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동양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복숭아씨 - 박혜자
<당선작>
복숭아씨 / 박혜자
과일가게 주인이 맛보라며 복숭아 한쪽을 준다. 토실토실 살이 올라 단 냄새를 물씬 풍기던 복숭아는 살을 다 발라내자 씨만 남았다. 주인이 복숭아씨를 휴지통에 던지고는 복숭아 한 개를 또 깎는다. 복숭아씨가 맨 몸으로 휴지통에 웅크리고 있다.
평생 땅 한 뙈기 가져 본 적이 없는 아버지 이름으로 땅이 생겼다. 비가 와야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산 아래의 천수답이었다. 천수답이 생긴 후로 아버지는 더욱 일에 매달렸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농작물은 토실토실 살이 올라가는데 아버지의 몸은 마른 장작처럼 말라갔다.
복숭아 알이 주먹만큼 커지고 매미소리가 요란하게 울어대던 날 아버지를 만나러 병원에 갔다. 터널 앞에서 내린다는 것을 그만 터널을 지나서 내리고 말았다. 무엇이든 때가 있다. 아버지가 건강을 챙겨야 할 때를 놓쳐 병을 얻은 것처럼 나는 터널을 지나 내리는 바람에 되돌아가야 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터널을 지나칠 때는 아무 노력을 하지 않아도 차가 데려다 주었지만 되돌아오는 데는 어둠과 매캐한 매연과 싸워야 했다.
세상을 살면서 예기치 못한 복병과 만나는 일이 허다하다. 허방을 짚는 일도 많다. 터널을 지나쳐 내린 것이 그랬다. 터널을 지나는 것은 만만하지 않았다. 내 몸무게만큼의 짐은 어깨를 짓누르고 발은 쇠사슬을 묶어 놓은 것처럼 무거웠다. 아무리 걸어도 보이지 않는 입구, 지나가는 차들이 뿜어내는 매연, 후끈거리는 열기, 짐이 누르는 육체의 고통, 암담한 내 현실과 살아갈 일들. 내 인생이 터널에 갇힌 것처럼 답답하고 무서웠다.
울면서 걸었다. 터널 속의 열기와 눈물 콧물이 섞이자 정신이 혼미해 왔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정신을 차리려고 아버지에게 전해 달라며 동생이 준 사탕을 입에 넣었다. 달콤한 사탕이 입안을 맴돌자 땅속으로 가라앉던 내 몸이 조금씩 땅 위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
쓰디쓴 인생을 견디게 하는 것은 가슴에 담아놓은 달콤한 추억과 희망이다. 달콤한 추억은 아무리 먹어도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성격 급한 아버지는 지게작대기든 바지랑대든 손에 잡히는 대로 휘두르셨다. 험한 말을 가리지 않아 욕쟁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이 싫어서 학교에 다녀오면 들로 나갔다.
그 날은 오일 만에 서는 우리 동네 장날이었다. 아버지가 땀을 뻘뻘 흘리며 커다란 포대를 메고 대문을 들어섰다. 동생과 공기놀이를 하던 나는 호미를 챙겨들고 들로 나갈 준비를 했다. 아버지가 나를 부르더니 포대를 보여 주었다. 포대에는 우리 가족 수만큼의 수박이 들어있었다.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환한 웃음을 지으며 수박 한 통씩을 나눠주셨다.
우리 가족은 아버지를 따라 수박의 꼭지부분을 잘라 뚜껑을 만들고 숟가락으로 수박을 파서 먹었다. 수박 한 통씩을 안고 마루에 앉은 가족. 세상에서 그보다 아름다운 그림은 그릴 수 없을 것이다. 수박을 다 먹고도 수박뚜껑을 열었다닫았다하며 한참을 가지고 놀았다.
아버지는 나에게 수박의 추억을 남겨주셨다. 그 추억 덕분에 아버지가 나를 미워하신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 힘들고 표현을 잘 못해서 그러셨던 거라고 믿게 되었다.
복사꽃처럼 뽀얗던 아버지의 얼굴은 검게 변해서 광대뼈가 나와 있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살가죽은 고무줄처럼 늘어났고 희망을 놓아버린 마음은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내 손을 잡은 아버지의 눈가에 눈물이 흘렀다. 삶이 말라가면 눈물도 마르는지 아버지는 오래 울지 못했다.
한 때는 태산을 옮길 만큼의 패기와 열정을 가졌고 가족을 위해서라면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아버지. 지금은 잎을 다 떨구어낸 나무처럼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근사한 집을 지어 아내와 자식을 호강시키며 호기롭게 살리라 꿈도 꾸었다. 그러나 건강 앞에서 꿈은 바스라졌고 가족의 앞날을 걱정하는 처지에 놓였다.
