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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오페이아의 숲 / 임춘상

“아무리 뒤져도, 노인이 말한 유골은 없어”
“그럼, 이걸?”
“어차피 유골은 유골이잖아, 이름 써놓은 것도 아니고”
“내가 구덩이에서 유골과 누워있는 꿈을꿨어”
“한데 더 지랄 같은 건, 내가 해골을 끌어안고 시위대에 쫓기고 있는 거야”

 

 

 “좌우간 집터 근처라니까 찾는 건 땅 짚고 헤엄치기야.” 

 철원 터미널 앞에서 〈개미인력〉이라는 간판을 걸고 소개업을 하는 사무장은 우리에게 일을 권하며 이렇게 뇌까렸다. 민통선에 묻힌 유골을 찾으면 일당을 주겠다는 것이다. 의뢰인은 기력이 쇠한 노인이었다. 오랜 세월 출입이 제한된 민통선 일부 지역이 농사를 위해 풀렸다는 것이다. 육이오 전쟁 때 피란하느라 시신을 집터 근처에 묻었다는, 유골이 있을 만한 곳을 붉은 사인펜으로 설명하던 노인은 가능하냐고 물었다. 사무장은 확신을 가진 듯 장담했고, 찾으면 일주일 목돈을 준다며 노인의 걱정스러운 말에도 막무가내였다. 

 “대신 한 대가리에 십오만 원씩 주지.” 사무장은 하루 일을 대가리로 말하며,

 “간첩으로 오인받을까 봐 그래? 그런 걱정 싹 치워. 부대장한테 허락받았으니까” 하고 금방이라도 찾을 것처럼 자신 있는 목소리를 했다. 

 한 사람당 하루 노임도 더 올린 조건이다. 배가 무덤처럼 부른 사무장은 나와 준식에게 일주일 여유도 줬다. 그 이상 시일이 걸려도 일주일 노임밖에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즉, 하루 노임 십오만 원에서 사무장은 개인 소개비를 매일 이만 원씩 챙기는 셈이다. 

 “유골이 흙으로 썩어 있어도 말입니까?” 준식이 물었다. 

 “그럼 유품이나 십자가, 썩은 성경책이라도 찾아와. 대신 반 대가리야. 엉뚱한 거 가지고 와서 우기면 재미없어.” 

 “십자가요?” 내가 물었다.

 “아버지가 목사였어.” 노인이 대답했다. 

 의뢰인이 짐작한 곳을 파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무모하게 덤벼든 것 같다. 아무 터나 파헤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수시로 대남방송이 들리고 온갖 짐승들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험한 산과 숲, 지뢰가 묻혀 있는 살벌한 지역이다. 출입에도 시간과 날짜, 목적, 신분 등을 밝히는 절차가 있다. 제한시간이 되면 특정 지역을 나와야 한다. 수십 년간 주민 접근이 금지되어 경계와 감시가 삼엄하다. 하지만 농민과 실향민을 위해 출입이 일부 허가됐다. 사무장은 우리가 그곳에 도착할 즈음이면 부대장에게 모든 서류를 팩스로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엉뚱한 행동을 하다가 간첩으로 오인받는 건 알아서 하라며. 

 처음부터 길은 따로 없었다. 카시오페이아 별자리가 있는 곳이면 좋았다. 밤마다 별들은 숲과 속삭이며 잔치를 벌이고, 나무는 사시사철 계절의 이야기를 나눴다. 땅도 제 몫의 침묵으로 견뎌왔다. 지천으로 핀 코스모스 꽃들이 마음껏 어울리고, 뭔가 재잘재잘 나누는 새들과 목숨이 두렵지 않은 짐승들, 폭음이 사라진 나무들은 스스로 그 답을 내리고 있었다. 하늘이 내린 숲이 자유였으며 뿌리였다. 우린 카시오페이아를 꿈꾸며 소로의 숲을 헤맸다. 가을산은 화장을 막 끝낸 새색시처럼 알록알록한 단풍이 물들어 있었다. 화려한 차림으로 외출을 서두르는 것이다. 

 우린 삼일 동안 쉴 틈 없이 구덩이 파는 짓에 몰두했다. 힘이 부치도록 인간의 흔적이 닿지 않은 숲은 험난하고 더워 나무들도 수시로 우리를 그늘로 끌어들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온몸이 쿡쿡 쑤시도록 지쳐갔다. 노동으로 몸이 단련될 만도 한데 팔과 다리엔 근육이 배고 허리 통증이 도져 잠을 설쳐야 했다. 유골을 찾지 못해 초조한 근심도 늘어갔다. 하지만 준식 녀석은 돼지처럼 몸이 뚱뚱해서인지 눈만 감으면 업혀가도 모르게 잤다. 먹는 것도 그랬다. 식당에서 싸준 도시락도 욕심을 냈고, 대 놓고 먹는 식사도 고봉밥을 두 그릇씩 해치웠다. 언덕 숲을 오를 땐 땀을 쏟으며 식식거렸지만 자존심이 강한 탓인지 피곤하거나 귀찮은 내색도 없었다. 땅 파는 일이 천직인 것처럼 삽질 짓을 즐겼다. 성격이 급해 아무 데나 찔끔찔끔 파헤치기도 했다. 

 온 산의 나무들은 가을볕에 낱낱의 잎을 뜨겁게 허락하고 있었다. 계절의 인연을 어머니 품처럼 이루던 민통선의 숲, 울긋불긋 요란한 외출을 꿈꾸는 골짜기마다 시냇물이 졸졸 속삭인다. 나른한 들판 저편에는 연기를 피우며 새참을 준비하는 서넛의 아낙과 벼가 누렇게 익은 논에는 풍작을 위한 농군들 손도 바쁘다. 

