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당선작>

 

오렌지 주스를 따르는 방법 / 황성진

 

일한이네 반 담임선생님은 엉터리 선생님입니다.

“으이그! 쫌! 선생님 말 좀 하자!”

옆 반 채리나 선생님처럼 고운 말을 쓰지도 않습니다.

“비 꽈이어뜨!(Be Quite!)”

영어 발음도 순 엉터리입니다. 거기다 축구를 하면 공을 밟고 넘어지기 일쑤에, 얼굴은 호박을 달아놓은 것처럼 못난이. 뭣보다 편애는 또 얼마나 심한지! 

“어제 친 쪽지시험 결과 나왔다. 역시 우리 해림이가 최고다, 최고.”

선생님이 해림이의 시험지를 펼쳐들며, 덩실덩실 어깨춤을 춥니다. 100점 만점에 고작 10점. 2학년이면서도 덧셈뺄셈을 곧잘 틀리는 해림인데, 선생님은 언제나 해림이만 특별대우입니다. 

“히∼.”

해림이는 대답은 않고, 입을 우물우물 거리다가 헤실헤실 웃고 맙니다. “조금만 더 하면 일한이도 따라 잡겠네∼.”

선생님이 이번에는 일한이의 시험지를 펼쳐듭니다. 인정사정없이 빨간 줄이 그어진 시험지에는 큼지막하게 20점이라고 적혀있습니다.

“풉!”

여기저기서 숨죽인 웃음소리가 모기떼처럼 일한이에게 달려듭니다.

“선생님!”

얼굴이 새빨개진 일한이가 귀가 아릿아릿해질 만큼 큰 소리를 지릅니다.

“왜 해림이만 편애하세요? 누군 칭찬하고, 누군 쟤보다 잘했는데도 야단치고.”

일한이의 고함에도 선생님은 눈 하나 꿈쩍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럼, 너도 칭찬해줘? 매일 놀기만 하는데.”

입술이 삐죽하게 튀어나온 일한이를 보며, 선생님이 말을 잇습니다.

“잔소리 듣기 싫으면, 열심히 공부해봐. 해림이 봐라. 공부를 못해도, 열심히 하잖아. 넌 열심히 하길 하니….”

일한이는 도끼눈을 뜨고 선생님을 노려봅니다.

“선생님도 뭐… 딱히 잘하는 거 없잖아요.”

그 말은 아주 작은, 입안에만 머금고 있던 말이 조금 새어나온 것입니다.

“어쭈?”

일한이의 말을 들어버린 선생님이 눈썹을 찌푸립니다. 화가 나서 불쑥 뱉은 말이었지만, 일한이는 지기 싫은 마음에 한 마디 더 내뱉고 맙니다. 

“남자면서 축구도 못하고.”

고개를 숙여 바닥을 본 일한이는 혹시나 선생님이 화를 낼까봐 가슴이 뜁니다. 그런데 그 때.

“맞아.”

“선생님 완전 몸치지.”

구경만 하던 친구들이 자그마한 응원으로 일한이의 말에 장단을 맞췄습니다. 그 말에 움츠려졌던 일한이의 가슴이 뻥 뚫리고, 굳었던 입술도 사르르 녹습니다. 

“그림도 완전 유치원생 수준이고, 저번엔 곱셈도 틀리고, 글씨도 지렁이 춤추는 거 같잖아요. 우리한테는 글씨 잘 쓰라고, 잘 쓰라고 하면서. 또….”

일한이가 말할 때마다,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맞장구를 칩니다. 도레미파솔라시도 연주를 하듯 교실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집니다.

“그, 그래도 선생님이 너희보단 공부를 잘하잖아. 그치?”

“피, 그건 어른이고, 선생님이니까 당연하죠.”

일한이의 말에 교실에는 한바탕 웃음폭탄이 터집니다. 그러더니 금세 교실에서 ‘선생님이 잘하는 것’에 대한 토론이 시작됩니다.

“요리? 아냐아냐. 전에 라면 밖에 못한다고 하던걸.”

“가끔 말도 더듬고.” “킥킥. 편애는 진짜 대왕인데. 제일 잘함.”

머리를 긁적이던 선생님이 손바닥을 탁, 치며 입을 엽니다. 입술꼬리를 한껏 치켜 올린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그래. 선생님은….” 아이들의 눈치를 살피며, 선생님이 말을 이었습니다.