아버지는 움직일 수 없는 몸이 되어 어둡고 습기 찬 터널에서 입구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입구는 찾을 수도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 미동도 않는 몸을 원망해봤자 마음만 상할 뿐이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밀양 어디선가 복숭아 농사를 짓는 아저씨의 아들이 복숭아를 들고 병실로 들어섰다. 입에 대기만 해도 단물이 줄줄 흐를 것 같은 복숭아의 냄새는 향긋했다. 그 때 아버지가 번쩍 눈을 떴다. 복숭아가 아버지의 눈꺼풀을 밀어올린 것이었다. 손오공이 하늘에 있는 천도복숭아를 먹고 불로불사를 누린 것처럼 아버지도 복숭아를 먹으면 병을 툴툴 털고 일어날 것 같았다.
나는 복숭아 주위를 빙빙 돌며 아버지의 몫으로 몇 개나 돌아올까 계산을 했다. 떡 줄 아저씨는 잠만 자고 있는데 나 혼자서 김칫국을 마셔댔다. 아저씨는 잠에서 깨어나고도 한참이 지나도록 복숭아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줌마가 껍질을 벗겨 복숭아를 주자 아저씨가 짜증을 부리며 손으로 쳤다. 그 바람에 복숭아가 공중돌기를 하더니 내 발 앞에 떨어졌다. 살이 터진 복숭아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단 내음이 훅하고 코를 스쳤다.
아저씨는 복숭아나무를 키우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 그 덕분에 복숭아는 단맛을 가지게 되었고 아저씨는 병을 얻었다. 복숭아를 돌보는 일을 좀 쉬어가면서 했더라면 싶어 복숭아를 미워하는 것이라 생각하니 연민이 느껴졌다. 살이 터진 복숭아를 그대로 둘 수 없었다. 아저씨의 마음을 모으듯 나는 정성을 다해 복숭아를 쓸어 모았다. 복숭아가 천도복숭아이기를, 복숭아를 키운 아저씨의 인생도 달고 달기를 빌었다.
복숭아의 성한 부분을 떼어 입에 넣어주자 아버지는 마다하지 않고 드셨다. 보고 있던 아저씨가 복숭아 두 개를 주셨다. 며칠째 죽도 넘기지 못하신 아버지가 “아! 맛있다!”를 연발하셨다.
아저씨가 복숭아씨를 침대머리맡에 두었다. 씨가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고 그 열매가 또 싹을 틔우는 것을 보고자하는 마음이 엿보여 나도 따라 했다. 아버지의 고통이 복숭아씨 무게만큼 작아지기를, 복숭아씨가 또르락또르락 경쾌한 소리를 내는 것처럼 아버지의 몸도 경쾌하기를 빌었다.
죽은 듯이 누워 있던 아저씨가 부스스 몸을 일으키더니 복숭아씨를 두 손 안에 감싸 쥐고 마구 비비기 시작했다. 띠그그르르르 , 복숭아씨 부딪치는 소리가 병실에 울려 퍼졌다. 병실에 있던 사람들이 아저씨를 따라서 복숭아씨를 비볐다. 복숭아씨 비비는 소리와 함께 병실에 생기가 흘렀다. 모로 누워 말도 하지 않던 환자들이 누가 씨를 더 빨리 비비는지 시합했다.
그 해를 넘기지 못하고 아버지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셨다. 나에게 남겨진 세 동생과 연약한 어머니, 우리 다섯 식구는 모진 세월을 살아왔다. 힘든 일과 마주칠 때마다 터널을 떠올리며 한발 한발 묵묵히 걸었다.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을 것처럼 긴 터널도 한발 한발의 힘으로 빠져 나오고 높은 산도 한 걸음 걸음이 더해져 정상으로 간다.
참을 수 없을 만큼 힘들고 고통스럽던 일도 지나면 추억이 된다. 그 날의 터널도 복숭아도 이젠 추억이다.
크고 모양 좋은 것으로 백도 한 상자를 샀다. 씨를 깨끗이 씻어 두었더니 까슬까슬 말랐다. 손안에 넣고 비비자 경쾌한 소리가 난다. 내 인생이 경쾌해지는 것 같다.
<당선소감>
돈키호테·연암처럼 멋진 문장가 되고파
글을 읽고 쓸 때면 행복하고 내가 지은 밥을 맛있게 드시는 분들을 보면 더 없이 행복하고 아이들과 떠들고 놀 때는 더더욱 행복합니다.
행복한 일이 또 있습니다. 동시를 쓰는 선생님들과 소리 내어 책을 읽는 일입니다. 돈키호테를 시작으로 열하일기를 읽었습니다. 돈키호테의 시종 싼초와 연암의 하인 창대와 장복이는 주인을 능가할 만한 유머를 지녔습니다. 함께 지내다보면 생각도 닮기 때문인가 봅니다.
돈키호테처럼 고아와 과부와 힘없는 자의 편에 서고 싶었고 연암처럼 유머러스하고 멋진 문장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발뒤꿈치도 닮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발뒤꿈치의 그림자라도 닮자는 생각으로 오늘도 달리고 있습니다.
