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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시애틀의 백 년 된 치킨집 이야기 / 박지영

 

  가게 앞에는 주인공인 휴대폰보다 조연들이 북적인다. 출연하는 조연도 자주 바뀐다. 라면, 각티슈, 세제 등 저가의 생필품에서 노란 장바구니가 달린 고가의 자전거까지 다양하다.

  우리 동네에는 ‘백년통신’이란 이름의 휴대폰 대리점이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신제품이 쏟아지는 IT 업종에 ‘백년’이란 상호는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묘한 신뢰감을 준다. 몇 달이 못 되어 사라지는 가게들과 달리 백 년 동안 든든히 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도 하게 만든다. 당연한 얘기지만 백년통신은 백 년 전부터 우리 동네에서 휴대폰을 판 건 아니다. 개업 1주년 기념 사은행사도 못 하고 문을 닫은 ‘시애틀’이란 미용실 뒤를 이은 가게다. 

  재작년 ‘시애틀’이란 미용실이 동네에 문을 열었다. 비슷한 이름의 카페 프랜차이저가 있어서인지 미용실 상호로는 좀 생뚱맞다 싶었지만, 난 그 시애틀에 호기심이 생겼다. 몇 해 전 영화 ‘만추’에서 주인공 연인이 시애틀에서 멋진 이별의 키스를 나눈 장면을 보았다. 언젠가 나도 안개 자욱한 날 바바리 깃 세우고 시애틀을 가보리라는 다짐을 해서일까? 그때부터 시애틀은 내게 각별한 도시가 되었다.

  미용실 안은 유리 틈 사이로 정탐한 것보다 훨씬 세련되고 아늑했다. 경박하지 않은 탄성으로 편안함을 주는 패브릭 소파, 고급스러운 색감의 천들이 조화를 이룬 퀼트 방석 그리고 정수기 옆에는 주인의 안목이 잘 드러난 격조 높은 커피 잔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미용실에서만큼은 공주 또는 여왕 대접받고 싶은 여자 마음을 잘 읽은 원장의 상술이겠지 라며 괜한 트집을 잡은 나는, 원장이 내어 오는 빛깔 고운 홍차 한 잔에 홀라당 마음이 바꼈다. 시애틀은 인테리어와 소품은 물론이거니와 그에 못지않은 원장의 실력으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시애틀 원장과 나는 파마를 하는 동안 미용실 인테리어와 소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취향이 비슷하다고 좋아했다. 유유상종이라고 했든가 비슷한 취향 때문인지 우리는 오래지 않아 속내 털어놓을 만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원장은 꿈이 있다고 했다. 돈 많이 벌면 나중에 딸과 단둘이 제주도 내려가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꿈이었다. 제주도 살게 되면 나 초대해 줄 거냐 물었고 원장은 당연히 그러겠다며 환히 웃었다. 우리는 기분 좋은 공약(空約)을 서로에게 건넸고, 나는 종업원도 없이 혼자 동동거리며 애쓰는 원장의 꿈이 빨리 이루어지길 바랐다.

  그러던 어느 날, 예사롭지 않은 광경이 벌어졌다. 시애틀 앞이 인도까지 침범한 공사 트럭과 자재들로 어지러웠다. 단골 미용실을 바꾸게 만들만큼 마음에 들었던 소품들이 빨간 코팅 장갑 낀 아저씨들의 무심한 손놀림에 트럭으로 던져지고 있다. 파마할 때면 꼭 무릎에 놓고 책을 보던 쿠션에 수놓인 어린왕자 얼굴도 얼룩덜룩했다. 작은 테이블이나 소품용 조화는 아직 쓸 만한데 아까웠다. 아저씨 그거 버릴 거면 제가 가져가면 안 돼요? 라고 평소 오지랖이면 물어봤겠지만, 묵언수행 하듯 말없는 아저씨들의 표정에 기죽어 아무 말도 못했다. 

  단골을 바꾼 배신행위는 나도 종종 하면서 이번 시애틀 원장의 예고 없음이 그리 서운할 수 없었다. 구경할 만큼 기분 좋은 일이 아닌 줄 알면서도 얼른 자리를 뜨지 못하고 눈앞에서 사라져가는 시애틀을 보다가 동네 아줌마들의 수군거리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점포의 새 주인이 가게를 비워달라고 몇 달을 독촉했다고. 결국 버티다 못해 가게를 접었다는 얘기다. 못 들은 척 서둘러 시애틀을 벗어났다. 가위질 할 때보다 홍차 들고 올 때가 더 예뻤던 원장의 하얀 손이 제주도 이름 없는 작은 해변의 물안개마냥 어른거린다. 이젠 가짜 시애틀조차 갈 수 없게 되었다. 

