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당선작>

 

() / 정현우

 

면과 면이 뒤집어질 때, 우리에게 보이는 면들은 적다

금 간 천장에는 면들이 쉼표로 떨어지고

세숫대야는 면을 받아내고 위층에서 다시

아래층 사람이 면을 받아내는 층층의 면

면을 뒤집으면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는

복도에서, 우리의 면들이 뒤집어진다

발바닥을 옮기지 않는 담쟁이들의 면.

가끔 층층마다 떨어지는

발바닥의 면들을 면하고,

 

새 한 마리가 끼어든다.

부리가 서서히 거뭇해지는 앞면,

발버둥치는 뒷면이 엉겨 붙는다

앞면과 뒷면이 없는 죽음이

가끔씩 날선 바람으로 층계를 도려내고

접근금지 테이프가 각질처럼 붙어있다

 

얼굴과 얼굴이 마주할 때 내 면을 볼 수 없고 네 면을 볼 수 있다 반복과 소음이

삐뚤하게 담쟁이 꽃으로 피어나고 균형을 유지하는 면, 과 면이 맞닿아 있다

 

어제는 누군가 엿듣고 있는 것 같다고

사다리차가 담쟁이들을 베어버렸다

삐져나온 철근 줄이 담쟁이와 이어져 있고

밤마다 우리는 벽으로 발바닥을 악착같이 붙인다

맞닿은 곳으로 담쟁이의 발과 발

한 면으로 모여들고 있다


<당선소감>

 

가슴속 마지막 흰 눈한 알 한 알 잊지 않고 꼭 먹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살아 있는 것이 귀라는데, 묻고 싶었다. 할아버지를 껴안고 들썩거리는 아버지 등허리에 내 얼굴을 실컷 묻고 싶었다. 닫힌 자물쇠가 조금씩 열린다. 먼저 심사위원님들 감사합니. 가능성을 열어주신 박주택 선생님께 이 영광 올립니다. 격려해주신 이성천, 안영훈, 이문재, 김종회 경희대 교수님들 고맙습니다. 항상 용기 주신 노은희 작가님, 아들 세건, 영감 주셨던 전기철 선생님 사랑합니다. 임경섭 선배님, 작은 거인 민지, 문예창작단 감사합니다. 보랏빛 나무 빵수 누나 유학 멋지게 마치길. 그린마인드 요리, 맑은 민혜, 광렬 호열 삼촌 경주 갈게요. 이병철, 서윤후, 김산, 정형목 시인 건필하시길. 벗 진걸, 준기, 기문, 학수, 기혁, 대진, 대학원 동기들, 경석, 순자, 광배, 연주 행복하길. 나의 우상 혜경, 혜은, 하늘색 꿈 지윤 누나, 가족 같던 김보민, 박지현, 김희수 아나운서님, 인생의 스승 나의 피터팬 KBS 박천기 PD, 조력자 김홍련 작가님, 귀감을 주셨던 방귀희 선생님 함께하고 싶어요.

 

 미군으로 복무 중인 누이, 오랫동안 투병해 온 아버지, 그리고 당신. 방 한 칸에서 살았던 여섯 살, 방 하나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당신을 따라 분리 수거함을 뒤지곤 했습니다. 옷이며 신발이며 저에겐 보물이었고 날개였습니다. 기억하나요. 할머니의 입술에 당신 입술을 맞추던 날, 할머니가 소복이 눈으로 쌓이던 날, 가슴속 가장 큰 방 속에서 당신과 있었다는 것을. 당신의 따스한 방이 되고 싶어요. 남부럽지 않은 지금도, 분리 수거함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나의 은인, 정삼선 사랑합니다. 시를 놓지 않던 십년의 겨울, 제 가슴속 마지막 흰 눈이 날립니다. 한 알 한 알 잊지 않고 꼭꼭 먹겠습니다. 살아가겠습니다.

 

1986년 평택 출생

경희대학교 국문과 졸업 (2005년 입학 ~ 2011년 졸업)

) KBS1라디오 작가

음반) 라임 2 바람에 너를

 

<심사평>

 

우리 시대 삶의 다양한 을 성찰

 

  본심에 오른 응모작 가운데 집중적으로 논의된 작품은 ()’(정현우), ‘우산 없는 혁명’(고원효), ‘야간개장 동물원’(박민서) 세 편이었다.

 

  ‘야간개장 동물원은 지상의 거울로서 밤하늘의 별자리를 헤아리는 상상력의 역동성을 보여주었다. 낮에는 잠을 자다가 밤에만 나타나는 천상의 동물들을 통해 야성을 상실한 채 일상에 매몰돼 살아가는 현대인의 처지를 반어적으로 노래한 이 작품은 단아한 이미지의 직조가 인상적이었다.

 

  ‘우산 없는 혁명은 제목이 암시하는 대로 올해 외신면을 달군 홍콩의 우산 혁명을 소재로 하고 있다. 쉽고 친근한 어조로 쓰였음에도 이런 유의 시가 빠져들기 쉬운 상투성에서 벗어나 있었고 우리 현실을 반성적으로 돌아보게 만드는 재기와 사유의 깊이를 엿볼 수 있었다.

 

  ‘은 평면 측면 얼굴 경계선 바닥 방향성 등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면이란 단어를 활용하여 우리 시대 삶의 다양한 을 성찰한 작품이다. 인간이든 건물이든 세상 모든 것은 결국 면들의 만남과 어긋남에 의해 이루어지며 그로부터 갖가지 문제가 발생한다고 이 작품은 들려주고 있다. 이 시에 담긴 지혜는 통속적 잠언을 훌쩍 뛰어넘은 것으로서 오래 되새길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여겨졌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세 작품을 앞에 놓고 장시간 고민과 토론을 거듭하다 선자들은 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합의했다. 다른 두 응모자의 경우 여타의 투고작들이 충분한 믿음을 주지 못한 반면 정현우의 작품은 모두 고른 수준과 밀도를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밖에 본심에서 논의된 응모자로는 바람의 혈관의 김민구, ‘자백의 김창훈 등이 있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다른 응모자들에게도 건필을 기원한다.

 

정호승(시인남진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