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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내 다래끼 / 성주희

 

  “엄마, 우리 이사 가요?”

  일요일 아침부터 엄마는 커다란 종이 상자에 물건을 꾹꾹 눌러 담으며 부산을 떨었다.

  “할머니가 꼭 고향에 계시겠다고 하니 별수 있니? 우리가 가야지. 다음 주 화요일이 이사 날이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난데없는 이사 통보에 머리가 멍했다. 다음 주에 친구들하고 우현 콘서트 보러 가기로 했는데 내 스케줄은 완전히 꼬였다. 아니, 꼬이다 못해 완전히 망했다.

  “엄마, 나도 이제 5학년이라고. 이사를 가면 간다고 미리 이야기 좀 해줘야 할 거 아녜요. 내 의견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급하게 결정된 거라 어쩔 수 없었어. 가만히 서 있지 말고 어서 너도 네 짐이나 싸.”  

  지난주부터 엄마 아빠가 전셋값이 어쩌고저쩌고하는 걸 듣기는 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이사를 가게 될 줄은 몰랐다. 그때 오빠가 방에서 나오면서 나를 눈짓으로 불러냈다.

  “이게 다 할머니 때문인 거 몰라?”

  오빠가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왜?”

  “할머니 치료비가 감당이 안 돼서 전셋값 못 낸대. 그래서 할머니 있는 곳으로 가야 된대.”

  올해 초 할머니가 추운 날씨에 무리하게 밭일을 하다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아빠 엄마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도 아닌데 대성통곡을 했다. 그런데 수술해도 3개월을 못 넘길 거라는 의사 말이 무색하게 할머니는 계속 살아계신다. 게다가 할머니는 한 번씩 정신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면서 식구들 정신도 쏙 빼놓았다. 결국 할머니는 요양병원으로 가게 됐고 우리는 요양병원이 있는 할머니 동네로 가게 됐다.

  이사를 한 후 아빠는 회사를 그만두고 24시간 편의점 일을 시작하게 됐다. 장사는 처음이라 아빠 엄마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대신 오빠와 내가 번갈아 가며 병원에 가서 할머니를 돌봐 드리게 됐다. 낯선 곳에서 적응하는 것도 힘든데 꼬박꼬박 할머니를 찾아가봐야 한다니…. 무엇보다 힘든 건 우리 할머니는 보통 다른 할머니와는 다르다는 거다. 한 번씩 나한테 심한 욕을 한다. 할머니가 언제 욕을 할지 몰라서 가슴이 조마조마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오늘은 목요일. 내가 요양병원에 가는 날이다. 종례가 끝나자마자 나는 깔끔 요양병원으로 발걸음을 털레털레 옮겼다. 801호 병실문을 열고 첫 번째 침대에 누워있는 할머니 옆으로 슬슬 다가갔다.

  “할머니, 저 왔어요.”

  “니가 누꼬?”

  할머니는 반쯤 감은 눈을 슬그머니 뜨고 내가 누군지 확인했다.

  “할머니 손녀 김미연이요.”

  “뭐? 김미역?”

  같은 병실에 있는 사람들이 키득키득 거렸다.

  “아니요, ‘김미연’이라 했잖아요.”

  할머니는 하나밖에 없는 손녀 이름을 김이나 미역 같은 해산물로 둔갑시키고 얼른 딴청을 부렸다.

  “오늘 날씨가 끝내준다. 이런 날은 선글라스 끼고 시원한 바람 쐬면서 커피나 한 잔 마시면 딱 좋겠다.”

  선글라스?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 얼굴에 선글라스는 도무지 상상이 안 됐다.

  “그건 그렇고. 와 빈손이고? 할매가 쫄쫄 굶어 죽든지 말든지 상관없다 이거가?”

  할머니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내 손을 힐끗 바라봤다.

  “좀 전에 점심 드셨잖아요.”

  “됐다, 마. 치아뿌라. 맛있는 거는 너거끼리 다 먹고 나는 배가 고파도 사과도 한 쪼가리 못 먹고. 아부지, 지 좀 얼른 데려 가이소. 자식 키워놓으면 뭐합니꺼. 아이고, 아이고.”

  할머니는 손바닥으로 애꿎은 침대를 툭툭 치며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혹시 할머니가 욕을 할까 봐 가슴이 벌렁거렸다.

  “강 여사, 고만 하이소. 저번에 손녀가 사 온 음료수도 아직 냉장고에 있다 아입니꺼.”

  옆 침대에 누워 있던 노말숙 할머니가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 할머니에게 건넸다.

  “쳇, 먹으면 오줌만 마려운 이깟 음료수 먹어가 어디 배가 차는교?”

  그러면서 할머니는 음료수 한 통을 꼴깍 다 비웠다.

