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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라스트 장용영 / 정남일

 

  커뮤니티 ‘25h’는 대한민국 인터넷 수도다. 

  25h 유저들이 매번 하는 말이었다. 물론, 그들끼리 얘기였다. 일반 사람들은 25h가 무엇을 하는지 관심조차 없었다. 그냥 인터넷 채팅 정도로 여기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25h 유저들이 허투루 수도네, 서울이네,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알게 모르게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그 예로 얼마 전 방송 프로그램에서 아이돌 그룹의 멤버 ‘원’이 했던 유행어가 있다. 원은 토크쇼 도중에 ‘빗낙베불’이에요, 하고 말했다. 원이 그 말을 하면서 웃는 장면 밑에는 빗낙베불의 뜻을 알려주는 자막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많은 사람이 빗낙베불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빗낙베불이라는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만큼 25h는 많은 사람이 드나들었다. 그중에서도 ‘베스트’라는 이름이 붙은 게시판을 가장 많이 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베스트는 25h 내에서 반응이 좋은 글만 추려놓은 게시판이었다. 그래서인지 베스트로 넘어간 글은 확실히 달랐다. 전문적인 지식을 담고 있거나, 유머러스했다. 가끔은 날카롭게 풍자한 그림이나 만화를 실은 글도 있었다. 사람들은 베스트에 있는 글을 보고 말했다. 베스트는 베스트답다. 

  그러나 베스트에 있는 글을 보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베스트에 올라온 글을 클릭하면 광고가 먼저 나왔다. 심지어 영상광고였다. 광고는 대략 10초 정도로 짧았다. 그러나 글 중에는 달랑 사진 한 장 있는 것도 많았다. 그럴 때는 광고를 본 시간이 더 길기도 했다. 이 때문에 25h 유저들 사이에서는 말이 많았다. 광고 때문에 더러워서 안 본다는 사람과 그깟 10초 못 기다려서 그러느냐는 사람이 팽팽하게 맞섰다. 25h는 이를 보고 재미있는 방법을 썼다. 베스트에 글을 올린 사람에게 광고수익 일부를 사이버머니로 지급했다. 그리고 그 사이버머니는 현금으로 바꿀 수 있었다. 

  원고료 명목으로 내건 사이버머니는 효과를 봤다. 광고가 달렸다고 욕하는 사람이 줄어들었다. 오히려 베스트에 한 번 가보려고 애쓰는 사람이 늘었다. 베스트에 가기 위해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까지 등장했다. 그들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빠르게 알아냈고, 그에 맞추어 글을 썼다. 또한 조회 수를 쉽게 높이기 위해 자극적인 글이나 소재를 찾았다. 비속어를 넣어가며 거칠게 글을 쓰거나, 연예인 이야기와 범죄 이야기 등을 주로 다뤘다. 

  베스트가 자극적인 글로 채워지자 또 다른 반대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들은 25h가 길을 잃었다며 예전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사이버머니를 노리고 글을 쓰는 사람을 향해서 25h의 충견들이라며 비아냥거렸다. 자연스레 사이버머니는 ‘개밥’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비난은 오래가지 않았다. 25h를 비난한 글 하나가 베스트에 가면서 상황이 정리되었다. 베스트에 간 25h를 비난한 글에는 영상광고가 달렸다. 그리고 그 글쓴이는 25h가 주는 개밥을 넙죽 받았다. 그 뒤로 25h를 비난하는 글은 눈에 띄게 줄었다. 물론, 지금도 가끔 25h를 비난하는 글이 올라오긴 했다. 그러면 비난하는 글 아래에는 꼭 이런 댓글이 달렸다. 개들이 밥 달라 짖네. 

  항상 자극적인 글만 베스트에 올라오는 것은 아니었다. 얼마 전에 25h 베스트는 모두 ‘장용영’이라 불린 남자에 관한 글로 가득했다. 장용영은 연예인도 자극적인 범죄자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코믹하거나 요새 유행하는 병맛 코드의 글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장용영에 관한 글은 삼 주 동안이나 베스트를 휩쓸었다. 보통 25h에서 같은 주제의 글이 베스트에 있는 시간은 길어도 삼 일이었다. 여러모로 장용영에 관한 글은 특이한 케이스였다. 25h 사용자들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사건을 ‘라스트 장용영’이라며 이름까지 붙여주었다. 

  라스트 장용영은 하나의 게시글로부터 시작되었다. 게시글에는 아무 설명 없이, 달랑 영상 하나만 올라와 있었다. 영상을 재생하면 한 남자가 청소하는 모습이 보였다. 후줄근한 파란색 트레이닝팬츠를 입은 남자는 백수 같았다. 그는 빗자루로 거리에 떨어진 낙엽을 쓸고 있었는데 아주 느긋해 보였다. 단, 짧은 빗자루 때문인지 자세가 엉거주춤했다. 잠시 뒤에 남자는 허리가 아팠는지 똑바로 서서 허공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자세만 바꿨을 뿐인데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남자의 등이 크고 단단해 보였다. 조금 전까지 보았던 남자가 아닌 것 같았다. 흡사 잘 훈련된 병사, 아니 무사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남자는 빗자루를 돌려 칼을 잡듯이 고쳐 잡았다. 곧이어 천천히 움직였다. 신중하면서도 빈틈없는 동작이었다. 남자는 빗자루를 발 앞에 두는가 싶더니, 곧바로 위로 올려쳤다. 남자의 팔과 빗자루가 하늘을 향해 곧게 일자가 되었다. 이어서 남자는 빗자루를 정면으로 한 뒤에 앞을 향해 성큼성큼 걸었다. 빗자루는 빠르게 허공을 찌르고 되돌아왔다. 그 뒤로도 남자의 무예는 계속되었다. 모든 동작은 간결하면서도 절도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자는 빗자루를 힘껏 내려쳤다. 바닥으로 향하던 빗자루는 땅 바로 위에서 멈추었다. 

