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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조율사(調律師) / 박금아

 

이른 봄을 마실 나온 햇살 한 조각이 하얀 건반을 베고 비스듬히 누워 있다. “. 띠이잉.” 여러 번의 두드림에도 침묵하고 있는 흰색 건반 ’, 제소리의 높이를 기억할 수 없다. 옆지기 의 중간쯤이었으리라. 엄지와 중지의 지문이 기억하는 어렴풋한 자리를 더듬더듬 찾아간다.

조율사가 왔다. 목발을 짚은 그를 따라 그의 아내도 함께 왔다. 한쪽 다리를 절뚝이며 한 손에 큰 가방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남편을 부축하는 모습이 힘에 겨워 보였다.


조율사는 건반을 눌러 현의 울림을 들었다. 청진기를 대듯 심장의 박동으로 혈류를 감지하고 숨소리로 심폐 기능을 진단했다. 쿨럭쿨럭. 시기를 놓친 폐렴처럼 쇳소리 같은 기침이 새어나왔다. 공명판에 탈이 난 모양이었다. 집 안은 수술 중사인이 켜진 병실 같았다. 나는 가족의 수술대를 지키는 마음으로 조율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부부는 조율의 모든 과정을 공유하고 있었다. 말이 없어도 제때에 다가가 도움을 주는 곡진한 모습은 강약이 잘 짜인 악보의 한 소절 같았다. 독일 병정을 닮은 남편의 포르테와 산토끼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깨금발을 옮기는 아내의 피아니시모가 이룬 완벽한 하모니였다.


얼마 전에 만난 친구가 생각났다. 원룸으로 초대한 그녀는 별거 중이라고 했다. 늦가을 낙엽같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멍해졌다. 가출까지 감행한 결혼이었다. 서울 부잣집 외동딸과 가난한 농가 장손의 만남은 캠퍼스에 순애보를 남겼다. 결혼 후, 그녀의 나날은 남편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 그랬던 그녀가 변했다. 일 년 전, 남편이 회사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면서부터였다. 비서가 남편을 도우면서 우두커니 서 있는 날이 많아졌다고 했다. 한층 패기 넘쳐 보이는 남편을 인정할수록 자신은 초라해지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런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가, 남의 삶을 산 것 같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남편도 아내를 이해하기는커녕 결백만을 주장했다고 한다. 최선을 다해 달렸을 뿐인 그로서는 황당했을 수도 있었겠다. 결국 그는 아내의 완강한 별거 제의에 응하고 말았다.


방 한구석에 놓인 피아노가 눈에 띄었다. 얼마 전에 친정어머니 초상을 치르고 결혼 전에 자신이 치던 피아노를 가져왔다고 했다. 그제야 그녀가 피아노를 전공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건반을 누르더니 그녀는 금세 손사래를 치고 말았다.


너무 방치했었나 봐. 소리가 안 나.”


동창들이 전업주부인 처지를 한탄했을 때도 굳건했던 그녀였다. 친구들이 오래전에 겪었던 상실(喪失)을 그녀가 지금 앓고 있었다. 친구를 혼자 두고 오는 발길이 무거웠다.


피아노는 벌써 여섯 시간째 조율 중이다. 88개의 건반과 200개가 넘는 현을 가진 피아노는 조화로운 음역으로 악기의 대명사로 불린다. 사람의 몸도 수천 개의 기관들이 만들어내는 어울림으로 생존을 이어간다. 성인의 뼈는 206개이고 관절은 100개 이상, 근육 수는 그보다 훨씬 많은 650개이다. 혈관의 길이는 96,000킬로미터로 지구를 두 바퀴 반이나 돌 수 있는 거리라고 한다. 인간의 몸은 수십억 인구 중에 똑같은 세포를 가진 사람이 없을 만큼 정교한 악기이다.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횟수의 조율이 필요한 걸까.