 굉굉 쿵더쿵! 

 침묵의 땅을 깨우는 북과 꽹과리 소리도 산을 오른다. 

 준식의 곡괭이 짓도 다부지다. 뼈를 한번 발견하자 오기가 생겼는지 땀 씻을 틈도 없이 웃옷을 벗은 우람한 근육의 힘이 단단한 땅을 메꽂는다. 산 하나를 다 파헤칠 태세다. 질릴 때도 됐는데 한번 잡은 곡괭이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구덩이도 사방으로 뚫렸다. 어떤 건 발목만 빠지는 정도고, 땅이 무르다 싶으면 허벅지까지 파헤친다. 몇 곳은 녀석의 뚱뚱한 덩치가 누워도 남을 구덩이가 생겨난다. 쿵! 쿵! 곡괭이 짓이 미친 듯 집요하다. 깡마른 덩치의 내 삽질은 점점 버거워지며 찾는 무덤은 어디에도 없다. 판 구덩이만 해도 벌써 수십 군데가 넘는다. 그렇다고 들인 품을 놓으면 한 푼도 받지 못한다. 오랜 세월 키를 세우고 허리가 굵어진 나무나 복잡하게 뻗은 뿌리, 넝쿨이 제 고집대로 자란 숲 탓에 힘이 배로 든다. 수염도 깎지 않아 짐승의 몰골 같다. 

 그다지 덥지 않은 날씨인데도 쉴 사이 없이 품을 들이다 보니 그늘에 앉아 있어도 등줄기가 축축 젖는다. 

 “태어나서 이런 지랄은 처음 해봐.” 낙엽을 거두고, 두어 삽을 파다 두개골 하나를 발견한 준식이 내뱉었다.

 “또 잘못 짚었어. 그건 살쾡이 대가리야.” 소나무 그늘에서 수건으로 땀 닦던 내가 말했다. 

 “오늘까지 몇 대가리 일이지?” 

 “밥숟갈만 놓으면 시체처럼 잠만 자니 세월 썩는 줄 모르는군.” 

 “다섯 대가리인가?” 

 먼 들판엔 꽹과리 소리가 멎었다. 농군들이 빙 둘러 앉은 것을 보니 새참을 먹는 모양이었다. 

 “막걸리나 한 잔 찌그리자고.” 풀숲에 주저앉은 준식은 넉살을 떨며 미적지근한 막걸리를 병째 들이켰다. 

 “태어나서 이렇게 맛 좋은 술은 처음이야.” 

 “노동의 대가는 다 그래.” 나는 막걸리를 빼앗으며 말했다.

 “이번엔 느낌이 달라. 주변에 뼈가 자주 나와.” 

 “못 찾으면 네놈 뼈라도 가져가지 뭐.” 

 “정신 나간 놈!” 

 오후 세 시가 되자 준식은 구월의 햇볕에 얼굴과 등이 벌겋게 탔음에도 불구하고 최후의 발악처럼 곡괭이 짓에 부지런을 떤다. 

 “설마, 멧돼지를 사람 뼈라고 우기는 건 아니겠지?” 내 말에 녀석은, 

 “북한군도 있고, 중공군도 있어. 크로마뇽인이 아닌 이상” 하고 살찐 배가 출렁거리도록 한동안 낄낄거린다. 

 “빌어먹을! 또 짐승 뼈야. 이러다간 땅굴 판다고 붙잡혀가겠어.” 

 구덩이에 얼굴을 처박을 듯 곡괭이와 삽을 이용해 땅을 파던 준식이 무릎이 차기도 전에 멈추며 투덜거렸다. 손에 집어든 뼈로 삽에게 화풀이하듯 탁 치자 힘없이 부러진다. 녀석의 발악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으려는지 주위를 빠르게 살핀다. 어떤 죽음의 성질도 견디겠다는 듯 독기를 품은 눈으로 손바닥에 침을 퉤 뱉으며 삽을 움켜쥐더니 어금니를 지그시 깨문다. 주변은 바람에 요동하는 갈대의 몸부림과 어둑어둑한 숲에서 당장 짐승이라도 출몰할 것처럼 을씨년스러운 위협이 느껴진다. 왁자한 까마귀 울음도 적막을 흔든다. 게으름을 피우던 볕도 능선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들입다 쑤셔도 묘혈(墓穴) 흔적은커녕 화톳불 자리도 없으니, 집터부터 다시 찾아보자.” 허리까지 차는 구덩이에 서서 내가 말했다. 

 “거긴 천지가 돌이고 기왓장인데? 아까 팠던 자리도 상엿집이 분명했다고.” 