  영상은 거기서 끝이 났다. 당시 영상은 처음에는 많은 사람이 봤지만 곧 시들해졌다.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지 못하고 뒤로 밀려나는 게시글 중 하나였다. 베스트에 가지 못한 점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한 달 뒤에 비슷한 영상이 올라왔다. 남자가 청소를 시작해 빗자루를 칼처럼 움켜쥐는 모습까지는 같았다. 그러나 남자의 무예가 시작되자 몇몇 부분이 확대되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남자가 빗자루를 휘두르는 부분이었다. 남자가 빗자루를 휘두르자 나무에 위태롭게 달려 있던 낙엽이 떨어졌다. 남자는 떨어지는 낙엽을 놓치지 않았다. 빗자루를 휘둘렀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낙엽이 깔끔하게 반으로 베어졌다. 뭉툭한 빗자루 끝이 어떻게 낙엽을 베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남자는 의심하지 말라는 듯 계속해서 빗자루를 휘둘렀다. 그때마다 낙엽은 둘로 쪼개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영상은 의심하지 말라는 듯 그 모습을 다양한 크기로 확대해 보여주었다. 

  영상은 순식간에 커뮤니티 상에서 화제가 되었다. 수많은 사람이 클릭했고, 재생 수가 계속해서 올라갔다. 커뮤니티 내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냐며 놀라워하는 사람과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한 특수효과라는 사람. 물론, 특수효과로 여기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그래도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남자를 따라 한 동영상이 올라올 정도였다. 어쨌든 사람들은 생각보다 오래 흥미를 가졌다. 그러던 중에 ‘유고’ 라는 닉네임을 가진 사람이 남자를 알고 있다고 게시글을 남겼다. 글은 아주 간단했다. 

  저 사람은 ‘장용영(壯勇營)’입니다.

  유고의 글은 금세 다른 사람들의 의견 때문에 사라졌다. 그러나 유고는 계속 글을 남겼다. 장용영입니다. 장용영을 모르십니까? 장용영! 몇몇 사람이 유고의 글에 답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장용영이 누군데? 유명한 사람이야? 유고는 장용영에 대한 짧은 글을 썼다. 

  장용영은 조선 후기 1793년(정조 17)에 왕권 강화를 위해 설치한 군대입니다. 한마디로 정조의 친위부대죠. 장용영의 이름도 여기서 따온 것이죠. 영상이 촬영된 장소는 조선 정조 때 장용영의 외영이 있던 수원 화성입니다. 영상에서 보시다시피 장용영은 가끔 저렇게 일상에서도 무예 연습을 합니다. 실제로 보면 정말 감탄이 나옵니다. 영화에서나 가능할 것만 같은 일이 벌어지거든요. 그러나 볼 기회는 흔치 않습니다.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장용영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를 원하지 않거든요. 가진 능력에 비하면 매우 안타까운 일이죠. 혹여나 수원 화성에 갔다가, 장용영의 무예를 보게 된다면 운이 좋은 거예요. 

  유고의 기대와는 달리 사람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무슨 장용영이야. 저게 실제로 가능하겠어? 당연히 특수효과지. 몇몇은 장용영이 타임머신을 타고 왔다고 비아냥거렸다. 유고는 그 글로 유명해지기까지 했다. 남자도 장용영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유고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자신을 비웃는 사람 모두를 상대했다. 왜 비웃느냐고 따져 물었고 모두 사실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유고의 댓글을 본 사람 중 한 명이 또 달려들었다. 그럼 장용영을 찾아와서 빗자루로 낙엽을 베는 모습을 보여줘. 유고는 장용영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수련을 한다며 머뭇거렸다. 그러자 유고를 비웃는 댓글이 또 여러 개 달렸다. 유고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힘을 줘 글을 남겼다. 

  제가 장용영을 찾아온다면 꼭 사과하십시오. 

  유고와 사람들의 싸움은 큰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점점 조회 수가 높아졌고 베스트까지 갔다. 몇몇 사람이 꾸준히 관심을 두기도 했다. 그러나 그 글을 끝으로 유고는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유고도 장용영도 잊혀졌다. 유고의 글도 베스트에서 내려갔다. 대부분이 거기서 그 일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모두 말은 안 했지만, 장용영의 빗자루 무예는 특수효과로 여겼다. 그러나 오래 지나지 않아 장용영은 다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AA’라는 닉네임을 가진 사람이 올린 글 때문이었다. 글의 제목은 영상 속 남자는 ‘무예 24기입니다.’ 라는 제목이었다. 글은 먼저 무예 24기에 관한 설명으로 시작되었다. 

