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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아기들쥐와 허수아비 / 이명준

 

텅 빈 들판에 늙은 허수아비가 혼자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북풍이 불어와 빈 들판을 한 바퀴 휘돌고 지나간 뒤였습니다.

“벌써 이렇게 추운걸 보니 올 겨울 동장군도 꽤나 극성이겠군.”

허수아비가 몸을 부르르 떨며 중얼거립니다.

“할아버지! 윗도리 잘 여미세요.”

하루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참새들이 허수아비에게 소리쳤습니다.

그때, 논두렁 돌 틈 사이에서 들쥐 두 마리가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한 마리는 아직 어린 아기 쥐였고 또 한 마리는 제법 쥐 꼴을 갖춘 큰 들쥐였습니다.

“빨리 따라 와!”

먼저 돌 틈을 빠져나온 큰 놈이 뒤따라 나온 작은 쥐를 돌아보며 소리쳤습니다.

“오빠! 무서워!”

작은 들쥐가 허수아비를 가리키며 뒷걸음질을 치고 있습니다.

“야! 저건 허수아비야! 사람이 아니라고!”

사람이 아니라는 말에 다시 몸을 돌린 아기들쥐가 할아버지 차림의 허수아비를 뚫어지게 쳐다봅니다.

“오빠! 저 할아버지 눈 좀 봐. 나를 노려보고 있어.”

“괜찮아! 이 바보야. 할아버지 얼굴은 그림이야!”

오빠의 큰소리에 안심이 되는지, 동생들쥐가 오빠 뒤를 살금살금 따라 걷습니다.

며칠 전, 들쥐남매는 황조롱이에게 엄마를 잃고 고아가 되었습니다. 엄마를 잃은 들쥐남매는 무섭고 슬퍼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울기만 했습니다. 아무리 울어도 엄마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울지 않고는 베길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 날, 보다 못한 옆집 왕쥐 아주머니가 찾아 왔습니다.

“얘들아! 그렇게 운다고 엄마가 돌아오니? 쯧쯧!”

왕쥐 아주머니는 어린 남매가 불쌍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찼습니다. 들쥐남매는 왕쥐 아주머니를 보자 엄마가 생각나 더욱 슬펐습니다.

“아무리 울어도 엄마는 이제 돌아오지 않아! 너희들도 엄마 따라 가고 싶니?”

왕쥐 아주머니의 말에 아기들쥐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엄마 따라 가고 싶다고?”

왕쥐 아주머니가 눈을 더 크게 뜨고 묻자 아기들쥐는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엄마는 갔지만 어린 너희들은 어떻게든 살아야 될 거 아니야!”

살아야 한다는 왕쥐 아주머니의 말에 아기들쥐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엄마가 너희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계실거야.”

왕쥐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오빠들쥐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어떻게든 많이 먹고 기운을 차려야 해. 이렇게 울고만 있지 말고 밖에 나가서 뭣이든 찾아 먹어.”

왕쥐 아주머니가 가고 난 뒤, 들쥐남매는 다시 기운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가 들쥐들의 몸을 움츠리게 했지만 배고픈 들쥐남매는 어떻게든 벼 낟알을 주워 먹어야 했습니다. 논둑 아래 골을 따라 조심스럽게 오빠를 따라 가던 동생이 걸음을 멈췄습니다.

“오빠! 이제 그만 가! 여기서 찾아도 되잖아!”

처음으로 바깥세상에 나온 아기들쥐는 허수아비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무서워 오빠를 다시 불러 세웠습니다.

“너, 배 안 고파?”

“배고파.”

“그러니까 허수아비 밑에 가야 먹을 게 많단 말이야.”

“왜?”

“참새들은 허수아비 가까이 안 가거든. 그러니까 허수아비 밑에는 벼 낟알이 많이 남아 있다고.”

오빠의 말을 들으니 그럴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아기들쥐는 무섭게 생긴 허수아비 가까이 가는 게 못내 찜찜했습니다. 허수아비 가까이 다가갈수록 아기들쥐는 오빠 뒤에 바짝 다가붙었습니다.

“오빠! 이젠 됐어! 그만 가!”

오빠들쥐는 하는 수 없이 허수아비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벼 낟알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곳을 잘 살펴보라고.”