 준식은 상엿집으로 여겨지는 근처에 시체를 묻었을 거라고 우겼었다. 색색의 무명천이 곡괭이에 찍혀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너 시간을 뒤져도 허사였다. 항아리 조각만 나와 멈췄지만 준식은 영 개운치 않은 것이다. 근처 역시 깨진 기와나 항아리가 수두룩했다. 검게 그을린 구들도 눈에 띄었다. 주춧돌만 남은, 기둥이 사라지도록 풀숲에 주저앉은 흙집은 퀴퀴한 냄새가 났고, 주춧돌 흔적으로 집의 존재나 방향을 상상할 뿐이었다. 돌을 원형으로 쌓은 우물은 낙엽이 켜켜이 쌓였고, 물이라도 고인 곳에는 개구리가 제 집처럼 놀고 있었다. 그런 주변에는 뿌리를 단단히 한 싸리나무와 팔뚝만한 칡이 엉겨 있었다. 뒷간이라고 상상이 가는 곳은 두 개의 돌이 놓여 있었는데 톱이 있으면 모를까 엉덩이를 까고 쭈그리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인간의 발길이 부질없는 공간, 방구들이 놓인 곳에는 허리 굵기의 미루나무가 자랐고, 마당이라고 짐작이 가는 곳은 가시나무와 참나무들이 칡에 감긴 채 자라 있었다. 뒤뜰로 보이는 돌담 근처도 밤이나 대추나무들이 제법 많은 나이테를 먹은 채 자랐다. 어디든 썩은 낙엽이 쌓여 허방한 걸음을 푸석푸석 디뎌야 했다. 부엌의 가마솥은 밑동이 내려앉은 지 오래됐다. 독은 깨져 하늘을 향해 날을 세웠고, 지게가 있던 자리는 썩은 군용 멜빵만 놓여 있었다. 준식은 흩어진 사기조각에서 온전한 뚝배기를 들었다가 깨버렸는데 들러보니 양은냄비나 놋쇠주발 등이 밟혔고, 갖가지 농사 도구가 녹슬거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썩고 있었다. 생명의 손을 기다리는 사기그릇이 경이롭다.

 마구간 흔적이 있던 곳도 잡목이 무성했다. 구유는 생긴 것만 보여주었고, 소를 기다리듯 풀과 어우르다 세월에 지쳤는지 나무가 뚫고 자랐다. 절굿공이는 준식이 투덜거리며 밟자 곧바로 늙은 허리를 꺾었다. 엎딘 화로나 가마솥이 흙에 묻히고 풀에 휘덮인 채 녹이 더께로 앉았다. 땅에 처박힌 꽃무늬 사기요강은 쓸 만했다. 철망으로 만든 소쿠리는 자국만 남은 정도였고, 타작기계는 발로 내지르자 쇠만 남는 뼈로 주저앉았다. 흙벽이니 부엌이니 하는 흔적은 짐작만 갔다. 그저 돌담 안에 집이 있었다라는 것뿐이다. 그러다 보니 집터 근처에 묻었다는 무덤 장소는 거기가 거기 같았고 의뢰인의 말도 상상이 가지 않았다. 우린 별 수 없이 상엿집 근처로 다시 갔다. 

 나는 의뢰인이 참고 삼아 그려준 종이를 꺼냈다. 하지만 암만 봐도 위치를 예측할 수 없었다. 자신도 기억을 더듬어 집터 위치를 그렸다는, 미심쩍어 붉은 사인펜으로 표한 곳도 차근차근 팠다. 피란길에 폐가에 머물다 유행성 출혈열로 죽었다는 목사의 무덤을. 

 핏줄도 없이 기초수급자로 사는 의뢰인은 인력사무실 근처 다방에서 눈물을 적시며 이렇게 이야기를 했었다.

 “아버지는 평택에서 목사로 있었는데 전쟁 때 교회가 풍비박산됐어. 나도 마누라가 암으로 죽기 전까지 평택에서 살았어. 그러다 여편네가 죽자 철원으로 거처를 옮겼지. 아버지 고향이 개성이라 죽기 전에 좀 더 가까운 땅에서 살고 싶었거든. 일본군 앞잡이 노릇을 하던 할아버지는 개성에서 할머니를 만나 거기서 죽 사셨고, 하지만 할머니가 인민군에게 끌려간 뒤 소식도 없자 할아버지만 집을 지키고 있었어. 아무튼 아버지는 전쟁 때 부모를 만나기 위해 월북을 감행했어. 그런 도중 양구 해안면 빈 민가에서 잠시 머물렀는데, 먹을 것을 구한다고 들을 헤매다가 갑자기 고열에 시달리더니 눕게 된 거야. 아버지는 그날 밤으로 출혈진(出血疹)을 앓다 끝내 깨어나지 못했지. 나중에 안 것이지만 유행성 출혈열이라는 병이었어. 그래서 그 집 근처에 아버지를 묻은 거야. 중공군이 몰려온다는 소식을 들었거든. 그래서 다시 어머니와 함께 남쪽으로 피란했지. 좌우간 아버지 유골만 찾으면 사례는 섭섭하지 않게 따로 해줄게. 몸만 성하다면 내가 가서 찾아보겠는데 죽을 때가 됐는지 사지가 떨리고 기력도 없이 매일 약으로 살아. 교통사고까지 당해 대퇴골 수술도 했어. 어머니 소원이 아버지 묘를 찾아 성묘하는 것이었는데…. 내 아들은 교도소에 수감 중이고, 딸은 미국에서 살아.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부탁하는 거야. 늦었지만 나도 아들 노릇을 한 번이라도 하다 죽고 싶어. 찾으면 즉시 연락 바라겠네.” 

 “교도소요?” 커피를 마시던 준식이 물었다. 

 “칼을 잘못 휘두르면 그래.” 

 준식은 낄낄거릴 뿐 궁금한 뒷말을 묻지 않았다.

 우리는 일찍 민박집을 나섰다. 사무장과 약속한 일주일이 하루 남았기 때문이다. 민박집 주인으로부터 토요일이라 면회 손님이 많으니 더 묵을 거면 일인당 만오천 원의 숙박료를 오천 원 더 받겠다는 말도 들었다. 우린 그럴 여유조차 없었고, 주머니에 남은 돈도 얼추 바닥났다. 그간 유골을 곧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매일 저녁 인근 식당이나 가게에서 술과 음식으로 돈을 축냈다. 식당에서 매일 싸주는 점심 도시락과 막걸리 값도 들었으므로 돈의 씀씀이가 헤펐다. 약속대로 준식은 숙박비를, 나는 돌아갈 차비라도 남겨둬야 했다. 무엇보다도 준식이 인심을 쓰듯 술과 안주 값을 더 쓴 것이 내겐 부담되었다. 