  무예 24기는 정조 때 만들어진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라는 무예서에 나오는 스물네 가지 기예를 연구하는 단체입니다. 무예도보통지는 장용영(壯勇營)의 장교인 ‘백동수’의 주관하에 편찬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유고의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죠. 네, 얼마 전에 빗자루 무예 영상을 하는 남자가 장용영이라며 글을 남겼던 사람 말이에요. 어쨌든 제 생각에 유고가 말하는 장용영은 무예 24기의 멤버였었을 것입니다. (과거형으로 말하는 이유는 현재 무예 24기가 해체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래 영상을 보시면 확실해집니다. 

  AA가 올린 동영상은 무예 24기의 무예 시범 영상이었다. 한 갑옷을 입은 무사가 칼을 들고 서 있었고, 곧 조선시대 특유의 퉁소 소리와 함께 무예 시범이 시작되었다. 무사의 발이 리듬을 탔다. 동시에 칼도 리듬에 맞춰 움직였다. 칼끝은 어깨 위에서 무릎 아래로 내려갔다가 허공을 가르며 하늘을 가리켰다. 빠르고 간결한 동작이었다. 그렇게 무사는 칼을 휘두르며 볏짚 앞에 섰다. 곧이어 무사의 칼이 볏짚을 베었다. 볏짚은 사선으로 깔끔하게 나뉘어졌다. AA는 동영상 밑에도 말을 덧붙였다. 

  무사가 볏짚을 자르는 장면을 보면 장용영과 아주 흡사합니다. 무예도보통지에서 무사가 볏짚을 자르는 동작을 요격세(腰擊勢)라 합니다. 상대의 허리를 수평으로 베는 것이죠. 그 외에도 무사와 장용영은 비슷한 동작을 보여줍니다. 장용영의 검법을 다시 짚고 넘어가죠. 

  AA는 장용영이 빗자루를 휘두르는 몇 장면을 이미지 파일로 보여주었다. 

  네, 첫 번째 사진의 장용영이 빗자루를 올려치는 동작은 거정세(擧鼎勢)라 합니다. 다음 사진의 내려치는 동작은 표두세(豹頭勢)입니다. 표두세는 단순히 내려치는 것이 아니에요. 표범의 머리를 벤다는 뜻의 한자어를 보면 아실 수 있듯이, 날카로워야 합니다. 장용영의 동작은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습니다. 그는 무예 24기의 멤버였던 게 확실합니다. 

  그글은 잊고 있었던 장용영과 유고에 대한 흥미를 다시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베스트까지 올라갔다. 더불어 장용영의 빗자루 무예 영상도 다시 베스트에 올랐다. 이번에는 그전보다 더 많은 사람이 영상을 보았다. 유고의 글도 다시 많은 사람이 읽게 되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몇 사람이 실제로 장용영을 봤다고 글을 남겼다. 장용영에 관한 소문은 점점 늘어났고, 그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이 잇따랐다. ‘수원여객’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사람이 지금까지 글을 토대로 장용영에 관한 정보를 정리했다. 

  첫째, 그는 무예24기의 멤버 또는 적어도 무예도보통지를 배우고 익힌 사람이다. 

  둘째, 그는 수원에 살고 있고, 팔달로와 행궁로 근처에서 자주 보였다. 

  셋째, 그의 나이는 삼십 대 후반쯤으로 키와 체격은 보통으로 보인다.

  넷째, 그는 수련을 위해 전국을 돌아다닌다. 

  수원여객의 글 또한 수많은 댓글이 달리면서 단숨에 조회 수가 치솟았다. 수원여객의 글이 올라온 뒤에도 장용영을 보았다는 목격담이 계속 늘어났다. 그러던 중 장용영에 관한 다른 견해의 글이 올라왔다. 글을 올린 사람의 닉네임은 ‘CG 전문가’였다. 사람들은 CG 전문가의 글을 보고 진작 올라왔어야 할 글이라 평했다. CG 전문가가 쓴 글의 제목은 ‘특수효과 쪽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였다. 제목과 달리 내용은 반말로 작성해놓았다. 

  CG 전문가는 복잡한 전문용어는 빼고, 간단하게 설명하겠다며 글을 시작했다. 그는 빗자루로 낙엽을 베는 저 작업은 특수효과로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했다. 단, 의문점이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CG 전문가는 낙엽이 잘리는 부분이 이상하다며 말을 이었다. 왜 저렇게 보이지도 않고, 눈에 띄지도 않는 작업을 했을까? 수많은 특수효과를 봤지만, 저런 작업을 하는 사람은 처음 봐. 그리고 저것을 찾아낸 사람도 이상해. 장용영 영상의 원본이 낮은 화질은 아니지만, 촬영한 거리가 있잖아. 그래서 잘 보이는 편은 아니야. 그런데 저걸 찾아냈다고? 정말 집중해서 보지 않는 이상 찾기 어려워. 내 생각에는 원본을 올린 사람과 편집본을 올린 사람이 같을 거야. 원본은 아무것도 아닌 듯 올렸을 테고 그 뒤에 편집본을 올린 것이지. 왜 올렸는지는 모두 알잖아? 25h가 주는 개밥을 맛보고 싶었을 테지.

  CG전문가의 글은 사람들의 반응을 더욱 부추겼다. 사람들은 CG전문가의 글에 따라 둘로 팽팽하게 나뉘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걸 가지고 장용영이 실제로 있다고 우기느냐는 다수파와 장용영은 실제로 존재한다는 소수파였다. 다수파 중에는 장용영의 원본 동영상과 편집본 동영상을 비롯해 유고와 AA도 같은 사람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해서 닉네임을 바꿔가며 글을 올리고 있을 거라 했다. 그 의견은 꽤 많은 지지를 받았다. 실제로 몇몇이 유고와 AA를 비롯한 소수파의 글을 비교했다.

