해.

 

후임 뭐든 말씀만 하세요. (머리를 괴고 누우며) 이렇게 죽는 시늉까지 할게요.

 

선임 좋은 변화야. (사이) 또 쳐 자려고? 빨리 안 일어나!

 

후임 히히히, 말하는 걸 보면 꼰대가 확실해. 영감님, 적당히 하세요,

 

선임 너 낙하산이지? 아니면 대단한 걸 기부했어? 아무리 사람이 없어도 너 같은 새끼가 무슨 관측을 한다고인사 관리 하는 놈을 족쳐야 제대로 뽑지. (작게) 저격수 말년에 이런 새끼가 붙어서 심란하게. 상황 보고!

 

후임 매번 똑같은데 뭘 또 보고해요. 우리가 겨냥하는 타깃에 대해 1년 넘게 보고만 했어요. 이딴 고배율 망원경으로 보면 전체 그림은 볼 수도 없고, 고양이가 호랑이처럼 보여요. 이 짓을 언제까지 합니까!

 

선임 복창 준비. 저격수 한 명은.

 

후임 저격수 한 명은 중대 이상의 전투력을 가지고 있든 말든지겹지도 않아요?

 

선임 지루함을 참는 저격수에겐 그에 따른 보상이 있으며!

 

후임 무슨 보상요? 쥐꼬리만 한 월급? 아니면 초코바? ~ 초코바라면 환장하는 영감님에겐 그게 최고의 보상이겠죠. 제가 만든 초코바도 있는데 드실래요? (걸쭉한 침을 모아 바닥에 뱉는다)

 

선임 넌 배울 자세가 안 됐어. 너 같은 양아치가 무슨 저격수를 하겠다고 여길 와.

 

후임 초짜 취급은 정도껏 하세요. 저도 1년 넘게 버텼어요.

 

선임 그건 버틴 게 아니라 지나간 거야. 저격수 생활 39년 만에 너 같은 꼴통은 처음이야.

 

후임 (괴로운 듯 머리를 감싸며) 잠을 자도 깨어 있어도 스트레스 때문에 미치겠어요.

 

선임 미치려면 말하고 미쳐. 감당하기 힘들어. 저격수는 주어진 환경에 적응 못하면 끝이야. 스트레스도 풀기 나름이니까 엉뚱한 짓 하지 말고 알아서 풀어.

 

선임은 손수건을 꺼내 총에 달린 조준경을 조심스럽게 닦는다.

 

후임 영감님.

 

선임 그딴 식으로 풀진 말고.

 

후임 (한숨을 쉬며) 며칠 전 꿈에 아버지가 나왔는데 그때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어요.

 

선임 헛소리 할 시간에 장비 점검이나 하라고 했겠지.

 

후임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저격수가 되었냐?' 이렇게 물어 보셨어요.

 

선임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그래서 뭐라 했는데.

 

후임 대답을 하려는데 말이아니, 소리가 안 나오는 거예요. 아버진 화난 목소리로 '저격수가 됐냐구!' 다그쳐 물어보는데 전 금붕어 마냥 입만 뻐금거리며 말을 못했죠. 아버진 실망한 표정을 지으시며,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이 저격수나 나팔수나 비슷한 취급을 받고 있으니 둘 중에 하나라도 되라며 제 머릴 쥐어박곤 사라지셨어요. 깨고 보니 뒤통수가 얼얼한 게 누가 때린 것 같기도 한데그 총 개머리판으로 때리면 이런 혹이 생길 거 같은데.

 

선임은 휘파람을 불며 귀한 물건을 다루듯 총에 묻은 먼지를 털어 낸다.

 

후임 설마!?

 

선임 (총을 부드럽게 만지며) 볼수록 잘 빠지지 않았냐? 부드러운 곡선의 우아함. 각진 굴곡을 지나 만져지는 단단함. 이런 아름다움이 조합된 물건으로 네 놈 머리를? 쯧쯧쯧.

 

후임 겉만 백날 닦으면 뭐해요. 분해를 해서 안쪽에 기름칠을 하세요.

 

선임 그러다 망가지면? 책임질 거야?

 

후임 그게 내 총 입니까?

 

선임 책임 안질 거면 그만 나불대. (먼지를 털며) 나만의 노하우가 있어.

 

후임 지루함을 이기는 노하우는요? 그것도 있어요?

 

선임 가르쳐 주고 싶지만 넌 배울 자세가 안 됐어.

 

후임, 자세를 고쳐 앉고 집중한다.

 

선임 (은밀하게) 지루함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그냥 견디는 거야. 숨 쉬는 것과 동급이 될 때까지 무조건 견뎌.

 

후임 (짜증을 내며) 우리가 저격수는 맞아요?!

 

선임 엄밀히 말하면 넌 관측병이지. 저격수는 나처럼 자기 총이 있어야 해.

 

후임 총은 언제 주는데요?

 

선임 수백 번 말했어. 새로운 걸 묻든지 아니면 입 다물고 있어.

 

후임 저격수는 언제 시켜주냐구요! 이딴 망원경을 언제까지 봐요!

 

선임 정말 마지막이다. 관측병을 오래해 시력이 안 좋아지면, 그때 저격수가 될 수 있어.

 

후임 저격수가 보여야 총을 쏘지,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쏘냐구요. 심봉사가 총을 쏜다고 상상해 보세요. 엄한 놈 뒤통수나 날리겠죠. 그딴 궤변 말고 다른 핑계거릴 대세요!

 

선임 심봉사 곁엔 심청이. 내 옆엔 너. 넌 목표물 위치만 말해. 방아쇠 당기는 건 내 일이니까. 눈은 침침해도 사격 솜씬 살아 있어. (어설픈 시범을 보여주며) 엎드려 쏴. 앉아 쏴. 서서 쏴. 어때, 자세 나오지? 이의를 제기하고 싶으면 지휘관님께 해. 난 지휘관님 운영 방식에 특별한 뜻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후임 썅, 진짜. (바닥에 벌러덩 눕는다) 담배 없어요?

 

선임 담배 꼬나무는 저격수는 없어. 흔적이 남아.

 

후임, 천장을 보고 눕는다. 분풀이를 하듯 손과 발을 젓는 모습이 배영처럼 보인다.

 

선임 대학까지 나왔다는 놈이 잘하는 짓이다. 좋은 말로 할 때 그만해라.

 

후임 여긴 요트가 떠다니는 시원한 바다야. 맑은 하늘이 보이고, 파도는 잠잠해. 시원한 맥주에비키니 입은 여자들아니, 옷을 벗은 글래머 여자들이 수영을 하고 있어. 영감님도 같이 해요.

 

선임 그 정도 지났으면 적응할 때도 됐잖아.

 

후임 (고통을 참으며) 하다보면 어떤 쾌감이 스멀스멀 와요.