돈키호테스타티선생님들과 무가로 아름다운 동시교실을 운영하는 박일 선생님 덕분에 제 행복이 날로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엉뚱한 일만 벌이는 아내를 보듬어주는 고마운 남편과 격려를 아끼지 않은 성준, 성아, 백현에게도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제 인생에 또 하나의 행복을 쌓았습니다. 좋은 상을 주신 동양일보와 심사위원 선생님 고맙습니다. 늘 행복하게 살며 행복을 전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약력
● 1962년 경남 양산 출생
● 부산아동문학 신인상 동화 당선, 목포문학상 동시 당선
● 동화 ‘소박사 기석이’ 대교출판 우수창작동화 선정
● 대통령기 국민독서경진대회 최우수상 수상
● 무료급식소, 지역아동센터 공부방 독서 봉사.
<심사평>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애증 잘 표현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지만 이제는 해마다, 아니 하루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바뀌는 시대가 되었다.
과학문명이 급속도로 변화하여 활자문화의 종언을 예언했던 백남준의 명언대로 너도 나도 손바닥에서 동영상이나 보고 있다. 힘들여 책들은 보지 않고 화려한 동영상이나 보고 즐기는 일에만 몰두한다. “모든 종이는 죽었다. 다만 크리넥스만 남고.” 그러나 글쓰는 갈망이 아주 사라지진 않고 있다. 아나로그 감성도 필수적이다.
취미나 전문지식을 잘 살리고 과학상식도 깊이 있게 탐구한다면 좋을 글감이 되지 않을까 한다. 다양한 글쓰기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한다. 수필 작품이라면 아버지, 어머니, 고향들에 얽힌 추억거리인 과거형 수필이 대종을 이루고 있는데 미래 지향적인 상상력이 풍부한 지적인 글들도 필요하다.
전주, 부산, 대구, 청주 등 각처의 수필이 마치 정치판의 구도처럼 경선을 하여 선별하는 데 고심을 하였다.
당선작으로는 ‘복숭아씨’(박혜자)를 밀었는데 감정에 치우치지 않으며 관조하는 자세로 아버지에 대한 애증을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를 찾는 과정, 터널 지나치기, 장날의 수박에 대한 추억, 병원 입맛 돋우던 복숭아맛, 복숭아씨 부딪는 경쾌한 소리 등에 매력이 있다. 문장의 연결이 좀 매끈하진 않았음에도 “쓰디쓴 인생을 견디게 하는 것은 가슴에 담아놓은 달콤한 추억과 희망이다.” 등 간결한 문장이 큰 장점이다.
‘치통의 이력서(황정현)’는 중수필의 전형으로 화려한 문체와 겪었던 체험을 잘 살린 점이 호감을 갖게 한다. “나의 치통의 역사는 결코 나긋나긋한 향취도 없고, 기억해도 좋을 만큼 아름다운 줄거리가 있는 삽화도 없다. 이 치료를 받으며 오직 두려움과 가슴 저린 공포, 초조하게 기다리다 무미건조하게 잃었던 시간들이 즐비하게 깔려 있다.” 단지 독자로 하여금 잔잔한 감동을 주는 데 미흡한 점이 아쉽다.
‘당신의 피아노(손훈영)’는 아버지의 과도한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딸이 암에 걸리며 느끼는 미안함을 표현한다. ‘조신한 긴 머리를 하고 피아노를 치고 있는 고상한 인격을 가진 딸을 원했’던 아버지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지 못한 효의 의미를 암환자로서 뉘우친다. 긴 머리에 거부감이나 갖고 피아노 치기를 가위에 짓눌리는 것으로 여기던 딸의 입장을 좀 더 매끈하게 처리하지 못한 흠이 있다.
‘주목 아래서(이인숙)’도 아버지 사랑을 그리고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곧 이어 홀연히 자녀 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아름다운 회상기다.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는 주목을 보며 “햇볕에 까맣게 그을린 모습이 아닌 짙푸른 자태다. 굽은 허리 펼 사이 없이 고단하던 당신의 형상이 아니다. 땅에 기운차게 뿌리 내린 주목의 둥치는 씨름선수의 허벅지만 하고 하늘 향해 자란 키는 아버지의 신장을 훌쩍 뛰어넘는다. 당신처럼 듬직한 주목이 환하게 나를 반긴다.” 당신의 동생이 심은 주목을 보며 아버지의 고단한 삶을 짐작하고 그 품에 안기듯 주목 아래 누워보며 사랑을 곱씹는다.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가 더 있었다면 싶다.
심사위원 : 조성호(수필가)
'좋은 글 >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6 매일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비를 기다리는 마음 - 손훈영 (0) | 2016.01.02 |
---|---|
[2016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물미장 - 류현승 (0) | 2015.12.31 |
[2015 매일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조율사(調律師) 박금아 (0) | 2015.01.03 |
[2015 경남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노을을 읽다 - 김만년 (0) | 2015.01.02 |
[2015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못갖춘마디 - 윤미애 (0) | 2015.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