“오렌지 주스를 잘 따르지.”

만화였다면, 일한이네 반 30명의 머리 위에 30개의 물음표가 둥둥 떠다녔을 거예요.

“오렌지, 주스, 따르기.”

아무도 말이 없자, 선생님이 한 번 더 강조했습니다.

“선생님은 말이야, 오렌지 주스 1.5L짜리 하나로 너희들 모두한테 똑같은 양을 따를 수 있어. 1g도 틀리지 않고, 정확히 한 모금씩.”

‘생활의 달인도 아니고.’

일한이의 입술이 절로 삐죽입니다.

“못 믿겠어? 그럼, 내일 각자 컵 하나씩 들고 와. 만일 너희 중에 선생님보다 정확히 따르는 사람이 있으면, 선생님이 뭐든 소원을 들어주마. 어때?”

대부분은 코웃음을 쳤지만, 소원이라는 말에 몇몇은 허공을 보면서 머리를 굴려봅니다. 

‘소원?’

괴상하기 짝이 없는 내기였기만, 일한이의 관심을 끌기엔 충분합니다. 잘만하면 선생님의 콧대를 납작하게 눌러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입니다.

다음 날 아침, 선생님이 아이들을 불러 모읍니다. 

“자∼ 다들 컵은 준비해왔겠지?”

선생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두들 각자의 책상 위로 컵이 올려놓습니다. 동그랗고 투명한 유리컵, 기린이 그려진 길쭉한 머그컵, 작고 꽃그림이 그려진 커피 잔, 심지어는 소주잔도 있습니다. 

“해림이도 들고 왔니?”

“주스주스∼주스∼.”

해림이는 대답 대신 커다란 머그컵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콧노래를 부릅니다. 해림이의 컵은 주스 1.5L 정도는 통째로 들어갈 만큼 커다란 컵입니다.

“아이고∼해림이처럼 이∼쁜 컵이네.”

해림이는 대답은 않고, 우물우물 헤실헤실입니다. 

“그럼, 먼저 해볼 사람.”

선생님의 말에 여기저기서 주춤주춤 손이 올라갑니다. 가장 먼저 오렌지 주스를 따르기에 도전한 사람은 희준이입니다. 

“일이삼, 일이삼.”

앞자리에서 뒷자리로, 희준이는 입으로 박자를 맞추며 주스를 따릅니다. 그렇지만 채 절반도 따르지 않아 주스가 바닥났습니다.

“다음.”

친구들이 순서를 정하는 동안, 선생님은 깔때기로 주스를 모읍니다. 다음으로 나선 사람은 민석이입니다. 

“이만큼, 이만큼.”

민석이는 각 잔에 밤톨만큼씩만 따르며 뒷자리로 옮겨갔습니다. 마침내 전원에게 다 따랐는데, 이게 웬걸. 

“이번엔 주스가 남았네. 다음.”

다음도, 그 다음도 실패. 오렌지 주스를 따르는 것은 생각보다 만만찮았습니다. 수많은 도전자가 실패하고, 드디어 일한이의 차례입니다.

“자∼ 이거.”

일한이는 교탁 앞으로 가더니, 검은 눈금이 있는 작은 유리컵 하나를 들어 보입니다. 

“이게 그러니까, 1.5L의 주스를 30명으로 나누고, 각 부피를 잰 다음….”

일한이는 마법진만 있다면 마왕도 소환해버릴 기세로 수학식을 중얼거립니다. 

“… 그러니까, 이 컵의 눈금만큼 따르면 공평하게 한 잔씩 마실 수 있다∼이거지.”

“오∼ 대박!”

친구들의 환호를 받으며, 일한이는 어깨를 으쓱입니다. 

‘크헤헤, 어제 형이 다∼가르쳐 준거지롱.’ 

속으로 만세를 외친 후, 드디어 일한이가 컵에 주스를 따릅니다. 숨을 참으며 조심조심 정확히 눈금에 맞춰 한 잔씩, 한 잔 씩. 마지막 순번까지 모두 따르자, 주스도 꼭 맞게 끝이 났습니다.

“와아∼∼ 천재다.”

선생님이 나설 것도 없이 오렌지 주스를 가장 잘 따른 사람은 일한이가 되는 듯, 했습니다.

“나도.”