  “이름이 미연이라 캤나? 미연아, 니가 쪼매만 이해해라. 너거 할매가 많이 외로워서 그칸다. 하루 종일 혼자 누워 있다가 누가 오면 반가워서 투정부리는 거다.”

  노말숙 할머니는 인상도 좋고 말씀도 어찌나 나긋나긋하게 하시는지 우리 할머니와는 딴판이다. 우리 할머니도 저렇게 우아한 분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옆 침대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와? 니 혹시 노말숙 할매가 너거 할매였으면 좋겠다, 뭐 이런 생각하는 건 아니제?”

  할머니가 어떻게 내 생각을 알아냈는지 신기한 노릇이었다.

  “아고 마, 됐심더. 이제 손녀 얼굴도 봤고 하니 집으로 보내소. 야들도 숙제도 해야 하고 학원도 가야하고 엄청 바쁩니더.”

  “아, 맞, 맞아요. 오늘 숙제 많아서 빨리 가봐야 해요. 안녕히 계세요.”

  병실을 빠져나올 구실이 생기자 나는 얼른 인사를 하고 나왔다.

  병원을 나서자 눈앞에 있던 갈매기 떼가 바람을 따라 푸드덕 날아올랐다. 그때 날린 모래알이 눈에 들어가서인지 눈 안쪽이 불편했다. 질끈 눈을 감으니 ‘지 좀 얼른 데려 가이소’ 하고 바락바락 울던 할머니 얼굴이 눈알을 왔다 갔다 했다. 자고 나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서둘러 침대에 누웠다.

  불을 끄고 누웠지만 내일은 짝꿍을 바꾸는 날인데다 건우 생일잔치 하는 날이라 잠이 안 왔다. 이번 주 내 짝꿍은 ‘공건우’다. 여기로 이사 와서 처음 학교 가던 날, 내 눈에 진공청소기처럼 빨려 들어온 아이가 있었다. 바로 ‘공건우’다. 전학 후 첫 체육 시간에 건우가 춤을 췄다. 근데 요즘 제일 잘 나가는 아이돌 우현보다 백배 천배 춤을 잘 췄다. 생일잔치에서 건우가 새로운 춤을 보여준다는데 벌써 가슴이 콩닥거리고 자꾸 웃음이 났다.

  이튿날 아침 나는 거울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아빠, 엄마가 쏜살같이 달려왔다.

  “왜? 무슨 일이야? 도둑이라도 들었어?”

  “눈 좀 보세요.”

  나는 퉁퉁 붓고 시뻘게진 눈을 가리켰다.

  “다래끼잖아. 한 며칠 이러다 괜찮아져. 난 또 뭐라고. 오늘 하루 푹 쉬면 나을 거야. 선생님한테는 엄마가 전화할게.”

  아빠, 엄마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하품을 하고 방으로 돌아갔다. 다래끼? 어제 병원 나올 때 눈에 들어간 모래알 때문인가? 왜 하필 짝꿍을 바꾸는 날에 다래끼가 났는지 팔짝팔짝 뛰고 싶었다.

  건우랑 짝꿍을 했으면 화살처럼 지나갔을 하루가 더디게 흘렀다.

  부웅. 핸드폰 진동소리가 방을 가득 채웠다. 심심하던 차에 얼른 핸드폰을 열었다. 우리 반에서 제일 먼저 친해진 나라였다.

  나라: 뭔 일 있나? 와 학교 결석했는데?

  미연: 다래끼가 심하게 났어.

  나라: 우짜다가? 건우가 생일잔치에 니 오는지 물어본다.

  미연: 건우가 진짜 그랬다고?? 알았어. 십 분 안에 준비해서 갈게.

  시곗바늘이 벌써 네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엄마 화장대 서랍을 열고 까만 뿔테 선글라스를 썼다. 다래끼를 핑계로 선글라스를 끼니 오히려 더 폼이 나는 것 같았다. 그때 핸드폰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미연아, 어디야?”

  “왜요, 엄마. 나 지금 나가봐야 하는데.”

  “지금 할머니한테 좀 가봐. 오빠가 태권도 품새 시험 있어서 못 간대. 오늘따라 단팥빵이 드시고 싶다고 어찌나 난리를 치는지 간호사한테 전화까지 왔어. 너도 알지? 할머니 잡숫고 싶은 거 있으면 병원 전체가 난리 나는 거. 꼭 단팥빵 사가지고 가봐. 아버지랑 나는 창고 정리하느라 정신없어.”

  뭐라고 답할 새도 없이 엄마는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전화를 툭 끊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 얼굴이 귀 끝까지 벌겋게 달아올랐다. 평소에도 할머니가 싫었지만 오늘은 눈물이 날만큼 싫었다.