오빠들쥐는 지푸라기를 들춰 보이며 동생에게 벼 낟알 찾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추수를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아 논바닥에는 제법 많은 낟알들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배가 고팠던 들쥐남매는 열심히 낟알을 주워 먹었습니다.

“맛있지?”

“응, 맛있어.”

오빠의 말에 어린 동생이 벼 낟알을 오독오독 씹으며 대답했습니다.

들쥐남매가 한창 벼 낟알을 까먹고 있을 때였습니다.

“얘들아! 얘들아! 어서 숨어!”

논 가장자리에 서 있던 허수아비가 다급하게 소리쳤습니다. 오빠들쥐가 고개를 돌리자 논두렁 아래에서 들고양이 한 마리가 얼굴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야! 뛰어! 빨리 뛰어!”

놀란 들쥐남매는 무작정 앞으로 뛰었습니다.

“얘들아! 이리 들어와!”

허수아비가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내밀며 말했습니다. 들쥐남매는 허둥지둥 허수아비의 바짓가랑이로 들어가 기둥을 타고 올라갔습니다.

“됐어. 이젠 안심해도 돼.”

허수아비는 가슴까지 올라 온 들쥐남매를 가만히 끌어안았습니다.

“할아버지, 고마워요.”

무작정 오빠를 따라 올라온 아기들쥐는 도무지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오빠! 여기가 어디야?”

“허수아비 할아버지의 품속이야.”

“할아버지 품속이라고?”

아기들쥐는 겁이 덜컥 났습니다.

“괜찮아. 할아버지는 너희들을 미워하지 않아.”

허수아비가 조용히 말하자 그때서야 아기들쥐가 마음을 놓았습니다.

“할아버지, 춥지 않으세요?”

“할아버지, 여기 언제까지 서 있을 거예요?”

들쥐남매는 앞 다투어 허수아비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얘들아, 조용히 해라. 들고양이가 듣고 있어.”

오빠들쥐가 허수아비의 허리춤 사이로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들고양이가 허수아비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너희들 냄새를 맡은 모양이야.”

들쥐남매는 겁이 덜컥 났습니다.

“들고양이가 할아버지 몸속으로 올라오면 어떻게 해요?”

“오빠, 우린 집에 어떻게 가?”

아기들쥐가 겁을 잔뜩 먹고 울먹였습니다.

“걱정마라. 그럴 일은 없을게다.”

허수아비가 들쥐남매들을 안심시켰습니다. 그리고는 바짓가랑이를 단단히 여몄습니다. 하지만 들고양이는 쉽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허수아비는 속으로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어떻게든 불쌍한 들쥐남매들을 지켜주고 싶었습니다.

“걱정 할 것 없다. 내 품속에 있는 동안은 걱정할 것 없어.”

허수아비는 어린들쥐들을 꼭 보듬어 안았습니다.

차가운 소슬바람이 마른 지푸라기를 한 차례 쓸고 간 뒤였습니다. 허수아비 주위를 맴돌던 들고양이가 천천히 논둑길을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얘들아! 이젠 들고양이가 돌아갔어. 마음 놓고 내려가서 놀아도 돼.”

허수아비는 자신의 발밑에 수북이 떨어져 있는 벼 낟알을 보았습니다.

“멀리 나갈 필요 없어. 내 발 밑에도 낟알은 많이 있으니까.”

들쥐남매는 기둥을 타고 내려와 허수아비의 바짓가랑이 밑으로 나왔습니다. 허수아비의 말대로 발밑에는 벼 낟알이 소복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들쥐남매는 허수아비 발밑에 있는 벼 낟알을 열심히 주워 먹었습니다.

“오빠! 이제 배불러.”

벼 낟알을 실컷 먹은 아기들쥐가 꼭 작은 밤송이 같았습니다.

“아이! 추워!”

해가 서산에 걸릴 때 쯤 허수아비가 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할아버지! 추우세요?”

“그래, 이제 추워지기 시작하는구나.”

여름 내 입고 있던 허수아비의 낡은 저고리가 겨울바람에 떨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걱정 마세요. 우리가 도와 드릴게요.”

들쥐남매는 마른 지푸라기를 허수아비의 몸속으로 물어 나르기 시작했습니다. 어깨, 가슴, 팔, 허수아비의 몸속 구석구석 마른 지푸라기를 채워 넣었습니다.