 민박집에서 한참을 가야 군인초소가 나오고, 그곳에서 삼십 분가량 더 걸어야 목적지에 도착하는 험한 지형, 우린 그 집터에 이르자마자 쫓기듯 연장 짓을 서둘렀다. 집터 근처에 미처 파보지 못한 손바닥만 한 공간이라도 죄다 뒤질 각오였다. 그렇다고 마당이나 변소, 마구간에 시신을 묻을 리 없을 것이었다. 물을 찔끔찔끔 흘리는 도랑 근처나 자갈이 흘러내린 비탈도 마찬가지다. 집터와 가까운, 경사진 아래는 배추나 무밭이, 평지에는 논이 펼쳐져 있었다. 그동안 인근 주민들이 군부대 허가를 받고 농사짓는 곳이다. 그 외 비탈진 곳은 옥수수나 감자가 자랐다. 논이 끝나는 곳에서 개울을 건너면 군부대가 있었다. 부대 주변에는 미루나무나 떡갈나무들이 울타리를 이루었고, 이따금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사격 연습 소리도 부대 뒤 사격장에서 들렸다, 사격장 주위에는 흰 깃발이 군데군데 꽂혔고 절벽도 거반 허물어져 있었다, 포격의 흔적으로 올라간 산은 거대한 짐승처럼 바위가 튀어나와 있었다. 시계를 보지 않아도 점심시간을 알려주는, 포탄 껍데기 두들기는 소리는 우리가 있는 건너편까지 들렸다. 초소의 작업 종료 시간은 다섯 시였고, 그 시간 안에 집터를 내려와야 했다. 밤이 되면 활동 시간이나 공간도 제한되었다. 민박집 화장실이 건물 밖에 있어 거기 가는 것도 긴장해야 한다. 우린 출입통제를 책임지는 부대장으로부터 일주일의 체류 승인을 받았으므로 게으름을 피우거나 꾀를 부릴 여유도 없었다.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들!” 죽어라 하고 곡괭이로 찍어가던 준식은 북쪽을 향해 숨을 헉헉 내쉬며 투덜댄다. 나는 안다. 그 말의 또 다른 의미를. 

 도시락을 먹고 땀을 식힐 사이도 없이 준식은 담배를 피우며 곧바로 곡괭이 짓에 매달린다. 흔들리는 땅의 힘에 절망을 맛본 듯 온 곳을 다 찍을 심산이다. 그늘에 쉬는 내 엉덩이까지 그 울림이 전해진다. 정말이지 녀석의 오기는 몸을 더욱 단련시킨다. 노동이 초보자인 주제에 몸살 한번 앓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땅에서 죽음에 대한 철학의 답이라도 얻나? 암만 파도 유골의 혼이 스스로의 영역을 누리는 땅을. 

 “한데 말이야, 그 노인의 아들이 무엇 때문에 교도소 콩밥을 먹지?” 준식은 헉헉거리며 곡괭이를 패대기치더니 묻는다. 

 “글쎄. 아마 너처럼 연장 짓을 함부로 했겠지.” 

 그냥 한번 툭 던진 말인데 녀석의 인상이 안 좋다. 

 준식은 잣나무 가지에 왁자한 까마귀 쪽을 보더니 돌팔매질을 모질게 하며, “빌어먹을 놈의 중공군 떼거리!” 하고 손바닥에 침을 두어 번 뱉고는 더욱 세차게 곡괭이 짓을 서두른다. 나도 담배를 끄곤 삽질을 이어간다. 

 “사람 뼈야!” 

 얼마가 지났을까. 준식은 내 게으른 꼴이 뒤틀렸는지 앞질러 삽질을 하다가 구덩이에서 군용 우의를 질질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사람?” 나도 목소리가 절로 커졌다. 

 우린 구덩이 속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흙과 우의에 덮여 있다 드러난 것이 분명 유골의 일부가 맞는데 우린 서로 집어 들기를 망설였다. 그러다 준식이 삽을 더 다루자 대퇴골이나 척추, 엉치등뼈가 겨우 모양새만 갖춘 채 드러났다. 그중 형체가 그럴듯한 건 해골이었다. 우리는 목장갑을 낀 채 한참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쭈그려 앉았다. 이어 두려운 생각을 접곤 뼈를 조심스럽게 다루며 흙을 헤집어나갔다. 그러자 유골 몇 구가 더 파헤쳐졌다. 그런 뼈를 만지는 준식의 손은 눈에 드러날 만큼 떨렸다. 나도 그 긴장을 억지로 참으며 뼈의 완전한 실체를 모양내기 위해 집중했다. 죽은 혼이라도 깨우나? 까마귀는 더욱 우짖는다. 주위를 의식한 무서움도 우리를 거머쥐듯 닥친다. 

 “이런 지랄할 것이, 여기서 이런 게 왜 나와!” 

 준식은 무서움을 이겨냈는지 구덩이의 뼈를 거침없이 드러내다. 삽으로 큰 돌을 거칠게 치우며 군인 철모가 나오자 손을 멈추고 투덜댔다.

 “아군 철모야?” 내가 물었다. 

 준식은 철모를 쥔 채 흙을 씻어내며 유심히 살핀다. 이어 무슨 생각을 했는지 구덩이에 얼굴을 떨어뜨린 채 낄낄거린다. 

 “그걸 알면 벌써 제대했지” 하고 준식은 철모를 패대기쳤다.

 나는 내던져진 철모를 유심히 살폈다. 북한군 철모였다. 

