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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물수리 그림자, 지나간다 / 김진백

 

 

나를 흠뻑 적시고 흘러간 붉은 저 강물 폐륜(廢倫)이라 해도

나는 연어의 힘센 자식 아니기에 돌이킬 수 없다

 

목마른 내 우물 모래바닥에 거친 예감 물살 치는 날

 

청춘이 할퀴어 쓰린 상처 위로 물수리 그림자 휙 지나간다

하늬바람 시작되는 곳, 너는 눈먼 꽃으로 돌아온다

 

얼음 부딪히는 북해에서 내 이물까지 오만 리 길

그곳에서 다시 고물까지 십만 팔천 리 길

 

너는 함포처럼 요란하게 쏟아진다, 날아와 펑펑펑 터진다

 

강물은 이른 새벽부터 몸 비틀어 나를 껴 앉는데

너를 따라온 달이 눈동자에 월식으로 지워진다

 

내 가난한 땅에 새겨진 풍성한 강물의 위로는

돌아오고 떠나는 사이 제 몸 넉넉히 내어주는 일뿐

 

험한 물길 찾아오다 세찬 숨결 아찔한 순간, 그 순간

너는 가끔 튀어 오르며 돌아온다 가슴 부푼 비린 꽃으로.


<당선소감>

 

내 시가 누군가에 위안 되길

 

휴가를 나가 부대로 복귀 전 후보작에 올랐다는 경남신문사의 전화를 받았다. 뜬금없었지만 그 후 매일 나를 위해 울리는 전화를 기다리며 잠들지 못했다.


지난해 어느 신춘문예 최종심에서 낙방했던 기억에, 또 이렇게 시인의 주소에 닿지 못하는구나, 단념할 때쯤 최종 당선 통보를 받았다. 친구들은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고 자신의 세상으로 나가는데 내 젊음이 다른 청춘에 비해 피지 못하고 시들어 가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때까지 내게 용기를 주는 것이 시였다. 시가 내 친구였다. 혼자 펜을 집어 몰두하는 시간이 좋았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달란트가 만들어지는 것이 즐거웠다. 그렇게 시를 품에 안고 지냈다. 자대 배치를 받고 밀양으로 출동 나가 기동버스 속에서 새벽까지 혼자 시를 읽었다. 행복했다. 그때 내게는 욕심이었던 시가 누군가에게 위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시가 누군가에게 위안이 되길 바란다.


조간 경남신문의 첫 시인으로 꾸준히 시를 쓰고, 절대 문학을 놓지 않을 것을 약속드린다. 내가 필사한 모든 시집들에게 감사드린다. 내 시를 읽고 응원해준 친구들과 청년작가아카데미 식구들에게, 중대장님을 비롯한 모든 분께, 늘 함께하는 본부소대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무엇보다도 젊은 시인의 영광을 주신 경남신문사와, 심사위원 선생님께 큰절을 올린다. 제대하면 시집 바깥쪽 먼 이국으로 떠나 다른 언어의 풍경을 직접 만나고 싶다. 지금은 꿈에 열망하고 있다.

 

1993년 마산 출생

경남대 가정교육과 군휴학(창원중부 방범순찰대 본부소대 상경)

청년작가아카데미 2기 수료

2013년 경남 고성 디카시 공모전 우수, 2014년 제2810·18문학상 시 부문 당선

 


<심사평>

 

행간마다 생기와 상상력 넘쳐


신춘문예 당선작은 하늘이 내리는 선물일지도 모른다. 단 한 편을 새해 신문에 내보내는 작품을 골라야 하는 심사위원들의 취향은 다르다. 그리고 뽑는 이유도 제각각이고 탈락시키는 이유도 제각각 다르다. 최종심에서 논의된 시는 우물우물 맛있나요’, ‘우중 건축’, ‘물수리 그림자, 지나간다이다.


우물우물 맛있나요는 노모의 잇몸이 소재다. 의태어와 의성어를 적절히 버무려 세 편 중에서 가장 따뜻하고 감칠맛이 나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노모의 잇몸이라는 평범한 소재에서 뭔가 새로운 표현이나 사유를 읽어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우중 건축은 표현이 아름답고 섬세한 작품이다. 묘사와 진술의 적절한 조화가 시의 완성된 건축물을 보는 듯했다. 그것은 아마도 오래 연마하고 다듬고 사유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우중 건축물수리 그림자, 지나간다를 두고 오래 고민해야 했다. 처음부터 물수리 그림자, 지나간다는 앞에 언급한 두 작품에 가려져 심사위원의 눈길을 끌지 못한 작품이다. 그런데 자꾸 읽다 보니 행간마다 생기가 넘치고 있었다. 막막한 청춘을 이상한 활기와 비약으로 성큼성큼 건너 뛰어가고 있었다. “얼음 부딪히는 북해에서 내 이물까지 오만 리 길/그곳에서 다시 고물까지 십만 팔천 리 길이라는 표현의 진폭은 넓다. 배의 앞부분인 이물과 뒷부분인 고물까지의 거리를 북해에서 시작하고 있는 투고자의 상상력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시에서 우리는 울퉁불퉁 몸을 비틀며 지나가는 강물처럼 격렬한 청춘이 지나간 흔적을 읽었다. 한 마리 물수리가 강물 위를 날아갈 때 모래바닥에 거친 예감이 그림자처럼 생긴다는 시적 사유도 만만치 않았다. 우리는 결국 섬세하고 아름다운 표현이 아니라 막막하지만 거친 청춘을 노래한 쪽에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 당선자가 앞으로 어디로 흘러갈지, 독자를 놀라게 할 그 아찔한 순간이 언제 올지 기대하며, 축하의 말을 전한다.

 

심사위원 : 유홍준·박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