“아이구! 얘들아 급하게 하지 않아도 돼. 천천히 해. 천천히.”

허수아비의 몸이 두툼하게 부풀어 올랐습니다. 허수아비 몸속에 지푸라기가 채워질수록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습니다.

“너희들 덕분에 올 겨울은 춥지 않게 보낼 수 있을 것 같구나.”

낮게 깔린 구름이 금방이라도 굵은 눈송이를 뿌릴 것만 같았습니다.

“얘들아, 올 겨울은 내 품속에서 지내는 게 어떻겠니?”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들쥐남매가 허수아비의 허리춤을 비집고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들판은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당선소감>

 

꿈·사랑 품을 수 있는 동화 쓸 터

 

겨울비가 촉촉이 내려앉아 눈부시게 맑은 날.

“전북일보입니다. 이명준선생님 되시죠?”

한참동안 전화기를 들고 있어도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는지 실감나지 않았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세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자장가 삼아 들려주었던 동화.

잠이 와 보채는 아이를 품에 안고 잠자리에서 지어낸 즉석동화를 들려주었던 일들이 어제 같은데 벌써 두 딸들은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어 어린 아이들을 품안 가득 안고 있습니다.

살아오면서 알게 된 것은 자라나는 어린아이들에게 예쁜 옷이나 맛있는 음식보다 더 소중한 것이 꿈과 사랑을 품을 줄 아는 아름다운 마음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동화는 쓰면 쓸수록 더 어렵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린아이들이 꿈과 사랑을 품을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예쁜 동화를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무딘 연필을 보고도 늘 멋진 만년필이라 칭찬하시며 기꺼이 문학의 길로 이끌어 주신 장호병 선생님, 아동문학의 소중함을 강조하시며 동심의 세계로 이끌어 주신 권영세 선생님, 심후섭 선생님, 박방희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지금도 타는 열정으로 문예아카데미 강의실에 모여 있을 문우님들과 당선의 영광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제 동화를 어여삐 읽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전북일보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 약력

▶ 1957년 대구 출생.

▶ 2008년 〈수필과 비평〉 신인상 등단.
▶ 2011년 제39회 창주문학상 수상




<심사평>

 

짧고 간결한 문장·구성력 뛰어나

 

예선을 거쳐 본선에 넘어온 작품이 7편이었다. 일곱 편 중에 4편을 내려놓자 최후까지 남아 경합을 벌인 작품이 김은경의 <말주머니 학교>, 최영숙의 <겨울 손님>, 이명준의 <아기들쥐와 허수아비>였다.

그 중 <말주머니 학교>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솜씨가 뛰어나 호감이 갔으나 한편으론 산만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겨울 손님>은 첫 도입부부터 읽는 이로 하여금 시종 긴장을 하게 했다. 그 점 새로운 시도라 여겨져 칭찬을 하고 싶다. 문장 또한 흠 잡을 데 없이 탄탄하고 논리적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동화보다는 성인 소설 쪽에 가까운 작품이다. 동화 문장은 시적이어야 한다는 말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아기들쥐와 허수아비>는 세 편 중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짧고 간결한 문장에 잘 짜여진 구성력은 웬만한 기성 작가를 능가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를 잃은 아기들쥐 남매가 종결부에서 허수아비의 몸통 구석구석에 지푸라기를 물어 나르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못해 가슴 뭉클한 인간미를 느끼게 했다. 뿐만 아니라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난 들쥐남매의 눈앞에 흰 눈으로 덮인 들판의 장면을 설정해서 끝을 맺은 것은 아무나 그려낼 수 없는 참으로 멋들어진 기교가 아닌 가 싶다. 따라서 <아기들쥐와 허수아비>를 당선작으로 올리는데 추호의 망설임이 없었음을 밝혀둔다.

끝으로 작가를 지망하는 젊은 문학도들은 한두 번의 신춘문예 도전으로 선 외로 밀려났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낙담하지 않기를 바란다. 수십 편, 때로는 수백 편의 응모작 중에 당선작은 오직 한 편. 그 한 편을 위해 시지프스의 바윗돌을 굴리고 또 굴리는 각고의 노력을 쏟다보면…. 부디 정진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심사 김여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