 

선임 요새 젊은 놈들은 약해 빠졌어. 날 보면 느끼는 게 없냐?

 

후임 한심해 보여요. (몸을 뒤집으며) 접영.

 

선임 일 하기 싫으면 하지 마. 널린 게 청년 백수고, 네가 안 해도 이거 할 사람 많아. 전단지 뿌리고, 구인 광고 내면 할 사람 수두룩해.

 

후임, 재밌는 생각이 떠오른 듯 미친 듯이 웃는다.

 

선임 저런 고문관 새끼가 내 후임이라니저걸 죽여, 살려.

 

후임 생각할수록 재밌어. 복면 쓴 사내 둘이 건물 옥상에서 하는 짓 좀 봐. 시력이 나쁜 늙은 저격수는 이리저리 폼만 잡고, 망원경 보는 젊은 놈은 구시렁대는 투덜이라니(비꼬며) 이런 아름다운 조합이 어디 있어요.

 

후임은 갑자기 일어나 감정을 잡으며 허공을 응시한다.

 

후임 아버지.

 

선임 그만 좀 하라니까!!

 

후임 (모노드라마를 하듯) 아버지의 가르침이 그리워요. 아버진 말씀하셨죠?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관심을 가지라고. 좋은 시력을 물려주셔서 이런 일도 하고 있어요. 한 손에 저격수 모집 전단지를 들고, 들뜬 모습의 아버지가 생각나요. 저격수가 되면 멋진 베레모에 잘빠진 총을 준다고 흥분하셨지만현실은 그게 아니에요. 저격수가 되기 위해선 관측병을 거쳐야 하고, 오랜 관측 생활을 한 후 시력이 나빠져야 저격수를 시켜준대요. 아버지이런 시스템은 어떤 새끼가 만든 겁니까? 자기 똥을 먹는 똥개도 이딴 건 안 만들겠죠. 저 영감님을 보면 제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끔찍해요이제 어떻게 하죠? (간절하게 손을 모으며) 가르침을 주세요.

 

선임 이래서 집안 교육이 중요해.

 

후임 이럴게 아니라 영감님은 방송 출연을 하세요. 건물 옥상에서 39년간 저격수 생활을 이어간 사나이. 그의 고뇌와 삶. 지루함 따위는 숨 쉬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달인 중에 달인. 제가 연락 좀 넣을까요?

 

선임 (으쓱하며) 내가 무슨! , 나 저격수야. 은밀히 목표물을 해치우는 저격수.

 

후임 눈이 쇠해 장님이 되어 가는 저격수는 아니고?

 

선임 그래서 네가 옆에 붙어 있잖아. 그 이유 아니면 벌써 쫓겨났어.

 

후임 장단 좀 맞추세요! 제가 처음부터 이랬어요? 이런 미친 짓이라도 해야 버틸 수 있다니까요!

 

후임, 허공에 주먹을 날리며 씩씩거린다.

 

선임 힘이 남아도니 저 지랄을 하지.

 

후임 자기는 프로 저격수도 아니면서.

 

선임 내가 왜 프로가 아니야! 방아쇠를 당기면 누군가 피를 본다는 건 알고 있어.

 

후임 어련하시겠어요.

 

선임 (옷에 붙여진 마크를 가리키며) 이게 특등 사수 증표야. 넌 있냐? 이거 하나 달려고 이제껏 고생했어. 이게 그냥 마크인 줄 알아.

 

(어깨를 오르락내리락 하며 움직인다)

 

모양과 색깔이 변하지? 이게 특등 사수에게만 달아주는 귀한 거야. 제대로 된 후임에게 인수 인계하고 고향에 내려가면 내 인생 활짝 피는 거야.

 

고향에 가면 마을의 자랑이 왔다고 환영 잔치에내 손 한 번 잡겠다고 아우성에 난리 나겠지. 히히히.

 

후임 이 생활을 오래하면 저도 영감님처럼 되겠죠?

 

선임 이 정도 직장이면 최고지. 눈이 쇠하면 자네처럼 좋은 관측병으로 채워주잖아.

 

(손가락을 움직이며) 이거만 멀쩡하면 평생 할 수 있어.

 

(손목시계를 보고) 벌써 간식 먹을 시간이 됐네. (초코바를 꺼내며) 먹을래?

 

후임 지겨워요.

 

선임 넌 소소한 즐거움을 몰라. 이것도 맛 들리면 끊기 어려워.

 

선임, 정성스럽게 초코바 포장지를 벗기고 크게 베어 먹는다.

 

선임 에이~ 오늘도 딸기 맛이 아니네. 정말 안 먹어?

 

후임 싱싱한 딸기가 먹고 싶어요.

 

선임 내가 훈련 받을 땐 이런 간식은 상상도 못했어.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식량이 떨어져 곤충이나 벌레 잡아먹고, 물이 떨어지면 빗물 먹으며 훈련 받은 기억이 엊그제 같아. 열대우림이며 북극해 물속, 사하라 사막까지 숨어 들어가 저격수 훈련을 받았어. 그때도 이런 간식이 있었으면 힘이 났을 텐데. 운 좋으면 딸기 맛 초코바도 먹을 수 있어. 그 맛은

 

(입맛을 다시며) 그 맛은 말이야먹어본 사람만 알아.

 

후임 영화나 게임에서 봤던 저격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적을 응시하며 방아쇨 당겼어요. 이런 모습이 아니에요.

 

선임 그건 가짜고 이게 진짜야. 엄한데 힘쓰지 말고, 공공의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후임 (떠보며) 공무원이나 비밀 요원 같은?

 

선임 그렇지! 이제야 말이 통해. 우린 가장 높은 곳에서 모든 상황을 꿰뚫고 있어. 우리 덕분에 저 밑에 있는 사람들은 마음 편히 먹고, 싸고, 잠도 잘 수 있는 거야. 적의 기습 공격에도 우리가 처리해줄 거란 믿음, 그 믿음 덕분에 저들은 일상 생활을 유지하고 있어. 우리가 있기에 세상은 시끄럽지 않고, 조용한 거야.

 

후임 화가 치솟는 게 스트레스가 다시 쌓여요.

 

선임 저격수는 감정에 예민하면 안 돼.

 

후임 우리가 겨냥하는 놈들이 누군데요? 누구기에 1년 넘도록 상황 보고만 해요.

 

선임 테러범.

 

후임 썅, 진짜.

 

선임 보고도 몰랐어? 저 놈들 테러범 맞아.

 

후임 지루하게 대치 상황만 이어가고 있어요.

 

선임 악질 테러리스트는 그걸 노려. 시간을 끌며 유리한 상황을 만드는 데 도가 텄으니까.

 

후임 싸우거나 도망가지도 않고, 투항이나 요구 사항도 없어요. 그런 테러범이 지구상에 존재 한다면 테러범 코스프렐 즐기는 놈이에요.