  소수파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자주 틀리는 맞춤법은 누구나 비슷하다며 반격했다.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들이 각기 다른 사람임을 밝혔다. 하지만 다수파는 속이려면 얼마든지 속일 수 있다고 말했다. 소수파는 다수파가 계속해서 믿지 않자, 방법을 바꿨다. 장용영을 찾아오겠다고 했다. 그들 중 몇은 실제로 모여서 장용영을 찾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인터뷰는 올라오지 않았다. 오히려 장용영을 찾으러 수원 화성에 간 소수파를 찍은 영상이 올라왔다. 그들은 장용영이 자주 나타난다는 곳은 모두 뒤졌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진지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애절한 사랑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깔리자, 오히려 웃음거리가 되었다. 다수파가 한참 웃을 동안, 또 하나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게시글에는 한 장의 사진이 있었다. 그곳 역시 장용영이 자주 나타난다는 거리 중 한 곳이었다. 그곳에는 꽤 긴 길이의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현수막에는 빗자루를 휘두르는 장용영의 사진과 함께 큼지막한 글씨로 쓰여 있었다. 사람을 찾습니다. 다수파 중 한 명이 그것을 보고 없는 사람을 만들어내려는 그 노력이 참 대단하다며 글을 남겼다. 

  25h에는 그 뒤로도 장용영에 관한 글이 꾸준히 올라왔다. 그러나 크게 다른 내용은 없었다. 기껏해야 지금까지 말했던 이야기들이 되풀이될 뿐이었다. 몇몇은 슬슬 재미가 없어지기 시작했는지, 다른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25h의 충견들도 슬슬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요 며칠 그들은 장용영 이야기로 베스트에 여러 번 갔다. 이제 장용영 이야기는 약발이 다 되었다. 잘해야 두 번 정도 더 써먹는 게 다였다. 다른 소재를 준비해야 했다. 다행히 영화감독과 여배우의 스캔들이 터졌다. 25h의 충견들은 자극적인 내용과 세련된 제목을 뽑아내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12년 만에 가장 덥다는 여름이었고, 주말이었다. 이런 날은 소재만 잘 잡으면 베스트에 쉽게 갈 수 있었다. 

  그러나 25h의 충견들은 베스트에 가지 못했다. 대신 인터뷰 영상 하나가 베스트로 뽑혔다. 사람들이 기다렸던 장용영의 인터뷰는 아니었다. 무예 24기의 멤버였던 사람의 인터뷰였다. 일반인이 찍은 인터뷰라 그런지 어색한 부분이 많았다. 조명도 그렇고, 배경에는 잡음도 섞여 들렸다. 그러나 인터뷰에 임하는 무예 24기의 멤버는 진지했다. 그는 일단 자신을 최대호라 소개하며 자신의 경력을 짧게 소개했다. 인터뷰어는 그에게 25h에서 화제가 된 영상을 보여주었다. 최대호는 놀라워하기도 했고, 재밌어하기도 했다. 그는 영상을 보며 무예도보통지 예도 편에 나오는 검법이라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인터뷰어는 고개를 끄덕이며 첫 질문을 했다. 이 사람은 커뮤니티 내에서 장용영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무예 24기 멤버였나요? 그게 아니라면 만나봤거나 이 사람에 관해 알고 있나요? 최대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무예 24기 멤버 중에서는 이런 사람이 없었습니다. 얼굴이 자세히는 안 보이지만 같이 무예를 연마하다 보면 알거든요. 검을 쥐는 자세만 보아도 아 쟤는 누구야, 하는 그런 게 있어요. 하지만 저 사람은 처음 봅니다. 물론, 만나본 적도 없습니다.

  인터뷰어가 곧바로 두 번째 질문을 했다. 그렇다면 저 사람의 실력은 어떻게 보시나요? 그리고 낙엽을 베는 게 가능할까요? 최대호는 장용영이 실제로 숙련된 자세와 검법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장용영의 안법(眼法)과 보법(步法)에 관해 많은 관심을 가졌다. 안법은 눈의 움직임을 말합니다. 실제로 적과 마주했을 때 적의 무기에 현혹되지 않도록 전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서입니다. 장용영의 시선은 누가 앞에 있어도 움직임을 놓치지 않을 것처럼 보입니다. 또한, 보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최대호는 손으로 장용영의 한 동작을 가리켰다. 이 동작은 체보입니다. 오른발을 끌어 걸으며 무게중심이 앞발에 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동 시에는 중심의 높낮이가 없어야 합니다. 이렇게 장용영처럼 허리를 밀어 움직여야죠. 최대호가 다시 화면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검법 역시 상당 부분 조예가 깊습니다. 흔히 검을 휘두르는 모습이 완벽할 때 ‘한 칼을 만들었다.’ 하고 말을 하고는 합니다. 장용영을 보고 있으면 한 칼, 한 칼을 잘 만들어낸 무인의 모습이 보입니다. 하지만 최대호는 누구든 빗자루로 낙엽을 베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최대호는 그 뒤에도 여러 가지를 알려주었다. 장용영이 하는 검법은 무예도보통지 제2권에 나오는 예도 편이며, 예도는 우리나라의 검인데, 칼날의 길이가 3척 3촌이며 자루의 길이가 1척이라 했다. 재밌는 점은 ‘장용영’의 빗자루 길이도 그와 흡사해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인터뷰어는 그 뒤에도 최대호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문제는 인터뷰어의 질문이 하나같이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비슷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최대호는 몇 개의 낱말만 바꾼 채 천천히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그 때문에 인터뷰 영상에도 똑같은 댓글이 올라왔다. ‘한 줄 요약, 빗자루로 낙엽 베기 불가능.’ 

