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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사슬 / 심수자

 

거미도 없는 빈 거미줄이 도처에 무성하다

초읍동 일층 단칸방에 살다가

얇은 요위에서 오년 만에 발견된

독거노인은 백골이다

산동네 좁은 골목길이 얼키고 설켜

커다란 거미 한 마리쯤은 키웠겠다

한 생을 다한 그녀는 거미 몸에 들어

자신을 갇히게 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채

풀어낸 실로 여리고 성을 쌓은 것이다

방 한쪽 구석엔 냄비와 그릇 두어개

빈 가스버너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녀, 한 겹 두 겹 아홉 겹 까지 껴입은 옷은

추위 멈추고 싶은 몸부림 이었겠지

무뎌진 낮과 밤의 경계에서

이끼는 바닥의 습기를 먹고 자라고 있었다

그녀가 백골이 되어 가면서

곤충들 더 이상 걸려들지 않을 때

거미는 자신을 걸어둘 장치로

바람 속에 집을 지은 것인지도 모른다

도처에 걸린 거미줄이 내 얼굴에 닿을 때

초읍동 반 마장 거리의 파도 자락은

이미 떠나고 없는 배의 후미인 듯

거미집 바람벽을 밀고 있었다

 

 

[당선소감] 쓸쓸한 누군가에게 한 모금의 물을 건네라는 현몽인가 …

 

엊그제 집 계단에서 넘어져 다리뼈에 금이 갔습니다. 지난 밤, 절뚝이며 시인을 꿈꾸는 문우들과 송년모임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눈을 만났습니다. 눈 오는 날이 흔하지 않은 도시에 살고 있는 나는 눈이 전봇대 아래 내다놓은 연탄재들을 꽃무덤으로 피우는 고뇌의 순간에,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눈이 덮은 것은 연탄재이거나 한생을 다한 여러 쓰레기들이란 것을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할 것입니다. 몇 걸음 더 옮기는 곳에서는 눈의 무게에 눌린 측백나무도 안타깝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나무가 아무 말 없이 눈을 받아내는 모습이란, 시를 생각하는 내게 길안내를 친절하게 해주는 밤 이었습니다.

머지않아 눈은 녹겠지요. 버리기 위해 내다 놓은 것들도 더 측은해 지겠지요. 나무의 뿌리는 갈증의 목을 축이겠지요. 다리가 부러질 땐 헛꿈을 꾸지 말라는 계시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눈이 남은 아침에 나는 당선연락을 받았습니다. 이 또한 세상의 어지러움을 손발과 정신이 시리도록 하얗게 문질러서 서럽고 쓸쓸한 누군가에게 한 모금 물을 건네라는 계시로 받아 들여야겠습니다. 늦은 나이지만, 늦었다는 생각도 지우겠습니다. 사는 일에 골몰하다 미루어둔 문학의 꿈을 이루도록 물가로 인도하느라 애써주신 대구시창작원 박윤배 선생님과 뒤를 묵묵히 지켜봐주신 가족에게 감사드립니다. 형상시 문우들 먼저 신춘 문을 열게 됨에 왠지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뽑아주신 선생님들의 건강을 늘 잊지 않고 기도하겠습니다. 애독하는 불교신문사의 번창을 기원 드립니다.

 

 

[심사평] 고은 '이 시대를 실감케 하다'

 

또 이 일을 맡았다. 가는 해 끝자락에서 만난 시가 새해의 시로 태어나는 일에 나도 설레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많은 응모작들을 예선이라는 체로 걸러서 나에게 온 것들도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었다. 숨찼다.

작자는 멀리 칠레까지도 가 있고 오세아니아의 어디에도 가 있는 화자(話者)로 등장한다. 지난 시대의 상습적인 고향타령은 이제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이것이 시의 깊이보다 넓이 쪽으로 기울어지는 함정이 되기로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쪽의 경향들이 더 바람직할 가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요컨대 시의 길은 세상 안에서나 자아 안에서나 쉬운 노릇이 아니다.

예선작의 소감이 더 있다. 첫째 어떤 작자의 태도가 자신의 언어를 불손하게 다루고 있는 사실이다. 토속말로 우자부리는 수작이었다.

이런 현상 말고도 의식과잉이 자주 보였다. 그 과잉이 현학적인 기분이나 내고 있을 때는 눈살을 찌푸리게 될 만하다. 20세기 모더니즘 공과론에서 과(過)쪽에 속할 것이다. 지적인 분식은 어떤 경우에는 시 속의 죄악이다. 그렇다고 해서 소월과 백석으로 돌아가라는 정서소급을 위한 독려가 옳다는 것도 아니다.

이것저것 고르고 고르다가 6편이 남았다. ‘일출역동기’, ‘꿈의 잔영’, ‘내 데칼꼬마니’, ‘어머님, 그 해 가을은 행복했습니다’, ‘엇갈림’, ‘몸뻬바지’, ‘바람의 사슬’이다.

‘일출역동기’는 비교적 탄탄한 구문으로 되었다. 하지만 시가 표현이 아니라 해설이 될 위험이 있다. 긴 호흡은 장점이다. ‘꿈의 잔영’, ‘내 데깔꼬마니’는 시의 맛을 터득한 작품이다. 앞으로 시인생활이 보장되는 그런 작품이다. 다만 치열성이 뒤따라야겠다. ‘어머님, 그해 가을은 행복했습니다’는 풍성한 울림을 가진 작품이다. 그리고 쉽다. 서정의 힘은 지식의 조각 나열 따위나 은유의 자폐증 따위를 벗어난다. 하지만 어딘지 빈곤하다.

‘엇갈림’과 ‘몸뻬바지’, ‘바람의 사슬’은 서로 겨룰만한 것들이다. 셋 중의 어느 하나를 고르기가 망설여졌다. 그럼에도 우리 동시대의 처절한 삶의 비극성 도출에 방점이 찍혔다. 물러선 두 편의 작자는 이번 말고 다른 기회에 세상의 문을 두드릴 것을 바란다. ‘바람의 사슬’의 실감이야말로 이 시대의 시적 절실성이다. 당선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