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당선작>

 

도깨비놀이터 / 양국일

 

“정우야, 너 도깨비 보러 갈래?”

태성이가 불쑥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조금 얼떨떨했다.

`도깨비라, 도깨비…….'

나는 육 학년이다. 도깨비 같은 걸 믿을 나이는 한참 지났다.

“좋아, 가 보자.” 좋다고 한 까닭은 호기심 때문이었다. 어째서 태성이가 그런 허풍을 치려는 건지 궁금했다. 도깨비 대신 다른 재미난 것이라도 보여주려는 게 아닐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여기야.” 시커먼 하천이 흐르는 둑길을 지나, 비탈길 꼭대기에 있는 놀이터에 도착했다. 녹슨 그네와 시소, 정글짐이 전부였다. 발밑으론 잡초가 무성했다.

“도깨비는 어디 있어?”

“참, 내가 미리 말 안 한 게 있는데…….”

태성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내 눈치를 살폈다.

“도깨비가 항상 있는 건 아냐.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어.”

“뭐?”

“하지만 걱정 마. 놀면서 기다리다 보면 나올지도 모르니까.”

기가 막혔다. 이렇게 앞뒤 꽉 막힌 허풍일 줄은 몰랐다.

하긴, 태성이는 처음부터 좀 이상한 아이였다. 전학 온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언제나 커다란 어른 옷을 입었고, 신발은 낡은 군화만 신었다. 그리고 복도에서나 운동장에서나 곧잘 혼잣말을 하고 다녔다. 누가 그것을 궁금하게 여기면 태성이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보이지 않는 생명체와 대화할 수 있는 능력자야.”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성이는 계속 혼잣말을 하고 다녔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태성이를 싫어했다. 아이들은 태성이가 관심을 끌고 싶어 허풍을 치는 거라 생각했다.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태성이가 학교에 금빛으로 반짝거리는 에펠탑 모형을 가지고 와서 자랑했다.

“이건 엄마가 프랑스에서 선물로 보내주신 거야. 우리 엄마는 방송국 특파원이라 지금 파리에 계시거든.”

그런데 나중에 두식이란 아이가 이런 이야기를 퍼뜨리고 다녔다. “태성이 엄마는 술집 여자래. 어떤 남자하고 바람이 나서 몇 년 전에 도망을 쳤대. 그래서 지금 아빠하고 둘이서 판잣집에서 살고 있어. 아마 그 에펠탑도 그 녀석이 어디서 훔친 걸 거야.”

그 후로 아이들은 태성이를 더욱 멀리했다. 하지만 태성이는 그런 아이들의 태도에 일일이 신경 쓰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혼잣말을 하며,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살았다. 내 눈엔 그런 태성이가 조금은 신기해 보였다. 마치 만화책 속에서 튀어나온 엉뚱한 캐릭터 같았다. 그랬던 태성이가 바로 오늘, 불쑥 말을 걸어 온 것이다. 도깨비를 보러 가자며.

“아직이야? 대체 도깨비는 언제 볼 수 있는 거야?”

나는 삐걱거리는 그네에 걸터앉아 소리쳤다. 그러자 뒤쪽 수풀에서 태성이가 느릿느릿 걸어 나왔다.

“숲속까지 찾아봤는데도 없었어. 아무래도 아직 안 왔나 봐.”

“아쉽네. 꼭 보고 싶었는데, 도깨비.”

“나도 아쉽긴 마찬가지야. 정우 너에겐 꼭 보여주고 싶었거든.”

“왜? 왜 나에게 보여주고 싶었어?” 나는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태성이는 팔짱을 끼고 내 주위를 빙빙 돌며 턱을 어루만졌다.

“사실 그동안 우리 반 아이들을 쭉 관찰해왔어.”

“관찰?”

“응. 도깨비에 대한 정보를 털어놔도 괜찮을 아이가 있는지 없는지 말이야. 그 결과 정우 네가 적임자라고 판단했어. 너라면 도깨비의 존재를 믿어줄 것 같았거든.”