  닉네임 ‘해피 바이러스’는 꾸준히 그 댓글을 옮겼다. 새로 올라오는 모든 글에 빗자루로 낙엽 베기 불가능, 하고 적었다. 다수파 중 몇몇이 해피 바이러스를 쫓아했다. 댓글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옮겨 적는 사람의 수 또한 점점 늘어났다. 그들은 굳이 장용영 관련 글이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식이었다. 무작위로 댓글을 남겼다. 댓글의 길이도 점점 짧아졌다. 결국, 댓글은 ‘빗자루로 낙엽 베기 불가능’의 앞자리만 딴 형태가 되었다. 빗낙베불.

  소수파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장용영이 빗자루로 낙엽을 베는 영상을 반복적으로 올렸다. 그러나 영상을 올리는 일은 시간이 걸렸다. 어렵게 영상을 올려도 금세 다수파의 댓글만 가득 찼다. 소수파는 방법을 바꿨다. 장용영이 낙엽을 베는 장면을 사진으로 편집해 나르기 시작했다. 영상보다는 빠르게 글을 업로드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소수파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싸움이었다. 애초에 다수파의 수가 훨씬 많았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싸움은 비슷해졌다. 다수파가 댓글을 무작위로 남긴 게 문제였다. 장용영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 다수파의 댓글을 보고 불쾌해했다. 특히 닉네임 ‘곰개발’은 매우 화를 내며 싸움에 가담했다. 그는 자신의 고민에 관한 글에 온통 빗낙베불, 이라는 댓글이 달렸다고 했다. 곰개발 같은 사람이 하나 둘 늘어났다. 25h는 1초에도 여러 개의 글이 순식간에 올라왔다. 그리고 그 글에는 곧바로 수십 개의 댓글이 달렸다. 훗날 한 25h 유저는 그 모습을 보고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을 따라하듯 말했다. 25h는 전쟁터였고, 나는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

  싸움은 두 시간가량 이어졌다.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기로 유명한 25h가 글쓰기 버튼을 없애면서 싸움은 끝났다. 25h의 충견들은 매우 실망했다. 기껏 준비한 영화감독과 여배우의 스캔들은 써먹지도 못했다. 한참 뒤에 글쓰기 버튼이 다시 생기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올린다고 해도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25h 내 유저들은 모두 장용영에 관한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마치 큰 전투에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마냥 흥분해 있었다. 

  25h의 충견들은 그런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25h의 충견들 중 가장 유명한 ‘허스키’도 마찬가지였다. 허스키의 닉네임은 ‘25h 허스키’였다. 스스로 자신을 25h의 충견임을 밝히는 닉네임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안 좋게 보지 않았다. 개밥을 원한다며 당당하게 말하는 허스키를 지지하는 사람도 많았다. 허스키가 유명한 이유는 바로 그의 글 때문이었다. 허스키는 연예인 가십거리를 위주로 글을 썼는데, 매우 높은 신빙성을 자랑했다. 실제로 유명 아이돌 가수와 배우가 사귀고 있는 것을 맞추거나, 불법도박을 하는 유명 스포츠선수를 잡아내기도 했다. 그 외에도 전적이 화려했다. 연예계 기자들이 허스키의 글을 읽고 기사를 쓴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허스키도 베스트에 글을 올리지 못했다. 기껏 준비한 스캔들은 쓸모가 없어졌다. 

  허스키는 다시 자신이 25h를 주도하고 싶었다. 여러 번 글쓰기 버튼을 눌렀지만, 이렇다 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허스키가 선택한 방법은 직접 부딪쳐 보는 것이었다. 그는 글쓰기 버튼을 누르고 빠르게 한 문장을 작성했다. 곧이어 게시 버튼을 눌렀다. 

  내가 장용영을 찾아줄까?

  허스키의 글은 반응이 좋았다. 다수파는 자신들이 이겼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소수파는 자신들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줘야 했다. 각기 다른 이유로 허스키가 장용영을 찾아오기를 바랐다. 허스키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댓글을 남겼다.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허스키가 사라지자, 25h 충견들은 또다시 분주해졌다. 매번 개밥을 가장 많이 가져가는 게 허스키였다. 그런 허스키가 없으니, 그 자리를 차지해보겠다는 생각이었다.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베스트에 갈 방법을 찾았다. 여전히 25h 내에서는 장용영이 가장 큰 이슈였다. 그들은 장용영을 소재로 여러 가지의 글을 썼다. 다수파와 소수파 사이에서 싸움을 붙이기도 했고,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정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의외의 글이 베스트에 갔다. 

  ‘낙엽엔딩’이라는 사람이 쓴 글이었다. 낙엽엔딩은 무예 24기가 해체된 이유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영상을 하나 실었다. 최대호를 인터뷰한 영상을 편집해 한 부분만 가져온 것이었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 인터뷰어의 질문이 나왔다. 과연 25h 유저들이 장용영을 찾을 수 있을까요? 최대호는 그 질문에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잠시 뒤에 낮은 저음의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장용영이 빗자루로 낙엽을 벨 수 있는 사람이라면, 찾을 수 없을 겁니다. 저와 함께 활동했던 무예 24기 멤버들조차 찾기가 어려워요. 시간이 지나면서 다들 먹고 살기 위해 흩어졌어요. 그런데 빗자루로 낙엽을 벨 수 있는 고수를 찾는다고요? 