 

선임 저격수가 한가해 보이지?

 

후임 네.

 

선임 그, 그렇긴 하지. (단호하게) 아니지! 아무리 한가해도 노릴 만한 가치가 있으니 감시하고 있는 거야.

 

후임 뭘 감시하는데요? 저격수가 그런 것도 합니까?

 

선임 (당황하며) , 그거나 저, 저거나. 어쨌든 우리가 맡은 일이야.

 

후임은 자신의 고배율 망원경을 들고 앞으로 다가간다.

 

후임 자세히 봐야겠어요.

 

선임 뭘 또 봐. 선임이 말하면 믿어.

 

후임 기다려 보세요. 초점만 제대로 맞추면 전체 그림이 보일지 몰라요.

 

망원경을 들고 거리를 맞추는 듯 움직이는 후임.

 

선임 그 망원경으론 백날 해도 안 돼. 전체를 보려면 다른 게 필요해.

 

후임 (망원경 초점을 맞추며) 테러범이라고 지휘관이 그랬죠?

 

선임 그랬겠지.

 

후임 직접 듣지 않았어요?

 

선임 그게 뭐가 중요해. 직접 들었어. 됐지!

 

후임 테러범 조직이 어딘데요?

 

선임 몰라.

 

후임 왜 몰라요?

 

선임 나라고 다 알아!?

 

후임 선임이면 알아야죠. 지시 사항을 들어도 얘기도 안 해주면서.

 

선임 대기한 채 상황보고. 그게 끝이야.

 

후임 (망원경의 위치를 바꾸며 다양한 방법으로 보려고 하지만 어렵다) 테러범이라면 지시 내린 조직이 있을 거예요. 어디죠?

 

선임 오래 돼서 기억 안나. 망원경 제자리로 복귀해.

 

후임 중요하니 기억 좀 해봐요. 하마스? 알카에다? 헤즈볼라, 탈레반? 어디죠?

 

선임 모른다니까! 우린 명령이 떨어지면 방아쇠만 당기면 돼. 저 놈 소속, 피부가 검거나, 희거나, 중간이든 상관없어. 우린 저격하라는 놈만 쏘면 나머진 알아서 움직이는데 그게 어려워!?

 

후임 쏘더라도 누군지는 알고 쏴야죠!

 

선임 쏘는 건 내 일이야. 총도 없는 주제에 나서지 마.

 

후임 저라고 평생 망원경만 보겠어요?

 

선임 현재 사수는 나고, 관측병은 너야. 테러범은 총을 가진 저격수를 두려워하지, 관측이나 하는 너 따윈 관심도 없어.

 

후임 (망원경을 내려놓으며) 나중에도 그렇게 말하는지 봅시다.

 

선임 실력도 없으면서 입만 살아가지고부족한 네 실력이나 탓해.

 

후임 실력은 충분하다 못해 넘쳐요. 방바닥과 혼연 일체가 된 채 누워 있기 좋아하고, 손가락 멀쩡하고, 움직이기 싫어하는 사람이 바로 접니다. 이런 능력을 훈련 교관들도 부러워했어요. 타고난 재능을 썩히지 말라며 추천서까지 써줬어요.

 

선임 재능이 있으면 그대로 해. 그럼 되잖아.

 

후임 이상과 현실은 달라요. 딱딱한 시멘트 바닥에 누우려니 온 몸이 저려요. 손가락은 방아쇠를 당기고 싶은데 총도 안 주잖아요. 움직이는 걸 싫어해도 추운 건물 옥상은 너무해요. 망원경만 보고 있으니 이제 눈 앞이 흐려져 보이지도 않아요.

 

선임 안 보이면 큰일인데.

 

후임 그래도 영감님보단 낫겠죠. (복면을 가리키며) 숨쉬기 불편한데 이것 좀 벗어요.

 

선임 안 돼! 저격수는 노출되면 바로 타깃이 돼.

 

후임 그럼 더 좋죠.

 

후임, 복면을 벗고 앞으로 걸어 나간다.

 

후임 아~ 시원해.

 

선임 야!! (말리며) 자세 안 낮춰! 이 새끼가 미쳤나!

 

후임 (깊게 숨을 들어 마신다) , 생기가 도는 게좋아요. 아버지는 말씀하셨어요. 국가 유坪微되는 빠른 길이 있으면 주저 말라고. 가족에게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테러범의 타깃이 되겠어요. 못난 자식이 국가 유공자가 된다면 아버지도 자랑스럽게 생각하실 거예요.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소리친다) ~! 고통스럽지 않게 정확히 겨냥해!! 얼마나 실력이 뛰어난지 증명해!! 뭐해! 어서 쏘라니까!!

 

선임 (말리며) 죽고 싶어!!

 

후임 어서 쏘라니까!! (막아서는 선임을 뿌리치며) 놔요! (소리친다) 뭐하고 있어, !!

 

앞으로 전진 하는 후임과 막아서는 선임.

 

선임은 후임을 앉히며 복면을 강제로 쓰게 하지만 거부하는 후임.

 

후임은 반격하며 선임 등 위로 올라타 선임의 복면을 강제로 벗기려고 한다.

 

후임 도대체 그 속은 뭐가 들었기에 감춥니까?!!

 

선임 (반항하며) , 건들지 마!!! 새꺄!

 

후임 계속 힘주면 다칩니다.

 

선임 (거친 숨을 몰아쉬며) , 너 이, 이 새끼, 사고 칠 줄 알았어! 내 모, 몸에 손대지마! 저 쪽으로 꺼, 꺼져!!

 

후임 (다가가며) 얼굴을 보고 싶어요.

 

선임 (총구의 방향을 후임에게 향하며) 꺼져! 다가오기만 해봐!!

 

후임 (쏘라는 듯 두 팔을 벌린 채 허공을 응시한다) 쏘세요. 마음껏.

 

선임 저런 미친 새끼!

 

선임은 방법을 바꿔 총을 내려놓고, 머리를 땅에 박고 방어 자세를 취한다.

 

자신의 복면을 움켜쥔 채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의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는 후임.

 

선임

 

후임 하는 짓이 타조와 닮았어. 동물의 왕국에서 봤던 모습이야.

 

선임 그, 그래! 차라리 그딴 얘기나 하라니까!

 

후임 사냥꾼을 만난 타조도 그렇게 모래에 머릴 처박았죠. 장난기가 발동된 사냥꾼은 타조 엉덩이에 대고 말했어요. '얼굴을 보여라, 안 보이면 쏜다!' 그걸 들은 타조가 무슨 말을 했을까요?

 

선임 내, 내가 그걸 어, 어떻게 알아!

 

후임 정답은 영감님도 알고 있어요.

 

선임 , 그 상황에선! , 타조가 아니라고 했겠지! 죽기 싫으니까!