“오호, 정말?” 조금 신이 났다. 어쩐지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그날 우리는 해가 질 때까지 놀이터에서 놀았다. 도깨비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우리는 그 놀이터엘 갔다. 도깨비를 기다리며 신나게 놀았다. 그네를 타며 타잔이 되기도 하고, 시소를 타며 바이킹이 되기도 했다. 어떤 날은 태성이가 가져온 만화책을 함께 보며 깔깔대기도 했다.

도깨비가 나타나지 않아도 무척 즐거웠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난 어느 오후였다. 우리는 정글짐 꼭대기에 앉아 서산 봉우리로 떨어지는 해를 보고 있었다.

“오늘도 도깨비는 안 올 모양이네. 내일은 볼 수 있을까? 응, 태성아?”

태성이는 딴 곳을 보고 있었다. 비탈길 아래로 빽빽이 자리한 연립주택을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우야. 나 있잖아.” 태성이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있으면 여길 떠나.”

“뭐? 떠나다니? 전학 온 지도 얼마 안 되면서?”

“실은 말이야…….”

태성이는 눈을 가늘게 찌푸리며 고개를 숙였다.

“우리 아빤 특수요원이야. 이 마을엔 특별한 임무가 있어서 온 거야. 그 임무가 끝나면 우린 또 다른 마을로 가야 해.”

“…….” 언젠가 두식이가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태성이 아버지? 걔 아버지는 공사장에서 일하는 사람이야. 무슨 연립주택 증축 공사를 한다고 그러던데. 아마 공사가 끝나면 다른 곳으로 또 이사 갈 거야.”

나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태성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태성이의 커다란 외투만 바라봤다. 외투는 무척 낡았고,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때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뭔가가 수풀을 헤치며 걷는 소리였다.

“태성아?” 내가 돌아보자 태성이는 쉿, 하고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갔다. 태성이는 먼저 정글짐을 내려가 숲 속으로 들어갔다. 혼자 남은 나는 입술을 깨물며 발만 동동 굴렀다. 잠시 후 태성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타났어, 정우야. 나타났다고.”

나는 꿀꺽 침을 삼켰다.

“나타나다니…… 서, 설마! 도깨비가……?”

“어서 와. 하지만 천천히 와야 해. 놀라서 도망칠 수 있으니까.”

심장이 두근거렸다. 머릿속에는 뿔 달린 도깨비의 불그레한 얼굴이 떠올랐다.

“걱정하지 마, 정우야. 얜 아기 도깨비라 무섭지 않아.”

나는 주먹을 꼭 쥐고 살금살금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나무 둥치 아래에 쭈그리고 있는 태성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 발아래로 희끗희끗한 것이 보였다.

“뭐야, 이거? 이건 그냥……!” 그것은 고양이였다. 골목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희끄무레한 새끼 고양이였다.

“야, 이건 그냥 고양이잖아!”

“쉿, 조용히 해. 그러다 도깨비가 놀라서 도망치겠어.”

“뭐? 도깨비? 지금 장난치는 거야?”

“장난이라니? 자세히 봐. 얜 도깨비라고. 아기 도깨비.”

너무 어이가 없어, 한숨만 나왔다. 나는 씩씩거리며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자 뒤에서 태성이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기다려, 정우야. 얜 고양이가 아냐. 정말로 도깨비야. 잘 보라고.” 돌아보니 태성이가 고양이를 안은 채 뛰어오고 있었다.

“눈을 잘 봐. 다른 고양이들보다 더 반짝이잖아. 자, 보라고!”

대꾸해줄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고양이는 겁먹은 눈동자로 내 눈치만 살폈다.

“정우 네가 잘못 생각한 거야. 도깨비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뿔 달린 모습이 아냐! 물론 예전에는 그런 모습이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고양이처럼 모습을 바꿨어.”

태성이는 마치 도깨비 전문가라도 되는 양 열을 올렸다.