  “아이고 아부지, 먹고 싶은 게 있어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지는 진짜 세상 미련 없심니더. 아이고 아부지, 지 좀 데려 가이소.”

  병실문을 열자마자 할머니 울음소리가 온 병실을 휘감았다. 나는 단팥빵 하나를 꺼내 할머니 눈앞에 들이밀었다. 할머니는 빵을 홱 낚아채고는 허겁지겁 입에 넣었다.

  “근데 니는 왜 벌건 대낮에 시커먼 선글라스를 쓰고 있노?”

  할머니가 갑자기 선글라스를 확 잡아당겼다. 그 바람에 선글라스 다리가 톡 부러졌다. 나는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니 눈은 또 와이리 퉁퉁 부었노? 김미역에 다래끼가 났네.”

  게다가 할머니는 나를 또 해산물로 만들었다. 그것도 눈병 난 해산물을…. 다래끼가 나서 건우랑 짝꿍을 못한 거 하며 생일잔치에 못 가게 된 것도 다 할머니 때문인데 자꾸 속을 뒤집어 놓는 할머니가 미웠다. 나는 결심했다. 할머니에게 다래끼를 옮기기로. 다래끼 난 눈을 손으로 비빈 다음 상대방 손을 잡으면 다래끼가 전염된다는 말을 어디서 들었다. 나는 화장실에 가서 다래끼 난 눈을 있는 힘껏 비볐다. 안 그래도 빨간 눈이 더 빨개졌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왔다. 

  “할머니, 단팥빵 드시니까 이제 기분 좀 좋아졌어요?”

  나는 마음에도 없는 애교를 떨며 할머니 손을 슬쩍 잡았다. 할머니 손가락은 코끼리 코처럼 쭈글쭈글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따뜻했다. 할머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눈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갑자기 가슴이 쿵쿵거렸다. 나는 얼른 손을 떼고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허둥지둥 병원을 빠져나왔다.

  그날 밤 나는 밤새 끙끙 앓았다. 마음속에 쭈글쭈글한 할머니 손이 가득 차 가슴이 콱 막혀 버렸다.

  “좀 괜찮아?”

  아침이 되자마자 웬일로 오빠가 나를 걱정해주었다. 아빠 엄마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 얼굴을 살폈다.

  “자, 핸드폰. 아까부터 울리더라.”

  오빠가 핸드폰을 건넸다. 뜻밖에도 건우였다.  

  “미연아, 눈은 좀 어때?”

  “점점 좋아지고 있어.”

  “다행이다. 생일잔치에 안 와서 많이 아픈 줄 알았어. 오늘 별일 없으면 나랑 같이 어디 좀 갈래?”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갔다. 건우한테 데이트 신청을 받다니. 나는 아픈 것도 잊은 채 건우가 만나자고 한 바닷가로 달려갔다.

  “갑자기 불러내서 미안.”

  “어? 어. 괜찮아. 근데 무슨 볼일이 있는데?”

  “가보면 알아.”

  건우가 길을 안내했다. 너무나도 익숙한 바로 그 길로. 불길한 예감은 그대로 적중했다. 건우는 깔끔 요양병원 엘리베이터를 타고 801호로 들어갔다.

  “할머니!”

  “이게 누꼬, 건우 아니가? 내 새끼 안 본 사이에 많이 컸네.”

  건우는 노말숙 할머니에게 뛰어가 푹 안겼다.

  “그래, 내가 여자친구, 너거 말대로 하면 여친이제? 여친 데리고 오라 캤는데 데리고 왔나?”

  “네, 할머니.”

  건우는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슬쩍 돌려 나를 바라봤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아고, 세상에. 강 여사 손녀 아니가? 세상 좁데이. 근데 어카노? 너거 할매 아파서 치료받으러 갔다.”

  치료? 그제야 할머니가 없는 빈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기쁨도 잠시, 가슴이 툭 내려앉았다.

  “저희 할머니, 많이 아파요?”

  “말도 마라. 너거 할매 니 왔다 가고 밤새도록 ‘니 다래끼 다 내 끼다, 니 다래끼 다 내 끼다.’ 중얼거리드만, 고마 오늘 아침에 눈이 퉁퉁 부어 가꼬 안과에 갔다 아이가. 그카고 이 달력이 뭐시 그리 중요한 기라고 잘 때 꼭 껴안고 자는데 어제는 잠도 안 자고 껴안고 있더라.”

  노말숙 할머니는 침대 옆 탁자에 놓여 있는 달력을 가리켰다. 달력을 자세히 살펴보니 날짜에 동그라미가 처져 있었다. 삐뚤빼뚤한 할머니 글씨와 함께.

  누네 너어도 안 아픈 내 새끼 온 날

  나는 그만 다리에 힘이 탁 풀려 병실에 주저앉아 울었다.