조율사는 피아노의 외장(外裝)을 살폈다. 이십 년을 옮겨 다녔으니 수난의 흔적이 역력했다. 힘든 수술을 끝내고 환자를 인도하는 심정이었으리라.


보물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소리이지요.”


그들 부부의 삶이 궁금해졌다.


두 분 사이에 특별한 조율의 방법이 있나요?”


흠집은 조심해서 고쳐야 합니다. 무리해서 없애다 보면 고유 음을 잃고 말지요. 소리 속에는 상처의 크기와 무게가 다 계산되어 있어요. 부부 사이도 그렇지요.”


그들도 긴 조율의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축구선수였던 남편은 결혼 초, 사고로 다리를 잃었다. 마음에도 큰 병이 왔다. 몇 년 동안 남편은 방바닥만 지켰다. 생계를 대신한 아내의 정성도 외면할 뿐이었다. 어느 날 귀갓길에 아내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오랜 치료에도 다리는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연이어 찾아온 불행은 남편을 돌아오게 했다. 피아노 치기를 즐겼던 그에게 아내는 함께 피아노 조율을 배우기를 권했다.


그가 상기된 얼굴로 건반을 눌렀다. ‘종달새의 비상’*이었다. 붉어진 귓불 곁으로 종다리 한 마리가 포르르 날아올랐다. 아내의 단아한 눈빛이 남편의 눈길을 따라 새가 날아간 창문을 넘어갔다. 부부의 모습이 황혼녘에 쟁기질을 끝내고 산비탈에 서 있는 겨리소처럼 정다웠다. 부부란 삶의 파고(波高)에서 생긴 흠집까지도 보듬어 세상에서 가장 애틋한 소리를 만들어가는 조율사들이 아닐까.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연주에 앞서 늘 악기를 튜닝한다. 한 시도 쉬지 않고 스스로를 변주(變奏)시키는 소리의 성질 때문이다. 친구네 부부에게도 튜닝이 필요할 게다. 처음엔 불협화음의 고통을 감수해야 할 테지만 조율의 시간을 지나고 나면 변형되기 이전의 소리를 찾을 수 있을 게다. 어쩌면 그들은 벌써 튜닝을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별거는 조율을 위한 잠깐 동안의 해체일 뿐이니까.


이 밤에도 친구는 잃어버린 음()을 찾아 건반을 더듬거리고 있을 테지. 친구를 도와주고 싶었다. 전화를 걸었다.


, 조율사를 보내줄게.”

 

*종달새의 비상(The Lark)/ 랄프 본 윌리엄스의 피아노 연주곡.


<당선소감>

 

28년을 지나 이제야 내 고백이 받아들여진 느낌


먼 길이었습니다. 28년 전, 그를 만나고 부른 원고의 첫 이름도 먼길이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임선희 선생님이 주선해 주셨습니다. 낯가림이 심했습니다. 수더분한 인상과는 달리 쉬 곁을 내주지 않아 빙빙 맴돌기만 했습니다. 이제야 저의 고백이 받아들여진 느낌입니다.


문득, 어린 날의 바닷가 발막 마당이 떠오릅니다. 새벽 바다에서 건져 올린 멸치가 삶기는 동안 어머니가 몽돌로 써 놓은 가갸거겨를 베껴 썼습니다. 졸다 쓰다를 되풀이 하다 보면 자주 연필을 잃어버렸습니다. 어느 날, 손가락을 빠져나간 몽당연필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글자를 다 담아내지 못한 공책처럼, 다가온 시간들을 온전히 보듬지 못한 채로 살았습니다. 한 번도 내 안에 들여놓지 않아 밖에서 떨고 있는 저의 날것들에게 미안합니다.


