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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모자이크 / 이인서

 

쨍하는 소리와 함께 앞집 유리창이 깨졌다 얼음판을 돌로 친 것처럼 어느 일성이 내놓은 모자이크, 여전히 붙어있는 파편들은 찡그린 얼굴 같다

 

작은 구멍이 난 곳을 정점으로 사방으로 퍼져나간 사나운 선들, 그 앞을 누군가 서성거리고 창밖의 나무 한 그루가 모자이크 처리된 채 서 있다

 

살얼음이 낀 12월의 안쪽은 왠지 범죄 냄새가 난다 조각 난 얼굴 위로 가끔 변검을 한 목소리가 튀어나오고 모자이크 속 남자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깨어진 균열의 힘으로 버티고 서 있는 집, 깊숙한 구석까지는 채 다다르지 못한 금

 

깨진 햇빛 조각 하나가 섞여 있는 창문

 

문을 꽝, 닫으며 뛰쳐나가는 여자 뒤로 은행나무 마른 가지들이 뿌연 하늘을 모자이크 처리하고 있다



<당선소감>

 

"겨울의 잔인한 풍경이 행운 가져다줘

 

얼마 전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바르셀로나, 피카소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에서 피카소의 비둘기 한 마리를 사왔습니다. 가끔 들여다보며 주문을 외우곤 했지요.


그러던 중 잠깐 낮잠을 자고 일어나다가 꿈인 듯 생시인 듯 당선소식을 들었습니다. , 주문대로 이루어지다니눈앞에서 희디흰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오르는 게 보였습니다.


늦게 시작한 공부로 인해 그동안 외로우셨을 우리 엄마, 사랑하는 가족들, 죄송해요. 그러나 사랑해요. 믿고 응원해준 준상 씨 고맙습니다.


그 겨울의 잔인한 풍경이 제게 이렇게 큰 행운을 가져다줄 줄은 몰랐습니다.


늘 생생한 상상력을 자극해주고 격려해주신 김영남 선생님과 정동진 회원님들 감사합니다. 그동안 길잡이가 되어준 수많은 시인들과 문장들에게도 고맙다고 인사합니다.


부족한 제 글을 뽑아주신 문정희 선생님, 유성호 선생님께도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더욱 열심히 좋은 시를 쓰라는 채찍으로 알고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겠습니다.

 

약력

1959년 전남 영광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불문과 졸업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

 

<심사평>

 

안정성·진정성·밀도 잘 어우러진 결실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참으로 많은 분들이 응모해주셨다. 그 매체적 위상이 하루하루 달라져가는 경인일보에 읽을 만한 작품들이 이렇게 많이 투고되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심사위원들은 본심에 부쳐진 작품들을 여러 차례 읽어가면서, 일부 작품들이 만만찮은 안목과 역량을 보여주었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시단의 주류 형식을 추수하거나 판박이에 가까운 관습적 상상을 보여주지 않고, 스스로의 경험적 구체성에 정성을 쏟은 것도 퍽 긍정적으로 느껴졌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시의 미래적 좌표를 개척해가는 생산적 면모라고 생각되었다. 심사위원들이 주목한 분들을 가나다순으로 밝히면 김건화, 김덕현, 김재희, 김효숙, 소선아, 오늘샘, 이인서, 이준성, 한용규 씨 등이었다. 오랜 토론 끝에 심사위원들은 이인서 씨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당선작으로 결정된 이인서 씨의 '모자이크'는 몇 개의 감각적 장면들을 모자이크한 일종의 감각 시편이다.

충격과 반응으로서의 '''파편' 사이에서, '구멍''사나운 선' 사이에서, '목소리''얼굴' 사이에서 각각의 모자이크들은 스스로의 독자성과 서로를 얽는 연관성을 동시에 완성하고 있다. 결국 "깨어진 균열의 힘으로 버티고 서 있는 집"이라든지 "깊숙한 구석까지는 채 다다르지 못한 금" 등의 표현이 시인이 ''를 통해 가 닿고자 하는 세계에 대한 불가피성과 불가능성을 동시에 알려준다. 그래서 "깨진 햇빛 조각 하나가 섞여 있는 창문"은 시인이 가 닿아야 할 ''의 궁극적 좌표가 되는 셈인데, 결국 이 시편은 자신이 어떤 시를 써야 할지를 모자이크로 그려낸 일종의 메타시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안정성과 진정성 그리고 밀도가 잘 어우러진 결실이라고 생각된다.


당선작이 되지는 못했지만, 구체성 있는 언어를 통해 자신만의 언어적 성채를 구축한 경우를 많이 발견하였다는 점을 덧붙인다. 시적 대상을 좀 더 일상 쪽으로 구체화하여 우리 주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타자들을 애정 깊게 응시한 결실들도 많았다. 다음 기회에 더욱 풍성하고도 빛나는 성과가 있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이번 응모자 여러분의 힘찬 정진을 당부 드린다.

 

심사위원

문정희(시인, 한국시인협회장),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