  “누가 이리 시끄럽게 울어 쌓노?”

  드르륵. 병실문이 열리고 까만 뿔테 선글라스를 낀 할머니가 나타났다. 선글라스 다리 한쪽은 테이프로 칭칭 감은 채.

  “김미연이, 오늘도 빈손이가?”

  할머니는 생각보다 선글라스가 참 잘 어울렸다. 




  <당선소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을 재운 뒤 글을 씁니다. 하루의 피로가 몰려오지만 동화를 만나는 시간은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한 글자도 쓰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당선소감을 쓸 자격이 되는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어본 뒤에야 겨우 떠듬떠듬 써내려갑니다.

  30대에 접어든 어느 날, 열세 살 때 쓴 일기를 읽어 보았습니다. 일기장에는 '동화작가가 되겠다'는 다짐이 적혀 있었습니다. 잊고 있던 꿈이 되살아났고, 그날부터 동화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많이 넘어졌고 많이 아팠습니다. 훌훌 털고 일어나 걷고 또 걸었더니 드디어 꿈을 이루는 첫 단추를 끼웁니다.

  컴퓨터 속 '동화습작' 폴더에 영원히 잠자고 있을 수도 있었던 작품을 세상으로 꺼내주신 심사위원님, 고맙습니다. 동화의 손을 놓지 않도록 격려해주신 김재원 선생님, 왜 동화를 쓰냐는 물음을 던져주신 이수애 작가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동화세계를 여행하느라 바빴던 저를 지지해준 남편과 그런 엄마를 이해해준 아들, 딸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부모님께 당선 소식을 안겨 드릴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신춘문예 당선을 함께 기뻐해 주신 어린이 도서연구회 경산지회 회원들도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동화의 손을 잡고 묵묵히 걸어가겠습니다.


  ● 1980년 서울 출생

  ● 부산외고, 부산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

  ● 사단법인 어린이 도서연구회 회원

 

  <심사평>


  탄탄한 서사에 담긴 따스한 인간애


  많은 응모작 가운데 끝까지 심사자의 손에 남은 작품은 다섯 편이었다. 먼저 ‘젖은 담요’(김선정)는 감칠맛 나는 달착지근한 문장에 후한 점수를 줄만했다. 담담하게 펼쳐지는 일인칭서술과 자연스럽게 독자의 시선을 이동시키는 장면 묘사도 좋았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다. 좋은 동화가 요구하는 것은 역시 ‘이야기의 재미’일 텐데, 그 서사성이 약한 것이 흠이었다.

  ‘재수 좋은 날’(이화주)은 읽는 이로 하여금 끝까지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느슨한 상태에서 시작하여 점점 밀도를 높여가는 이야기 구조와 밀도 있는 심리 묘사도 좋았다. 그러나 상대역인 ‘할아버지’의 캐릭터가 지나치게 틀에 박혀 있다는 점이 공감을 떨어뜨리는 요소가 되었다.

  ‘할머니의 스케치북’(강석경)은 치매 노인과 손녀 사이의 갈등을 아이 눈길로 무난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짜임새 있는 줄거리와 균형 잡힌 문장 등 여러 면에서 기초가 튼튼함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다만 결말 부분에서 주인공의 심경 변화가 일어나는 대목이 다소 작위에 흐른 점이 아쉬웠다.

  ‘아기별꽃’(김연옥)은 끝까지 당선작과 그 무게를 겨룬 작품이다. 작고 약한 아이와 역시 그런 식물을 대비시킴으로써 소외된 존재가 이웃의 도움으로 힘을 얻어 가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 공감을 얻는 데 성공했다. 주인공인 아이와 그가 키우는 작은 풀꽃, 이 둘의 시선을 교차시켜 이야기를 풀어나간 솜씨도 미더웠다. 다만 군데군데 드러나는 ‘감정 과잉’이 눈에 거슬렸다.

  결국 결점이 가장 적은 성주희의 ‘내 다래끼’가 당선작에 올랐다. 이 작품은 세대 간 갈등과 화해 과정을 따스한 시선과 재치 있는 필치로 그린 수작이다. 자칫 식상해 보일 수도 있는 소재를 탄탄한 서사로 녹여낸 역량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상당히 공을 들었음 직한 치밀한 구성과 절제된 유머에 걸맞은 구수한 입담도 돋보였다. 문학의 사명이 ‘인간성 옹호’에 있다면, 그런 면에서도 이 글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인물 묘사에 과장으로 보이는 대목이 몇 군데 있지만, 그것이 작품의 완성도를 흠집 내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당선을 축하하며, 앞으로 더 무게 있는 소재도 거뜬히 소화해 내는 큰 작가가 되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 서정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