 

후임 맞아요. 타조가 자기는 중증 비만에 걸린 닭이라고 말했어요.

 

선임 (억지로 웃으며) , 재밌다. 그거.

 

후임 영감님은 타좁니까, 비만 걸린 닭입니까?

 

선임 나 저격수야.

 

후임 장난감 총을 가진 저격수?

 

선임 장남감이라니! 이게 mk11, 반자동 저격용 라이플이야. 보면 몰라.

 

후임 쏴봤어요?

 

선임 당연하지! 훈련 받을 땐 정도랜옙

 

후임 이 옥상에서 근무한 이후는요?

 

선임 쐈겠지(사이) , 아니분명을 쐈을 거야.

 

후임 겉에 먼지만 닦아내도 충분하다는 건 둘 중 하납니다. 총을 분해하는 방법을 잊었ems, 안에 기름칠을 한 적이 없을 거예요. 복면 좀 벗어 봐요.

 

선임 안 돼!

 

후임 테러범이 조준경에 잡히면 사살해요.

 

선임 그것도 안 돼!

 

후임 그럴 줄 알았어. 수상한 게 한두 개가 아니야. 더 이상 못 기다려요. 사수가 처리 못하면 제가 해결합니다.

 

선임 명령이 떨어져야 방아쇠를 당기지!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네 망원경 십자선에 잡힌 표적만 생각해. 어떤 변화가 있는지 보고만 하면 끝나.

 

후임 당신은 저 밑에 있는 테러범과 닮았어. 실전 경험이 없어 지루한 대치 상황만 만들어. 총 대신 나팔이 어울리는데 무슨 경험이 있다고 날 가르치려고 해? 내가 없으면 목표물도 맞출 수 없는 주제에. 내가 쏠 테니 총이나 줘.

 

선임 (막아서며) 내가 사수고, 넌 아직까진 관측병이야! 관측병은 총을 만질 수 없어!

 

후임 만진다고 닳거나 상하지 않아. 빨리 달라니까!

 

선임 이 새끼, 또 시작이야! 꼴통 짓도 하루 이틀이지!

 

후임 무슨 꿍꿍인 줄 몰라도 이건 내가 생각한 저격수 생활이 아니야. 확인할게 있으니 총이나 달라니까!

 

총을 갖기 위해 달려드는 후임. 막아서는 선임과 뒤엉킨다.

 

후임은 선임 위로 올라타더니 팔을 꺾는다.

 

발버둥치던 선빠져나와 후임의 정강이를 때린다.

 

후임은 선임의 허리를 잡고 저격용 총이 있는 근처에서 넘어뜨린다.

 

뒤엉키는 과정에서 저격용 총을 받치던 양각대가 쓰러지며 총이 발사된다.

 

소리에 움직임을 멈추는 그들. 무전기에서 소음이 들려온다.

 

선임

 

후임

 

선임 , 오발 사고?

 

후임 (자신의 망원경을 들고 살펴본다. 슬쩍 선임의 눈치를 보며 과장한다) 명중했어요!

 

선임 (울먹이며) 이런, 빌어먹을!!

 

후임 누군가 피를 흘리고 있어요!!

 

선임 (울음을 터트리며) , 안 돼.

 

후임 (선임 반응을 보고 더 과장한다) 목표물을 맞혔다니까요!

 

선임 어떻게 채운 시간인데, 이렇게 끝나면

 

선임, 무릎이 꺾이며 주저앉는다. 복면을 찢을 듯 벗어 바닥에 던진다.

 

선임 , 안 된다니까----!!

 

복면을 벗은 선임은 퀭한 눈에 기미가 많고 쪼그라든 얼굴이다.

 

백발로 가득한 머리카락이 오랜 저격수 생활을 했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후임 (혼잣말로) 백발백중. 내 예상이 맞았어. 특등 사수 치고는 너무 늙었어. 눈에 생기도 없고, 돋보기 쓸 나이야. (선임에게) 이건 누구 책임이죠?

 

선임 (후임을 바라본다)

 

후임 (자신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킨다)

 

선임 (끄덕끄덕)

 

후임 (애매모호한 미소를 짓는다)

 

소음을 내는 무전기 소리가 무대에 가득하다.

 

2.

 

시간이 흘렀다.

 

무대가 밝아지면 처음 시작된 상황과 비슷하다. 국방색 담요가 깔려 있고 두 명의 저격수가 대기하고 있다. 그들은 전문 위장복에 눈과 입만 보이는 복면을 쓰고 있다.

 

달라진 점은 총 앞에서 방아쇠를 당길 듯 대기하는 저격수는 '후임'이고, 고배율 망원경 앞에서 두 팔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엎드려 있는 인물은 '선임' 이다.

 

(두 명 모두 복면을 쓰고 있기에 관객은 누가 선임이고, 후임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후임 개소리, 새소리, 많이 들려도~ 가장 듣고~ 싶은 소린 따로 있다네.

 

참새 한 마리! (방아쇠를 당기자 총소리가 들린다) 참새 두 마리! (총소리가 들린다)

 

세 마리!! (총소리가 들린다) 날아가봤자(총소리가 들린다)

 

선임

 

후임 (선임을 발로 툭툭 치며) 일어나라. 안 일어나면 쏜다.

 

선임 (반응이 없다)

 

후임 야!

 

선임 (귀찮은 듯 살짝 고개만 들며) 계속 사격이나 하세요.

 

후임 상황 보고.

 

선임 뭘 또 보고해요?

 

후임 선임이 하라면 할 것이지, 후임 주제에 항명하는 거야?

 

선임 보여야 보골 하죠. 눈이 침침해 뵈지도 않아요.

 

후임 쓸모가 없는 관측병은 하산한다. 그건 불명예 제대로 이어지고 연금 또한 한 푼도 받지 못해.

 

선임 거리, 풍속, 습도 이상 무!!

 

후임 복창 준비!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는 저격수는 저격수가 아니다!

 

선임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는 저격수는 저격수가 아니다.

 

후임 더 크게! 한 순간의 망설임이 모두를 위험에 빠트린다!

 

선임 한 순간의 망설임이 모두를 위험에 빠트린다!

 

후임 11시 방향에 바람.

 

선임 (바람을 막는 듯 무릎을 굽히고 옷을 펼친다)

 

후임 여긴 여전히 쌀쌀해.

 

선임 (복면을 가리키며) 숨쉬기 불편한데 이것 좀 벗으면 안 될까요?

 

후임 적의 타깃이 되어 목숨 바칠 각오가 되어 있나?

 

선임 (복면을 벗으며) 누가 절 저격수로 보겠습니까? 주차 관리인으로 보겠죠.

 

후임 (복면을 벗으며) 운전면허증은 있고?

 

선임 없습니다.