 “놈들이 왜 죄다 여기에 나자빠진 거야.” 준식은 화난 얼굴을 했다. 

 “전쟁은 다 그래.”

 비록 녹슬었지만 분명 북한군 철모였다. 그것은 전방생활에 익숙한 내 경험이다. 게다가 유골은 한 구가 아니었다. 구덩이에 삽을 찌르기만 해도 뼈가 덜걱거리며 부딪혔다. 썩은 군복과 탄띠, 군화, 수통도 줄줄이 파헤쳐졌다. 뼈들은 군용품과 뒤섞인 채 나왔고, 철모 수만큼 해골이 네 개째 나왔을 때 더 이상은 없었다. 그렇게 구덩이를 깊게 파자 준식은 “아예 생매장시켰군” 하고 실망과 포기에 가까운 투로 삽질을 멈췄다. 

 네 구의 유골을 나란히 정렬해 놓자 주위는 괴기한 느낌이 드는 장소로 변했다. 구덩이는 둘이 지랄하기에 딱 맞는 요새다. 반항의 몸부림을 떠올리듯 오랜 세월의 환부가 뻥 뚫렸다. 나는 그 뼈로 서 있는 듯 온 마음이 서걱거린다. 우린 형용할 수 없는 불안감에 빠졌다. 

 “이건 정말 미친 지랄이야. 돈 벌려다 삼팔선을 다 파겠어.” 준식은 구덩이를 복잡하게 들여다보다가 삽을 패대기치며 주저앉아 말한다. 

 “아무리 뒤져도 노인이 말한 유골은 없어. 십자가는커녕 주님의 말씀도 못 찾을 거야. 다시 묻어야겠어.” 내가 말하자 대뜸 준식이 반박한다. 

 “뭐? 묻어?” 

 “그럼 당장 북한군에게 돌려줄까?” 

 “빌어먹을! 굉장히 웃기는군. 아마 놈들이 박수로 환영할 거야.” 

골이 우리에게 섬뜩한 느낌을 주었듯 나는 온갖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준식은 해골을 운동홧발로 짓누른 채 애써 무서움을 외면한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내일이면 이곳을 떠나야 돼. 안 그러면 간첩으로 몰릴지도 몰라.” 내 말이 끝나자 부대 쪽에서 깡깡! 하고 저녁식사를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까마귀 극성도 여전하다. 

 “그래서?” 준식은 사이를 두다가 반문했다. 내 대답이 없자 준식은 밟았던 해골을 발로 내지르며 말한다. “난, 이대로 돌아갈 수 없어. 더 이상 미친놈이 되고 싶지 않아.” 

 “그럼, 이걸?” 

 “이제야 우리 식대로 머리가 돌아가는군. 어차피 유골은 유골이잖아. 이름 써놓은 것도 아니고.” 

 “십자가를 묻었다고 했어.” 

 “지금 그런 지랄 같은 물건이 문제야? 나중에 생각해 보자.” 

 준식은 골반뼈를 버적버적 으스러뜨리며 대꾸했다. 해골을 발로 차며 침까지 뱉는다. 그러나 얼굴엔 긴장된 땀이 흘러 수건으로 연신 문댄다. 그러면서도 무서움이나 두려움 따위는 사라졌다는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뼈를 나무토막 다루듯 발로 툭툭 차거나 밟으며 기세부리는 거였다. 공격적인 존재도 익숙하면 반항이 생겼다. 

 “안 돼!” 나는 뼈 한 구를 추리는 준식의 손을 발로 차며 말했다. 

 “뭐야? 너 내 돈 다 날리는 꼴을 봐야 속이 시원하겠어?” 준식은 갑자기 내 멱살을 틀어쥐며 식식거렸다. 

 “넌, 어떻게 남의 유골을 노인의 아버지라고 우길 수 있니?” 나는 거머쥔 손을 뿌리쳤다. 

 “지랄할 전쟁! 이름 안 써놨다니까!” 준식은 해골 하나를 번쩍 들더니 구덩이에다가 패대기치며 소리쳤다. 돌에 부딪친 해골은 영혼의 비명처럼 퍽 하고 깨졌다. 

 “넌 늘 그런 식으로 반체제 시위를 벌이니?” 차마 내 입에서 이런 말까지 나왔다. 그러자 준식은 난색의 얼굴로 변하더니 욕설과 함께 순식간에 돌덩이 같은 주먹이 내 얼굴을 가격했다. 나는 하늘이 휘청 흔들리며 정신을 깜빡 놓았고, 밤나무에 쿵 부딪치는 통증과 함께 쓰러졌다. 숨이 턱 막히도록 코가 얼얼했다. 준식은 여전히 식식거리며 덤벼들 자세를 취했다. 

 내가 말했다. “네가 주장하는 자유는 정신적 분열에 가까워. 너는 극도의 페시미스트라고. 사상이니 체제니 하는 것은 오만한 연극에 불과해. 인도철학을 배운다고 네 정체성까지 바뀌는 건 아냐. 생각하는 섹스 관념도 추해. 비록 전쟁이었지만 저 뼈들을 봐. 한민족 피를 나눈 인간이지 처음부터 적은 아니었어.” 나는 코피를 닦고 일어섰다. 

 “실컷 지껄여. 난 유골 한 구를 가져갈 거니까.” 준식은 철모를 깔고 앉아서 막걸리를 숨도 안 쉬고 들이켜더니 담배를 피웠다. 연기는 영혼의 흔적처럼 허공을 맴돈다. 

 “난 네가 대학에서 지랄하고, 헤비메탈을 듣고, 노동투쟁이니 사기헌법이니 하는 게 이해 안 가.” 나는 소나무 가지에 걸어 놓은 점퍼를 낚아채며 말했다. 

