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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이상한 이상희 / 박혜원

 

  "고자질쟁이하고는 안 놀아!"

  지영이가 쌩하고 돌아섰다.

  "고자질쟁이." "상희는 진짜 이상해."

  2학년 이후 상희를 따라다니는 말들이다. 고자질쟁이, 이상한 상희. 지영이만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니까…. 그러니까… 절교 선언을 하고 돌아서는 지영이에게 뭐라고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왜들 그래? 오늘도 이상희야?"

  교실로 막 들어온 반장 석규가 가방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여자애들이 교실에서 피구 하다가 화분 깨뜨린 거, 이상희가 어제 샘한테 말했대. 어떻게 같은 여자애들끼리도 배신하냐."

  "원래 그런 앤데 뭘. 새롭지도 않네."

  짝꿍 주성이가 열심히 떠들자 석규는 관심 없다는 듯 자리에 앉았다.

  석규만큼은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상희는 냉정하게 말하는 석규가 미웠다.

  집으로 돌아온 상희는 울상이 되어 책상에 엎드렸다.

  "우리 상희, 무슨 일 있었니?"

  일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가 상희의 어깨를 감싸며 물었다. 상희는 아무 말 없이 책상에 고개를 더 깊이 파묻었다.

  "상희야, 이제… 위험하지 않은 일은 조금만 참아 보면 어떨까?"

  상희가 말하지 않았는데 엄마는 상희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모르겠어, 엄마. 어떤 게 위험하지 않은 건지. 내가 얘기 안 해서 화분이 또 깨지고, 다음엔 다른 친구들이 다치고, 그러면 어떻게 해?"

  엄마는 상희를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상희는 느지막이 일어나 가방을 둘러멨다. 지영이가 옆에 없다고 생각하니 학교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가게들 사이를 터벅터벅 걸어갔다.

  "커겅 컹, 왕왕."

  문이 잠겨 있는 음식점 안에서 갑자기 개가 요란하게 짖어댔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아 움츠러들었다. 상희는 빠른 걸음으로 그 자리를 벗어났다.

  학교에 도착하니 1층 계단 앞에서 주성이가 머뭇거리고 있었다.

  "왜 그래?"

  상희의 물음에 주성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어, 어제 농구 하다가 이렇게…. 근데 엘리베이터가 안 되네."

  주성이는 불편한지 반깁스한 한쪽 다리를 살짝 들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열쇠 있어야 하잖아. 교실 가서 담임선생님한테 따로 신청해."

  새치름하게 말을 한 후, 상희는 주성이의 한쪽 팔을 자기 어깨에 올렸다.

  "기대. 같이 올라가 줄게. 가방까진 못 들어줘."

  "아, 아니야. 혼자서 올라갈 수 있는데…."

  "이제 수업 시작할 텐데 빨리 올라가는 게 낫지 않아?"

  주성이는 상희 어깨에 의지해 찔뚝찔뚝 계단을 올랐다.

  "넌 진짜 이상해. 세상에서 제일 못된 것 같다가도 이렇게 도와주는 거 보면 또 아닌 것도 같고."

  "잔소리 말고 이따가 열쇠나 받아 와. 귀찮아도 깁스한 동안은 편하게 다녀야지."

  "쳇, 꼭 선생님 같은 말투야. 그러니 애들이 널 싫어하지."

  상희가 툭 멈춰 섰다.

  "엄마가 잘못된 건 꼭 얘기하랬어. 말 안 하면 아무도 모르니까…. 그래서 이상한 걸 얘기하는 것뿐이야. 애들이 싫어하든 말든 난 신경 안 써."

  말은 그렇게 했지만 상희도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었다. 하지만 상희만 오면 친구들은 금세 뿔뿔이 흩어진다. 혹시라도 자기 이야기가 선생님 귀에 들어가면 어떻게 하느냐며 빈정거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교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주성이는 혼자 온 것처럼 멀찌감치 떨어져서 찔뚝거리며 교실로 들어갔다.

  상희가 자리에 앉자 바로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상희는 손을 번쩍 들었다.

  "상희야, 왜? 또 무슨 일 있니?"

  선생님은 귀찮다는 듯 한숨을 쉬며 물었다.

  "오늘 주성이가 발에 깁스했는데요, 열쇠가 없어서 엘리베이터를 못 타고 있어서… 제가 부축해서 같이 올라왔어요."

  "어? 김주성, 너 다쳤어. 어디 봐봐."

  "어휴, 이상희 또 시작이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렸다. 주성이는 짜증나는 듯 '에이 씨' 하며 씩씩거렸다.

  "선생님, 엘리베이터 열쇠 없이 쓰게 해 주면 안 돼요? 갑자기 아픈 애들이 쓰기 힘들어요."

  "상희가 친구 배려하는 마음이 참 크구나. 그런데 어쩌니? 그건 학교 방침이라…. 열쇠 발급해 줄 테니까 조금 불편해도 그냥 쓰자."

  "선생님이 학교에 건의해 주시면 안 돼요?"

  "음… 그건 에너지 절약 차원도 있고, 말짱한 애들이 장난삼아 너무 많이 타고 다녀서 말이야. 흐흠."