“사람들이 멋대로 산을 깎아서 집을 만들었잖아. 그래서 숲의 도깨비들이 어쩔 수 없이 마을로 내려와 살게 된 거야. 하지만 뿔 달린 모습으로 있다간, 사람들 눈에 띄어 괴물 취급을 당하겠지. 그래서 이렇게 고양이 모습으로 변한 거라고.”

밑도 끝도 없는 허풍이었지만, 태성이는 무척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둥그렇게 뜬 눈으로 나를 보며 `너라면 이해할 수 있지?'하는 강렬한 눈빛을 쏘아댔다.

“하지만…… 네가 그런 걸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마지못해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태성이는 내가 자기 말을 믿어준다고 생각했는지 환하게 웃었다.

“그야 도깨비가 나에게 얘길 다 해줬으니까 알 수 있지. 정말이야! 이 앤 밤이 되면 요술을 부려서 인간의 말을 하곤 해.”

태성이는 마치 꿈꾸는 사람처럼 아득한 눈빛으로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밤마다 우린 투명 망토를 뒤집어쓰고 함께 놀아. 그네도 타고, 시소도 타고, 하늘을 날기도 해. 엄마가 사는 파리까지 단숨에 날아간 적도 있어.”

태성이는 고양이를 뺨에 부비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 날 나는 전날 있었던 일을 친구 몇몇에게 말했다. 태성이가 그 일을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기에 별 생각 없이 얘기해버린 것이다. 그날 오후 큰 소동이 벌어졌다. 두식이와 태성이가 엎치락뒤치락하며 싸움을 벌인 것이다. 둘 다 코피가 터진 후에야 가까스로 싸움을 멈추었다. 하지만 분이 풀리지 않았던지 서로 고함을 질러댔다.

“이 허풍쟁이 거지 녀석! 입만 열면 거짓말만 늘어놓는 주제에 어디서 잘난 척이야! 뭐? 도깨비? 고양이가 도깨비면 우리나라는 도깨비 천국이겠구나!”

두식이가 그렇게 비아냥거리자 태성이도 맞받았다.

“멍청한 녀석. 네가 뭘 알겠어? 넌 죽었다 깨어나도 도깨비와 고양이를 구분하지 못 할 거야! 질투 나지? 나에게만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게?”

“뭐? 너 진짜 미쳤구나? 만날 아버지 공사장 작업복이나 입고 오는 주제에!”

“너야말로 돌머리 주제에! 이 옷은 작업복이 아니라 명품 옷이야. 여기 상표도 붙어 있잖아! 몇 번을 말해줘야 알겠니?”

“헛소리 작작해, 인마! 네가 땅거지라는 건 전교생이 다 알아!”

싸움은 선생님이 들어오고서야 그쳤다. 하지만 태성이는 말없이 교실 밖으로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오후 수업을 듣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입을 잘못 놀린 탓에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그 놀이터로 갔다. 놀이터엔 아무도 없었다.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려도 태성이는 오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져 그만 돌아가려 할 때였다. 옆에 있던 빈 그네가 느닷없이 흔들거렸다. 화들짝 놀라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흙을 털며 일어서려는데, 이번에는 시소가 삐걱삐걱 움직였다. 바람 때문인가, 하고 생각하려는데 문득 머릿속에 다른 그림이 떠올랐다. 투명 망토를 입은 태성이와 도깨비가 숨어서 장난을 치는 그림이었다.

“거기 태성이니? 도깨비랑 함께 있는 거야?”

하지만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서늘한 바람만 불어와 내 머리카락을 헝클었다. 다음 날도 태성이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선생님은 태성이가 급히 다른 곳으로 전학을 가게 됐다고만 말했다. 쉬는 시간에 두식이가 다가왔다.

“태성이 녀석 쪽팔려서 전학 간 거야. 아니면 걔 아버지가 공사 일을 끝냈든지.”

“하지만 태성이 아버지는 특수요원이라던데?”

내 말에 두식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두식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우야, 너 설마 그 허풍쟁이 말을 믿는 거야?”