 “그건 행위예술 같은 건전한 도전이야.” 

 “너는 인간의 존엄성에 서는 게 더 철학적이야. 카사노바도 여자 후리는 방법엔 나름의 철학이 있었어.” 

 “치사한 자식!” 준식은 벌떡 일어나더니 죽 늘어놓은 유골을 마구 뒤적인다. 어떤 뼈는 비켜 뒹굴고, 어떤 뼈는 그냥 내맡긴다. 

 “십자가까지 속일 수 없어.” 나는 녀석의 행동을 저지했다. 

 “가져갈 거야.” 녀석의 거친 손짓은 멈추지 않는다. 뼈들은 비명처럼 계속 덜그럭거린다. 

 “군부대에 신고해야 돼.” 

 “독립군 하나가 생겼군.” 

 “십자가를 속일 수 없다니까!” 

 “나머지는 다시 묻어버리면 돼.” 

 “그만두지 못해?” 

 “어쨌든 난 가져갈 거야.” 

 “넌, 체제 환자야.” 

 “미친놈!” 

 “노동투쟁인지 의식투쟁인지 난 탈퇴하겠어.” 

 “이 뼈들도 그래서 죽었을 거야.” 

가 서산에 떨어질 즈음 우리는 집터를 내려왔다. 나는 두 개의 삽과 낫 한 자루를, 준식은 곡괭이와 뼈를 담은 비료용 비닐포대를 들고 걸었다. 포대 속에는 유골 한 구가 그득했다. 뼈는 반항하듯 잘그락잘그락 소리를 냈다. 우리는 논두렁을 걸으며 한마디 말도 안 했다. 부대가 가까워지자 구수한 된장국 냄새가 풍겼고, 담 근처 미루나무에는 한 무리 까치들이 복잡한 토론을 벌이듯 우짖었다. 

 개울에 이르러 준식은 포대를 물가에 내려놓곤 손과 발을 씻기 시작했다. 분이 덜 풀린 듯 행동이 거칠고 소리도 컸다. 나는 자꾸 준식의 눈치가 살펴졌다. 삽과 곡괭이에 묻은 흙도 말끔히 닦아냈다. 

 처음 이 개울을 건너왔을 때 우리는 옷을 벗어던지고 깊은 웅덩이에서 덜덜 떨며 목욕을 했었다. 그때 나는 방학을 맞아 준식과 양구 강가에 어항을 놓고 모닥불에 감자를 구우며 온종일 물에서 놀던 생각이 났다. 구운 감자와 잡은 고기를 먹어 입과 얼굴이 검도록 배를 채우다가 준식이 내 바지를 태워 싸운 기억이다. 살을 벌겋게 태우고도 낄낄거리며 서리한 수박을 깨먹는 즐거움도 있었고, 참호 속에 기어들어가 둘의 이름을 써 놓은 화약 가루에 불을 붙이는 장난도 했다. 장마 때 모래에 파묻힌 포탄이나 찌그러진 철모를 가지고 전쟁놀이도 했으며, 군사시설물을 고물로 팔아 집에서 쫓겨난 뒤 며칠 동안 강가 텐트에서 모기를 견디며 밤을 보내기도 했다. 더러 친구들이 녹슨 박격포탄을 두들기다 죽기도 했고, 그런 짓을 하다가 팔과 다리가 사라진 어른들도 보았다. 중학교 때에는 간첩이 넘어왔다는 소문에 방에서 꼼짝도 못한 채 겨울방학을 보낸 적도 있었다. 이후 간첩이 사살되자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고등학교 일학년이던 준식이 도시로 이사할 때까지 우린 그렇게 붙어 다녔다. 

린 한동안 말없이 개울물에 얼굴을 씻고 머리를 감았다. 그러다 내가 입을 열었다. 

 “다시 생각해 봐. 이건 억지야.” 내가 말했다. 

 개울을 건넌 준식은 대답도 없이 다 씻은 발에 양말을 신는다. 이어 흙 묻은 옷을 툭툭 털더니 한소리 뱉는다. “왜, 우리가 하필 이곳에 와서 싸움을 하는지 모르겠어.” 

 나는 ‘하필’과 ‘이곳’이라는 말이 모호하게 들렸다. 

 준식은 앞선 걸음을 서둘렀다. 그 걸음에 부딪치는 포대의 유골 소리가 죽은 자의 비명처럼, 무덤에서 끌고 온 무서움처럼 들린다. 

 출입신변을 확인하는 경계초소를 지나자 하늘은 구름이 축축이 젖어 있었다. 나는 길을 가다 방금 떠나온 집터 쪽을 바라보았다. 그 근처에는 전열을 이뤘던 키 큰 나무의 가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한낮 미친 듯이 울어대던 까마귀는 목을 놓았다. 북쪽에는 브이 형태를 이룬 철새 떼가 남으로 넘어오고 있었다. 집터 발걸음을 거둔 산중, 격전의 흔적이 숨은 음산한 저녁, 그 그늘과 정적이 불모지에 눕는 것이었다. 

천식당에서 소주를 곁들인 식사 중에도 준식은 말이 없었고, 구운 삼겹살에 소주만 들입다 삼켰다. 민박집에 돌아왔어도 그랬다. 대신 민박집 주인아주머니가, “일이 끝났나?” 하고 그동안 산에서 챙겨오지 않던 연장을 보곤 한소리 한다. 

 “그냥 끝내는 거죠.” 

 내 대답에 준식은 포대와 연장을 화장실 구석에 패대기치곤 방문을 쾅 열고 들어선다. 