  선생님은 헛기침을 몇 번 하고 수업할 페이지를 화면에 띄웠다.

  늘 이런 식이다. '그래, 상희가 배려심이 많구나' '잘못된 걸 얘기하는 건 참 좋은 거야' 이렇게 말하지만 선생님은 상희 얘기를 끝까지 들으려고도 해결해 주려고도 하지 않는다.

  "야, 이상희. 너 진짜 드럽게 공치사할 거냐? 그럴 거면 뭐하러 도와줬는데? 아욱 이걸 진짜."

  수업이 끝나자 주성이가 다가와 목소리를 높이며 겁을 주었다.

  "이상희한테 한두 번 당하냐? 속은 네가 잘못이지. 가면서 불떡볶이나 같이 먹자."

  반장 석규가 주성이를 데리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상희는 아무렇지 않은 듯 가방을 챙겨 교실을 나왔다. 뒤에서는 같은 반 여자아이들이 수군대며 상희와 거리를 두고 걸었다. 아이들의 대화 속에 상희의 이름이 몇 번씩 흘러나왔다.

  '괜찮아. 난 아무렇지도 않아. 잘한 거야. 잘한 거라고. 친구 없으면 어때. 어차피 친구는 귀찮아.'

  상희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앞으로 내달렸다. 땅만 보고 달려서인지, 눈물이 고여서인지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때 철컹 소리와 함께 검은 물체가 상희 앞으로 달려들었다. 상희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우뚝 서버렸다.

  "커겅, 컹컹."

  아침의 그 개가 허연 이를 드러내고 상희 앞에서 짖어대고 있었다. 누런색 큰 개였는데 순댓국집 마당에 긴 목줄로 묶여 있었다. 개는 상희의 뜀박질 소리에 흥분했던지 짖기를 멈추지 않았다.

  상희는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인도 끝까지 아슬아슬하게 발을 디뎌가며 개를 피했다. 이렇게 큰 개를 거의 풀어놓다시피 하다니…. 상희는 당장에라도 학교로 돌아가 선생님께 얘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얘기했다가 이번엔 또 무슨 소리를 들을지 겁이 났다.

  '그래, 조금만 참아 보는 거야. 할 수 있어.'

  말을 삼키듯 침을 크게 삼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상희의 마음은 내내 찜찜했다.

  학교는 학예회 준비로 한창 바빴다. 수업이 끝났는데도 임원들은 교실을 꾸미느라 남아야 했다. 임원인 친구에게 붙들려 같이 남은 아이들은 입으론 투덜거렸지만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상희는 혼자서 교실을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순댓국집 앞에 다다르자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그 앞에서 남자아이 둘이 개에게 장난을 치고 있었다.

  "하지 마, 위험해!"

  "쟨 또 뭐냐? 나 6학년이거든? 신경 끄고 집에나 가지?"

  아이들은 문구점에서 파는 불량식품 쥐포를 가지고 개에게 줄 듯 말 듯하며 놀리고 있었다.

  "야, 이 똥개야. 너 왜 만날 나만 보면 짖냐? 응?"

  그중 한 명이 신주머니로 개의 주둥아리를 툭 쳤다. 개는 성질이 난 듯 크게 으르렁거렸다. 아이들은 조금씩 뒤로 물러섰다가 다시 앞으로 나오며 쥐포와 신주머니로 개를 약 올렸다. 그 모양새가 깨금발로 줄다리기하듯 아슬아슬해 보였다.

  개는 큰 소리로 짖다가 급기야 한 아이의 신주머니를 물었다. 그리고 힘으로 끌어당겼다. 아이까지 주춤주춤 딸려갔다. 상희는 급한 마음에 주위를 둘러봤다. 어른들은 보이지 않았다. 가게 문을 세게 두드려도 봤지만 문 닫힌 가게 안에서는 작게 사람 소리가 들릴 뿐 아무도 나와 보지 않았다. 초초해진 상희는 학교로 다시 뛰어갔다. 

  3층을 단숨에 뛰어오른 것 같았다. 상희의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드르륵. 교실 문을 열었다.

  “어? 상희 왜 또 왔니? 혹시 뭐 할 말이라도….”

  선생님은 머뭇거리며 상희에게 물었다. 학예회 준비로 교실에 남아 있던 몇몇 아

  이들도 상희를 바라봤다.

  “선생님, 큰일 났어요. 헉헉. 순댓국집 개가요, 헉헉. 그러면 안 되는 건데, 끈을 너무 길게 묶어 놔서….”

  “아휴, 난 또 무슨 일이라고. 상희야, 네 마음은 알겠는데, 상가는 우리도 어쩔 수 없어요.”

  선생님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 한쪽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고요. 애들이 그 개한테….”

  “휴. 그래, 그래. 그럼 선생님이 알아볼게.”

  선생님은 상희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부직포를 들어 가위를 가져다 댔다. 그러면서 작게 혼잣말을 했다.

  “아휴, 쟤는 아무 때나 저렇게 큰일 난 것처럼 말하니 원.”