 

후임 그럼 주차 관리도 힘들어.

 

선임 히히히, 그렇습니까?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수줍게 정리한다)

 

후임, 옆에 있던 군용 가방에서 베레모를 꺼내 먼저를 털고 각을 잡는다.

 

선임 아, 이건.

 

후임 (모자를 쓰며) 어때, 폼 좀 나?

 

선임 이건 제건데요.

 

후임 이제 내꺼야. 좋은 거 놔두고, 답답하게 복면만 썼어. 어때?

 

선임 처음 관측병 생활을 할 때 저도 이런 모자를 썼죠.

 

후임 왜 바꿨는데?

 

선임 누군가 알아보면 골치 아프다고 노출을 제한했는데복면을 쓰라는 건 테러범들도 우릴 노리고 있으니까 보호 차원에서 그랬겠죠. 지휘관님의 특별한 뜻이

 

후임 영감은 늘 그래, 지휘관님 특별한 뜻만 있으면 뭐든 받아들이지.

 

선임 (환하게 웃으며) 그래야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까?

 

후임은 어떤 생각이 떠오르자 미소를 짓는다.

 

후임 흠, 그나저나 고민하던 문제는 해결했어?

 

선임 뭘 말씀이십니까?

 

후임 내가 선임이 되고, 왜 자네가 후임이 됐는지.

 

선임 오발 사고로 강등 조치 됐습니다.

 

후임 그게 이유일까?

 

선임 다른 이유라면짐작 가는 게 있으세요?

 

후임 자네 고민이니 스스로 답을 찾아.

 

선임은 억울한 생각이 드는지 감정이 격해지며 훌쩍거리기 시작한다.

 

후임 어허~! 저격수는 감정에 예민하면 안 되는데.

 

선임 깨어 있는 동안, 아니 잠자는 시간까지 그 이유를 찾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긴 사람도 없는데 총은 발사됐고, 제 잘못도 아닌데 왜, 강등 됐을까요? 제가 있을 자리는 여기가 아니라 저긴데, 내가 특등 사수고 당신이 부사순데 이건

 

후임 (손을 들어 선임의 말을 제지하며) '당신'이라 부르면 항명 사례로 간주해 훈련 단계로 내려 보낼 거야. 북극해 물속에 다시 들어가고 싶어?

 

선임 아닙니다!

 

후임 정신 똑바로 차려.

 

선임 (사이) 제 강등 사유가 뭐죠?

 

후임 지휘관님의 특별한 뜻이 있겠지.

 

선임 (시무룩해진다)

 

후임 (거들먹거리며) 내가 선임이 된 이유라면 몰라도.

 

선임 뭐든 말씀해 주세요.

 

후임 들을 자세가 안 됐어.

 

선임 (각을 잡고 차렷 자세를 취한다)

 

후임 촌스럽게. (가볍게 허리를 돌리며) 그거 말고.

 

선임은 옆에 놓인 군용 가방을 뒤져 작은 낚시 의자를 펼친다.

 

후임 (앉으며) 그건 내 가방이야. 찾을 게 있으면 미리 말해.

 

선임 예.

 

후임 그래도 허전해. (입맛을 다신다)

 

선임 아, ! (바지 주머니에서 초코바를 꺼내 건넨다)

 

후임 다른 맛은?

 

선임 딸기 맛을 쉽게 먹을 수 있나요? 운이 좋아야 먹죠.

 

후임 안 주려고 숨겨 놓은 건 아니고?

 

선임 저도 그 맛이 그리운데 말입니다. 헤헤헤, 무전 한 번 때릴까요?

 

후임 긴급 상황 아니면 무전기 사용 금지. 내 지시 없이는 건들지도 마. 그나저나 아까 뭐가 궁금하다고 했지?

 

선임 뭐든요.

 

후임 그러니까 그 뭐든이, 뭐냐고?

 

선임

 

후임 (웃으며) 그새 까먹었지? 그럴 줄 알았어. 집단 기억 상실이 유행이라 하던데, 자네도 그 병에 걸린 거 아니야. , 내가 선임이 됐는지 그게 궁금했었잖아.

 

선임 아! .

 

후임 나도 몰라서 묻는 건데, 내가 어떤 사람 같아?

 

선임 (눈치를 보며 망설인다)

 

후임 괜찮아. 생각나는 대로 말해봐.

 

선임 매사에 부정적이며, 의심이 많고, 즉흥적이며, 명령에 불복종하고, 핑계거리가 생기면 아버지가 등장합니다. 저격수엔 어울리지 않죠.

 

후임 그 말을 뒤집어 보면, 부정적으로 생각하기에 그나마 위험을 빨리 감지하고, 의심이 많아 잘 속지 않고, 즉흥적이니 빠르게 대처할 수 있어. 명령 불복종? 부당한 명령을 미쳤다고 복종해? 내가 군대 훈련소 왔어? 저격수 구한다는 전단지 보고 온 거야. 또 핑계거리에 아빠가 등장하는 건그건 유전이야. 아버지도 늘 할아버지 핑곌 댔거든. 저격수가 어울리지 않다는 건그건 자네가 판단할 게 아니라 윗분들의 특별한 뜻이 있을 거야.

 

선임 제가 왜 강등됐습니까?

 

후임 몰라.

 

선임 모르면 만들어 주세요. 그래야 마음이 편합니다.

 

후임 자네는 믿고 싶은 것만 믿으니까.

 

선임 명령만 믿습니다.

 

후임 불편한 진실이 뭐가 중요해. 흥분시키는 거짓말이 더 재밌지. 담배.

 

선임 (후임에게 담배를 물려주고 불을 붙여준다)

 

후임 (연기를 뿜으며) ! 이 맛이야. 자네도 펴.

 

선임 담배 피는 저격수는 없습니다.

 

후임 그 말도 이제 틀린 거야. 내가 그 룰을 깼어. 난 저격수 아니야?

 

선임 , .

 

후임 이상한 기분 안 들어?

 

선임 담배 맛이 이상합니까? 오랜만에 펴서 몽롱하세요?

 

후임 그거 말고. 이 상황이 가짜 같지 않아?

 

선임 무슨 말씀이신지.

 

후임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 여긴 리얼리티 티비쇼나, 관객이 앉아 우릴 지켜보고 있는 영화나 연극 같은 느낌. 두 명의 주인공이 나와 어처구니없는 말만 늘어놓는 쇼 같다고 할까.

 

선임 술 드셨습니까?

 

후임 (선임을 지그시 바라본다)

 

선임 뭘 그리 보세요.

 

후임 늙었어.

 

선임 헤헤헤. 나일 먹으면 누구나 늙죠. 혀까지 굳었는지 요즘은 발음도.

