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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레몬 / 김완수

 

레몬은 나무 위에서 해탈한 부처야

그러잖고서야 혼자 세상 쓴맛 다 삼켜 내다가

정신 못 차리는 세상에 맛 좀 봐라 하고

복장(腹臟)을 상큼한 신트림으로 불쑥 터뜨릴 리 없지

어쩌면 레몬은 말야

대승(大乘)의 목탁을 두드리며 히말라야를 넘던 고승이

중생의 편식을 제도(濟度)하다가

단것 단것 하는 투정에 질려

세상으로 향한 목탁의 문고리는 감추고

노란 고치 속에 안거한 건지 몰라

들어 봐,

레몬 향기가 득도의 목탁 소리 같잖아

 

레몬은 반골을 꿈꿔 온 게 분명해

너도 나도 단맛에 절여지는 세상인데

저만 혼자 시어 보겠다고

삐딱하게 들어앉아 좌선할 리 없지

가만 보면 레몬은 말야

황달 든 부처가 톡 쏘는 것 같아도

내가 단것을 상큼하다고 우길 땐

바로 문 열고 나와 눈 질끈 감기는 감화를 주거든

파계처럼 단맛과 몸 섞은 레몬수를 보더라도

그 둔갑을 변절이라 부르면 안돼

레몬의 마음은 말야

저를 쥐어짜면서 단맛을 교화하는 것이거든

 

레몬은 독하게 적멸하는 부처야

푸르데데한 색에서 단맛을 쫙 빼면

모두 레몬이 될 수 있어

구연산도 제 가슴에 맺힌 눈물의 사리(舍利)일지 몰라

레몬이 지금 내게 신맛의 포교를 해

내 거짓 눈물이 쏙 빠지도록


<당선소감>

 

"타자와 사회 치유하는 시 쓰고 싶다"

 

  돌이켜 보면 신춘문예 열병을 앓아 온 내 장년기는 좌절의 연속이었다. 장르를 불문하고 불혹의 나이를 넘기도록 십수 년 동안 신춘문예에 낙방해 오면서 글쓰기에 대한 회의와 스스로에 대한 책망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말연시면 나는 늘 깊은 침잠의 겨울잠에 빠져들곤 했다. 하지만 그 열병은 결코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열병이 나 자신을 망가뜨릴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도 그 중독에서 쉽게 헤어날 수 없었다. 열병이 심해질수록 절실함은 더했다.

 

  특히 시는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세계였다. 그런데 태산 같은 세계에서 갈팡질팡하며 시작(詩作)을 창작열의 뒷전에 두던 중 시조를 접하면서 절제의 미덕을 배웠고, 정형에서 확장된 자유의 발자국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난 한 해는 내게 참 뜻깊은 해였다. 시심(詩心)의 고삐를 부여잡은 지 오래지 않았는데도 시는 내가 기울인 시선만큼 가능성이란 응답을 줬다. 그리고 그 정점은 아마도 지난 크리스마스 전날에 선물처럼 날아든 당선 소식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두 번째 신춘문예 당선의 영광이었음에도 그 기쁨은 남달랐다. 게다가 문청들에게 신선한 도전의 장()을 마련해 준 광남일보에 간택된 것이니 그 자부심이야 오죽했을까.

 

 들뜬 마음을 추스르고 보니 감사해야 할 사람들이 많다. 먼저 지난 도전의 시기에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상처를 받았음에도 시의 응답이란 변함없는 확신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내 신념을 누구보다 믿고 기다려 주신 어머니와 미국에 있는, 사랑하는 여동생 내외, 그리고 외로운 글쓰기로 휘청거릴 때마다 든든한 지지대가 돼 준 문우들과 이 영광을 함께하고 싶다. 또 내 신념에 명징한 이정표가 돼 준 광남일보와 심사위원 선생님께도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앞으로 나 자신보다 타자(他者)와 사회를 치유하는 시를 쓰고 싶다. 문청들이여, 결코 좌절하지 마라. 절실하면 꿈은 꼭 이루어진다!

 

 약력

 1970년 광주광역시 출생

 1998년 전북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 과정 졸업

 2009년 제1 '강원문학' 신인상 수필 부문 당선

 2013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 부문 당선

 2013년 서울 암사동 유적 세계유산 등재 기원 문학 작품 공모전 동화 우수상

 2014년 계간 '시조시학' 여름호 신인 작품상

 2014년 제10 518문학상 시 부문 당선

 2014년 제1회 농어촌문학상 시 부문 우수상

 2014년 제2회 평택 생태시 문학상 우수상

 현 학원장

 

<심사평>

 

"비판적 사유, 경쾌 통렬한 풍자로 전개"

 

  600여 편의 투고작들은 우울한 사회분위기를 반영하듯 전반적으로 죽음이나 상실을 노래한 시편들이 많았다. 그 중 세 사람의 시가 마지막까지 남겨졌는데, 이들의 시에 담긴 세계 역시 무겁게 침전되어 있는 모습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그 절망의 바닥에서 희미한 한 줄기 빛을 길어 올리는 일일 것이다.

 

  '1991 05 30일 생'  4편은 어두운 자화상이나 불우한 가족사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내 안에는 한 마리 짐승이 산다"거나 "저울에 올려놓은 돼지고기처럼 / 어머니의 죽음 을 재본다"에서처럼, 그의 시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는 그 연원이 깊고 절실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자신의 고통을 좀더 객관화하고 미학적으로 승화시켜 직설적인 차원을 넘어서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반면 '테오에게'  4편은 소재나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능란한 편이지만, 충분히 체화되지는 못한 느낌이었다. 다양한 시적 형식과 화자의 설정, 유니크한 리듬 등은 무엇을 써도 일정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역량을 잘 보여준다. 시행이나 이미지의 연결에 있어서도 적절한 비약을 통해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다만, 화려한 언어감각이 내실을 갖추기 위해서는 대상에 대한 집중력이나 되새김질이 좀더 필요해 보인다.

 

  '레몬'  4편은 나머지 두 사람에 비해 투고작 전체의 수준이 고른 편이고, 개성적인 목소리와 활달한 상상력이 돋보였다. 시인 이상의 방을 자신의 유폐된 내면과 연결한 '이상(李霜)의 방', 벤치에 앉아 출전의 기회를 기다리는 후보 선수의 애환을 담은 '벤치 워머', 수많은 환자들을 상담하지만 정작 자신의 병은 돌보아주는 이 없는 '신경정신과 닥터 김의 하루' 등은 현대인의 고독과 비애를 인상적으로 그리고 있다. 어느 작품을 당선작으로 해도 무방하지만, 세상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경쾌하면서도 통렬한 풍자를 통해 전개한 '레몬'을 당선작으로 정했다. 당선을 축하드리고, 그의 시가 "거짓 눈물"을 거슬러 "신맛의 포교"를 힘차게 해나가기를 기대한다.

 

나희덕 시인(조선대 문예창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