  낙엽엔딩은 최대호가 무예 24기에 애정이 많았다고 했다. 그가 무예 24기의 마지막 단원이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또한 여러 개의 기사를 보여주었다. 2015년, 2016년에 쓰였던 기사들이었다. 기사들은 하나같이 무예 24기의 비리에 대해 말을 하고 있었다. 짧게 설명하자면, 당시 무예 24기는 관광객에게 최고의 공연이었다. 마상무예와 야간에 횃불을 들고 공성전 훈련을 재연하는 모습은 대단했다. 그러나 인사문제가 불거졌고, 횡령까지 터졌다. 문제는 수습도 제대로 안 된 점이었다. 책임자를 바꾸는 선에서 마무리 지었다. 사람들은 점차 무예 24기를 좋게 보지 않았다. 수원시도 무예 24기 단원들의 지원금을 줄였다. 시간이 지나자 무예 24기는 몇 명 남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무예 24기의 단장이 최대호였고, 그는 끝까지 무예 24기를 지키고 싶어 했다. 그러나 이미 무너진 무예 24기를 최대호가 지킬 방법은 많지 않았다. 얼마 못 가서 무예 24기는 해체되었다. 

  낙엽엔딩은 그 뒤에 최대호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관해서도 설명했다. 최대호는 허름한 건물 사층에서 다시 시작했다. 조선무예전수관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직접 도배를 했고, 한쪽 벽면에는 직접 거울을 붙이기도 했다. 제법 모습이 갖추어졌지만, 겨우 임대료를 내는 수준이라 했다. 낙엽엔딩은 글 끝에 장용영도 최대호와 비슷한 사람이 아닐까, 하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조선의 무예를 지켜내고 있을 거라고 했다. 

  25h는 다시 일주일이 지났고, 조용해졌다. 한동안 시끄러웠던 장용영 이야기는 점차 사라졌다. 대신 의미 없는 사진을 올리거나, 시간을 때우자며 말장난을 하는 글이 주를 이루었다. 더운 여름 날씨에 관해 이야기했고, 비키니를 입은 여성들 사진을 게재하면서 키득거렸다. 25h의 충견들은 이번에도 베스트에 갈 만한 소재를 찾아 올렸다. 몇몇이 반응을 보이기는 했지만, 예전만 못했다. 그러던 도중에 하나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25h 허스키였다. 제목은 장용영을 찾아냈다, 였다.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 그 글을 클릭했다. 

  허스키는 달랑 사진 한 장만 올려놓았다. 그 사진은 영상 속 장용영과 상당히 닮아 있었다. 몇몇 사람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잘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지 툴을 다룰 줄 안다는 몇몇 사람이 장용영이 맞다며 강하게 주장했다. 그들은 모두 똑같은 말을 했다. 기존 영상의 화질을 고려한다고 해도 합성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정교하다.

  25h는 다시 반응이 뜨거워졌다. 생각보다 빨리 장용영을 찾아내서였다. 허스키가 이미 장용영을 찾아 놓고, 글을 올릴 타이밍을 보지 않았겠느냐, 라는 말도 있었다. 또 어떤 이는 처음부터 허스키의 자작극일 수도 있다고 했다. 몇몇은 허스키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동시에 지금까지 장용영을 찾아 나섰던 유고와 소수파를 비웃었다. 어쨌든 사진 속 장용영은 의자에 앉아서 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는 소나무가 한 그루 있었고, 햇살이 나뭇잎 틈 사이로 장용영을 비췄다. 화질이 좋은 카메라로 찍었는지, 얼굴이 똑바로 나왔다. 눈썹이 짙고 이목구비가 뚜렷해 인상이 강해 보였다. 담담한 표정과 먼 곳을 쳐다보는 눈은 신비감을 주기도 했다. 허스키는 사진 밑에 짧은 글을 남겼다. 

  이 사진은 맛보기야. 지금 장용영 인터뷰를 편집하고 있어. 인터뷰는 편집이 끝나면 바로 올리도록 할게. 참고로 이 글이 베스트에 가지 못하면, 인터뷰는 올라가지 못할 거야. 나는 개밥으로 움직이는 거 알지?

  25h 유저들은 허스키의 글을 베스트에 보내주었다. 허스키의 글에는 여러 개의 광고가 달렸다. 매우 높은 조회 수를 기록했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인터뷰는 다음 날이 되도록 올라오지 않았다. 허스키는 사람들이 모두 지쳤을 즈음에 인터뷰를 공개했다. 무예 24기의 최대호를 인터뷰한 영상보다는 제법 분위기가 잡혀 있었다. 화질도 깨끗했고, 장용영의 목소리도 잡음 없이 잘 들렸다. 

