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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허공에서 더 깊어지는 추위 / 김낙호

 

  세 길 높이 배관 위

  긴 칼 휘두르는 단단한 추위와 맞선다


  방패는,

  작업복 한 장의 두께


  빈곤의 길이를 덮을 수 없는 주머니 속에서 

  길 없는 길을 찾는 추위에 쩍쩍 묻어나는 살점

  더 먼 변두리의 울음소리를 막아보려 

  등돌린 세상처럼 냉골인 둥근 관을 온몸으로 데운다


  두려움의 크기 따라 느리게 

  혹은, 더 느리게 

  허공을 차는 발바닥의 양력揚力으로 기는 자벌레


  수평으로 떠 있는 몸이 공중을 써는 동안 

  바람은, 

  밀도 낮은 곳만 파고드는 야비한 마름 


  풍경風磬이 될 수 없는 공구들 부딪치는 소리

  눈앞에 튀어 올랐던 땅의 단내가 목구멍을 채우는,

  숨죽였던 모골이 축축한 닭의 볏이 될 때마다

  날개 없는 포유류가 새가 된 적 없다는 걸 

  한 발 느리게 깨닫는다 


  떨어져 나갔다 다시 매달린 간肝으로부터 

  소름의 갈기가 잦아드는 한숨 


  자꾸만 밀어내는 세상의 복판을 자주 헛짚어 

  복부 근육으로 변두리를 붙잡고 살아내야 한다는 것,


허공을 기는 힘이 연소될 때마다 

그나마 조금 환해지는 하루




  <당선소감>


  갈림길서 손잡아 준 분들께 감사


  햇살의 시간을 받아 내는 갈대들이 사는 대청호에 다녀와야겠다. 스러지는 햇살에 하얀 손을 허공에 내밀고 바싹 마른 발치까지 휴지기가 차오르면 한 해의 끝에서 허전한 마무리에도 이 길을 떠나지 못하는 막막한 내 모습이 그곳에 서 있곤 했다. 부족한 나에게 이 길을 포기하지 말라고 손을 내밀어 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리며 시의 길 위에서 스스로 형체를 갖추기 위해 더욱 매진할 것을 약속한다.

  '이쯤에서 멈춰야 하는가?'의 갈림길에서 손잡아 준 분들이 생각난다. 존경하는 목원대 이해성 교수님, '대전문학 토론회'를 이끄시는 한남대 이규식 교수님, 진부한 설명에 매몰되기 직전 "묘사의 경계를 세워주고, 좋은 시인은 늘 주변이 깨끗해야 한다"며 좋은 시의 방향성에 대한 충남대 국문학박사 오유정 시인의 가르침이 증명되어 기쁘다. 충남 부여에서 22년 만에 다시 직장을 갖게 해준 ㈜선진기업의 한재명 사장님께 고마움을 전한다. 무능한 가장의 삶을 나누어 짊어진 아내 송은호, 딸 영지, 아들 병희가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다.


  ● 1962년 충남 예산 출생.
  ● 충남대 무역학과 졸.
  ● 회사원.
 

  <심사평>


  노동자 삶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어


  최종 심사에 올라온 작품은 '헛도는 속도', '터치터치', '사막에 눈이 오다', '텔레마케터', '허공에서 더 깊어지는 추위' 등 5편이다. 심사위원이 논의한 결과 우선, '헛도는 속도'는 주제의식 면에서 현대 산업사회의 무의미한 반복과 헛된 욕망의 지향성을 잘 설정하였으나 관념적 성격이 많이 남아있음이 문제로 지적되었고, '터치터치' 또한 현대인의 고립성과 소외의 심리를 잘 표현하고 있으나 추상적이고 관념적 성격을 다 벗어내지 못함이 결함으로 지적되었다. '사막에 눈이 오다'는 표현의 묘미와 삭막한 땅 위의 고독한 존재자의 쓸쓸한 심리를 잘 드러내 주고 있으나 산업사회의 상징적 의미로 쓰고 있는 사막이 조금 진부하다는 지적을 받았고, '텔레마케터'는 물질적 사회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의 억압된 심리를 텔레마케터와 고무인형으로 잘 살려낸 점이 돋보였으나 아직 정제되지 않은 표현이 보여 선에서 제외되었다. 

  이에 비해 '허공에서 더 깊어지는 추위'는 현대 사회 속의 하층 노동자의 삶을 사실적 사물들을 동원하여 참신하게 그려내고 있으면서 그것에 따뜻한 시선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구체성과 진정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미덕으로 꼽혀 당선작으로 결정되었다.


심사위원 : 강은교, 김경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