 

후임 자넬 볼수록 예전에 봤던 영화 주인공이 생각나. 검술이 뛰어난 늙은 맹인 검객이 나오는 영화였어. 누구도 그 사람을 당해낼 수가 없고, 수십 명이 덤벼들어도 맹인 검객은 바람처럼 피하며 베고, 찌르고, 막는 모습이 환상적이었지. 그런데 계속 보다보니 의심이 생기더라고. 맹인 검객이 정말 눈이 안 보이는지아니면 핸디캡을 가진 척 상대방을 방심하게 만드는지 의심스러웠어. 현실이 아닌 영화니까 어느 정도 리얼리티가 떨어져도 감수할 수 있지만 계속 의문이 들더라고.

 

선임 맹인 검객이라도 칼을 잘 다룰 수 있죠.

 

후임 눈이 보이면 더 잘했을 텐데, 처음 설정을 왜 맹인으로 했을까?

 

선임 그건 작가 마음이죠.

 

후임 그 영화감독이 대본까지 썼어.

 

선임 대본을 쓰고 연출한 그 사람 마음이겠죠.

 

후임 틀린 말은 아니야. 그래서 그 영화가 마음에 안 들어.

 

선임 영화감독이 되어 그 영활 다시 만드세요.

 

후임 그럴 거야. 계속 진급해 지휘관이 되면 눈이 안 좋은 저격수가 왜 여기에 있고, 전단지로 구하는 관측병이 필요한 이유를 조사 할 거야.

 

선임 헤헤헤, 그건 저 없을 때 하시구요. 제가 강등된 이유나 말씀해 주세요.

 

후임 집요해. (잠시 고민을 하는 모습을 보이고 주변을 살핀다) 가까이 와봐.

 

선임 (귀를 가까이 한다)

 

후임 (고민한다) 자네가 강등이 된 이유는지휘관이 바꿨기 때문이야.

 

선임 무슨 이유로 지휘관이 바꿨습니까?

 

후임 계속 의문을 갖는 자세 좋아. 그럼 어떤 이유로 지휘관이 바꿨냐그게 문젠데. (고민하지만 어렵다) 그냥 대충 생각하면 안 될까?

 

선임 그 대충이 뭔데요.

 

후임 내가 이야기 만드는 작가야? , 저격수야.

 

선임 대충이라도 만들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후임 그냥 오발 사고로 발사된 총알이 돌고, 돌아, 유턴을 해서, 적군도 아닌 아군 지휘관 머릴 관통했다고 믿어. 그건 자네 같은 특등 저격수가 아니면 못했어.

 

선임 (울먹이며) , 제가 쏘지 않았습니다! 옆에서 보지 않으셨습니까!

 

후임 내가 본 대로 진술했기에 잘리지 않고 여기 있는 거야. 용의자는 자네가 아니라 이 총이야. 수갑만 채우지 않았지, 지금 벌 받고 있어. 연장 근무 300. 고물상에 팔려가지도 못하고, 평생 이곳을 지켜야 해.

 

선임 (울먹인다)

 

후임 우울증 걸리겠어. 자네 잘못이 아니라니까. 우린 이곳 규칙대로 대기한 채 명령을 기다리며 지루한 시간을 보냈어. 말했잖아, 문제를 일으킨 건 이 총이라고. 정확도 높은 이 라이플이 지휘관 머릴 관통하며 자신이 진짜 총이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는지 몰라.

 

선임 이, 이렇게 끝낼 수 없습니다.

 

후임 자넨 관측병부터 시작해도 진급이 빠를거야. 시력은 안 좋고, 경력이 있잖아. 기운 내고, 우렁찬 목소리로 아침 보고 시작.

 

선임 없습니다.

 

후임 특이 사항은?

 

선임 있겠습니까?

 

후임 잠은 잘 자?

 

선임 헤헤헤, 느는 건 잠 밖에 없죠.

 

후임 웃어? 이게 웃겨? 그렇게 잠만 퍼 자니 세상 돌아가는 걸 못 보잖아. 아직도 우리가 감시하는 저 놈들테러범 맞아?

 

선임 지휘관이 그랬잖아요, 악질 테러리스트라고.

 

후임 내가 아침에 봤는데 아니던데?

 

선임 무슨 변화라도 있습니까? 그러면 보고해야 하는데.

 

후임 (주변을 살피며) 나중에 보고하고(작은 소리로) 테러범이 바뀐 것 같아.

 

선임 네!?

 

후임 (작은 망원경을 꺼내 선임에게 내민다) 이거 저배율 망원경이야. 어렵게 구했어.

 

선임 눈이 침침해 보이기나 할까요? 헤헤헤.

 

후임 그렇다고 앞 못 보는 봉사는 아니잖아.

 

선임은 주머니에서 돋보기를 꺼내 쓰고 망원경을 본다.

 

후임 뭐가 보여?

 

선임 흐릿하게 점이 보입니다.

 

후임 (도와주며) 초점을 맞추면전체 그림이 보이지?

 

선임 조금만 더요. 지금, 좋습니다.

 

후임 보이는 걸 말해봐.

 

선임 예쁜 꽃들이 가득하고꽃 구경 나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화단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작업하는 사람들도 보이고서로 눈인사를 주고받으며 웃고 있어요.

 

후임 (망원경을 뺏어 직접 본다) 뭘 보고 있는 거야? 아니잖아. 화단 울타리며 작업하는 사람, 꽃 구경 나온 사람이 어디 있어. 제대로 보라니까. (망원경을 다시 건네준다)

 

선임 (망원경으로 다시 보며) 제가 보기엔 잘빠진 건물 밖에 안 보이는데 말입니다.

 

후임 가운데 선을 긋고, 검은 옷과 빨간 머리띠로 대치하고 있잖아.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선임 헤헤헤, 그걸 보라는 말씀이셨습니까? 하도 습관이 돼서 못 본 척 했죠. (망원경으로 보며) ~ 망원경 성능 좋네요.

 

후임 검은 옷과 빨간 머리띠는 상황이 어때 보여?

 

선임 뭘 그런 걸 봅니까. 다른 그림들도 좋은 게 많은데. 예쁜 아가씨들도 있고, 산책 나온 부부도 있어요. 꽃이 지는 계절이네요. 꽃 구경 가본 기억도 가물가물 한데 말이죠.

 

후임 차렷!! 내가 보라는 거 보랬지?

 

선임 봤어요.

 

후임 왜 못 본 척해?

 

선임 봤다니까요.

 

후임 우리가 겨냥했던 놈들이야?

 

선임 모르죠, 관측병은 선임이 했잖아요.

 

후임 내가 봤던 놈들이 아니야. 요즘 테러범들은 교대로 근무해?

 

선임 그럴 수도 있죠. 상상하면 현실이 되는 세상인데.

 

후임 그래도 이건 너무해.