 “벙커작업 다녀요?” 

 아주머니는 화장실에 쓰레기처럼 놓인 포대를 보며 묻는다. 나는 대답 없이 마지막 돈으로 준식의 몫인 숙박료 사만 원을 대신 건넸다. 한데 막상 지불하다 보니 전날 밤 차비 계산도 없이 비상금으로 남은 식당 음식 값을 지불한 생각이 났다. 

 방에 들자 준식은 대충 누운 채 텔레비전에서 뉴스를 보고 있었다. 

 ‘오늘 남북 간 실무자회의에서 개성공단 협의가 무산됐습니다. 남측 실무자 대표는….’ 

 “사무장이 아부할 때 눈치 챘어야 했는데.” 

 나는 서먹하고 앉기가 불편해 지나가는 말로 말했다. 준식은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다. 

 “저 별자리 알아?” 나는 창을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뭔 별자리?” 준식은 어두운 하늘을 보았다. 

 “북두칠성과 마주한 카시오페이아 별자리.” 

 준식은 시큰둥한 눈만 굴렸다. 

 “허영심이 많아 자신의 미모가 누구보다도 뛰어나다고 뽐냈다는 전설의 별자리야.” 

 준식은 잠시 생각하다가, “꼭 핵 만든 놈 이야기 같군” 하고 낄낄거렸다. 이어 채널을 후딱 돌린 화면에 미녀들이 등장한 쇼프로를 보다가, 늘 그랬듯 옷 입은 채 잠이 들었다. 

 나는 괴기한 기분이 어수선하게 찼다. 창밖엔 카시오페이아 별자리가 말을 걸어오듯 깜박거린다. 오늘은 영 꺼림칙한 하루다.

 아침이 되자 우린 일주일 간 난장 꼴로 견디던 민박집을 나섰다. 작업복 가방을 챙기고 대문을 나서자 부엌에서 도마를 두들기던 주인아주머니가 얼굴을 내밀며 “또 오세요!”라고 습관처럼 소리친다. 준식은 대꾸도 없이 대문 앞에서 주위를 살핀다. 소주를 마시며 시위에 대해 침을 튀겼던 식당, 전쟁에 쫓기던 사연을 매표영업소 밖 마루에서 듣던 늙은 주인의 이발소, 세상 풍파에 쫓기다가 창녀촌 빚을 못 갚아 도망해 미장원을 한다는 게으른 가위질의 늙은 여자, 언제나 순경 하나가 꾸벅대고 조는 파출소, 지루해 보이도록 텅 빈 농협, 이따금 동네 노인들과 막걸리를 들이켜는 집배원, 군인 트럭이 지나가면 숨조차 쉴 수 없는 좁은 먼지 도로 등 준식은 그 거리를 살피듯 서 있다. 마치 삶마저 멍해진 상태처럼 본다. 우리는 그동안 마을 사람들에게 무인도에서 온 미개인 취급을 받았었다. 반면 준식은 도시에 사는 폼을 우쭐대며 전쟁의 경험 따위는 무시했었다. 나는 갑자기 갈 길이 모호해졌다. 

 식은 종점을 향해 가다 담배 가게 앞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나는 어딜 가든, 무엇이 어떻게 되든 모든 것이 귀찮아져 술만 마시고 싶었다. 준식의 시야엔 찻잔을 든 다방 아가씨가 짧은 치마에 엉덩이를 흔들며 종종걸음으로 지나갔다. 준식과 몇 번 사랑에 대해 노닥거렸던 앳된 목소리의 여자다. 준식은 침을 찍 뱉더니 첫 버스가 대기한 종점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서너 명의 군인들이 면회객들과 작별인사를 나누며 모여 있었고, 버스 안에는 몇몇 주민이 출발을 위해 앉아 있었다. 

 “차는 타야지.” 

 내가 뒤에서 말했다. 준식은 말없이 버스만 보았다. 

 양구터널이 종점인 탓에 버스는 삼십 분가량 대기하다가 떠나곤 했다. 손님은 늘 적었다. 세 번의 배차 시간도 지켰다. 우리 목적과 버스 시간 사이에는 인내라는 것이 놓여 있듯. 

 버스는 엔진이 걸렸다. 그러자 나는 불안감이 밀려든다. 그때 준식이 입을 연다. “간밤에 꿈을 꾸었어.” 

 “꿈?” 나는 엉뚱한 말에 의아스럽게 쳐다보며 물었다. 

 “내가 구덩이에서 유골과 누워 있는 꿈이었어. 벗어나려고 했지만 어딘가 위에서 뼈가 계속 떨어지는 거야. 주위는 어두웠고 살려달라고 소리치려고 해도 말이 답답하게 안 되었어. 그런 가위눌림은 처음이야. 한데 더 지랄 같은 건 고막이 찢는 폭음소리가 들리더니 내가 해골을 끌어안고 시위대에 쫓기고 있는 거야. 아무리 애를 써도 빨리 뛸 수가 없었고, 그러다 누군가에게 발목을 잡혔는데 그때 놀라 잠에서 깼어. 정말 끔찍한 꿈이었어.” 

 나는 비로소 준식의 얼굴에서 무서움이 묻은 표정을 보았다. 그때 버스가 경적을 울렸다. 

 “그럼 유골을 다시 묻어야겠네?” 내가 물었다. 

 “빌어먹을 자식! 만나면 골통을 부수어버릴 거야.” 준식은 솟구치는 후회와 절망의 소리로, 대상이 모호한 투로 화를 벌컥 냈다. 

 “누굴?” 

 내 반문에 준식은 불쾌한 몸을 북쪽으로 돌렸다. 우린 여전히 갈 길을 잃은 채 우물쭈물 서 있었다. 