“그게 아니라- 누구 말이 진짜인진 모르는 거잖아.”

나는 벌떡 일어나서 두식이를 지그시 노려봤다.

“어쩌면 태성이 말이 다 맞을 수도 있는 거잖아.”

그날 오후 다시 도깨비 놀이터를 찾았다. 깜깜해질 때까지 기다렸지만 태성이는 오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숲 속으로 가보았다. 지난번에 그 고양이를 처음 봤던 커다란 나무 둥치 아래에 뭔가가 놓여 있었다. 작은 종이상자였다. 상자를 열어보니 안에서 쪽지가 나왔다.

`정우야, 도깨비를 부탁할게. 너밖에 믿을 사람이 없어. 태성이가.'

상자를 뒤져보니 안에서 고양이 사료와 고양이 장난감이 나왔다. 그때 냐앙- 소리를 내며 그 고양이, 아니 아기 도깨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도깨비는 나를 보더니 눈을 둥그렇게 떴다. 가만히 보니 그 눈은 정말로 다른 고양이들보다 더 빛나는 것 같았다. 사료를 부어주자 내 발밑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 따듯하고 부드러운 생명체를 번쩍 들어 가슴에 안았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곳엔 어쩌면 태성이가 이웃 마을 도깨비와 함께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별하늘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내 진심이 닿기를 바라면서.





<당선소감>

 

지친 마음 어루만지는 글 쓰고파

 

당선 전화를 받고 처음엔 꿈인 줄 알았다. 이 시기가 되면 당선 전화를 받는 꿈에 곧잘 시달리곤 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번뜩, 하고 꿈에서 깰까 봐 조마조마하다.

돌아보면 신춘문예의 문을 두드린 지도 10년이 넘었다. 긴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버티게 해준 것은 꿈속에서 손짓하는 작은 아이 때문이다. 글쓰기를 시작하면서부터 알게 된 그 아이는 삶의 풍랑에 부딪쳐 내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가야 할 길을 또렷이 일러줬다.

나는 그 아이에게 다가가려고 글을 쓴다. 내 생이 아직 아침이었던 시절, 그 시절로 떠나기 위해서. 갈매기 조나단처럼 나는 내가 가진 가능성의 한계를 의심하지 않고자 애쓴다. 내가 만들어낸 판타지와 로망이 날개를 뻗고 날아올라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다 함께 모여 꿈이 있던 시절로 모험을 떠날, 그날을 기다린다. 그때까지 멈추지 않고 쓸 것이다.


◎ 약력

▶ 부산 生

▶ 부산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심사평>

 

친구를 이해해가는 따스한 이야기

 

동화란 주어진 현실을 극복해 내는 과정을 통해 독자에게 위안을 안기는 글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좋은 결말로 이야기를 구부려 가는 힘이 좋은 동화의 관건이다. 본심에 올라온 대부분의 작품들도 그 점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었다. 다양한 소재를 다양한 측면에서 다양하게 이끌어간 작품이 많았다. 그러나 아무리 독특하고 새로운 이야깃거리라 해도 문제는 원만하고 좋은 결말이다.

당선작으로 올린 `도깨비 놀이터'는 그런 점에서 믿음직했다. 이 작품은 학급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태성이를 도깨비라는 매개체를 통해 이해해 가는 `나'의 따뜻한 이야기다.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도깨비도 고양이일 수 있고, 고양이도 도깨비일 수도 있다는 배경이 깔려 있다. 태성이는 나에게 그 질문을 던져놓고 학교를 떠났고, 그가 남긴 여운은 길게 남는다. 흔한 소재를 신선하게 다루는 힘과 지문과 대화가 잘 다듬어진 글이다.

끝까지 남은 작품은 `마지막 똥', `도깨비 더잘란'이다. 두 작품 모두 짜임새 있는 글이었으나 소재 선택의 적절성과 진부함에 대한 고민이 좀 더 요구되었다.



심사 원유순·권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