  한 달 뒤 폐허가 된 시애틀에 LTE급 속도로 공사를 마친 ‘백년통신’이란 휴대폰 대리점이 문을 열었다. 힘들게 닫힌 문들이 참 발랄하고도 쉽게 열리는구나 생각하며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게 단장한 가게를 보고 있으니 아쉬움과 반가움이 뒤엉켰다. 아장아장 걷는 아들 녀석이 엄마와 함께 가게에 있는 걸 지나다 몇 번 보기도 했다. 그런데 웬일일까? 가게 돌잔치도 못 하고 접은 것이다. 터가 안 좋은 걸까? 가게 이름에 걸맞게 백 년은 아니어도 최소 몇 년은 해야지...... 일 년 만에 또 인테리어 공사차량이 보인다. 매장 안에는 주연인 휴대폰은 귀하신 몸 감추고 조연인 사은품들만 널브러져 있다. 사장님 아기의 불자동차도 보인다. 맞은편 휴대폰 가게의 투명한 유리문이 오늘따라 활짝 열려 있다. 

  미용실, 휴대폰 대리점, 이번에는 또 뭘까? 시애틀, 백년통신, 그 다음은 또 어떤 이름의 간판이 파란 하늘위에 매달릴까? 인테리어 업자의 트럭은 시애틀 원장의 제주도 꿈도, 아들 대학 보낼 만큼 오래 하고 싶었던 젊은 부부의 꿈도 모두 실어갔다. 이번에는 또 어떤 꿈을 입주시킬까? 한 달 정도 분주하게 공사하고 들어선 가게는 그리 신선하지 않은 업종인 치킨집이었다. 간판에는 한 쌍의 닭이 그려져 있었다. 가게 이름은 ‘토종치킨’이었다. 

  토종닭은 풍광 좋은 산중턱 요리집에나 어울리지 아파트 빽빽한 도심 치킨집에 토종닭이라니. 영원히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하는 건 아닐까? 치킨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였지만, 맛도 궁금하고 간판의 사연도 궁금해 가게 오픈을 기다렸다. 게다가 일주일 동안 오픈행사로 3,000원 할인에다, 매장으로 가지러 가면 2,000원 중복할인까지 된다고 했다. 돈 쓰는 거 알면서도 돈 버는 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을 하며 가장 비싼 치킨을 주문했다. 

  10평 남짓한 가게에는 속된 말로 ‘오픈빨’인지 주문전화가 많았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저씨는 전화와 포장을, 아내 분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는 요리를 담당하고 있었다. 메뉴와 주소를 재차 확인하고 전화를 끊은 사장님은 나를 보고 “어서 오세요”라며 입 꼬리만 올라가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사장님은 치킨집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는 있으나 아직 적응 못한 인턴 같다고나 할까? 밤색 자켓은 가게 구석에 쌓여있는 커다란 철제 기름통과도,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털 뽑힌 닭들과도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주문한 닭이 먹음직스러운 빛깔로 아주머니의 손에 들려 나왔고 사장님은 서툴지만 꼼꼼하게 포장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때 사장님의 자켓 깃에서 무언가 반짝였다. 자세히 보니 우리나라 대기업 배지였다. 그제서야 부조화의 비밀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장님은 대기업에서 이름만 명예로운 ‘명예’퇴직을 하고 인생 2모작으로 치킨집을 시작했나보다. 그런데 자켓에서 절대 떨어질 수 없다는 듯 매달린 저 배지는 어떻게 된 걸까? 몇 달이 지나도록 배지 빼는 일을 잊은 것도 아닐텐데 말이다. 혹, 기생 천관에게로 김유신을 데려간 애마처럼, 퇴직한 회사에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사장님 속마음을 두 손이 알아채고 쟈켓에 매달린 것일까?

  “사장님. 치킨집 이름 정말 잘 지으셨네요!” 라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서둘러 나왔다. 

  우리 집에도 그 사장님을 롤 모델로 하고 있는 인생 후배가 있다. 작년, 남편은 회사에서 특별히 희망을 가지라고 이름 붙여준 ‘특별희망퇴직’을 하였다. 생각과 달리 ‘특별한 희망’은 아직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남편은 퇴직 후 창업이다 세계여행이다 견적 뽑느라 회사 다닐 때보다 더 바빴다. 기약 없는 여행을 위한 안내책자와 시니어창업지원센터 등의 안내문들이 수북이 쌓여갔다. 세계여행이다 창업이다 꿈도 많더니 견적만 일 년 째다. 그도 그럴만하다. 세상은 남편의 희망을 북돋우기는커녕 절망으로 바꾸는 뉴스들로 넘쳐난다. 무엇하나 만만치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남편은 손바닥만한 집에서 종종걸음이다. 