통보를 받은 그날 밤, 전화기가 고장 났습니다. “, 오래 버텼네요.” 수리공의 말에 가슴이 짠했습니다. 당선! 그 한마디를 전해주려고 버텨온 듯했습니다. 인내로 지켜봐 주신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수필보다 아름다운 삶을 가르쳐주신 맹문재 선생님께 큰절을 올립니다. 한상렬 선생님, 최원현 선생님 고맙습니다. 진눈깨비를 헤치며 두 팔 가득 꽃다발을 안고 달려와 준 이정순 시인님, 사랑합니다. 동작문화원의 문우들과 기도를 알려주신 어머니와 여섯 동생들, 제 글의 첫 독자이자 따뜻한 비평가인 남편에게도 큰 고마움을 전합니다. 언젠가 엄마의 글을 읽으며 두 눈에 글썽이던 아들과 딸의 눈물도 큰 용기가 되었습니다.


볕 좋고 바람 좋은 곳에 오래도록 걸어두고 싶었습니다. 아직도 떫은맛입니다. 느닷없는 방문에 속곳 채로 나선 모습처럼 부끄럽기만 합니다.


오늘도 바람이 붑니다. 깜깜했던 시절, 별에 붙여 그리움을 헤던 청년시인처럼 고마움을 헤어봅니다. 미애, 영남, 명덕, 진진, 경임, 혜영, 유경, 옥경. 밤이 다하도록 헤지 못할 이름들입니다. 유년의 몽당연필을 찾아주신 매일신문사에 감사드립니다. 제 어린 수필나무에 북을 돋우어주신 심사위원 분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두려운 마음으로 걸어가겠습니다.


 

1958년 경남 삼천포 출생

숙명여대 불어불문학과 졸업

전 삼성그룹 사보 기자

2014 해양문학상 수상


<심사평>

 

탄탄한 문장력 바탕 위 결미 부분의 반전 빛나


일상의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그늘 한 점이고 추운 겨울날 따뜻한 아랫목이다. 별스럽지 않은 작은 그늘과 따뜻한 아랫목을 뜻밖의 사람과 나눌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소소한 즐거움의 시작이다. 작지만 영롱한 것 이것이 수필의 매력일진대 애틋하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사방으로 찾았으나 응모작은 평년 수준에 크게 못 미쳤다. 대다수의 응모작이 일상사의 단순한 형상화나 명언 명시의 문구를 그대로 옮겨 구성이나 참신한 소재 발굴로부터 거리가 멀었다.


전국 각지에서 또 일본, 캐나다, 베트남, 중국까지 해외 여러 곳에서 430여 편의 귀한 원고가 도착했다. 두 사람의 심사위원이 온종일 보물찾기하듯 글밭을 뒤졌으나 무릎을 치거나 두 눈을 젖게 하는 감동스러운 작품은 없었다. 긴 토의 끝에 <조율사> <막잠> <발톱> <아장사리> <난전> 5편을 최종심에 올렸다. 막잠이나 아장사리도 뛰어났지만 조율사를 당선작으로 정하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박금아 씨의 조율사는 피아노 조율이라는 흔하지 않은 소재였지만 글을 끌고나가는 힘이 만만치 않았으며 일관성 있는 주제와 구성의 효율성을 극대화한 작품이었다. 다 늦은 나이에 별거를 선택한 친구와 온갖 고난을 견디며 이제 서로 어울리는 하모니를 찾은 조율사 부부를 적절한 언어로 집을 지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흠집을 무리해 없애려 하면 오히려 고유한 음을 잃어버린다는 말과 함께 부부란 가장 애틋한 소리를 만들어가는 조율사라 일컫는다. 조율사를 선택한 이유는 탄탄한 문장력의 바탕 위에 마지막 결미 부분의 반전이 참으로 빛나고 환했기 때문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안의 누군가를 키우는 일이다. 일 년 내내 홀몸이 아니었을 문우들에게 다시 한 번 큰 박수를 보내며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아쉽게 내년을 기약하는 분들에게는 힘찬 격려를 함께 보낸다.

 

심사위원 구활·김은주(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