선생님은 기다렸다는 듯 교탁에 자기 컵을 올립니다. 얄밉게 한쪽 입술꼬리를 길쭉하게 올리며 웃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선생님도 따라줘야지.”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이는 선생님을 보며 다들 할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일한이도 입만 뻐끔거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그럼 선생님 차롄가?”

마지막으로 깔때기로 주스를 모으면서,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주스!” 

어느새 해림이의 입술이 주먹 하나 만큼 삐죽 튀어나와있습니다.

“아이구, 우리 해림이. 잠시만 기다려∼ 나중에 선생님이 많∼이 줄게∼.”

그렇지만 떼쟁이 해림이가 쉽게 물러설 리 없죠.

“주스주스주스!”

“해림이, 뚝!”

말은 사납게 해도, 이번에도 선생님은 해림이한테 져주고 맙니다.

“휴∼ 그럼 나중에 친구들이랑 같이 마셔야해, 알았지?” 

선생님은 먼저 해림이의 컵에 도토리 키만큼 주스를 따라줍니다. 뒤를 이어 한 사람, 한 사람의 컵 마다 꼭 도토리 키만큼 주륵주륵 솜씨 좋게 주스를 따릅니다.

“오….”

숨죽인 감탄소리가 교실에 카펫처럼 깔려들 즈음, 또 한 번 소란이 일어났습니다.

“주∼∼스∼! 주스! 주! 스!”

주스를 다 마셔버린 해림이가 다시 떼를 쓰기 시작한 겁니다. 선생님이 어르고 달래보지만, 해림이의 부풀어 오른 볼은 꺼질 줄 모릅니다.

“주스∼∼.”

“해림아, 내일 마시자, 응?”

해림이를 달래랴, 주스를 따르랴, 뒷자리로 갈수록 선생님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늘어만 갑니다. 

“자∼ 이걸로 끝!”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자기 컵에 주스를 따르고, 아이들에게 빈 주스 곽을 확인시켜줍니다. 얼핏 보기에는 거의 다 비슷한 양인 듯합니다. 

“주스!” 

결과에 관심이 없는 해림이는 여전히 주스 타령입니다.

“자, 이거 마시고 화 풀자 응?”

선생님이 자기 컵의 주스를 해림이 컵에 따라줍니다. 

“야, 야. 이거 마셔.”

보다 못한 해림이의 짝꿍도 해림이에게 자기 몫의 주스를 줬습니다.

“더, 더.”

선생님이랑 짝꿍의 주스까지 얻었으면서도, 해림이의 억지는 끝날 생각이 없습니다. 

“선생님, 이거 해림이 주세요.”

눈살을 잔뜩 찡그린 일한이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결과 확인도 안 하고?”

선생님의 말에도 일한이의 표정은 굳게 찡그린 채입니다. 일한이 다음에는 그 옆의 아이가, 다음엔 그 앞의 아이가, 그 뒤의 아이가 해림이에게 주스를 넘겨줍니다. 조르륵, 조르륵, 해림이의 커다란 머그컵에 오렌지 주스가 조금씩 조금씩 차오릅니다.

“제 것도 주세요. 어… 반만.”

친구들 눈치를 보던 뚱보 선웅이까지 주스를 넘기자, 그때서야 해림이의 투정이 멈춥니다.

“자, 어쨌든. 봐라, 선생님 주스 잘 따르지?”

교탁 앞에 선 선생님이 억지웃음을 지어보였습니다.

“후∼.”

뚱보 선웅이가 반모금도 안 되는 주스를 마시곤 숨을 푹 내쉽니다. 돌덩이처럼 무거운 한숨이 오렌지 주스 자국만 실타래처럼 깔린 컵에 차올랐습니다. 일한이도 빈 컵을 내려다보며 입술을 삐죽입니다.

“자, 오렌지 주스 따르기에서 느낄 수 있는 교훈이 뭘까?”

아무도 답을 하지 않지만, 선생님의 말은 계속됩니다.

“이 오렌지 주스가 선생님의 사랑이고, 선생님은 너희한테 공평하게 나누어 주는 사람이다, 라는 거야. 알겠니? 선생님이 그만큼 너희를 공평하게 사랑한다는 의미지.”

“순∼ 엉터리! 결국 해림이가 다 마시잖아요!”

일한이의 말에 선생님은 머리를 긁적입니다.

“음, 뭐. 그건 말이지. 너희도 제법 오렌지 주스 따르는 방법을 안다, 라고 할까? 푸하하.”

“말도 안 돼.”

