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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배원 / 권삼현

 


그동안 뭐 했냐고 묻지 마라
우체국으로 걸어간 봄은 온통 꽃 필 생각이다
울퉁불퉁 생긴 대로 볼품없는 세월
집배실 옆 차르르르 햇살 엎질러진 모과나무는 안다
향기란 어쩌면 제 몸을 뚫고 나오는 연둣빛 새순 같은 것
오늘도 백오십리길
꽃 소식 앞장세우고 배달 나가는 집배원
빨간 오토바이 휘청이도록 봄바람 분다
풀빛 연애편지는 내가 업어주고 싶은 것들
바람 불고 황사 자욱한 땅에 모과나무는
한 발 내딛을 때마다 꽃 필 생각이다
봄을 찾아 가다가 막막했던 모든 것들이 꽃길이다
번지가 지워진 봄날의 주소를 한 땀 한 땀 기워가며
환한 우표로 들여다보았을 그처럼
제 몸에 감춘 것들은 기다리다가 꽃이 된다
아침 오는 길목 푸른 물길 지피는 봄바람 속에
우리 살아가는 동안 봄날이다
꽃 피는 나무다




[심사평]


여러 작품 속에서 '집배일기' 외 6편이 손에 잡혔다. 아마도 시인 스스로가 우체국 집배원으로 보인다. 집배원의 삶을 살며 느끼는 애환과 소소한 느낌들을 매우 솔직하고 담백하게 표현했으며, 무엇보다도 희망적으로 그리고 있다. 6편의 작품 중 ‘집배원’과 ‘실천에 대하여’의 시적 완성도가 특히 높았다. 그 중 ‘집배원’을 가작으로 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