 

선임 헤헤헤왜 이러십니까.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죠. 어려서 잘 모르나 본데요, 살다보면 눈과 귀를 막는 법도 좋은 처세술에 속하죠. 저격수라면 지녀야 할 덕목입니다.

 

후임 관측병 주제에 설교하고 자빠졌어.

 

선임 헤헤헤, 작은 경험을 말씀 드렸는데 기분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후임 어쨌든 검은 옷과 빨간 머리띠 중에서 누가 테러범 같아?

 

선임 모르겠습니다. 누굽니까? 우리의 적이.

 

후임 나도 몰라.

 

선임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한 쪽이 테러범으로 정해지면 그 쪽으로 총구를 겨냥하면 안 될까요?

 

후임 정보가 잘못돼 엉뚱한 놈을 겨냥하라면?

 

선임 명령이면 해야죠.

 

후임 쐈는데 일반인이면 어떻게 해. 명령 불복종이든 나발이든 난 안해.

 

선임 일반인이라 생각했는데 그들이 테러범이면요?

 

후임 음, 그것도 문제고.

 

선임 옳고 그름을 누가 판단하죠?

 

후임 그게 문제라니까. 자넨 그런 기술 배우지 않았어?

 

선임 헤헤헤, 많은 걸 바라세요. 그럴 바엔 명령대로 하는 게 낫겠어요.

 

후임 명령을 내리는 지휘관이 사기꾼이면 우리가 뒤집어쓰는데?

 

선임 방법이 없어요. 궁금해도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게 편합니다.

 

후임 방법이 없지는 않아.

 

(총이 있는 자리를 비켜주며) 알려줄 테니 여기서 사격 자세 준비해.

 

선임 지금요?

 

후임 말이 끝났으면 바로 바로 움직인다! 사격 자세 준비!!

 

선임 (엉거주춤 엎드리며) , 사격 자세 준비.

 

후임 준비됐어?

 

선임 뭐가요?

 

후임 총 쏠 준비.

 

선임 정말 쏩니까? 이 총은 제게 아닌데요.

 

후임 돌려가며 쓰면 되지. 이 곳에 근무한 이후로 처음이지? 관측병에게 누가 이런 대우를 해줘. 나니까 해주지. 조준경에 눈 갖다 대고 방아쇠에 손가락 넣어.

 

선임 (따르지 않고 망설인다)

 

후임 지시를 받으면 바로 반응한다!

 

선임 그게 아니라.

 

후임 믿어. 그 잘난 믿음을 붙들고, 내가 시킨 대로 하라니까.

 

선임 이건 좀.

 

후임 어딜 겨냥 하냐면(주변을 살펴보며) 요즘 참새가 많던데아니다, 자넨 눈이 나쁘니 비둘기가 낫겠어.

 

선임 저격수는 지휘관님 명령 없이 총질하지 않습니다.

 

후임 날 지휘관이라 생각해. 계속 승진해서 거기까지 올라갈 테니.

 

선임 (일어나며) 지금은 아니잖아요.

 

후임 작은 호기심만 있으면 어떤 놈이 테러범인지 알아낼 수 있어.

 

선임 어떻게요?

 

후임 일단 해봐. 해보기 전까지 몰라.

 

선임 먼저 말씀해 주십시오!

 

후임 총을 쏜 후 우리에게 반격하는 놈이 테러범이야. 공공의 일을 하기에 자부심 하나로 버틴 우리야. 그런 우릴 공격하면 그들이 누구겠어. 악질 테러리스트지. 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누가 테러범인지 모를걸.

 

선임 그래도이건 아닙니다!

 

후임 이제 보니 맹인 검객처럼 자네도 의심스러워. 사령관이란 작자가 우릴 속인 건지, 아니면 알고도 자네가 속아 준 건지 확인할 거야. 실전에 대비해 비둘기 잡는다고 생각하고 방아쇨 당겨.

 

선임 , 못하겠습니다.

 

후임 직접 보고도 못 믿어?

 

선임 자, 잘못해 총 소리에 놀라 정해진 선을 누가 침범하면요? 그땐 걷잡을 수 없어요.

 

후임 그럼 더 재밌지. 얼마 만에 보는 스포츠야. 경기 시작을 알리는 총 소리에 흥분 할걸. 검투사처럼 보이는 저 놈들이 이 상황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 최소한 이 사태에 관심이라도 있는지 알아보자니까.

 

선임 못하겠습니다!!

 

후임 그 총이 진짠지 가짠지도 모르잖아!

 

선임 mk11, 반자동 저격용 라이플 맞습니다!

 

후임 진짜 총은 손에 쥐었을 때 느낌이 있어. 감각이 마비된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 총 장남감이야. 요즘 장난감은 정교하게 만들어 미젠지, 메이드 인 차이난지 구분이 안 돼. 발사도 안 되니, 특등 사수가 되고 싶다면 방아쇨 당겨!!!

 

선임 (울먹이며) , 그러지 마세요.

 

후임 (발을 들어 찍으려는 듯 위협을 가한다) 명령이야!! 방아쇨 당겨!!!

 

선임 (울음을 터트리고, 객석을 향해 총을 겨눈다)

 

후임 복창 준비!

 

선임 , 복창, 준비

 

후임 저격수에겐 고뇌 따위는 없고, 단지 총의 반동을 느낄 뿐이다!

 

선임 저, 저격수에겐

 

후임 더 크게!!

 

선임 저격수에겐 고뇌 따위는 없고!! 총의 반동을 느낄 뿐이다!!!

 

후임 히히히, 방아쇠를 당겨 신나게 쏜 후 누가 우릴 공격하는지 보자구!

 

선임은 총구의 방향을 후임에게로 돌린다.

 

후임 이 쪽이 아니라 저 쪽.

 

선임 , 그만해!!

 

후임 가짜가 아닌 진짜 저격수가 되고 싶으면 총구 돌려.

 

선임 그만하라고!! 꼴통 새끼야!!

 

후임 총 싸움 하고 싶어? 나도 총 있어.

 

후임, 바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며 선임을 겨냥한다. 후임이 꺼내 든 건 총 모양을 취한 자신의 손이다.

 

후임 이러면 공평하지?

 

선임 입 닥쳐! 망할 놈의 새끼야!!!

 

후임 저격수란 놈이 총 한 번 쏴보지도 못했으면서 누굴 겨냥해? 눈깔이 보여야 목표물을 겨냥하지. 가깝다고 맞출 수 있겠어?

 

선임

 

후임

 

선임 , 내가 전생에 무, 무슨 죄를 지었기에널 만났냐?

 

후임 영감님 죄는

 

선임, 방아쇠를 수 차례 당긴다. 무대에 가득한 총 소리. 긴 사이.

 

후임은 멀쩡한 채 선임을 바라본다.

 

당황해 하는 선임.

 

선임 , , .