“엉터리!”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 몰라? 이솝우화에 나오는….”

“그게 이거랑 무슨 상관이에요?”

“주스 줘욧!”

일한이와 선생님을 중심으로 교실에 또 한바탕 소란이 벌어집니다. 그 틈을 타서 햇살이 슬그머니 스며듭니다. 슬금슬금, 선생님과 친구들의 빈 컵에 오렌지 빛 햇살이 소리 없이 차오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엉터리 선생님!”

“뭐? 이 엉터리 제자들!”

선생님과 아이들의 말다툼은 수업종이 울렸어도 끝나질 않습니다.






<당선소감>

 

등불이 되어준 이들에게 작품으로 보답

 

“감사합니다!”

가장 강렬하게 떠오르는 말은 아무래도 감사의 말입니다. 말로는 부족한 감사의 마음을 짧은 글로나마 전합니다. 

문학의 꿈을 안은 지 9년 차. 깜깜한 내일을 맞이하기 싫어, 그냥 눈을 감아버린 날도 많았습니다. 가슴 먹먹한 그 시간 속에서도 걸음을 옮길 수 있었던 것은 등불처럼 곁을 지켜준 이들 덕분입니다. 언제나 지켜봐주고, 응원해주고, 기다려준 모든 분들께 다시금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특히 아동문학의 길을 알려주시고 끝까지 제자를 믿어주신 이옥수 작가님과 관악구 곳곳에 보석처럼 빛나고 있는 어린 제자님들, 고맙습니다!

지난 2년, 좋은 기회가 닿아 문학 강사 ‘너구리’라는 이름으로 아이들과 문학으로 어울렸습니다. 문학이라는 장난감으로 신나게 놀고, 그 속에서 꿈·자유·희망·자신감·용기를 아이들의 가슴에 심어주는 선생님이 되고자 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아이들 가슴에 심고 싶었던 씨앗들을 돌이켜봅니다. 다만 씨앗을 심는 것으로 끝내진 않았는지, 제 곁에 등불로 있어준 이들처럼 저도 아이들에게 등불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작가, 그것도 동화작가가 된 저는 앞으로 아이들의 곁을 지키는 등불이 되고자 합니다. 재미있고 신나는 동화를 통해 아이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세상을 보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나이 많은 친구이자, 가슴에 남는 든든하고 따스한 등불 같은 작가로 함께 놀 시간이 벌써부터 기대되네요. 덧붙여 제가 선택한 이 길이 지금까지 등불이 되어주신 분들에게 올리는 최고의 감사 인사가 되길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작품을 창작하는 동안 아낌없는 질책과 조언과 격려를 해준 김은정 씨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당신의 칭찬에 춤출 수 있었습니다.



◎ 약력

▶ 1988년 경남 마산 출생

▶ 고려대 세종캠퍼스 미디어문예창작과 졸업




<심사평>

 

이야기 짜임새 탄탄하고 반짝이는 문장 감칠맛

 

예심을 거쳐 올라온 동화 15편중에서 3편을 최종심에 올렸다. 

‘소나무에 새긴 이름’은 한센병의 부모를 둔 오누이가 훗날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 다시 소록도를 찾아와서 지난 시간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소재나 주제의 참신성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쉽게 내려놓지 못했던 것은 그들이 겪어야했던 아픈 이야기가 주는 감동의 힘이었다.

‘시암마을의 새봄이’는 시암마을 정자에 버려진 아이를 노인정에서 할머니들이 키우게 되는데, 아이의 울음이 사라진 마을에 되살아난 아이 울음소리는 선자의 마음까지 설레게 했다. 그러나 인물들의 역할이 불분명했고, 갈등이 미흡한 게 흠으로 지적되었다. 

마지막으로 ‘오렌지 주스를 따르는 방법’은 이야기의 짜임새가 탄탄했고, 인물형상화에 성공한 작품이다. 군데군데 반짝이는 문장도 동화의 감칠맛을 더해주었다. 아이들에게 맨날 엉터리라고 구박받으면서도, 반 아이들과 함께 1.5리터의 오렌지 주스 한 병을 따르며 진정한 배려와 공평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인간미 넘치는 선생님과 구김살 없는 아이들 모습이 사랑스러워 당선의 자리에 올려놓는다. 

탈락한 응모자들 모두는 더욱 분발하여 내년을 기약하기 바란다.



심사 이성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