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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 신문사측에선 줄거리만 제공하고 있습니다.

 

귀신 / 황현진

 

백령도의 한 야산에서 훈련차 파견 중인 해병대 수색대. 상병인 규태는 동기인 영민과 함께 부사관 시험을 쳤고 합격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규태는 외환위기 때 아버지를 잃고 어려운 생활을 해왔기에 안정적인 직장에 대한 욕구가 강했다.

결혼 적령기가 된 연상의 애인과의 책임 있는 결혼을 위해서도 부사관직은 규태의 처지에서 유일한 희망처럼 보였다. 그래서 규태는 또 다른 동기인 진호와 화현이 고참들의 괴롭힘으로 힘겨워하는 것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한다. 괜히 나섰다가 자신의 부사관직에 영향이 미칠까봐서였다. 규태는 영민과 함께 끝내 합격 소식을 받고 기쁨에 젖지만, 같은 날 화현은 차가운 설산에서 스스로 목을 매단 채 주검으로 발견된다.

화현의 죽음은 개인적 사유에 의한 자살로 판명되고 훈련은 재개된다. 부대원의 암묵적인 침묵이 있었기에 가능한 수사 결과였다. 부대원들은 선임, 후임을 막론하고 화현과 진호의 기수 열외에 참여했기에 대부분 정확한 진술을 피했다. 규태와 영민도 부사관 대기발령 상태였기에 진술에 소극적으로 임했다. 이 모든 것에 진호는 동요한다. 관심병사로 지정된 적 있던 진호였고, 그 때문에 죽마고우인 규태가 있는 현재의 부대로 전출 와 겨우 안정을 찾았던 진호였다.

규태는 얼마 안 가 손목을 긋고 있는 진호를 발견하면서 충격에 빠진다. 규태는 이내 탈영을 계획하는 진호를 보면서 근심에 빠진다. 규태와 영민이 전출을 가면 진호는 동기도 없이 홀로 이 부대에 남아야 했다. 1년이나 남은 군 생활을 진호가 버텨낼지 알 수 없었다. 친구가 죽는 것이 두려웠던 규태는 결국 진호가 원하는 근무시간대에 근무를 배정해주고, 진호가 탈영을 예고한 날을 불안하게 기다린다.

어느덧 탈영을 계획한 날이 다가오고 규태는 진호와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약속 장소에서 초조히 기다린다. 아무리 기다려도 진호는 나타나지 않는데, 갑자기 당직을 맡게 된 영민이 규태 속도 모르고 얼쩡거린다. 그런데 규태 이름으로 후임들을 야외 화장실로 집합시켰다는 공지가 돌고 있음을 알게 되는 두 사람. 규태는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느낀다. 그때 갑자기 밖에서 들려오는 큰 폭발음 소리. 규태와 영민은 사색이 돼서 밖으로 뛰쳐나가는데….





<당선소감>

 

나도 당신도 모두 애썼습니다

 

쓰레기통을 쏟고 버려진 것들의 사이를 보았습니다. 끓는 물속에 저어져 얼룩이 생긴 커피봉지들과 말라 비틀어진 귤 껍질을 지나 여전히 꿉꿉한 고구마 껍질 속을 뒤졌습니다. 물기와 냄새를 머금고 구겨져 있던 신춘문예 우편 영수증을 그 속에서 건졌습니다. 답이 올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영수증도, 제 글도 갑자기 의미를 부여받았습니다.

그래서 기쁩니다. 저를 기다려준 가족과 항상 제 글을 정성스럽게 읽어주는 동료들, 곁에 있어주는 친구들, 힘껏 작업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해준 한국콘텐츠진흥원 창의인재 동반사업과 그 기회를 주신 이은경 교수님께 작게나마 답을 한 것 같아서 기쁩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또한 미안합니다. 제 글을 쓸쓸히 읽을, 거론되지 않는 분들이 있으니까요. 정성스레 보낸 글에 대해 답을 받지 못한 이름 모를 나의 동지들입니다. 그래서 당선소감도, 인터뷰도 망설였습니다. 제 자신이 영수증에는 의미를 부여하더라도 제 삶까지 어떤 의미를 도출하기 위해 각색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얼굴 모를 동지들의 삶에 대한 예의일 것입니다. 그래도 당선소감에 마음을 표현하면 어떻겠느냐는 신문사의 권유에 마음을 바꿉니다. 신춘문예를 대신해 제가 감히 짧게나마 동지들에게 답합니다. 

나는 맞고 당신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나도 끝내 써냈고, 당신도 끝내 써냈습니다. 최소한 우리는 알잖습니까.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무수한 고독과 흉포한 시간에 또 한 번 지지 않았음을, 추깃물의 심연에 질식당하지 않았음을 말입니다. 우리의 고빗사위에서 당선이란 규정이 이번에는 제게 지어졌지만, 그저 규정입니다. 여전히 우리는 귀합니다. 나도 또 쓰겠습니다. 당신도 또 써주세요. 나도 애썼고, 당신도 애썼습니다. 정말 참 애썼습니다, 우리.



◎ 약력

▶ 1985년 미국 출생

▶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졸업
▶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전문사 과정 입학 예정



<심사평>

 

꼼꼼한 취재·밀도 있는 구성…이 시대 청년의 자화상 그려

 

한국 영화 감독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돈도 배우도 아니고 작가라는 얘기를 한다. 최근 들어 개선되고 있지만 작가에 대한 열악한 처우가 좋은 작가의 유입을 막고 기존 작가의 이탈을 막지 못하고 있다. 감독과 제작사가 기다리는 대형 작가의 탄생을 고대하며 심사에 임한 심사위원들은 이번 심사를 통해 만족하는 점과 불만스러운 점을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

소재의 면에선 상당히 많은 시나리오가 가족의 붕괴, 왕따, 자살, 경제난, 취업난 등 사회의 어두운 면을 다뤘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생각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당선작으로 뽑힌 ‘귀신’은 군대에서 발생하는 왕따 및 가혹행위 문제를 꼼꼼한 취재와 밀도 있는 구성, 힘 있는 필력으로 끝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완성한 수작으로 앞으로 작가의 작품 활동을 기대하게 하는 작품이다. 마지막까지 심사위원들을 고민하게 만든 ‘라이어, 오동구’는 시종일관 웃음을 띠게 하는 재치 있는 대사와, 모두가 예상하지만 그 예상 내에서도 보는 이의 감정을 작가의 의도대로 이끌어가는 필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단죄:자신을 향한 분노’도 사람들이 꼭 한 번 되새겨봄직한 메시지를 담은 소재여서 작가가 조금만 더 다듬는다면 언젠가 많은 이에게 선보일 수 있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비록 이번엔 당선되지 않았지만 모든 작가의 시나리오가 언젠가는 한국 영화계의 신선한 바람 또는 거대한 태풍이 될 것이라 믿으며 2016 신춘문예에 응모한 모든 작가의 건승을 빈다.



심사 강유정·김성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