 

후임 거 봐. 쏘기 전엔 모르지? 소리는 같아도 그게 실탄인지 공포탄인지.

 

선임 (바닥에 주저앉는다)

 

후임 이딴 짓을 하는 놈들은어떤 새낀지영감님은 알아?

 

무전기의 소음이 무대에 가득하다.

 

3.

 

시간이 흘렀다. 첫 장면과 비슷하다.

 

다른 건 총구의 방향이 객석이 아니라 반대 쪽인 무대 안 쪽 벽을 향해 있다.

 

관객들은 엎드려 있는 '선임' 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

 

위장복에 복면을 쓴 '선임' 은 총구 방향으로 두 팔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엎드려 있다.

 

움직임은 없고 돌처럼 굳어진 모습이다.

 

'후임' 은 군용 가방을 어깨에 멘 채 무대에 등장해 선임을 바라본다.

 

후임

 

선임

 

후임 말 없이 떠나면 우리 영감님 서운해할까봐 들렀어요. 아직도 고향에 가지 못하고 여길 지키고 있네요. 요즘은 시멘트 벽이 타깃이 됐나요?

 

선임 (움직임이 없다)

 

후임 아버지 말씀이 요즘은 바람의 방향이 수시로 변해 저격수들이 현충원에 묻히려면 백년 넘게 걸린대요.아버지 얘긴 지루함을 견디기 위해 지어낸 말인데계속 믿은 건 아니겠죠?

 

선임

 

후임 당신처럼 수많은 저격수들이 대기하고 있는 걸 봤어요. 그들도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는 채 명령에 복종하고 있었죠. 제가 테러범이 되면 이딴 짓을 꾸미는 놈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선임 (움직임이 없다)

 

후임 (선임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 퇴장한다)

 

후임이 퇴장하자 선임은 몸을 돌려 객석을 향해 앉는다.

 

모든 관절이 굳은 듯 몸을 돌려 앉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자세가 부자연스럽다.

 

복면을 벗고 머리카락을 정리하면서 후임이 나간 방향을 다시 한 번 살펴본다.

 

선임은 주머니에서 초코바를 꺼내 조심스럽게 초코바 포장지를 벗겨낸다.

 

선임 (배시시 웃으며) 이 초코반 먹기 전엔 무슨 맛인지 몰라.

 

(크게 한 입 먹고서는 얼굴이 점점 밝아진다) 딸기 맛 초코바히히히, 누군가 저격 명령을 받았나? 어떤 놈인지 몰라도 오늘 하루 바쁘겠어. 헤헤헤.

 

선임은 휘파람으로 '고향의 봄'을 부르지만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소리가 새어 나간다. 무전기의 치직거리는 소음이 무대에 가득해지고, 그 소음이 잦아들면서 보고서를 작성하는듯 컴퓨터 자판을 빠르게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보고서를 마무리하는 듯 마지막 자판을 누르는 소리가 더해지면 무전기를 통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소리) 상황 보고계속 감시 중거리에 사람들이 많다.

 

어떤 의도로 그들이 모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테러범이 확실하다.

 

그들은 악질 테러리스트다.

 

누군가를 저격하는 총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당선소감]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을 희곡에 담으라고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을 만난 때부터 조금씩 변화되는 제 자신을 보았고, 몇 년간 의미 없이 보내던 시간을 접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아 희곡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단 한 작품을 쓰더라도 잡설로 채워진 글이 아닌 의미 있는 글을 쓰겠습니다.

 

학생 시절에 가르침을 주셨던 서일대학 연극과 김성빈 선생님, 신동인 선생님, 송윤석 선생님, 김금지 선생님 감사합니다. 공연 현장에서 이끌어 주신 극단 가변 송형종 선생님과 극단 루트21 박재완 선생님, 두 분이 있었기에 계속 연극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가슴 깊이 존경하는 마음이 있지만 단 한 번도 그 말을 하지 못한 고연옥 작가님, 선생님은 제게 세상을 달리 볼 수 있는 세계관을 주셨고 오랫동안 쓰지 않던 희곡을 다시 쓸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매일 자식을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부모님과 가족들, 올리브 앤 극단 곰달래 식구들. 여러분이 있기에 조금씩 전진할 수 있었습니다. 유대헌 작가님과 조명 디자이너 이경천, 작가 손경희. 끝없이 믿어주고 인내해준 아내인 동시에 올리브 앤 극단 곰달래 대표인 김명진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심사위원 선생님, 깊이 감사 드리고 더 좋은 작품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심사평] 작위적이지 않은 설정·역동적 대사·인간에 대한 통찰 돋보여


올해 응모작 수는 대폭 증가하여 총 157편이다. 응모작들의 수준 또한 고르게 높아진 것과 함께 자기만의 색깔과 희곡적 언어를 가진 참신한 스타일의 작품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심사위원들에게는 매우 반갑고 즐거운 일이다.

 

본심에 오른 작품은 김태범의 '무정자증', 황순희의 '우리는 약속이었다', 손 미의 '', 김원태의 '오늘의 저격수는 딸기 맛 초코바를 먹는다'이다.

 

'무정자증'은 시종 조롱하는 듯한 대사의 유희성과 희화화된 캐릭터 구축이 좋았으나, 장황한 사건 전개에 못 미치는 다소 평이한 결말이 아쉬웠다.

 

'우리는 약속이었다'는 우화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극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전형적이고 단선적인 내러티브가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은 언어적 감수성이 뛰어난 작품으로 간결한 대사와 시적으로 압축된 무대 울림이 좋았다. 그러나 관념성과 추상성이 소통될 수 있는 연극적 서사로 전환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오늘의 저격수는 딸기 맛 초코바를 먹는다'는 독특한 소재를 통해 부조리한 권력 시스템을 냉소하고 풍자한 작품이다. 희극적으로 설정된 상황이 전혀 작위적이거나 억지스럽지 않게 읽혀지며, 무엇보다 두 명의 인물이 끊임없이 미끄러져가듯 떠들어대는 대사의 역동성과 관계가 전복되는 극의 구성미가 재밌었다. 그러나 자칫 소모적이고 산만해 보일 수 있는 곁가지의 대사들이 극의 진행을 방해하고 있어 정제가 필요한 듯하다.

 

최종적으로 '''오늘의 저격수는 딸기 맛 초코바를 먹는다' 두 작품을 놓고 논의한 결과 사회와 인간에 대한 통찰력으로 신뢰감을 준 '오늘의 저격수는 딸기 맛 초코바를 먹는다'를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어찌 보면, 신춘이란 말에는 회춘이라는 뜻도 담겨 있겠다 싶다. 이번에 당선된 작품은 물론이고 당선되지 못한 작품들까지도 심사위원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대한민국 연극계에 다시 한 번 약동하는 봄의 기운을 불어넣어 주었으면 한다.

 

심사위원: 한태숙, 최치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