  상희는 몸이 부르르 떨렸다. 단숨에 뛰어와서도 아니고 흘린 땀 때문에 추워서도 아니었다. 선생님의 한결같은 모습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선생님! 제 말 좀 들어주시라고요. 우리… 우리 아빠가 그렇게 돌아가셨다고요. 아무도 아빠 말을 안 들어줘서…. 공장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계속 말했는데, 어지럽다고 계속 말했는데… 그랬는데 아무도 안 들어줬단 말이에요!”

  상희는 그동안 참았던 설움을 한 번에 쏟아내듯 울부짖었다. 선생님과 아이들은 놀란 얼굴로 상희를 바라봤다. 석규는 갑자기 얼어버린 것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석규 너도 알잖아. 너희 아빠도 같은 회사 다녔잖아. 너희 아빠도 아프다며? 병원다닌다며? 넌 왜 가만히 있는 건데?”

  상희는 자기를, 그리고 자기 아빠 일을 모른 척했던 석규에게 울면서 쏘아붙였다.

  상희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울지 말라고, 울지 말고 말해야 한다고. 이렇게 생각할수록 마음속에서는 더 큰 울음이 토해져 나왔다.

  도화지처럼 하얘진 얼굴을 한 선생님과 아이들은 그저 상희를 바라볼 뿐이었다.

  상희의 울음소리와 함께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당선소감>


   동심의 소리에 더 귀기울이려고요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며 제게 이야기를 쏟아내던 아이들. 상희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아이들이 이 상의 주인공인 셈이지요. 처음으로 아이들에게 동화 수업을 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잘 가르쳐야지’ 하는 의욕이 넘쳤었지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제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저를 성장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이들의 순수한 동심이 저를 토닥여 주었습니다. 이후 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가 되어주기로 했습니다.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것만으로도 쑥쑥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어른들이 아이들의 소리에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생겼지요. 그리고 그 마음을 이렇게 글로 쓰게 되었습니다.

  고마운 분들이 많이 생각납니다. 꾸준히 저를 응원해 주고 좋을 글 쓰라고 다독여주는 엄마, 고맙습니다. 당신이 있어서 제가 포기하지 않고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늘 제 편인 남편과 두 아들 효근이, 정근이, 사랑합니다. 처음으로 동화를 알려주신 임정진 선생님, 동화 속에 머물 수 있게 해준 박경태 선생님, 감사합니다. 당선 소식을 듣자마자 꽃다발을 한 아름 안겨준 언니, 저를 처음으로 글의 세계로 이끌어 준 동서문학회와 오중주 글벗들, 상희를 세상에 드러낼 수 있게 용기를 준 궁쓰 글벗들, 모두 감사합니다. 그리고 묵묵히 저를 응원해준 벗 금화 샘과 복경이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부족한 글에 힘을 실어 주시고 아이들의 목소리를 드러내라고 토닥여준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시작이라고, 전진하라고 주신 상이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그리고 그 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열심히 전진하겠습니다.


 

  ● 1974년 경기도 성남 출생.

  ● 독서논술 강사.



  <심사평>


  아이 호흡으로 담아낸 잘못된 것투성이 세상 


  올해 응모자 수는 무려 333명이었다. 이 많은 원고를 읽으면서 마음이 어두워지고 물음 하나가 또렷이 떠올랐다. 왜 동화를 쓰는가? ‘글’이 아니라 ‘동화’ 말이다. 거의 모든 응모자가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좋은 말을 어떻게 재미있게 전달할 것인가에 눈이 어두워 보였다. 아이들은 사회적 약자이다. 사소한 자극에도 상처받기 쉬운 여린 영혼 앞에 놓인 세상이란 얼마나 거친가! 인생의 이런저런 이정표를 제시하기보다는 안전했던 엄마 품을 떠나 혼자 힘으로 세상을 헤쳐나가야만 하는 아이의 외로운 마음을 읽어주는 것이 바로 아동문학이 할 일이다.

  최종적으로 세 편을 놓고 고심했다. 류재민의 ‘쉿! 이건 비밀인데’, 박혜원의 ‘이상한 이상희’ 그리고 명은숙의 ‘형이 되는 법’. 세 편 모두 안정적인 문체로 또렷한 주제를 담은 이야기를 아이들 호흡으로 하고 있었다. 잘못된 걸 고쳐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불안을 표출할 수밖에 없는 상희가 울음을 터뜨리는 것으로 끝나는 ‘이상한 이상희’는 잘못된 것투성이인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의 책임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하게 만든다. 나직한 목소리로 조용조용 읊조리는 ‘짝짝이’ 화음 같은 이야기인 ‘쉿! 이건 비밀인데’는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편견을 부드럽고 유쾌하게 깨뜨려주는 힘이 있었다. 동생을 본 아이가 느끼는 분노와 불안과 두려움을 비유적인 표현과 내면 독백 속에 담아낸 ‘형이 되는 법’은 흔한 소재를 색다르게 소화해낸 작품이었다. 각각 다르지만 비슷한 수준의 성취를 보이는 세 편 중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쉽게 다가갈 만한 ‘이상한 이상희’를 당선작으로 민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나머지 두 응모자에게는 격려를 전한다.

 

심사위원 : 최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