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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장은 쓴다 / 이영재


눈은 이미 내렸다 새가 날아온다 그리고 새는 날아간다 이곳에서 시가 시작되는 건 아니다

 

세상엔 먹을 것이 참 없다 먹는 것이 얼마나 괴로웠으면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만들 생각까지 했을까

 

허기가 시보다 나은 점이라면 녀석은 문을 두드릴 줄 안다는 것 요리는 곧 완성 된다 완성되기 전에 이 깨끗한 접시를 쓰레기통으로 던질 수 있을까

 

내 몸에겐 건강한 학대가 필요하고, 다행히 이곳은 학대에 매우 알맞다 떠나는 새조차 둥지를 훌륭하게 지을 줄 안다

 

시를 포기하고 시인이 된다는 건 멋진 일이다 더 멋진 건, 죽어서 시인이 되는 일

거짓이다 누구도 시인이 될 수 없고 되어선 안 된다 담배를 문 주방장만이 오래도록 써왔을 뿐이다

 

휘파람이 휘파람을 불 생각이 없듯 우체통은 붉을 필요가 없다 다행히 라면집은 가끔만 문을 연다

 

요리는 완성될 필요가 없다 이 깨끗한 접시를 온전하게 버리기 위해

 

철새가 돌아올 둥지를 삶아 먹고 이사를 할 것이다 겨울과 더 가까운 곳에 주방을 열고 문을 닫을 것이다 어디서든, 시작하지 않기 위해

 

거짓인 명제가 가득한 접시 위에만

쓴다



[당선소감] 고민하고 괴로워하며 ‘삶’을 쓰겠다


무엇보다, 아주 조금 운이 좋았습니다.

 

감사의 말을 전하는 게 먼저인 것 같습니다. 부모님. 생각만 해도 늘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계속 시를 쓰게 된다는 것, 사실 앞으로도 그 죄송한 마음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는 것에 더욱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선생님들. 김혜순 선생님, 채호기 선생님, 이광호 선생님. 전해주셨던 말씀들이 저를 지금껏 견디게 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서울예대에서 배움을 주셨던 수많은 선생님들, 모두 감사합니다.

 

부족한 시를 뽑아주신 심사위원 분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어주었던 나의 친구들. 효준, 준섭, 상우. 고맙다. 이름을 적지 못한 수많은 친구들도. 윤동주, 백석, 이상, 김춘수, 김수영. 이 시인들의 이름을 적어보고 싶었습니다.

 

며칠 동안 수상소감에 적을 말을 생각해 봤는데 도통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시에 대해서 말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이미 시는 제게서 분리된 것 같습니다. 이제 시는, 시의 몫입니다.

 

사는 얘기를 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늦은 졸업입니다. 주말마다 열두 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고 곧 서른이 됩니다.

 

신춘문예 당선을 하긴 했지만 이력서는 꽤 많이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서울의 월세방은 비싸고, 라면은 더는 먹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사회의 속도에 뒤처지고 있다는 좌절감은 도통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이쪽의 뉴스와 저쪽의 뉴스를 매일 보려고 노력합니다.

 

누군가는 살아있지만 이미 살아있는 상태가 아닌 것 같습니다. 거리의 찬 바닥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사진으로만 접합니다. 혼자 있을 때도 웃어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럼에도 거울 속 얼굴은 그다지 안녕해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남들만큼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일뿐인 것 같습니다.

 

예술과 정치에 대해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우선 주어진 대로, 써 나가겠습니다.

 

이영재

 

이영재 당선자 약력

1986년 충북 음성 출생

서울예술대학 졸업



[심사평] 기발한 詩想·세련된 언어감각 지녀


올해도 900명이 넘는 예비시인들이 응모해 주셨다. 현실적 보상이 따르기 어려운 이분들의 고독한 헌신에 한국문학은 크게 힘입고 있다. 그 아름다움을 일일이 기려야 하겠지만, 차라리 아쉬운 점을 몇 가지 적시하는 것으로 상투적 덕담에 대신하려 한다.

 

우선 긴장이 떨어지는 설명조의 사설이 적지 않았다. 이것은 장황한 관형어구의 습관적 사용과 무관하지 않은데, 그것으로는 산문과 구별되어 마땅한 시적 촌철살인을 구현하기 어렵다. 두 번째로, 언어 일반에 대한 자각, 모국어에 대한 자의식이 부족하게 느껴졌다는 점이다. 젊은 세대로 갈수록 생활언어의 많은 부분이 국영문 혼용체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구미 중심의 가속적인 세계화 추세가 가져온 불가피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누구보다 언어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시인들은 모국어의 쓰디쓴 현실에 좀더 깨어 있어야 마땅하다. 이것은 편협한 외래어배척운동을 다시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해요’ ‘이에요투의 어미가 유행처럼 많았다는 점도 지적하고자 한다. 여성스러운 경어체 입말의 실감이라는 특수 효과가 없지 않지만, 이것은 시를 주관화, 연성화하고 자칫 시를 사적 독백 쪽으로 끌고 가는 역기능을 수행하기도 하는 듯하다. 역시 자각과 절제 속에서 제한적으로 구사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요컨대, 작위적으로 시를 꾸려가고 있거나 낡은 시적 투식을 답습하는 투고작들 대부분에서 그러한 문제들이 발견되는데, 그것은 시작에 임하는 태세의 안이함이라는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검토를 거쳐 김동환 민현 이영재로 범위를 좁힌 다음 재독에 들어갔다. 서민적 삶의 그늘을 침착한 시선으로 포착하고 있는 김동환의 시들은 고르고 품위가 있었다. 반면, 시적 긴박감이 부족한 느낌과, 안정적인 대신 선도가 떨어지는 비유와 이미지들이 지적되었다. 민현의 시들은 일견 낯익은 듯했지만, 절실함이 그 내부를 채우고 있는 간곡’ ‘아이가 자는 방등은 아름다웠다. 어투의 기시감을 극복한다면 그는 더 높은 시적 성취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이영재는 언어에 대해 좀더 민첩하고 세련된 감각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것은 존재의 미세한 기척들에 대한 민감함과 결부된 것이었다. 빠른 리듬은 독특하고 매력적이었으며, 좋은 발상과 표현이 신인으로 손색없었다. 그를 당선자로 합의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언어의 운용에 깊이와 신중함이 더해지기를 당부하는 우리의 노파심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김사인·최승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