  인터뷰는 허스키가 반갑다며 자기소개를 부탁한다는 말로 시작되었다. 장용영은 멋쩍게 웃으며 라스트 장용영입니다, 하고 말했다. 간단한 소개였다. 허스키는 곧바로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장용영이라 하면 조선시대 정조 때 만들어진 군영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장용영은 아마도 그렇겠죠, 하고 웃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때 장용영의 병사가 살아있다고 하기에는 너무 젊어 보이고, 마지막 계승자, 이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장용영은 그렇게 이해하면 쉬울 것 같다고 대답했다. 장용영은 그 뒤에도 계속 애매하게 말을 했다. 대부분의 대답에 아마도, 그럴지도, 어쩌면 등의 부사를 갖다 붙였다. 허스키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매끄럽게 인터뷰를 이끌어갔다. 

  허스키는 사람들이 궁금해했던 것을 하나둘 물었고, 장용영은 짧지만 빼놓지 않고 대답했다. 질문 중에는 빗자루로 낙엽을 벤 영상의 사실을 확인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그 질문을 할 때는 25h 내의 많은 사람이 각자의 컴퓨터와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장용영의 입을 주목했다. 장용영은 다른 때와는 달리 힘을 주어 말했다. 낙엽을 베는 그 순간은 빗자루가 아니었습니다. 그 빗자루는 도(刀)였습니다. 허스키는 그게 가능하냐고 물었고, 장용영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허스키는 인터뷰 영상 뒤에 글을 덧붙였다. 

  사실 장용영에게 인터뷰하자고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았어. 그는 정말로 모습을 드러내기 싫어하더군. 자신의 무예가 부족하다는 식이었어. 어쨌든 어렵게 인터뷰 허락을 받았고, 최대한 25h 유저들이 궁금해하는 내용 위주로 인터뷰했어. 가장 말이 많았던 빗자루로 낙엽 베기는 보다시피 가능하다고 말하네. 나는 그 말은 믿지는 않아. 그렇다고 장용영이 가짜, 라고 보이지도 않아. 조선무예를 얘기할 때 장용영의 표정은 정말 진지했거든. 그럼 나머지 판단은 여러분에게 맡길게. 

  인터뷰가 끝났을 때는 많은 댓글과 글들이 커뮤니티 내에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솔로몬’의 글도 그중 하나였다. 인터뷰는 꽤 오래 이어졌는데, 장용영이 말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어. 거의 짧고 모호한 대답만 반복했지. 그래도 허스키가 장용영의 말을 잘 정리했어. 덕분에 궁금한 것은 거의 다 풀린 거 같아. 장용영은 무예도보통지를 배우고 익힌 사람이고, 실제로 그 근처에 살고 있어. 유고를 비롯한 소수파 의견이 상당히 맞는 부분이야. 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가 나뭇잎을 빗자루로 베는 모습을 보지 못했어. 지금은 허스키의 매끄러운 인터뷰 진행과 장용영의 애매한 대답이 주는 신비주의 컨셉이 잘 맞아 떨어졌을 뿐이지. 이제 장용영은 자신이 정말 라스트 장용영임을 밝혀야 해. 

  솔로몬의 글은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지지를 받았다. 대부분 빗자루가 도(刀)였는지 칼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은 장용영이 다시 한 번 빗자루로 낙엽을 베는 것, 이라 했다. 그러자 허스키가 그 글에 짧게 대답했다. 

  직접 확인해. 나는 이제 여름휴가를 가야 해. 

  이번에는 다른 의견이 올라왔다. 허스키가 가짜 장용영을 데리고 연기를 시켰다는 것이었다. 그중에는 장용영을 직접 만나봤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그들은 허스키가 데리고 온 사람이 장용영과 닮았고 말투도 비슷하지만, 진짜는 아니라 했다. 이런 글은 처음에는 아무런 반응도 끌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닉네임 ‘레드포인트’가 남긴 글은 사람들의 반응을 끌어내기 충분했다. 레드포인트는 기존 영상 속 장용영의 얼굴을 확대했다. 그리고 눈, 코, 입, 귀, 턱, 이마, 광대뼈 등 각각의 위치에 빨간 점으로 표시해놓았다. 다음은 인터뷰에 참여한 장용영 차례였다. 두 사진의 빨간 점은 흡사했지만, 같지는 않았다. 특히 눈의 간격과 코의 위치는 많이 달랐다. 

  점점 허스키가 자작극을 벌였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닉네임 ‘도리도리’는 허스키가 장용영을 통해서 벌어들인 광고비를 계산해 올리기도 했다. 도리도리는 자신이 25h의 충견 중 한 명이며, 어떻게 사이버머니가 들어오는지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영상광고의 단가와 조회 수를 곱해보면 답이 간단하게 나온다고 설명했다. 도리도리는 진실을 알고 싶다면 돈이 빠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허스키는 이번에도 간단하게 코멘트를 달았다.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반면 허스키를 두둔하는 사람도 많았다. 닉네임, ‘블루 포인트’는 허스키가 의심을 받고 있다며 사진을 한 장 올렸다. 블루 포인트는 레드 포인트가 했던 것처럼 영상 속 장용영과 인터뷰에 응한 장용영의 눈, 코, 입 등에 파란 점을 찍어 사진을 올렸다. 다만 레드 포인트와 다른 점은 파란색으로 점을 찍었다는 것과 두 장용영의 점이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레드 포인트를 욕하기 시작했다. 또 어떤 이는 블루 포인트가 조작했을지도 모를 일이라 말했다. 

