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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우수상


시라시 / 염민숙

 

초봄이면 한강으로 시라시를 뜨러 갔다

빚보증으로 논밭을 날린 후 어머니는

책값이며 차비가 없어 꾸러 다녔다

어머니가 떠오는 시라시는

식구들 마른 삶에

도랑물을 내었다

 

시라시를 따라 강의 깊은 데까지 가

등에 업힌 막내와 자맥질도 하였다

눈물자국 같은 물빛이 뜰채에 걸려나왔다

물의 정수리를 오래 들여다본 죄로

햇살에 눈이 멀어

어머니 돌아오는 걸음이 출렁거렸다

 

어디 먼 바다로부터

제 어미의 길을 되짚어

시라시가 오는 철이다

곁에 감기던 식구들 다 떠나고

어머니 혼자 봄밤을 지새우는 날

얼음장 떠가던 그 밤처럼

무릎 시리게 떠오르는

물빛 기억들

 

*시라시: '시라시'라고 부르는 작고 가는 실뱀장어. 외국에 양어종자로 팔았다

 

가작


뿌리 / 최재영

 

뿌리는 힘이 세다


수십 년 세월을 밀어 올리는 힘으로


매일 쥐눈이콩 같은 눈망울을 매달고 길을 낸다


기억 켜켜이 어둠의 지층을 뚫고 나아간 흔적이


시퍼런 강물처럼 겹겹이 굽이치는 저녁


뿌리는 뿌리만으로도 온전한 몸통을 이룬다


어둠보다 두터운 벽이 있으랴


누구도 읽을 수 없는 뿌리의 내력을


더운 숨결 내뿜는 잔털이 말해준다


축축한 흙냄새에 처음 내딛는 발걸음이 말랑해지고


이제부터 모든 어둠은 뿌리의 시작이다


뿌리의 문을 밀면 저 안쪽 깊은 곳에서


쿵쾅이며 들려오는 우렁찬 함성들


지상의 푸른 잎들이 땅 밑으로 신호를 보내는지


파르르 가녀린 심호흡을 내 뱉는다


누구나 보이지 않는 어둠의 시간 있었으리라


폭풍우 몰아치는 날에는 잠시 주춤하기도 했으리라


그러나


어느 종족이 이리 형형한 눈빛을 가졌는가


단단한 암벽을 파헤치는 힘으로


여전히 길을 탐색하는,


뿌리에게는 어둠도 환한 불빛이다



<당선소감>

 

"시의 곁을 맴돌며 떠나지 못한 저에게"


10회 경제올림피아드 우수상 수상자 염민숙씨

 

  지난여름 교통사고로 눈을 조금 다쳤습니다. 치료를 받으면서 녹내장 초기증세를 알게 되어 앞으로 올 실명을 예방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소식은 시의 곁을 맴돌며 떠나지 못한 저에게 모닥불로 다가왔습니다. 껍질 벗기려다 심은 도라지가 꽃 핀 것처럼 숨어 있는 것 꺼내고 싶은 열망이 듭니다.

 

  걸어온 모퉁이 돌아보면 고통은 혼자 오지 않고 기쁨도 같이 데리고 왔습니다. 어깨의 짐을 걸머지고 오는 동안 웃음을 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지나고 보면 삶의 자락에 빛이 들거나 그림자가 지든지 그것이 모여 아름다운 무늬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환희가 그 자락에 밝은 그림 하나를 짜 넣는 일이기에 심사위원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길이 맞닿을 때까지 천천히 걸어가겠습니다.

 

  문학의 길로 이끌어주신 시인 장석남, 김우섭 선생님과 지도해주신 여러 선생님들 고맙습니다. 새얼문학 찬용, 진채, 수조, 선우, 선호, 계숙······ 함께 길을 걸어온 문우들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끊임없이 문학적 소재와 이야기들을 길어다 부어주는 성식씨와 가족들 사랑합니다. 넘어질 때마다 일으켜준 광미, 경희, 지은, 명자,여러 친구들과 기쁨을 함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