  꿈을 실어 나르는 인테리어 아저씨의 트럭이 동네에 몇 차례 더 오가는 동안 토종치킨집 간판의 닭 한 쌍은 프랜차이저 가게의 닭들보다 더 오동통하게 살이 올랐다. 남편도 기나긴 정보 사냥을 끝냈는지 평소 관심 있었던 3D 프린터 강좌를 신청했다고 한다. 서둘러야겠다. 언젠가 혼자 바바리 깃 세우고 가겠노라 마음먹었던 시애틀을 남편과 함께 다녀와야겠다. 생각보다 빨리 선물 받아 아직은 낮선 우리의 ‘황혼신혼’과 ‘특별’한 ‘희망’을 찾아 나선 남편의 용기를 응원하러 말이다. 돌아오는 길엔 영화 속 연인보다 더 깊고, 더 긴 입맞춤을 하리라.

  백 년 뒤에도 시애틀의 백 년 된 토종치킨집에 주문전화를 걸면 밤색 콤비 입은 사장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당선소감>


  우리 모두에게 단골가게가 생겼으면…

 

  파릇한 희망이 싹트는 봄에도, 폭염 속에도, 수확의 계절 가을에도 그리고 지금 이 스산한 겨울에도 인테리어 공사 트럭은 수많은 희망을 실어가고 또 실어옵니다. 굵은 줄에 매달린 채 아슬아슬 내려오는 간판은 올라갈 때와 달리 힘이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 몇 달 전 사장님의 꿈과 함께 하늘로 둥둥 떠오를 때의 그 패기와 발랄함은 어디 가버린 걸까요? 

  경제가 어렵다는 뉴스가 쏟아집니다. 그래도 변함없이 토종치킨집 간판에 그려진 닭들이 아침을 깨우는 울음을 들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조금만 익숙하다 싶으면 새 단장을 하는 가게들이 늘어나 한 때는 마음 주지 말아야지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제 그 고약한 생각은 접어야겠습니다. 예전처럼 남들에게 자랑하곤 했던 나만의 단골가게가 우리 모두에게 다시 생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국내 유일의 경제관련 신춘문예공모전을 개최해주신 머니투데이와 부족한 작품에 후한 평가를 주신 심사위원분들게 감사드립니다. 

  ‘특별’한 ‘희망’을 찾아가는 남편에게 파이팅을, 어딘가 있을 ‘희망’을 찾아가는 아들에게 사랑한다는 말 전합니다.



  <심사평>


  명퇴자의 애환·거리의 간판 묘사, 섬세하고 리얼했다

 

  산문 분야에서는 우선 소설에서 권행백씨의 <악어사냥>, 최우씨의 <북한 미녀와 남한 야수>, 수필에서 임철순씨의 <부녀가 나누는 경제 이야기>, 박지영씨의 <시애틀의 백년 된 치킨집 이야기>가 최종에 남았다.

  그 중 소설 <악어사냥>이 재미있게 읽히기는 하나 작품 초반에 유지했던 흥미와 긴장감이 중반에 접어들면서 돈벌이를 위해 악어를 남획해 그것을 팔고 사는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인간이 기본으로 지켜야 할 자연주의에 반하는 작품이 되고 말았다. <북한 미녀와 남한 야수>는 제목 그대로 남북 남녀가 평양냉면 기술을 바탕으로 경제적 성공을 거두어가는 과정을 그렸는데 이야기가 너무 판에 맞춘 듯 작위적이고 장황하다.

  남은 두 편의 수필은 모두 뛰어나다. 당선작으로 뽑은 <시애틀의 백년 된 치킨집 이야기>는 지난 몇 년 동안 한 자리에 여러 업종의 사람들이 차례로 들어와 간판을 달고 영업을 하는 모습을 그렸다. 한 업종이 장사를 하다가 문을 닫고 나가면 그 자리에 다른 업종이 새로운 간판을 달고 영업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시선이 섬세하면서도 따뜻하고 또 분석적이다. 마치 거리의 경영학을 살피는 듯한 모습이 반듯한 문장으로 그려졌다. 이 작품을 시의 <눈보라>와 함께 공동 당선작으로 정했다.

  또 한편의 수필 <부녀가 나누는 경제 이야기>는 ‘성수기와 비수기’ ‘재래시장과 마트의 차이’와 같은 우리 일상생활 속의 경제이야기를 부녀의 대화로 알기 쉽게 설명해나가는 방식인데 특히 그것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비유가 뛰어나 가작으로 결정했다.

  세 사람의 수상을 축하하며 아울러 입선에 들지 못한 모든 응모자들에 대한 위로와 함께 정진을 바란다.


심사위원 : 이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