  이제 25h 내에서도 장용영과 관련된 글은 믿을 게 없다는 분위기였다. 장용영과 관련된 글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나마 올라오는 글도 대부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뭐냐는 식이었다. 특수효과를 통한 영상일 뿐인데 모두 어리석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25h의 충견들도 장용영 관련 글에는 손을 땐지가 오래였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장용영 관련 글은 아예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한참 뒤에 장용영에 관련된 마지막 글이 올라왔다. 그 글을 끝으로 장용영 관련 글은 아직 누구도 올리지 않았다. 글을 올린 사람의 닉네임은 유고였고, 제목은 라스트 장용영을 만나다, 였다. 그 글을 읽은 사람 중 유고가 처음 장용영에 관해 말을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글이 매우 길다고 느꼈을 뿐이었다. 글을 클릭한 사람 중 몇은 글이 길어서 읽지도 않고 스크롤을 내리기도 했다. 어쨌든 유고의 글은 아주 진지했다. 글에 하나의 오타도 없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유고의 글에는 아무런 댓글도 달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위로 다시 여러 개의 글이 남겨졌다. 유고의 글은 순식간에 뒤로 밀려나며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25h 베스트에 자리매김한 글은 아이돌 가수의 노출 사진과 유명 배우의 불법도박 글이었다. 그리고 베스트에 있는 글은 여러 개의 광고가 달려 있었다. 




  <당선소감>


   5년 후에도 소설가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5년 전에 이제 막 등단을 한 소설가를 본 적이 있다. 같이 공부한 문우들끼리 당선 소감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자세한 이야기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 그 분위기는 아직도 생생하다. 이제 막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던 때였고 실내가 조금 더웠다. 술기운 탓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상기된 얼굴로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되어야지’ 하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났지만 그때를 잊지 않기 위해 애썼다. 단지, 잊지 않았을 뿐인데 이런 기회를 주셨다는 게 감사하다. 

  이제 막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신인 소설가에 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신인상을 탄 소설가들이 5년 뒤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분석한 기사였다. 기사의 결론은 냉정했다. 실제로 5년 뒤까지 소설가로 남는 사람이 몇 되지 않았다. 나는 소설가로 남고 싶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제 소설가로 살아남기 위한 경쟁을 할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기회가 오는 걸 보면 나는 운이 좋은 편 같다. 주위를 둘러보면 여전히 내가 운이 참 좋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만큼 내 곁에는 항상 좋은 사람이 있었다. 그분들 덕분에 소설을 쓸 수 있었다.

  이평재 선생님, 저에게 소설이 무엇인지 알려주셨어요. 아직 그 깊이를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앞으로도 따라가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술서가 문우들, 계속 이대로 같이 공부했으면 좋겠습니다. 같이 있어서 정말 위로가 되고 든든해요. 저에게 항상 도움을 주신 오형엽 교수님 감사합니다. 또한 큰 상을 주신 영남일보와 심사위원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정민이가 배려해준 덕분에 이곳까지 올 수 있었어요. 모두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가상공간과 실제세계 풍자적으로 잘 표현” 


  본심에서 읽은 소설은 모두 아홉 편이었다. 그중엔 좋은 소설이 많아 심사가 매우 길어졌다. 문예지를 비롯해 문학상까지 많은 심사를 했지만 유독 좋은 소설이 모여서 각축을 벌이는 통에 힘든 심사가 되었다. 하지만 좋은 소설이 많아 심사위원 모두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한편으론 영남일보 문학상의 권위와 인기가 느껴졌다.

  좋은 소설이란 무엇일까. 한 편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작가가 꾸민 이야기를 읽는 것인데, 이때 우리들이 읽는다 하는 것은 작가가 쓴 문자와 언어다. 아무리 기발한 이야기라 해도 소설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오직 문장뿐이다. 

  좋은 소설이 많았다는 말은 결국 언어를 적합하게 사용하고 서사 전달의 활용된 도구로 이용한 소설이 많았다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심사위원들 손에서 떠나지 않은 소설은 모두 네 편이다. ‘내일은 해피엔딩’은 자살동호회 멤버들이 한적한 펜션으로 가서 자살한다는 사회적 이슈를 다룬 소설이었다. 우울한 내용이지만 펜션 주인의 유머러스한 인물을 통해 단순한 비극으로만 전달하지 않는 게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펜션에 들어서는 소설 초반부터 자살동호회 모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생각대로 전개가 되는 게 아쉬웠다. 특별한 소재에 기대면 뭔가 새로워 보일 것 같지만 그건 어쩌면 착각일 수도 있다. 좋은 소설은 언어를 잘 다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특별한 소재에 기대지 않고도 완성도를 높인 소설이다. ‘태풍’과 ‘살아있을 지도 모른다’는 문장의 힘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묘사가 주는 힘이 서사를 압도할 만큼 탄탄했다. 당선작과 함께 마지막까지 고민을 하게 했다. 그러나 무엇이든 지나치면 독이 되는 법이다. 현대 소설에서 묘사의 비중은 많이 줄어들었다. 필요한 부분에 적절하게 사용되었더라면 보다 더 세련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었다. 

  당선작은 진통 끝에 ‘라스트 장용영’으로 결정했다. 전통 무예의 고수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인터넷 공간에서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은 가상공간과 실제의 세계를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광고와 ‘진짜’처럼 재현되는 가상의 세계에 이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접속되는지를 야무지게 보여준다.

  비록 올해 응모에선 아쉽게 탈락한 수많은 분은 낙담하지 말고 내년에 더욱 공들여 도전해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응모자 모두에게 새해에는 복된 일이 가득하길 기원한다.

 

심사위원 : 성석제, 박성원