 “투쟁동아리를 탈퇴한다는 거 다시 생각해봐야겠어.” 

 내가 뜬금없는 위로의 말을 붙이자 준식은 잠시 흘겨보더니, 

 “아냐, 그건 네 자유야. 자유는 더 이상 손해 볼 것이 없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으니까” 하며 허무가 섞인 혼잣소리로 텅 빈 하늘을 향해 긴 숨을 놓았다. 순간 나는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그런 사이 준식은 뭔가 결심한 듯 아스팔트가 시작되는 길을 주시하더니 비닐포대를 다잡고, 곡괭이를 어깨에 힘주어 걸치더니 앞서 걷기 시작했다.

 “버스 안 타? 차비 남았잖아.” 

 나는 준식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녀석은 무슨 고민이 생겼는지 대답이 없다. 

 굉굉 쿵더쿵! 굉굉 쿵더쿵! 

 오늘도 땀을 흘리는 농군들의 흥겨운 소리가 논에서 이어진다. 

 앞서 걷던 준식은 갑자기 길가에 세워진 <민간인 출입금지 구역>이라는 푯말을 발로 냅다 걷어차더니 걷기를 늦추지 않는다.

늘따라 준식의 걸음이 가벼워 보인다. 포대의 뼈가 잘그락잘그락, 녀석의 걸음에 나는 흡족한 기분으로 뒤를 따랐다. 내 옆을 스쳐간 버스는 계곡을 향해, 길가에 줄지어 선 코스모스 꽃들이 작별의 손짓하는 가을 가로수 사이로 내달리고 있었다. 자유로 벗어날 길은 멀고, 폐허의 집터에 남겼던 질문과 미련, 나는 비로소 그 길과 어울리며 걸음을 서둘렀다.  


 

[당선소감] 지긋지긋한 가난에도 문학 곁에서 고통견뎌

먼 길을 걸어왔다. 한때 문학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방황도 많이 했다. 불구자 몸으로 벌이를 못하니 하는 일이라곤 글밖에 없었다. 지긋지긋한 가난도 내 몸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아버지는 월남에서, 조그마한 슈퍼를 하던 어머니는 3년 전에 떠났다. 문학에 고집을 부렸더니 형제들도 내 곁을 떠났다. 성덕스님(형님), 명숙이, 관지, 미향이, 어디 있더라도 이 불쌍한 식솔 좀 찾아주었으면. 나는 그런 운명인가 보다. 하지만 난 결코 외롭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문학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모든 고통을 견딜 수 있었다. 어쩌면 더 먼 길을 걷게 될지는 모른다. 

 돈 때문에 문학에 욕심을 부린 적은 없다. 그저 문학이 좋아서, 내 스스로 글 쓰는 게 좋아서 쓴다. 오랜 세월 습작 생활을 해왔다. 내게 소설은 끝없는 도전이고 시련이라는 것을 안다. 세월이 흘러도 글은 젊게 쓰고 싶다. 

 헤밍웨이의 하드보일드 문체를 좋아한다. 겹치기 문장에 많은 신경을 쓴다. 이제 나는 시작일 뿐이다. 부족한 작품을 선택해주신 심사위원들과 <농민신문> 문화부 관계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 기회를 문학의 채찍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결코 자만하지 않는. 

임춘상 ▲1957년 경기 가평 출생 ▲가평 가이사중학교(현 가평중고등학교) 졸업 



[심사평] 신선한 도입부 돋보여…, 주인공 심경묘사 수준급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매일야화> <헛간으로의 초대> <카시오페이아의 숲> <깜뚜라지> <태(胎)> <도치> <독곳(獨串)> <엔젤투자자> <헬로 미스터 백구!> <불의 시간> 등 10편이었다. 모두 어느 정도 수련을 거친 뒤 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 반가웠다. 이 가운데 4편을 추려 세부 심사를 진행했다. 

 <도치>는 남편과 자식 그리고 주인공 여자의 이야기를 유려한 문장으로 끌어가 눈에 띄었다. 하지만 소설의 재미란 넋두리만으로는 미흡하기 마련이다. 입체적인 구성으로 극적인 효과를 거두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태>는 처음부터 빠르게 읽혔다. 낙태라는 소재를 비범하게 풀어낸 솜씨가 돋보이고, 주인공인 간호사의 상황 묘사와 주변 인물의 심리 표현도 뛰어났다. 하지만 결말이 너무 끔찍해 충격적이다. 소설이 꼭 도덕적일 필요는 없지만 비극은 비극대로 희극은 희극대로 가슴을 울리는 감동이 필요하다. 

 <깜뚜라지>는 서정적인 문장으로 시골 풍경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하지만 구성이 단조로운 데다 도입부가 장황해 지루한 느낌이다. 끝부분이 콩트처럼 가볍게 처리된 점도 아쉽다. 

 <카시오페이아의 숲>은 민통선 안에서 유골을 발굴하는 두 젊은이의 이야기다. 한국전쟁 때 죽은 아버지의 유골을 찾아오면 비싼 일당을 주겠다는 말에 솔깃해 민통선으로 가게 되는 소설의 도입부가 신선하다. 주변 풍경과 작업 과정, 주인공들의 심경을 치밀한 묘사로 이끌어간 솜씨도 높이 살 만하다. 다만 그들의 고뇌가 초반부터 좀 더 쫀쫀하게 짜여졌다면 결말과 맞물려 한결 격조 높은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위 작품들을 거듭 읽은 끝에 <카시오페이아의 숲>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당선자의 굳건한 성장을 바란다. 

 심사위원=이광복<소설가>, 김선주<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